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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한자 : 甲子園
일본어 독음 : 고시엔 (こうしえん)
한국어 독음 : 갑자원

Contents

1. 일본 효고니시노미야시에 위치한 지역
2. 한신 타이거스의 홈 구장
3.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의 이명
3.1. 개요
4. 역사
4.1. 고시엔의 흙
4.2. 고시엔과 일본 고교야구의 구조
4.3. 고시엔과 매스컴
4.4. 일본 고교야구의 관례
4.5. 일본 고교야구의 유니폼
4.6. 식민통치시대의 고시엔
4.7. 고시엔과 프로지망
4.8. 고시엔의 유명한 일화들
4.8.1. 고시엔 역대최강 KK콤비
4.8.2. 마쓰이 히데키 5연타석 고의사구 사건
4.8.3. 기적의 백홈
4.8.4. 1998년 마쓰자카 전설
4.8.5. 칸제이 고교의 비극
4.8.6. 2006년, 치벤 와카야마 vs. 테이쿄
4.8.7. 손수건 왕자 vs. 다나카 마사히로
4.8.8. 사가키타의 기적
4.8.9. 죠스이칸 비에 울다
4.8.10. 리쇼다이 쇼난 고교의 투혼
4.8.11. 히로시마 24이닝 혈전: 야마오카 vs. 타구치
4.8.12. 2013년 치바 쇼타의 연속커트 논란
4.8.13.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이룩한 우승
4.9. 최근 대회 우승팀 및 대회 엔딩영상
4.9.1. 여름 고시엔
4.9.2. 봄 고시엔(센바츠)
4.10. 고시엔을 다룬 기타 창작물
4.10.1. 만화
4.10.2. 게임
4.10.3. 영화
4.10.4. 소설
4.11. 투수 혹사에 대한 해외의 비판


1. 일본 효고니시노미야시에 위치한 지역


니시노미야 시 남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고급 주택가로 유명한 니시노미야 7엔 중의 하나이며 그 중 가장 면적이 넓은 지역이다. 아래의 2번 항목의 야구장이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1920년대에 국도공사를 진행하던 한신 전기철도가 자사의 한신 본선의 노선이 지나가던 옛 나루오 촌 일대의 토지를 사들여 대규모 교외주택지의 개발을 한 것이 고시엔의 시작이다. 동시에 중심지에 대운동장을 건설했는데 이것이 훗날의 한신 고시엔 구장으로 고시엔이란 지명은 이 구장이 지어진 년도인 1924년이 갑자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甲子園球場が完成したのは、大正13年8月1日です。この年は、奇しくも、十干、十二支のそれぞれ最初の 「甲」 と 「子」 が60年ぶりに出合う年でした。縁起のよいこの年にちなんで、この付近一帯を「甲子園」と、また野球場を「甲子園球場(当時は大運動場)」と名付けました。
고시엔 구장이 완성 된 날은 다이쇼 13년 8월 1일입니다. 이 해는 신기하게도 십간십이지의 각각 첫 번째 "갑"과 "자"가 60년 만에 만​​나는 해였습니다. 재수가 좋은 해를 기념하여,이 부근 일대를 「코시엔」라고 부르고, 또한 야구장을 「고시엔 구장 (당시는 대운동장)」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1]

코시엔역이 있으며 2번 항목과도 연결된다.

3.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의 이명

일본의 야구리그
구분 명칭
프로 1군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 퍼시픽리그
2군 일본프로야구 2군
­
사회인 도시대항야구대회
사회인야구 일본 선수권대회
지구연맹 주최대회
전일본클럽야구선수권대회
­
독립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
고교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 /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외 8개 대회


저희들은 지금, 수많은 선배님들로부터 용기를 전해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고시엔이라는 최고의 무대에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섰습니다.
지금 저희가 여기 있는 것은 고향의 모두들은 물론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저희를 지탱해주신 덕분입니다.
그 모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전국의 모든 분들이 "고교야구를 보러 가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고교생답게, 거침없이, 시원하게, 정정당당히 플레이하겠습니다.
저희들의 모습이 모두에게 희망과 꿈과 힘을 전할 수 있도록,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이 다할 때까지, 전력으로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ㅡ 2014년 봄 고시엔 선수 선서 중에서

3.1. 개요

2012년 봄 고시엔

2013년 여름 고시엔 우승결정장면

고시엔에서의 굿바이 승리. 승자도 패자도 모두 눈물을 흘린다.

통칭 고시엔이라 불리는 야구대회는 두 가지로, 마이니치 신문에서 주최하는 3월의 고시엔은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 아사히 신문에서 주최하는 8월의 고시엔은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라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전자를 센바쓰(センバツ) 또는 봄 고시엔(春の甲子園), 후자를 여름 고시엔(夏の甲子園)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둘 다 2번 항목인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그런 별칭이 붙었다. 야구 관련 작품에서의 "고시엔에 가자!"라는 관용구는 지역 예선을 통과해 전국대회에 진출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봄 고시엔이라 불리는 선발대회는 추계대회 성적이 우수한 32개 학교를 선발해서 겨루는 대회로, 각 권역별 추계대회 성적이 우수한 28개교를 일반전형으로 선발하고 이른바 "21세기 전형"이라 불리는 특별전형으로 나머지 4개 고등학교를 선발한다. 이 "21세기 전형"의 선발기준은 좀 해괴한데, 이른바 "타의 모범이 되는 학교"를 선발하므로 야구를 못해도 선행으로 유명하거나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교들을 선발하고는 한다. 덕택에 지역예선을 뚫고 출전한 학교가 21세기 전형 팀에게 지면 희대의 망신으로 취급당한다. 2010년 선발대회에서 시마네현의 명문 카이세이 고교의 감독은 21세기 전형팀인 코요 고교에게 패배하자 선수들에게 어떻게 21세기 전형팀 따위에게 지느냐며 폭언을 퍼부은 것이 고교야구연맹에 제보되자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기도 했다.

한편 일반전형 학교들도 추계대회 성적순으로만 뽑히는 것은 아니다. 추계대회 성적에 학교가 가지고 있는 기본실력 등이 고려되어 선발되기 때문에 추계 지역대회에서 4강에 들어갔던 학교가 탈락하고 8강에 그친 학교가 선발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추계 지역대회도 변수가 많은 토너먼트 대회인 까닭에 그러한 점을 고려하는 것.

여름 고시엔은 각 도도부현별 지역예선 토너먼트의 우승자들이 모여 겨루는 대회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각 지역의 대표자들이 출전한다는 점에서 봄의 고시엔보다 여름의 고시엔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으며 (그렇다고 봄 고시엔이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여름 고시엔의 인기가 킹왕짱인 것.[2]) 말 그대로 일본인들의 여름을 상징하는 국민적 대축제로 불린다. 매 경기마다 47,000석에 달하는 거대한 고시엔 구장이 만원에 가깝게 들어차며 대회의 시청률은 무려 30%에 육박한다!!

2013년 여름 고시엔 우승팀 마에바시 육영 고교의 출신지역인 군마현. 고시엔 우승교는 그 지역에서 톱스타 뺨치는 개선장군 대접을 받으며, 열광한 지역 상인들은 우승 기념 세일을 실시하곤 한다.

여름 고시엔은 그야말로 일본 야구소년들의 꿈으로서, 일본 고교야구선수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학진학이나 프로입단이 아닌 고시엔 진출로 여겨진다. 이렇듯 고시엔이 워낙에 넘사벽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보니 야구는 미식축구와 함께 인터하이에 포함되지 않는 두 종목 중 하나다.

고시엔의 우승이 바로 고교야구 국제패가 된다. 문제는 이것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 고시엔에 진출하려면 지역 예선에서 최소 5연승, 고시엔에서 우승하려면 그 지옥을 뚫고 온 지역대표들을 상대로 또 최소 5연승을 거두어야 한다. 즉 최소 10번을 이기는 동안 한번이라도 지면 여름은 끝난다. (일본에서는 고시엔에서의 패배를 일명 "여름의 끝"이라고 표현한다. 한국과 달리 여름을 마지막으로 해당 학년의 공식시합 일정이 종료되기 때문.) 10연승으로 우승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운 좋은 경우이다. 오사카나 카나가와 등의 대형 지역에서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7연승 혹은 8연승을 거두어야 고시엔에 진출할 수 있다. 고시엔 본선에서도 5연승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은 대진운이 좋을 때에나 해당하고, 상당수의 학교는 1회전-2회전-16강-8강-4강-결승을 거쳐야 한다. 즉 경우에 따라 14연승 을 거둬야만 우승할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지바현의 지역예선 대진표. 여기서 단 한 학교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3]

고시엔 우승팀을 역사상 단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지역도 수많을 정도로 경쟁은 치열하다. 예를 들어 동북지방 6개 현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우승팀이 없었기 때문에 고시엔 우승은 일명 "동북의 비원"이라 불리며, 심지어 다르빗슈 유를 내세운 도호쿠 고교조차 2003년 결승에서 무너지며 동북지역의 첫 고시엔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거대한 홋카이도도 2004년 다나카 마사히로의 신들린듯한 활약을 앞세운 코마다이 토마코마이 고교의 우승 전까지 우승팀을 배출하지 못했다. 도쿄, 오사카, 카나가와, 아이치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사이타마현도 아직까지 여름 고시엔 우승은 없다. 현재까지 47개 도도부현 중 약 20개 현이 고시엔 우승팀을 배출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프로선수들 중에서도 3년 내내 고시엔 구경조차 못해본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신조 츠요시가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이유는 '고교 시절에 밟지 못한 고시엔을 홈구장으로 쓸 수 있다'는 아버지의 감언이설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이외에도 요미우리의 에이스였으며 현재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무리 우에하라 고지도,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도 고교생활 내내 고시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실제로 매년 지명되는 선수들을 보면 거의 절반에 달하는 선수들이 고시엔 진출경력이 없다!!!

그만큼 엄청난 고난을 겪고 얻어낸 성과이기 때문인지, 고시엔에서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이 우주가 멸망한 것처럼 통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9회말 굿바이 패배라도 당하면 패배팀 전원이 그라운드와 덕아웃에 쓰러져 한참동안 움직이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최악의 케이스는 고시엔 진출권을 건 지역대회 결승에서의 패배. 이때는 정말로 선수들과 감독, 매니저, 그리고 관중석의 응원단까지 수천 명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이 일어난다.


여담으로, 성우 스기타 토모카즈가 야구관련 네타가 나올때마다, 항상 "내 친구는 고시엔에서 야구 방망이를 잡고 휘두르고 있는데, 나는 집에서 다른 방망이를 잡고 있었지"라는 시모네타를 친다.

4. 역사

1915년 8월 18일에 도요나카 구장에서 열린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가 시초다. 당시 73개 학교가 예선에 참가해 본선 티켓을 획득한 10개교가 맞부어서 교토2중등학교가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4.1. 고시엔의 흙

고시엔에서 진 팀의 선수들은 고시엔 구장의 흙을 병이나 흙주머니에 담아가는 전통이 있다. 시합이 종료된 후 패배한 팀의 선수들이 통곡하면서 덕아웃 앞의 흙을 주머니에 담는 모습은 고시엔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 1946년에 열린 28회 고시엔에서 첫 준결승에 진출한 도쿄고등사범부속중학교가 그 해의 우승팀 나니와 상업고등학교에 패배한후 부속중학교 감독이 "자, 5학년[4]은 괜찮으니, 나머지는 자신의 포지션에 가서 흙을 털어가지고 와라. 내년에 여기 다시 돌려주러 오자."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승팀도 우승 기념으로 담아가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시기의 차이일 뿐이지 전국대회 출전학교 전부 흙을 퍼간다. 그리고 이 전통 때문에 고시엔 구장을 홈으로 쓰는 한신 타이거스는 구단 돈 들여서 고교생들이 퍼간 흙을 메꿔줘야 한다(...) 다만 패배한 팀도 2학년이나 1학년 선수의 경우 "반드시 고시엔에 다시 돌아온다"는 결의를 다지는 뜻에서 흙을 가져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흙을 버려야 했던 일화도 존재한다. 1958년 고시엔에 출전한 오키나와의 슈리 고교는 1회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슈리 고교 야구부원들은 전통대로 고시엔의 흙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이때는 아직 오키나와가 미국령이었기 때문에 흙이 미국의 검역규칙에 저촉되어 반입이 불허되었고, 결국 야구부원들은 오키나와의 나하 항에서 흙을 내버려야 했다. 훗날 일본항공의 스튜어디스가 고시엔 구장 주변 해안의 돌을 슈리 고교에 기증했고, 슈리 고교는 이 돌을 그라운드 모양으로 배치하여 "우애의 비"라는 기념비를 만들었다.

비슷한 예로 농구에서 팀이 우승할 때 선수나 감독이 골대로 올라가 그물을 자르는 세레머니가 있다.

