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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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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를 믿는 기독교 광신도들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예수쟁이 항목을 참고.
좀 더 중립적인 관점에서 본 기독교 반대 움직임에 대해서는 반기독교 항목을 참고.

Contents

1. 정의
2. 역사
2.1.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발전과 몰락
2.2. 근본주의와 초기 한국 교회
2.3. 신복음주의와 군사정권과의 밀월
2.4. 군사정권 이후
3. 신학적(?) 경향
4. 대외적 문제점
4.1. 목사들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
4.2. 목사들의 답이 없는 독재 찬양
4.3. 성소수자 탄압
4.4. 공공기관에 대한 횡포
5. 대내적 문제점
5.1. 일반 개독교도들의 정신세계
5.1.1. 전도만 하면 무조건 개종 성공?
5.1.2. 이렇게 된 이상 해외로 간다!
5.2. 목사 자질 문제
5.3. 기타 문제
6. 공공의 적(AKA Public Enemy No.1)
6.1. 비기독교인들의 적
6.2. 대중문화의 적
7. 결론
8. 창작물에서의 개독교
9. 같이 보기


※읽기 전에
이 항목은 개신교를 믿는다면서 추잡한 언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비판하고 있으며, 모든 부류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단,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우 적절한 예.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어느 개신교도-
여담이지만 저 역은 이촌역이다

1.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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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예. 안전모는 정말 이유 없이 그냥 쓴 걸까? 스페이스 마린 분대장 배너 시저의 군단 천국파트 일본어엔 가타카나로이에수 라고 적혀있다 이외수?

인간으로서의 지성이 없는 존재들
다단계 악덕기업, (주)예수
지옥으로 꺼져라, 사탄 새끼들아!!
예수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존재들

인터넷에서 개신교를 비하할 경우 쓰이는 비속어. 특히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 등이 그 대상이 되곤 한다. 이 외에 정치적 형태로도 많이 사용되면서 순수 줄임말보다는 다른 형태로 많이 쓰였고 일부 이단들이 "저들은 부패한 개독이며 우리는 기독" 이라는 주장을 하다보니 여러 가지 의미로 윤색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욕이라기 보다는 그냥 통신약어에 가깝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비하의 뜻을 담은 접두사 '' 가 기독교의 '기' 를 대체하게 된 것이 이 항목의 어원이다. 줄임말은 개독이다.

유사어로 예수쟁이가 있다. 예수쟁이란 단어는 근대에 사용하던 '야소쟁이' 에서 유래. 이는 국어사전에서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쓰이지만 젊을수록 예수쟁이보다 개독 쪽이 사용빈도가 높다. 한편 예수쟁이의 경우 최소 30대 이상의 나이 드신(?) 개신교 신자들이 자조적으로 쓰는 정도. 어떻게 보면 예수쟁이라는 말은 Nigger라는 단어와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더 자세한 것은 예수쟁이 문서 참조.

예수쟁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기독교적 가치관보다는 플라토니즘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예수천국 불신지옥만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면 연관성이 아예 없지는 않은 듯.

  • 단어의 역사
개독이라는 약어 형태의 표현이 쓰이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모 통신동호회 등을 통해서 안티 활동이 본격화 되던 시점에 유발된 몇몇 논쟁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기독교를 까던 곳들에서 기독이라는 용어를 쓰다 보니 천주교인들과의 마찰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고 따라서 기독에서 개독으로 변천하게 된 것이라 카더라.

천주교를 말하는 단어로는 카독 카톡이 아니다!! 이라는 단어가 쓰이다가 사어화 되었다. 실제로 아래의 악명 높은 사례들 중에서 천주교가 직접 개입된 사례가 거의 없고 개신교 측에서 천주교를 흠집 내기 위해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친일 행적 드립을 치다가 반대로 조선 장로호의 추태가 밝혀지면서 카운터를 먹고 데꿀멍을 하게 되는 결론에 도달하는 등...[1]

실제로 개신교의 천주교 흠집내기는 계속 되긴 하는데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천주교에선 개신교를 존중해주는[2] 태도로 나섰고 결론적으로 발악을 거듭한 개신교만 논의의 대상이 되면서 개독이라는 단어가 더 범용화 된 셈이다. 자업자득 "현자는 우자를 경멸하지 않는다. 경멸은 항상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지" 락토 빌파

이 명칭의 범용화에 앞장선 것은 바로 다음 아고라, 특히나 이명박 시장의 대선 출마 등과 맞물려서 종교적 색체를 가진 대선운동이 온라인에서 불 붙기 시작하던 시점에서 정방이나 부동산방 등 다른 게시판에서 종교방에서 쓰던 개독이라는 명칭을 차용했고 그 결과 대선 효과와 맞물려서 광속으로 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개신교 장로 대통령이라는 별칭과 더불어 개독이라는 단어의 보급자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 개독은 비속어?
개독이라는 말이 비속어로 등재될 뻔한 적도 있었는데 결국 물 먹은 것도 있고 실제로 개독이라는 단어가 쓰인 지 PC통신 시절부터 20년이나 넘은 시점에서 이제와서 욕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면, 그건 논리적인 비약이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 그럼 90년대 초 PC통신에서 개독 소리가 처음 나올 때 그때 손을 쓰던가. 왜 이제와서 즉, '안티와 개독의 설전' 만 전제되던 당시에는 이것이 욕으로 인식되지도 않았지만 전 국민에게 개독으로 지탄당하는 시점이 되자 그만큼의 심리적 압박을 받은 개신교측의 심리를 대변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독이라는 단어 자체는 모 연예인 자살로 인해 촉발된 인터넷 클린 캠페인 당시에도 논의조차 되지 않은 단어다. 그 이후에 포털에서 금칙어로 시스템을 만들 때에도 빠지다가 2010년~11년 경에서나 한기총 등에서 금칙어 제정을 하겠다고 나선 단어이다. 따라서 말 그대로 엄청난 뒷북일 뿐더러 이미 한기총 등에서 손을 쓰려고 하던 시기에는 전국민이 개독이라는 단어를 인지한 지 이미 한참이 지나서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신교가 이런 멸칭을 받아가며 현실과 인터넷상에서 동시에 까이게 된 것은 개신교가 미국에서 전파되어 들어오면서 당시에 막 성행하고 있던 근본주의 개신교를 중점적으로 수입하고 여기에 독자적인 변이를 거듭하면서 그 폐가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한국 개신교의 저런 특징이 전통적인 성리학적 정통주의와 무속신앙의 기복성이 첨가된 것으로 본다.

  • 기독교 ≠ 개신교
엄청난 악명에도 불구하고 개독교는 우리나라 개신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쓰는 사람에 따라 개독교란 단어는 대부분의 썩어빠진 개신교 자들을 일컫는 말일 수도 있고 개신교 혹은 기독교 전체를 일컫는 말일 수도 있다. 요즘엔 그냥 어느 기독교인이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면 그 사람보고 개독이라 욕하는 경우도 꽤 많다. 사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 중 개독교 아닌 사람 찾기가 힘들다.

흔히 기독교라곤 하지만 이 문서가 가리키는 대상은 정확히 말해 개신교. 가톨릭이나 정교회 등의 종파는 여기서 제시되는 문제점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가톨릭의 이미지는 유럽보다는 좋은 편이고 정교회의 경우는 그 세력 자체가 크지 않은 탓도 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일이 잘 있는 건 아니지만 '기독교=개신교' 로 인식되는 상황이라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식으로 다른 기독교계 종교까지 싸잡아 까이고 있다.

때문에 개독이라고 했다가 역으로 공격받을 때 개독교라는 말이 욕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사람은 "개독교는 개신 기독교의 줄임말이다!" 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개신+기독교이므로 굳이 약자를 만들거면 개기교(?)가 되어야 좀 더 어울릴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개신기독교' 라는 말 자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보통 그냥 '개신교' 라고 하기에 딱히 '개신기독교' 를 약자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역 두문자어가 만들어질 때는 딱히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 지는건 아니다. 무엇보다 약자를 만드는 건 순전히 만드는 사람 마음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같은 경우를 봐도 지지자들은 새정치연합 또는 새정연이라는 명칭을 고수하지만 반대자들은 자민련이 연상되는 새민련이라고 비꼬아서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축약어에 대해서 가타부타 따지고 들어가는 것은 별로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이 워낙 특출난지라 문제되는 행동을 일으키지 않은 교회나 신자들도 덩달아 욕을 먹기도 한다.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개독교=개신교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몇몇은 더 나아가서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잠정적으로 개독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사실 이런 주장은 신도 비례에 의한 근거를 가진 셈인데 대부분 정치운동과 연관을 통해서 여러 물의를 야기한 대형 교회들의 경우 그 자체로 대부분의 신도와 헌금 수익을 보유한 일명 메가처치(Megachurch)들이고 교회의 수를 비교해 보면 이런 교회들에 비해서 소위 종교의 부당한 시스템을 개혁하자고 하는 쪽은 소수가 된다.

이에 대해 진보교단 보수교단의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플롯은 사실상 대부분의 대형교회가 이명박 대통령 재임과 관련하여 보수당을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창당까지 한 세력이라는 점 때문이고 실상적으로는 현실 권력적인 부분에 대해 권력친화적 정치성을 가진 교단이 다수교단이고 그 교회의 정치력을 대변하는 목사의 위치 때문에 대부분의 신도가 종속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입각한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를 안 나가는 개신교인을 뜻하는 가나안 신도[3] 등의 증가 등으로 보는 추세에 의하면 대다수의 신도는 침묵의 다수일 것이라는 예측 역시 존재하고 있지만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이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릴 만한 조사 근거가 있지는 않다.

최근들어 자신들도 인터넷에서 까이는 걸 알고 있는지 초~중학생을 모아서 따로 예배하는 곳에서는 설교랍시고 개독 얘기를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게 반성은 커녕 자신들이 왜 까이는지도 모른다. 답이 없다.

  • 소결론
본 위키에서는 개독교와 예수쟁이 항목 모두 작성되어 있는데 본 항목의 경우 근본주의 개신교의 병크에 대해 한국 교회 전반에 넓은 초점을 맞춰 설명되어 있는 반면 예수쟁이 항목은 좀 더 세밀하게 개별 근본주의 개신교도들의 병크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때문에 근본주의 개신교의 병크를 좀 더 상세히 찾아보고 싶다면 예수쟁이 항목을 본 항목과 같이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예수쟁이 항목이 좀 더 흥미롭다

한국 지역-한국어 기반인 리그베다 위키의 특성상 극단주의 종교인들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있는 항목은 개독교와 예수쟁이를 비롯해 대부분 개신교 관련 항목이지만 사실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롯하여 어느 종교라도 그런 사람들은 있다. 단지 기독교 쪽이 사람들 눈에 더 잘 띄일 뿐이다. 바로 아래에 서술된 개독교의 역사 항목에서도 알겠지만 본 문서를 비롯한 한국의 근본주의 개신교 관련 항목에 대해 정리한 내용들에는 오히려 다른 개신교인들도 손을 댄 바가 많으니 무턱대고 개신교만 깐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아래 항목에 설명이 나오지만 당장 기독교의 정신 근본인 예수부터 이런 부류들을 사탄의 자식이라 칭한다.

2. 역사

개괄적인 차원에서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한국의 개신교 항목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하 내용은 진보적 개신교 목사들이 정리해놓은 것을 재정리한 것이다.

2.1.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발전과 몰락

한국 개독의 신학적 원조가 미국근본주의들이기 때문에 개독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이들 미국의 근본주의 개신교도과의 연관성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 개독의 역사는 18세기 아메리카 식민지의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는 1720~1740년대 사이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으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특별한 목적을 부여해 주었다는 커다란 자각과 함께 신세계에서 일체감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뇌내망상

다만 유럽 대륙이나 영국이라고 해서 근본주의자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조차 근본주의 성향을 가진 신학자나 목사를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마틴 로이드 존스.

