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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last modified: 2015-04-14 22:37:42 by Contributors

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worldheritage.png
[PNG image (7.67 KB)]
이름 경주역사유적지구 영어 Gyeongju Historic Areas
프랑스어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국가 대한민국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Contents

1. 개요
2. 복원논란


慶州 月城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의 궁궐터. 사적 제16호.

후대에 붙여진 지명인 고려만월대와는 달리 신라 당대부터 궁궐이 있었던 곳의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신월성 또는 월성이라 불렸다. 그냥 간단하게 임금이 사는 성이라 재성(在城)이라고도 불렸다고.[1] 어쨌든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는 반월성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원래 신라 건국 이래 왕궁은 금성이었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파사 이사금 22년(서기 101년)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경잡기에는 유례 이사금 7년(서기 290년) 큰 홍수로 월성이 무너져 이듬해 보수하였으며, 소지 마립간 9년(서기 487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고 적혀 있다. 이외에도 중수만 29번을 거쳤다고.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래 호공의 집이었는데 탈해가 그 땅이 좋음을 알고 숯과 부싯돌을 묻고 자신이 대장장이의 후손이며 옛날에 우리 가문이 살았던 땅이라고 야바위속여 빼앗아 월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보면 주위가 1,023보이며, 언덕 위에 반월형으로 흙과 돌을 혼용하여 쌓았고, 여기에 신라 역대왕들의 궁성이 있다고 기록되었다.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 임해전 , 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의 동, 서, 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고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임해전으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지금은 안에 있던 많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1741년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 만든 석빙고(보물 제66호)만 남아 있다. 지금으로써는 정확한 월성의 건물 배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나, 유구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고 아직 발굴이 안된 부분이 많다. 관련 글

1955년 경주군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되자, 경주군의 잔여지역을 이 월성의 이름을 따 '월성군(月城郡)'으로 개칭하였다.[2] '월성 원자력 발전소'라는 이름 등에서 아직까지 월성군 명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1989년 다시 경주군으로 명칭을 환원하였고 1995년 도농통합제 실시로 경주군이 경주시에 통합되었다. 2000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 월성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참고로 백제 성왕의 목은 왕궁의 북청 계단 밑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왕궁이 월성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월성 계단 밑에는 성왕의 머리가 잠들고 있을지도..백제의 원한이 느껴진다.

gyeongju_ol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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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서라벌 시가지의 모형. 앞 부분에 월성이 보인다. 그러나 월성의 건물 배치는 뚜렷한 근거가 없는 상상일 뿐이다. 오른쪽 중간쯤에 황룡사가 보인다. 월정교안압지통일신라시대가 돼야 생겨서 여기에는 없다.[3] 아직 테크가 모자랍니다 참고로 월성 남쪽에 있는 절은 용사다. 월성 북쪽으로 큰 도로가 있고, 그 끝에 보이는 건물은 또 다른 신라의 궁궐터인 랑지(대궁지)다. 정확한 이름은 불명.

2. 복원논란


월성 복원 상상도. 중심 건물인 조원전이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됐지만 건물과 행각의 위치 등은 상상으로 만들어졌다.


중심 건물인 대전의 상상 복원도. 겹처마가 인상적이다.

뜬금없다면 뜬금없지만 월성 신라왕궁을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복원해야 한다는 얘기가 간간히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이유인 즉슨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신라 궁궐이 어디 있고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볼때 난처하다는 것과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군은 연간 600만 명 국내외 관광객 유치 목표로 6천904억원을 투입해 백제문화단지를 만들어 백제문화역사관, 사비 궁, 능사(왕국 내 사찰), 5층 목탑, 생활문화마을, 관광리조트 등을 조성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 숙명의 라이벌이다.#그만둬! 문화재를 망칠셈인가!어째 고구려 왕궁 안학궁 옆에 세워진 테마리조트(...)가 생각나면 기분 탓이다. 이웃 일본도 역사적 근거없이 상상에 근거해 이조쿄를 복원해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어쨌던 간에 왕궁인 월성과 경주 남쪽을 연결하는 주 통로로 사용된 대규모 교량이었던 월정교는 현재 복원중이다#. 물론 이것도 역사적인 고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만들어 진다고 말이 많다.#

2025년까지 복원을 위해 국비 1천890억원, 지방비 810억원 등 2천700억원을 투입한다. 우선 2017년까지 140억원을 투입해 월성 발굴 조사 및 기초 학술 연구를 진행하고 궁궐 핵심의 복원에 착수한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발굴 조사 성과를 토대로 복원 가능한 유구(옛 물건) 등의 복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

2014년 12월 12일 드디어, 월성에 대한 본격적 발굴이 시작되었다. #
일단 발굴을 통해, 역사적 고증하여, 복원까지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는 하나, 과연,,,,

다음과 같이 2023년 까지 발굴이 진행될 계획이다.
- 1단계(2014∼2018년/5개년): 월성 중앙부 시굴조사와 정문으로 추정되는 북문지와 동문지, 남문지, 서문지를 발굴 조사
- 2단계(2019∼2023년/5개년): 원지와 기타 유구 확인지역을 발굴하며, 학술대회 개최 및 발굴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계획

참고로, 월성을 제대로 발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성벽이나 해자에 대한 발굴만 진행이 되었고, 월성 내부에 대한 발굴은 이번이 최초인 것. 따라서 학계는 이번 발굴에 거는 기대가 크다.

월성 주변 발굴 현황은 다음과 같다.
1915년>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처음으로 월성 주변 발굴 조사를 함. 월성 서쪽의 남쪽 성벽 일대
(골촉, 골침, 멧돼지 이빨, 사슴뿔, 동물뼈, 탄화곡물, 토기편 등 발굴)
1979~1980년> 동문지 발굴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문터를 확인, 성벽에 대한 대략적인 토층 상황과 석축 해자 유구를 확인)
1984~1985년> 성벽 바깥에서 해자 발굴
(해자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 해자가 기능을 상실한 후 통일신라시대에는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
1985~2014년> 1~5호 해자와 계림 북편 건물터, 첨성대 남편 적심(積心) 건물지, 월성 북서편 건물지 등 확인

2007년에 행해진 지하 레이더 탐사에 의하면, 많은 건물 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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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월성 발굴때 재성이라고 적혀있는 기와가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 [2] 같은 예로 수원시와 화성군(현 화성시)이 있다.
  • [3] 단, 안압지와 붙어있던 임해전 건물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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