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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last modified: 2014-12-31 17:52:07 by Contributors


FC 서울 No.13
고요한 (Go Yo-han)
출생 1988년 3월 10일, 경상남도 마산
국적 대한민국
포지션 이트윙어, 라이트백
신체조건 170cm, 65kg
등번호 FC 서울 - 13번
소속팀 FC 서울(2004~)
국가대표 8경기


최용수 감독의 양아들

한국의 축구선수. 조광래의 아이들 마지막 세대로 2004년 토월 중학교를 중퇴하고 FC 서울에 입단해 일찌감치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2006년, 삼성 하우젠 컵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주전 경쟁에 밀려 2007, 2008시즌 각각 3경기와 2경기에 그치고 만다. 2009년 포지션이 겹쳤던 이청용이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한 후 주전 출장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2009시즌 16경기에 출장해 고명진과 함께 쌍용을 대체할 고라인으로 기대받았다. 그리고 2010년 7월 17일 전남 드래곤즈 전에서 프로 진출 7년만에 데뷔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해에는 제파로프, 이승렬, 김치우, 하대성 등과의 주전 경쟁과 부상등으로 7경기 출장에 그쳤다.

이윽고 대망의 2011시즌. 고명진과 고요한. 투고는 마침내 때를 만나게 된다. 10시즌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서울의 오른쪽 라인은 최효진의 입대와 최태욱의 부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 이규로가 오른쪽 풀백으로 나섰지만 그간 출장기회가 적었던 탓에 불안한 모습을 여러차례 나타내자 최용수 감독은 급한대로 수비형 미드필더 최현태, 왼쪽 풀백 현영민 심지어 윙어인 김태환을 오른쪽 풀백에 기용했지만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최현태가 부상당하고 이규로가 시즌 중반까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1] 그해 9월. 최 감독은 신의 한수를 던지게 된다. 고요한의 풀백 전향이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시선도 있었으나 고요한은 최감독의 신뢰아래 포텐셜을 폭발시킨다.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다운 뛰어난 스피드와 왕성한 오버래핑, 생각외로 준수한 수비력으로 무너진 우측면 공격을 어느정도 보완해줬고 데몰리션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2011시즌 기록은 19경기 3골. 서울의 진정한 주전으로 거듭난 한해였다.

2012시즌 부터는 풀타임 수비수로 출전하며 꾸준히 활약중이며 김창수, 오범석 등과 함께 리그 정상급 풀백으로 인정받고 있다. 리그 성적이나 팀 공헌도로 따지면 이 2명보다도 한 수위. 에스쿠데로 임대 이전까지 서울의 우측면이 상당히 부실했음에도[2] 리그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다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공수에서 고군분투한 고요한의 공이 컸다. 이러한 공적은 최강희 감독의 눈에도 들어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그러나 13시즌 들어서는 수비력에서 답보 내지는 퇴화한 모습을 보여주며[3] 긴급수혈된 차두리에게 풀백 자리를 빼았겼다. 대신 본래 포지션인 우측면 미드필더로 나섰는데 4월 28일 강원전에서 2골 1도움으로 팀의 역전스을 이끄는 등 준수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수비력보단 공격전개능력이 돋보이는 선수로 민첩한 움직임을 살린 돌파와 활발한 오버래핑이 돋보인다. 어릴 시절부터 프로에서 다듬어져 기본기도 탄탄한 편이다. 단신이라 공중볼과 경합에서 약점을 보이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더 많이 뛰는데 주력하는 편. 중앙으로 기용될 때의 모습은 많이 실망스럽다. 2009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움살랄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는데 서울의 중원은 붕괴, 팀은 8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2005~2007년까지 꾸준히 청소년 대표에 선발되었고 2009년 10월 14일 세네갈전에서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조광래 호에서는 발탁 소식이 없다가 2014년 월드컵 예선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최강희호에 발탁되어 풀타임을 소화했다. 하지만 최악의 폼을 보이며 2-2로 무승부를 끝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숙한 오버레핑, 트래핑, 패스등 한국에 구멍으로 거듭나며 우즈벡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공략당하는 굴욕을 겪어 한동안은 비난을 받았다. 13시즌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고 나서는 국대에 차출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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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규로는 결국 시즌 종료후 인천으로 트레이드되었고 그곳에서도 부상으로 한동안 고생했으나 중반이후 반전에 성공, 주전 수비수로 도약했다.
  • [2] 데얀이 중앙에서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끌어내 공간을 만들면 왼쪽의 몰리나가 중앙으로 침투하고 오른쪽에서 최태욱이나 김태환이 빠른 스피드로 수비진 배후로 돌아들어가는 플레이를 요구했으나 저마다 부상과 부진으로 제몫을 못해줬다.
  • [3] 고요한만의 책임은 아니고 김진규&김주영의 극심한 부진, 아디의 노쇠화, 새로 들고나온 4-4-2의 부실한 압박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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