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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낙스

last modified: 2015-04-05 18:37:3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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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게임을 제작하면서 수천만엔을 말아먹는,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에서 말아먹고 게임에서 갚는 제작사. 비상장이지만 일단은 주식회사.

이름의 유래는 커다랗다라는 의미의 일본 방언 가이나[2]와 미지의 것을 뜻하는 X의 결합. 그러니까 크고 아름다운 X... 어라?!

목차

1. 역사
2. 관련 사항
3. 주요작품 (년도순)
3.1. 1980년대
3.2. 1990년대
3.3. 2000년대
3.4. 2010년대
4. 관련 인물
5. 출신자가 세운 대표 관련업체
6. 관련 항목


1. 역사

전설의 시작. DAICON 3 오프닝 애니메이션.

일본SF대회 DAICON 3, 4[3][4]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동인집단 DAICON FILM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오사카에서 도쿄로 상경[5]하여 왕립우주군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원래 예정대로라면 왕립우주군의 제작이 끝난 후(1986년 제작은 완료되었다) 해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왕립우주군 제작 중 투자받은 자본 이외에도 가이낙스 명의로 돈을 빌려 제작비를 충당한 상황에서, 왕립우주군은 흥행에 실패. 가이낙스 명의로 빌린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고 만다. 결국 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애니메이션 제작을 계속해야만 하는 상태가 된다. 다만 왕립우주군의 감독이자 현 가이낙스의 대표이사인 야마가 히로유키는 왕립우주군 제작 과정에서 생긴 빚보다 제작에 관여한 스태프들 중 일부가 아무리 작품이 성공을 해도 해산을 하면 다른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없어질까봐 그대로 존속하는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국판 뉴타입에서 밝힌 바 있다.[6]

이 무렵 매달 70만엔씩이나 월세를 내던 100평짜리 스튜디오에서 16평짜리 비좁은 사무실로 이사했고, 빚 독촉 업체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본격 현실은 시궁창

이후 가이낙스가 망할 것을 걱정한 지인들의 인맥을 통해,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을 영상화한 애플시드 등의 하청작업으로 연명하면서, 이때 새롭게 형성된 OVA 시장에 잘 팔릴 만한 상업용 노선으로, 자신들의 오타쿠 성향에 충실하면서 오타쿠 집단의 취향을 노린 작품인 톱을 노려라!를 제작, 돈과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톱을 노려라 역시 제작비를 많이 투자한 탓에 인기는 끌었어도 빚을 값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다른 OVA에 비해서 월등하게 많이 팔렸고,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톱을 노려라 이후, 가이낙스는 하청의 하청을 받는 형태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제작한다. 나디아는 여러 모로 인기를 끌었지만 하청의 하청 형태로 가이낙스가 제작한 탓에 가이낙스 쪽으로 오는 수익은 별로 없었고[7], 오히려 수 천만엔의 빚만 더 쌓였다.[8]

사실 당시 가이낙스의 빚을 갚은 것은 아카이 타카미[9]를 중심으로 한 게임반이 개발한 뇌학원프린세스 메이커였다.[10](게임 파트쪽에서 수 억엔의 수익을 올려서 아니메 파트의 빚을 갚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1989년) 돈벌이용으로 OVA용의 19禁 에로 아니메도 제작한 적이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흑역사.[11]

나디아의 제작이 끝난 뒤, 가이낙스는 자신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같은 작품인 '오타쿠의 비디오'[12]를 만들었고, 그 다음엔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불꽃의 전학생'을 제작했다. 전대 미문의 OLA(오리지널 레이저디스크 애니메이션)으로 당연히 망했다. 시마모토 카즈히코[13]도 자신의 자전적 만화 '불타라 펜'에서 씹었다.[14]

그 다음작으로 왕립우주군의 세계관을 잇는 작품인 '푸른 우르'을 만들려고 했지만 막대한 제작비 소요가 예정되는 상황에서 당시 가이낙스에는 그 정도 규모의 자금 동원이 불가능했고, 푸른 우르의 제작은 중단된다.

