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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소설)

last modified: 2015-04-09 17:10:20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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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김진명의 소설
1.1. 개요
1.2. 스토리 라인
1.2.1. 미천왕 편
1.2.2. 고국원왕 편
1.3. 평가
1.3.1. 호평
1.3.2. 비평
1.3.3. 역사 왜곡
1.3.3.1. 미천왕 편
1.3.3.2. 고국원왕 편
1.4. 주요 등장인물
1.4.1. 미천왕 편
1.4.2. 고국원왕 편
1.5. 기타
2. 정수인의 소설


1. 김진명의 소설

pseudo-historical_novel.JPG
[JPG image (157 KB)]

당신이 꿈꾸던 아시발꿈 논란은 너 때문에 시작이다

1.1. 개요

울트라 내셔널리즘한 세계관으로 악명 높은 판타지 소설가 김진명공상역사소설(pseudo-historical novel). 혹은 무협지. 물론 작가 자신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고구려에 대해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7년에 걸친 자료의 검토와 해석 끝에 이 소설을 냈다고 홍보하지만, 작가가 작가다보니 제대로 된 고증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런즉 이 소설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가는 잘못된 역사지식에 매몰될 공산이 크다.

고구려의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 미천왕,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왕, 장수왕의 시대를 다룬다고 한다. 전연에게 수도를 털리고 부모님과 아내가 잡혀갔으며 백제에게 화살까지 맞아 죽은 고국원왕을 빛나는 시대라고 일컫는 것은 신경쓰면 지는 겁니다 다만 이것도 홍보하는 기사마다 말이 달라서 고국양왕이나 장수왕을 빼고 다섯 왕을 다룬다고도 하고 혹은 여섯 왕을 다 다룬다고도 하며, 처음에는 12권으로 완결낼 예정이었으나 지금은 또 쓰다 보니 분량이 늘어난 것 같다. 왜냐하면 고국원왕의 분량은 처음 발표 당시 1권이라고 했는데 고국원왕 1권에서 하라는 고국원왕 얘기는 안하고 미천왕 이야기를 끝맺고 고국원왕의 태자 책봉까지만 다루는 바람에 고국원왕이 2권으로 늘어나 마무리 되었기 때문. 내용은 계속 늘어날 듯하다. 역시 고국원왕이 문제였어!

심지어 삼국지 대신 이 책을 읽으라면서 삼국지보다 더 재미있게 썼다는 말도 안 되는 자랑을 하기도 하였다. 삼국지? 내가 봐도 재미없어. 삼국지는 이거랑 게임이 안돼 삼빠 광역 어그로 작품성으로 보아도 겉보기에는 그저 그런 역사소설처럼 보이지만 분석해 보면 비범한 수준의 국수주의적 감정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김진명 소설의 일반적인 특성처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히지만 아는 사람들에겐 여지없이 까인다. 그나마 최근권으로 오면서 재미와 반비례해 자치통감의 고증을 반영하려는 모습이 보여 실존인물(소련-소희련, 목진-목환진)을 등장시키기도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거나 이따금 튀어나오는 오류가 실제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고 있다.

1.2. 스토리 라인

1.2.1. 미천왕 편

  • 1권: 도망자 을불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폭군 봉상왕이 무자비하게 친족들을 숙청하는 와중에 달아난 을불은 실제 역사대로 머슴살이를 한다거나 소금장수 노릇을 한다거나 하는 건 스킵하고, 뜬금없이 낙랑으로 도망가서 낙랑제일검 양운거를 만나 검법을 배우고 그 딸인 소청과도 연애 플래그를 세우지만 둘의 관계를 질투한 다른 제자의 모함으로 문하에서 내쳐지고 만다. 이게 역사소설이야 무협소설이야 한바탕 고구려를 휘저으면서 동료를 얻고 돌아온 을불은 낙랑에서 철을 사들여 자신의 기반으로 삼으려 하고, 이 과정에서 미래의 아내 주아영과 필생의 숙적 모용외를 마주한다. 한편 사마월의 부하로 전임 낙랑태수를 죽이고 낙랑을 차지한 지략가 최비는 이곳을 중원 평정의 기반으로 삼으려 한다.

  • 2권: 다가오는 전쟁
    대담한 답변으로 모용외와의 경합에서 철을 얻는 데 성공한 을불은 숙신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봉상왕에 저항하는 게릴라 반군을 구축한다. 한편 낙랑에서 철을 유출시킨 죄로 주씨 일가가 투옥되자 모용외는 주아영을 구하기 위해 낙랑을 침공하고, 최비와의 밀고 밀리는 일전 끝에 평화 협상을 맺어 의형제가 된다. 봉상왕은 고노자를 보내어 을불의 반군을 토벌하고, 궁지에 처한 을불은 고노자의 전령을 가장하여 평양성에 들어가 봉상왕을 암살하려 한다. 이거 영락없이 어쌔신 크리드 : 브라더후드잖아 마지막 순간에 을불의 가장은 들통나지만 그 순간 봉상왕을 배신하는 창조리 덕분에 을불은 봉상왕을 몰아내고 고구려의 왕이 된다.

