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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

last modified: 2015-12-04 22:13:17 by Contributors

Contents

1. 전쟁
1.1. 배경
1.2. 전황
1.2.1. 핀란드군의 대비
1.2.2. 소련군의 진격
1.2.3. 전세역전
1.2.4. 소련군의 재반격과 종전
1.2.5. 결과
1.3. 이후
1.4. 기타
1.5. 관련 링크
2. 영화


1. 전쟁

영어: Winter War
핀란드어: Talvisota
러시아어: Зимняя война
겨울왕국과는 다르다! 겨울왕국과는!
겨울왕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착각하면 심히 골름하다.


1939년 11월 30일부터 1940년 3월 13일까지 핀란드소련 사이에 벌어진 전쟁. 전쟁의 개전과 종전이 겨울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탓에 이렇게 불린다. 겨울 군인이 참전하지는 않았다.

1.1. 배경

핀란드는 1581년부터 스웨덴 왕국의 영토였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제정 러시아에 속하게 되었다. 1917년 적백내전이 발발하자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하고 핀란드 내전에 돌입했다. 소련에선 적군이 승리했으나 핀란드에서는 만네르하임이 이끄는 백군이 독일 제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승리했다.

1920년 핀란드와 소련은 두 국가의 경계선을 확정하는 타르투 조약(Treaty of Tartu)을 맺었다. 핀란드는 도시 펫사모(Petsamo)와 북극해에 접한 항구 하나를 얻어냈다. 이후에도 국경 갈등은 지속적으로 있어왔지만, 어쨌든 명목상으로나마 소련-핀란드의 국경선은 확정된 것이다.

1930년에 소련은 핀란드에 불가침조약을 제안했지만, 핀란드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소련은 1932년에 다시 한번 불가침조약을 제안했고 결국 체결되었다. 34년에 갱신된 이 조약은 향후 10년간 서로 침공하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적백내전 동안 핀란드 지역을 상실한 것에 대해 많은 실망을 한 그는 불가침조약을 맺었음에도 이곳을 계속 탐냈다. 1930년대 초반 성공적으로 소련의 공업화를 이룩하고 빠른 경제성장을 일궈낸 그의 눈에 핀란드는 먹기 딱 좋은 케이크처럼 보였을 것이다.

당시 소련은 나치 독일과 맺은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폴란드를 침공하여 폴란드의 반쪽을 접수한 상태였다. 그러나 애초에 여기에 만족할 리가 없는 스탈린이었고 그는 독일이 프랑스마지노 선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시간만 보내며 노는 사이에 발트 3국을 합병했다. 다만 완전히 합병한 것은 1940년이고 이때는 영토 내 소련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해군 및 공군기지를 소련군 관할로 넘기는 식으로 협정을 맺은 상태였다. 그리고 소련은 다음 타겟으로 핀란드를 선택하였다. 게다가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당시 이미 핀란드는 소련 몫으로 밀약이 되어있던 상태.

1939년 소련은 레닌그라드 일대의 안전 확보 등을 명목삼아 핀란드에 대대적인 영토 할양 및 조차를 요구하였다. 소련이 핀란드에게 제시한 요구는 다음과 같다.

  • 핀란드와 소련 국경 부근의 카렐리야(Karelia), 라플란드(Lappland) 지방 등을 포함해 약 2,300㎢에 해당되는 영토의 할양.
  • 수르사리(Suursaari) 섬, 코틀린(Kotllin) 섬 등 핀란드만의 4개 섬과 올란드 제도에 대한 할양.
  • 투르쿠(Turku), 코트카(Kotka), 항코(Hanko), 헬싱키(Helsinki), 비푸리(Vipuri) 등 발트 해에 속한 보트니아 만과 핀란드 만을 접하고 있는 주요 항구에 대한 소련군 주둔권 및 조차 권리. 대부분 약 30년에서 40년 가량이었으며 기간을 준수할 것인가도 미지수였다.

이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괴스티 칼리오 핀란드 대통령은 소련 대변인에게 "안되오."라고 짫고 굵게 대답했다.

그러자 소련측 대표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이제 내 역할은 끝났소. 나머지는 붉은 군대가 말할 것이오."라는 반협박적 언어로 대답한 뒤 소련으로 돌아갔다. 애초에 스탈린은 핀란드가 요구를 거절하리라 예상하고 있었으며 회담이 결렬되자 즉각 전쟁에 돌입할 태세에 들어갔다. 소련은 이 시점에서 이미 핀란드에 괴뢰국을 세울 의도를 갖고 있었다.

