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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

last modified: 2015-04-12 16:14:53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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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藤清正 (1562 ~ 1611)

Contents

1. 소개
1.1.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1.2. 임진왜란의 선봉
1.3. 축성의 달인이 되다
1.4. 히데요시 사후
1.5. 기타
2. 대중 매체에서
2.1. 전국무쌍 시리즈
2.2. 바사라
2.3. 신장의 야망 및 태합입지전
2.4. 그외


1. 소개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이며 다이묘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선봉으로, 한국에서는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인물이다. 보통 '가토 기요마사'라면 잘 모르는 사람도 '가등청정'이라 하면 알아들을 정도다.[1]

1.1.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본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처인 네네(후의 기타노만도코로)의 조카로, 가신의 기반이 약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열심히 키운 인재 중 하나이다.

혼노지의 변 이후, 히데요시가 급상승하자, 본래 수석가신이었던 시바타 가츠이에가 히데요시와 대립, 시즈가타케의 전투에서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때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하여 큰 공을 세웠던 시동출신의 무장 7인을 '시즈가타케의 칠본창'이라 부른다.

히데요시의 몇안되는 혈연 중 하나라는 점도 있고 해서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그래도 히데요시의 아버지가 딴집살림차려 낳은 자식의 아들, 그러니까 이복형제의 아들인 후쿠시마 마사노리보다는 대접이 덜했다. 그래서 "공도 별로 차이 안나는데 차별대우하는거요 뭐요"라고 대들기도 했다고 한다.

1.2. 임진왜란의 선봉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군의 선봉이 되어 조선으로 쳐들어왔는데, 사실 한성에 가장 처음 입성한 것은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그러나, 가토 기요마사는 문서를 교묘하게 꾸며서 누가 먼저 들어왔는가 하는 부분은 교묘히 빼놓고 자신의 사자를 잽싸게 보내서 공적을 위조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이시다 미츠나리가 가토 기요마사의 부정을 탄핵하자, 예전부터 우등생처럼 히데요시 옆에 붙어서 정무를 도맡아하는 미츠나리를 미워하긴 했으나 이후 사이가 아주 원수지간이 되었다.

개성을 함락시킬때까지 고니시군과 함께 하였고, 그 이후 함경도로 진군하여 경인, 세필 등의 매국노들과 내통하여 왕자인 임해군, 순화군도 사로잡는다. 그리고 가토는 이 공로로 국경인과 국세필에게 벼슬을 내린다. 참고로 불국사를 불태운 범인은 바로 가토 기요마사였다. 또한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쪽 기록으로 볼 때 한성의 궁궐을 불태운 것이 가토 휘하의 부대였을 가능성이 높다.[2]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애초에 불임 증세에 시달렸는데 불임 치료에 호랑이 고기가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기간동안 조선 정벌 외에도 틈나는 대로 호랑이를 사냥해서 일본에 보냈다. 이에 당대 조선사람들이 그를 '호랑이 가토'라 불렀다.

1.3. 축성의 달인이 되다

정유재란 시기에는 현재의 울산광역시 학성에서 왜성을 쌓고 버텼다. 울산성 전투에서는 조명연합군에게 포위되어 자군의 시체를 뜯어먹고 말피를 마시는 처참한 농성을 벌였는데, "나는 여기에서 할테니 귀공은 그곳에서 하시오."라는 서신을 보냈을 정도로 할복하기 직전까지 몰렸었으나, 결국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데 성공하여 간신히 귀환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축성술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일본 3대 성 중 하나로 꼽히는 견성 구마모토 성은 1601년에 짓기 시작하여 1607년에 완공[3]했는데 울산에서 농성하다가 겪은 배고픔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지, 출타시 도시락을 항상 싸가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으며 성내의 건물에 까는 다다미도 식용이 가능하도록 고구마 줄기를 넣고 짜도록 했으며 성의 마당 땅 속에는 온통 감자와 고구마로 도배한 데다가 우물을 무려 120개나 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가토 가문이 구마모토 성의 다이묘 노릇을 한 건 본인과 아들까지 해서 2대 44년뿐이고 그 이후엔 에도 막부의 유력 다이묘 숙청에 말려들어 성의 소유권을 호소카와씨에게 빼앗겼다.

구마모토 성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에 불만을 품은 사무라이들이 일으킨 세이난 전쟁 중 벌어졌는데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반군이 성에 주둔한 정부군을 포위하고 대포 수십여기를 끌고와 천수각, 망루, 식량창고를 비롯한 내부 건물들을 죄다 불태워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함락에 실패하여 난공불락의 명성을 증명해주었다. 전투 이후 사이고는 "우리는 정부군에게 진 것이 아니라 세이쇼공(가토 기요마사)에게 진 것이다."라고 정신승리탄식했다고 한다.

