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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특설대

last modified: 2015-04-07 13:10:12 by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규모 및 활동
3. 간도 특설대 복무 경력이 실제로 있는 사람
4. 간도 특설대 복무 경력 의혹이 있는 사람
4.1.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간도 특설대 복무 의혹?

1. 소개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이 잡아야 한다"는 일제의 전략에 따라, 만주에서 활약하는 항일 조직을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특수부대이다. 일본군 장교의 지휘 아래 친일 조선인들로 구성됐으며, 전원이 자원병으로, 부대원들은 인간도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잔혹한 토벌작전을 전개해서 일본으로부터 많은 훈포장을 받았다.

매일신보_간도특설대.jpg
[JPG image (1.07 MB)]

1938년 10월 12일자 매일신보.# 간도특설대 설립. 편성, 모집을 알리는 기사.

간도에서 동북항일연군·팔로군 등 조선 독립군과 중국인이 연계한 반일-반만주국 투쟁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들과 똑같은 게릴라전으로 싸우는 조직으로 일부 상위 장교를 제외하면 구성원 상당수가 조선인이었는데, 일제일부러 이렇게 구성한 것이다. 이 제안을 처음 한 사람은 중추원 참의직까지 지냈던 악질 친일파 범익이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청산이 무산된 이후, 이 때의 경험으로 6.25 때 공을 세우게 되고, 상당수가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부로 자리잡게 되고, 이는 반 세기가 넘는 동안 국군의 친일파로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대한민국 해군은 초창기부터 손원일 제독 등의 독립운동가 출신인 지휘부를 가졌기 때문에 까임방지권이 있다.

여담으로 간도 특설대는 장교는 물론이고, 부사관, 사병까지 전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징병이나 학병 등 이것저것 섞인 다른 부대와 달리 간도특설대는 사병/장교 가릴 것 없이 그 자체에 소속된 자체가 친일파라고 규정지을 만한 것이 이들은 모두 징병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자원입대 했고 그 중 상당수는[2] 상상을 할 수 없을만큼 매우 끔찍한 만행들을 저지른 천하의 개쌍놈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조선족들 가운데 80세 이상의 원로인들은 간도 특설대라는 이름만 들으면 치를 떤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해방군으로 참전한 조선족 사이에서는 "남한으로 도망친 친일파 놈들 잡으려고 자원입대했다.", "정일권, 석범, 일로 잡으러 가자."는 증언도 나왔을 정도이다.[3] 오죽했으면 그럴까 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짦아도
전투에서 용맹 떨쳐
대화혼(大和魂)[4]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따르는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하네.
- 간도 특설대가 -

읽다가 혈압이 오르더라도 참자

2. 규모 및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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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조직되어 본격적인 활동은 1939년부터 시작되었다. 활동시기는 일제패망 시기인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일제에 의해 조직되었지만 막상 소속은 일본군이 아니라 만주국군 소속이었다. 총 인원은 800~900명 정도로 대대급 규모였다.

창설 목적에 맞게 임무는 항일, 항만주 세력에 대한 토벌이 주 목적이었고, 간도(연변)지역으로 중심으로 한 독립군 부대인 동북항일연군이 주 타격대상이었다. 하지만 간도특설대가 단지 항일 무장세력과의 교전만을 중시했다면 악명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간도특설대의 악명은 항일세력 색출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인들의 무고한 살상과 강간, 약탈로 잘 나타난다.

대표적인 전적(...)으로는[5]

  • 1939년 5월 특설부대는 일본수비대를 배합하여 안도현 서북차에서 야간 토벌을 진행하던 중 산림 속에서 불빛을 발견하고 체포를 하고 보니 산나물을 뜯는 부근 마을의 백성이었다. 그런데도 염천 대대장과 산천 중대장은 무고한 백성들을 죽여서 불에 태워버렸다.

  • 1939년 7월 1일 특설부대는 천보산 광산이 항일연군의 습격을 받았다는 급보를 받고, 도문 일본군 수비대와 협동 작전을 하여 천보산을 토벌했다. 교전 중 항일연군 전사 한 명이 희생되었는데 특설부대는 충혼비에 제를 지내기 위해 항일연군 전사자의 배를 가르고 간장을 꺼내 빈 통조림통에 넣었다. 그런데 그것을 메고 가던 민부가 허기를 달래려고 통조림인 줄로 알고 훔쳐서 먹다가 생고기인지라 버렸다고 한다.

  • 1941년 겨울 특설부대의 3개 중대는 원부시 대대장의 지휘 아래 안도, 돈화, 화전 등 3개 현에 대한 토벌을 진행, 제2중대와 기포중대의 3명 대원이 변복한 항일군 2명을 체포하였다. 하나는 제1중대의 취사반에서 잡일을 하게 하고, 하나는 기포련에서 말을 먹이게 하였는데, 취사반에 있던 사람이 도망한 것을 도목구에서 다시 붙잡아다가 부대를 명월구 공동묘지 앞에 집합시키고, 총부의 부관 옥량 중위가 군도로 머리를 베고 시체 옆에서 목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 1941년 1월 특설부대는 안도현 대전자에서 동쪽으로 약 30리 떨어진 산림에서 항일연군 여전사 4명을 체포, 압송 도중 강간을 시도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하였다.