4.2. 고시엔과 일본 고교야구의 구조

2014년 기준으로 약 17만 명에 달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전국의 4200여개[5]에 달하는 고교 야구팀 중 47개 도도부현에서 지역 단위로 예선을 거쳐서 선발된 49개 팀만이 고시엔에서 겨룰 수 있다. 규모가 큰 도쿄도, 홋카이도는 2팀[6], 나머지 부, 현은 1팀. 카나가와 현은 200:1, 오사카 부와 아이치 현은 180:1이 넘는 경쟁률을 뚫어야 고시엔 흙이라도 밟아볼 수 있다.

단, 5~10년 주기로 "기념 대회"가 열리면 카나가와, 오사카, 아이치, 효고 등 규모가 큰 도도부현을 분할해 참가팀을 늘리기도 한다.[7] 가장 최근의 기념 대회는 2013년의 95회 대회로 2008년의 90회 대회에선 사이타마, 지바, 카나가와, 아이치, 오사카, 효고 현을 2개 지구로 나눠 사상 최다 타이인 55개 팀이 참가했다. 이들 현들은 지역예선을 시작하면 보통 150~200개의 학교가 출전하는 격전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4000여개의 고교야구부들의 전력은 대개 도도부현별로 A,B,C,D 급(tier)으로 분류된다.

  • A급: 지역의 최강자급 학교로 가나가와, 오사카, 도쿄 등지의 격전구는 4-5개, 그 외의 지역은 1-2개교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학교는 지역의 고시엔 진출권을 독식하며 고시엔 본선에서도 8강 이상의 상위 입상을 노린다. 이 학교들에는 그 지역의 야구 유망주들이 집중적으로 몰리고, 경쟁이 덜 심한 지역의 A급 학교들은 격전지구의 엘리트 중학생들이 일명 "야구 유학"을 오기도 한다. 오사카 출신의 다르빗슈는 도호쿠 지방으로, 효고 출신의 다나카 마사히로는 홋카이도로 야구 유학을 떠나 각 지역의 A급 학교에 입학한 야구 유학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 A급 학교들은 H2의 메이와 고등학교나 슬램덩크해남대부속고와 비슷한 위치로 지역에서는 이른바 "왕자(王者)"라 불린다.

    격전구에 있는 A급 학교들은 야구부가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사립학교가 대부분이며 이들 지역의 공립학교는 고시엔 진출은 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립학교들은 학군제로 인해 뛰어난 중학생의 광범위한 스카우트가 규제된다.) 때문에 격전구의 공립학교들은 잘해야 B급 중하위권~C급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 단 격전구에서도 A급에 위치하는 공립학교들이 소수나마 존재하긴 한다. 대표적인 예라면 격전구 치바현에서도 A급으로 꼽히는 공립 나라시노 고교. 이 고등학교는 야구도 잘하지만 치어리더부와 관악부의 엄청난 합동 응원전으로 더 유명하다. 한신의 레전드 카케후 마사유키가 이 학교 출신.

    격전구 외의 지역, 그 중에서도 토쿠시마, 돗토리, 시마네, 아키타, 군마, 도치기 등등의 비중심부 지역에는 공립학교이면서 A급학교의 지위를 유지하는 학교도 상당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A급 공립학교라면 1980년대 초중반 전국 최강 중 하나라 불리던 "메아리 타선"의 이케다 고등학교(토쿠시마)와 일본 역사상 유일하게 다이쇼-쇼와-헤이세이 3시대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적의 백홈"으로도 유명한 마츠야마 상업고교 (에히메). 이 중 이케다 고등학교는 1992년 이후 무려 22년동안이나 고시엔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014년 봄 고시엔에 마침내 복귀에 성공했다.

  • B급: 지역대회 4강권의 강호로 보통의 지역은 4-5개교가 존재하며 격전구의 경우에는 8~10개 정도의 학교가 B급으로 여겨진다. A급 학교처럼 고시엔 진출권을 독식하지는 못하지만 10년에 두세번 정도는 고시엔 티켓을 따내며, 보통 이 B급 학교까지가 매년 지역대회의 우승후보로 불린다. 거물 선수의 입학이나 대진운에 따라 고시엔 우승에까지 도전하는 경우도 가끔씩 있다. 슬램덩크로 치면 상양고등학교와 비슷.

대부분의 A급과 B급 학교는 학교 교원이 아닌 전문 고용감독이 지휘하며 특기생이나 스카웃 제도로 지역 내외의 유망선수들을 끌어모으면서 기숙사와 전용 그라운드를 갖추고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한다. 전국적으로 200~300개로 추산되는 이 A, B급 학교들이 대부분의 유명 프로선수들을 배출한다. 단 21세기 이후 학생야구의 본질에 대한 전면적인 자성론이 확산되면서 명문교들의 특기생 제도와 기숙사 운영은 점차 둔화되는 추세에 있다.

  • C급: 지역 8강~16강권의 학교로 지역의 "강호"로 불리는 커트라인. 대개의 경우 지역 8강, 잘해봐야 4강 정도에서 탈락하지만 H2쿠니미 히로같이 개인사정으로 C급학교에 진학할 수 밖에 없었거나 중학교 시절에는 주목받지 못했어도 고등학교에서 급성장한 거물신인의 등장, [8] 그리고 A, B급 학교들의 탈락에 따른 대진운으로 고시엔에 진출하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단 전력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고시엔에서도 1,2회전에서 조기탈락하는 경우가 대부분. "XX고교 돌풍"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대개 이 C급 학교들에 의해 주도된다. 슬램덩크의 관점에서는 능남 고등학교가 이 위치에 해당한다.

    이른바 "무명교 출신의 프로선수들"이라고 해도 C급 학교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으로서 C급 학교는 현실적으로 프로선수가 배출될 수 있는 한계점으로 간주된다. 단 C급 학교 출신 선수들이 지역예선에서의 의외의 활약으로 상위라운드에서 지명되거나, 대학이나 사회인리그를 거쳐 급성장해 프로에서 스타로 등극하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 21세기 소프트뱅크의 에이스이자 사와무라상 2회 수상자인 사이토 가즈미는 잘 쳐줘야 C급인 무명교 미나미교토 고교에서 두각을 나타내 고졸로 1라운드 지명까지 따낸 대표적인 경우. (그 사이토 가즈미도 고시엔 본선무대는 밟지 못했다.)

    고시엔 본선무대까지 밟는 돌풍을 일으켰던 C급학교 출신 프로야구 스타의 대표로는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카무라 노리히로가 있다. 나카무라는 2학년 때인 1990년, 본선진출 따위가 아니라 전국제패를 목표로 하는 특A급 학교들이 즐비한 초격전구 오사카에서 무명의 공립학교인 시부타니 고교를 이끌고 고시엔 본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까지 오사카에서 공립학교가 본선에 진출한 마지막 사례이다.

  • D급: A,B,C급 이외의 모든 학교들. 어쩌다 지역 16강 이상의 상위입상까지 기록하는 학교부터 1회전 통과하기도 힘든 학교까지 전력분포는 다양하지만 전국 수준에서 보면 도토리 키재기로 A,B,C급과 달리 D급 학교들은 학교 근처의 평범한 학생들이 모인 동네야구 동아리 수준에 가깝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D급 학교는 야구부 감독도 학교의 야구 좋아하는 일반 교사가 겸직하는 경우가 대부분. 단 몇년에 한번 정도 이 D급 학교들이 돌풍을 일으키며 고시엔에 진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일본 전국의 관심이 그 학교에 집중되고 열광한 동문들과 지역민들이 수천명 규모의 원정응원단을 조직하는 대축제가 일어난다. 2007년 여름 고시엔 우승팀 사가키타 고교는 이 D급 학교가 전국 제패까지 이뤄낸 기적적인 케이스. 터치의 메이세이 고등학교나 슬램덩크북산고등학교가 이 D급 학교가 전국에 돌풍을 일으킨 경우와 비슷하다.

2007년 고시엔 당시 사가키타 고교의 원정 응원단. 학교의 상징색인 녹색 티셔츠와 머플러는 학교에서 자체제작한 응원단용 비매품이었지만 우승 직후 전국에서 구입문의가 폭주했다고 한다.

매년 각 지역의 고시엔 진출권은 A, B급 학교들에 의해 거의 독식되며 비격전구에서는 운이 좋으면 몇년에 한번 정도 C급 학교가 끼어들기도 한다. (나라현의 경우 양대 A급 학교인 치벤가쿠엔 고교와 텐리 고교가 수십년째 고시엔 진출권을 양분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중학교 야구선수가 이 두 학교 중 하나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것은 다른 지역으로 진학하지 않는 이상 고시엔 진출의 꿈을 접어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설령 A급 학교들이라도 고시엔 진출을 절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고시엔 토너먼트의 치열함과 일본 고교야구 선수층의 두터움이 드러난다. 일본 최고 명문으로서 A급 중의 A급이라 할 수 있는 요코하마 고교(카나가와)나 니혼대학부속 제3고교(서도쿄), 오사카 토인 고교(오사카)조차 2년 연속 고시엔에 진출하면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3년 연속으로 진출하면 역사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2014년 오사카 토인 고교는 오사카 지역예선에서 우승함으로써 여름고시엔 3연속 출장을 달성했는데, 이는 PL학원 이후 오사카에서 3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참고로 그 30년 전의 PL학원에는 밑에 소개되는 구와타 마스미와 기요하라 가즈히로가 재적 중이었다. 그야말로 3년동안 전국무대를 주름잡고 프로에서도 십수년을 슈퍼스타급 선수로 활약할 정도의 선수 두 명 정도는 끼고 있어야 격전구 오사카에서 3년 연속 본선진출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2013년 여름 고시엔에서는 무려 8년 연속으로 와카야마현의 여름 고시엔 진출권을 독점해오던 절대강자 치벤 와카야마 고교[9] [10]지역예선 3회전에서 광탈하고 십수년째 치벤 와카야마에게 저항조차 못하던 미노시마 고교가 고시엔 티켓을 따내는 대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11] 2014년 고시엔 여름대회에서는 2010년 봄-여름 고시엔을 연속제패한 오키나와 코난 고교가 지역예선 1회전에서 종말을 고했으며 2013년 전국대회의 8강 중 4강 진출팀 전원(즉 우승팀과 준우승팀 포함이다!)을 포함한 6개교가 지역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이른바 "최격전지구"로 꼽히는 카나가와, 도쿄, 오사카 등에서는 웬만한 B급 학교라도 어쩌다 고시엔에 진출하면 타 지역의 A급 학교들을 박살내고 다닐 정도이며 지역 내에서도 C급 언저리에 속하는 공립학교들이 심심찮게 프로 지망생들이 모인 A급 학교들을 거꾸러뜨리는 등 그야말로 지옥으로 불린다. 터치(도쿄), H2(도쿄), 메이저(카나가와) 등 여러 야구만화들의 무대가 된 것이 이 최격전지구들.

A급 학교나 B급 학교도 몇년간 부진이 계속됨에 따라 갑자기 C급이나 D급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일본 최고의 야구 명문학교로 불리던 오사카의 PL학원이 대표적인 예. PL학원은 와타 마스미, 기요하라 가즈히로, 타츠나미 카즈요시, 마에다 켄타 등 수많은 스타들과 마쓰이 가즈오, 후쿠도메 코스케 등의 메이저리거들을 배출하며 매년 전국 우승에 도전하던 특A급 학교였다. 그러나 선후배간 구타와 각종 사고가 빈발하며 일반 학생들과 분리된 엘리트주의 야구에 대한 자성론이 일어났고, 결국 2천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재단은 야구부 운영방침을 야구실력 우선에서 학업 및 인성교육과의 병행으로 변화시켰다. 야구부 기숙사와 야구특기생 제도는 폐지되었으며 일반 학생들에 비해 훨씬 난이도가 낮았던 체육과 학업과정 역시 일반과정에 통합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PL학원은 오사카에서도 8강 정도가 적정수준인 학교로 쇠퇴한 상태이다. 그나마 2014년 여름 오사카 지역예선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실상은 인성 중시로 방침을 전환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내 폭력이 근절되지 않아 2013년에 2학년생의 1학년생에 대한 폭행으로 6개월 출전정지 처분과 함께 감독이 사퇴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 후 제대로 된 감독도 선임하지 못한 채로 교장이 임시 감독을 맡고 선수들의 분투로 지역예선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그야말로 야구 만화에 나오는 시골학교 야구부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면서 눈물겹게 노력했지만 급기야 2015년에는 신입부원 모집을 중지하는 등 야구부 해체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몰려있는 상태이다. 과거의 영광은 뒤로하고 막장을 향해 달려가는 PL학원과는 대조적으로, 오 사다하루를 배출하며 쇼와시대를 풍미하던 도쿄의 와세다 실업고는 8~90년대에는 학교위상이 B급 중위권 수준으로 격하되었으나 학교를 도쿄 도내의 부지를 팔고 서부의 고쿠분지시로 이전함과 동시에 야구부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였다. 그 결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등의 맹활약에 힘입어 다시 A급으로 위상이 올라간 상태.