1.4. 히데요시 사후

전쟁 후 돌아왔을때, 사실 히데요시는 이미 죽은 후였다.(오대로가 비밀에 부치고 퇴각을 명령했다.) 히데요시도 없다보니 가토 기요마사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잡아 죽이려고 길길이 날뛰었는데, 실제로 미츠나리의 자택에 자객을 보내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원래 도요토미가 충성파이지만 정치적으로 정적인 미츠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하다보니, 이에야스를 편드는 꼴이 되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의 편에 서게 된다.[4] 승전 이후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지를 점령하고[5] 원한을 풀었으나, 라이벌의 소멸이 뭔가 가슴에 와닿는게 있었는지 고니시 가의 가신들을 많이 흡수했다. 또한 고니시의 우또 성에서 탑 하나를 옮겨다가 자신의 구마모토 성 한켠에 세우고 "우또 탑"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다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또 탑은 구마모토 성 건립 당시부터 있었으며, 옛 고니시가 가신들이 이 구역에 모여서 그렇게 불린 것이라고 한다. 징비록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철군 과정에서 고니시를 가토가 지원했는데,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우리 장수를 버리고 가는 것은 국가의 수치"라는 이유에서 고니시를 지원했고, 이에 고니시가 "이후로는 공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했으나, 가토가 "공과 나는 길이 달라 친해질 수 없다" 고 대답하며 씁쓸해했다고 한다.

돌 오브 돌인 후쿠시마 마사노리와는 달리, 그래도 나름대로 주공의 가문과 옛 은혜를 생각하는 면은 있었는지, 이에야스와 히데요리가 회견할 때는 품에 단도를 숨기고 히데요리를 보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이에야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귀가후 급사하였다.(병사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수상한 타이밍에 죽는 사람이 참 많았다.) 그래서 독살당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으며, 조선통신사의 기행문에는 대놓고 '이에야스가 독살했다'고 쓰여있기도 하다.

또한 에도 막부의 유력 다이묘 숙청과정에서 아들인 가토 다다히로가 영지를 몰수당하고 몰락하기도 했다. 그래도 후손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현재도 일본에 생존해 있다.[6]

1.5. 기타


임진왜란 당시 하라는 싸움은 안하고 호랑이를 마구 잡아들여서 '호랑이 가토'라는 별명이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는 또한 겸창을 즐겨 사용했는데, 한쪽 낫의 길이가 짧은 것이 호랑이에게 물려서 부러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가토 기요마사의 겸창은 원래부터 편겸창으로, 한쪽 낫이 없다시피할 뿐, 부러진 흔적은 없다.

함경도의 막장 왕자 순화군과 임화군을 사로잡은 것도 가토 기요마사였으며 조선의 국경까지 와서 심심했는지 여진족까지 건드려 보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독실한 불교 신자면서도 경주 불국사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입이 매우 커서 주먹이 들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후세의 신센구미 국장 곤도 이사미가 곧잘 이 흉내를 내보였다고 한다. 또한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도 항상 쌀과 된장을 넣은 군량주머니, 은전 3백 문을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이를 본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왜 허리 무겁게 그러고 다님?"이라고 묻자 기요마사는 "내가 이렇게 모범을 보여야 부하들이 보고 배워 전투 대비를 철저히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하며, 군량을 허리에 안 찬 부하를 면직시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설화가 전해진다. 가토가 함경도까지 진군했다가 정문부 등의 의병대[7]에 의해 후방이 차단당할 위기에 처하자 보급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북방의 여진족[8]들의 위협도 있어서 퇴각하는데 보급이 되지 않아 계속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학을 뗀 가토가 그 뒤로는 요대에 항상 비상식량과 돈을 차고 다녔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난폭하고 무식하며 욕심이 많은 자'라는 인상이 매우 강하다. 같은 왜장이지만 그래도 평가가 후한 편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비되어 대악당으로 여겨졌는데, 일본에서도 은연중에 호랑이같이 용맹무쌍한 장군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조총을 중시했고 "총알 앞에 갑옷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군의 경장화를 추진한 선진적인 장군이었다.

정도는 약하지만 결벽증이 있어서 화장실에는 굽이 매우 높은 게다를 구비해놓고 볼일을 보러 갈때마다 갈아 신었다고 한다. 지금도 쿠마모토 성에 가면 그 게다가 재현되어 있다. 괜히 이름이 가등청정인게 아니었다.

덩치가 매우 컸다고 하는데, 사실 왜소한 체구로, 사진에서 보듯이 키높이 뾰족투구를 썼다.

