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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

last modified: 2015-02-14 19:11:08 by Contributors

京劇/Peking Opera


경극 독목관 대본 표지. 설인귀(좌),연개소문(우)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내용 형식
4. 관련작품


1. 개요

북경에서 발전하였다 하여 경극이라고 하며[1], 서피(西皮), 이황(二黃) 2가지의 곡조를 기초로 하므로 피황희(皮黃戱)라고도 한다. 14세기부터 널리 성행했던 중국 전통가극인 곤곡(崑曲)의 요소가 가미되어 만들어졌다.

호금(胡琴), 징과 북을 사용하여 반주하며 중국 문화의 정수로 간주되고 있으며 2001년 유네스코가 1차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하였다.

경극의 표현방법은 염주창타(念做唱打)의 4가지 방법으로 나뉘며 염(念)은 음악성을 지닌 대사로 극중의 대사는 경백(京白), 운백(韻白)과 소백(蘇白)으로 다시 구분된다. 경백은 베이징 음, 운백은 호광 음(湖廣音), 중주운(中州韻), 소백은 소남지구(蘇南地區)의 방언을 사용한다. 주(做)는 동작과 표정 연기를 말하며 창(唱)은 노래, 타(打)는 종합 민간무술을 무용으로 표현한 무술동작을 말한다.

배우의 연출 유형인 행당(行當)은 크게 생(生), 단(旦), 정(净), 축(丑)의 네 종류가 있으며 생(生)은 남자를 지칭하며 연령이나 신분에 따라 노생(老生), 소생(小生), 무생(武生)으로 구분한다. 단(旦)은 여자를 지칭하며 늘 푸른 옷을 입고 연기하는 중년 여인 역의 정단(正旦), 노년의 여성 연기자 노단(老旦), 활달한 젊은 여성 연기자 화단(花旦), 무술이 뛰어난 여성연기자 무단(武旦) 및 화삼(花衫), 도마단(刀馬旦), 채단(彩旦) 등이 있다. 정(淨)은 호방한 남자 연기자로 얼굴에 갖은 무늬를 그려 화검(花臉)이라고도 하며 정정(正淨), 부정(副淨), 무정(武淨), 모정(毛淨)으로 구분하고 있다.

축(丑)은 어릿광대나 교활한 남자 연기자를 지칭하며 문축(文丑), 무축(武丑), 여축(女丑)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대 희극 중에는 단역인 말각(末角)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배역은 각기 문무(文武)의 2계통 이외에 다시 세분화된다.

경극에서의 분장 또한 독특하여 생(生)과 단(旦)의 분장에 역할과 배역에 따라 눈썹과 테두리를 그리는 방법이 다르며 정(淨)과 축(丑)의 분장은 충성스럽고 용감한 사람은 붉은색, 간사한 사람은 흰색으로 분장을 하는 데 역사상 유명한 얼굴의 선을 그리는 형식은 정해져 있다.