  • 1942년 8월 특설부대 제1중대는 변의대를 조직하여 차조구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는 중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 두 사람이 양민증이 없다는 구실로 형벌을 감행한 후 체포하였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간도 특설대에게 살해된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강간, 약탈,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 전공을 인정받아, 간도 지역을 벗어나 열하성, 하북성 등지로 영역을 확대하였고, 이 과정에서 로군과의 교전도 이루어졌다.

로군과의 교전 내용으로는 관내방면 석갑진에서 팔로군을 대상으로 36차례의 토벌을 수행하여 103명을 살해하였으며, 62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3. 간도 특설대 복무 경력이 실제로 있는 사람

  • 백선엽(육군 예비역 대장)
  • 신현준(초대 해병대 사령관)
  • 석범(2대 해병대 사령관)
  • 대식(3대 해병대 사령관)
  • 창암(예비역 소장): 이 사람은 유일하게 친일파 명단 관련에 제외되어 있다. 만주군 장교인 박승환이 비밀리 만든 건국동맹 군사분맹에 포섭된 몇 안되는 인물이었기 때문. 후일 대표적 환빠로 전향한다.
  • 석하(예비역 중장)
  • 백일: 김백일의 본명은 '김찬규'로 만주군 장교로 복무한 경력이 있는데, 특설부대 창설때부터 활동해왔던 인물로 일제패망때까지 쭈욱 간도 특설대로 복무했을만큼(패망당시 계급이 대위였다.) 가장 커다란 활동을 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는 자신의 만주군 장교 시절을 감추고 싶었던지 '청천백일'의 '백일'로 이름을 바꾸고 월남했다.[6]
  • 남근: 간도 특설대 출신으로 광복이후 월남하여 좌익계열 군인으로 활동한다. 여순사건때 숙군과정에서 지목당해 총살당한다.


4. 간도 특설대 복무 경력 의혹이 있는 사람

4.1.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간도 특설대 복무 의혹?

한때 박정희가 만주군 복무를 한 것을 넘어 간도 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재덕의 서적 백서[7]에서 박정희가 간도 특설대원으로 근무하였다고 적힌 것을 보았다고 차상훈이 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4)의 결전편에서 증언을 실었다. 하지만 그 외의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탄백서란 내용을 바탕으로 한 박정희 간도 특설대 근무설의 골자는 1939년 대사하 전투에 참여하여 무공훈장까지 받은 간도 특설대원 마츠모토란 인물이 있는데 그 인물이 박정희가 아니냐는 것이다. 즉 박정희의 이름이나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인 다카키 마사오는 언급되지 않았다. 게다가 박정희는 1939년 9월까진 교사로 근무했고 동년 10월에 시험을 쳐서 1940년 4월에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마츠모토란 자는 박정희가 입학하기 전부터 복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박정희가 창씨개명을 한 것은 1940년 2월 17일인데 창씨개명을 하기도 전이고 군관학교 입학을 하기도 전인 1939년에 전투에 참여해서 일본 이름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오마이뉴스의 기자 정운현과 연변의 역사학자 박창욱도 박정희 간도 특설대 근무설을 조사한 끝에 명단에도 없으며 심지어 그 이후에 전투에 참여한 기록도 없다. 박정희와 함께 복무했던 조선인 장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는 연대을종부관이라서 전투 경험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마츠모토란 자도 현학춘이란 자로 밝혀졌다.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 설과 더불어 교차검증도 안한 낭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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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 박정희는 간도 특설대에서 복무하지 않았다. 박정희 간도 특설대 논란은 본문 4번 참조.
  • [2] 간도 특설대는 1944년 무렵에 치열하게 전투가 전개되었던 열하성으로 그 활동무대를 옮겼다. 열하성에서의 전투능력을 인정받아 하북성으로 그 활동영역을 넓혔다. 따라서 간도 특설대는 1944년 이후부터는 '간도특설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간도를 벗어나 중국 본토로 부대이동-> 관동군 산하로 편입되어 산해관 지역으로 그 활동무대를 넓혀 중국 팔로군+항일세력 토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 [3] 일제 은혜 보답… 자진 입대 일제 고관·軍간부로 호사… 독립군 토벌도
  • [4] 야마토타마시이. '대화'는 일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대화혼은 '일본혼', 즉 일본민족정신이다.
  • [5]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 조선족 작가 고 류연산의 저서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 등 인용
  • [6] 90년대 후반 차인표가 주연한 국군홍보 영화 의 침묵이 바로 김백일을 소재로 했다. 아무래도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일제때 모였던 친구들이라는 명칭으로 넘어간다.
  • [7] 중국어로 坦白书.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글이라는 뜻인데 정치적으로 자아비판하는 책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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