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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last modified: 2015-03-20 09:26:52 by Contributors

Contents

1. 고려인이란?
2. 역사
3. 무국적자 문제
4. 규모
5. 유명 고려인
6. 정체성
7. 그 외
8. 같이보기

1. 고려인이란?

고려인은 소련 붕괴 후의 독립국가연합(러시아, 우크라이나 등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중앙아시아 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카레이스키(Корейский)라고 불리지만 이는 형용사형이다. 한국인은 까례이찌(КОРЕЙЦЫ)라고 해야 한다.[1] 그러니까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을 카레이스키라고 부르지 않는다. 러시아에서는 '고려 사람'(Корё-сарам/까료사람)이라는 명칭을 쓴다.

고려인, 고려사람의 유래에 대해 흔히 알려져있기론 조선인이라고 하면 남한에서 싫어하고, 한국인이라고 하면 북한에서 싫어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로 우리 민족과 국가를 가리키는 '한국, 조선, 고려'가 '까례야(Корея)'기 때문. 중국어일본어에선 '조선'이, 영어에선 Korea가 이에 해당된다. 원래 고려인은 중국,일본 등 나라의 동포들과 같이 조선인이라고 했지만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기 시작한것은 서울올림픽직전 1988년 6월 전소고려인협회가 결성되면서부터였다. 그러다가 1993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조선인 대표자 회의에서 정식으로 소련 조선인의 명칭을 '고려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고려인은 원래 조선인이라고 불렀지만 그뒤 소련의 정세가 급변하여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고 또 그곳 조선인들속에 점차 잘사는 한국의 형상이 부각되면서 대한민국에서 꺼려하는 '조선인'이라는 호칭을 정정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부터였다. 그런데 '조선인'이라고 하자니 한국에서 꺼려하고 '한국인'이라고 하자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감정도 고려하여 '조선인'도 '한국인'도 아닌 '고려인'이라는 기발한 착상의 신조어를 만들어낸것이다. 그들은 조선사람도 아니고 한국사람도 아닌 소련 사람이고 또한 자신의 언어와 문화도 일세기이상 지나는 동안 이미 남과 북과는 이질적인 소련의 특성을 많이 띠고 있으며 남쪽과 북쪽의것과도 다른 자신들만의 특수한 독자적특성을 이어왔으니 그 어느 쪽도 아닌 '고려인'이라고 하는것이 마땅하다는것이다.결국 고려인이라는 호칭은 한반도의 분열이 낳은 특수한 역사의 산물인것이다.한민족이 둘로 갈라진 비극은 호칭문제에서까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것이다. 한국=남한, 조선=북한으로 정착한 것은 한반도에서도 한국전쟁 이후로 50여년 정도밖에 안 된다.[2] 아울러 중국조선족의 조선 역시 고려인의 고려와 마찬가지로 단지 Korean이란 뜻이다. 정착한 지역이 중국이냐 러시아냐의 차이일뿐 결국 같은 이름. 우리는 여전히 고려나 조선의 백성??[3]

약 40만 명의 고려인들이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4]를 중심으로 거주하였으며, 남부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부근, 러시아 서쪽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의 발트3국캅카스에도 소수 고려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19세기말의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에서 기원한다. 한반도 북부지방 출신 → 두만강 건너 연해주 정착 →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트리.

그 외에 사할린 섬에 한민족 사회가 형성되어 있는데, 사할린은 한때 일본 열도 본토로 취급받는 제5의 섬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소련에 넘겨진 땅이다. 이 곳의 고려인들은 일본으로 일하러 갔다가 전쟁이 끝나고 땅 주인이 소련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버려진 것이다.[5][6] 사할린 섬에 있는 한국인들은 중일전쟁제2차 세계대전일본제국 전시체제 당시 강제징용당해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역당한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고려인과 사할린의 고려인의 정체성은 아주 다르다. 사할린의 고려인은 재일 한국인의 그것과 비슷했으나 그들과도 냉전 시대의 분단 때문에 독자적인 정체성으로 남았다.

중앙아시아와 사할린 말고 연해주 쪽에 또다른 체성이 있는데 바로 북한 출신으로 소련 시절에 노동자로 왔다가 남은 케이스.