말년에는 글을 익혔는지 논어를 붉은 먹을 묻힌 붓으로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고 한다. 하루는 기르는 원숭이가 자신의 논어에 붓으로 낙서를 하는 것을 보고는 "너도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은 거냐"라며 중얼거렸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한국 입장에서야 그냥 침략자에 불과한 인물이지만, 오늘날 구마모토에서는 지역 스타.[9] 그럴 만도 한게 기요마사가 구마모토의 영주가 되기 전까지는 유력 다이묘가 나타나지 않고 잡다한 지역 유력자들이 분쟁을 일삼다보니 지역이 황폐화된 상태였지만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다스린 이후 치수나 개간에서 성과를 올려 생산량이 늘어났고 이것이 지역 발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에서 포로들을 엄청나게 끌고 갔다. 위에 나온 구마모토 성을 지은 조선인 포로들이 바로 그 사람들. 지금도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에는 울산정(町)[10]이라고 하는 역이 있다.(우루산마치역) 60년대까지 행정구역이었고 현재는 역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

가토 기요마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하사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칼이 한국에 남아있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가토 기요마사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는 칼로,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에서 의병장 정문부 장군에게 패해 달아날 당시(북관대첩) 노획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보도기사[11]

2. 대중 매체에서

2.1. 전국무쌍 시리즈

2.2. 바사라


자아! 어느 쪽이 강한지 승부 해보자고!


슈팅 게임 바사라2에서는 뭔가 동네 양아치스러운 외모로 등장.

중간보스들 중 1명이다. 이때까지 적장들을 다 잡아 족쳤다면 가토 기요마사 대신에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등장한다.

2.3. 신장의 야망 및 태합입지전

http://images3.wikia.nocookie.net/__cb20121002183147/dynastywarriors/images/1/14/Kiyomasa-taikorisshidenv.jpg
태합입지전 5

http://static1.wikia.nocookie.net/__cb20131122075441/dynastywarriors/images/9/9b/Kiyomasa_Kato_%28NAS%29.jpg?width=400
창조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함께 도요토미가의 맹장이다. 마사노리, 다른 칠본창과 달리 지력이 60대 중반을 찍고 정치는 70대 정도 찍는다. 그래서 칠본창 중에서 총합이 제일높다. 구마모토 성을 축성한 인물이라서 축성이 추가된 시리즈에서는 축성이 제일 높게 측정된다.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에서는 90/92/64/71 A/B/D/B/D/S/B/S/B의 능력치으로 나온다. 축성이 S이라서 축성부분을 고증이 되었다. 전투력 측면을 보면 족경 전법은 창돌격까지 가지고 있고, 기본적으로 보유한 명마 아이템의 부가 전법 덕분에 기마 3단계인 돌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족경특화의 도요토미 가문에서(...) 다만 기병 특화 가문에 등용되면 쓸만한 무장하겠지만 기병적성이 B이라서 위력이 약간 미묘한 편. 능력치도 부장용이 아니라 단독용으로 쓸만하기 때문에.

태합입지전에서도 전투쪽에 주로 특화된 와중에 건축 4레벨, 광산 2레벨로 내정쪽으로도 쓸모가 있다는게 후쿠시마 마사노리와의 차별점. 지모는 낮은 편이지만 마사노리처럼 바닥까지는 또 아니다. 대신 전투쪽 기능은 족경만 4레벨로 동일하고 마사노리에게 확실히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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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인의 신장의 야망

백만인의 신장의 야망에서는 모리 모토나리, 시마즈 요시히로, 다치바나 무네시게를 격파하는 서국무쌍 이벤트에서 히든보스로 등장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질풍! 히데요시 군단 이벤트에선 빠졌다.

삼국지 12에서는 노부나가의 부하로 등장한다. 전법은 전방어강화.

2.4. 그외

  • 임진록 2에서는 철퇴를 사용하는 후줄근한 모습의(?) 장수로 등장한다. 아무런 기술도 갖고 있지 않아서 몸빵만 할뿐이다. 안습.

  •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쌍검을 사용하는(겉으로만 쌍검일뿐이지, 실제로는 검[12]을 무장한다.) 장수로 등장한다. 폭뢰격이라는 기술을 사용하는데, 자기 주위로 광범위한 폭발을 일으켜 근처의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기술이다.
레벨 90부터 도라노스케로 전직할 수 있는데, 타격을 입을때마다 영혼을 충전하여 공격시 충전된 영혼으로 데미지를 주는 기술인 격노일갈과 그림자처럼 변하여 빠르게 이동하는 그림자 이동이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따로 조작을 안해도 공격시 자동으로 발동되지만 근접 공격이라 제대로 아이템을 갖추지 않으면 녹아내린다.[13] 게다가 인공지능이 영 좋지않아 어택땅을 했다가는 적을 제대로 때리지 않고 주위를 맴돌기만 하므로 반드시 타겟을 지정해줘야 한다. 안습. 적의 공격이 잘 명중되지 않을 경우 아군의 공격을 맞고도 격노일갈을 발동할 수 있다. 이를 흔히 "시동을 건다"라고 하는데 휴전부와 같이 활용하여 휴전부로 적을 멈춤 - 아군 공격으로 시동 - 격노일갈로 공격 - 다시 휴전부를 반복하는 방법도 있으나 손이 많이가고 귀찮다. 또다른 기술로는 그림자 이동은 긴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이동한 거리에 따라 체력을 회복하지만 체력회복량이 꽤 적기 때문에 빠르게 적에게 다가가거나 급히 빠져나올때 활용하는 정도다. 격노일갈 데미지는 체력비례이고 그림자 이동은 딱히 능력치에 영향이 없으므로 생존을 위해서든 딜을 위해서든 스텟은 올체력.