  • 3권: 낙랑 축출
    고구려가 정기적으로 낙랑에 철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을불은 숙신의 반란을 가장하여 공물로 가던 철을 빼돌린다. 이것이 들통나자 을불은 낙랑에 전쟁을 선포하고, 주아영을 노리는 모용외까지 여기에 끼어들면서 전쟁은 삼파전으로 번진다. 을불은 주아영과 함께 고구려로 철군하여 전쟁은 일단락되고 두 사람은 혼인하지만, 최비가 여전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음을 안 주아영은 소청을 암살함으로써 양운거를 자극해 백제의 왕을 죽이게 만들어 최비의 눈을 돌린다. 더욱이 최비의 힘을 빌어 평정되었던 중원은 흉노의 침입으로 무너져버리고, 을불은 십 년 만에 낙랑을 다시 침공하여 최비의 화우의 진으로 격파하고는 한족의 지배로부터 낙랑을 해방시킨다.

1.2.2. 고국원왕 편

  • 4권: 사유와 무
    모용외가 내버린 자식이던 모용황이 아버지를 찾아와 여자를 빼앗긴 패배자라고 모욕감을 주자 모용외는 다시 각성한다. 한편 고구려에서는 을불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강건한 둘째 무가 아닌 유약한 첫째 사유를 태자로 삼는데, 군주는 백성을 희생시키며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모용외는 거짓말쟁이 최비를 내놓으라며 동진에 으름장을 놓고, 최비는 자신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고구려와 우문부, 단부를 엮어서 모용부를 치지만 이간계에 휘말려 와해되고 만다. 전쟁은 최비가 석륵을 움직여 모용외의 배후를 치면서 일단락되지만 고구려는 여노와 창조리를 잃는다. 다시 십 년 뒤에 모용외와 을불의 결전이 벌어지지만, 여장하여 적진에 잠입한 무가 모용외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이를 틈타 모용황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을불도 전장에서 병이 악화되어 사망한다.

  • 5권: 백성의 왕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사유는 주아영을 화친의 사자로 보낸다. 주아영은 모용부의 내란을 부추기고, 모용황이 달려와 내란을 진압하지만 도리어 주아영과 무의 화공에 죽을 뻔한다. 하지만 사유는 다 이긴 싸움에 초를 치고는 축성 작업에만 매달려 민심을 잃고, 사유의 아들 구부는 중원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부여구와 친교를 맺는다. 한편 끔찍한 화상을 아편으로 달랜 모용황이 산맥을 넘어 환도성을 직공하자, 단웅곡에 유폐되어 있던 사유는 모용황에게 항복하여 주아영과 왕후를 포로로 내준다. 수십 년이 지나 백제의 왕이 된 부여구가 도망친 사기를 내놓으라 하자 사유는 한 명의 백성도 죽게 할 수 없다며 평생 비폭력 주의자로 살아서 그런지 허술하게 갑옷을 입고 어정쩡하게 단기로 적진으로 내달리다가 화살을 맞고 죽는다.(...?) 분기탱천한 고구려의 전투력에 쫄은 부여구는 백제로 내려가는데 그 후 돌아가는 길에 만나는 고구려 백성들은 우리의 왕은 고국원왕 뿐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다

1.3. 평가

1.3.1. 호평

소설적인 측면에서 재미있다는 평가가 꽤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호평 요인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구도가 확실하게 잡혀 있다는 점이다. 인덕과 의지의 남자 을불, 본능과 힘에 충실한 모용외, 책략과 용병에 능숙한 최비의 삼파전 구도가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스토리 상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 삼파전 구도의 중심에서 뛰어난 지모로 능란하게 편을 오가며 움직이는 주아영을 두고 을불과 모용외 사이의 삼각관계가 구축된다. 여기에 소청과 같은 조연들도 단순히 일회성 캐릭터로 묻히지 않고 어떻게든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물들의 내면을 묘사하기보다 우선 행동으로 드러나는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전개도 김진명식 서술의 강점. 스토리가 전개되는 역사적 무대를 고구려와 그 주위, 엄밀하게 말하자면 요동과 요서에 국한시키고 당대 동아시아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중원의 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을불과 모용외와 최비가 이루는 삼파전 구도의 단순한 들러리로 몰아넣어서 스토리의 밀도를 높였다. 스토리가 철저히 지배자의 입장에 집중되고, 그것에 조종당하고 목숨까지도 내놓는 민초와 군사들의 인간적 입장에 대한 서술은 외면되고 있다는 것도 스토리의 밀도를 한층 높인다. 잠깐 당신 이거 까고 있는거지?

더불어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캐릭터 자체는 다양하지만 파악하기 쉬운 편이고, 틀에 박힌 기존의 무협-사극 전개를 따라감으로써 독자들의 진입 장벽이 낮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된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정형화된 전개를 답습하지는 않고 일정하게 변용하여 역사적 전개에 맞추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김진명의 소설들과 달리 스토리의 저변에 깔린 국수주의적 감정이 그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만큼 노골적으로 표출되지도 않는 편이다. 소설 내의 직접적인 서술보다는 배경이나 인물의 성격 따위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편. 사실은 이미 독자들이 이런 저런 것들로 항마력을 키워 온 때문이다

고국원왕 편에서는 이런 스토리상의 미덕들이 붕괴되지만 그건 그거고... 머리 비우고 보면 재미있다.