  • 복음주의
이 시기 기존 교회의 이성주의와 형식주의에 반대하여 복음주의(Evangelicalism)적 경향이 나타났다.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근본주의의 뿌리가 복음주의에 있다는 데에서 양자는 근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일종의 위장술을 사용하고 있는 셈.

물론 엄밀히 따지면 복음주의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쉽게 말해서 딱히 어떠한 것이 복음주의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것. 그렇다고 어떠한 것이 복음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복음주의의 스펙트럼을 있는 대로 다 넓히면 근본주의에서 자유주의 신학까지 모두 다 포함이 되며 반대로 좁히기 시작하면 근본주의만 남게 된다. 그게 결국 근본주의라는 거잖아 굳이 구분하자면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지역에 따라 유럽식 복음주의와 미국식 복음주의로 구분해야 하는 정도이다. 자세한 것은 복음주의 문서를 참조하자.

  • 복음주의의 퇴조와 세대주의
문제는 초기에는 노예 해방, 교도소 개선과 같이 사회개혁과 봉사를 지향하던 복음주의가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인해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내부의 자발적인 개혁은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교회를 배경으로 한 개신교 문화와 개념은 더 이상 개인과 사회를 지배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사회 개혁에 대한 관심은 점차 퇴조하였고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과 개인의 성결만을 강조하는, 사회와는 단절된 순수 종교 차원의 운동만이 전개될 수 있었다. 기복신앙

이러한 복음주의의 변질은 개인의 도덕적 성결을 강조하기 위한 천년왕국 운동을 탄생시켰다. 이 당시 많은 종파들이 창립되었다. 모르몬 교로 알려진 '말일성도교회', '제7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여호와의 증인' 들이 이 시기에 설립된 종파들이다. 북두의 권

이러한 세대주의(Dispinsationalism) 천년왕국 운동은 당시 유행했던 성서대회(Bible conference)와 스코필드(Cyrus I. Scofield)의 관주성서(Scofield Reference Bible)를 통해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맹아가 되었다. 이 관주성서는 매우 평이해서 당시 200만부 이상 팔렸는데 당시 보수주의자들이 경계했던 인본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보수 신학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여기에 나와 있는 세대주의자들은 바로 휴거 드립을 치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며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시대에 혹은 인류사에서는 결코 실현되지 않으며 인류 역사가 끝난 후에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창조 이후의 세계를 일곱 세대로 구분하여 마지막 세대인 7년에 걸친 전쟁과 대환난이 있은 후 예수 그리스도가 성서에 있는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에 왕국을 세우고 천 년 동안 다스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뭐병 이들이 좀 더 심화 발전(?)된 형태가 바로 신사도 운동이다.

또한 당시 가장 유명한 부흥사였던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 역시 세대주의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유명 먹사들에 의해 힘을 받은 세대주의 운동은 19세기 말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 팽창 정책에 호응해 해외 선교 사업을 적극 지원하였고 이러한 선교 활동은 자발적인 학생 선교 운동을 촉발시켰다.

복음주의 학생 운동 쪽에서도 이 때문에 두 쪽이 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사회 참여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던 한국 기독 학생회(IVF)의 10개대 지부 탈퇴 사건. IVF에서는 사회 참여 운동을 주장하며 떨어져 나간 한기연을 완전히 흑역사화 하고 있고 한기연은 자신들이 진짜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기연은 간통 사건 때문에 또 두 쪽이 나버렸다.

세대주의자들은 나이아가라 대회에서 프린스턴 신학교 신학자들을 초빙하여 입장을 발표하게 했는데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는 성서의 권위와 영감을 옹호하는 보수 신학의 메카였다. 이들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일부 찬동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동의 적이었던 찰스 다윈진화론자유주의 신학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근본주의 5개 신조를 수용하는 동맹을 기꺼이 맺었다. 신학자들의 궤변술과 세대주의자들의 몸빵이 결합된 근본주의 세력은 더욱 확장되었다.

  • 자유주의 신학과의 대결 그리고 몰락
근본주의자들은 '포스딕 사건' 을 통해 자유주의자와 본격적으로 맞붙게 된다. 침례교 출신의 자유주의 신학자이자 저명한 설교가인 해리 포스딕(Harry E. Fosdick)은 뉴욕 제일 장로교회 초청 목사로 활동하면서 1922년 6월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할 것인가' 라는 설교를 통해 근본주의자들을 자극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도 기독교인임을 강조하는 한편 근본주의자들의 편협과 불관용을 비판했다.

하지만 당연히 개독 먹사들이 기독교자유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주관성과 비성서적 이론전개를 비난하고 나섰고 보수파들은 장로교 총회를 통해 포스딕에게 장로교회 교리에 맞는 설교를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결국 포스딕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목사직을 사임하였다.

이 당시 자유주의와의 대결의 시대에 근본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신학자는 그레셈 메이천(J. Gresham Machen)이었다.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약과 해석학을 가르쳤는데 보수 신학과 신이 성서 저자의 손을 붙잡고 직접 성서를 썼다고 보는 성서 저자는 그저 프린터일 뿐이라는 축자영감설의 본거지였던 프린스턴 신학교는 1914년 J. 스티븐슨이 학장으로 취임한 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당시 교단에서는 교단이 정한 근본주의 5대 신조를 목사 안수의 필수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신학사상과 교리 해석에 관용을 베풀 것을 요청하는 '어빈 선언' 이라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스티븐슨 학장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이를 수용하였다. 이에 빡친 메이천은 보수적 교수들을 규합해 반대 투쟁을 전개했지만 결국 발렸다.

프린스턴 신학 논쟁에서 발린 메이천은 프린스턴에 사표를 내고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개설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메이천은 북장로교회마저 자유주의자들이 지배하게 되자 지지자들과 교회들을 규합하여 1936년 정통 장로교회를 설립함으로써 교단 분열을 감행했으며 이후 이탈과 분리근본주의 운동의 특징으로 인식되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메이천은 당시 한국에서 유학 온 박형룡과 박윤선을 가르쳤고 두 사람은 귀국 후 한국 보수신학의 거물로 성장했다. 결국 메이천은 한국 개독의 씨앗을 심은 중요한 악의 축인 셈이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신학 뿐만 아니라 다윈의 진화론과도 논쟁을 벌임으로서 화려한 자폭의 대망을 장식하게 된다. 이들은 다른 진화론 반대 그룹들을 모아 반진화론 연대체를 만들었고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막는 입법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의 전개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버틀러 법스코프스 재판을 참조.

이 재판의 결과로 근본주의는 사회적으로 논란만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스코프스 재판에서 처절하게 발린 근본주의자들은 이후 자유주의자들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부흥회 개최, 성서 학교 설립, 해외 선교사 파송 등을 벌이면서 개척 교회 성장에 주력하거나 새로운 교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근본주의 수출로 인해 한국개독이 탄생하게 되는 비극적 사태가 벌어진다. 하필이면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 중 상당수가 이 근본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선교사들이었던 것.사스가 식민주의 문제는 한국 말고도 다른 식민지도들도 종교 전파 및 개화를 빌미로 식민지화를 부추기기 위해 개독교를 전수받음

2.2. 근본주의와 초기 한국 교회

1930년대 미국에서 쇠퇴하기 시작한 근본주의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한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였으며 이는 선교사들과 미국에서 유학한 신학자들의 역할이 컸다. 사무엘 마펫으로 대표되는 장로교 선교사들은 거의 모두가 근본주의 또는 복음주의 신학의 세례를 받았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학교는 이미 자유주의자들이 접수한 프린스턴이 아니라 매코믹 신학교였다. 매일 찬송가와 성서를 읽고 기도로 수업을 시작했으며 학장과 교수들이 주일 학교의 교사가 되어 오후 예배를 진행하는 전형적인 미션스쿨이었다. 이 신학교는 철저한 보수주의와 청교도적 엄격성, 경건성이 특징이었다. 이들은 초기 한국 개신교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지배적 역할을 하였다.

사무엘 오스틴 마펫은 1901년 평양 신학교를 설립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이끈 많은 교역자들을 양성하였다. 이 외에도 초기 한국에 파견된 다양한 교파의 선교사들이 있지만 근본주의 신학교 출신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근본주의와 경건주의, 성결주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당시 조선에서 미국계 선교사들의 통제는 매우 철저했으며 종교 엘리트 집단인 목회자 양성 과정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이 선교사들에게 위임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병크는 벌어지지 않았다. 저들의 의도는 어찌되었건 숭실대학교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을 설립한 건 분명한 공로로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문제는 1930년대 한국에서도 감리교를 통해 유입된 자유주의 신학 논쟁이 벌어진 이후였다.

  • 자유주의 신학 논쟁과 근본주의화
논쟁으로 인한 선교사들의 분열은 해방 후 한국 교회의 분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교파별 과다 경쟁을 막기 위해 지역별 분할 선교를 하였는데 지역에 따라 교파가 갈린 것이다. 함경도 출신들은 자유주의 신학 논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예장)에서 갈라져 나와 기독교 장로회(기장)를 설립하게 된다.

한편 근본주의 신앙에 푹 빠진 개독이었던 사무엘 오스틴 마펫은 열폭질을 시전한다. 그는 1934년 장로교 선교 50주년 기념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 교회의 신앙 수호라는 이름의 협박 행위를 호소하였다.

조선 모든 선교사가 다 죽고, 다 가고, 모든 것을 축소한다 할지라도 형제여! 40년 전에 전한 그 복음 그대로 전파하자. 변경치 말고 그대로 전파하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후 활발하게 추진된 기도 모임과 성경 공부는 19세기 말 근본주의 신학을 정립했던 미국의 나이아가라 성서 대회를 본뜬 것으로 초기의 부흥운동을 촉발시키며 이후 한국 교회의 보수 신앙을 형성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이같은 경건주의 신앙운동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체험 중심의 반이성적 경험주의와 반지성주의로 흘렀으며 그대로 한국 교회의 신앙 형태로 고착화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현대 한국 교회에 대한 영향력이 간접적인 것이라면 오늘날 한국 개독들의 광신적 근본주의 신학과 배타적 전투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미국의 근본주의 항목에서 잠시 등장하였던 박형룡박윤선이다.

메이천과 반 틸과 같은 근본주의 신학자에게 사사받은 박형룡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하나님의 주권과 성서의 권위에 대한 강조,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무조건적 예정,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등을 준수하면서 영국의 청교도적 신학의 특성과 경건이 어우러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 박윤선은 박형룡의 제자이며 1934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그는 주석학자로 유명했으며 설교 예화 등이 포함된 알기 쉬운 주석으로 인해 난해한 교의 신학을 가진 박형룡보다 설교의 방식에 있어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특히 박형룡은 자신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평생 자유주의 신학과 투쟁을 하였으며 한국 개신교의 개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박형룡은 1934년 열린 제23차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때 제소된 창세기 모세 저작 부인 사건여성의 권리 재판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은 김영주와 김춘배 두 명의 목사가 각각 설교와 기고문을 통해 "창세기는 모세의 저작이 아니며 교회에서 여자는 조용히 해야 하고 여자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2000년 전의 일개 지방교회의 교훈과 풍습이요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라고 주장한 것에서 촉발되었다. 여기서 박형룡은 이 주장을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해석된 것이므로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에 근거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재판정은 박형룡의 의견을 수용하여 두 사람을 소환해 주장을 철회하게 하였다. 교회에서 여성의 권리와 같은 근대적 상식 또한 치죄와 배제의 대상이 된 것은 박형룡이 주축이 된 한국 개신교 주류교단의 광적인 복고적 순수주의에 대한 선망과 모방의 산물을 증명해준다.

