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강족

No older revisions available

No older revisions available



Contents

1. 소개
2. 사료들의 기록
3. 강족 소속 인물


1. 소개



중국소수민족으로 현대에는 사천성 아바티베트족창족 자치구 또는 간쯔티베트족 자치주 등지에 분산되어 분포하고 있다.

섬서 서부와 감숙의 동남부 일대에 생활했고 은나라 때 은나라의 세력이 강성해 은나라에게 조공을 했으며, 갑골문에 따르면 이 때 강방(羌方)이라 불렀고 두 개의 큰 부락이 있어 북강(北羌), 마강(馬羌)이라 불렀다.

은나라 말에 주나라가 은나라를 공격할 때 주나라의 세력에 가담해 이를 도왔다. 춘추시대 때 진(秦)나라가 발전하면서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월준강(越雋羌), 광한강(廣漢羌), 무도강(武都羌) 등으로 발전했다.

진 효공 때 진나라에게 굴복했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몽염을 통해 흉노와 함께 압박을 받았으며, 한나라 초에 묵돌이 서역을 압박하고 세력이 매우 강성하자 흉노에 귀부해 한나라의 서쪽 지역을 자주 침범했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중국을 자주 공격해 농서까지 진출했지만 한무제 때 중국에서 하서의 네 개 군을 개척해 강족과 흉노가 왕래하는 길을 끊어 황중 지역에서 쫓겨났다가 선제 때 이르러 흉노와 연합해 장액, 주천 등 하서 지역을 공략했지만 거안국, 충국 등의 공격을 받아 패했으며, 전한 말기에는 중국이 혼란하자 금성, 농서 지역으로 몰려들었고 후한 초기에 , 마원 등의 공격을 받아 한나라에게 귀부와 저항을 반복하면서 한양, 안정, 농서로 옮겨 살았다.

이 때부터 강족은 거주 지역에 따라 서강과 동강으로 나뉘어지게 되었으며, 강족은 한나라의 통치로부터 박해를 받아 후한 말에도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삼국시대와 서진 시기에도 중국을 공격해 관중 지역에 거주했으며,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강족이 세운 국가인 후진이 나타나면서 점차 한족에게 동화되었다.

새외 지역인 청해의 강족들도 대부분 중국의 국가들의 공격으로 복속했으며, 살아남은 일부 중에서는 수나라 때 중국을 침범했다가 패하면서 조공 관계를 맺었다. 당나라 초기에는 토번의 압박을 받아 감숙, 영하, 섬서 북쪽 일대로 옮겼다가 후에 하주로 옮겨갔으며, 북송서하국이 건국되었지만 몽골군에게 멸망되었고 민강 상류 일대에 살던 일부만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2. 사료들의 기록

후한 초기의 허신이 지은 설문에 따르면 서융 가운데 양을 목축하는 사람들로 사람 인(人)과 양 양(羊)의 뜻을 따른다고 했으며, 후한 말의 응소가 지은 풍속통의에 따르면 강족은 주로 양을 기르기 때문에 강(姜)이란 글자는 양(羊)의 뜻에 따르고 그 곳 사람들을 이 때문에 강족이라 불렀다고 한다.