1.3.2. 비평

여기까지 읽었다면 알겠지만, 위에서 이 소설이 호평받는 요인으로 꼽힌 것들은 거의 동일하게 이 소설이 까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각각이 지니고 있는 개성은 강하지만 그것이 인물 내부의 고민과 심리 상태를 무시한 채 평면적으로 그려지는데다, 인물의 내적인 동기와 성장을 그려내지 못하다 보니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거나 심정적으로 이해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 마디로 개성이 강하고 능력도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초인으로만 만들어져 인간성이 배제되었기에 그것이 매력으로 승화되지를 못하는 것. 이렇게 보면 을불은 그저 운만 더럽게 좋은 호구, 최비는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녀석, 모용외는 성깔 더러운 근육머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면은 스토리가 워낙 시간을 휙휙 뛰어넘기 때문에 부각되는 면도 있는데, 인물들이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바뀌는 모습을 보여줄 공간 자체가 워낙 부족하고 단선적이다. 그렇다 보니 스토리상의 깊이가 부족하고 스토리가 인물들의 극한적인 추종이나 대결로만 치달아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5권의 스토리로, 이러이러하게 아편의 힘을 빌어서 정신을 차린 모용황이 고구려로 침공하여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데 그런 와중에도 고국원왕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모습을 못 보여주고 백기만 들고 앉았고 급기야 부모님이 잡혀가고 아내가 잡혀가고 이러이러하게 굴욕을 참아낸 끝에 겨우 모용황이 물러났는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모용황이 망해있네?(...) 기승결

스토리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그 바깥에 있는 배경을 다 잘라버린 것도 문제다. 물론 작가는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무엇을 넣고 빼야 하는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지만, 모두에게는 각자의 배경이 있고 그에 따른 일정한 사정이 있는 법인데 이 소설에서는 스토리의 매 단계에서 오직 그 배경과 그 문제만이 전부인 양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천왕 편에서 등장하는 고구려의 모습은 요동과 숙신과 낙랑이 전부고 낙랑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밖에 안 그려지기 때문에 스토리 상의 밀도는 있을지언정 이 시기 안팎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설명이 부족하다. 단순히 여기에서 그친다면 모르겠지만 그 과정과 파장이 생략되어 상술한 '기승결'의 뜬금포로 분출했기 때문에 이 또한 문제. 잘라먹었으면 밀도 있게 묘사하기라도 하라고 이 화상아

국수주의 정서도 위에서 지적된 평면화라는 문제와 결합되어 여전히 스토리 내에서 문제가 되는데, 낙랑군은 사백 년 동안 고조선의 유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핍박하며 고구려로부터도 정기적으로 철을 갈취해가는 악의 축으로 그려지고 급기야 종국에는 고조선의 유민들을 인간 방패로 내세우는 악당이 된다. 선비족 또한 모용외는 막강한 힘으로 기분대로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고 남들을 핍박하고 오만하게 설치며, 모용황은 추악한 어머니로부터 사생아로 태어나 아비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서는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논밭에 불을 지르고 학살을 저지르며 자신도 화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부정적인 인물이다. 이쯤 되면 역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사악한 외세의 이미지가 구현된 것.

이와 반대로 고구려의 낙랑 침략은 동포인 고조선의 유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정의로운 전쟁으로 그려진다. 그 군주인 미천왕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몸소 밥을 퍼주고, 우경법을 개선하거나 스스로 쟁기를 들고 농사를 짓기도 하며, 몸소 밤잠을 자지 않고 군사를 조련하는 데 매진하는 등 시종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급기야 고조선의 유민들을 인간 방패로 마주한 앞에서는 고노자가 그들의 희생을 종용하고, 유민들은 그에 호응하여 자발적으로 화살받이가 되어 낙랑성의 성문을 밀어젖힌다.(...)

사내들을 이어 여인들, 그리고 소년들까지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비장한 얼굴로 낙랑성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선 이들의 모습에 성벽 위의 군사들은 미친 듯이 활을 쏘았지만 아무도 피하거나 움츠리지 않았다.
─ 『고구려』 3권.

그리고 까이는 요인은 이 밖에도 많지만, 역시 제일은 역사 왜곡.

어떤 블로그에서는 이 소설의 왜곡된 부분을 정리하기도 했다.#

1.3.3. 역사 왜곡

이 소설이 먼지가 되도록 까이는, 그리고 까여야만 하는 최대최악의 원인. 작가 마음대로 인물을 지어내서 실제 역사상에 끼워파는 것은 물론이고, 있지도 않은 정책과 전쟁을 만드는 것은 기본, 기는 놈을 나는 놈으로 만들고 나는 놈을 기는 놈으로 만드는 것은 옵션, 시대상과 지리 인식을 이리저리 뒤섞는 것은 개평인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중간중간 은근슬쩍 끼워둔 치우와 동이족 드립은 덤. 개소리 집어쳐! 17년 동안 무슨 역사공부를 했다는 거야!