  • 일제시대와 개독교
일제 식민치하의 개독의 역사는 그야말로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신사참배는 근본주의 일색인 조선 개신교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전시 동원 체제로 치닫던 1930년대 후반 정세에서 식민지 당국과 조선 개신교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일로 인해 조선 개신교의 절대적 지주였던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되고 적지 않은 조선의 엘리트들이 실형에 처해졌다. 물론 주기철 목사처럼 끝가지 저항하다 끝내 순교한 사람들도 있었고 일부 근본주의라 해도 정말로 양심을 가진 교회들은 대놓고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개신교인들이 이러한 신사참배에 굴복하였고 근본주의 신앙은 타협한 자들에게 고통을 표현할 언어를 제공해주지 못하였다. 언어를 빼앗긴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으며 트라우마는 기억의 상실을 낳는다. 현대 한국의 주류 개신교 교단들이 해방 이전의 개신교 역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오로지 평양 대부흥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제시대의 개신교 역사는 상술하였듯이 흑역사 그 자체다.

이 당시 유일하게 교단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곳이 고려신학교를 기반으로 한 예장 고신이다. 그러나 이후 예장총회로부터 결별 선언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 해방 이후의 개독교
정결주의적 근본주의 신앙과 신사참배 승복 간의 모순을 체험해야 했던 서북 개신교 신자들의 트라우마는 해방 직후 월남하기까지 김일성에 의해 탄압받았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일반화 함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전이시킬 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고통스러우면서도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을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라는 강력한 최면 효과를 지닌 기억으로 치환함으로써 '말할 수 있는 것' 으로 전이시키는 무의식적 작용이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가 치료'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신사참배 거부 건으로 투옥되었다가 해방 직후 출옥하게 된 이른바 '출옥 성도' 라는 이름의 십자군들은 교계 정화를 부르짖는데 이로 인해 그 동안 은폐되어왔던 트라우마가 발광할 시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출옥 성도들의 광적인 활동으로 인해 무의식 속에 은폐되어온 상처가 도졌으며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로서는 피할 수 없었던 신사참배자라는 자학적 오명을 벗기 위해선 '악마' 의 등장이 필요했다. 자신들의 배신이 얼치기 악마의 모습이라면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진정한 악마 '악의 축' 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김일성에 의해 탄압받은 서북 출신 개신교인들의 체험을 집단기억화 함으로서 '반공' 이라는 근본주의적 개신교의 상흔에 대한 자가 치료의 필요에서 요청된 무의식적 기억의 치환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 개독의 광신에 가까운 반공주의적 성향은 사실 일제시대부터 존재하였다. 공산주의를 말세의 징조로 해석한 미국의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조선의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공산주의를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협력도 무방하다고 말할 정도로 공산주의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천하의 개쌍놈들

50년대 반공주의를 통해 이승만에 협조하고 교회 분열에 큰 역할을 했던 근본주의자들은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영적인 전쟁으로 이해했고 이를 위해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과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또한 박형룡의 병크는 해방 이후에도 쭈욱 지속된다. 대표적 사건으로는 예장과 기장의 분리가 있다. 1947년 장로교 총회 때 조선 신학교 학생 51명이 김재준이 교장으로 있는 조선 신학교가 성서무오설을 비판하고 성서의 권위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면서 서울에 정통 신학교를 세워달라고 탄원했다.

이에 박형룡을 비롯한 평안도 출신 근본주의 목사들은 1948년 6월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직영 신학교 승인을 받았다. 이후 이들은 대구에 새 신학교를 새루는 과정에서 날치기 총회와 불법적 설립을 통해 조선 신학교 출신들을 배제하였고 1952년 김재준을 면직 처분하고 조선 신학교 출신 교약자의 채용 금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김재준과 김재준을 지지하는 인사들은 장로교 총회로부터 분리해 나와 1954년 따로 설립한 교단이 바로 대한 기독교 장로회다. 현재는 한국 기독교 장로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 교단이 모체가 된 학교가 바로 조선신학교(한국신학대학교)인데 이것은 오늘날 종합대학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한신대학교다. 현재 한신대에 진보적 학자들이 포진해있는 역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故 문익환, 문동환 목사 형제나 민중신학자 안병무, 서남동,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故 정운영 교수 등이 모두 한신대 교수 출신이다. 게다가 한신대 신학과 학생회는 각종 진보집회에 '민족한신 통일신학' 이라는 깃발을 들고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이야말로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적극적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카더라.

2.3. 신복음주의와 군사정권과의 밀월

이 시기의 한국 개독의 행태는 군사정권과의 뒷골목 거래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신복음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근본주의의 영향권에서 성장한 미국의 젊은 학자들이 주류에서 밀려난 근본주의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만든 신 복음주의 세계 복음화를 추구하였다.

신복음주의는 기존의 근본주의적 복음주의가 교육받은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세속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사회 문화를 어느 정도 포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기독청년학생 활동이나 도덕 재무장, 세계 복음화 드립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옷을 갈아입은 개독에 불과하였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신복음주의의 보수적 계파이다.

50년대 이후 신 복음주의는 한국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인물은 전도사로 유명한 빌리 그래함과 로버트 슐러이다.

  • 빌리 그래함
빌리 그래함은 근본주의자들의 성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밥 존스 대학과 플로리다 성서학원, 휫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사회의 가치관 혼란은 복음적인 원칙으로 돌아갈 때만이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열광적인 부흥집회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조지 워커 부시와 면담하여 그를 회심시킨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빌리 그래함은 개독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에게 에큐네니즘으로 비난을 받았다. 거기다 보수적, 진보적 할 것 없이 여러 성격의 교회들이 모였던 로잔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아 근본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근본주의자들의 비난의 대상이었던 존 스토트 같은 성공회 신부들도 참석했으니. 굳이 말하자면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 로버트 슐러
로버트 슐러는 1960년대 가든 그로브 드라이브인 교회를 거점으로 활동하다 이를 헐어버리고 1980년 수정 교회유리교회로 재건축하여 활약한 인물이다. 노먼 빈센트 필(Norman V. Peale)이 주장한 '적극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소위 말하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자기개발서스런 설교의 원형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매우 정교하게 상품화된 설교최첨단 기법이 동원된 화려한 교회를 통해, 한국의 교회 건축과 설교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교회를 딸에게 상속하려다가 수정 교회는 결국 망했으며 교회는 파산해서 건물이 채권단에 넘어갔다. 이때 교인들에게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5조를 내라' 는 황당한 개드립을 설교 시간에 했다고.

결국 수정 교회는 매물로 나왔는데 마침 새로운 성당 건물을 필요로 하던 천주교 오렌지 카운티 교구에서 기존 가격보다 더 후하게 쳐주겠다고 하면서 매입을 시도했다. 이 소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지자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뒷목을 잡았고 결국 팔렸다.

가격 제시는 같이 경합하던 채프먼 대학 측이 더 유리했지만 슐러 목사의 "대학에 팔리면 교회가 캠퍼스로 변하지만 가톨릭에 팔리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니 가톨릭에 팔아달라!" 고 보낸 편지에 감동한 법원의 판결에 의해 오렌지 카운티 교구에 팔렸다고 한다. 3년간 무료로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볼 수 있고 3년 이후에는 싸게 임대비 지불로 조건 유지라는 것이었다.

이 교회의 이름은 Crystal Cathedral로 우리 말로 번역하면 수정 성당인데 성당처럼 웅장하기 때문에 그 단어를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톨릭에 팔리면서 진짜 성당이 되어 버렸다.요란한 우상들로 가득찰 유리궁전에 애도를 표합니다.

  • 신학적 경향
신학적으로는 풀러 신학교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6~70년대 한국 목회자들의 우상과 같은 인물이 되었으며 조용기를 비롯한 많은 부흥사들은 빌리 그래함의 방식을 모방하였고 수정교 회를 자신들의 교회의 역할 모델로 삼았다.

50-60년대 풀러 신학교는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이고 현실타협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교회 성장을 위해 통계 숫자와 통계표를 중시했고 성장을 위한 목표 설정, 효과적인 전도 이론 및 전도 원리와 방법을 개발했다. 풀러 학파의 교회 성장학은 내용보다는 방법과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숫자에 치우치는 실용주의의 산물이다.

  • 군사정권과 개독교
그리고 대학생 선교회(CCC)를 설립한 김준곤, 망교회 곽선회, 광림교회 김선도 등 많은 목사들이 풀러 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김준곤은 박형룡에게 사사받은 사람이다. 그는 풀러 신학교에서 CCC 운동을 접하고 1958년 귀국하여 한국 CCC를 창립했다. 이화여대 총장김활란과 서울여대 학장이었던 고황경 등의 후원으로 학원 전도에 성공한 그는 한국 교회의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참고로 김활란, 고황경 모두 1930년대부터 노골적인 친일 활동을 펼쳤으며 이에 대해 한 번도 반성한 적이 없다. 최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한편 이 시기 미국제 복음주의를 도입하고 확산하는데 앞장섰던 김준곤과 김장환조용기와 함께 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반공과 안보를 내세워 민주화 운동을 용공 세력의 준동이라고 비난하면서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역할을 했다.

김장환은 빌리 그래함이 졸업한 밥 존스 대학 신학과 출신이며 한국 교회의 지도적 인물 중에서 가장 극우적이면서 가장 친미적 성향의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김장환 목사는 밥 존스 대학과 결별했다. 궁극형 개독 그가 사장으로 있는 극동 방송은 2004년 5월에 가정의 달 특집으로 고문 기술자였던 이근안을 옹호하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거나 2006년 극동 방송 창립 50주년 행사 때 29만원을 공식 초청하는 등의 병크를 저질렀다.

또 김준곤은 1966년 미국 조찬 기도회를 모방해 '밤낮 없이 일하시는 대통령' 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 조찬 기도회' 를 주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 라고 기도했고 이듬해인 67년에는 "우리나라의 군사 혁명이 성공한 것은 하나님이 혁명을 성공시켰기 때문" 이라며 노골적으로 독재정권을 찬양했다. 하지만 CCC 소속 중에서도 이런 흑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김준곤과 조용기는 1969년 8월 15일 김대준, 박형규 목사, 함석헌 등 개신교 진보인사들이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반대 운동을 하는 성명을 내자 9월 2일 박형룡, 김유찬 등 242명의 개신교 보수인사들과 함께 '개헌 문제와 양심 자유 선언' 을 발표하면서 진보인사들의 선언을 "순진한 성도들의 양심에 혼란을 일으키는 선동적 행위" 라고 비난하고 교회는 정치적 문제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9월 5일 '대한 기독교 연합회' 라는 단체 명의로 발표된 '개헌에 대한 우리의 소신' 이라는 성명에 서명하면서 3선 개헌을 지지해 자신들의 정치적 중립 입장을 뒤집기도 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1972년 발표된 10월 유신으로 박정희 정권과 기독교 진보 세력과의 갈등이 커지고 1973년 남산 부활절 예배 때 반정부 유인물 배포 사건이 발생하자 김준곤은 교계 보수인사들을 규합해 유신의 앞날을 축복하는 열린 제 6회 국가조찬기도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준곤은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은 것" 이라고 설교했다.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반정부 유인물 배포 사건은 위수령과 10월 유신 이후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최초의 행동이었다. 현직 목사 등 다수의 성직자와 기독 학생들이 내란 예비 음모 혐의로 구속 된 이 사건은 교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기독교 장로회와 NCC는 즉각 모임을 갖고 성명을 내는 등 대책 활동에 들어갔는데 이 활동은 단순히 이들의 구명 운동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정치적 상황에 대한 교회의 인식을 재고시키면서 민주화 인권운동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 개독교의 유신 찬양
그런데 1975년 김장환은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9호 선포, 미국인 조지 오글 목사와 시노트 신부 강제 추방 등으로 국제 여론, 특히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미국을 방문해 "목사 중에 구속된 사람은 그 사람이 순수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아닌 정치 목사" 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허나 자기도 유신을 지지하니 이 자도 정치 목사인 셈. 자승자박, 자폭

이에 질세라 김준곤도 1975년 5월 서울 정동 CCC 대강당에 학생 1,000여 명을 동원해 반공 구국 기독 학생운동 특별 기도회를 열어 "나라를 위해서는 순국을, 주님을 위해서는 순교를, 공산주의자들의 무력 도발에는 육탄으로 맞서는 의지를 가지고 반공의 면역체가 되고 전도의 새 종족이 될 것" 을 다짐했다.