C급이나 D급 학교도 우연히 좋은 성적 → 고무된 학교와 동문들의 열성적인 후원 → 유능한 신입생들의 합류에 의해 순식간에 B급이나 A급으로 도약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2007년 기적의 전국 우승을 이뤄낸 사가키타 고교는 우승 이후 열광한 동문들의 지원과 유망한 지역 신입생들의 대거 입학으로 순식간에 사가현의 강호로 변모하며 2012, 2014년 고시엔 진출티켓을 따냈다.

혹은 아예 야구부도 없던 학교가 재단의 집중적인 투자로 야구부설립 단 몇년만에 고시엔 진출권을 따내는 경우조차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4년 봄 고시엔 우승팀인 에히메의 사이비 고등학교. 사이비 고등학교는 야구부 창단 3년만에 봄 고시엔 우승- 여름 고시엔 준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업적을 달성했다. 오카야마현의 소우시 고교는 2011년 봄 고시엔에서 창단하자마자 고시엔 진출이라는 전대미문의 대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4.3. 고시엔과 매스컴

고시엔이 개최되면 매스컴의 취재경쟁도 불타오른다. 특히 여름 대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NHK는 각 지역예선의 준결승부터 중계하며[12] 본선은 종합 TV와 교육 TV 2개채널을 동원해 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TV 아사히 계열의 경우 고시엔 구장이 위치한 한신 광역권의 아사히 방송은 모든 편성을 올스톱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까지 전 경기를 생중계하며, TV 아사히는 중요 경기를 전국 생중계한다. 또한 대회기간동안 매일 "열투 갑자원(熱闘甲子園)"이라는 특별방송을 편성해 각 팀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그날의 경기를 복기한다.


"이 동료들과, 하루라도 더 많이."
아사히 방송 2012년도 고시엔 중계 공식 포스터

올림픽과 겹치면 대회를 중계하는 NHK와 TV 아사히의 준키국 아사히 방송에서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중계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 NHK에서는 그냥 교육TV로 중계하면 되지만, 올림픽이 북미, 중남미 쪽 지역에서 열리는 경우에는 아사히방송에서 고시엔 경기(아사히방송 제작)와 올림픽 경기(TV아사히 제작)가 겹치는 문제가 일어난다. 따라서 경기 일정 자체가 조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일찍 열리거나 늦게 열리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고시엔을 시청할 수 있다. 대회기간중에는 TV 아사히 홈페이지에서 모든 경기를 무료로 스트리밍한다.

4.4. 일본 고교야구의 관례

일본 고교야구는 그 운용방식에도 상당수의 독특한 관례가 존재한다. 야구만화 팬이라면 만화 곳곳에서 자주 보았을 장면들이다.

  • 경기 시작 전에는 양팀 모두 각자의 덕아웃 앞에 정렬, 심판의 집합 신호가 내려지면 함성을 지르며 홈플레이트로 전력 질주한다. 이때 관중들은 두 팀을 위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 관례.

  • 홈플레이트 앞에 서로를 마주보며 정렬, 심판의 지시에 따라 서로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이때 각 팀만의 인사방식을 비교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 미야기현의 명문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는 상대가 먼저 고개를 숙이길 기다렸다가(...) 한 박자 뒤에 고개를 숙이는 방식을 취한다. 우왕ㅋ굳ㅋ

  • 경기중의 절대 원칙은 전력 플레이. 애초에 모든 시합이 토너먼트인지라 힘을 비축하는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에 혼신을 다한다. 1루로 설렁설렁 뛰는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땅볼을 치고 1루에 전력 슬라이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될 정도이다. (1루 슬라이딩은 그냥 달려가는 것보다 느리다!!)

프로야구에서 1루 슬라이딩은 1년에 한번 보기도 힘들지만,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한 경기에 10번이라도 볼 수 있다.

  • 하루에 치러야 하는 시합이 워낙 많기 때문에 경기시간 단축이 매우 중시된다. 하루에 한 경기장에서 한 경기만을 치르는 프로야구와 달리, 일본 고교야구는 한 경기장에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연달아 시합을 편성하지 않으면 4천 개나 되는 학교들의 경기일정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기 때문. 따라서 지역예선부터 고시엔 본선까지, 결승이나 준결승이 아니라면 한 경기장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서너시합이 연속 편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참고로 일본 고교야구는 원칙상 야간경기는 편성하지 않는다.) 결국 공수교대, 선수교체, 아웃 후 덕아웃으로 복귀하는 것도 전력질주가 관례로, 프로야구처럼 공수교대 때 덕아웃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투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삼진당한 타자도 분해할 틈도 없이 덕아웃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그 결과 일본 고교야구에서 웬만한 9이닝 경기는 두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연장전이라고 해도 세시간 이상을 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상대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시된다. 데드볼이 발생하면 무조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선수들과 응원단 모두 상대팀을 야유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애초에서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난투라도 벌어지면 예외없이 두 팀 모두 출장정지 처분을 당하며 그걸로 고시엔은 안녕이다. 그 대회만 출장정지면 차라리 다행이다. 잘못 걸리면 다음 대회까지 이어지는 출장정지를 당할 수도 있으며, 그 경우 자신들뿐만이 아니라 후배들의 고시엔까지 끝장나버릴 수도 있다(...)

  • 참고로 일본의 고교야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이 출장정지 처분이다. 경기중 불상사뿐만이 아니라 부원간 폭력행위, 흡연, 음주 등이 적발되면 그 즉시 고교야구 연맹의 징계위에 회부되며 웬만하면 2~3개월의 출장정지 처분을 당한다. 적발된 타이밍에 따라 아예 고시엔 예선에 출전조차 못하는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는 것 (매년 지역예선 참가학교의 숫자에 소폭의 변동이 있는 것은 학교 사정에 따른 자발적인 출전사퇴나 폐부 등도 있지만, 이 출전정지 처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다.) 감독이나 야구부장 등 관계자들의 자격정지는 덤. 다나카 마사히로를 앞세워 2005년 여름 고시엔을 우승하고 2006년 봄 고시엔에서도 우승에 도전하던 코마다이 토마코마이 고교는 현역 부원도 아닌 전(前)부원이 사고친 것이 적발되는 바람에 출장을 자진사퇴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꼭 야구가 아니라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여서 루키즈슬램덩크 등의 고교 스포츠 만화에서 어지간하면 불상사를 극도로 피하려는 모습이 묘사되는 것이 이 출장정지 때문이다.[13] 잘못하면 3년동안 죽어라 훈련한 것이 부원 한명의 일탈에 의해 물거품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거기다 재수없으면 다음해에 야구 유망주 신입생이 끊길수도 있다. 출장정지 딱 한번 당한 뒤로 신입생 끊겨서 지역강호소리듣다가 그 다음해애 사람 없어서 예선 2-3회전에서 떨어지고 평범한 학교가 되는 경우도 제법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모르고 보면 "에게? 고작 출장정지?" 라고 할 지 모르지만 절대 고작이 아니다.

  • 세레모니 등 선수들의 감정표출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다. 홈런이라도 치면 축구에서 골 넣은 것처럼 미친듯이 좋아하며 팔을 번쩍 치켜들고 그라운드를 도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승부처에서 볼넷이라도 얻어내면 환호성을 지르며 1루로 뛰어가는 모습도 일상이다. 어찌보면 이러한 야구소년다운 모습들이 고교야구 최대의 매력.

  • 경기가 끝나면 양팀 모두 홈플레이트에 정렬, 서로에게 경례하고 악수한다. 이때 앞으로의 경기에서 행운을 빈다는 의미에서 패배팀이 승리팀에게 종이학이나 자신의 용품을 전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9년 여름 고시엔의 명승부 중 하나였던 토코하 타치바나 고교 vs 메이호 고교의 시합이 끝난 후 토코하 타치바나의 에이스 쇼지 하야토(현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메이호 고교의 에이스 이마미야 켄타(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자신의 배팅글러브를 선물했고, 이마미야는 이후의 경기에서 그 배팅글러브를 사용하며 맹타를 휘둘렀다는 훈훈한 일화가 전해진다.

이마미야(왼쪽)에게 자신의 배팅장갑을 선물하는 쇼지(오른쪽)

  • 그리고 이긴 팀은 전광판을 바라보는 형태로 정렬해 교가를 제창한다.

2013년 여름 고시엔에서 일본 전역의 화제가 된 키사라즈소고 고등학교의 "전력 교가제창(全力校歌)."
등이 뒤로 꺾일 정도의 기세로 120% 음량으로 교가를 부른다!!

  • 그동안 진 팀은 자신의 덕아웃 앞에 정렬, 교가가 끝날 때까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승리팀의 교가제창을 바라보는 패배팀의 모습은 일본 고교야구의 특징적인 장면 중 하나.

  • 교가제창이 끝나면 양팀 모두 각자의 응원석 방향으로 전력 질주, 응원단과 학부모에게 인사하며 감사를 표한다. (일본의 고교야구에서 응원단과 학부모에 대한 감사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관중석의 모두와 함께 싸운다"는 일본 고교야구의 가장 오래된 금언 중 하나) 이때 관중들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전력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이 관례.

  • 응원단에 대한 인사까지 마치면 경기는 끝. 이제 패배한 팀은 고시엔의 흙을 담아가며 마음껏 울 수 있고(...) 승자는 또 다음의 경기를 준비한다.

4.5. 일본 고교야구의 유니폼

일본 고교야구의 유니폼은 무조건 흰색으로 해야 하는 복장규정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간혹 돌지만 사실과 다르다. 유니폼의 색깔 제한은 없으나 프로야구에서와 같은 원색이 잘 쓰이지 않는 정도에 불과하다. 옅은 계통의 무난한 색이 주류로 흰색이 가장 많지만 회색도 꽤 있으며 하늘색이나 베이지색 등도 드물게 있다. 다만, 프로야구처럼 상의와 하의를 별색으로 둘 수는 없으며 이는 제한 규정이 있다.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 용구의 사용제한(일본어 페이지) 카나가와 야에이 고교의 녹색(페퍼민트 그린)유니폼이나 고시엔 단골인 도카이대학 부속고교 계열[14], 동도쿄의 대표학교인 테이쿄(帝京)고교의 핀스트라이프는 일본에서도 특이하게 여겨지는 유니폼이지만 그만큼 그 학교들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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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하늘색 오미 고교 야구부 유니폼, 우:베이지색 세이료 고교[15]야구부 유니폼 >

유니폼의 등번호는 본인의 희망대로 결정하는 한국의 고교야구와 달리 엄격한 공식규정에 기초한다. 각종 야구만화에도 클리셰처럼 나와서 오덕들에게는 익숙해져 있겠지만 공식경기 외에는 등번호 착용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며, 공식대회에서는 1번부터 18번까지 엔트리 숫자에 맞춰서만 등번호 배분이 허용된다. 따라서 한국의 고교선수들처럼 "박찬호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서 61번", "이승엽 같은 홈런왕을 목표로 해서 36번", "특이하게 보이고 싶어서 00번(...)" 같은 얘기는 일본의 고교야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등번호를 착용하는 선수들도 주전들은 각 포지션별 분류번호에 맞춰 등번호를 착용하는 것이 관례. 그 팀의 1번이라면 투수의 분류번호에 따라 그 팀의 에이스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일본 야구의 문화이다. 단 후보 투수가 갑자기 기량이 급성장한다든가, 혹은 연공서열에 따라 등번호를 배부해 그 팀 최고의 투수가 10번이나 11번을 착용하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코마다이 토마코마이 고교의 2005년 전국우승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다나카 마사히로의 등번호가 11번이었던 경우가 그 예. 당시 다나카 마사히로는 2학년이어서 연공서열 때문에 팀의 에이스이면서도 11번을 달았다. 3학년이 된 2006년에는 1번을 달고 출장했다.