1.3.3.1. 미천왕 편


  • 아스트랄한 지리 인식

첫 권의 첫 문장이 "요동벌 평양성 부근의 한 야산"인데, 여기서 이미 우리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물론 아직 고구려가 낙랑군을 점령하지 못했던 시기에 동천왕이 평양성을 쌓고 이어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남만주 어딘가에 지금의 그곳과는 다른 또 하나의 평양성이 있었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요동벌은 아니다.[1] 왜냐하면 이 시기 요동벌은 고구려 땅이 아니었기 때문.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와 요동벌의 이미지를 등치시키는 바람에 고구려가 일찍부터 요동벌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오해하지만, 실질적으로 고구려가 요동벌을 차지하게 된 것은 광개토왕이 처음이다. 요동벌을 차지한 것이 광개토왕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일 정도이니 저런 문장이 절대 나올 수가 없다.

뒤이은 것은 이제는 쉬다 못해 상해버린 떡밥인 한사군이 요서에 있었다는 억지 주장.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황해도에서 낙랑군 관련 유물이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있다. 억지부리는 자들은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들을 모두 일제가 위조한 것이라고 우기지만, 그럼 평양은 1990년대에도 여전히 일제시대인 모양이다. 뭐 헬게이트라는 점에서는 일제시대와 별 차이가 없긴 하지 일제시대는 전쟁때 제외하곤 굶어죽지는 않았다 근래에는 평양에서 출토된 낙랑군 호구조사 목간이 알려지면서 확인사살. 또한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삼한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요서 지방에서 남쪽은 그냥 바다다.(...) 삼한은 나가족이 세웠던 것이로구나! 지금도 이덕일 같은 사람은 난하가 요하였고 한사군은 산해관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지만, 역시 제대로 된 논리는 아니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것이 김산호박영규 류의 대륙백제설을 받아들인 것이다. 백제는 요서에 있는 낙랑군과 싸웠는데, 싸웠다는 것은 두 나라가 인접해 있다는 뜻이므로 백제도 요서에 있었다는 논리. 하지만 낙랑군이 요서에 있었다는 주장이 억지라는 것은 이미 위에서 말했거니와 정작 모든 대륙백제설의 근간이 되는 정인보의 요서경략설이 얼마나 사실무근의 것이었는지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자. 길게 말할 것 없이 모용외가 (실제로는 바다 건너에 있었던) 낙랑군과 치고받는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신성을 "고구려의 서북단에 위치한 큰 성"이라고 하는데, 고구려 서북방에 있는 신성은 고국원왕이 335년에 쌓은 것이고 그 이전까지의 신성은 고구려의 동북방에 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293년에 모용외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봉상왕은 신성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 했는데, 모용외가 달아나는 봉상왕을 추격하여 따라잡자 신성에서 기병 5백 기를 거느리고 왕을 영접하러 나왔던 신성재 고노자가 모용외를 격파하고 봉상왕을 구했다. 여기서의 신성을 요동전선에 있는 것으로 본다면 봉상왕은 피난을 간다면서 전선 한복판으로 향하는 얼간이가 되어버린다. 이 소설에서는 봉상왕이 모용외를 영격하러 출정했다가 패하고 달아나던 중에 신성태수 고노자가 장수를 보내어 봉상왕을 구했다고 설정했는데 봉상왕이 출정했다는 점, 고노자가 벌써부터 신성태수라는 점, 고노자가 직접 오지 않고 장수를 보낸다는 점에서 고증오류 3연타.

  • 낙랑군에 대한 엉터리 묘사

낙랑군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도 개판이다. 우선 소설에서는 "지금의 낙랑은 명분상으로는 진나라 유주 땅이었다"고 서술하지만, 정작 당시에 낙랑군은 유주(幽州)가 아니라 평주(平州)에 소속되어 있었다. 진서 지리지를 보면 276년 10월에 유주로부터 창려·요동·현도·대방·낙랑 등 다섯 개의 군국을 떼어서 평주를 두었다고 잘 나와있다.

여기에다가 낙랑군을 중국과 북방의 수많은 나라들이 교역하는 물자의 집산지로서 대단히 번영하고 있는 도시처럼 묘사하는데, 이것은 실제 한반도에 있었던 낙랑군의 위치상 당연히 무리다.(...) 이 시기에 동이로 일컬어지던 만주-한반도-일본의 뭇 나라들과 중국 사이의 교류는 요동군에 있는 동이교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동이교위라는 직책이 이러한 외교적 경제적 중개 역할을 대신하게 되자 종래의 전통적인 중개 기능을 상실한 낙랑군은 급속히 쇠퇴일로를 걷고 있었다. 단적으로 기원전후에는 6만 2812호에 달하던 인구가 그로부터 이백 년이 흐른 이 시점에는 대방군까지 포함해도 고작 8600호일 정도로 세가 찌그러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낙랑에서는 태수의 지방 장악력이 약화되고 그를 대신해 호족들이 발호하기 시작한다. 이 반대급부를 톡톡히 보았던 것이 바로 백제.

사회적으로도 낙랑군의 토착 조선인들은 일제강점기마냥 한족들의 핍박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서술되지만, 실제 역사는 매우 딴판이었다. 낙랑군 설치 이전부터 이미 고조선에서는 한족이 세운 위만조선의 출현으로 한족과 조선인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목곽묘로 대표되는 전반기 낙랑군의 고분에는 그전부터 존재해오던 토착 문화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이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린 뒤에도 일단 기존의 토착 세력들을 인정하는 가운데 문화와 인구의 이식이 실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그들 사이에서는 조선인과 한족의 경계가 무너진 낙랑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집단이 형성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자의 후예를 자처하며 스스로를 낙랑인이라 했던 낙랑 왕씨와 낙랑 한씨이다.