푸른 우르의 제작이 중단되자 안노 히데아키의 주도로 오리지널 로봇 애니메이션의 기획이 만들어졌고[15], 이것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완성, 엄청난 인기를 얻기에 이른다. 수익은 대부분 제작위원회에서 다 가져갔기 때문에 가이낙스의 수익은 의외로 크지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16][17], 어쨌든 에반게리온에서 나온 수익 덕에 가이낙스는 마침내 빚더미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가이낙스는 예상외로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을 제작, 제작비 절감의 묘미를 보이면서도 원작에 충실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하지만 원작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묘한 마무리를 한 탓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99년 말, 사장이 연루된 대규모 탈세사건이 발각되는 바람에 회사가 공중분해될 상황까지 놓이기도 했다.[18]

연속해서 TV판을 만들던 가이낙스는 OVA로 돌아가 신진 애니메이터들이 주력을 맡은 작품인 프리크리를 제작, 움직임의 맛을 살린 작화와 이해하기 묘한 스토리로 찬사와 욕을 동시에 들어먹는다.

프리크리 이후, 왕립우주군의 감독이었던 야마가 히로유키가 십수 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 메이드 로봇이 주인공인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작품인 마호로매틱을 만든다.

이후 가이낙스다운 온갖 패러디가 가득한 아베노바시 마법 상점가, 프린세스 메이커의 세계관을 이으면서 소녀층을 주 대상으로 한 작품인 쁘띠프리 유시를 만들었으며,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오타쿠 소재의 개그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 자신들의 히트작 속편인 톱을 노려라!2 등을 연속으로 제작한다.

그리고 2007년, 에반게리온 이후 가이낙스에 몸을 담은 애니메이터들이 주축이 된 작품인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제작해 좋은 평을 들었다.

그렌라간 이후엔 시희, 하나마루 유치원을 만들었으며, 2010년 10월 팬티 & 스타킹 with 가터벨트를 방영했다.

그런데 그렌라간 때부터 시작된 스폰서(주로 애니플렉스)와의 갈등이 심해지는 바람에 결국 요시나리 요우, 스시오, 이마이시 히로유키를 비롯한 특급 애니메이터들이 퇴사하는 일이 벌어진다.[19]

2011년 7월달부터 단탈리안의 서가를 방영했다.

2011년 8월 22일, 퇴사한 일원들은 스튜디오 트리거를 설립했으며 10월 8일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홈페이지

2013년, 26년만에 왕립 우주군의 속편 제작을 발표했다 #

과거 가이낙스를 대표하던 인물들이 나가서 만든 스튜디오 카라, 차세대 가이낙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나가서 만든 트리거가 창립된 이후로는 망했어요 영 시원치 않은 작품들이 나오는 중, 아무래도 과거의 영광이 퇴색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20]

2. 관련 사항

애초에 오타쿠 집단이 모여 만든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도 오타쿠 분위기가 짙다고 한다. 가이낙스 입사 시험 문제 자체가 매니악한 지식들에 관련된 문제였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와선 예전에 비해선 많이 순화되었다는 말도 있다.

리스크 절감을 위해서인지 가이낙스 오리지날인 작품이면서도 공동 제작으로 만드는 경우가 잦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타츠노코 프로덕션와 공동 제작이었고, 그와 그녀의 사정은 J.C.STAFF와 공동 제작, 마호로매틱과 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SHAFT와 공동 제작 등등.

일반적인 업계 관행을 무시하고 스폰서 물먹이기에도 일가견이 있어 왕립우주군, 나디아, 에반게리온의 경우 제작 기간 내내 스폰서와 아웅다웅했다라는 말도 있다. 단 나디아의 경우엔 충돌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었다는 말도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제작 당시 제작 스케줄은 미친듯이 빡빡해서 스태프들은 몇번이나 저승과 이승을 왔다갔다 했다고. 마기 해킹화에서 아카기 리츠코가 어머니가 남긴 쪽지를 들여다보는 화가 있는데, 그 쪽지의 문구가 죄다 '힘들어', '배고파', '감독..감독..!!'과 같은 스태프들의 절규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그렌라간 PV중 첫번째 시리즈인 '니아공주와 시몬'의 연출을 맡은 스태프는 85년생이라고 한다.