1939년 11월 26일, 소련-핀란드 국경지대의 마이닐라(Mainila)에서 소련측 국경수비초소가 핀란드군에게 포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 이에 소련은 핀란드군의 공격에 대한 반격으로 4일 뒤 핀란드에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1.2. 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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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하이하. 극심한 혹한기를 가진 핀란드군은 겨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1.2.1. 핀란드군의 대비

핀란드군의 전쟁 대비는 지리적 이점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소련과의 국경은 1000km에 이르지만 기후도 좋지 않고 도로사정도 나빠서 제대로된 공격을 할 수 있는 지역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핀란드군 수뇌부는 만네르하임 선 위쪽, 즉 라도가 호수 이북지역으로 5개 전후의 사단이 올 것이라 예상했다. 이런 예상대로라면 핀란드군은 한명당 3명의 소련군을 상대해야 했다. 허나 실제로 라도가 이북으로 온 소련군은 그 두배가 넘는 12개 사단이었다.

더 큰 문제는 장비였다. 무기를 전부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데다가 그 양마저도 많지 않았다. 연료 비축량은 19~60일분에 불과했고, 20년전에 있었던 내전으로 안그래도 허약한 군대는 더 약화되어 있었다. 때문에 전쟁 기간동안 핀란드군은 노획한 장비에 상당부분을 의존해야만 했다. 참고로 전차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있긴 있었다. 1928년에 생산된 6톤짜리 비커스 Mk.E와 1차대전 당시 물건인 르노 FT-17. 그냥 없었다고 치자

핀란드군의 구체적인 방어계획은 이러했다.
-휴고 오스터맨이 이끄는 6개 사단으로 구성된 카렐리야 지협군은 만네르하임 선에 주둔한다. 카렐리야 지협군은 제2군과 제3군의 합동군이었다.
-울더마 하굴룬드가 이끄는 2개 사단으로 구성된 제4군은 라도가 호수 북부를 수비한다.
-도시 수비대, 국경 수비대와 민병으로 이뤄진 북부 핀란드군은 국경을 수비한다. 우리는 여기서 핀란드군의 전쟁준비가 남부 공업지대에만 집중됐다는걸 알 수 있다

1.2.2. 소련군의 진격

개전 당시 소련군은 무려 25개 사단, 54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였는데 이는 핀란드군의 동원병력을 전부 합친 숫자의 약 세 배에 달했다.

전차의 숫자비는 2,400:9였다. 당시 핀란드 국방군이 보유한 전차는 전쟁 전 영국에서 수입한 비커스 Mk. E 전차 33대가 전부였는데 개전 시점에 주문 물량이 다 들어오지도 않은 상황(33대 중 26대 도착)이었으며 가격 절감을 위해 무장을 뗀 상태로 수입한 상태였다. 이때문에 개전 시점에 현지에서 무장의 장착을 완료한 비커스 E는 고작 10대에 불과했다. 이외에 구식 경전차 르노 FT-17 32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실전에서 운용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대부분 벙커나 토치카 용도로 활용하는데 그쳤다. 그 밖에 비커스 E 도입시 테스트용으로 같이 들여온 카든-로이드 Mk.VI 탱켓 1대, 1933년형 4.5톤 비커스 경전차 1대와 스웨덴에서 수입한 란츠베르크 182 장갑차 1대가 있었으나 전투에서의 활약은 아예 없거나 미미했다. 반면 소련은 개전 당시에만 전차 2,514대, 장갑차 718대를 동원하였으며, 종전까지 무려 전차 6,541대와 장갑차 1,691대를 핀란드 전선에 투입하였다.