  • 요하족 대 황하족의 대결?

미천왕이 낙랑을 점령하는 것을 고조선의 후손으로 빼앗긴 땅을 되찾는 것이라 정당화하는데, 고구려의 고조선 계승 의식을 보여주는 자료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없다. 천남산묘지명과 같은 자료가 고구려인이자 조선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기는 하나 다르게 해석될 여지도 많고, 적어도 그것이 국가 운영을 좌지우지할 수준은 아니었다. 어디까지가 고구려인들의 건국신화 속에서 고구려의 조상은 부여로부터 나왔고, 부여의 조상은 하늘로부터 나왔다. 나중에는 아예 해모수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그냥 조상과 하늘이 다이렉트로 연결될 수 있는데 뭐하러 그 사이에 고조선을 끼워준다는 말인가.(...)

이것이 확장되어 나타나는 것이 요하족(동이) 대 황하족(한족)의 대결이라는 인식 구조. 애당초 고구려가 요하에 가지는 역사적 연고권이 없다거나, 역사의 대부분 시기에 요하가 중원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한 요하족이라는 개념이 어디에서 튀어나왔고 어떻게 정의되는 것인지부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최근 중국에서 '요하문명'의 존재가 부각됨에 따라 기존까지의 동이족 드립을 이름만 달리하여 반복하였다는 것인데... 우리가 서양인이라 묶어서 부르지만 이탈리아인과 영국인이 한 민족이 아니듯 애당초 선비인, 부여인, 고구려인, 숙신인, 삼한인은 있어도 그들을 하나로 포괄하는 요하족이나 동이족이라는 정체성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해당 문서 참조.

그리고 이쯤에서 이제는 빠지면 섭섭한 치우천왕 드립. 황제와 치우의 싸움을 황하족과 요하족의 대결로 미화(?)시키고, 이겼다는 황제의 무덤은 거친 산 위에 있고 졌다는 치우의 무덤은 기름진 평야에 있다면서 사실은 치우가 숨겨진 승리자라는 논리를 시전하한다. 그런데 사실 치우의 무덤은 탁록에만 4개가 있어서 도대체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무덤의 위치로 승패를 추론하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치우의 무덤이 산 위에 있다면 사방을 감시할 수 있는 높은 곳에 묻었으니 승자라고 해석하고, 산 아래 있다면 기름진 옥토에 묻었으니 승자라고 해석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그걸 듣고 또 감탄하고 앉아 있는 창조리가 개그 포인트.(...)

거기다가 가장 가관인 것은 미천왕이 낙랑군을 점령한 뒤 낙랑에서 모든 황하족(한족)들을 추방해 버리는 대목. 아직 국가에 의한 체계적인 통제와 지배가 미발달한 고대에, 있지도 않은 민족의식보다도 계급의식이 우선하는 시대상 속에서, 그것도 고조선이 망한 지 수십 년도 아닌 400년이나 더 지난 시점에서 고조선의 유민과 한족을 구분하는 괴이한 장면이 나온다. 애초에 수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둘은 구분되지도 않을 뿐더러 구분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 한족이든 조선인이든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인적 자원이고, 특히 중원에서 유입되는 선진 기술과 문물을 영위하던 이들의 경우에는 고급 인력으로서 그 가치가 말할 것도 없는데 미천왕은 이들을 그냥 문전박대하고 있는 것이다! 태산은 한 줌의 흙이라도 물리치지 않았기에 클 수 있고, 바다는 한 줄기 물이라도 가려받지 않았기에 깊을 수 있다.

  • 엉터리로 고증된 인물 군상들

원래대로라면 수실촌 음모네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그만두고, 압록강에서 재모와 소금장수까지 하다가 숙박비 때문에 이마저도 박살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겪다 창조리에게 구해진 을불이 여기에서는 낙랑에서 기연을 만나질 않나, 신성에서 비무대회에 우승하지 않나, 숙신에서 레지스탕스까지 하는 등 무협지의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이건 뭐 봉상왕을 피해 숨어 다니기는 커녕 아예 찾아 달라고 안달을 하는 셈. 심지어 전령으로 위장해 왕궁에 잠입해서 봉상왕을 암살하려 하니 어쌔신이 따로 없다. 삼국사기에서도 을불의 고생담과 창조리의 반정은 그 상황 묘사가 자세한 편인데 이걸 싸그리 뒤집었으니... 역사소설이 아니라 거꾸로 읽는 동화 수준이다

왕준이 기발하게 오나라의 장강 방어선을 무력화시킨 일[2]두예의 휘하에 있던 최비가 한 것으로 돌리고, 그 뒤로 최비가 사마염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는데... 천하통일 이후에 그대로 정줄놓사마염의 상태로 볼 때 글쎄올시다? 게다가 여기에서는 최비가 298년에 동해왕 사마월의 권세를 등에 업고 낙랑군을 감찰하러 왔다가 낙랑태수를 죽이고 그대로 낙랑을 꿀꺽하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팔왕의 난이 한창이던 311년에 유주의 군벌이던 왕준(王浚)이 처남이랍시고 동위교위에 앉혀주었던 낙하산 인사였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오히려 최비가 팔왕의 난을 조종하고 왕준이 최비의 들러리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으니,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을 지경. 한 마디로 최비는 낙랑과는 전혀 무관하다.