2. 역사

고려인은 1860년대 초 무렵부터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로부터 그 시초가 된다.[7] 1860년 아편전쟁의 결말로 이징 조약이 체결됐는데 영국홍콩을 먹는 동안 러시아는 아무르 강 동쪽의 땅을 얻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중국 동북지방, 즉 만주연해주로 넘어갔는데 청과 러시아는 이 지역에 제대로 행정력을 발휘하지 못 했고 봉금령이나 출입금지령 등을 내렸지만 1880년대에 철폐했고 조선 정부도 이들이 넘어가지 못 하도록 통제했지만 실패했다.

1900년대 초에는 러시아 제국과 조선 모두 일제과 대립하였다. 하지만, 1907년 러일전쟁이 종료되면서 일제의 요청에 의해 조선인을 배척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이로부터 조선인의 농장은 몰수되고 조선인 노동자는 해고되었다. 동시에, 러시아 제국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한 피난처가 되었다.(대표적으로 최재형 같이 러시아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 그 돈을 독립운동 자금활동에 적극 지원하고, 의병들 챙기는등 연해주에서 독립운동활동에 중추적인 역할하기도 했다. 참고로, 최재형안중근의사 의거 일으키는데 막후배후를 벌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시베리아와 연해주, 만주로 피신하였다. 10월 혁명과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의 성장과 함께, 시베리아와 연해주는 재소련 조선인의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독립군 양성의 터전이 되었다.

1919년, 연해주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모인 조선의 지도자들이 3.1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 마을은 군대의 보충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근거지가 되었고, 1920년 4월 4일에는 적백내전일본군이 '백군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신한촌으로 출병, 공격하여 수백 명이 사망하였다. 이를 '신한촌 사건'이라고 부른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시아 정교회를 받아들이는 등 러시아 문화에 잘 적응했다.

그러나 1937년 9월 중일전쟁의 개시와 더불어 연해주에는 여행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11월 새벽 갑작스럽게 고려인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태워졌다. 이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 극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 버린 것이었다.[8]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명목이었다[9]. 여러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추방되고 유배되었고, 이주 도중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다. 글라스노스트(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 이전까지는 이주에 대해 발언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역시 스탈린은 어떤 면에서 보나 견공자제분[10]

소련측에도 나름대로 변명거리가 있었다. 최근에 비밀해제된 당시 소련 NKVD문서에 의하면 당시 연해주 지역에서 일제 밀정들이 많이 활약했고, 고려인중에서도 일제에 협력한 부역자들이 꽤 되었다고 나와 있으니[11], 소련측이 이유없이 강제이주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당장 일본군이 연해주에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또한 2011년 새로운 사실이 공개되었다. 고려인이 소련중앙정부가 소수민족에게 복리증진을 위해 지급하는 지원금을 중앙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고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가 공개된 것이다. 그래서 소련측에서는 고려인들이 일본에 부역하는 것도 걱정되지만, 또한 이들이 독립운동을 지원해서 일본을 자극할까봐 아예 통째로 먼곳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이주민들은 협력하여 관개시설을 설치하였고, 벼농사를 시작하였다.[12]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였다. 한국어 사용은 1937년부터 약 10년간 금지되었지만 그 후 금지가 풀려 한국어 교육도 가능하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한 사범대에서는 60년대까지 한국어 학과도 있었다. 실제로 소련 지역에서는 '레닌기치'라는 한글 신문도 간행이 되었고, 한국어 방송, 한인 극장까지 있었다. 그러나 어디나 그렇듯이 이민 1·2세대는 한국어에 매우 능숙하고 3세대 이후의 후손들 사이에서는 잊혀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러나 신문 등을 통한 한국과의 교류에 힘을 쓰는 듯하고 나름 전통문화 보존에 노력을 하고 있다.

이주 후,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환경을 열렬한 교육열과 억척스러운 삶으로 극복, 러시아 소수민족 중 아르메니아계, 독일계, 오세트계, 유대계 등등 다음으로 돈과 학식이 있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여담격이지만 7년 후 강제 이주당한 체첸인들과 고려인들의 이주 상황 역시 비교할 만 하다. 일단 고려인들은 일방적이나마 사전 통보를 받았으나 체첸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소련군이 들이닥쳐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끌고 갔다. 같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처지라 이들은 서로 접촉할 수 밖에 없었다. 관련 자료가 희박하기는 하나 몇몇 자료에 의하면 체첸인들과 고려인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종교적, 문화적 차이나 소련에 대한 태도가 원인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모로 고려인들이 체첸인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다만 느닷없이 끌려온 체첸인들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정권을 잡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허가를 받아 대대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사전 통보는 받았었던 고려인들은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대대적으로 연해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러시아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및 기타 지역에 각각 다양한 분포로 퍼져있다. 중앙아시아에 아직 남아있던 사람들의 경우 일부는 내전에 휘말려 고생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3. 무국적자 문제