등번호의 부착 역시 한국처럼 번호를 유니폼에 직접 박는 게 아니라 번호가 새겨진 네모난 천조각을 유니폼에 박음질하는 방식을 취한다. 일본의 고교야구에서 유니폼에 등번호를 부착하는 것은 팀의 주전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하며 선수 개개인에게는 최대의 영광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일본의 야구만화들에서도 전국대회 예선을 앞두고 주전 멤버를 발표하면서 호명된 선수에게 일일이 표창장 주듯이 등번호가 새겨진 천조각을 수여하는 장면이 묘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4.6. 식민통치시대의 고시엔

일제가 식민통치를 하던 시절에는 조선, 만주, 대만 등지에서도 예선을 거친 대표 학교들이 고시엔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서 "한반도의 야구는 아직 과도기이다"라며 조선의 야구팀의 참가를 제한하였다(한국야구사 p17)가 1921년 7회대회부터 참가가 가능했다. 이후 1940년 26회 대회까지 참가했으며, 부산상고, 경성중, 휘문고보. 경성상고(서울대 상대 전신), 대구상고, 평양중, 용산중(現 용산고), 선린상고, 인천고 등이 조선 대표로 본선에 진출, 이 중 부산상고(1921년), 경성상고(1934년), 휘문고보(1923년)는 8강에 오르기도 했다. 8강이 조선 대표 학교의 최고 성적.[16]

하지만 이들 중학교들은 당시에는 거의 다 일본인 학교였고, 일부 학교에 조선인 선수가 있을 뿐이었다. 고시엔 진출교 중 조선인 학교는 1923년 본선 진출한 휘문고보가 유일. 휘문고보는 1회전은 부전승으로, 2회전에서 만주 대표인 다롄상업학교를 9:4로 꺾었지만 8강에서 대만 대표 타이베이1중학교를 23:4로 관광보내고 올라온 케이진 지구(교토부+시가현) 대표 리츠메이칸 중학교에게 7:5로 패배하였다. 리츠메이칸 중학교는 준결승에서 그 해 우승팀인 효고현 대표 코요 중학교에 패배.

4.7. 고시엔과 프로지망

철저하게 프로 진출, 혹은 대학 진학을 위해 편성된 한국 고교야구와 달리 일본 고교야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 고시엔 대회 진출이며 야구부 체제 역시 프로 육성이 아닌 고시엔 진출을 위주로 계획-수립된다. 때문에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프로를 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고교야구라는 관점은 오히려 금기시된다. 고교야구는 어디까지나 고시엔을 위한 고교생들의 서클 활동이고, 프로 진출은 그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추구하는 별개의 길로 취급받는 것이 일본의 현실. [17]

혹자는 한국과 일본의 야구부 숫자 논쟁에서 "일본의 4200여개 고교야구는 대부분이 허수이며 전문적으로 프로선수를 양성하는 학교는 일본도 100여개에 불과"라고 주장하나 이는 일본 고교야구의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발언으로, 일본의 프로선수들은 어디까지나 고시엔 진출의 준비과정에서 두드러진 정예 선수들이 따로 선발되는 형식이지 프로를 양성하기 위해 야구부를 운영하는 학교는 엄밀히 말해 일본에 100개가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프로를 배출해낼 수 있는 학교"의 숫자는 적게는 200~300개, 많게는 그 배로 추정된다.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한 이유는 전국대회 구경도 못해본 무명교에서 지명되는 프로선수가 매년 1~2명은 꼭 존재하기 때문. 무명교 출신이라도 대학과 사회인리그를 거쳐 기량을 쌓아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그 추정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한편 단 한번의 패배로 고시엔 진출이 좌절될 수 있는 일본 고교야구의 특성상 고시엔에서의 성적이 곧 프로진출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3년내내 지역대회 4강에조차 들지 못한 선수가 프로에 1,2라운드에서 지명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시엔의 전국 우승팀에서 단 한명도 프로에 지망조차 하지 않는 경우는 매번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는, 일본 고교야구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인 대학or프로에 가기 위한 중간단계가 아닌, 고교 야구부가 곧 그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팀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 TV나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 리그의 명문팀을 응원하고 고교<대학<프로의 수준차가 있으니 당연히 수준높은 프로의 경기를 본다는 한국인들의 인식과 달리 일본의 고교 야구팀은 수십년전부터 지역 젊은이들의 실력 경연이자 지역의 자랑이었고, 이 애향심을 가진 동네사람들이 전국 수천여개 마을의 학교들이 니혼이치를 두고 경쟁한다는 성취감덕에 마치 유럽축구의 지역리그,하부리그처럼 지역과 밀착해 자리잡았다. 이 덕에 동네 사람들은 우리동네 우리학교 야구부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스포츠 여가를 대신한다. 이렇게 프로야구와 분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NCAA의 존재 이유와도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얘들이 졸업한뒤 프로에서 거액받고 뛰는건 나중문제다.

프로 지망생들이 주로 입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고교야구[18]의 명문고들과 달리 일본의 최고 명문교들에도 H2노다 아츠시처럼 실력이 전국구여도 프로는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에서는 고시엔에 진출한 엘리트 선수라도 프로진출을 희망하지 않고 평범한 수험생으로서 입시 준비에 돌입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전국 우승팀이라고 해도 프로선수를 한 명이라도 배출하면 다행으로 여겨지며, 일본대학부속 제3고교, 오사카 토인 고교 등 학년별 부원수가 30명을 상회하는 초대형 명문교가 우승해도 프로는 커녕 대학의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시킬 수 있는 선수도 최대 10명 전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체육특기자 전형들조차 소논문 작성 등 상당히 엄격한 학업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 아무리 명문교라도 나머지 선수들은 여름대회 일정의 종료와 함께 수험생으로 전환한다. 이 선수들이 대학에서 야구를 계속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전형을 거쳐서이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에 1차지명된 후쿠타니 코지는 프로지망원서를 넣었으나 단 한 구단에도 지명되지 않자 그냥 공부해서 게이오 대학교 이공학부에 합격했고, 공학 연구자로도 촉망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와중에 겸사겸사 야구도 해서 프로 진출에 성공했다!!!)

때문에 99%의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에게 고시엔은 그들의 야구 커리어의 마지막이며, 이러한 구조가 일본 고교야구의 무차별적인 투수 혹사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고교생들은 고시엔 이후를 아예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살인적인 연투가 내부적으로 합리화되기도 한다. 고시엔의 혹사를 무작정 금지할 수 없는 측면인 동시에 그 혹사들이 당분간은 줄어들 리가 없는 쓸쓸한 현실의 단면이라고나 할까...

프로입단을 희망하는 일본 고교선수들의 프로진출은 모든 고졸선수들이 자동으로 지명대상자가 되는 한국과 달리 선수들의 자발적인 지명희망원서 등록을 통해 진행된다. 다만 프로 지망원서를 내기 위해서는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의 지망원서 제출요청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물론 학교장의 허락만 있으면 구단측의 원서제출요청이 없다고 해도 원서제출 자체는 가능하지만 스카우트의 눈에 띄지 않은 선수가 지망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스카우트의 요청이 없는 선수가 원서 제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3학년 여름대회가 끝날 때까지 스카우트와 면담하지 못했다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프로가 되려는 꿈은 접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이런 선수들도 대학 야구부나 사회인리그에서 기량을 닦아 프로구단에 상위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고졸 선수들이 대다수인 한국의 상위지명자들과 달리 일본의 상위지명자들은 오히려 대졸과 사회인리그 출신 선수들의 비율이 고졸들보다도 더 높은 편이다.

또한 한국과는 달리 프로 지명이 확실시되어도 지망원서를 제출하지 않고 대학이나 사회인리그에 진출하는 엘리트 선수들도 상당하다. 대학에서 야구실력을 쌓는 와중에 공부도 하며 미래를 대비하거나, 대부분 대기업들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인리그에 입단해 대기업 사원으로서 안정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내건 승부수나 다름없는 프로진출에 비해 훨씬 안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프로측의 관심이 있어도 거절하고 사회인리그에 남는 선수들은 의외로 흔하다.

일례로 2006년 여름 고시엔 우승투수인 사이토 유키와 2010년 여름 고시엔 우승투수인 시마부쿠로 요스케 (코난 고교), 2011년 여름 우승투수인 요시나가 켄타로 (일본대학부속 제 3고교) 모두 프로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학행을 선택했다. 고시엔 역사상 최강의 에이스들로 불리던 와타 마스미마쓰자카 다이스케 모두 세다 대학교 진학으로 거의 기울었다가 막판에야 프로 입단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은 한국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


4.8. 고시엔의 유명한 일화들

4.8.1. 고시엔 역대최강 KK콤비

와타 마스미기요하라 가즈히로, 일명 KK콤비가 활약한 1983년-1985년의 오사카 PL학원은 고시엔 역대 최강이라 불린다. 이 콤비는 참가 가능했던 다섯개의 대회(83년 여름, 84년 봄-여름, 85년 봄-여름)에 모두 고시엔 진출,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1회라는 말도 안되는 업적을 남겼다. [19]

1학년 첫 대회였던 83년 여름대회부터 구와타와 기요하라는 에이스와 4번타자 자리를 획득했는데 (일본의 야구부에서 갓 입학한 1학년이 주전은 고사하고 18인의 벤치멤버 안에 포함되는 것조차 거의 기적으로 여겨진다) 이 역사적인 콤비가 결성된 과정도 나름 극적이었다. 기요하라는 처음부터 엘리트로 대접받았지만 체구가 작았던 구와타는 신입생들 중에서도 뒷전이었고, 결국은 주전자 담당으로 취급받으며 투수를 때려칠까말까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팀의 투수코치가 우연히 구와타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감독에게 우기다시피하여 구와타를 기용하게 했다. 이에 경악한 선배들이 네놈때문에 우리의 여름이 끝장나게 생겼다며 구와타에게 린치를 가했지만 구와타는 굴하지 않고 지역예선의 선발 첫 경기에서 완봉을 거두며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여름 고시엔 본선, 구와타는 당시 2개 대회(82 여름-83 봄)를 연속 제패하고 3연속 우승을 노리던 당대 최강, 일명 "메아리 타선"의 이케다 고교를 준결승에서 셧아웃시키며 전국을 충격에 몰아넣었고 결승에서도 전통의 명문 요코하마 고교를 제압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기요하라는 결승전에서 홈런을 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좌측이 기요하라, 오른쪽이 구와타

2학년 봄-여름 대회에 3학년 봄 대회에선 2번의 준우승과 1번의 4강전 패퇴로 콩라인에 드는가 싶었지만, 마지막 대회인 85년 여름 대회에서 끝내기로 우승한다. 이 대회 결승전에서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활약은 눈부셨는데, 와타 마스미가 두 번이나 리드를 허용했으나, 그 때마다 모두 따라붙는 동점홈런을 때려내서 승리에 일조했다. 특히 두 번째 동점홈런 당시 아사히 방송 캐스터의 "고시엔은 기요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라고 외친 한 마디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명언.

이 콤비의 고시엔 5개대회 통합성적은 경악 그 자체로 구와타는 20승 3패 방어율 1.55, 기요하라는 타율 .440에 13홈런이다. 구와타의 20승도 통산 2위 기록에, 학제 개편 이후로는 1위 기록이며 기요하라의 고시엔 통산 홈런수는 역대 1위이다.[20]

4.8.2. 마쓰이 히데키 5연타석 고의사구 사건

마쓰이 히데키(세이료 고교)는 1992년 여름 고시엔 2회전 vs. 메이토쿠 기주쿠 전에서 5연속 고의사구를 당했고 결국 팀은 한 점차로 졌다. 5번째 고의사구가 나올 때 해설자가 "승부하지 않습니다!!!!!!"라고 비명을 지른 것은 고시엔의 유명한 명대사(?) 중 하나.

마지막 고의사구 장면에선 분노한 관중들이 온갖 쓰레기를 그라운드에 투척했고 중계진도 메이토쿠 기주쿠를 맹비난했다. 경기 후에는 당시 고교야구연맹 회장이 '도가 지나쳤다'며 담화를 발표했고 메이토쿠 기주쿠 고교의 숙소 주변에는 야구팬들의 습격(...)을 우려해 경찰이 배치되어야 했다. 메이토쿠 기주쿠는 다음 시합에서 히로시마 공고에 8:0으로 대패하며 탈락. 경기가 끝난 이후 객석에서는 "돌아가! 돌아가!"가 연창되었다.


고교 시절의 마쓰이. 나이를 속인 것이 분명하다. 저 노안을 보라!

4.8.3. 기적의 백홈

1996년 여름 고시엔은 4강팀 전원이 일반 공립고교였다는 사실로도 유명하지만[21] 더 유명한 것은 마츠야마 상고 vs. 구마모토 공고의 결승전에서 나온 "기적의 백홈".

연장 10회 말 구마모토 공고가 1사 만루로 끝내기 우승 찬스를 잡자 마츠야마 상고는 어깨는 좋았지만 컨트롤이 엉망이라 시합에는 좀처럼 써먹을 수 없었던 야노 카츠지를 우익수로 급거 투입한다. 여기서 타자 혼다의 펜스 근처까지 날아가는 깊숙한 우익수방향 타구가 터져나오고, 모두 희생플라이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야노가 펜스 근처에서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다이렉트 백홈 송구를 던지며 3루주자를 기적적으로 홈에서 아웃시킨다.

(동영상 1분 50초부터가 "기적의 백홈". 캐스터가 외친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는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명대사 중 하나.)

그리고 바로 다음 11회초, 기적의 백홈의 주인공 우익수 야노의 2루타를 시작으로 마츠야마 상고가 일제히 3점을 뽑아내며 우승을 거머쥔다.

