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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last modified: 2015-04-13 22:43:21 by Contributors

契丹(계단/글단)
Kh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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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을 즐기는 거란인들

Contents

1. 개요
2. 명칭
3. 역사
3.1. 기원과 형성
3.2. 요나라의 건국
3.3. 요나라 멸망 이후
4. 기타
5. 관련 항목


1. 개요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유목민족. 동호-선비에서 갈라저나와 4세기에 등장했으며 중국,북방,요동 3자 사이에서 지리멸렬하다가 요나라를 세워 요동과 하북성 일대, 막북을 장악하여 패자로 군림했으며 요 멸망 이후 친척인 몽골에 동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요즘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우르족이 거란족을 계승했다고 하니 그간 숨어지내왔을지도 모르는일...

난폭한 야만족 이미지가 강하지만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고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우는등 나름 고도의(?) 문화를 향유했다.

이들의 위치가 내몽고 초원 일대라 반농반목 정주민인 여진-만주족과는 달리 이들은 유목민이다. 물론 농경을 완전히 안한 것은 아니지만.

4세기경부터 내몽골 일대에 거주했던 몽골계 종족. 역사서로 따저봐도 몽골과 거란은 동족이나 다름없다. 몽골은 실위에서 나왔는데 실위는 동호-선비의 후손,거란도 동호-선비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되어 있다. 몽골-만주-화북의 사이에 끼어있는 위치상 4세기에 데뷔한 이래 몽골의 유연-돌궐과 만주의 고구려 화북의 북위-수,당에게 지배받았다. 고구려 멸망 이후 위구르와 당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당을 약탈했으며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와는 대립했다.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통일시키고 발해를 멸망시키고 내몽골의 실위,해를 병합하고 당시 분열되어 있던 몽골 지역의 부족들을 정복하여 초원의 패자가 된다. 그러나 거란의 압제에 저항하여 아골타 아래 일거에 일어난 금나라에게 한 방에 망하고 서역으로 도망가 서요를 세운다. 이후 금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부흥운동을 몇 번 일으켰으나 모두 망하고 친척인 몽골에 흡수된다. 현재는 다우르족이 거란족의 후손으로 파악되며 몽골과 중국이 거란사의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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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 성립 이전 거란족의 영역을 대강 나타낸 것(Khitans). 구글에 거란이라고 치면 십중팔구가 요대 영역만 나와서 그 이전의 영역을 나타낸 지도는 찾기 힘들다.

© Original uploader was Kallgan at zh.wikipedia (cc-by-sa-3.0) from

요나라 성립 이후의 영역. { 직접 지배하는 범위! }


속국까지 포함한것. 물론 이것도 과장된 것으로 동만주쪽은 사실상 따로 놀았다.

직접지배만 나타낸 것,속국까지 포함한것 모두 부정확한 것이다. 북방민족의 특성상 지도를 제대로 그리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사실 요나라는 지리지를 남겨서 제대로 그리고자 맘먹으면 못그릴것도 없다.

2. 명칭

원래의 한자 독음은 '계단/글단(契丹)'[1]이지만, 세월을 거치면서 계단/글단→글란→그란→거란으로 변화했다. 신채호가 남긴 글만 봐도 거란이 아니라 '글안'으로 적고 있는 게 보인다. 즉, 거란은 한자의 외국식 발음이 아니라 한국 내부에서 변화된 발음이다. 거란족들은 자신들을 거란어로 키탄(Khitan)이라고 불렀다. 키타이(Khitai)[2] 혹은 키단(Kidan)이라고도 한다. 키타이의 경우는 이란식 명칭이다. 그 영향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계 국가들과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는 중국 혹은 한족을 키타이(Китай)라고 부른다. 위구르어의 히타이(خىتاي)나 포르투갈어의 카타이(Catai), 몽골의 햐타드(Хятад), 카자흐어의 크타이(Қытай) 등이 예이다. 참고로 홍콩의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 항공(國泰航空有限公司, Cathay Pacific Airways Ltd.)의 캐세이(Cathay)는 영어의 고어로 중국을 말하는 또 다른 단어인데, 그 어원은 거란에서 온 것이다.

