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강일순

last modified: 2015-10-02 16:00:20 by Contributors

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사람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편집할 때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작성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Contents

1. 가정
2. 영향
3. 옥황상제
4. 어록

본명은 강일순(姜一淳) 본관은 진주 강씨.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
고종 8년(1871년) 음력 9월 19일 ~ 융희 3년(1909년) 음력 6월 24일[1]

증산계 종교의 신앙대상(혹은 교조). 생전에는 조선의 4대 중 한 명으로 뽑힐 정도로 유명했지만, 같은 집안 어른들은 집안을 돌보지 않아 가정을 망쳤다고 좋지 않게 보았다고 한다.

1871년 전라도 정읍에서 태어나 각지를 방랑하며 수행하던 중[2] 1900년부터 1901년까지 전주 모악산 대원사 칠성각에서 대도통을 하고 이후 본인을 옥황상제요 미륵불이라 칭하면서 1909년까지 천지공사라 하여 우주와 천지의 질서를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을 예언하기도 했다.

경술국치 직전인 융희 3년(1909년)에 39세(만37세) 나이로 사망했다. 그 뒤 증산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여러 종파로 나뉘었다. 일제강점기에 크게 흥성했던 천교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외에 증산의 무남독녀 강순임 여사가 세운 증산법종교, 증산의 첫 번째 제자인 김형렬이 세운 미륵불교 등이 있다. 증산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종교를 통틀어 증산종교, 혹은 증산계 종교라고 부른다.

1. 가정

강일순은 부인이 3명이었다.

먼저 1891년에 혼인한 정치순(鄭治順)은 강일순이 수행할 때 시종을 들었으나, 이후 이른바 대도통 이후에 시부모와의 불화로 부친이 내치라고 하면서 사실상 이혼하게 되었다. 슬하에 딸 강이순(二順)이 있었는데, 나중에 남편과 함께 증산법종교를 개창하면서 이름을 강순임(舜任)으로 바꾸었다.

다음으로 1904년에 수석제자였던 김형렬에게 처음으로 수부(首婦)를 세우기로 종용하자 셋째 딸이던 김말순을 추천하였고, 김형렬은 이후 장인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말순의 나이가 15세 정도로 차이가 컸고, 형렬의 아내가 크게 반대하면서 예식을 미루기만 하였다.

결국 1907년 강일순이 제자인 차경석에게 다시 수부(首婦)를 세우기를 명하였으므로, 이종누이인 고판례가 사별 이후 5개월째이므로 예식을 올린 뒤 이른바 고 수부가 되었다. 수부란 '으뜸가는 부인네'라는 뜻이다.

증산도에서는 고판례가 수부가 됨이 매우 중요한 종교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후에 고판례와 이창호의 증산교와 차경석의 보천교가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보천교의 신앙에서는 강일순은 사슬에 묶여있고 차경석이 상제가 된다. 이상호는 1928년 보천교에서 분열해 나와 동화교를 차릴 때 고판례를 받들었으나 이상호 또한 교단 운영에서 고판례를 배제하였다. 이에 고판례는 다시 동화교를 나와 선도교(仙道敎)를 만들고 오성산에서 은거하다 1935년 사망한다.

2. 영향

kjs_denomination.png
[PNG image (82.45 KB)]

원본 크기로 보기

현대 대한민국에서 증산계 종교는 종류는 무척 많으나 대부분 그 교세가 실로 미미하다. 이는 대순진리회증산도를 제외한 대다수의 증산계 종교가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그들 중 많은 곳에서는 가족이나 친척 수준의 단위로만 신앙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흥성한 보천교도 지금은 간신히 명맥만 잇는 수준. 가장 교세가 큰 종교는 앞에서 나온 바와 같이 증산도대순진리회다. 증산도에서 대순진리회를 무수히 공격했기 때문에 증산도에서 대순진리회가 분파된 줄 아는 사람들도 많으나, 실상 두 종교는 강증산이 신앙대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계보상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다.[3]

3. 옥황상제



증산계 종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바로 윗 사진만 증산도의 것) 말 그대로 옥황상제

4. 어록

(증산도 도전을 근거로 삼는다. 다른 경전도 인용하였다.)

나는 옥황상제니라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세상이 멸망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팔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이제 온 천하가 대개벽기를 맞이하였느니라. 내가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末代)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이제 천하의 마魔를 해원시켜 난신(亂神)들로 하여금 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여 앞으로 오는 후천 오만년에는 다시 망령된 짓을 못 하게 하리라

원래 인간에서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亂法)을 지은 뒤에 진법(眞法)을 내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어질 인仁자는 너희들(한국인)에게 붙혀 주노니 오직 어질 인자를 잘 지키라

지금은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 換父易祖 하는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천자天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꿈만 꾸는 자도 죽으리라.

나는 예언자가 아니로다. 나의 일은 세상 운수를 미리 말함이 아니요, 오직 천지공사天地公事의 도수로 정하여 내가 처음 짓는 일이니라

앞으로 시두가 없다가 때가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줄 알아라

망하는 세간살이는 애체(愛滯)없이 버리고 새 배포(配布)를 꾸미라 만일 아껴서 놓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몸까지 따라 망하느니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천하에 무서운 죄는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모아 수하에 넣은 죄같이 큰 죄가 없느니라. 공자(孔子)가 알고 하였으나 원망자가 있고, 석가(釋迦)가 알고 하였으나 원억의 고를 다 풀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제가 모르는 놈이 출세간에 사람을 모은 자는 낮에 난 톳재비 같으니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기둥없이 지은 집이 어이하야 장구하리. 성군취당 극성중에 허송세월 다보낸다 하였느니라 (동곡비서)[4]

성인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옛날 자사(子思)는 성인이라. 위후(魏候)에게 말하되 '약차불이면 국무유의(若此不已 國無遺矣)'라 하였으나, 위후가 그의 말을 쓰지 않았으므로 위나라가 참멸하였나니, 나의 말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니 너는 나의 말을 믿어라. 나의 말을 믿는 자가 한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되리라 (동곡비서)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니라 (동곡비서)



----
  • [1] 그레고리우스력으로는 1871년 11월 1일~1909년 8월 9일.
  • [2] 이 과정에서 동학 신도가 되었다는 해석이 많다. 이에 따르면 동학농민운동의 무장봉기에 회의적이었던 것이 이후 다른 행보를 걸은 원인으로 추정된다.
  • [3] 여기에 대순진리회의 경우 전신인 태극도의 창시자 조철제를 십천상제, 교파에 따라서는 실질적인 대순진리회의 창시가 박한경까지 합쳐 하늘상제/땅상제/인간상제 혹은 박성미륵세존이라 부르기도 한다.
  • [4] 수석제자였던 김형렬 지음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10-02 16:00:20
Processing time 0.1498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