후일담으로 이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 야노는 고등학교를 끝으로 야구에서 은퇴하고 취업을 했다고 한다. 본인은 자신이 기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나 결국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서 회사 선배들에게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야노 본인에게 사실인지 확인하고 나서 선배들의 반응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투로) "네가?"라는 반응이었다고(...)

야노의 명함에는 "저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4.8.4. 1998년 마쓰자카 전설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앞세운 카나가와의 명문 요코하마 고교는 1998년 봄 센바츠를 우승하고 이어 여름 고시엔에도 출전한다. 이 봄-여름 대회를 걸친 1998년 마쓰자카의 활약은 선수 개인으로서는 역대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라고 불린다.

  • 8강전 vs. PL학원(위에서 언급된, 구와타와 기요하라의 출신교이기도 하다) : 17회 완투승 (투구수가 250개가 넘었다!)
  • 다음날(!) 벌어진 4강전 vs. 메이토쿠 기쥬쿠 고교 : 마쓰자카는 좌익수로 선발 출전, 요코하마 고교는 메이토쿠 기쥬쿠에게 8회초까지 0:6으로 압도당하고 있었으나 8회말에 마쓰자카의 2타점 적시타를 포함해[22] 4득점, 4:6으로 따라잡는다. 그리고 마쓰자카가 9회초에 등판해 15구로(삼진-볼넷-병살타)1이닝을 막아내고,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무사 만루 → 2타점 동점 적시타 → 마쓰자카의 희생번트 → 이어진 2사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
  • 또 그 다음날(!!)의 결승전 vs. 교토 세이쇼 : 마쓰자카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팀을 고시엔 우승으로 이끈다.[23]

요약하자면 고작 사흘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3경기 27이닝을 던지며 17회 완투승 → 구원승 → 노히트노런을 거둔 초인적인 역투였다.


결승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거두고 환호하는 마쓰자카.

4.8.5. 칸제이 고교의 비극

고시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학교로 불리는 2005년-2006년의 칸제이 고등학교(오카야마현)는 이 2년동안 네번의 고시엔에 출전, 네번 모두 최종이닝에 역전패하며 탈락한다.


기뉴 특전대 칸제이 고교 야구부의 즐거운 한때. 맨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선수가 다스 로마슈 타스쿠.

  • 2005년 봄 고시엔: 칸제이 고교는 게이오 고등학교(카나가와)와의 1회전에서 접전끝에 9회말 굿바이로 7:8 역전패한다. 여기까지는 가슴아프긴 해도 고시엔이라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극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으니.......

  • 2005년 여름 고시엔: 칸제이 고교는 교토외대부속고(교토)와의 2회전에서 2회부터 롱릴리프로 투입된 2학년 다스 로마슈 타스쿠의 혼신의 피칭과 타선의 갑작스런 폭발로 8회에는 10:4로 리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스가 갑자기 무너지며 교토외대부속고에게 8회초와 9회초 공격에서 무려 8점을 허용하며 10:12로 역전패했다. 경기가 끝나고 선배들을 껴안고 통곡하며 사죄하던 다스의 모습은 2005년 고시엔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장면 중 하나.

  • 2006년 봄 고시엔: 3학년이 되어 팀의 에이스 겸 부주장으로 승격된 다스. 봄 고시엔 2회전에서 훗날 손수건 왕자라 불릴 사이토 유키의 와세다 실업고교(서도쿄)와 격돌했다. 다스와 사이토의 피말리는 대결끝에 시합은 7:7, 연장 15회 무승부로 재시합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재시합, 재차 등판한 다스가 기백의 피칭으로 9회까지 3:2로 리드를 잡아냈다. 그러나, 최후의 9회 초 수비, 우익수의 실책으로 2점을 허용하며 3:4로 또다시 역전패했다!!

  • 2006년 여름 고시엔: 다스의 마지막 여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칸제이 고교는 이번에야말로 한을 풀고야 말겠노라며 고시엔으로 향했다. 그리고 분세이 예대 부속고교와의 1회전, 9회말 투아웃까지 10:7로 리드하는 다스와 칸제이 고교.

그러나 아웃카운트 하나 남기고, 갑자기 물밀듯이 터져나온 분세이예대 부속고 타선에 다스가 침몰당하며 10:11, 끝내기 안타로 역전패


마지막 안타가 외야에 떨어지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마운드로 쓰러지는 다스. 고시엔 항목 맨 위의 사진이 쓰러진 채 통곡하는 다스의 모습이다.

이후 아사히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다스는 "마운드에서 기도했다. 신님, 제발 부탁합니다. 아직 야구를 하고 싶다고요....." "왜 내게만 계속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하지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한번 더 고등학교에서 지금의 동료들과 야구를 하고 싶다!"고 밝혀 수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칸제이 고교가 다스의 한을 푼 것은 5년이 지난 2011년 여름의 갑자원이었다. 칸제이 고교는 1회전에서 봄 고시엔 준우승팀이자 우승후보 1순위였던 큐슈국제대부속고교와의 대결에서 압도적 열세가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장 12회 혈투끝에 굿바이 안타로 2:1,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4강까지 진출, 학교 역대 최고성적을 올렸다.

다스는 졸업 이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뛰다가 은퇴, 현재는 다르빗슈 유 박물관의 관장으로 재임중이다.

4.8.6. 2006년, 치벤 와카야마 vs. 테이쿄

2006년 여름 고시엔 치벤 와카야마 고교 vs. 테이쿄 고교의 준준결승전에서는 사상 최대의 역전극이 일어난다. 테이쿄 고교는 9회초 투아웃까지 4-8로 밀리고 있었으나, 아웃카운트 하나 남기고 폭풍 8득점으로 12-8로 경기를 뒤집는다.


테이쿄의 9회초 대공세

여기까지만 해도 극적인 역전극인데......절체절명에 몰린 치벤 와카야마가 곧바로 9회말에 5점을 몰아치며 13-12로 대역전승을 거둔다.



굿바이 승리에 환호하는 치벤 와카야마 선수들

아래는 테이쿄 고교 응원단의 표정 변화.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9회초


9회초 테이쿄의 대역전


"2006년 치벤 와카야마 vs. 테이쿄"는 일본에서 대역전승을 가리키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벤 와카야마는 준결승에서 다나카 마사히로의 토마코마이 고등학교를 만나 탈락한다.)

4.8.7. 손수건 왕자 vs. 다나카 마사히로

사이토 유키(와세다 실업고교)와 다나카 마사히로(코마다이 토마코마이 고교)는 2006년 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격돌, 15회동안 완투하는 초인적인 투수전을 펼쳤지만 경기는 1-1로 무승부, 재시합이 결정되었다. (고시엔에서는 15회를 채울 경우 재경기를 실시한다.)


바로 다음날 열린 결승전 재시합에서 사이토와 다나카는 또다시 격돌, 9회까지 투수전을 벌였고 결국 사이토가 마지막 타자로 나온 다나카를 삼진처리하며 4-3, 2006 여름 고시엔은 와세다실업고교의 우승으로 끝난다. 이 대회에서 사이토 유키는 7경기에서 무려 950개가 넘는 공을 던졌고, 이른바 "손수건 왕자"라 불리며 (경기 도중 흰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사이토의 모습은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국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한다. 당시 사이토의 인기는 프로선수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역사적으로도 당시 사이토의 인기에 비견할만한 선수로는 사이토의 고등학교 선배인 아라키 다이스케[24], 위에서 나온 PL학원의 KK 콤비 정도밖에 없다.


2006년 여름 일본을 지배한 사이토의 손수건 왕자 신드롬

두 투수는 고시엔 이후 열린 가을 전국체전 결승전에서 재격돌하는데, 여기서 사이토의 와세다실업고교가 다나카의 토마코마이 고교를 1:0으로 또 이긴다(...) 이 두 선수의 대결은 그야말로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 전국체전 결승전이 벌어진 경기장은 "손수건 기념 경기장(ハンカチメモリアルスタジアム)"으로 개명되었다.

열받은 다나카는 절치부심, 프로에서 대성공하며 일본 최고의 투수로 등극했지만 사이토는 아직까지 부진중.

4.8.8. 사가키타의 기적


2007년 여름, 사가키타 고교가 사가현 예선을 돌파해 고시엔에 진출한다. 그런데 이 사가키타 고등학교는 야구 장학생이니 뭐니 일체 없는 공립고교로서, 감독은 야구를 좋아하는 학교 국어 교사였으며, 그라운드는 축구부와 공유하고,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야간 훈련 금지, 시험 일주일 전에는 부활동 전면 금지라는 상황이었고, 주전들의 평균 신장이 170cm 이하일 정도로 선수들 역시 학교 근처의 보통 학생들이 모인 것에 불과했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야구소년들만이 모인 이런 동네야구 수준의 팀이 고시엔에 올라와서 1회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너무 감격한 주장이 "이것만으로도 위대한 업적. 2승은 기대 안해."라고 공개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가키타 고교는 이후에도 프로 지망생들로 점철된 명문 사립고교들을 연파하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8강전 테이쿄 고교와의 13회 연장 혈투는 고시엔 역사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명승부. 여기서 사가키타의 투수 쿠보 타카히로는 연장전에서 테이쿄의 스퀴즈번트를 두 번이나 글러브 토스로 막아내는 묘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테이쿄 고교는 동도쿄 최고의 야구 명문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2006년 대회에서 치벤 와카야마에게 역사적인 역전패를 당한 데 이어 이번엔 동아리 수준의 사가키타에게까지 분패하며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이하는 사가키타 고교의 결승까지의 전적.
  • 1회전: vs. 후쿠이 상고 3:1승
  • 2회전: vs. 우치야마다 상고 연장 15회 4:4 무승부 (고시엔 역대 5번째 연장 15회 무승부였다)
  • 2회전 재시합: vs. 우치야마다 상고 9:1 승
  • 16강: vs. 마에바시 상고 5:2 승
  • 8강: vs. 테이쿄 고교 연장 13회 4:3 승
  • 4강: vs. 나가사키 니치다이 고교 3:0 승

당시 결승전 영상

이후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히로시마의 명문 고등학교 코료 고등학교. 다수의 프로야구 선수들을 배출한 고시엔 단골 출전 고교였다. 여기에 결승 선발 투수는 2012년 일본프로야구 신인왕 노무라 유스케(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주전 포수는 2013년 NPB 신인드래프트 1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명된 고바야시 세이지. 그저 야구가 좋아서 모였던 사가키타의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초고교급 황금배터리였다.

사가키타 고교는 경기 내내 노무라에게 7회까지 1안타로 압살당하며 0-4로 끌려가고 있었으나, 8회 말에 3번타자 소에지마 히로시의 고시엔 사상 최초의 결승전 역전 만루홈런을 포함해 5점을 몰아치며 5:4로 대역전승했다. 일명 고시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승.


8회말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리고 환호하는 소에지마와 사가키타 선수들

샤다라빠레진코믹스에 연재한 고시엔 만화에서 2007년 결승전을 "고시엔에 모인 모든 야구팬의 꿈을 이뤄준 기적" 아다치 미츠루가 그런 걸 그렸어도 욕먹었을 것이라고 찬양했다.

또한 사가키타 고교는 결승까지 무려 7경기 73이닝을 소화, 역대 고시엔 최다이닝 신기록까지 수립했다. 당시 사가키타 고교가 쿠보 타카히로-바바 마사후미의 두 투수를 현란하게 로테이션시키면서 최다 이닝 신기록까지 수립하며 우승한 것은 절대적인 에이스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일본 고교야구의 풍조에도 경종을 울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사카키타 선수들 중 이후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한 명도 없다. 특정 선수의 역투가 아닌 선수들의 팀 플레이에 기반한 우승이라 일본 야구의 풍토를 생각하면 어떤 부분에선 당연하지만...

4.8.9. 죠스이칸 비에 울다

2009년 여름 고시엔에서 히로시마 대표 죠스이칸[25] 고교는 코치현 대표 코치 고교와의 1회전에서 2승 1패로 탈락(?)한다.

  • 첫 시합, 죠스이칸이 2:0으로 리드하지만 3회 종료 후 비로 노게임 선언.
  • 다음날 벌어진 재시합: 죠스이칸이 리드하지만 6:5로 리드하던 5회초 1아웃에 다시 비로 노게임 선언. 이 경기에서는 죠스이칸이 후공이었기 때문에 아웃 두개만 더 잡았으면 강우 콜드로 승리했을 상황이었다(...)
  • 다음날 비가 그치며 간신히 성립된 세번째 시합: 여기서 9:3으로 패배하며 죠스이칸이 탈락한다. 2번 이기고 한번 졌지만 결국 패배한, 이른바 "죠스이칸 비에 울다" 사건.