또 실제 역사에서의 최비는 자신을 후원해주던 왕준이 석륵에게 죽임당하자 평주자사로 자립하며, 중원에서 망명해 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안 오고 죄다 모용외에게로 가버리자 고구려와 다른 선비족 부락들을 끌어들여 모용외를 박살내려다가 역으로 모용외에게 관광당해 고구려로 도망치는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오히려 모용외와 의형제를 맺었다가 미천왕에게 낙랑군을 빼앗기니 적은 아군이 되고 아군은 적이 된 기묘한 왜곡.

모용외는 단순한 야만족 추장이 아니라 상당한 개념인이었다. 물론 혈기방장하던 초기에는 겁 없이 진나라를 수시로 노략질하고 부여까지 초주검으로 만들어놓는 패기를 선보였지만, 21세에 진나라에 항복하면서부터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고 중원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팔왕의 난영가의 난으로 중원이 개막장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진나라에 충성하는 포지션을 취했으며, 내정에 성공하고 지식인을 공경해 최비를 제치고 망명 지식인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이러한 모용외의 내적 성장은 소설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인데 여기에서는 일단 그런 거 없고, 힘과 본능만 믿고 날뛰는 완벽한 야만족 우두머리를 연출하고 있다. 고구려인이 아니면 사람도 아님? 문제는 그 힘과 본능이 기묘하게 적절하다는 것.(...)

모용외 휘하의 배억, 고첨, 양탐, 봉유, 봉추, 서방호, 황보급 등은 인물들은 다 어디가고[3] 원목중걸과 배의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일단 배의(裴疑)는 배억(裴嶷)을 오독한 결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는 고국원왕 편인 5권에서 따로 배억이 나온다는 것이지만.(...) 원목중걸의 경우에는 그 비중이 엄청나게 큰데도 불구하고 애당초 저런 이름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게 문제. 이름을 '중걸'이라 부르는 꼴을 보면 성이 '원목'이라는 복성인데, 애당초 중국에는 원목이라는 성씨가 없다. 게다가 왕망 이래로 중국에서는 줄곧 외자 이름이 대세였다는 점도 신경쓰면 지는 거다. 삼국지에서 등장인물 중 이름이 두 글자 이상인 사람이 얼마나 나오나 세어 보자. 제갈량도 성이 제갈이고 이름이 량이다.

  • 기타

고구려가 부족연합적 성격을 띤 나부 체제에서 보다 행정적으로 정교한 방위부 체제로 재편된 것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아직도 절노부니 소노부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조불은 절노부 사람, 소우는 소노부 사람이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조불은 북부 사람, 소우는 동부 사람이라고 언급되는 것과 합치되지 않는다. 고구려 정치사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일천함을 보여주는 요소.

미천왕이 8만에 달하는 군대를 원정에 동원하는데, 당시 고구려는 비류수 전투와 치양 전투에서 보이듯 일반적으로 2만 정도의 군대가 한계였다. 그것도 치양 전투에서는 오합지졸까지 긁어모아서 간신히 2만이었으니... 물론 소수림왕이 체제를 정비하면서 이것을 끌어올려 광개토왕은 5만에 달하는 군대를 동원하기 시작하고, 주필산 전투에서는 말갈군까지 끌어다가 15만 대군을 편성하지만 그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8만 가운데 철기병이 2만, 경기병이 3만으로 기병이 태반이라는 것인데 전근대의 병력비를 생각해보면 동원 가능 병력에서 기병이 절반을 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군마 한 마리가 집 한 채 가격인데

을불이 방황하던 중 어느 현자로부터 국제 정세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데,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돌궐이 언급된다. 돌궐은 6세기에 유연의 부용 종족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작중 시점은 290년대. 또한 사마천이 한무제에게 궁형을 당했으니 사기를 편찬하면서 한무제의 눈치를 보았다는 떡밥을 던지는데, 사마천이 그래서 잘도 항우와 여후를 본기에 넣어주었던 모양.(...) 그리고 신성에 어마어마한 양질의 철광이 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요동에서 철이 나오는 곳은 한참 남쪽인 개평과 해성 일대다. 신성에서 철이 나올 리 있나.