항공기는 500:80이었다. 소련 3,880기, 핀란드 114기인데 핀란드는 훈련기 및 관측기, 예비기까지 포함할 경우 216기였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군은 대전차포나 대공포, 야전통신장비도 부족한 상태였다. 한편 해방전함 2척과 잠수함 5척 등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핀란드 해군은 연안 방어(개전 이후 해방전함은 투르쿠 항만 대공방어에 동원되기도 했다)를 비롯해 올란드 제도와 발트 해상의 핀란드 상선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게다가 핀란드군은 개인화기조차 아무거나 되는대로 사다가 들려준 탓에 정규군도 정식 군대라기보다는 거의 게릴라 부대 수준이었다. 종합적으로 소련의 군사적 우위는 핀란드군의 3배, 공군은 30배, 전차는 100배에 달했다. 뭘로 봐도 소련군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소련의 구체적인 진공 계획은 이러했다. 남부-북부 순이다.
-7개 사단과 1개 기갑사단으로 이뤄진 제7군은 만네르하임 선을 돌파하여 비푸리로 진격한다.
-6개 사단과 1개 기갑 여단으로 이뤄진 제8군은 라도가 호수북부에서 진격하여 만네르하임 선을 후방에서 공략한다.
(라도가 호수북부는 만네르하임 선 동쪽에 위치하고 핀란드 전체로 볼 때는 남부지역이다)
-4개 사단으로 이뤄진 제9군은 중부 핀란드를 공격한다. 이 공격은 핀란드를 양단하여 오울루로 계속될 예정이었다.
-3개 사단으로 이뤄진 제14군은 무르만스크에서 북극해를 끼고 진격하여 펫사모를 점령하고 로바니에미로 진격한다.

소련군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폭격하며 진격을 시작했고, 눈 깜짝할 새에 국경에서부터 30~75km를 진격하여 핀란드군의 방어선인 만네르하임 선에 도달했다. 여기서 25만의 붉은 군대는 13만의 핀란드군과 만났다. 이때 핀란드군은 그 중 2만 1천의 병력을 빼서 방어선 앞쪽에서 지연전을 펼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핀란드군 초기의 혼란은 주로 소련군의 전차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핀란드군에는 대전차무기가 별로 없었고 근대적인 대전차 전술로 훈련받은 병사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소련군 전차의 전면 장갑이 아직 두껍지 않았다는 것이다. 핀란드군은 이를 이용하여 근거리 대전차 전술을 개발해냈다. 크로우바를 전차 궤도에 넣어서 잼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전술이었다. 대전차빠루술 똑같이 대전차에다가 미친 놈처럼 돌격을 하는 건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 원 일본 놈들은 머리가 없잖아 나중에는 화염병(일명 '몰로토프 칵테일')이나 '카사파노스'라는 흡착식 대전차 폭약을 사용하는 전술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얼음 위에다 위장망을 깔아놓은 함정을 만들어 전차를 돈좌시키는 방법 또한 병행했다.

한편 소련군이 점령한 국경 지대의 마을인 테르요키에서는 1939년 12월 1일 핀란드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오토 빌레 쿠시넨(Otto Ville Kuusinen)을 수장으로 한 이른바 '테르요키 정부'라는 괴뢰 정부가 소련의 이익을 위해 수립되었다. 하지만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는 못한 채 1940년 3월 12일까지 존속되다가 모스크바 평화 협정으로 겨울 전쟁이 끝나자 새로 수립된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병되었다. 이 정부는 1956년 해체되었으며 그 후 카렐리야 공화국에 합병되었다.

1.2.3. 전세역전

12월 6일 모든 핀란드군은 만네르하임 선을 비롯한 방어선에 틀어박혀 방어전에 돌입했다. 붉은 군대는 방어선의 일부인 타이팔레에 첫 공격을 가했다. 소련군은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핀란드는 기후와 강을 이용한 방어로 첫 공격을 격퇴해냈다. 14일이 되자 소련군은 다시 공격을 감행했지만 또다시 물러나야 했다. 소련군 제3사단은 전투에서 예상 외로 강력한 핀란드군의 화력에 직면하자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허나 위에서 봤겠지만 솔직히 핀란드군한테 화력이라 할만한건 없었다 그럼에도 공격은 계속되었으나, 방어선은 여전히 뚫리지 않고 소련군의 피해만 늘어갈 뿐이었다. 한번은 1시간동안의 전투에서 병력 1천과 전차 27대를 잃은 적도 있었다.

한편 라도가 호수 북부의 핀란드군은 숲을 이용해서 방어전을 펼쳤다. 이곳은 도로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험준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소련군 제8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도로를 깔면서(...) 진격했고 덕분에 약간씩이나마 보급상황이 개선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는데... 12월 12일 라도가 호수 북부에서 벌어진 톨바야르비 전투에서 소련군 2개 사단이 핀란드군 1개 연대에 개박살이 나면서 이 지역의 전세 역시 핀란드군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핀란드군은 소련군을 끌어들여서 조금씩 포위하고 조금씩 섬멸하는 전술을 사용했다(라테 가(街) 전투가 특히 유명). 역사가 윌리엄 R. 트로터는 이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소련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싸우는 걸 포기한다면 그는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 숲에서 몰래 움직여 탈출하려 한다면 얼어죽을 것이다. 항복은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소련의 선전에는 핀란드군의 악랄함이 매우 자세하게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핀란드군에게 악랄함이라고 할 건 없었다.

