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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Contents

1. 대한민국시인이자 소설가
1.1. 소개
1.2. 노벨상 떡밥
1.3. 수상 경력
1.4. 작품 목록
1.4.1. 시집
1.4.2. 소설집
2.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의 2대 황제 폐제(廢帝) 고은(高殷)
2.1. 출생
2.2. 즉위하다
2.3. 고연이 대권을 손에 넣다
2.4. 고연에게 양위한 후 살해당하다

1. 대한민국시인이자 소설가


高銀
본명 고은태(高銀泰). 일제강점기에는 친분이 두터운 일본인 친구들과 지인들에게서 다카''(高ちゃん)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1.1. 소개

1933년 8월 1일 전라북도 군산부에서 출생.

한국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고등학생들이라면 그의 작품인 '머슴 대길이'를 알고 있을지도. 단국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예창작과 석좌교수로 재직했다.[1]

군산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그 어떤 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았다.[2] 1952년 입산하여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의 승려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참선과 방랑을 거듭하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58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시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내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고은의 문학적 성향은 <문의 마을에 가서>를 낸 1974년을 기준으로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의 전기 시들은 허무의 정서, 생에 대한 절망, 죽음에 대한 심미적인 탐닉이 주를 이루는 반면 후기 시들은 시대상황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투쟁의지를 담고 있다.

등단 초기에는 같은 시인인 미당 서정주와 매우 친밀한 관계였으나, 1970년대 이후 저항시를 쓰면서 멀어졌고,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서정주가 노골적인 정권 찬양을 하자 완전히 연을 끊고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았다고 한다.

술을 굉장히 좋아한다 하며[3]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라고 한다. 일례로 예전에 한 대학에서 강의하던 고은이 강의 시간에 10분 지각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밝히길 "술 한잔 하다가 늦었다!" 라고 당당하게 둘러대었다고 한다(…). 그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 듯하다.

보수주의 대표문인 이문열은 진보진영에서 존경받는 원로시인이 사실은 썩은 위선자였다는 '사로잡힌 악령'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입산을 했다든가 민주화운동을 했다든가하는 세부경력의 설정이 고은 시인을 연상시켜 고은 시인을 비방하는 소설이라는 설이 파다하다.[4]

1.2. 노벨상 떡밥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그가 잘 알려진 것은 비단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시가 20여개국에 번역되어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매년 여러 나라에서 그를 초청을 하며, 2007년 영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이명박 대통령, 가수 와 더불어, 그리고 한국 문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이 올랐던 것이 그러한 점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노벨상과 관련해 다른 기초과학 분야에서 딱히 다른 선진국보다 인프라가 낫거나 경쟁력 있는 분야가 없으므로, 그나마 국력적인 측면보다 개인기적 측면이 부각되는 문학상에 유독 포커스가 맞춰지는 점도 조금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말이다.[5]

특히 북유럽에서 그의 시는 꽤 높은 대접을 받는다. 노르웨이에서는 자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을 기린 비에른손 훈장을 수여했고, 스웨덴에서도 자국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뤼 마르틴손을 기리는 상인 동시에 동아시아권 문학에 주는 상인 시카다(Cikada)상을 수여하였다. 스웨덴의 한 언론매체 기사에서는 그를 군산의 왕(Kungen av Kunsan)이라 칭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든 노벨상 수상에서 계속 탈락했다. 게다가 2011년 수상자는 스웨덴시인인지라, 근 몇년간 시인이 해당되지 않아서 앞으로 시인 수상이 유력할 거라는 가능성도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돌려 말하면 가까운 해 안에는 시인이 수상할 가능성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지라 추후 고은의 수상 확률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2012년에도 또 후보에 올랐다고 했지만 수상자는 중국의 모옌(莫言)으로 결정되었다. 솔직히 밥 딜런도 올랐지만 못 받은 상인데 어쨌건 2010년대 수상자 중 벌써 시인과 아시아권 출신이 나왔으니 향후 10년 간은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같은 경우엔 아예 해탈했잖아?

