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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공화국

last modified: 2015-03-29 05:29:48 by Contributors



(ɔ) from

산와머니

면적 238.534km²
인구 2,575만 8108명(2013)
민족구성 아칸족 47.5%, 다그바니족 16.6%, 에웨족 13.9% 등
종교구성 기독교 71.2%, 이슬람교 17.6%, 토착신앙 5.2% 등
수도 아크라
공용어 영어
국가원수 대통령(존 드라마니 마하마)
정부수반 부통령(퀘시 아미사아서)
1인당 GDP 명목 1,609$(2012)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정치
4. 경제
5. 사회
5.1. 민족구성
5.2. 국민성
5.3. 교육
6. 문화
6.1. 스포츠
7. 외교 관계
7.1. 한국과의 관계

1. 개요

서아프리카 대서양에 맞닿아있는 국가. 정식 명칭은 가나 공화국(Republic of Ghana). 수도는 아크라(Accra). 인구는 대략 2,500만명이다.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토고와 인접하고 있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인접국들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아 불어권 국가들인데 비해 가나는 영어권 국가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기독교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으로 인접국들이 이슬람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계의 여러 나라 이름을 한글로 적고 나다순으로 나열하면 이 나라가 맨 앞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이 나라가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먼저 입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한국 땅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면 그리스 다음에 이 나라부터 입장하는 모습을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나에서 동계올림픽에 참여한다면 아마 2018년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쿨러닝 시즌 2

반기문 UN사무총장 바로 전임인 피 아난 前 사무총장의 나라이기도 하다.

2. 역사

가나(Ghana)라는 이름은 '전사의 왕(Warrior King)'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자리를 잡기 이전인 7세기에[1] 모리타니말리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가나 제국(와가두 제국)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러니 현 가나 공화국은 수백년전 가나 제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셈. 아샨티 제국이 지금 가나와 밀착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유럽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이 지금의 가나다. 포르투갈은 대항해를 시작한 15세기 중엽에 가나 땅에 도착하여 엘미나 성(Elmina Castle, 가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을 건설했다.

저 무렵 가나에는 길을 가다 발이 채이는 게 황금 원석일 정도로 노천 황금이 지천에 깔린 곳이었다. 이전에는 북아프리카 유목민인 베르베르인들이 이 지역의 금을 아랍과 유럽으로 중개무역했으나, 포르투갈인들이 정착한 후로는 그 이익을 고스란히 포르투갈인들이 가져갔다.

그후 1600년대 아샨티 민족이 세운 샨티 제국이 지금의 황금해안을 따라 걸쳐 세워졌고 이후 17세기 중엽 포르투갈이 쇠망하고 세계 해양 패권을 장악한 네덜란드가 엘미나 성을 중심으로 가나와 노예무역을 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은 흑인노예무역이 성행하던 때고 실제로 아샨티 제국은 노예 무역으로 먹고살던 나라였다. 물론 네덜란드가 가나 땅을 식민지배하기 이전부터 포르투갈이 노예무역을 시작해 이 지역 사람들이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팔려나가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노예무역이 번성하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네덜란드의 강력한 해상 네트웍으로 흑인 노예들은 대규모로 북미, 남미, 유럽 등 세계 여러 곳으로 끌려갔다.

이후에도 노예무역으로 생존은 했지만 19세기 초중반부터 4번의 앵글로-아샨티 전쟁에서 지면서는 완전히 영국이 식민통치를 하고 나라가 사라졌다. 이 시기에 가나는 '황금해안(Gold Coast)'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2], 황금 생산량이 엄청나게 많아서 그랬다고 한다. 의외로 영국이 식민통치[3]하던 시대는 이전 포르투갈, 네덜란드 시기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어쨌든 식민통치는 식민통치라 수탈은 여전했다.

1960년대 아프리카 독립 붐의 서막을 알린 나라였다. 물론 실제 독립은 1957년으로 튀니지모로코(1956년 독립)보단 1년 늦지만 북아프리카 이슬람 동맹이 아닌 나라로선 가장 먼저이다. 이 독립이 아프리카 흑인들이 다수인 나라들의 독립 서막을 알린 것은 분명하다. 이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가나의 국기.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이기도 한 검은 별(Black Star)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제일 먼저 독립을 이룬 국가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과 번영을 희망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콰메 은크루마는 런던 유학파 출신으로 잘하면 아프리카판 간디가 되었을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1940년대부터 가나 독립 및 아프리카 해방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하여 1952년 감옥에서 총리로 당선되었고, 1957년에는 가나의 실질적인 독립을 이끌어낸다. 1960년에는 대통령이 되었으나 이후 전제왕조에 가까운 권력을 휘둘러서 흔한 제3세계의 독재자 태크를 탔는지라 리그베다 위키의 독재자/목록 항목에도 등재되어 있다. 결국 1966년 중국 베이징 방문 중 쿠데타를 맞아 옆나라 기니로 망명하게 된다. 망명 후에도 범아프리카 운동이나 미국과 카리브해 등지의 흑인민권운동 등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가나로 복귀하지 못하고 197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암으로 사망.[4] 이후 가나에서는 1990년대가 될 때까지 쿠데타가 여러 번 일어나게 되었다가 1992년에 헌정복귀가 완수되었다.