중부와 북부지역의 도로는 라도가 호수 북부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핀란드군은 여기에 정규군 사단 1개도 배치하지 않는 등 사실상 이곳에 대한 방어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았는데, 이는 당연히 이런 보급사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소련군도 공세를 펼치기엔 무리인 곳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뚝심의 스탈린은 이곳에 무려 8개의 사단을 전개하며 핀란드를 공격했다. 때문에 소련군은 이 지역에서 압도적인 수적-장비적 우위를 점했지만 수오무살미 전투에서 처절하게 발리며 더 이상의 진격은 좌절되고 말았다. 알아갈수록 대단하게 보이는 쏘련군

사실 소련군은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인해 불과 얼마 전에 군장교의 75% 가량을 체포 뒤 고문, 처형을 통해 없애버린 뒤였고 그 후임자들은 군사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하급장교가 하루아침에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이 된 식이었다. 무려 3만명에 달하는 장교가 죽거나 감옥에 갔으니, 군대가 멀쩡하다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스탈린이 무서워서 제대로 된 지휘는 꿈도 못 꾸는 식이었다. 이렇게 소련군의 내부는 완전히 병들어 있었다.

스탈린의 예상과 어긋난 것은 또 있었다. 핀란드 내부의 공산주의자들이 소련군에 호응하지 않은 것이다. 이 역시 대숙청과 관련되어 있는데, 핀란드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에 가서 공산국가 건설에 열중하다가 숙청당한바 있다. 히틀러도 그렇고 스탈린도 그렇고 왜 문짝만 부수면 건물이 무너질거라고 생각하지

비록 소련도 추운 나라이긴 하지만, 남부 우크라이나 출신의 병사들은 핀란드만큼의 혹한기는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으며, 소련의 겨울 따위 듣보잡 취급하는 핀란드 동장군의 강림으로 별로 좋지도 않은 도로가 몽땅 폭설에 묻히자 전차가 진격은 커녕 보급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엎친데 덮치는 격으로 부실한 월동 장비 보급은 피해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1939~40년의 겨울동안 카렐리야 지역의 최저 기온은 영하 43도를 찍었다. 그나마 따뜻한 남부 지역의 기온이 이정도다. 소련군의 10%가 핀란드 국경을 넘기 전에 이미 동상에 걸려있었다는 통계도 있다. 이 추위가 소련군에게 준 유일한 이점이 있었다면, 눈이 녹지 않고 얼어서 중장비의 이동이 편했다는 점일 것이다.

소련군의 주력인 전차는 폭설 때문에 진격도 제대로 못 했고, 이때를 틈타 핀란드군은 술에 불을 붙여 전차 안에다 던져버리는 식으로 공격했다. 이때 핀란드군은 이 술병을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에게 바치는 술병이라 해서 몰로토프 칵테일이라 비꼬았다[2]. 이것으로 무려 80대(...)에 달하는 소련군 전차가 파괴됐다.

더군다나 핀란드군 총사령관 만네르하임 원수가 짜놓은 만네르하임 방어선이 워낙 단단하고 그곳을 방어하는 핀란드군이 의외로 강해서 소련군의 맹공에도 쉽게 뚫리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핀란드군이 스키를 타고 나타나 총 한발만 쏘면 발이 묶인 소련군은 오도가도 못한 채 고립되기 일쑤였다. 움직이자니 핀란드군의 귀신같은 저격 실력에 당하고, 가만히 있자니 그대로 얼어죽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지에서 핀란드에 대해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고 자원병을 파견하는 등 도움의 손길도 왔다. 특히 스웨덴은 영구 중립노선을 걷는 국가임에도 겨울전쟁 당시에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핀란드에 많은 군수물자와 자금지원을 해주었으며, 자원병 파견 숫자도 가장 많았다. 언급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외에 에스토니아헝가리, 이탈리아에서도 소수의 자원병을 파견하였으며 영국, 프랑스, 미국 등도 핀란드에 물자를 지원해 주었다. 다만 나치 독일은 전쟁 초기 외국의 군수물자가 자국 영토를 통해 핀란드로 들어가는 것을 허가하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얼마 후에는 소련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당시만 해도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로 표면상 독일과 소련은 우호국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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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맞아 죽은 병사보다 얼어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 본대와 고립되고 보급이 끊어진 소련 병사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핀란드군은 철저하게 방어에 유리한 자연지형을 기반으로 모티 전술(모티는 핀란드어로 큰 통나무를 장작용으로 쓰기 위해 잘게 쪼개놓은 것)을 구사하였는데, 말 그대로 통나무를 조각내듯 소련군 부대를 각개격파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12월 9일부터 다음해 1월까지 계속된 수오무살미 전투에서 소련군이 25,000명을 넘는 사망자를 내며 대피해를 보자 전쟁은 완전히 교착 상태에 빠져버렸다. 이걸 본 세계는 소련군을 비웃었고, 핀란드에게 갈채를 보냈으며, 타임지는 스탈린을 손바닥만한 나라한테 얻어터지는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으므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1.2.4. 소련군의 재반격과 종전