1.3.3.2. 고국원왕 편

  • 어불성설인 중원 정세

고구려에게 현도군을 빼앗긴 손정과 노창이 동진으로 도망치자, 모용외는 손정의 목을 베어다가 노창에게 들려서 동진으로 보내어 도망친 최비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사마예가 벌벌 떨면서 전국옥새를 반띵해서 모용외에게 보낸다는 어이가 승천하는 전개를 선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난리통에 전국옥새를 흉노에게 빼앗긴 상황이었고, 모용외는 동진에 충성을 맹세하고 작위와 관직을 받아 중원에서 망명해 온 사족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처지였다. 화북을 장악한 석륵이 모용외에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자, 모용외는 그 사신을 잡아다가 동진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미 화북은 석륵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고, 때문에 모용외와 동진은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고 있었다. 모용외와 동진이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바닷길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동진으로 가던 모용외의 사자가 풍랑을 만나 침몰했을 정도. 즉 모용부가 아무리 강성하더라도 둘 사이에 있는 석륵의 세력이 멀쩡한 이상 동진에게는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용외의 근자감에 지려버린 모용외가 무서워서 사마예가 벌벌벌 떨고, 최비의 공작으로 우문부와 단부와 고구려가 뭉쳐서 모용외를 공격할 때 진나라도 5만 군사를 보내어 요동에 있는 모용외를 공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공손연동천왕손권이 무서워서 손권에게 벌벌벌 떨었던 거라고 하지

이후 소설에서는 최비가 창조리의 계책에 따라 석륵을 꼬드겨서 모용외의 배후를 치도록 하고, 이로 말미암아 모용외는 석륵과의 전투에 정신을 쏟느라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속하지 못했다고 서술한다. 모용외와 석륵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10년 동안이나 이어졌고, 그 결과 석륵은 모용외에게 관광당한 나머지 치명상을 입고 목숨이 위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당연히 뻥이다. 석륵은 한번도 모용외와 싸운 적이 없었고, 다만 앞서의 사신 사건 이후 단 한 번 우문부로 하여금 모용외를 치도록 시켰을 뿐이었다. 석륵은 병으로 죽었고 그마저도 모용외가 죽은 뒤의 일이었다.

  • 모용황에 대한 악의적 중상

이 소설에서 모용황은 탄생부터 대단히 비천하고 더러운 것으로 묘사된다. 주아영 외의 어떤 여자와도 검열삭제를 하지 않겠다며 금딸하던 모용외가 도저히 욕정을 참지 못하고 여자라고도 부를 수 없는 비천한 장애인 추녀에게 그것을 풀어서 모용황이 태어났다는 것인데, 그러면 차라리 남자한테 하던가 모용황이 저승에서 작가를 고소미를 먹일 수준이다. 실제 역사에서의 모용황은 모용외가 단부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서 낳은 첫 번째 자식이었으니, 원래는 한 나라의 공주님이던 인물이 소설에서는 졸지에 천민 장애인으로 굴러 떨어진 셈.

나아가 장성한 모용황은 이러한 성장 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악덕의 집결체로 묘사된다. 자신의 이복형 모용광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죽여버리는 냉혈한이자, 반란으로 모용외의 자리를 찬탈하고 사실상 아버지를 살해하다시피 하는 패륜아이며, 수확을 앞둔 고구려의 농토에 불을 질러서 수많은 백성들을 죽게 만드는 테러리스트이고, 부하들을 자신이 꼴리는 대로 죽이고 살리는 창천항로 풍의 막장 리더다. 급기야 모용인의 난을 진압하던 중 주아영의 화공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몸의 반쪽이 화상으로 문드러지고, 이로 말미암아 한참 동안 고통받다가 아편의 힘을 빌어서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다음에 고구려를 무너뜨리고자 모든 것을 내던지는 복수귀가 된다.

정리하면 슬럼가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자라나 성격은 냉혈한에 행적은 패륜아요, 하는 짓은 테러리스트, 말하는 것은 창천항로, 생긴 것은 투 페이스, 몸은 약쟁이, 바라는 것은 복수이니 정말 빌런다운 부정적인 요소는 있는 대로 죄다 모아놓았다.

  • 고국원왕에 대한 은유적인 비방?

행적을 보면 그냥 안습의 극치를 달리던 고국원왕을 희대의 찌질이평화주의자로 바꿔놓았다. 일단 고운 마음을 가졌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그야말로 눈새다. 태자 시절부터 전쟁 직전의 모용외에게 사자로 가 화친을 요청하다가 죽을 뻔하는 등 싹수가 노랗더니, 왕이 되어서는 모용황이 논밭을 불태우는 테러를 저질러도 화친만 요청할 뿐이고, 주아영이 화공으로 모용황을 반쯤 죽여놓았는데도 하는 짓이라고는 모용황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심지어 환도성이 털릴 때에는 신하들이 또 화친하자고 할까봐 단웅곡에 유폐시켜 놓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걸 또 탈출해서 모용황에게 항복해버린다. 심지어 어머니와 아내를 포로로 잡아가고 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도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허락한 것이라고...[4] 근초고왕(드라마)에서는 너무 호전적이어서 문제였는데 여기서는 어째 그 반대다

게다가 작중에서 구부의 입을 빌어 고국원왕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을 보면 한심한 수준이다. 앙숙인 두 사람에게 서로 따귀를 때리게 시키면 서로가 점점 더 세게 따귀를 때리지 그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서,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차라리 내가 몇 번 따귀를 맞아주고 이 짓을 끝내겠다는 것.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비유가 말이 안 되는 게, 이건 전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짓이란 말이다. 칼잡이의 육참골단에 비유해도 모자랄 판인데 어디서 따귀 따위에 비유하고 있는지 참...