소련 붕괴 이후 일부 고려인들은 무국적자가 되었다. 러시아를 뺀 구 소련 시절 연방이었던 나라들이 소련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국적을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이를 몰랐거나, 서류를 분실하거나, 거주자로 등록하지 않았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등으로 신청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기본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이익은 그 자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

과거 소련 지역에 현재 전체 고려인의 12%에 해당하는 약 5만의 무국적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한국대사관의 신분 증명이 있다면 자국 내 무국적 고려인의 국적 회복을 지원해줄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4. 규모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과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 주로 밀집해 있다.

그외에 사할린 섬에도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일제강점기 탄광지역에 강제징용당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러일전쟁으로 얻었던 북위 50도선 이하 사할린의 탄광에 강제 이주당했다가 일제의 패망 이후 이 지역이 러시아령으로 회복되면서 고려인이 된 것이기 때문에, 이주 원인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보다는 재일교포의 경우에 더 가깝다.

5. 유명 고려인

  • 넬리 김 - 소련의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불가 타타르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체조선수. 단체전 2개를 합쳐서 1976 몬트리올 올림픽,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땄다.
  • 남일 - 소련군 참모장교를 하다가 돌아와 인민군 총참모장을 했다.
  • 데니스 텐 - 카자흐스탄의 남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의병장 민긍호 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 빅토르 최 - 소련의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가수다.
  • 허가이 - 북한 정권 수립 당시 소련파의 거물 정치인이었으나, 김일성에게 비판 받고 자살하였다.
  • 알렉세이 김 -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출신의 그랜드 마스터 체스 선수. 2005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였다.
  • 김병화 - 구소련 집단 농장 지도자로, 소련에서 2번째로 급수가 높은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 미하일 안 - 소련의 축구선수. 소련 U-23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A매치에도 출장했던 촉망받는 선수였으나 비행기 사고를 당해 2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 아니타 최 -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가수이다.
  • 올렉산드르 신 - 우크라이나 동부의 자포로제 시장이다.
  • 코스티아 추 - 고려인 3세. 소련 복싱 대표로 활약. 프로 전향 후 WBC, IBF 슈퍼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 현재 복싱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전적은 34전 31승 25KO 2패 1무효.

6. 정체성

고려인의 정체성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개개인마다의 차이가 있기 때문. 현대 젊은층의 경우는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민족이 고려인이라는 자각은 하고 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의 경우 여권민족명을 표기하므로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대부분 고려인들의 경우 러시아에 완전히 동화되었기 때문에 모국어가 러시아어이다. 고려인들의 이름 역시 거의 모두 러시아식 이름을 사용한다. 따라서 정체성 면에서는 러시아인에 상당히 가깝다. 문제는 소련이 해체되고 각 연방 구성원이 독립하면서 더 이상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지 않는 점이다. 때문에 소련시절 관공서에 종사하던 고려인 상당수가 소련 해체 이후 쫓겨나는 등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들 대부분은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등 독립 후 새로 지정된 현지 공용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한다. 스스로를 러시아인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지어를 배우기 위해 별로 노력하지도 않는다. 뭐 아직까지 이쪽 동네에서는 러시아어만 잘하면 생활에는 문제가 없기도 하고. 아니 오히려 일상생활에서는 러시아어가 더 중요하다.

또한 소련 해체 후 지역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여러 심한 차별을 받게된 고려인 중에는 연해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해주를 자신이나 부모의 '고향'으로 여기는 노인들, 다른곳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젊은 고려인들 가운데 이런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한국 사회단체의 지원상황이 다큐형식으로 한국TV에서 방송된 적 있다. #

고려인 젊은이들은 한국을 '할아버지의 나라'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한국어는 커녕 고려말도 제대로 못 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 그래도 다른 러시아 젊은이들이 "한국? 그게 어디있는 나라인가염?" 하고 말하는것과는 달리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좀 노력을 한 후손들의 경우에는 한국으로 일하러, 혹은 유학으로 오는 케이스도 있다.