조용기도 같은 해 6월 장충제육관에서 '민족복음화와 국가안보' 라는 제목으로 대중 집회를 열어 유신 지지 집회를 개최했다. 이처럼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등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활용해 민주화 운동을 용공 세력으로 비난하는 대규모 부흥 집회를 개최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를 옹호했다.

어떤 사람은 그 당시 시대가 반공주의를 당연하게 여겼다며 옹호해 주지만 이런 병크를 정상적인 행위였다고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하다.

  • 개독교의 기복신앙
당시 이러한 개독들은 자신들의 행태를 정당하하고 독재정권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내면적 믿음을 강조하며 기복신앙을 강조하였다. 사회적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에 나섬으로서 따를 수 있는 불편함과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외면하고 그러한 일을 비신앙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개인의 성공과 명예를 획득하는 일에는 적극 나서며 그러한 것을 곧바로 '하나님의 축복' 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신앙의 세계에서는 고통의 문제 역시 취사선택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축복' 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의 걸림돌만이 '불가피한' 고통일 뿐 사회적 빈곤과 정치적 박해 등은 '피할 수 있는' 고통이 된다. 이러한 내면적 복음화의 신학이 내면의 도덕성을 강조함에도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무소유의 삶으로 귀착되지 않고 현세적 성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선망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항상 만사 형통한다는 보장 같은 건 없다고 못박아놨다. 하나님을 믿으면 맨날 고통이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100% 성공하는 삶이라는 말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성경에서는 대표적으로 욥기, 바울의 서신서 등등으로 대표되는 고난의 시기에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하자라는 내용이 핵심 내용이다. 개독교가 지껄이는 것처럼 자기 이익이나 챙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개독교의 행태는 흔히 말하는 샤머니즘에 속하는 무당굿 같은 기복적 민간 신앙 및 복을 바라는 우리나라 사람의 심리가 결합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눈앞의 이익을 쫓으면서 살지 않는다. 물론 성경에도 복에 대해서 나와 있지만 기복신앙에서 생각하는 물질적인 복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복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도 않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솔로몬 같은 부자들도 있지만 예레미야, 엘리야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 덜도 말고 세례 요한메뚜기나 구워 먹는 거지였다.

2.4. 군사정권 이후

그래도 1980년대까지는 친정권적이었을지언정 선거 때 노골적으로 정치세력을 특정해 지지하지는 않았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집권 세력이 여러 가지 면에서 워낙 막장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내놓고 지지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항상 "신도들은 정치적 사안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충현 교회의 장로였던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노골적으로 친여를 표방하였다. 여기서 여당이란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을 말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여의도 순복음 교회 담임 목사였던 조용기는 설교 시간에 "김영삼 장로를 지지하여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퍼지게 하자. 그동안 청와대에서 너무 오랫동안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 청와대에 김수환 추기경이 자주 들어온다" 고 말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런데 김영삼 이전의 대통령들 가운데 불교신자인 대통령은 노태우 뿐이었다. 박정희는 무교였는데 단, 육영수 여사가 불교 신자여서 불교에 우호적인 편이었다. 한때 가톨릭 신자였던 전두환은 퇴임 후에 불교에 귀의했다. 즉 한 마디로 조용기 먹사개소리를 한 것이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설교를 했어요?

실제로 김영삼은 재임 시절 공개적인 친 개신교적 행보로 여러 구설에 올랐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유력 후보였던 김대중, 이회창 모두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한쪽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이후 김대중-노무현의 개혁 정권을 거치면서 이들은 더더욱 친여(물론 이때는 야당)-극우적인 노선을 띤다. 특히 노무현 정권에서 이런 보수 개신교의 세력 기반의 하나인 사립학교를 개혁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이들은 진보정권에 적대적이었다.

독교 우파를 표방하는 보수적인 개신교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진보정권과 대립하였으며 이는 2007년 소망 교회 장로였던 이명박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로 나타난다. 김홍도 같은 막장적인 목사 뿐만 아니라 비교적 정치적 발언을 삼갔던 하용조 같은 목사까지도 노골적으로 설교 시간에 이명박 지지를 외쳤다.

이들의 친여적 행보는 계속되고 있으며 수도 이전 문제, 4대강 문제, 주5일 근무, 무상급식 같이 비종교적 이슈에도 이들은 적극 개입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정교분리는 꽤 엄중하게 지켜져야 하는데 이게 무슨... 어찌 보면 교회의 성숙함과 사회의 성숙함은 비례하는 걸지도 모른다. 당장 영국 복음주의와 미국의 복음주의의 주류가 성격이 다른 것을 보자.

3. 신학적(?) 경향

굉장히 배타적이고 문자주의적인 해석을 기반에 두고 있다.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톨릭, 정교회 등 오히려 자신들보다 영성적, 신학적인 면에서 상당한 역사를 가지는 교회들을 이단으로 취급하고 '다른 복음' 을 전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성경에서도 예수에게 무진장 까였던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런 배타적인 특성은 단순히 교회 내부의 뒤틀린 모습을 넘어 일상 속에서 개신교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물론 각 교회마다 비성경적이고 비 복음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
전반적인 신학의 근저에는 예정설, 성서무오설, 직업소명설을 중심으로 한 장로교 신학이 주축이 되고 있는 편인데 문제는 우리나라는 성공회를 제외하고 개신교단들의 기본적인 신학 사상이 장로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장로교와 감리교는 사실 서로 입장에서 '이단' 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장로교에서는 감리교의 기반이 되는 알미니안주의를 엄청 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실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두 교단이 사실 이야기하는 틀은 거의 다르지 않은 편이라고 보는 의견이다. 다만 슬리가 아르미니우스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알미니안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한편 장로교와 감리교가 서로 입장에서 이단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논리적으로 모순에 가깝고 이게 진짜로 모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결정론vs자유의지라는 주제로 철학계에서도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복음주의에서 모두 인정되는 견해라고 한다. 인 그루뎀이 칼빈주의자라서 서술이 공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쓴 '조직신학' 의 16장 G.를 참조할 것.

또 장로교와 감리교 두 교단은 많이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칼빈주의자는 칼빈주의를 채택할 시 얻는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극복하는 논변을 제시하고 알미니안주의의 경우 반대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 장로교 신학은 더욱이 점점 더 단순화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는 어느 정도 시킬 순 있어도 본질적인 개신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즉, 앞장에서도 기술해놓았지만 사회 개혁에 따른 행위들을 안 좋게 바라보고 개인적인 구원, 그나마도 본질적인 영혼 구원보다는 기복신앙에 가까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재밌는 것은 한국 개신교에 본격적인 물량주의, 기복주의를 가져온 교단이 오순절계통의 여의도순복음교회인데 처음에 장로교에서는 신비주의, 기복주의를 근거로 삼아 이 교회를 이단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장로교 신학을 봤을 때에도 물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라보는 특성상 별반 다를 것은 없다.

  • 선교 방법론
긍정적인 선교 방법론 중 하나로 이태석 신부님의 사례처럼 오지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 봉사와 선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톨릭이나 몇몇 개념있는 개신교회에서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를 "그리스도의 향기를 뿌린다" 고 한다.

그러나 개독교는 그저 거리에서 노상전도를 한다든지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교리 설명하기, 해외 선교를 하면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같은 병크를 일삼기 일쑤다. 무식이 죄라면 이들은 사형감이다. 거기에 미국에서 들어온 신사도 운동이 이들의 입맛에 딱 맞는지라 그 화려한 모습과 현상학적인 모습도 그대로 직수입... 물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만 원체 소수에 개독교들이 이런 걸 신경 쓰지 않는지라.[4]

2000년대 이후 대학진학률이 올라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청년 신도들의 조직화가 가능해진 것과 동시에 청년들의 진로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함에 따라 일부 대형교회 역시 선진적 트렌드에 발맞추어 새로운 설교 레퍼토리를 도입하였다. 성폭행 사건으로 유명한 삼일교회의 모 목사가 이 분야의 대표라 할 수 있는데 속류적으로 해석된 소명으로서의 직업론에 한국적 기복신앙을 결합하여 자기계발 신학이라고 할 만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진정한 개신교인은 신의 영광을 위해 간지나는 스펙을 갖추어 성공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믿음의 증거라는 것이다. 뭔가 90년대 운동권의 진보적 사회진출론이 생각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들은 성공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가르침과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멀다. 따라서 저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자기계발서 소개인지 성경 소개인지 도무지 모를 지경이다. 우리나라 신학계의 미래가 어둡다...

물론 개인의 성공을 위해 노력을 권장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지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형교회의 설교는 오히려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더 저질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최소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수단으로서의 노력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와 달리 최근 대형교회들은 세상에 교인들의 위세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펙과 노력을 강조하는 데다가 심한 경우는 사회의 패배자들에 대한 도덕적 멸시까지 정당화하기 때문에 해악이 심각하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변변한 스펙도 없는 12사도는 노력을 하지 않은 잉여들이며 헬레니즘 철학을 공부하고 로마 시민권까지 가졌지만 유대교인퀴지터에서 반체제 인사가 된 사도 바울은 이단이자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아니 당장 그 이전에 예수가 직업이나 스펙을 내세웠던가?

4. 대외적 문제점

예수쟁이/사건사고 항목을 보면 하위 항목에 나와있는 사건들 중 큰 사건들이 나와 있다.

4.1. 목사들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

  • 자고 싶다 했을 때 빤스를 내리면 내 성도다!
독교 우파를 표방하는 사람들에 의해 아주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청교도 영성 훈련원의 목사 전광훈을 들 수 있다. 이 목사는 일전에 성추행 발언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이명박을 찍지 않을 시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 는 망발을 한 바 있다. 참고로 저 발언은 기독교 교리상 엄청난 신성모독이자 중죄로 인간이 신의 권리를 자신의 권리로 선언하는 것이다.


어느 쪽 발언이건 천하의 개쌍놈 인증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병크를 내지를 수 있을 정도로 미치기도 힘들 것이다. 목사란 본디 양떼를 돌보도록 위임받은 신자 대표에 불과한데 그 목사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의 권한인 심판에 대한 권위를 가진다는 말인가? 이것은 단순한 기독교 신학 차원을 넘어 전체 기독교 사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될 발언이다. 중세 시대 교회, 즉 가톨릭의 부패와 분열 역시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 인 교황의 권한과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도권의 남용과 왜곡, 변질로 인한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세 당시에도 저딴 미친 소리는 안 했다는 것이다.

가톨릭의 가장 강력한 처벌인 파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까지나 교정을 목적으로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이지 지옥으로 보내버린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파문 항목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중세시대에 파문이란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기는 했으나 아무리 극악무도한 천하의 개쌍놈이라고 하더라도 구원의 여부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라는 것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종교 개혁에 큰 역할을 한 마르틴 루터도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서 나오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다" 라고 했다. 목사가 설교를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위의 사례처럼 저런 정신 나간 개쌍 병크의 경우를 경계한 말이다.

2011년 9월 18일 시사매거진 2580에서 전광훈 목사가 정당 건설을 주장하면서 변명을 했는데 참 가관이다. "듣는 사람이 한정되어있고 그 청중과 말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유대 관계가 쌓이면 표현 수위는 조금 넘을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즉, 자기는 그냥 유머로 말했다는 뉘앙스다. 그런데 세상에 유머거리로 만들 게 없어서 그것도 자신이 흠숭해야만 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과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인 성을 비하거리로 만드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전광훈은 이후 '기독교 사랑실천당' 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지방 총선에 나섰다가 당당하게 제로의 영역에 도달했다. 정당 창단식에 한나라당 의원이 하나도 참가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고 중놈은 교도소에 넣어야 한다는 찌질이 발언이나 하더니만 교회에 이자 0.1%로 돈 빌려주게 하겠다는 얼토당토 않은 헛소리만 공약으로 내세우니 누가 찍어줄까?