참고로 노벨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매년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노벨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 순위권에 들었다는 것이다. 즉 후보 운운하는 것부터가 어떻게 보면 김칫국. 다만 래드브록스의 신뢰도는 제법 높은 편으로, 2006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의 수상을 맞힌 이력이 있다.

본인은 "노벨상에 대한 내 소감은 12년도 넘게 한번도 없다." 라고 한다. 노벨상 수상이 무슨 올림픽이나 엑스포 같은 이벤트 유치도 아니고 라는 의견. 결국 2013년에는 캐나다 여성 작가 앨리스 먼로가 수상하였다.

헌데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은근히 신경을 쓰신다고(...) 하기야 12년 동안 상을 받네 안받네 말이 많으면 당연히 신경쓰일수 밖에 없겠다...

1.3. 수상 경력

1974년 - 한국문학작가상
1988년 - 만해문학상 (시집 만인보)
1991년 - 중앙문화대상
2002년 - 은관문화훈장
2005년 - 노르웨이 국제문학제 비에른손 훈장
2006년 - 스웨덴 동아시아 문학상 시카다상

1.4. 작품 목록

1.4.1.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
<해변의 운문집> (1964)
<신 언어의 마을> (1967)
<새노야> (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1974)
<부활> (1975)
<제주도> (1976)
<입산> (1977)
<새벽 길> (1978)
<고은 시선집> (1983)
<조국의 별> (1984)
<지상의 너와 나> (1985)
<시여 날아가라> (1987)
<가야 할 사람> (1987)
<전원시편> (1987)
<너와 나의 황토> (1987)
<백두산> (1987)
<네 눈동자> (1988)
<대륙> (1988)
<잎은 피어 청산이 되네> (1988)
<그 날의 대행진> (1988)
<만인보(萬人譜)> (연작: 1986~1990)
<독도> (1995)

1.4.2. 소설집

<피안앵(彼岸櫻)> (1962)
<어린 나그네> (1974)
<일식(日食)> (1974)
<밤 주막> (1977)
<산산히 부서진 이름> (1977)
<떠도는 사람> (1978)
<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 (1980)
<어떤 소년> (1984)
<갠지스 강의 저녁노을> (1986)
<화엄경> (1991)

2.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의 2대 황제 폐제(廢帝) 고은(高殷)

북제의 역대 황제
2대 폐제 고은 3대 숙종 효소제 고연 4대 세종 무성황제 고담

묘호 없음
시호 폐제(廢帝), 제남왕(齊南王)
연호 건명(乾明)
고(高)
은(殷)
정도(正道)

545 ~ 561(재위: 559 ~ 560)

2.1. 출생

545년 동위에서 할아버지 고환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태어났다. 문선제 고양과 문선황후 이씨[6]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은의 친동생으로 고양의 차남소덕(高紹德)이 있었다.

2.2. 즉위하다

원래 할아버지 고환의 후계자는 큰아버지 고징이었다. 547년 고환이 죽자 고징이 뒤를 이어받았고 고징은 곧 동위의 효정제로부터 황위를 빼앗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49년 고징이 시종 난경(蘭京)에게 암살당했고 아버지 고양이 그 뒤를 이었으며 고양은 550년 효정제로부터 황위를 물려받아 북제를 건국했다. 즉위 후 고양의 아내 이씨가 한족이라는 이유로 황후가 되는 것을 몇몇 관료들은 반대했지만 고양은 이씨를 황후로 삼았고 고은을 황태자로 삼았다.