이는 스탈린을 상당히 당혹하게 했고, 결국 스탈린에서 총지휘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와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언쟁 도중에 스탈린이 보로실로프의 무능함을 지적하자, 보로실로프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유능한 장교들을 다 죽여버렸잖아!목숨을 건 직언
- 클리멘트 보로실로프가 자신을 비난하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내뱉은 말.

스탈린이 이 말을 듣고 느낀 게 있었는지 아니면 심하게 찔려서 그런지 촌철살인?보로실로프는 흥분한 나머지 접시를 깨트려가면서 스탈린을 논박한 불경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니키타 흐루쇼프의 회고록 영문본 Vol.1 256p.]) 숙청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대신 대숙청에서 살아남은 지휘관 중 폴란드 전역에서 활약하여 능력을 입증한 세묜 티모셴코가 새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소련군을 다시 단련시켰다.

결국 소련군은 1940년 봄이 되자 티모셴코의 지휘 아래 자신들의 지난 패배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기면서 대규모 공습을 실시하며 90만명의 병력을 더 투입해 총공격을 감행, 마침내 만네르하임 선을 돌파했다. 핀란드는 소련군이 만네르하임 선을 돌파하자 결국 1940년 3월에 소련에게 항복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평화 협정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핀란드는 소련에 비푸리(오늘날의 비보르크. 당시 헬싱키에 이은 핀란드 제2의 도시)를 포함한 카렐리야 지협 및 라도가 카렐리야, 라플란드 동부의 살라, 리바치 반도, 핀란드 만의 섬들을 할양한다.
  • 항코 반도를 소련에 30년간 임대한다.

1.2.5. 결과

핀란드는 영토의 11%(산업 능력의 30%)와 인구의 12%를 소련에게 넘겨주었지만, 이웃 발트 3국과는 달리 소련에 흡수되는 운명은 면했다.

전쟁 기간 동안의 핀란드군은 전사자 약 25,000여명, 부상자 45,000여명의 피해를 입었으며 소련군은 전사자 12만 7천명, 부상자 18만 9천명이라는 경이적인 인명피해를 냈다. 이야 해냈다 해냈어 소련군이 해냈어

1.3. 이후

억울하게 영토와 재산을 빼앗기고 큰 피해를 입은 핀란드는 이후 추축동맹에 가담하여 1941년부터 '계속전쟁'을 벌여 잃었던 영토를 일시적으로 회복하기도 한다. 물론 1944년에 독일을 버리고 소련에 붙어서 되찾은 영토를 다시 빼앗기지만...

소련군에게 겨울전쟁의 심각한 피해는 값이 매우 더럽게 비싼 수업료였지만,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레슨은 후에 실전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소련군은 정치 장교의 권한을 줄이고 머리가 굳은 늙은 장교들의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숙청은 아니다 장비, 의복과 전술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비록 이것이 15개월 후에 있을 바르바로사 작전때까지 완료되진 못했지만(그러니까 뼛속까지 털리지), 모스크바 공방전에서는 이때 체득한 동계작전의 교훈을 십분 활용해 독일군에게 톡톡히 돌려준다. [3]

1.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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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안습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 사진에 나온 격파된 전차는 쌍포탑 사양 T-26 초기형인T-26A.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 모티 전술, 통칭 '겨울 악령', '하얀 사신', '백색 죽음' 등 각종 이명을 보유하신 괴물 저격수 시모 하이하가 유명하다. 핀란드 공군 소속의 F2A 버팔로들과 그것을 탔던 에이노 일마리 유틸라이넨도 대단한 활약을 했다. 아르네 유틸라이넨도 활약했다. 여러모로 핀란드인은 전투종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쟁이다.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핀란드 국민들이 보이는 모든 도로 표지판에 '모스크바'라고 써놓고, 진격하던 소련군이 이걸 보고 '흠? 잘못 가고 있네?'라고 생각해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길 바랐다고 한다.