  • 불교를 믿는 나라는 다 못 살고 하나님 믿는 나라는 다 잘 산다!
정치 개입으로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망신당하지는 않았지만 어그로를 끈 목사 중에서는 땡중 발언으로 유명한 신일수 목사가 있다. 이 사람은 "불교를 믿는 나라는 다 못 살고 하나님 믿는 나라는 다 잘 산다!" 고 하며 "기독교 국가 중에서 못 사는 나라 있으면 한 나라라도 찾으면 10만원을 주겠다!" 고 공언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 설교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초반에 이 양반이 손가락으로 2를 하면서 "내가 선거 기간에 이런 거 많이 했어요. 선거에 누구 찍으라는 말은 못하고" 이러면서 엄청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이거 선거법 위반이다.

그리고 외교부 홈페이지를 뒤져서 기독교가 대다수인 후진국을 무려 44개국이나 찾아낸 사람들이 440만원 달라고 전화를 하자 신일수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입을 다무는 추태로 개소리의 대미를 장식했다.

© Mat783 (cc-by-sa-3.0) from

보라색으로 칠해진 나라가 (개신교의 동의어가 아닌)기독교 인구가 50% 이상인 국가이다

  • 기독교 교육은 무조건 OK!
최근 보수적인 목사들은 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많이 나가지만 2007년 이전만 해도 정권에 대해서 머리를 밀고 바퀴 달린 십자가를 지며 반대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중잣대가 얼마나 뇌리에 깊숙히 박혔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사학법을 기독교 교육을 시킬 수 없다며 반대했고 나아가서는 고교평준화까지 공격하였다. 한국 기독교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물론 중세 가톨릭 교회도 막장스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정치기구로서 국가 통치를 어느 정도 담당하기도 했으며 수도원 같은 곳에서 신진농법같은 적절한 기술을 개발해 실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었고 교육과 같은 사회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책임지는 등 사회적 책임을 졌다. 정작 개독교는 그런 거 없다.

2011 무상급식 주민투표까지 끼어들어 불륜 6걸로 유명한 김홍도 목사는 "종북주의자들이 무상 의료, 무상 급식을 걸고 나와 나라 경제를 말아먹는다!" 라고 공식 설교 시간에 발언했다. 자신의 정치 성향과 신념이 어떠하든간에 그것이 옳든 혹은 그르든간에 그런 식의 정치떡밥 예배는 선관위에서 막고 있는데 그것을 했다는 것이 문제.

이에 질세라 전광훈 목사도 "이번 무상급식 투표로 곽노현 못 막으면 학생 인권조례 통과로 청소년 동성애가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는 훨씬 더한 발언을 했다. 이것 역시 정치 성향이 어떠하든 그것이 옳든 그르든을 떠나서 별개의 문제를 끼워맞추며 자기들의 사고방식만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개독교적 사고방식이다.

더 무서운 건 이들의 설교에 일사불란하게 "아멘!" 하면서 응답하는 신자들. 그야말로 사이비 교주와 신도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니 과장 하나 안 보태고 히틀러 연설에 '하일 히틀러' 라고 말하며 손 올리는 나치당원과 정말로 다를 게 없다. 아멘이라는 말이 그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닐 텐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목사들이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들은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거리낌 없이 이런 말을 했다.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한 성경도 무시한다. 관련 기사.

2011년 중반 이후로는 서울 예수 비전 교회 안희환 목사가 주축이 된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어○ 유족들의 위임을 받아서 인터넷상에서 개독교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글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블라인드 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식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예수는 이리 가르치지 않았다. 답이 없다.

심지어는 소망교회에 다녔던 사람조차 글이 블라인드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해당 인사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세에 마귀가 멀쩡한 얼굴로 다닌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2011년 현재 여당인 한나라당이 미덥지 못하다면서 개신교 극우 정당인 기독자유민주당을 만든다고. 물론 망했다


불륜 6걸로 명망 높은 목사들이 보이며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익숙한 얼굴이 요기잉네?

애초에 성경에서 복음의 적용 대상이 유대인에서 유대인 이외의 사람들까지로 확장되었다고 언급된 것 자체가 선민의식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성경에서 선택받았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하도 깽판을 쳐대자 야훼는 그들을 멸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복음의 우선적 수혜 대상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린 전개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들 전부로 수혜 대상을 확장한 것으로 실제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창세기에서는 멜기세덱으로 예표되었으며 모세장인 이드로는 이방인이였고 결정적으로 나아만은 유대인의 적군 장수였다.

그리고 개독교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지금 있는 국가는 필요 없다!" 는 생각이다. 정확히는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성경에 엄연히 다음과 같이 못 박아놨다.

너 자신이 속한 국가를 부정하지 말라. - 로마서 13장 1~7절

이래저래 개독교는 성경과는 어긋난 병크만 저지르고 있다는 결론만이 나온다.

물론 성경 해석과는 별개의 문제로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여 대안적인 정치 체제를 모색하는 것 자체가 무턱대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정치 철학의 발전은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틴 루터, 장 칼뱅과 같은 인물들이 현실의 정치 체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 데에도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백 번 까여도 마땅한 것은 성시화(聖市化) 운동과 같이 정치 체제의 변동 없이 기존의 권력만 접수하여 종교적 가치를 강요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만이다.

문제는 한국의 개독교라 할 만한 보수적 주류 교단은 극도로 국가주의적이고 파시스트적인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이 개인의 권리나 자유주의에 대한 설교를 주로 하는지, 국가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강조하는 설교를 주로 하는지 상기해보자. 정치 먹사들의 주장은 권위주의적 국가를 통해 종교적 가치를 강제하고 종교에 대한 위협을 차단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런 주장은 개신교로의 종교 국가화와 별다를 게 없다. 비슷한 예로 중동의 이슬람 단체를 들 수 있다.

최근에는 정교유착으로 보이는 일부 현상까지 벌어져 더더욱 욕을 많이 먹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권위주의 정부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완전히 짓밟았는데도 찬양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그냥 권력의 개

4.2. 목사들의 답이 없는 독재 찬양

대형 교회의 보수 목사들이 독재정권을 찬양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가 주로 찬양의 대상이 되는데 심지어 박정희 추모 예배를 열면서 한국은 독재를 해야 된다(!)는 정신 나간 발언을 내뱉는 목사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도로 비교적 기독교에 유화적인 정책을 편 이승만과 달리 박정희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완전히 어긋나는 정책을 폈다. 그는 유전병이나 전염병이 있다며 강제 불임 수술을 시키는 제도를 만들고 낙태를 국가에서 자행하기 위하여 일부 합법화시키고 국가에서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으로 초기 임산부에 대한 흡입식 낙태를 보급하였고 인구 감소운동 등의 행동을 했다.

그런데 기독교 목사들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다섯 명의 아이를 낳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발언까지 한 전광훈 목사가 박정희 정권을 박정희 덕분에 대한민국이 일으켜졌다고 찬양하였으며 조용기 목사도 박정희를 찬양한 바 있다. 참고로 기독교에서는 낙태를 생명윤리적 문제로 아이를 살해한다고 생각해 좋지 않게 본다.

낙태와 인구정책 문제는 기독교 이외에서 볼 때 논쟁이 되는 사안이므로 제친다 치더라도 강제 불임 수술은 기독교 이외에서 보아도 나치와 다를 바 없는 반인륜적인 정책이라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한편 목사들은 박정희 정권 당시 유착되었으며 박정희 시대에 기독교 가치에 어긋나는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 적이 없다. 앞서 예를 든 강제 불임 수술은 종교 외적으로도 반인륜적인 정책이며 인구 정책의 경우도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드러났다.

반면 천주교는 낙태 합법화 시도, 강제 불임이라는 인권 침해 등에 대해 여러 차례 반대 운동을 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들이 낙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살생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는 물론 신흥 종교인 증산도까지 낙태에 부정적이며 이슬람교도 낙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4.3. 성소수자 탄압

2003년에는 보수교단 목사들을 중심으로 게이, 레즈비언 등의 성소수자 검색 자체를 포털에서 금지시키려던 사건이 있었다. 동성애를 음란물로 표현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동인련 외 많은 성 소수자 운동가들의 홍보와 노력으로 법정 소송 끝에 성소수자, 동성애는 청소년 유해 단어에서 일단 풀렸다.

당시 청소년 보호법이라고 해서 동성애 이런 것들이 금지어로 나왔다. 그것에 반발한 운동이 결국 승리는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한기총이 자기 이름을 걸면서 동성애는 죄이고 소돔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동성애 때문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

한편 2003년 초, 국가인권위원회청소년보호법상 유해사이트 목록에서 동성애 관련 사이트를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 그러나 보수 교단의 비판은 계속됐고 결국 보수 교계의 동성애 소돔론, 고모라론에 좌절한 운동가 육우당은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 입구 문고리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비인간적인지... #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 #
- 육우당의 유서 중에서

동성애와 성 소수자를 음란물로 만들려던 보수 개신교계의 바람은 도리어 육우당 자살 사건의 여파로 묻히고 만다. 2004년 2월 여러번의 법정 공방 끝에 성소수자, 동성애는 청소년 유해단어가 아닌 것으로 판정된다.

또한 2012년 11월에 성소수자들의 지적에 따라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상에서 정의하는 '사랑' 의 뜻을 '어떤 상대(←남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이라고 개정했는데 1년여만인 2014년 1월에 다시 원상복귀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소동의 배후에 기독교계에서 주장한 "동성애를 옹호한다" 는 개소리 가족간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보다이의제기 후 재검토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연합뉴스보도를 통해 확인되었다.

2014년 퀴어퍼레이드 당일 행사장 앞에서 울면서 기도를 하고 부스들을 방해하였다. 또한 퍼레이드 행렬에 끼어들어 사람들을 밀치는 등 폭행을 행사하였고 퍼레이드 행렬을 막겠다며 길에 드러누워 장장 6시간 가까이 대치하도록 만들었다. 해가 지면서 개독교 측에서는 동성애자들이 다 물러났다고 축하 예배를 드렸지만 계속해서 대치 중이었던 퀴어들이 결국 퍼레이드를 완주함으로서 일단락 되었다. 비판 트윗 모음.

2014년 말 즈음부터 2015년 4월 현재까지 서울시청 앞에서 동성결혼 금지와 2015년 6월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퀴어퍼레이드의 광장 사용허가를 요구하며 농성중이다.

4.4. 공공기관에 대한 횡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이 서울시의 결정에 억지를 부리며 반발해 기어이 총신대입구 이수역에 총신대입구라는 어처구니 없는 억지 역명을 붙인 전례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수역/역명 논란 참조.

5. 대내적 문제점

예수쟁이/사건사고 항목을 보면 하위 항목에 나와있는 사건들 중 큰 사건들이 나와있다.

5.1. 일반 개독교도들의 정신세계

더 세부적인 내용은 예수쟁이 항목을 참고.

벌거벗은 골고다 예수의 희생을 본받지 않으면 이 나라의 기독교는 사회에 해악만 될 뿐이다.
-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

여운형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넘었건만 그의 경고가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플 뿐이다.

의외로 보통 개독이라고 불릴 만한 행동을 하는 신도들은 무지해서 그게 잘못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민폐적 선교 행위들도 정작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신성한 사명의 일부. 이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지성이 없다. 철저하게 세뇌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순수한 믿음이 비뚤어진 방법에 의존하면 답이 없다. 그리고 순진하다는 명목으로 그릇된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생각이 없고 그저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맹신할 뿐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나치스에 동조한 독일인들과 똑같은 위치인 셈.

많은 개신교인들이 그들에 대해 순진하다, 순수하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기 편 미화일 뿐 순진이랑은 거리가 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성이 떨어지거나 해당부분에 대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자기합리화를 하는것일 뿐.

이런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본인의 무지와 성경 왜곡 해석이다.

쉽게 말해 하나는 아는데 둘 이상은 모른다.