3. 강족 소속 인물

  • 강총(姜聰) - 강족의 수령. 329년에 모용토연을 찔러 죽게 만들었다.
  • 기오(飢五) - 강족의 수령. 당전의 대호로 120년에 마현이 장액에 있는 틈을 타서 금성을 침입했다가 마현이 군사를 돌려 요새 지역으로 나아가 금성을 공격하면서 수천 명이 죽는 피해를 입었다.
  • 나리(那離) - 강족의 인물. 소당강족으로 140년에 봉기했다가 여름 4월에 마현의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으며, 이 때 강족에서 죽거나 사로잡힌 자가 1200여명이었다.
  • 낭막(狼莫) - 강족의 인물. 113년에 신령이 죽고 영창이 계승했지만 영창의 나이가 어려 낭막이 계책을 세웠다. 118년에 임상, 마현 등을 공격을 받아 북지에서 60여일을 버티다가 부평하에서 크게 패했으며, 참수당한 자가 5천명이 되는 피해를 입었고 낭막은 달아났다가 조하에게 암살당했다.
  • 노총(盧怱) - 강족의 수령. 오동의 대호로 120년에 당전 부락에서 기근이 들자 윤가에 머무르면서 강족 또는 한나라 중에서 어느 쪽에 편을 들지 결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121년 봄에 노총은 마현의 초대를 받았다가 참수되었다.
  • 동안(東岸) - 늑저, 당전의 대호로 107년에 여러 강족들이 요역으로 인해 봉기해 한나라의 여러 군에서 군사를 파견해 공격해서 차단하거나 여락을 뒤엎자 동안은 크게 놀라 여러 군사들과 함께 달아나서 크게 붕괴되었다.
  • 동오(東吾) - 전오의 뒤를 이어 수령이 되었고 전오가 한나라에 투항하자 변경의 요새 안으로 들어가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충실하면서 행동을 삼갔으며, 여러 동생들이 있었고 그들이 노략질을 자주 했다.
  • 동호(東號) - 동오의 아들. 동오의 뒤를 이어 수령이 되었다가 미당이 한나라와 88년에 싸울 때 패배하자 89년 봄에 한나라에 항복했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귀부해 죽겠다고 하는 식으로 항복했다.
  • 마노(麻奴) - 동호의 아들. 동호를 따라 한나라에 항복해 안정에 살았는데, 당시 항복한 여러 강족들이 각 군, 현에 흩어졌고 관리, 호족들을 위해 요역을 하자 근심, 원한이 쌓이게 되었다. 107년에 마노는 종족의 백성들과 함께 서쪽 변경 지역으로 나아갔다. 121년에 마노는 소당의 적통에 해당되었지만 마현이 위로하지 않자 인량 등과 결탁해 황중을 노략질하고 금성에 속한 여러 현을 공격했으며, 영거에서 무위, 장액의 군사를 패퇴시키고 선령, 심저의 여러 종족 4천여 호를 위협해 거느리면서 기련산 서쪽을 따라 달아나다가 무위를 노략질했다. 마현의 추격을 받았고 난조에서 이들을 불러들여 항복한 자가 수천 명이 되자 마노는 남쪽의 황중으로 돌아갔으며, 122년에 마현의 추격을 받아 황중에서 격파되어 그 종족의 무리는 흩어져서 숨었고 결국 곤궁하게 되자 종족의 무리를 이끌고 경충에게 항복했다가 124년에 죽었다.
  • 미당(迷唐)
  • 미망
  • 미오
  • 방념(龐恬), 부번(傅幡) - 서강의 인물로 6년에 왕망이 땅을 빼앗은 것을 원망해 서해태수 정영을 공격해서 달아나게 했고 왕망이 보낸 호강교위 두황의 공격을 받았다.
  • 비결(卑缺) - 강족의 인물. 미당의 조모. 92년에 섭상이 강족에게 은혜를 베풀겠다면서 미당을 초대해 대유곡, 소유곡으로 돌아와 살게 하려고 했는데, 미당이 돌아온 후에 섭상에게 파견되었다가 섭상으로부터 길을 떠날 때 지내는 제사를 받고 섭상이 보낸 다섯 명으로부터 여락까지 배웅받았다.
  • 비동겸
  • 서고(犀苦) - 강족의 수령. 마노의 동생. 124년에 마노가 죽자 서고가 계승했다.
  • 신령(愼零) - 강족의 수령. 111년에 상규에서 강족과 연락을 하면서 두기, 두계공, 왕신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자 두계공이 신령에게 의탁했으며, 신령은 113년에 사망했다.
  • 양봉(良封) - 강족의 인물. 종강에 속했고 134년 가을 7월에 농서, 한양 등을 침략했다가 겨울 10월에 마속에게 격파당했다.
  • 여숙도(呂叔都) - 강족의 인물. 115년에 윤취와 싸웠고 진성, 나횡 등의 암살로 살해당했다.
  • 영창(零昌) - 강족의 수령. 신령의 아들. 신령이 죽자 계승했지만 나이가 어렸다. 114년에 호다가 한나라의 군사와 싸워서 패할 때 연합했다. 결국 호다가 항복한 후에 115년에 방삼, 사마균이 이끄는 강족, 흉노족으로 구성된 7천여 명에게 공격을 받았다. 117년 가을 9월에 임상이 보낸 호봉에게 암살당했다.
  • 유귀(楡鬼) - 강족의 인물. 당전 부락에 살았고 117년에 한나라의 임상이 파견해 두계공을 찔러죽였으며, 그 공으로 파강후에 봉해졌다.
  • 인량(忍良) - 강족의 수령. 오동의 대호로 120년에 당전 부락에서 기근이 들자 윤가에 머무르면서 강족 또는 한나라 중에서 어느 쪽에 편을 들지 결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121년 봄에 마현이 군사를 풀어 공격해 2천여 명이 죽거나 사로잡히자 인량은 도망가 요새를 빠져나갔다. 마노와 결탁해 여러 부족을 거느리면서 황중을 노략질하고 금성의 여러 현을 공격했다.
  • 전량
  • 전안
  • 전오
  • 전창기렴(滇昌飢恬) - 강족의 수령. 침저에 속하고 황보규가 강족이 사는 지역에 나타나 잘못된 행위를 벌인 관리들을 면직하거나 죽이자 이 소식을 듣고 전창기렴과 10만여 명이 황보규에게 항복했다.
  • 조하(雕何) - 강족의 인물. 상군의 전무종에 속하고 118년에 등준에게 현상금을 받고 낭막을 찔러죽였다.
  • 포교
  • 호다(號多) - 강족의 수령. 114년에 다른 여러 종족과 연합해 무도, 파군을 노략질하고 판순의 만족들이 구원했는데, 정신에게 격파되어 달아나 돌아가다가 영창과 연합했다. 그러나 후패, 마현 등의 공격으로 부현에서 격파되었다. 115년에 방삼이 여러 강족들을 회유하자 호다는 무리를 거느려 투항했으며, 호다는 열후의 인수를 받고 돌아갔고 방삼이 영거로 돌아가 다스리면서 한나라에서는 하서 지방으로 나가는 길이 통하게 되었다.
  • 호봉(號封) - 강족의 수령. 효공종에 속하고 117년 가을 9월에 한나라의 임상이 파견해 영창을 찔러죽였고 그 공으로 강왕에 임명되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4-12-01 16:57:39
Processing time 0.0391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