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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왕사

last modified: 2015-03-16 14:35:35 by Contributors

고구려의 역대 왕들에 대한 정보입니다.

Contents

1. 개요
2. 계보도
2.1. 코마
3. 연표
4. 기타 정체불명의 왕들
5. 기타 왕족
6. 트리비아(?)
7. 참고항목


1. 개요

고구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705년의 역사와 28명의 제왕을 가진 나라였다. 즉, 고구려 왕들의 평균 수명은 55세였으며, 평균 재위기간은 25년이었다. 웰빙국가 고구려의 위엄[1] 불쌍한 백제 왕들과 비교해보자

대다수의 왕들의 시호가 완전하게 전하지 않으며, 광개토대왕의 경우를 보건데 완전한 시호는 꽤 길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개토대왕의 경우에는 그나마 광개토대왕릉비가 남아 있어서 완전한 시호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흔히 왕이 묻힌 곳(장지명)으로 왕을 호칭하였다. 특히 그 가운데 광개토왕이 묻힌 '국강상'은 당시 수도이던 국내성 인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서에 나타나는 고국원왕의 '고국원', 고국양왕의 '고국양'과 같은 곳으로 보인다. 고국원왕의 또 다른 호칭이 바로 국강상왕인 것이다. 다시 말해 고구려가 국내성에 도읍하던 당시에는 국내성 인근을 가리켜 국강(國崗)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평양으로 도읍이 이전한 뒤에는 옛 수도라는 의미에서 고국원(故國原)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2]

삼국시대가 정복국가 시대라서 고구려에도 정복군주가 상당히 많았는데, 고구려의 대표적인 정복군주로 대무신왕, 태조왕, 동천왕, 미천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이 있다. 이 중 한국 역사에서 꼽히는 대표적인 정복군주가 바로 광개토대왕.

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의 건국 연대를 기원전 37년으로 보고 있고 남한 학계의 대다수는 이 설을 따르고 있다. 북한과 남한 소수학설에서는 일부 고구려 왕력이 삭제되었다고 주장하며 고구려 건국 연도를 기원전 300년 근처로 보고 있다. 의 한 장수가 언급한 고구려 900년설을 따른 것. 그런데 사실 900년설은 근거가 희박하다. 일본 학계에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사의 신뢰성 문제로 실제 고구려의 건국 연대를 태조왕 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편, 대부분의 고대국가들이 그랬듯이, 왕위를 계승하는 형태에서 많은 변동이 일어났다. 대무신왕때부터 산상왕때까지는 형제간에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났지만, 산상왕때부터 점차 왕권이 강화되고 국가의 기틀이 안정됨에 따라 특별한 일이 없다면 대개 고구려의 왕위는 부자간에 계승되기 시작하였다.[3]

2.1. 코마

고구려 말기에 보장왕의 아들이라는 약광이 일본에 귀화하여 고려씨를 내려 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현무약광이라는 자가 고려약광과 동일인물이라면, 현무가 외척을 의미하기 때문에 약광이 왕족이 아니라는 설도 있기는 하다. 물론 현무라는 말을 반드시 외척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외척으로 해석할 경우 그렇게 볼수도 있다는것. 아무튼 이처럼 약광이 보장왕의 아들이거나 왕족이라는 또렷한 근거는 없다. 다만 고구려 왕실 인사에 대한 사료가 원체 부족해서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기도 힘든게 현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록에 남지 않으니.... 그냥 왕이 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만 남아있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다른 왕족이 언급되는 수준. 가령 태자 내정자였다가 요절한 조다라든가,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고구려를 갈아엎어버린 발기라든가....