십계명에 "나 이외의 다른 을 두지 말라" 라는 내용을 왜곡하여 타 종교 유적지를 훼손한다든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종교를 모욕하는 행위를 하게 하는 등 타 종교를 공격하는 것을 합리화 시킨다거나 신학 공부 없이(또는 신학 공부를 해도) 예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등등 이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이단=지옥으로 떨어질 놈들이 집합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행위는 성경에서도 경고한 행위로 개신교와 개독교를 나누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신약 성경에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은 제가 앞장서서 막겠습니다!" 라고 하자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라고 일갈하시는 내용이 있다. 그 구절의 핵심이 바로 "예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선 안 된다" 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심을 부정하는 베드로의 말은 예수의 구속사역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광신도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개신교인들의 입장에서 이 막장스런 개독교 광신도들을 개신교 망신시킨다고 개독이라고 그들을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됐건 그들도 신앙의 대상을 공유하는 같은 종교인이며 절대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기독교인들과 함께 서서 개독 타령을 하기보단 자신도 잘못하고 있는 게 있는지 생각해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이런 개독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공동체 내부에서 변화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개독교가 하는 짓거리를 요약하면 십자가를 진 예수의 희생을 본받는 건 개뿔, 그냥 사이비 종교의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그냥 자기를 바지신으로 모시고 목사가 교주인 신흥 종교라고 보는 편이 더 빠를 정도.

5.1.1. 전도만 하면 무조건 개종 성공?


좀 냅둬라. 가기 싫다는데 왤케 간섭질이야! 아 너무 흥분해서 영어가 나왔네요

이 영상에 달린 외국 댓글들이 정말로 가관이다.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 영상 제작 후 저 남자 교회에 끌려가서 먹혔을 거야"(...) 라든지... 최고 댓글은 흔히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비유인 "종교그것과 같다. 공공장소에서 휘두르면 안 되고, 애들 입에 넣으면 안 되고, 숭배하라고 사람들한테 가르치면 안 되니까!"(...) 이다.

가끔은 이런 경우처럼 댓글란에서 성경의 모순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인 유튜브에서도 한국 개독에 관한 좋지 않은 영상들이 다수 올라와 있어 전세계인들의 어그로를 끌고 있기도 하다. 결국 나라망신인 셈이다.

마케팅적으로 봐도 어떤 정신 나간 소비자가 저질 제품을 사라고 강요만 한다면 누가 그것을 살까? 마케팅적 관점에서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합리적인 유통방식을 통해 단가를 최대한 낮추고 좋은 면을 보여줘야 팔릴까 말까 한 게 현 시대인데 온갖 더럽고 저질스러운 장면만 보여주면서 억지로 믿어라고 강조만 하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 전도는 효과가 있는가?
그딴 거 없다.

전도가 효과가 있다는 얘기는 그저 개독들의 자기위안에 불과하며 절대다수의 일반인은 이런 행위에 종교적 혐오감을 느껴 오히려 기독교를 더 증오하게 된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우리는 관세를 낼 필요가 굳이 없다고 가르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관세를 내게 하였다. 또한 성경 그 어디에도 길거리 다니는 사람 붙잡고 전도하라는 구절이나 그 비슷한 상황도 없다. 성경이 가르치는 전도 방법은 "네 평소의 행실로써 기독교임을 보이라", 그리고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가르치라" 는 것이다.[5] 종합해 보면 기독교인이 앞장서서 사회에 적극적 모범을 보이고 이를 통해 일반 사람들을 감화시켜 사람들에게 건전한 전도를 통해 복음도 선포하며 신자 수를 착실하게 늘려가는 것이 진정 성경적이고 모범적인 기독교의 전도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타인에게 모범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민폐와 막장짓만 끼치고 보여주면서 극성으로 전도를 하니 당연히 문제나 비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를 한국 내에서만이 아닌 타국에서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 사실 한국의 개신교는 전통적인 기복신앙의 영향을 받아 타국의 프로테스탄트에 비해 변질되어 있다. 덕분에 미국이나 캐나다, 북유럽 같이 개신교도들이 더 많은 나라에선 한국인 개신교도나 선교사들을 광신도라고 까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캐나다 이민 절대 오지 마라>라는 책을 보면 캐나다에 대하여 부정적인 걸 노골적으로 보이는 캐나다에서 30년 넘게 거주한 한국인 교포의 책인데 이 책자에선 캐나다 개신교회들이 한국인 목사와 한인 교회를 욕하는 걸로 비아냥거리고 있다. 참고로 지은이도 개신교인임에도 일부라고 하기에는 많은 한국인 교회들이 캐나다인들의 다른 천주교나 심지어 같은 캐나다인의 개신교회 신도까지 끌어올려고 흑색선전헌금 강요를 저지른다며 교회 관련에선 한국인 교회를 비난한 바 있다.

특히 저 사람들의 사상 기저에는 근거 없는 선민사상과 천박한 도덕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싸구려 동정심, 즉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우월한 이들이니 신앙 없는 딱한 이들을 구원할 의무가 있다!" 는 저열한 사고가 기반에 깔려있다.

성경에서도 선택받았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하도 깽판을 쳐대자 야훼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없애버리고 복음의 우선권리를 싸그리 지워버렸다.

아무튼 성경에도 공식적으로 이렇게 나오는 마당에 성경에 위배되는 근거 없고 저열한 사고를 공공연하게 행하는 것은 고대식으로 말하면 국법 위반죄, 정확히는 신성모독죄로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에 해당한다. 성경이 공식 법은 아니었지만 고대 유대인들의 사회와 중세 유럽에서는 공법 아니 그 이상과 같은 힘을 가졌다.

또한 자기는 구원받았으니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는 동정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시야에서 보면 불신자들은 전부 지옥에 떨어지기로 예정되어있는 사형수 같이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성경적으로 해당 부분은 옳지 않으며 기독교 교리상 믿지 않는 자는 지옥행이라고 못박았지만 이 믿음의 개념은 신의 주권이기 때문에 인간의 판단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판단할 수 없다. 당장 허구헌 날 광장에서 민페짓거리 하는 개독교와 신이라곤 눈곱만큼도 믿지 않는 박애주의자가 있다고 할 때 둘 중 누가 더 믿음에 가까울 거 같은가?-성경에서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믿는다고 하는 자보다 실천하는 자가 더 낫다고 가르친다-

결국 그들 딴에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전도 행위는 선행을 하는 것이며 그 사이에 있는 고난은 악마의 시험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라는 정신 나간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물론 자신은 구원받았는데 전도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앙은 결국 개인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거니 강제적인 전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개독교가 행하는 방식으로 전도하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 애초에 성경 그 어디에도 지금의 방식대로 전도하라 나오지 않는다.

개독교도들은 극성스러울 정도로 전도를 해서 대한민국의 복음화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2005년 인구 주택 총 조사에서 개신교 신도 수는 10년 전에 비해 1.6% 감소했다. 반면 천주교는 74.4% 증가. 이 문서 전체를 읽어보면 감소 안하는 게 이상한 거다. 통계에서도 증명하듯 이러한 극성스러운 선교방식은 개신교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그렇게 전도해봐야 교회입장에서는 교회출석자만 늘어날 뿐이다. 진짜 신도 되려면 야훼의 은혜없이는 불가능 하며, 진짜 신도란 애당초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며 나누는 자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렇게 되기는 어마어마하게 힘들다.

5.1.2. 이렇게 된 이상 해외로 간다!


다시는 오지 마라!!!

더 큰 비극은 한국에서처럼 겨우 몇십 년 동안의 선교만으로도 다른 이슬람교, 불교, 천주교, 동방정교회 국가들에서 다수의 개신교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 사람들이 훨씬 더 무지한 시절에 아예 창칼 들고 목에다 들이밀어도 실패했던 마당에 지금 시점에서 뭔 재주로 성공하겠다는 건지...

그런데 웃기는 것은 해외 개신교 광신도 선교사들도 한국의 개독교도들처럼 단기간에 전도하면 개종에 성공한다고 엉뚱한 믿음을 얻기도 했다. 문제는 이게 한국 개신교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런 식의 선교가 통하는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밖에 없다(...) 그 외 다른 나라에서 현실은 시궁창.

전도사들의 최종 던전으로 회자되는 인도에서 20여 년 동안 복음을 전했다던 어느 미국개신교 선교사는 개종자 제로에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전쟁으로 인도 XX 다 죽어라" 는 식으로 발악을 하다가 추방된 바 있다.

종교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중립적이었던 교포 2세가 한인 교회에 처음 나가보고는 "난 교회 가기 전까진 종교에 대해서 뭔가 신성하고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신성한 느낌보다는 숭배와 인맥쌓기 모임 정도밖에 안되더라" 라는 감상을 남긴 적도 있다.

한 교회 처음 나가보곤 다신 안 나가고 있다는 경험자의 말로는 처음 교회에 나가자마자 한 멀쩡해 보이는 여학생이 자신에게 한다는 말이 "맨 앞자리에 앉으세요, 앞자리에 앉아야 우리 목사님 기운을 잘 받으세요" 라는 샤머니즘 뺨치는 말을 해서 단박에 교회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한다. 사이비 종교 광신도 맞네 교회에 처음 와서 뒷자리서 뻘줌해하는 신도들을 뒷자리는 목사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앞으로 앉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개독교에서는 한국은 글렀으니 해외에서 한국처럼 굴어야지 신도가 늘어난다는 개드립을 치면서 해외 선교를 부르짖는 이들이 늘어났다. 답이 없다

우스개로 중국인은 해외 이민 가서 식당을 차리고 일본인은 옷가게를 열며 한국인교회부터 짓고 현지인 개종에 미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실제로 미국 다음으로 개신교 해외 선교사 파견 2위 국가가 한국이며 조용기는 월간 중앙에서 한국은 전 세계 191개 나라에 3만명이 넘는 선교사를 보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건...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것이 크게 터진 사건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예멘 한국인 여성 선교사 살해 사건.

다른 예로 스리랑카에 한국인 교회가 물건이나 던져주고 봉사라는 말로 왜곡하며 한국어찬송가 부르게 하자 아이들은 울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먹을 것이나 공책을 얻어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교회를 나오자마자 "멍청한 외국 놈들은 이렇게 따라해주면 좋아라 하며 물자를 나눠줄 뿐. 그놈들의 종교를 따라할 마음 없다!" 고 비웃기 일쑤였다. 아이 부모들도 힌두교이슬람, 불교 신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대충 분위기 맞춰주고 물건 얻어오는 걸 좋아할 뿐 종교적으로는 비웃을 뿐이었다. 이 사례는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에서 한 선교사가 겪은 일이라고 적은 건데 이 선교사는 "진정한 마음으로 현지인을 아껴주지 않고 무슨 동물원 동물 먹이 주듯 하는 게 뭐가 선교냐" 며 비판하고 있다.

굳이 이런 게 아니라도 총칼로 식민지배를 당하고도 종교를 바꾸지 않은 이들이 겨우 물건 몇 개 받고 종교를 바꾼다는 건 터무니 없는 망상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대대로 믿던 종교를 갑자기 바꾸는 건 매우 드물며 저런 선교사들이 주는 물건만 좋아라 받고 속으로 비웃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우습게도 저런 선교 사업 를 하는 이들은 선물 받아가는 이들을 개종시켰다고 통계로 집어넣고 억지 정신승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해외선교가 자꾸만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후원금 때문인것도 허다하다. 기독교 채널이나 기독교 잡지의 광고를 보면 항상 해외선교를 하니 지원금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결국 어딜가도 돈 문제가 빠지지 않는 것. 심지어 북한 지역에다 선교를 한다고 미국 선교단체들에게 후원금을 받고 삥땅처먹은 사례도 존재한다. 주인공은 그 유명한 불륜 6걸의 한사람.기사

5.2. 목사 자질 문제

아울러 목사의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서 문제가 된다. 목사 항목 참조. 이는 교회 정치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가톨릭 교회에서 ~~ 오직 교황청에서 신부를 임명할 권한을 지닌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대단한 오해다. 사제 서품은 교구장인 주교의 권한이다. ~~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만큼 사제 서품은 아무에게나 돈 받고 살 수 있는 자격증이 아니다. 개신교의 경우 이런 통제가 불가능해서 신학교가 난립하는 문제를 막기가 어렵다.