3. 정치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대통령이 국가 원수이며 행정부의 수반이다. 쿠데타가 엄청 빈번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 선거를 통한 민주정부가 출현하여 어느 정도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임기 4년의 정부통령은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고, 국회는 단원제로 임기 4년의 국회의원 230명으로 구성된다. 군대는 지원병제이다.

미국의 국제정치 잡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와 평화기금(Fund For Peace) 사이트에서 공동으로 산출하는 '취약국가지수 (Fragile States Index)'[5]에 의하면 2012년 가나의 '망한 지수'는 120점 만점에 70.7점으로, 178개 국 중 108위를 기록했다. 이것은 아프리카에서 5번째로[6] 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2007년 125위, 아프리카 나라 중에선 끝에서 3위에 비해서는 꽤 많이 상승했다.

그나마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는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라는게 함정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응원하러 온 가나 관중 250여명이 브라질에 난민신청을 해버렸다.

4. 경제

2000년대 부터는 자유시장 경제 개혁과 IMF의 각종 지원 덕으로 경제적 상황이 매우 개선되었다. 2011년 가나 정부의 공식 경제 발표에 따르면 이 해 가나의 경제성장률은 14%에 육박했다. 물론 정부의 공식 발표치다 보니 과장될 수는 있지만, 긍정적인 해석이 많다.[7] 국민총생산도 1980년 43,229 달러에서 2005년 97,017,315달러로 급상승했다.

금융업도 아프리카에서 나름대로 자리잡았다. 가나 아크라에는 증시시장이 있으며 23개 기업이 등록을 했다. 정식명칭은 GSE다.

제조업은 농업 위주인 가나 경제에서 미약하지만, 나름대로의 성장을 하고 있다. 가나 북동부 광산 지역에서 채굴되는 알루미늄을 이용한 제련 산업이 있으며 소규모의 소비재를 정부가 진흥했다.

금은 식민통치 시절 많이 수탈당하는 바람에 거의 고갈된 수준이지만 그밖에도 알루미늄, 보크사이트, 망간 등의 비철금속들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가나의 동쪽에서 흐르는 볼타(Volta) 강과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호 볼타 호, 그리고 이곳에 설치된 아카솜보 댐(Akasombo Dam)이 있는데,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의 상당량은 알루미늄 제련에 쓰인다고 한다.

롯데에서 판매하는 가나초콜릿의 상표명인 '가나'도 여기서 유래됐을 정도로 카카오 역시 가나를 대표하는 수출품 중 하나다. 현지 사람들은 코코, 혹은 코코아라고 부르며, 가나는 세계 2위의 카카오 생산국이다.

5. 사회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주변이 프랑스어권 국가들이다보니 프랑스어를 주요 외국어로 가르치고 있고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있다.왠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영국의 식민지배의 결과 국민의 70%가 기독교도(다만 성공회천주교, 개신교와 아프리카 토속 기독교, 정교회 등 다양하게 이뤄져 있다.)이다. 그 외 16% 정도가 북부의 무슬림이고 나머지는 토속종교를 믿는 인구다. 수도인 아크라는 론리 플래닛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혼란한 도시 1위로 뽑힌 바 있다.아닌데에~[8]

5.1. 민족구성

가나에는 약 75개의 부족이 있지만, 총인구의 1%가 넘는 부족은 10개 정도에 불과하다. 주요 부족은 아칸족(47.5%), 몰레-다그바니족(Mole-Dagbani, 16.6%), 에웨족(13.9%), 가-아단베족(8.3%), 구안족(Guan, 3.7%), 구르마족(Gurma, Gourma, Gourmantche, 3%), 요루바족(Yoruba, 1%) 등이다. 그외 아당메족(Adangme), 판티족, 다고아족, 후아리족도 있다.

5.2. 국민성

여느 더운 나라에 사는 국민들이 그렇듯 느긋하고 여유로운 편이다. 그래도 이 나라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갈 때 "Obroni"라고 아이들이 인사하면 '하이'라고 웃으면서 화답해주자. Obroni는 '흰색(백인)'이라는 의미의 아칸(Akan)어이다.

그렇지만 이런 호의적인 모습들 가운데도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자. 그들의 신경을 잘못 건드리거나(예를 들자면 가나에 대한 안 좋은 말들) 현지인과의 싸움에 휘말리면 군중심리로 인해 망했어요 테크를 탈 수 있다.