그리고 이 죠스이칸 고교는 2011년 여름 고시엔에서도 사상 최초의 3시합 연속 연장전을 치르기도 한다. (그리고 3경기 전부 이겼다! 하지만 다음 시합에서 패하며 탈락) 이래저래 고생하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


죠스이칸 고교 야구부

4.8.10. 리쇼다이 쇼난 고교의 투혼

2009년 여름 고시엔에서 8강에 진출한 리쇼다이 쇼난 고등학교 야구부는 지난 수십년간의 고시엔에서도 가장 눈물겨운 투혼을 불태운 학교로 손꼽힌다.

이 학교의 행보는 그야말로 눈물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 2009년 여름 대회에서 학교 역사상 최초로 고시엔 출전 결정.
  • 41세의 나이로 급서한 감독의 영정을 모시고 출전. 당시의 3학년은 이 감독이 지도한 마지막 제자들이었다.
  • 대회 직전 인플루엔자가 팀을 강타. 컨디션 바닥까지 떨어짐.
  • 첫 경기인 32강전에서 0-0의 격렬한 투수전을 벌이다가, 9회초 수비 2사 1루에서 얻어맞은 큼지막한 타구를 외야수의 기적적인 다이빙캐치로 막아내며 패배를 모면. 그리고 바로 다음 9회말 공격에서 굿바이 홈런으로 승리.
  • 다음 2회전, 18명의 선수 중 주전 2명과 모든 구원투수 등 총 4명이 인플루엔자로 출전불가 판정. 투수는 에이스 한명밖에 남지 않음.
  • 16강전에서도 경기 내내 밀리다가 8회에 3점을 몰아치는 극적인 역전극으로 4-2 신승.
  • 마침내 올라온 8강전, 그해의 전국 준우승팀이 되는 초강호 일본문리고교와 대결을 앞두고 팀의 주장까지 인플루엔자로 출전불가 판정. 고작 13명만 남음.
  • 초강호교를 상대로 엄청난 투지를 발휘, 6회에는 3-2로 역전까지 잡아냄.
  • 그러나 6회말, 팀에 유일하게 남은 투수였던 에이스 사키타 미라의 체력이 마침내 다하면서 대량실점, 역전을 허용하고 리쇼다이 쇼난 고교는 결국 3-11로 패했다.




8회말 수비에서 패배를 직감한 에이스 사키타가 눈물을 흘리며 공을 뿌리고, 수비를 간신히 마친 뒤 덕아웃에서 오열하면서 동료들을 응원하던 광경은 일본 전국의 심금을 울렸다.

비록 8강에서 패배했지만, 리쇼다이 쇼난 고교 야구부는 전국적인 찬사를 받았으며 그 해 대회의 주인공 중 하나로 꼽혔다.

4.8.11. 히로시마 24이닝 혈전: 야마오카 vs. 타구치

2013년 여름 고시엔 히로시마 지역예선 결승전에서는 마치 만화와도 같던, 일본 고교야구 사상 가장 격렬했던 투수전 중 하나가 펼쳐진다. 지난 십수년간 히로시마는 2007년 사가키타에게 패해 준우승한 코료 고교와 "죠스이칸 비에 울다" 사건의 죠스이칸 고교가 고시엔 출전권을 독점해왔으나 그 두 강호는 각각 다른 다크호스들에게 패해 탈락한다. 그 장본인들은 코료를 꺾은 세토우치 고교의 에이스 야마오카 타이스케와 죠스이칸을 격파한 히로시마신죠 고교의 에이스 타구치 카즈토였다.


좌측이 야마오카, 우측이 타구치. 이 두 에이스는 히로시마의 지배자들이었던 코료와 죠스이칸을 각각 9이닝 2실점으로 압살한다.

이 두 에이스가 이끄는 다크호스들이 고시엔 진출권을 둘러싸고 격돌한 결승전은 그야말로 처절한 투수전이었는데, 두 투수가 완투하는 가운데 무려 15이닝동안 양 팀 아무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 결국 0:0 무승부로 재시합이 선언된다. 특히 야마오카는 9회 1사까지 노히트, 15이닝을 1안타 15삼진으로 봉쇄하는 전설에나 남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히로시마대회 결승 =연장15回 무승부=


그리고 이틀 뒤 벌어진 재시합, 또다시 0의 행진이 시작된다. 두 에이스는 또다시 완벽하게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고 8이닝이 지나도록 점수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8회말, 세토우치 타선이 마침내 1점을 뽑아냈고 이은 9회초 공격에서 야마오카가 히로시마신죠 타선을 막아내며 일본 전국의 관심을 불러모은 이 24이닝에 걸친 투수전은 1:0으로 마침내 막을 내린다.

▼히로시마대회 결승(재시합)


2경기 24이닝, 총 47회의 공격기회동안 두 팀이 뽑아낸 점수는 세토우치의 마지막 공격에서 나온 단 1점에 불과했으며, 야마오카와 타구치 두 투수는 총 43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그야말로 만화에나 나올 법한 투수전이었다.

야마오카 타이스케: 24이닝 무실점 6피안타 21삼진
타구치 카즈토: 24이닝 1실점 18피안타 22삼진

야마오카의 세토우치 고교는 고시엔에 진출, 1회전에서 우승후보 메이토쿠 기쥬쿠 고교와 격돌, 0:2로 아깝게 패한다. 그러나 야마오카는 완투했으며, 6안타를 허용하는 와중에 9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자책점은 1점에 불과했다. 야마오카의 슬라이더는 이른바 "사라지는 마구"로 불리며 유명세를 구가했고, 그 해 전국 최강의 타선 중 하나로 불렸던 메이토쿠 기쥬쿠가 2점밖에 뽑아내지 못한 것은 이 경기가 유일했다.

고시엔 종료 뒤 열린 세계야구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야마오카와 타구치 모두 일본대표팀에 선발된다.


4.8.12. 2013년 치바 쇼타의 연속커트 논란

2013년 여름 고시엔에서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의 2번타자 치바 쇼타의 타법이 문제시된 사건. 신장이 156cm에 불과한 이 선수의 타법은 작은 키를 이용해 얼굴을 스트라이크존에 바짝 갖다 대고서 공을 바라본 뒤 가볍게 휘두른 배트를 공에 맞춰 파울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포볼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파울을 쳐댔고, 그 결과 고시엔 준준결승까지의 스탯은 7할 타율에 출루율 8할. 게다가 완전히 투수를 소모시키는 전략인지라 투수들이 한 시합에서 이 선수 한 명에게 던지는 투구수가 40개에 달할 정도였다. 투수의 신경을 긁는 것 또한 잊지 않고 포볼로 걸어나가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올리고는 '아싸!'를 외친다(…).
(동영상 0분 58초부터 치바의 연속 커트가 시작된다)

결국 '의도적으로 파울을 치는 타법은 그 동작에 따라 심판이 번트로 판정할 수 있다'는 일본 고교야구 규정에 의거해 치바 쇼타는 준결승에서 심판진에게 '이 타법으로 계속해서 파울을 칠 경우 3번트 실패로 간주한다'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그리고 치바 쇼타는 준결승에서 하나의 안타도 치지 못한채 출루하지 못했고, 팀도 패배.[26] 결국 '비겁한 야구', '더러운 야구'라는 비난과 '단순히 기술일 뿐' '신체조건에서 밀리는 선수의 근성있는 야구' '8강까지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다가 준결승 직전에야 지적하는 것은 연맹의 횡포'라는 의견 등 찬반양론이 갈렸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는 95회 고시엔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小さい巨人(작은 거인)" 치바 쇼타. 그의 야구는 근성인가, 계략인가?


4.8.13.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이룩한 우승

2013년 여름 고시엔의 우승팀 마에바시 이쿠에이 고등학교는 감독인 아버지와 선수인 아들이 함께 전국제패를 일궈내며 일본 전역을 감동시켰다.

마에바시 이쿠에이 고교의 아라이 나오키 감독은 20년 가까이 야구부를 이끌어온 베테랑 감독. 야구부를 지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커온 아라이 감독의 아들 아라이 카이토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6년뒤의 나"라는 작문에서 "아버지의 학교에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고시엔에 진출, 전국제패를 이룩하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아라이 카이토의 초등학교 시절 작문. "고시엔에서 전국제패"


고시엔에서의 위닝볼을 아버지 아라이 감독에게 선물하는 아들 아라이 카이토

그리고 6년 뒤 고시엔, 아라이 카이토는 4번타자이자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고 약체로 평가받던 마에바시 이쿠에이 고교는 전국의 강호들을 연파하며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진출한다. 그리고 아라이 카이토는 결승전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타를 쳐냈다.

마에바시 이쿠에이 고교는 여름 고시엔 첫 진출에 우승을 거두었고, 아라이 부자는 그 초등학교 5학년 꼬맹이의 장담대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전국제패를 달성했다.

4.9. 최근 대회 우승팀 및 대회 엔딩영상

4.9.1. 여름 고시엔

2000-2006년 대회 우승결정 장면

(괄호 내의 명칭은 각 학교들의 일본 통칭, 지역예선 소속지구)
2000년: 치벤가쿠엔 와카야마 고교 (치벤 와카야마, 와카야마)
2001년: 니혼대학부속 제3고교 (니치다이산, 서도쿄)
2002년: 메이토쿠기주쿠 고교(고치)
2003년: 조소가쿠인 고교(이바라키)

2004년: 코마자와대학부속 토마코마이 고교 (코마다이 토마코마이, 남홋카이도)

2005년: 코마자와대학부속 토마코마이 고교

다나카 마사히로가 2학년 에이스로서 첫선을 보인 대회. 다나카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과시하며 전국을 제패한다. 코마다이 토마코마이 고교는 역대 6번째 여름 고시엔 연속제패를 달성한다.

2006년: 와세다 실업고교(서도쿄) - 준우승: 코마자와대학부속 토마코마이 고교


위에 언급한 사이토 유키다나카 마사히로의 격렬한 투수전이 벌어진 결승전. 이 대회에서 사이토 유키는 14일동안 총 7경기에 등판, 무려 958개의 공을 던졌다. 3연패에 도전하던 코마다이 토마코마이는 결승에서 무릎을 꿇었다. 오카야마현 대표 칸제이 고교는 2005년 봄-2005년 여름-2006년 봄-2006년 여름에 걸쳐 4대회 연속 최종이닝에 역전패라는 희대의 비극을 연출했다. 일명 고시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학교.

2007년: 사가키타 고교(사가) - 준우승: 코료 고교(히로시마)

위에서 언급한 사가키타의 기적이 일어난 대회. 21세기에서 유일하게 공립학교가 우승한 대회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의 사토 요시노리(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고시엔 역대 최고속인 155km를 기록한다.

2008년: 오사카 토인 고교(북오사카[27]) - 준우승: 토코하가쿠엔 키쿠가와 고교(시즈오카)

오사카 토인 고교는 결승전에서 토코하가쿠엔 키쿠가와 고교를 무려 17:0으로 대파하며 역대 결승전 최다점수차 승리기록을 세웠다. 치벤 와카야마 고교의 슬러거 사카구치 마사키는 고시엔 역대 유일의 1이닝 2홈런 기록을 수립했다. 한홈두

2009년: 츄쿄대학부속 츄쿄 고교 (츄쿄다이 츄쿄, 아이치) - 준우승: 니혼분리 고교(니가타)

츄쿄다이 츄쿄 고교는 니혼분리고교와의 결승전에서 10-4로 여유있게 리드하고 있었으나 9회초 수비에서만 무려 5실점하며 희대의 역전패를 당할 뻔했다. 154km의 황금좌완 키쿠치 유세이(하나마키 히가시 고교), 153km의 강속구를 뿌리는 유격수 마미야 켄타 (메이호 고교) 등 수많은 고시엔 스타들이 배출되었던 대회.

2010년: 코난 고교(오키나와) - 준우승: 토카이대학부속 사가미고교(카나가와)

시마부쿠로 요스케(현 쥬오 대학)가 이끈 오키나와 코난고교는 압도적인 위력을 과시하며 이른바 "섬주민들의 비원"이라 불리던 오키나와 최초의 여름 고시엔 제패를 달성했다.

2011년: 니혼대학부속 제3고교(서도쿄) - 준우승: 코세이 고교 (아오모리)

서도쿄 대표 니치다이산 대표는 결승전에서 아오모리현 대표 코세이 고교(현재는 하치노헤학원 코세이 고교로 개칭)를 11:0으로 대파. 여기서부터 코세이 고교의 3대회 연속 준우승이라는 눈물의 대기록이 시작되었다.

2012년: 오사카 토인 고교(오사카) - 준우승: 코세이 고교 (아오모리)

후지나미 신타로(현 한신 타이거즈)를 앞세워 센바츠(봄 고시엔)에서도 우승했던 오사카 토인 고교는 여름대회마저 제패하며 봄,여름을 연패를 달성했다. 참고로 이 해 준우승팀인 아오모리 코세이 고교는 2011년 여름 준우승-2012년 봄 준우승-2012년 여름 준우승이라는 사상 초유의 3대회 연속 준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긴다.

