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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종간부후보생

last modified: 2015-03-13 10:29:16 by Contributors


대한민국에 과거 존재했던 장교양성제도 중 하나. 흔히 줄여서 '갑종'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의 영원한 친구 종도 있었는데, 을종간부후보생은 오늘날의 부사관인 하사관 자원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육군보병학교에서 '갑종간부후보생' 교육을 받은 장교 자원으로, 1950년 7월 15일 1기가 임관한 이래 1969년 8월 30일 갑종 마지막 기수인 제 230기가 임관하기까지 총 45572명이 임관하였다. 에는 약 24주 교육기간으로 운영되어 육군종합학교와 함께 전시 단기 장교 양성을 담당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족한 간부자원을 땜빵하려고 만든 제도로, 지원자 중 고졸 이상인 자는 갑종으로 분류하여 소위로, 중졸 이하는 을종으로 분류하여 을종은 일등중사로 임관시켰다.장교부사관은 역할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훈련을 같이 받고 학력으로 차별해서 임관시키는 것은 상당히 문제점이 있는 제도였다. 현재에도 학사장교부사관후보생들의 교육 기간은 얼추 비슷하지만, 분명 훈련 교과목 편성 자체는 상당히 다르다. 미군의 예로 상병 계급 부여에 대한 예시가 있었으나, 저 경우는 고학력자에 대한 일종의 학력인정에 따른 혜택이지, 부사관으로 임관시켜준 것은 아니다. 부여되는 계급도 스페셜리스트로 부사관 대우 받는 코퍼럴이 아니다. 물론 상병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미 부사관에 해당하는 병장 진급은 고졸보다는 빨리 달 수 있긴 하다. 현대에도 이런 마당에 고학력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군 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한 과도기에서 볼 수 있었던 제도라고 보는 편이 옳다. 과도기 치고는 너무 오랜 기간 시행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은 한국전쟁베트남 전쟁 당시 많은 피를 흘렸다. 6.25 전쟁 3년간 약 1만 500명의 장교들이 전선에 나가 2000여명이 전사하였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참전한 총 장교 2만 2000여명 중 1만 4700여명이 갑종 장교 출신이었다. 특히 갑종간부후보생 1,2기 출신들은 교육기간 도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에 이들 중 일부는 임관도 하기 전 후보생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되어 전사한 자원도 많았으며, 수료증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참고 기사 이는 2004년 시점의 기사이므로 지금은 바뀌었겠지만 저 기사에 언급된 박희모 갑종장교단 중앙회 회장은 12.12 쿠데타 당시 반란군 측에 협력한 당시 제30사단장이었고, 갑종 장교 1기 대표인 하소곤은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진압군 측에 있다가 당시 장태완을 체포하러 들이닥쳤던 수경사 부헌병단장이었던 신윤희의 체포조 중 하나였던 한영수 대위의 총에 맞고 이후 강제전역당했다. 둘이 저런 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참 어이없을 듯.

갑종장교 출신 중 약 200여명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이들 중 5명은 대장에까지 올랐다. 갑종 장교 중 6.25베트남전 등 참전 용사들이 많았기에 이들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다음가는 대접을 받았고, 육사 다음으로 장성에까지 오른 인원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압도적으로 많은 육사 출신 장성수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었지만. 특히 12.12 군사반란이후 전두환하나회 중심으로 장군 자리를 정리하면서 갑종출신은 이후 천대를 받게 된다. 그래도 90년대까지는 육사 다음으로 많은 장성 자리를 차지한 장교가 갑종출신이기는 했다.


2006년 11월 17일 갑종 222기 출신이었던 권영기 대장(당시 제2야전군사령관)이 퇴역하면서 갑종 출신은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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