아울러 신부가 되려면 정말 고생해야 하고 중도 탈락자도 많이 나오지만 개신교 목사의 경우 그런 거 없다. 유명한 신학교의 경우 들어가기도 힘들고 특히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이 돈 안 벌고 목사하겠다고 뛰어들어서 쓸데없이 커트라인도 올려놓~~는 다고는 하는데,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 난립하는 듣보잡 신학교의 경우 들어가기도 쉽고 졸업하기도 쉽기 때문. 어느 신학교 졸업해도 목사 타이틀 다는 건 똑같다.

교단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대형 교단이 더 어려운 편. 대학 신학과 자체는 들어가기가 쉬운 편이지만 문제는 대학원이다. 좀 큰 교단 신학원들은 진학하기도 어렵고, 대학원 졸업 이후에도 장로교의 경우 강도사 고시, 감리교는 수련목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 상태로 몇 년을 보낸 이후(교단마다 다르다) 최종적으로 목사 고시에 통과해야 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목사가 되려면 30대 초, 중반에 접어들어야 한다. 본격 목사도 고시 쳐서 하는 세상.

목사의 과잉 공급은 심각한 문제이다. 목사도 종교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평소에는 착하고 개념 있는 사람이라도 정말 밥 걱정을 할 처지가 되면 눈이 뒤집히는 경우가 있는데 목사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목사의 수입원은 성도의 헌금이며 사실상 한정된 성도를 다수의 목사가 갈라먹는 구조이다.

그나마 대형교회가 성도를 다 집어먹어서 개척교회 듣보잡 목사의 월급은 그야말로 안습(...) 사역자들이 농담 삼아 사XX교회, 온XX교회 등 대형교회를 삼성, 현대에 빗대는데 이게 괜히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목사도 직업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흔한 수요공급노예이다.[6]

양산형 목사 생산+목사 과잉 공급은 개신교의 질적 열화에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애당초 찍어내는 게 능력과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보낸 목사들인데 그 목사들이 밥줄이 간당간당하게 되면 이후 하는 행동이 뻔해지기 때문. 그야말로 캐리어가 떠도 답이 없는 상황.

5.3. 기타 문제

  • 교회 내 권력 다툼
기독교에서는 일반 신도 중에서 최고위까지 직분이 올라간 사람을 장로라 하는데 이 장로들의 전횡도 만만치 않다. 각종 비리권력을 향한 목사 뺨치는 수준을 떠나 목사를 능가하고 있다.

2000년 5월에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모처의 교회에서 장로들끼리 작당해서 당회에는 알리지도 않은 채 자기들 마음대로 목사를 해직시켜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목사가 잘했거나 못했거나 인사적 조치가 필요하다면 당회에 알려서 당회장 목사 이하 당회에서 결정하는 내용에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자들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목사를 해직시켜버리고 당회에는 목사가 급작스러운 일로 공석이 되었으니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현재는 해직된 목사는 다른 교회를 차려서 안정적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고 그 목사를 해직시킨 장로들은 그 교회에서 새로운 목사를 불러서 교회를 잘 운영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 내부에서 목사와 장로의 권력의 암투는 끊이지 않고 간간히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사유로 목사들이 갑자기 쫓겨나기도 한다.

  • 성차별 문제
성차별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지금은 여자도 장로가 될 수 있도록 교리법안이 수정되었으나 불과 2005년까지만 해도 여자는 장로가 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고 권사까지밖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또한 지금도 대부분의 여자 교인들은 권사까지만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장로나 목사는 거의 보기 드물다. 간혹 보이는 여자 목사들 또한 찬양목사로 불리는 집회 인도자의 역할이 보통.

더 심각한 것은 일반적인 여성 개신교도들이 대부분 이러한 자신들의 대우에 자연스럽게 순응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성경 구절 자체가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얄짤없이 성차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근본주의자적 개독들이 그걸 고려하고 성경 구절을 놓고 설교할 리가 없다.

이러다 보니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교회, 남성-여성을 머리-지체(몸)에 비유하며 '질서' 가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개독들에 의해 여성 개신교도 스스로가 그러한 교회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 금전적 문제
교회는 건축비용으로 인해 빚을 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극성스런 전도와 헌금 문제는 바로 이 때문에 시작된다는 지적을 한 책도 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16번째 교회' 가 그 책.

이 때문에 많은 교회가 문을 열고 닫는다고 하는데 이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치킨집에 비유되기도 한다. 치킨집이 단순 생업 문제라면 교회는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여는 경우도 많아서 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볼 수도 있다.

6. 공공의 적(AKA Public Enemy No.1)

위에도 이미 조금씩 언급하였으니 짐작했겠지만 이런 식이다 보니 개독교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한국의 공론장에서 문자 그대로 공공의 적이요, 악의 축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그 적 중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제정신이 박힌 개신교인마저 있으니 그야말로 일단 패고 보는 공공의 적. 안되겠쏘! 쏩시다!

6.1. 비기독교인들의 적

  • 타 종교에 대한 공격
먼저 타 종교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어 관련 문화재 훼손 같은 타 종교인에 대한 공격이 있다. 이건 굳이 설명이 더 必要韓紙?

  •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
이 부분은 개독교 뿐만 아니라 다른 개신교 교단들, 가톨릭, 정교회 등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에 적용이 가능한 문제이다. 근본주의 개신교는 성적소수자들에게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다. 개독교인은 성적소수자를 일종의 질병 같은 것으로 보고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가르칠 거라나. 미리 말해두지만 이런 놈들은 아무리 자기들끼리 당위성을 주장해봐야 성경에 근거하여 이단, 즉 같은 개독교다!

그러나 비교적 배워먹었단 개신교 교인들과 가톨릭 신자, 정교회 신자들마저도 성 소수자를 잘 쳐줘봐야 구제해줘야 할 사람들, 불쌍한 환자로 보게 된다. 대놓고 욕하고 박해하는 것보다는 분명 나은 태도지만 성 소수자들을 치료해줘야 할 환자로 보며 동성애자에 대한 박해를 반대하는 가톨릭마저도 '동성결혼' 에는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특히 이 부분은 그리스도교 모든 종파들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이것은 '성' 에 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인데 그리스도교는 성과 생명 창조를 격리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즉 동성결혼은 성생활이 생명 창조와 연결될 수 없기에 그리스도교적으로 본다면 올바른 성생활이 아니다. 다만 동성끼리 결혼하지 않고 정신적인 사랑만 하는 것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7]

같은 이유로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가톨릭 기준으로 인공 피임과 자위 행위 역시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무신론적 관점에서 성생활은 생명 창조와 굳이 연관시킬 이유가 전혀 없고 딱히 좋으면 그냥 하는 거(...)라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특정 종교의 입장일 뿐이라는 점.

하지만 그리스도교 근본론자들에서 생명과 성의 관계되는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며 엄청난 신학적 대격변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파트너십 제도' 가 타협적 대안으로 제시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 부분은 동성결혼 항목 참조.

  • 과학자에 대한 공격
과학자들에게도 개독교는 적이다.

한국창조과학회와 같은 극성 창조론자들에 의한 면이 큰 편이라 이들 때문이라고만 알기 쉬우나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NOMA를 무시하는 일부 종교인 때문이다. 물론 창조설이 그 중 대표적인 사례인 건 사실이다. 최근에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빼버리는 병크짓을 해서 이러한 반감은 더욱 증폭. 물론 빠지게 된 내용은 일부 잘못된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교과서의 내용이 학계의 새 정보를 제때 받아들이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었다. 즉, 학계의 최신 흐름을 반영해서 수정하면 되었을 문제인데 고의적으로 빼려고 했으니...

개독이 진화론 가지고 싸움 걸면 성경의 다른 기적들 가지고 그냥 덮어버리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하다. 가령 "모세가 손을 드니까 태양이 하늘에 멈췄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지구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땅 위에 있는 모든 물건이 지구 밖으로 튀어나간다. 사실 그 전에 지구가 가속도를 버티고 제 형태를 유지할 지 고민해야 함

아울러 "이스라엘 무슨 왕의 목숨이 연장되었다는 증거로 태양 각도 변화시켜줄게"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게 사실이면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변해야 되고 그러면 대규모 기후 변화는 기본이고 온 지구의 모든 생명 다 죽는 건 옵션이다. 이런 기적도 믿는 놈이 그까짓 창조를 기적으로 처리 못하고 과학이 어쩌네 저쩌네 하면 되겠는가?

창조론을 보면 그냥 헬게이트 오픈. 창조에 대한 복음주의의 학설은 크게 소지구설, 노지구설, 문학적 구성설로 나뉜다.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일단 소지구설을 전제하는데 소지구설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 신학자들 사이에서 합의가 전혀 안 되어있다. 실제로 조직신학 교과서에서도 노지구설, 문학적 구성설과 진화론은 양립 가능한 것으로 서술한다. 그래서 신앙 좋은(?) 애들이 신학교 와서 멘붕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 우리 교수님 이단 같아 나으 창조론은 그러치 아나

  • 기타
이 외에도 오타쿠, 무신론자, 개독 광신도들의 전도질에 질린 일반인, 심지어 당장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환자들 등이 이들을 공공의 적으로 삼는다. 환자들의 경우 수혈 문제 때문인데 이 부분은 헌혈 항목 참조. 단,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수혈을 거부하는 종교다.

  • 결론
다시 말하자면 개독교도들은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비기독교도들과 싸우는 것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기독교들까지도. 특히나 개독교도들의 주장에는 상식에 반하는 것도 적지 않아 어그로를 많이 끈다. 조은 탱커

같은 개독도 다른 교회에 따라 서로 헐뜯는 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XX교회 목사는 마귀' 라는 극단적인 헐뜯기를 시도하며 아가페는 엿바꿔먹은 지 오래 '우리 교회 다녀야지 구원받는다' 는 말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가끔 '우리 예수님이 더 좋아요' 라는 발언도 있다(...) 도대체 원시 부족신앙과 다를 게 무엇인가?

다만 교리에 대한 의견 차이로 서로 디스하는 건 다른 문제다. 가령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4.1 항목에 그 한 예가 보인다. 잠깐 근데 이건 교리 싸움이 아니라 병림픽이잖아 다른 예로 구원론 문제에서 칼빈주의vs알미니안주의 키배를 보면 그야말로 비무가 펼쳐진다. 근데 둘 다 걍 말빨

알미니안주의 개신교 신학에서 구원에 있어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중시하는 학설이다.
내가 내 의지로 복음을 받아들이면 이로써 구원의 확신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칼뱅주의 개신교 신학에서 구원에 있어 절대자의 주권적 권한을 중시하는 학설이다.
은 나의 구원을 끝까지 결코 취소시키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6.2. 대중문화의 적

왜 개독교가 좁게는 오타쿠, 넓게는 문화계 전반의 적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근본주의 기독교와 서브컬쳐 장르는 항상 타협할 수 없는 적대관계다. 종교 갤러리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독을 오타쿠랑 비교하면서 까는 걸 보면 참 특이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근본주의 기독교 쪽에서 서브컬쳐를 사탄의 창조물이라고 하면서 적대하는 것으로 여러 분야에서 그 악행이 드러난다. 문제는 자기들이 사탄의 자식 그 자체라는 건 죽어도 인정을 못한다는 거.

  • 문학 탄압
개독교도들 중에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고 '마술을 장려하려는 음모다' 라고 까는 사람들이 있었다!

흑발(=악마)해리 포터금발(=천사)드레이코 말포이를 까고 이겨먹는 내용이니 "이건 사탄의 책이다!" 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단세포적 주장도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욕과 비웃음을 실컷 얻어먹은 드립들이다(...)