고려인들은 언어적인 측면 등 러시아 문화에 동화된 부분도 많지만 상술한 한국 당근을 비롯해 한국 요리의 식습관을 지켜나가고 있다. 우즈벡이나 카자흐스탄의 좀 큰 시장에 가면 분명히 어딘가에는 고려인 반찬 가게도 있으며 국시 같은 이름의 요리도 찾아볼 수 있다. 단 고려인들의 한국 요리는 백여 년 전 옛날 스타일에 가깝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남한)의 요리와 상당히 다르다. 게다가 고려인들의 한국 요리는 북부지방 베이스, 남한의 한국 요리는 중남부지방 베이스인데다 식재료도 중앙아시아의 상이한 식재료들로 만든 것이라 더욱 다르다. 가령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김치에는 구하기도 어려운(어려웠던) 젓갈을 거의 넣지 않으며 맵고 짠 맛도 덜하다. 그래서 요즘엔 우즈벡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많이 오는데 그 사람들이 우즈벡에 돌아간 후 주변에 사는 현지 고려인들에게 이런저런 한국 요리가 맛있더라, 오랜만에 먹어보게 한 번 만들어달라고 하면 정작 그 고려인들은 생판 처음 듣는 음식 이름이거나 시래기국, 국수 같이 이름은 같은데 막상 받아보면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서 오히려 우즈벡 사람들이 당황해하는 사례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7. 그 외

월드 오브 탱크의 브랜드 웹툰으로 TTale에서 연재중인 <붉은 마녀>의 여성 전차장 레나의 전차 조종수가 고려인으로 추측된다.[13]

8.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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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수형은 남성은 까례예쯔(Кореец), 여성은 까례얀까(Кореянка)
  • [2]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조선반도라하는 건 역사적으로 '조선'이 우리민족을 가리키는 단어였기때문이다. 일단 우리부터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소수민족 없는 통일왕조의 조선사람이었으며 식민지 때는 물론 해방, 분단 이후의 남한에서도 '조선'이 여전히 쓰인다(남선알미늄(심지어 이쪽은 의 준말), 조선일보, 조선대학교). 대한제국을 비롯 韓이란 단어를 자칭으로 쓰긴했으나 당시로선 새로운 명칭이었으며 전반적으로 빈도수는 조선이 압도적이었다.
  • [3] 민족이나 국가 들의 외국어 명칭은 한번 틀이 잡히면 그대로 굳어진다. England→영국이나 America→미국처럼--
  • [4] 그 중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한다.
  • [5] 당연히 일본 땅이었던 사할린에는 일본인도 많았는데, 이들은 인구교환협정을 거쳐 99%가 철수했다.
  • [6] 모 시사잡지에서 소련 붕괴 이후의 사할린 한민족 사회를 취재한 바 있는데, 이들은 이북 5도 출신이 많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의 정착과정과 달리 대부분 영호남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분단 이후 북한 이주를 선택하기도 어려웠고,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로서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소비에트 정부가 중앙아시아에서 데려와 파견한 고려인들에 대해 왜인지는 모르지만 뿌리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한다.
  • [7] 1863년이냐 64년이냐는 약간의 논쟁이 있다.
  • [8]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강제 이주 전에 일방적이기는 해도 사전 통보를 했다. 그래서 고려인들은 나름대로 해결책을 강구하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참고로 1944년의 체첸인들의 강제이주는 사전통보 없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강제로 체첸인들을 끌고 갔다.
  • [9] 원래는 유대인들의 이주계획이 잡혀있었지만 근성의 로비와 일본에 대한 위협 강조로 고려인들이 선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당시 유대인과 고려인들은 지역경제권 문제로 마찰이 잦았다. 역시 돈있는 놈이 쵝오
  • [10] 이 과정에서 김단야, 박진순 등 한국의 대표적인 공산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어처구니없게도 '일제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1937~1938년 사이(?) 대숙청 시기 희생양이 되었다.(...)
  • [11] 당시 국제정세는 매우 험악했고 이로부터 2년 후에는 소련군-일본군이 대규모로 맞붙는 할힌골 전투가 벌어지는 등 소련이 과민반응을 보일 만한 정황은 있었다.
  • [12] 러시아 요리 중에는 한국 당근(корейская морковь - 까례이스까야 마르꼬브)이라는 요리가 있는데, 김치가 그리워 당근으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보려한 이주 한인들의 식품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요리 항목 참조.
  • [13] 레나가 탄약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키에프라고 대답하고, 레나는 "트무르는 몽골이고, 쟤는 저~기 몽골보다 더 아래 어디라던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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