3. 역사

3.1. 기원과 형성

거란이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소수림왕 8년 (서기 378) 가을 9월의 기록으로, 이때 거란이 고구려의 북쪽 변경을 침략하여 8개의 부락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4세기경 전연의 영향력하에 있다가 전연이 중심지를 남쪽으로 이동하여 고막해의 영향력 하에 있게 되었다. 388년 막해북위에게 토벌당하자 이후 어정쩡하게 독립하게 되었다. 고막해가 선비족에서 갈라저 나왔음을 생각해보면 족보를 따지면 선비족의 별종이라 할수있다.

등국 중에 북위의 군대가 크게 깨뜨리자, 마침내 달아나 흩어져 고막해와 나뉘었다. 수십 년이 지나 점차 커져서, 부락이 화룡의 북쪽 수백 리에 있게 되었다.
─ 위서 거란전[3]

그 뒤 나름대로 세력을 키워 4세기 후반 북위와 대립했으나 압도적인 세력차로 북위에 복속했고 이러한 주종관계는 야율아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북제-북주-수-당이 물려받는다. 또한 고구려의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나 일부는 광개토대왕의 거란 토벌로 일부가 고구려에게 복속하여 그 번병이 되었다. 고구려가 망하고 세력을 키워 그 후손인 발해와 대립했다. 한 편 북방 몽골방면과의 관계를 살펴보자면, 북방이 유연으로 정리되면서 유연과 대립했고 유연이 쇠퇴할때는 유연을 공격하여 약화시키기도 하나 돌궐이 등장하며 그에 복속되고 거란과 북방간의 그러한 주종관계는 위구르시기까지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야율아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거란은 주변 중원,막북,요동 강호들의 샌드위치 신세였다는것.

7세기경 대하씨가 거란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는데 대하씨는 당에 귀부하여 이씨성을 하사받게 된다. 고구려 멸망 뒤 거란에 대한 당의 지배권은 공고해지는 듯 했으나 696년 이진충이 무상가한을 칭하며 독립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이진충이 죽고 후계자 손만영이 집권한 뒤에야 측천무후는 돌궐의 도움을 받아 거란을 멸망시켰으나, 돌궐과의 동맹에 문제가 생기면서 거란은 돌궐의 지배를 받게 된다. 돌궐이 730년대에 몰락하면서 거란은 다시 당의 영향권에 들어가지만 안록산의 난이 터지면서 거란은 위구르(회흘)에게 복속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야율아보기 등장 이전까지 계속된다.

3.2. 요나라의 건국


▲ 요나라 시절

907년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대통합했다.그리고 해와 실위를 정복하고 서하를 복속한 다음에, 발해까지 멸한 뒤 요나라를 건국했다. 요 건국 뒤에도 거란(키타이)이라는 이름은 요와 함께 공식적인 국호로 사용된다.

최종적으로 야율아보기의 요 제국은 몽골고원까지 정복하여 영토가 몽골,만리장성 이남 연운16주,만주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몽골고원은 직할지배가 아닌 간접지배중이였고 만주 역시 요동부여 지방이 여진족발해 유민의 반동으로 지배력이 매우 불안정했다. 그래서 실효적인 지배력이 미친 영토만 따지면 영토가 매우 쪼그라든다(…) 요나라 항목 참조.

몇 번 고려를 침공하기는 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대신 북송을 신나게 뜯어먹었긴 했다. 하지만 거란의 여자, 매 등의 착취로 인해 분개한 여진족이 아골타 하에 규합하여 요를 멸망시켰다. 결국 1125년 여진북송의 협공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잔존 세력은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서요를 세웠다. 물론 북송도 망하고 남송 크리

3.3. 요나라 멸망 이후

그 후엔 몽골의 발흥과 함께 거란족 대부분이 몽골의 전위부대로 활용되면서 몽골족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멸망해 사라졌다기보다, 문화적인 차이도 없고 금나라와 싸울 때부터 뜻을 함께한 몽골에 이들이 딱히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동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원래 유목부족의 민족 형성이라는게 그런지라. 특히 거란인들은 몽골 제국에서 크게 중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야율초재. 금나라가 요나라의 원수이기 때문에 같이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인 몽골에 많은 거란인이 협력하였다. 그 외 칭기즈 칸의 참모로 활약한 야율아해와 장군으로 활약한 야율독화 형제가 있었으며, 칭기즈 칸이 일어날 무렵 거란인들은 만주에 대요수국을 세우고 할거했다가 칭기즈 칸에게 항복, 복속되었다. 대요수국의 거란 유민들 중 8만 명이 고려로 내려와서 각지에서 고려군과 싸우다가 패배한 끝에 강동성에 웅거했지만 고려-몽골 연합군에 포위되고 항복했다. 어찌 보면 고려와 몽골 제국이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계기를 제공한 셈. 대요수국이 대표적인 사례고, 거란인들은 금이 흔들릴때 종종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뭐 어차피 카라 키타이가 있지만