2. 역사

때의 잡극(雜劇: 元曲)의 뒤를 이어 에서 에 걸친 300년 동안은 쑤저우 곤산에서 일어난 곤곡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왕후, 귀족의 위안물이 되고 형식에 치우쳐 쇠퇴하게 되자 18세기 중엽에는 많은 지방극이 앞을 다투어 나타났다. 그 무렵 안후이성, 후베이성 등 양쯔강 연안지방에 남곡(南曲)의 익양강(弋陽腔) 계통을 이은 이황조(二黃調)가 성행하여, 안후이성의 여자역 남자배우 고낭정(高朗亭)의 일단과 함께 베이징에 들어왔다. 이때가 1790년 고종(高宗: 乾隆帝)의 80세 생일 축하 잔치가 벌어진 해이다. '휘반(徽班)'이라는 안후이성 극단이 당시 난해하고 장황한 저음인 곤곡에 비하여, 명랑하고 쉽고 동작이 많은 이황조를 상연하자 곧 대중의 호평을 받아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신흥극종(新興劇種)인 데다가 형식상의 융통성도 있던 당시의 이황조는 곤곡을 비롯한 많은 선행 극종의 기술과 형식을 최대한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1830년경 청나라 말의 북곡계(北曲系)인 진강(秦腔)의 흐름을 이은 서피라는 곡조와 합쳐 피황희(皮黃戱), 즉 경극으로 발전하여 곤곡의 위치를 대신하였다. 초창기에는 정장경(程長庚), 그 후 담흠배(譚鑫培) 등의 명배우가 배출되어 부단히 개혁에 개혁을 거듭하여 격조를 높였으며, 근세에 와서는 여자역 남자배우 매란방(梅蘭芳)이 한층 빛을 내었다. 해외에도 '베이징 오페라'로 알려져 그 독특한 예술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독일의 브레히트가 서사연극론(敍事演劇論)을 창안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후에는 새로 설립된 중국희곡연구원, 중국경극단 등을 중심으로 '백화제방(百花齊放)', '추진출신(推陳出新)'의 기치에 따라 극 내용의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봉건적인 내용을 추방하고 국민의 창조에 의한 것을 발굴한다는 각도에서 고전상연목록의 정리개편이 적극 행해졌으나, 경극무대에서 현대인과 현대인의 생활을 표현하는 일은 극도로 세련된 격조 높은 형식으로 보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958년경 소위 대약진운동 때 현대화의 시도가 있었으나 반대론과 신중론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964년 베이징에서 열린 현대경극 경연대회를 계기로 현대경극은 중국의 문화계를 석권하여 예술의 새로운 선구자가 되었다. 인민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여 내용과 등장인물의 현대화에 따라 상징적인 스타일이 줄어드는 대신 연기는 사실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가사에는 고전적인 격조가 남아 있으나 대화는 알기 쉬운 현대 표준구어(標準口語)이다.

얼굴에 그리는 선이나 여자역의 남자배우가 없어졌으며, 무대장치를 사용하였다. 대개 2∼3시간의 장편이며 극적 요소가 강하여 자연히 대화부분도 많아졌으나 노래나 무용적인 동작, 화려한 액션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문화대혁명에 의한 경극의 변질은 전통을 상실하게 하였으나[2], 1980년대 이후 그 고유형태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3. 내용 형식

상연되는 각본은 모두 피황조에 의거한 구성·문체·시형이며, 현존하는 1,000여 종은 대부분이 작자미상이다. 대개는 사전(史傳) 소설과 전설에서 소재를 따거나 원곡과 전기(傳奇)를 개작한 것으로, 수호지, 삼국지연의 등의 부분각색이 적지 않다. 대표작으로 추강(秋江), 팔선과해(八仙過海), 손오공, 타어살가(打魚殺家), 사진사(四進士), 우주봉(宇宙峰), 백사전(白蛇傳), 장상화(將相和), 양문여장(楊門女將), 삼차구(三岔口), 패왕별희(覇王別姬), 귀비취주(貴妃醉酒), 안탕산(雁蕩山) 등이 있다.

모두 1시간 내외의 짧은 연극으로 연출과 연기 모두 지극히 서사적인 표현양식을 쓰고, 장치도 없이 상징적인 연기형식에 의하여 상황이나 행동을 나타낸다. 의상은 명 때의 복장을 기초로 한 초시대적인 전통극 고유의 것이며, 색과 무늬에 따라 인물의 신분과 직업 등을 알 수 있다. 노래, 대사, 춤, 액션 등 어느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배역에 따라 결정되며, 배우는 어릴 때부터 소질에 따라 전문적 배역을 익힌다. 이를 위한 양성소를 '과반(科班)'이라 하며 매란방 등이 연기를 익힌 부연성(富連成) 등이 유명하다.


4. 관련작품

경극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은 영화 패왕별희가 있다. 1993년 개봉작으로, 찬카이거 감독의 대표작. 2006년 28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공로상을 수상했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지는 않지만 한국 영화인 왕의 남자에서도 광대들이 연산군 앞에서 경극을 하는 장면이 내용상으로 아주 중요한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 계기로 하여 대신들이 연산군의 광기를 두려워하여 중종반정을 계획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엄연한 고증 오류로, 당시에 경극이 존재할리 없기 때문이거니와 비슷한 연극이 존재하였더라도 조선의 광대들이 이를 공연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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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간혹 대만에서는 평극(平劇)이라고도 한다. 북경이 중화민국 시대에는 북평(北平)이었기 때문
  • [2] 당시 마오쩌둥을 비롯한 권력층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른바 혁명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沙家浜》(사가병) 등의 작품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경극의 변질을 가속화시켰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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