카나가와 토코학원의 2학년 좌완 마츠이 유키는 1회전 22삼진-2회전 19삼진-16강 12삼진-8강 15삼진으로 4경기 36이닝 68삼진이라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특히 1회전의 22삼진과 10타자 연속삼진은 모두 고시엔 신기록. 이 마츠이는 2013년 드래프트에서 5개구단의 1차지명 각축전 끝에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한다.

2013년: 마에바시 이쿠에이 고교(군마) - 준우승: 노베오카가쿠엔 고교(미야자키)
지역예선 엔딩영상

고시엔 본선 엔딩영상

군마현 대표 마에바시 이쿠에이 고교는 이 해 여름 고시엔에 첫 진출, 그대로 첫 우승이라는 대이변을 일으켰다(2011년 센바츠에 진출한 적이 있으나 1회전에서 탈락). 여름 고시엔에서 첫 진출한 학교가 우승한 것은 1991년 오사카 토인 고교 이후 22년만에 나온 기록으로 사상 12번째. 마에바시 이쿠에이의 2학년 에이스 다카하시 코나는 대회기간동안 50이닝 2자책 (방어율 0.36)이라는 비현실적인 대기록을 달성했다. 대회 첫 자책점을 결승전 4회 2사 만루에서 기록하며 그 전까지 44⅔이닝 연속 무자책. 한편 사이비 고교의 2학년 에이스 안라쿠 토모히로는 2회전(대 미에)에서 155km를 기록하며 2007년 사토 요시노리의 고시엔 최고속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지며 16강 탈락

2014년: 오사카 토인 고교(오사카) - 준우승: 미에 고교(미에)

4.9.2. 봄 고시엔(센바츠)

괄호 안은 학교가 소속된 현.

2000년: 토카이대학부속 사가미 고교(카나가와)
2001년: 조소가쿠인 고교(이바라키)
2002년: 호토쿠가쿠엔 고교(효고)
2003년: 코료 고교(히로시마)
2004년: 사이비 고교(에히메,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정말로 학교 이름이다. 한자로 쓰면 済美)[28]
2005년: 아이치공대부속 메이덴 고교(아이치)[29]
2006년: 요코하마 고교(가나가와)
2007년: 토코하가쿠엔 키쿠카와 고교(시즈오카)
2008년: 오키나와 쇼가쿠 고교(오키나와)
2009년: 세이호 고교(나가사키)
2010년: 오키나와 코난 고교(오키나와)[30]
2011년: 토카이대학부속 사가미 고교(카나가와)
2012년: 오사카 토인 고교(오사카)[31]
2013년: 우라와가쿠인 고교(사이타마)
2014년: 류코쿠대학부속 헤이안 고교(교토)
2015년: 츠루가 케히 고교 (후쿠이)

4.10. 고시엔을 다룬 기타 창작물

4.10.1. 만화

(그냥 일본 고교야구만화 전부 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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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2
    -쿠니미 히로노다 아츠시의 센카와 고교는 2학년 여름 고시엔 2회전 탈락. 3학년 봄 고시엔 전국제패. 3학년 여름 고시엔에서는 준결승에서 타치바나 히데오의 메이와 고교를 꺾고 결승진출.
    -타치바나 히데오의 메이와 고교는 2학년 여름 고시엔 전국제패. 3학년 봄 고시엔은 진출하지 못했고 3학년 여름 고시엔 4강전에서 센카와 고교에게 패퇴.
    -히로타 가츠토시의 에이쿄오 고교는 2학년 봄 고시엔 전국제패. 2학년과 3학년 여름 고시엔은 지역예선에서 센카와 고교에게 패배하며 진출에 실패한다
  • 명탐정 코난
    -<고시엔의 기적! 보이지 않는 악마에게 질 수 없다!>. 고시엔을 무대로 폭탄 테러를 일으키려는 범인을 에도가와 코난핫토리 헤이지, 오오타키 고로가 막는 내용. 원작자가 야구 팬이라 작가의 단편 <4번 서드>도 고시엔을 다루고 있으며,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두 야구팀은 <4번 서드>의 등장 팀이다.

  • 터치
    -우에스기 타츠야의 메이세이 고교는 3학년 여름 고시엔 지역예선에서 작년 여름 고시엔 준우승팀인 닛타 아키오의 스미공고를 꺾고 고시엔에 진출, 전국제패한다. 근데 이 만화에서는 지역예선만 집중적으로 다뤘고 진작 고시엔에 올라간 후의 스토리는 거의 그리지 않았으며, 끝부분에서 타츠야의 어머니가 방을 치우면서 고시엔 우승트로피를 보여주며 간접적으로 우승에 대해 알린게 전부였다. 즉 고시엔 본선 게임들 자체에 대한 묘사는 전혀 없었다(...)[33]. 여튼 첫 출전에 첫 우승이었으며 MIX(만화)의 세계관까지 메이세이 고교의 유일한 고시엔 진출.
  • 크로스 게임
    -키타무라 코우의 세이슈 고교는 3학년 여름 지역예선에서 봄 고시엔 우승팀 류오 고교를 꺾고 고시엔 진출을 확정한다.
  • MIX(만화)
    -우에스기 카즈야의 학교인 메이세이 고교에 입학한 주인공들은 아직 고교 1학년. 첫 여름 고시엔 지역예선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 다이아몬드 에이스
    -사와무라 에이준의 세이도 고교는 1학년 고시엔 서도쿄 지역예선 결승전에서 나루미야 메이의 이나시로 실업고교에게 9회말 역전패. 이나시로 실업은 전국 준우승한다.
  • 4번타자 왕종훈
    -종훈의 영흥고교는 1학년 여름 고시엔에서 2회전 탈락. 2학년 봄 고시엔 우승. 2학년 여름 고시엔 진출로 완결.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야구는 제대로 해본적도 없는 주인공 왕종훈이 입학하자마자 4번에 에이스, 1학년 여름부터 고시엔 3연속 진출에 전국제패라는 초 아스트랄한 전개를 보여주었다.야구가 제일 쉬웠어요 [34]
  • 드림(만화)
    -리 다케시의 꿈의 섬 고교는 1학년 여름 고시엔 진출, 현재 8강전 진행중이다. 참고로 쿠리 다케시는 1회전에서 봄 고시엔 우승팀 고베 익성과 대결, 고시엔 한 경기 최다탈삼진과 타자 연속삼진 기록을 깨뜨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기록이 또 경신되었다. 2012년 여름 고시엔의 카나가와 대표 토코학원의 2학년 마츠이 유키가 22탈삼진 & 10타자 연속삼진 기록을 세운 바 있다.)
  • 메이저
    -시게노 고로의 성수고교는 3학년 여름 고시엔 지역예선 8강에서 봄 고시엔 우승팀 해당고교에게 패배한다. 해당고교는 여름 고시엔에서도 우승하며 봄-여름 연패 달성.
  • 크게 휘두르며
    -미하시 렌의 니시우라 고교는 1학년 여름 고시엔 사이타마현 지역예선 16강에서 비죠다이사야마 고교에게 패배.
 
  • 루키즈(원작만화)
    -카와토 코이치가 이끄는 타마가와 고교는 여름 고시엔 지역예선에서 강호 사사자키, 메구로가와를 물리치지만 중심멤버들의 부상과 카와토의 근신등 악재속에서 8강전 패퇴. 1년 후 사사자키를 꺾고 여름 고시엔 진출.
  • 거인의 별
  • 은수저 Silver Spoon
    -일상계 만화인 은수저에서도 주요 등장인물 코마바 이치로와 관련해 고시엔이 비중있게 그려진다. 코마바는 1학년부터 오오에조 농업고등학교의 주축으로 성장, 팀의 북홋카이도 추계대회 준결승 진출에 공헌한다. 그러나 준결승 9회말에서 팀 선배의 실책으로 패배. 이후 코마바는 생계의 어려움으로 학교를 그만둔다.

  • 폭렬 갑자원(...)

4.10.2. 게임

4.11. 투수 혹사에 대한 해외의 비판

해외라고 해도 야구를 하는 나라 자체가 한정적이니 사실상 미국의 시선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선수의 미래를 망치는 몹쓸 대회' 취급 받는다. 좀 더 신랄하게 까는 사람이나 기자들은 이 축제에 열광하는 일본의 정서 자체를 비판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불태워가며 만들어 내는 드라마가 아무리 아름다운들 결국 아동 학대다.' 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실정. 더 나아가서 아동 포르노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투수를 육성하는 일본과 미국의 관점 차이 때문인데, 일본은 '투수의 어깨는 도검과 같아서 단련하면 단련할 수록, 던지면 던질 수록 강해진다' 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은 '투수의 어깨는 분필과 같아서 던지면 던질수록 닳는다' 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35]

그리고 고시엔은 우승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에이스를 쥐어짤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회 기간은 짧고, 토너먼트 구조라 한 경기라도 지면 끝이다. 그리고 아무리 야구 인프라가 강한 일본 고등학교라고 해 봤자 프로팀처럼 에이스가 두명 세명 있을 리 없다. 어쩌다가 한명 나오는 에이스를 보유한 고등학교만이 고시엔에 진출하며 결국 남은 경기도 그 에이스를 쥐어짜가며 대회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시엔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귀중한 분필과도 같은 투수의, 그것도 나이 어린 투수의 어깨를 무자비하게 소모하고 혹사시키는 대회' 로 보이는 반면 일본 입장에서는 '투수의 어깨를 단련하는 과정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에이스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대회' 가 되는 셈이다.

그 동안 고시엔을 거쳐간 수많은 에이스들의 투구수를 보면 미국이 이 대회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2주 동안 6경기 767개를, 사이토 유키는 7경기 동안 948개를, 그리고 2013년 안라쿠 토모히로는 9일동안 5경기에서 772개의 공을 던졌다.

특히 안라쿠의 경우 다르빗슈의 스카우터인 돈 노무라[36]가 '고시엔에서 안라쿠가 받은 취급은 아동학대다' 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발언은 미국 기자들과 스카우터들의 공감을 얻은 반면 일본에 건너가서는 당연하지만 크나큰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투구 수를 아끼는 미국 투수들도 부상을 당하는 빈도가 높다. 일본인 투수가 부상을 당하는 것은 일본의 단련법이나 고시엔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고시엔과 일본의 단련법을 거치고 롱런하는 투수도 많다' 라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놀란 라이언 같은 투수가 나올 순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놀란 라이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며, 되라고 강요하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 이라 반박하고 있다. 한마디로 반자이 어택을 해서 살아남을 순 있지만 누구나 살아남는 건 아니며 반자이 어택을 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는 이야기. (...)