정작 천사에 관한 묘사가 나오면 "악마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니까 이것도 악마다!" 라고 멋대로 주장해 버린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마따나 사람이 종교에 미치면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개독교도들의 행동과 관련된 책도 수두룩하게 있고 다큐멘터리나 영화까지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 좋아하고 오타쿠인 기독교인들이야 많이 있겠지만 확실히 기독교 내에서 오타쿠 문화는 별로 환영받지 않는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다른 데라고 딱히 대접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한국의 웹툰 신과 함께가 연재될 당시에도 댓글에 개독들이 몰려들어 깽판을 쳤다. 한국 신화마저 이단이란다(...) 그리고 S라인에서 어느 종교의 추악한 부분을 그려내자 역시 댓글로 온갖 난장을 피웠다.

  • 음악 탄압
개독교도들은 툭하면 록밴드들을 사탄숭배자로 몰며 매니아들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개독교라 불리는 종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록을 듣는 사람들을 보고 사탄이라고 말하거나 사탄에 물들었다고 말하며 배척한다. 여담으로 A가 록을 듣는 걸 알게 되고 개독교라 불리는 종교를 다니는 친구 B는 그 친구를 사탄이라 여기며 배척한다고 한다. 특히 레이디 가가마릴린 맨슨에 대해서 뭐라고 뭐라고 하면 100%. 이런 부류와는 친구 안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심지어 뉴에이지 음악 전체를 사탄의 음악이라고 디스한다(...) 초창기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모종의 영적인 의미를 담아 작곡했다고 이후로 계속 까는데 뉴에이지 음악의 발전사를 보면 그냥 헛소리. 심지어 기독교인 뉴에이지 음악가도 있다! 다행히 요즘은 뉴에이지 까는 이야기 잘 안하기는 한다. 천하의 개쌍놈들! 분노가 느껴진다

요즘엔 아예 아이돌들소속사들까지 싸잡아 일루미나티라고 한다. 기독교가 아니라 음모론교 ~처음부터 기독교도 아니었어 더욱 웃긴 건 이런 글들에 달린 댓글들이 더 가관이다. 한 마디로 답이 없다. 사실 멀쩡한 댓글들은 다 짤렸을 것이다

  • 게임 탄압
우선 80년대 미국에서는 등장하는 몬스터 중에 '악마(Devil, Daemon)' 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던전 앤 드래곤과 그것을 하는 게이머들을 사탄숭배자라고 까기도 했다. 이런 홍역을 치른 후 AD&D 2nd부터는 '바테주' 나 '타나리' 같은 고유 종족명을 쓰게 되었다. 생각보다 역사가 유구한 탄압.

최근에는 농담 삼아서 개독교에서 게임 심의를 하면 게등위 뺨치는 검열 능력으로 게임을 검열삭제할 거라 카더라. 거기다 스포어는 급진화를 통해서 단속 평행론을 배우고 심의등급이 낮아 어린이들도 진화를 배울 수 있어서, 심시티는 자연재해는 신의 능력이라서 이걸 하다보면 자기가 신이라는 착각을 들게 해서(...) 삭제할 것이라고 카더라. 그런데 어찌 농담 같지가 않다. 참조.

심지어 게임 중독법을 발의한 새누리당의 신의진 의원이 개신교 단체와 손을 잡고 1000만 서명운동을 한다고 하니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이 법은 성경도 중독물질이라 규정하는 법이니 화려한 자폭. 망했어요

더 충격적인 것은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을 대놓고 죽이는 게임이 나왔다는 것이다. 제목은 'Left Behind : Eternal Force'. 동명의 불쏘시개급 소설에서 따온 제목으로 놀랍게도 영화화까지 되었다! #

게임이 아이들 교육에 나쁘다는 것들이 이런 짓하면서 자기들이 죽이면 정당한 짓이라고 하는 건 나치 같은 놈들을 스승으로 받드는 짓 아닌가? 역시 이중잣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 성문화 탄압
성문화 개방이나 성 상품화를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비판한다. 물론 자유로운 성문화에 대해선 여러 호불호의 이견이 있겠으나 방통위, 게등위, 방심위에서 조금의 노출이나 자신들의 기준에 안 맞는 성문화가 나오면 득달처럼 몰려가서 신도를 이용해 압박을 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한국 사회 전반의 성적 보수성과 맞물려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검열의 강도를 더욱 부추기는 셈.

슬프게도 위에 열거된 유명한 사례외에도 정말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멀쩡한 사람을, 설령 진짜 신도라고 하더라도 사탄으로 몰아붙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회 내에서 취향이 독특하거나 눈에 띄는 '만만한' 신도가 있고 목사나 여타 교인들이 개념을 밥 말아먹은 부류일 경우 그 취향 때문에 두고두고 씹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가령 그 '만만한' 신도가 도검류를 좋아한다면 '저 신도의 마음 속에는 칼이 있어(비유적 표현이든 아니든) 그 도검류를 좋아하는 거다, 우리가 그 취향을 뿌리 뽑아야 한다!' 는 식으로. 여기에 성경 구절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덤이다.

심해질 경우 그 '만만한' 신도는 교회 내에서 일종의 정신병자 같은 취급을 받을 수도 있으며 보호자마저 여기에 가담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데 목숨 거는 사람들은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답이 없는 부류이고 설득이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교회를 옮기는 게 낫다. 무서운 건 참다 못해 교회를 옮긴 신도를 예배 중에 대놓고 디스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 양상이 집단괴롭힘이나 친목질, 백인의 의무와 무서울 정도로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피해 사례들.


이로 인해 피해자가 교회를 옮기거나 아예 개신교를 안믿거나, 최악의 경우 개신교 자체에 적대적으로 돌변하게 만들면, 아니 그런 가능성의 원인을 제공한것 자체가 성경적 관점으로 봐도 무조건 벌을 받아야 하는 대죄[8]다.

7. 결론

사실, 엄밀히 말해서 개독교=이단이라는 공식은 틀릴 수도 있다. 고린도전서에도 나오지만 사도 바울은 근친상간까지 일어난 타락한 고린도 교회를 질책하고 경고하지만 그래도 교회라고 불러주었다. 이단 기준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기에. 하지만 한국 교회의 대다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기복신앙 측면을 강조한다든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서슴없이 주장한다든가, 정치적인 냄새가 나거나, 누구를 적그리스도로, 무엇을 666으로 단정지으면서 종말론적 예언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거나, 영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봤다는 부류는 100% 확실히 이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교리적으로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종교를 탄압하거나 억압, 무시하는 행위는 이단적인 행동이다. 헌금이나 돈에 관심이 많거나 돈 내라고 눈치 주는 교회는 인정사정을 막론하고 100% 이단이다. 남을 핍박하고 공격하고 상처 입히면서까지 전도하는 것 역시 이단이다. 이것은 성경이 증명하므로 다른 여지가 없다.

이단을 판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과 대비해보는 것인데 한국 교회 중 10의 7~8할은 사실상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단들이 거진 대부분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전 세계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는 등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방면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사실상 이단이 아닌 교회를 찾기가 정말 힘들다. 예를 들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말은 당시 법률을 잘 지키고 하나님께도 잘 하라는 것인데 이걸 제대로 실천하는 개독교는 사실상 없다.

또 사람의 심리상 자신이 몸담은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변호하려는 일종의 자기합리화 현상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문제 있는 이단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알면서 부인하는 건 그나마 양반이지 자신들의 문제를 모른 채 인지부조화가 와 버려서 일부드립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지성을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점(占), 미신이나 샤머니즘 기복신앙 속성이 강하므로 일반적 신도들이 대부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노인~장년층 세대라 웬만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이런 부류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모태신앙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잘못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믿는 경우가 대부분. 모태신앙일 경우 부모나 소속된 교회가 개독의 범주에 속한다면 예수천국 불신지옥당연한 교리이고 사고방식이기에 더욱 위험하다. 어릴 때부터 믿던 것들이니 바꾸기도 쉽지 않다. 어떤 이는 못해신앙이라고 한다

  • 결론 요약
따라서 개독은 까되 여러분 주변에 있는 개신교 지인까지 섣불리 싸잡아 까진 말자. 물론 그 지인하고 관계를 쫑내고 싶다면야 까도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적당히 구슬리든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을 일은 서로 하지 않는 식으로 피해가는 것이 낫다. 당근 그 지인이 심히 문제스럽다 판단되고 너무 극렬스럽다 못해 문제가 된다면 절교나 그런 걸로 통해 관계를 끊는 것이 좋긴 하다. 자칫하면 자신까지 말려들게 될 수 있고 애꿎은 당신마저 별로 안 좋은 대우를 받게 될 수 있기에...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의 절친마저 개독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끔찍하다

애초에 정말로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개독교에 대해 오히려 부끄러워하지 화내지는 않을 것이다.

개독교도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만 안 준다면 그들의 무지를 존중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대놓고 무시할 필요는 없다. 혹여나 그들 중에서 개심의 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까기보다는 적절히 유도하면서 정상적인, 적어도 덜 개독스러운 개신교인으로 바꾸어 나가는 게 맞는 방법.

물론 신학대학 멀쩡히 나오고서도 그런 거 가르치고 다니는 목회자들과 개독교들에게는 자비가 필요 없다. 기독교도인 위키러라면 사랑으로 까자. 문제는 신학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면 이미 세뇌가 된 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아니면 아예 해외로 나가서 한국 교회나 보수주의 신학과는 담을 쌓던가...

8. 창작물에서의 개독교

개독교와 완전히 일치하는 세력이 나오지는 않으나 극단적인 세력인 만큼 창작물에서 유사한 단체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메시아 교단이라든가...

WOW를 하는 게이머들은 이들을 황혼의 망치단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실제로 행태가 비슷하기도 하다. 데드 스페이스를 하면 유니톨로지도 있는데 거의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스타크래프트2의 싱글 미션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바로 탈다림이 떠오를 듯.

한편 워해머 세계관에 대하여 조금만 아는 사람은 이들의 행태가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 황제교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쌍벽을 이룬다.

특히 워드 베어러, 시스터 오브 배틀. 그런데 워해머40k 세계관은 신이 진짜로 존재하고 믿음으로 물질적인 힘까지 보상받아 행사하는 경우 보너스가 영 좋지 못한 것이라 그렇지 도 있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광신할 만(?)한 이유라도 있다.

사실 개독들이 쓰는 문장에서 '예수' 라는 단어를 황제카오스 신 이름으로 바꿔보면 어떤 문장이라도 Warhammer 40,000 관련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재밌는 건 황제 항목에도 알 수 있지만 황제 본인은 이런 종교 활동을 극도로 혐오했다. 즉 철저한 무신론자를 신으로 모시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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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도 병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재수의 난은 천주교인들의 도를 넘은 행패에서 촉발되었고 우스타샤에 대해서도 평화신문 측은 옹호하는 논조를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는 전반적으로 한국 천주교 초~중기에 있었던 병크였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이런 잡음이 자체적 자정 작용 및 개신교에 대한 반발작용 등으로 개신교에 비해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아주 없다는 건 아니다. 박홍이라던지 빠콩이라던지 빠콩이라던지...
  • [2] 현대 천주교에서는 개신교도 비록 주교-사제-부제로 이어지는 교회 체계가 없을 뿐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형제들로 보고 존중한다. 물론 천주교인 중에 아직 개신교를 이단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일단 천주교의 공식 입장은 저렇다는 것.
  • [3] 거꾸로 하면 안나가.
  • [4] 오히려 이런 부분을 '사탄이 나에게 시련을 주는구나' 하면서 넘기는 흠좀무한 경우도 많다.
  • [5] 이를 예수의 '지상 대명령' 이라고 부른다.
  • [6] 여담으로 이러한 목사 과잉 공급과 대형교회에의 성도 편중 문제가 개척교회들까지 과격하고 무리한 선교로 뛰어들게 만들어 악순환에 동참시킨다는 견해도 있다.
  • [7] 다만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그리스도인도 있다.
  • [8]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태복음 18장 6~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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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1-26 17: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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