그래서 몽골과 중국은 이 종족의 역사적 귀속 여부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안습인 점은 거란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한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거란은 그저 오랑캐였다 보니 티베트 문제와 달리 이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가진다. 애초에 현재 거란을 계승한 민족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지만 안습. 뭐 어차피 거란과 몽골이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고 몽골도 동계로 여기기 때문에 이점은 크게 상관없지 싶다. 정식으로는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에 사는 다우르족이 거란족을 계승했으며, 베이징 등 화북 한족들 역시 거란족과 몽골족의 피가 진하게 섞여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다우르족(達斡爾族, Daur)이 거란족의 후예로 추정된다. 2005년 기준으로 중국의 소수민족(공식적으로 56개로 집계됨.) 중 34번째로 많다. 약 12만명.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분포 범위도 거란족의 그것과 대강 일치하고 스스로 거란을 계승하는 의식이 있으므로, 이들이 거란족의 후예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주국 황제이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 선통제의 부인인 완룽이 바로 이 거란족 출신이다.

재미있는 점은 요하 유역과 하북성 일대에서 웅거하던 요가 망하고 야율대석이 서역으로 이주하여 다시 요나라를 이어갔는데도 이 문서에서는 물론 다른 매체에서 요나라를 다룰때도 요나라는 천조제 이후로 공중분해 된 것처럼 설명되고는 한다. 더구나 거란족은 카라 키타이가 망하고도 이란까지 이주해 다시 요를 이어갔다. 얼마안가 또다시 원한테 쓸리지만. 지못미

앞서 언급되었듯이 강동성에서 포로로 잡힌 8만의 거란 유민들은 고려에서 도살업을 하거나 갖바치, 고리, 광대 일등을 하면서 먹고 살았다. 안 그래도 이런 일들은 천대받은 일들이었고, 거란은 역사적으로도 고려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유민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리 만무했다. 이는 조선시대가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임꺽정이 유난히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쎄고, 칼도 잘 다뤘다고 하는데, 거란 유민들이 백정이 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임꺽정은 전투민족 거란의 후예(!)일지도 모른다.

4. 기타


정수리를 몽땅 밀어버리고 주변머리만 남겨놓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가진 족속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변발이다.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이사장 정안봉의 별명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는 거란족똥돼지.

고려시대 남경, 즉 현재의 서울은 거란족 포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칼리프에서는 이슬람교로 개종해서 송나라정ㅋ벅ㅋ한다.[4] 그 후에 세계대전에서 이집트페르시아를 지원한다.

이들이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알려저있지만 막상 살펴보면 상당히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고려로부터 고구려 계승권을 따내러 왔다고 알려진 서희의 담판도 막상 담판에서 거란이 고구려 계승권을 내세우는 부분을 보면 상당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자면 거란은 그냥 우리가 고구려 요동 땅을 점령했으니 고구려 땅은 우리 땅이다 니들은 신라에서 나왔잖냐 라는 정도로 하고 마는데 고려는 우리가 고구려를 계승해서 국호도 고려로 했고 평양을 수도로 삼았다(서경) 니들 논리대로라면 동경()은 우리 땅 아니냐고 하는 식. 에서 기자의 팔조금법 운운하며 고조선을 계승하는 듯한 뉘앙스를 품기기도 했는데....[5] 그냥 단순한 지역의 내력 소개일 수도 있다.

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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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좀 옛날에 나온 무협물이나 중국 사극을 보면 역자들이 생각없이 계단족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 [2] 코난의 세계관에서 동방의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3] 登國中、國軍大破之、遂逃迸與庫莫奚分背。經數十年、稍滋蔓、有部落於和龍之北數百里。
  • [4] 위구르(동투르키스탄)의 경우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 [5] 요(遼)는 본래 조선의 옛 땅이다. 기자(箕子) 8조의 가르침의 풍속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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