대한민국도 고교 투수의 혹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본과 다른 것은 예전에는 이러한 문제에 소홀했으나 경기력 문제와 신인 고갈 문제, 국제대회에서의 실패 이후 이런 투수 혹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으며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반면[37] 일본은 전혀 이런 의식이 없고 오히려 미덕으로 여기며 전국민이 열광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대한민국은 심심하면 뉴스나 검색어에도 고교야구 유망주가 혹사당하는 것에 대해 언론이 논란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한 대응에도 열을 올리지만 일본은 이것을 오히려 미덕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확실히 시대가 바뀌고 근육과 달리 인대는 반복 훈련으로 단련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사들의 주장이 점점 힘을 얻어가며 [38] 지우치 다카노부[39][40]등 고시엔에서 연투한 에이스들이 속속 몰락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2013년 안라쿠 토모히로가 연투를 하면 할수록 지쳐가며 느린 볼을 던지던 비참한 모습이 일본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는지 고시엔의 규정과 에이스의 살인적인 연투를 미덕으로 칭송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다르빗슈 유는 트위터로 '각 고교 당 선수 로스터 제한을 18명에서 25명으로 늘리고, 투구수 한계를 정해야 한다' 라면서 일본 선수 답지 않게 이런 룰 개정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 와타 마스미 등 몇몇 고시엔 출신 선수들 중에도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아직까지 갈 길은 멀다. 고시엔이라는 대회의 인기에 이런 혹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특히 일본의 투수 코치 및 지도자들(프로 수준에서건, 풀뿌리 수준에서건)은 여전히 일본식 단련법에 대한 신뢰가 강하며, 고시엔의 일정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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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출처 - 한신 고시엔 구장 홈페이지
  • [2] 여름 대회는 지역 안배로 모든 현에 한 학교씩 티켓이 주어지므로 실력은 어중간하면서도 경쟁률이 낮은 현에 위치해서 매년 고시엔 단골인 학교가 끼어있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고 소속 도도부현에 상관없이 실력으로 출전권이 주어지는 봄 대회가 진정한 최강자전이라는 생각을 가진 고교야구 팬들도 간혹 있다.
  • [3] 참고로 위 대진표에서 이중 동그라미, 동그라미, 세모로 표시된 학교들이 있는데 이들 학교가 위에서 설명된 지역 내 A~B급 학교들이며 이들 학교는 지역예선 시 시드를 배정받아 초반에 강호들끼리 붙어서 약팀이 어부지리로 쉽게 본선에 진출하는 경우를 방지하고 있다. 저들 중에 (해마다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이중동그라미로 표시된 학교들이 A급, 동그라미가 A급 하위권~B급 상위권, 세모가 B급이라고 보면 된다. 즉 저 많은 학교들 중에서 저들 학교들이 고시엔 본선에서 지바 대표로 볼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학교들이다. 위에서 격전구에서 사립학교의 공세속에 꿋꿋하게 버티는 공립학교의 대표로 예로든 나라시노(習志野)고교가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그 외에 역시 공립학교인 조시상고(銚子商)는 나라시노보다 한등급 위인 이중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이렇듯 격전구의 공립학교라고 반드시 사립학교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이 해 본선 진출교는 왼쪽 밑에 이중 동그라미로 표시된 도카이대학 부속 보요고교(東海大望洋)이다.
  • [4] 한국으로 치면 고3.
  • [5] 한국의 고교야구팀은 모두 60개(2014년 2월 기준)로 고교야구팀 수는 일본이 한국보다 70배가 더 많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일본 고교야구팀은 4천여개'라고 한걸 가지고 일본 야구 관계자들이 이런 농담을 했다고 한다. '당신들이 생략한 200개의 팀은 한국의 고교야구 팀을 다 합친거보다 많지 않은가?'(...)
  • [6] 단 동일 예선에서 두 팀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자체를 둘로 나눠서 별개의 예선을 진행한다. 도쿄는 23구 지역이 중심이된 동도쿄와, 23구 서부지역 일부 및 기타 시지역으로 구성된 서도쿄로, 홋카이도는 남홋카이도와 북홋카이도로 지역을 분리하여 예선을 치른다.
  • [7] 마찬가지로 이들도 도쿄나 홋카이도처럼 각 현의 생긴 모양과 학교의 분포를 따라서 동-서 혹은 남-북으로 지역을 분리해서 별개의 예선을 치른다.
  • [8] 중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라면 서태웅같은 기묘한 정신세계를 가지지 않은 이상에야 최소한 지역 내 B급학교에는 진학하는 게 일반적이다. B급학교 진학도 여의치 않을 경우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야구유학을 떠나지 본선진출은 가뭄에 콩나듯 하는 지역내 C급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급성장하는 신인의 얘기도 거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얘기이다. 정말 개천에서 용 나는 셈.
  • [9] 나라현에 있는 치벤가쿠엔의 분교로서, 전국의 모든 고교들 중 가장 고시엔 진출가능성이 높은 학교로 여겨진다. 나라현에 있는 본교는 오히려 지역내 라이벌인 텐리 고교와의 각축전으로 고시엔 진출을 장담하지 못하는 반면 치벤 와카야마 고교는 일본 전국에서 가장 압도적인 고시엔 진출확률을 자랑하고 있다.
  • [10] 참고로 치벤가쿠엔과 치벤와카야마는 2002년 고시엔 3회전에서 격돌, 이른바 "동일 유니폼 대결(同一ユニフォーム対決)"을 벌이기도 했으며 이때는 치벤 와카야마측이 적색 모자를 착용해 구별했다.
  • [11] 미노시마고교도 과거에는 고시엔 본선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야구명문고였으나 미노시마뿐만이 아니라 와카야마현의 모든 고교들이 치벤 와카야마의 21세기 전체에 걸친 절대독재로 수십년째 위상이 추락한 상태이다.
  • [12] 단 이 때는 전국방송이 아닌 로컬방송이다.
  • [13] 슬램덩크는 불상사가 제대로 일어났지만 양호열과 친구들이 강백호대신 뒤집어쓰고 정학먹었다. 그야말로 고교시절 내내 은인급.
  • [14] 이들 학교의 이름 앞에는 학교 재단인 도카이대학(東海大)의 이름이 붙는다. 이들 도카이대학 부속 고등학교는 일본 전국에 퍼져 있으며 그 중에서 도카이대 사가미(카나가와), 도카이대 우라야스(치바), 도카이대 제4(홋카이도), 도카이대 고후(야마나시), 도카이대 스가오(도쿄), 도카이대 교세이(오사카), 도카이대 보요(치바), 도카이대 야마가타(야마가타) 등은 각 지역의 A~B급 학교로 고시엔의 단골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의 매년 도카이대학 부속고교가 한 두팀은 반드시 출전한다. 이처럼 일본 전국에 부속고교를 두고 매년 한 두팀씩 고시엔 본선에 진출시키는 사립대 부속고교 계열로는 도카이대학 외에 니혼대학 부속고교 계열이 유명하다. 이들 학교들은 모체인 대학 야구부의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어서 같은 계열끼리 붙으면 유니폼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들을 구분할 방법은 어깨에 붙이는 패치에 적힌 학교명 뿐이다.
  • [15] 이시카와현의 대표 A급 학교로 마쓰이 히데키의 모교이다.
  • [16] 대만이나 만주 대표는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 [17] 따라서 프로야구에 진출할 선수들의 어깨를 보존하기 위해 투구수제한 등을 적용하자는 주장은 일본에서 거의 거론되지도 않는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엔트리숫자 확대나 대회간격 확대 등의 주장은 일반 선수들의 건강보호차원에서 제기되었지 "프로야구를 위해"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고교야구를 프로의 부속물 취급한다는 반발에 직면해 좌초하고 말았다.
  • [18] 절대 다수가 아닌 것은 고교야구 선수들이 모두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19] 아이치현의 추쿄고등학교가 2차대전 이전에 여름대회를 3연속 제패한 적은 있지만(역대 유일. 추쿄고등학교는 현재 추쿄대학부속 추쿄 고교로 개명했으며, 2009년 여름 고시엔에서 전국 제패에 성공했다), 보통 역대 최강팀은 83-85의 PL학원을 꼽는다
  • [20] 그것도 압도적인 1위로, 경신이 사실상 불가능한 기록이다. 우선 고교 3년 재학중에 열리는 5회의 고시엔에 모두 출전하는것 부터 사실상 불가능하며, 기요하라의 재학 시절엔 고시엔 구장에 럭키존이 있기도 했다. 고시엔의 럭키존은 1947년 처음 설치되어 1949년부터 상설화되었다가 1991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철거되었으며 운용당시 구장 크기는 좌·우익 91m, 가운데 120m였다.
  • [21] 이제나 저제나 고시엔의 대표 강호교들은 야구 특기생들을 끌어모은 사립학교들이다. 하지만 대도시지역이 아닌 작은 현에서는 고시엔에 단골로 출전하는 야구명문 공립학교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 초반 전국 최강자로 군림하던 "메아리 타선"의 이케다 고등학교.
  • [22] 중요한 게 이거다. 마운드에 올라오지만 않았을 뿐이지, 여전히 야수로서 전 이닝 출전중이었다(!)
  • [23] 결승전 노히트 노런은 1939년 시마 세이이치 이후 59년만의 기록으로 여름 고시엔 사상 2번째 기록이며 2013년 현재까지 여름 고시엔 최후의 노히트 노런이다.
  • [24] 전 야쿠르트 스왈로즈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에게 다이스케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 장본인이다.
  • [25] 죠스이칸 고교도 학교 이름을 알리려는 재단의 전폭적 지원으로 단시일에 전력을 급성장시킨 신흥강호이다. 전통적으로 히로시마는 히로시마 상고와 코료 고교의 양강체제였으나 이 양강체제의 구도를 깬 것이 죠스이칸 고교이다. 최근에는 공립학교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히로시마상고가 침체기를 겪고있고 죠스이칸과 코료고교가 양강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 [26] 게다가 이 선수는 준준결승 당시 2루에 진루한 상황에서 포수의 사인을 보고 타자에게 제스쳐로 알리는 이른반 '사인 훔치기' 의혹으로 주심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
  • [27] 90주년 기념대회라서 오사카가 남, 북으로 지구가 분할
  • [28] 이 학교는 2001년까지 여고였다. 2002년에 공학으로 전환하면서 학교 재단측이 여고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야구부를 창단하고 엄청난 투자를 결행,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중학생들을 끌어모아서 단숨에 전국구급 강호의 전력을 구축, 전국무대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2004년도 봄 고시엔 우승, 여름 고시엔에서도 준우승. (여름 고시엔의 상대방은 위에 써있는 다나카 마사히로의 토마코마이 고교.) 즉 이 학교는 창단 3년만에 코시엔 우승과 준우승을 같은 해에 이뤄낸 가공할 업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지역출신 선수들보다는 재단의 백업으로 전국에서 우수한 중학생들을 모은 일종의 "외인부대"였다는 점에서 고교야구 본연의 모습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학교 중에 하나였다.
  • [29] 이치로, 쿠도 키미야스의 모교이다. 과거의 명칭은 나고야전기공고. 참고로 2004년 센바츠에선 준우승.
  • [30] 이어진 여름 고시엔 우승으로 오키나와 최초의 봄-여름 연패를 달성했다.
  • [31] 이어진 여름 고시엔 우승으로 봄-여름 연패를 달성했다.
  • [32] 일본에서 야구를 다룬 만화치고 (프로야구를 다루고 있지 않는 한) 고시엔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을 찾는것이 더 어렵다.
  • [33] 이는 이 만화의 최종 목표가 타츠야의 죽은 쌍둥이 동생인 가즈야의 꿈이 갑자원 진출이였고 갑자원 우승이 아니였기 때문인듯 하다. 즉 지역예선 통과 시점에서 이미 가즈야를 대신 한 타츠야의 목표가 달성됐다는 뜻.
  • [34] 그것도 왕종훈이 전국제패를 거둔 2학년 봄 고시엔은 1회전부터 8강까지 고작 단행본 0.5권분량으로 후다닥 지나가고 말았다. 고시엔 진출에만 수십 권이 걸린 우에스기 타츠야나 30권이 넘도록 진출도 못한 사와무라 에이준이 보면 기막혀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 [35] 미국도 일본과 흡사한 훈련방식이 없지는 않다. 일본식 훈련법과 가장 흡사한 훈련은 앨런 재거가 창시한 롱토스 훈련법이라 할 수 있는데, 젊은 유망주 중 이 사람의 제자가 많다. 어느 정도의 롱토스는 많은 선수들이 하고 있지만 앨런 재거의 영향을 받은 선수들의 롱토스는 상식 이상의 거리에서 롱토스를 하며 그 외 근력 훈련과 투구수도 무자비하다. 하지만 2013년 들어 이 유망주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 가장 촉망받던 유망주인 트레버 바우어는 부상은 아니지만 구속 저하와 기량 하락을 보여주고 있고 딜런 번디는 토미 존 서저리. 유망주는 아니지만 재거의 제자 중 한 명이던 댄 해런 역시 고인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 [36] 노무라 카츠야의 아내 무라 사치요노무라 카츠야와 재혼하기 이전에 낳은 아들인 걸로 유명하다. 노모 히데오, 라부 히데키, 알폰소 소리아노등 90년대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관여했으나, 그 과정에서 NPB 구단들과의 많은 마찰이 있었고 포스팅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 [37] 2014년부터 한 투수가 한 경기에서 던질 수 있는 공의 개수를 130개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도 룰이 악용될 여지가 있어 120개 가량을 던지고 연투시킨다거나 하는 부작용을 초래할수 있을 수 있는데, 대한민국 야구팬들은 이 부작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이 룰까지도 개정이 시급하다고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 [38] 미국이 '투수의 어깨는 분필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이유에는 100년이 넘는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의 이런 주장 역시 큰 이유다. 물론 아직 결론이 난 부분은 아니고 단련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불가능하다고 보는 의사들이 더 많은 편.
  • [39] 스지우치는 고시엔에서의 연투보다도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청소년 야구대회에서의 혹사가 화를 불러왔다는 평. 당시 코치는 '스지우치는 던지면 던질수록 강해지는 투수' 라고 혹사를 변명했고 실제로 스지우치를 혹사시켜 대회에서 한국을 꺾고 우승하자 한국 언론들도 '던지면 던질수록 강해지는 투수라는 이야기는 허언이 아니었다' 라고 보도했으나, 그 이후 요미우리에 입단해 팔꿈치 부상, 어깨 부상으로 인해 수술후 재활만 수년을 하다가 1군에는 10일 정도 밖에 못 올라왔고, 시속 156Km 를 가볍게 찍던 속구 구속이 120 Km 대로 떨어지자 구단도 본인도 더 이상 안 될 것 같다고 판단해 만 26 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했다. 당시 한/미/일 스카우터들을 열광시키면서 스지우치와 맞대결 했던 한기주 또한 고교시절 혹사로 인해서 프로 입단후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신세로 전락했다.
  • [40] 스지우치의 비극적인 결말은 박동희의 야구탐사 - 누가 한·일 ‘괴물’을 사라지게 했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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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1-22 0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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