가나인들은 모 의리의 사나이처럼의리를 소중히 하며, 투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고. 르완다 학살 당시 끝까지 남아 가장 많은 시민들을 구출한 것도 가나 병사들이었다. 오오.

5.3. 교육

아프리카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다. 12,000여개의 초등학교와 5,000여개의 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이는 단연 아프리카 국가 중 최다이며 그러니까 인구수로 7배쯤 되는 근처 나이지리아보다 학교가 많다는 소리 교육환경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고. 가나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면 교육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6. 문화

나이지리아와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영화를 제법 많이 만드는 나라이기도 하다. 다만 워낙에 저예산으로 만들다 보니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한다. 경제적 사정으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극장 개봉영화가 아닌 비디오 영화가 대다수라고 한다. 2000년 초반 가나 영화계를 취재하러 간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들은 취재 조건으로 영화에 나온 적도 있다. 이 영화는 가나 사람들이 백인 선교사를 죽이면서 내부적 갈등에 빠지는 비디오 영화였는데, 백인 배우를 고용할 여력이 없어 고민하던 감독과 제작자는 때마침 취재차 온 두 백인 기자들이 배우로 나오는 조건으로 취재를 허락했고, 덕분에 사진 및 촬영 기자와 인터뷰 기자는 선교사로 나와 가나인들에게 끔살당하는 배역을 연기했다.(당시에는 월간 지오에서 이걸 취재했는데 분장과 여러 수준이 엄청난 저예산)

하지만 영화는 많이 만들지만 여기도 헐리웃의 공세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6.1. 스포츠

축구를 상당히 잘하기로 유명하다. 축구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7. 외교 관계

2010년대 와서 중국의 투자가 많아졌으나 중국인들의 불법자원 개발 등 병크가 터지자 반중성향이 강해져 2013년 6월에 와선 중국인 수천여 명을 구금하고 강제추방 및 벌금형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백인 몰아내니 중국인

7.1.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1977년에, 북한과는 1964년에 수교하였다. 한국은 가나에 태권도 사범, 의료 단원 등을 파견하여 태권도 교육 및 의무지원을 하였다. 2000년대엔 한국 해군의 참수리급 237호정을 가나가 수입해 자국 해군력에 배치했다.

2000년대 들어 석박사 과정을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온 가나 출신 학생들을 꽤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방송이나 영화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샘 오취리와 아부다드도 원래는 공부를 위해서 한국으로 온 케이스이다.

여담으로 가나에도 라면이 있는데, 수입라면이 아니라 자국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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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건 외국에서 기록한 최초의 사료이고 중심지역들은 3세기경부터 발달되었다.
  • [2] 서쪽의 옆나라 코트디부아르의 이름은 상아해안(Côte d'Ivoire-Ivory Coast)이다. 질 좋은 상아가 많이 생산됐던 곳이었다. 그 옆의 라이베리아는 곡물해안(Grain Coast), 시에라리온후추 해안(Pepper Coast)이라 불렸으며, 가장 안습하게도 나이지리아 인근 해안은 노예 해안(Slave Coast)이라 불렸다.
  • [3] 참고로 아랍(오만), 독일(독일 제국), 영국에게 차례로 식민지배를 겪었던 탄자니아에 간 한 교수가 "세 나라 중 어디가 낫나요?"라는 질문을 하자. "오만놈들은 우릴 차별하고, 독일은 무시하고, 영국은 위한 척하면서 결국은 세 놈들 다 수탈하던 거 다 같다. 어디가 나은 게 어디있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언급도 안 됐다. 안습.
  • [4] 당시 베이징이나 부큐레슈티 등의 행보에서 보듯, 제3세계 비동맹세력을 주창하며 공산주의 진영과도 가깝게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내정치는 시망...
  • [5] 여기로 가면 정확한 통계를 볼 수 있다.
  • [6] 1위는 모리셔스 (46.1점, 145위), 2위는 세이셸 (63.7점, 122위), 3위는 보츠와나 (64.5점, 121위), 4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66.6점, 115위). 덧붙이자면 망한 나라 전세계 1위는 해적들의 소굴인 그 헬게이트이고, 상위 6위까지 아프리카 국가가 모조리 독점(…)했으며, 상위 25위까지 국가 중에 19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다. 나머지 6개국은 아프가니스탄, 예멘, 파키스탄, 이라크, 시리아, 미얀마인데 그보다 더 심하게 망한 나라가 많단 소리(…).
  • [7] 1980년대까지는 코트디부아르가 자유시장으로 경제를 꾸준히 유지를 한 덕에 경제적으로는 가나보다 위였다. 지금은 역전되었다.
  • [8] 3위는 바로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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