3. 연표

순서 묘호 재위기간 비고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 추모
주몽
BC 37년~BC 19년 음력 9월 추모왕(鄒牟王), 추모성왕(鄒牟聖王), 동명왕(東明王)
2대 유리명왕(瑠璃明王) 고(해) 유류
유리
BC 19년 음력 9월~18년 음력 10월 유리왕(瑠璃王), 유류명왕(孺留明王)
3대 대무신왕(大武神王) 고(해) 무휼 18년 음력 10월~44년 음력10월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 대주류왕(大朱留王), 북국신왕(北國神王)
4대 민중왕(閔中王) 고(해) 해색주 44년 음력 10월~48년
5대 모본왕(慕本王) 고(해) 해우 48년~53년 음력 11월
6대 태조대왕(太祖大王) 53년 음력 11월~146년[7] 국조왕(國祖王)
7대 차대왕(次大王) 수성 146년~165년
8대 신대왕(新大王) 백고 165년~179년
9대 고국천왕(故國川王) 남무 179년~197년 국양왕(國襄王)
10대 산상왕(山上王) 연우 197년~227년
11대 동천왕(東川王) 우위거 227년~248년 동양왕(東襄王)
12대 중천왕(中川王) 연불 248년~270년 중양왕(中壤王)
13대 서천왕(西川王) 약로 270년~292년 서양왕(西壤王)
14대 봉상왕(烽上王) 상부 292년~300년 치갈왕(雉葛王)
15대 미천왕(美川王) 을불 300년~331년 호양왕(好壤王)
16대 고국원왕(故國原王) 사유 331년~371년 국강상왕(國罡上王)
17대 소수림왕(小獸林王) 구부 371년~384년 소해주류왕(小解朱留王), 해미류왕(解味留王)
18대 고국양왕(故國壤王) 이련 384년~391년 국양왕(國壤王)
19대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담덕 391년~412년 음력 10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연호: 영락(永樂)
20대 장수왕(長壽王) 거련 412년 음력 10월~491년 음력 12월[8] 부련왕(夫連王)
21대 문자명왕(文咨明王) 나운 491년 음력 12월~519년 명치호왕(明治好王)
22대 안장왕(安臧王) 흥안 519년~531년
23대 안원왕(安原王) 보연 531년~545년 곡향강상왕(鵠香岡上王), 향강상왕(香岡上王), 안강상왕(安岡上王), 안악상왕(安岳上王)
24대 양원왕(陽原王) 평성 545년~559년 양강상호왕(陽崗上好王), 양강왕(陽崗王)
25대 평원왕(平原王) 양성 559년~590년 평강상호왕(平崗上好王), 평강왕(平崗王), 평국왕(平國王)
26대 영양왕(嬰陽王) 대원 590년~618년 평양왕(平陽王)
27대 영류왕(榮留王) 건무 618년~642년 왕자 시절과 국왕 시절이 판이한, 그러다 고구려에서 신하에게 갈려나간 마지막 왕.
28대 보장왕(寶臧王) 보장 642년~668년 권신 덕(?)에 즉위하고, 그 아들들 때문에 망국하게 된 왕.

4. 기타 정체불명의 왕들

  • 대흥왕 : 영양왕으로 추정
  • 손연전왕
  • 연나왕
  • 안유왕
  • 능기왕
  • 안강상왕:안원왕으로 추정
  • 구사기왕
  • 부련왕
  • 여안기왕
  • 일토복귀왕
  • 보륜왕
  • 수모기왕

5. 기타 왕족

  • 복귀군 : 일본 측 기록에만 나오는 인물로, 안장왕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면 안장왕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잘못된 기록이 되는 셈.
  • 고부려 : 복귀군의 아들.

6. 트리비아(?)

  • 태조왕의 재위기간과 생몰년이 엄청나게 긴데, 이는 조작이라는게 통설이다. 문제는 거품을 걷어내도 엄청나게 길다(....) 단군 왕검이 생각난다.

  • 세간에는 장수왕이 광개토왕의 독자인것마냥 알려저 있지만 장수왕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다.

  • 시호가 투박하고 재미있는 왕들이 많다.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에 스스로 하야해주신 민중왕, 미천하게 살다가 왕위에 오른 미천왕, 땅을 넓혀서 광개토왕, 오래 살아서 장수왕. 영양왕 같은 경우는 대하사극 연개소문에서 영양'제'로 나와주시는 바람에 안그래도 웃긴 시호가 더 코믹. 잘보면 동,중,서천왕 시리즈도 꽤 웃기는 작명센스를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몇몇 왕의 경우는 장지명에 따라 시호가 지어져있기 때문이다. 숲(소수림)이 근처에 있으면 소수림왕, 중천의 들에 장사지냈으니 중천왕. 이런식으로 시호를 붙였다. 게다가 시호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도 있는데, 광개토왕릉비에서 보이는 시호와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시호가 많이 차이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보장왕이 연개소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르고나서 그의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는데 시호가 다름이 아니라 태양왕(....)근데 보장왕의 왕권은 걸레였잖아? 게다가 최후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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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이로부터 700여년 뒤의 왕조인 조선 왕조의 경우가 평균 47세, 평균 재위기간 19년인 걸 생각해보면 매우 놀라운 수명이다.
  • [2] 羅神,「有關高句麗王號制度的幾點推測(고구려 왕호제도에 관한 몇 가지 견해)」,『고구려 광개토왕과 동아시아』, 한국고대사학회, 2012 참조.
  • [3] 이렇게 왕위 계승 형태가 변동되는 과정에서 왕의 형제들이 왕위를 노리고 모반을 일으키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 [4] 삼국사기 문자명왕 원년조에 "종숙 승천"의 존재가 나온다. 문자명왕의 종숙은 조다의 사촌, 장수왕의 조카가 된다. 즉 광개토왕에게 다른 아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5] 보장왕의 아들로 추정
  • [6] 현대인이다.
  • [7] 93년의 치세, 즉 탄생~사망의 실제 삶은 그보다 더 길다는 이야기... 새삼 한 세기를 산, 도인술을 익히는 자도 어려울 장수. 이게 사실이면, 동시대에 살았다면 진시황이 비법을 찾으러 왔을 듯.
  • [8] 여기도 선조 못지 않은 장수... 72년 치세! 나이는 거의 9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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