  • 여담으로 임진록 시리즈도 그렇고 거상도 그렇고 가토 기요마사의 얼굴이 귀신같이 생긴 터라 2000년대초 어린아이들은 정말로 가토 기요마사가 정말로 귀신같이 생긴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은 그게 얼굴이 아니라 가면이다.

  • 소설 불꽃의 미라쥬에서는 주인공이 기요마사에게 "네가 이 구마모토에서는 신으로 추앙받지만 바다 건너에서는 그저 도적떼 두목이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있다.

  •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에서는 호랑이 수염의 저돌적인 무장으로 나온다. 무장파 다이묘가 안나오거나 비중이 적은 관계로 혼자서 이시다 미츠나리와 고니시 유키나가를 상대하며 깐죽대는 모습이 일상사이다. 늘상 포악하고 잔인무도한 모습으로 나오다가 임해군, 순화군을 사로잡았을때는 태도를 싹 바꿔 갑자기 공손한척 연기하는게 심히 압권이다.

  • 불멸의 이순신, 징비록에서는 믿음이, 마음이 아빠로 유명한 이정용이 이 인물을 맡았다.한국사극 한정 가토 전문배우 가토 기요마사(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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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이드신 분들은 일본 인명을 한국식 한자독음으로 읽는 경향이 있어서 이쪽이 더 익숙하다.(예-풍신수길, 이등박문) '임진록'같은 책에도 가등청정이라 한다.
  • [2] 선조의 몽진 이후 노비들이 노비 문서가 있는 장예원을 불태우면서 같이 불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풍문이 그러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쪽 종군 승려들의 기록에는 고니시 휘하 부대가 한성에 왔을 때는 궁궐이 온전했으나, 가토 휘하 부대가 왔을 때는 얼마 안 되어 불탔다는 기록이 나오는 걸 보면 가토 휘하 부대가 방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 [3] 많은 조선인 포로들도 노역에 동원당했다.
  • [4] 세키가하라 전투 때 기요마사가 이에야스에게 붙은 것을 '배신'이라고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기요마사의 전후 행보를 보면 평소 마음에 안 들어했던 데다가 히데요시가 남기고 간 어린 후계자를 끼고 권력을 전횡하는 '간신 미츠나리'를 제거하려고 이에야스 편을 든 것이지, 딱히 도요토미를 배신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도 이후 도요토미가의 존속을 위해 진력했다.
  • [5] 원래 가토는 17만석, 고니시는 24만석이였으나 고니시가 참수당하면서 가토는 고니시의 영지를 모조리 얻어낸 데다가 영지를 이것저것 주워모으다 보니 51만석이라는 제법 큰 영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외눈박이 어린이의 반쪽밖에 안된다. 얘는 100만석.
  • [6] 다만 대부분의 다이묘들은 일족 자체가 끊긴 경우는 드물고 영지를 몰수당한다고 해도 무사 신분을 유지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평민으로 떨어뜨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 [7] 정확히 정문부의 의병이라고 지칭하지는 않고 조선 의병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여진족이라고도 한다
  • [8] 이에 관해서는 조선 의병들이기에는 지나치게 사납다고 생각한 가토가 여진족이라고 우겼다는 말도 있다.
  • [9] 다케다 신겐야마나시 지역 스타가 된 것이나, 다테 마사무네이와테 지역 스타가 된 것과 비슷한 예다.
  • [10] 한국으로 치면 울산동
  • [11] 문제는 누가 봐도 중국산 가짜 골동품이다. 즉 현대에 만들어진 짝퉁.
  • [12] 천하제일상 거상에는 도검류와 쌍검류라는 두 가지 다른 계통의 무기가 존재한다.
  • [13] 제대로 활용하려면 추가스텟을 주는 백의종군을 300까지 찍고 레벨 200이상에서 태황셋을 다 갖춘후 오행기의 생사결까지 있어야 그나마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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