뿐만 아니라 고국원왕이 치양으로 쳐들어가서 백제와의 전쟁을 일으킨 것도 근초고왕이 먼저 도망친 사기를 내놓으라고 시비를 걸자, 혈기를 참지 못한 이련이 제멋대로 백제를 침공한 것이라고 미화했다. 이에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포위하자 고국원왕은 단기필마로 백제군을 향해 달려가다 헤드샷을 당해 쓰러진다. 한 사람의 백성(사기)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것이라고. 실제 역사에서는 고국원왕이 먼저 백제를 침공한 것이다. 일본서기와 종합해 볼 때, 근초고왕이 지금의 전라도 일대를 경략하는 사이 고국원왕이 근초고왕의 뒤통수를 후리다가 역관광을 당했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 사기는 근구수왕 문서에 잘 나와 있듯이 백제인으로 고구려에 망명했다가 고구려군의 첩보를 백제에 제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고국원왕이 하는 짓은 오히려 김진명이 고국원왕을 까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4편이고 5편이고 간에 죽을 때까지 고국원왕을 편드는 백성이 한 명도 안 나온다. 신하들에 의해 유폐당할 정도니 이쯤 되면 왕으로서는 볼 장 다 본 셈.(...) 그나마 죽은 뒤에는 백성들이 근초고왕에게 돌을 던지면서 고국원왕만이 자신들의 왕이라고 외치긴 한다. 좋은 고국원왕은 죽은 고국원왕 아니 이럴거면 그냥 고국원왕편 없애고 4권은 미천왕 편 4권, 5권은 소수림왕 편 1권으로 하라고

  • 고무와 고구부의 존재감

모용외와 미천왕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여자로 변장한 고무가 모용외의 진중에 잠입해 모용외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는 서술은 당연히 설정이다. 애당초 모용외가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죽었다는 것부터가 기록에는 없는 설정이고, 소설에서는 모용외와 미천왕이 비슷한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작 미천왕은 331년, 모용외는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333년까지 멀쩡히 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어서 훗날 소수림왕이 되는 구부가 342년 즈음에 중원을 순방하는데 이때 훗날의 근초고왕을 도와 준 다음, 세 치 혀로 연나라의 재상 송해를 죽였다고 하니 이 무슨... 송해는 345년까지도 멀쩡히 살아만 있었다. 또 여기에서 구부가 치는 드립이 걸작인데, 송(宋)이라는 국명은 갓 쓴 나무, 즉 장승에서 비롯되었고 장승은 치우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이는 조선의 왕 치우가 하남성을 정복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나. 그놈의 치우 순애보... 이는 사실 구부의 개드립이었지만 진실을 밝혀 두자면, 송의 갓머리(宀)는 사실 갓이 아니라 지붕을 의미한다. 설문을 보면 송을 '사는 것(居也)'이라 하고, 강희자전에서는 '나무로 집을 만들어서 사람이 사는 바(木所以成室 以居人也)'라 하고 있다. 치우가 조선의 왕이라는 말이 거짓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훗날 백제가 평양성을 포위한 상황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했을 때 백제가 군사를 물린 이유가 구부가 나서서 근초고왕더러 위에서 설명한 빚을 갚으라고 해서란다. 최소한 중학교 때 국사만 제대로 배웠더라도 나올 수가 없는 개드립.

1.4. 주요 등장인물

★ 실존인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인물

1.4.1. 미천왕 편

1.4.2. 고국원왕 편

1.5. 기타

국방일보에서 어떤 장병이 고구려 때문에 김진명을 보고싶다고 해서 고구려를 주제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에라이

2. 정수인의 소설

고구려 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요수난하설을 비롯해 신선드립 등 이쪽도 판타지(환타지)로 날아가기는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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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학계에서는 이 시기의 평양성을 평안도 강계 일대로 추정한다. 압록강 수역에 있었을 것임은 확실시된다.
  • [2] 오나라는 장강을 타고 내려오는 진나라 함선을 막기 위해 장강에 쇠말뚝을 박아놓고, 쇠사슬을 쳐서 물길을 막아버렸다. 이에 진나라 군대를 이끌던 왕준이 뗏목을 만들어서 쇠장대가 뗏목에 박히게 하고 기름 먹인 뗏목에 불을 질러 쇠사슬을 녹여버렸다는 비교적 유명한 이야기. 이게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사건이기 때문에 삼국지연의 막바지 부분에도 나온다.
  • [3] 이들 중에서 배억, 고첨, 봉추, 황보급 정도만 스쳐 지나가듯이 이름만 언급된다. 모용황의 부하로는 봉혁, 모여니, 한수(전연)|한수, 석종, 난발 등이 스쳐 지나가듯이 이름만 등장한다.아니 얘네들 다 각각의 설정이 있는 캐릭터들인데 꼭 이걸 다 지우고 자캐를 만들어야 했나...
  • [4] 실제 기록에는 '고국원왕이 홀로 단웅곡으로 달아나자, 모용황이 추격하지 않고 사신을 보내어 왕을 불렀으나 왕이 나오지 않았다. 모용황이 돌아가려 하는데 한수가 고국원왕의 아버지의 시신을 싣고, 어머니를 인질로 잡아 돌아가서 고국원왕이 스스로 항복하도록 만들자고 건의하니 모용황이 이것을 받아들였다'고 똑똑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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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9 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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