알게 모르게 하청을 받아서 작업한 경력이 화려한데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작안의 샤나, The Big-O, 크레용신짱, 도라에몽, 포켓몬스터 극장판 등의 제작을 일부 전담하기도 했다.

아득한 옛날, PC88/98시절에는 PC게임 제작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초히트 육성시뮬레이션 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가 대표적인 경우. 프린세스 메이커(특히 3)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쁘띠 프리 유시는 한국에서도 재능방송에서 방영했다.

프린세스 메이커 이전에는 PC98과 IBM PC로 전뇌학원 시리즈라는 15금(일본 기준. 우리나라였다면 빼도박도 못할 18금이다.) 옷벗기기 퀴즈게임 시리즈를 만들어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으며[21] 심지어 3탄에서는 자사 작품인 톱을 노려라!의 여자 캐릭터들을 가차없이 유린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가이낙스의 히로인들이 딸내미 앵벌이라 불리우며 두고두고 몹쓸 일을 당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몹쓸 행동은 한국 출신의 임모씨아이들이 코미케 회지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또한 이 3번째 작품은 안노 히데아키가 직접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원화로 참여했던 쿠보오카 토시유키(아이돌 마스터 캐릭터 디자이너)는 톱을 노려라!의 히로인 노리코의 에로 그림을 그려 제출했더니 "에로가 부족해!! 이런 그림으로 중딩의 **가 빳빳해질것 같애!"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22]

한편 겟센디나 같은 괴작도 만들었다.

그러나 윈도우즈로 갈아탄 이후 만들어낸 작품들은 하나같이 망작에 희대의 쿠소게들로 정평이 나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그들이 사일런트 뫼비우스, 에반게리온 등 네임밸류 높은 작품들이었다는 것. 심지어 삽화가가 가이낙스 소속(아카이 타카미)이었다는 것 때문에 엄한 성계 시리즈의 게임에도 불똥이 튀었다. 흑흑흑.

아무튼 회사 자체에 2차 창작에 열의를 가진 오타쿠의 유전자가 새겨져 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단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듯 자사의 판권물에 대한 유연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원작의 이미지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회사는 아니라서 원작의 세계관을 비틀고 뜯어고친 관련 작품이라든가, 원작의 캐릭터를 탈의 시킨다던가 그런쪽에 비교적 관대한듯.

가이낙스의 탄생에 원더 페스티벌을 최초 기획한 제네럴 프러덕츠[23]가 관여한 탓인지, 가이낙스의 원페 판권을 좀 널널하게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이낙스를 퇴사하고 트리거라는 회사를 세운 오츠카 마사히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회사 분위기가 너무 자유로워 설마 통과 되겠냐 하는 기획조차 OK 사인이 뜬다고 한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부담감이 너무 심해서 퇴사했다고.

3. 주요작품 (년도순)