이 전쟁에 투입된 소련군의 무기 중에 M1939라는 야삽박격포가 결합된 해괴한 물건도 있었다. 성능이 어땠냐면, 어지간한 무기는 다 쓰는 소련군이 내다버릴 수준. 또다른 소련군의 괴랄한 무기로는 무선전차가 있다. 그런데 이쪽은 2개 대대까지 만들어 독소전쟁 초기까지 써먹은거 보면 나름 괜찮았는지도?

겨울전쟁과 이후 계속전쟁 당시의 핀란드군 자료를 보면 핀란드군이 독일군 제복을 입고 노획 전차에 스바스티카를 그려놓은 걸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핀란드가 독일의 군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핀란드군의 하켄크로이츠 마크는 나치스와는 별개로 당시 핀란드군에 항공기를 기증한 어느 사업가가 고안한 마크이다.

1.5. 관련 링크

  • 바야르비 전투
  • 오무살미 전투

2. 영화

항목의 전쟁을 배경으로한 1989년 핀란드 영화. 원제목은 Talvisota(핀란드어로 겨울전쟁(The Winter War)이라는 뜻).

핀란드 남 오스트로보스니아(Southern Ostrobothnia)에 자리잡은 쿠우하바(Kauhava) 예비병 출신으로 구성된 핀란드 제23보병연대(Finnish infantry regiment "Jr23") 참전군인들이 쓴 증언과 기록을 기초로 만들었으며, 이 당시 살아있던 참전군인들 감수까지 받았다고 한다. 상영시간만 해도 260분에 달했으나, 해외 개봉 당시에는 190분 정도로 편집(국내 개봉 및 비디오와 KBS방영판도 이 버전으로 소개되었다)되었고 미국에선 자그마치 120분으로 단축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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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출처 http://pds22.egloos.com/pds/201106/25/22/e0006522_4e05c07e7ab62.jpg우ㄹ..(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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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출처 http://pds22.egloos.com/pds/201106/25/22/e0006522_4e05c07c32823.jpg뿌뿌뿡!

핀란드에서 당시 사상 최대 제작비로 CG없이 만들어낸 전쟁영화로서 흥행이나 비평도 상당히 성공했다. 소련군의 우라돌격이나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의 물량공세 등 당시의 고증과 재현도 꽤 잘 된 편. 2차대전 영화 중에선 상당한 명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팀 포트리스 2가 출동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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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냉전까지만 해도, 소련을 폄하하기 위해서 서방측은 소련측이 포격을 당한게 아니라 NKVD가 벌인 자작극이고, 이것을 핀란드에게 뒤집어 씌웠다고 했으며, 이것이 정설로 받아들여 지게 되면서 이전의 문서에도 NKVD가 벌인 자작극이라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NKVD가 벌인 자작극이 아니라 핀란드군 병사가 실수로 포격했다고 한다. 근데 실수로 한게 아니라, 반소 감정이 심한 반공주의 성향의 병사가 고의로 포격했다는 얘기도 있으며, 이외에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병사가 쐈다는 얘기도 있고, 일부 농담에서는 독일이 파견한 스파이가 병사로 위장해서 소련측에 포격을 감행했다는 얘기나, 핀란드 병사들끼리 혹은 핀란드 병사 혼자서 술을 마셔대다가 술에 취해버리는 바람에 술김에 실수로 쏴버렸다는 농담도 있는 등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지만, 현재의 정설은 대체적으로 핀란드군의 병사가 실수로 쐇다고 보는 편이다. 한 병사의 실수로 나라가 위기에 빠져버렸다
  • [2]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몰로토프는 평소에 '핀란드인들은 나의 친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거다 언즉시야(言卽是也)라
  • [3] 모스크바 전투때는 소련군이 질뿐만 아니라 이후 전투에서 독일군에 우위였던 양까지도 뒤져 있었던 절망적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전쟁시에 체득한 동계작전의 교훈을 이용하여 독일군을 100km 정도 패주시켰고, 이것은 소련군에게 기사회생의 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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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2-04 2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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