5. 출신자가 세운 대표 관련업체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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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매주 금요일마다 대문이 바뀐다. 모아두는 사람들도 꽤 있다.
  • [2] 창단 멤버 중 한명인 아카이 타카미의 출신 지역에서 쓰인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의 프로축구단 '이나레 돗토리'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 [3] 오사카에서 열리면 DAICON, 도쿄에서 열리면 TOKON, 지역명을 붙인다. 1981년의 DAICON 3는 오사카에서 3번째로 열린 일본 SF 대회. DAICON 4는 1983년.
  • [4] 다이콘4의 오프닝은 드라마 전차남의 오프닝으로 패러디된 적 있으며(배경음악인 영국의 록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약칭 ELO)의 'Twilight'마저도...), 또한 가이낙스의 애니 프리크리에서도 하루코가 대놓고 다이콘 V라면서 패러디한 적이 있다. 5화에서.
  • [5] 사장인 오카다 토시오가 불륜 스캔들을 일으켜 오사카에서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해 상경을 결행했다.
  • [6] 왕립우주군이 끝난 후 사무실에 모였는데 스탭들이 다음달은 어떡할까요? 라고 물어와서 우리 해산하는거 아니었어? 라고 되물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고 당시의 사장 오카다 토시오는 회상했다.
  • [7] 당장 나디아 관련 저작권 표기만 봐도 ©NHK・総合ビジョン・東宝로 되어 있다. 즉, 저작권 수입은 제로.
  • [8] 나디아는 가이낙스의 예정으로는 2달의 제작기간이었지만, 6개월이 더 늘어나 총 8개월의 제작기간이 소요되었고, 그 기간만큼 제작비는 초과해버렸다. NHK는 편당 1200만엔의 제작비를 제공했고, 예정대로라면 가이낙스는 손해를 볼 일은 없었지만...
  • [9]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었는데, 게임쪽에서 재능을 각성해버려서 가이낙스를 먹여살리는 "소녀?"가장 노릇을 하게되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이런 것들이 나중에 가이낙스의 분열의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 [10] 당시 허접한 게임의 실상을 보고 이 정도라면 우리가 충분히 이긴다고 자신만만하게 게임업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
  • [11] 이 기획은 오카다 토시오의 궁여지책이었지만, 마가 히로유키안노 히데아키는 "가이낙스가 이래도 되는 건가"라면서 술자리에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오카다는 지금 마시고 있는 그 술값이 거기에서 나온 돈이라면서 섭섭해했다고.
  • [12] 각본은 오카다 토시오. 실제 제작사는 가이낙스의 작화 하청을 주로 담당하는 다른 스튜디오
  • [13] 1961년생. 안노 히데아키, 야마가 히로유키와는 오사카 예대 동기. 대학 재학시절 만화가로 프로 데뷔. 이때 안노가 와서 만화책에 싸인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가 있다. 녀석은 오타쿠라서 수집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시마모토도 안노가 재학시절 만든 튼튼한 타이어나, 다이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보고 충격을 받고 애니메이션의 길은 포기하고 만화가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 [14] 시마모토는 당시에 불꽃의 전학생 OLA를 가족에게 자랑했었는 데, 문제는 가족들 중에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가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결국은 VHS로도 출시.
  • [15] 이것도 원래는 다쯔노코 프로에서 재하청한 것이다.
  • [16] 가이낙스의 몫으로 돌아온 것은 전체 수익의 5%라는 소리가 있다.
  • [17] 이때 교훈을 바탕으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제작은 물론 배급에도 100% 안노 감독의 자비로 제작. 그러나 안노는 이미 가이낙스를 떠난 상태였기에 가이낙스는 망했어요.
  • [18] 당시 사장의 이름은 사와무라 타케시澤村武伺. 제너럴 프로덕츠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던 인물. 오카다 토시오에 따르면 사장으로 발탁하자 오사카의 부동산을 매각한 돈 수억엔을 회사로 들고오거나, 탈세 사건이 터지자 모든걸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 사나이 기질이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재일교포라는 소문도 있었다. 참고로 가이낙스 창립멤버 가운데 타케다 야스히로(武田康廣 한국이름은 윤강광)는 확실한 재일교포(1997년 6월 22일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로 확인)이다.
  • [19] 다만 트리거 창사 이후에도 창립 멤버인 스시오가 게스트 형식으로 가이낙스 공식 홈페이지 대문에 그렌라간을 그려준 걸 보면 원만하게 분리된 듯하다.
  • [20] 여담으로 요새 흥행에 성공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가이낙스의 작품이 아니다. 또한 과거의 선례(?)를 반영해서인지 스폰서도 없이 스튜디오 카라의 완벽 자비로 제작된 작품이다. 한마디로 스튜디오 카라는 돈방석에 앉았다는 이야기고, 유명 애니메이터 한 명 나가면서 에반게리온을 놓친 가이낙스는 피눈물을...
  • [21] 전뇌학원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이너중 일부가 아카이 타카미였다. 그의 프메 시리즈 관련그림이 괜히 꼴릿한게 아니다.
  • [22] 토미노 요시유키퀘스 파라야 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한 대사를 들어둔 안노 히데아키 가 써먹은 것이라고 한다. 토미노 요시유키 항목 참조.
  • [23] 제네럴 프러덕츠가 가이낙스에 전념하게 되면서 주관사가 카이요도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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