고은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사려깊었다. 예를 들어 그는 북궁에서 연회를 베풀어 사촌들을 초청했는데 고징의 아들 고효완(高孝琬)은 초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효완의 아버지 고징이 바로 이 북궁에서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적으로 도덕적인 관료인 허산수(許散愁)를 포상하고 많은 비단을 주었으며 고은 역시 스스로 도덕적이고 학문을 좋아했다. 한족 학자들과 교류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면 때문에 고양은 고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고은이 한족 문화에 영향을 받아 너무 유순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양은 고은을 폐위할까 생각도 했는데 한 번은 금봉대에서 고은에게 사형수를 직접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고은은 끝내 하지 못했고 채찍에게 얻어 맞았다. 이 사건 이후 고은은 공황장애가 나타나 마음이 떨리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후 고양은 만 먹으면 동생 고연에게 황위를 물려준다고 주정을 부렸기 때문에 계승문제가 일었다.

2.3. 고연이 대권을 손에 넣다

559년 고양이 죽기 전 고은이 너무 어려고 유순해 걱정하면서 고연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했다. 고연에게 너 황제하고 싶으면 가져. 대신 내 아들만은 살려줘.라고 말했으나, 고은이 뒤를 이었다. 고양의 유언에 따라 조정은 그가 신뢰하는 관료들인 양음(楊愔), 고귀언(高歸彥), 연자헌(燕子獻), 정이(鄭頤) 등 장악했다. 이 때 고연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고 황태후 누씨는 고연이 황제가 되기를 바라고 잇었다. 그래서 양음은 고연의 동생 고담(高湛)이 권력을 잡을까 두려워하여 그들의 권한을 빼앗으려 했다. 고은은 할머니 누씨를 태황태후, 어머니 이씨를 황태후로 높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짓기 시작한 궁전 공사가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중지시켰다. 고은은 제2의 수도이자 아버지가 머물던 진양(晉陽)에서 즉위했지만 560년 그는 업성으로 가려고 했다. 사람들은 삼촌인 고연과 고담을 진양에 남겨두는 줄 알았으나, 진양은 재상인 양음과 그의 신하들에게 부탁했다. 황제 일행이 업성에 도착하자 제국의 긴장이 더욱 높아졌다. 양음 일파로써 가주혼천화(可朱渾天和)는 고연과 고담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고은의 황위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연자헌(燕子獻)은 황족 일파의 가장 어른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태황태후 누씨를 가택에 연금시키고 태황태후의 권한을 태황후 이씨에게 넘기게 했다. 그러는 동안 양음은 조정의 개혁을 단행해서 무능하거나 필요없는 관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짤린 관료들은 양음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고연과 고담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람을 불어넣었다. 양음은 고연과 고담을 지방관을 보내 수도에서 내보내려 했지만 고은은 처음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양음은 태황후 이씨에게 편지를 써 보내 의견을 물었는데 태황후의 시종인 이창의(李昌儀)가 이 사실을 태황태후 누씨에게 일러바쳤다. 그녀는 이 사실을 두 아들 고연과 고담에게 알렸고 두 형제는 고귀언(高歸彥), 하발인(賀拔仁), 곡률금(斛律金) 등과 함께 매복을 했다.

2.4. 고연에게 양위한 후 살해당하다

고연의 지방관 임명식이 열리는 날, 이들은 양음, 가주혼천화, 송흠도(宋欽道) 등을 구타한 다음 사로잡았으며 고연은 궁으로 들어가 공식적으로 양음과 그 일파의 죄를 고하고 그 일파를 처형했다. 대권을 손에 넣은 고연은 곧 진양으로 돌아갔다. 가을, 고연과 태황태후 누씨는 황제를 폐위한다는 교서를 발표했고 고은은 폐위되어 제남왕으로 강등되었으며 업성의 별궁에 유폐되었다. 561년 9월 고귀언(高歸彥)은 고은이 힘을 길러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고연에게 고은을 제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듣고 고연은 고은을 진양으로 소환하고 에 독을 타서 고은에게 보냈다. 고은은 술을 마시기를 거부했고 결국 교살당했다.

그의 아내 이씨[7]고모는 고은의 모친 이씨로 이씨의 질녀였다. 고은의 아내 이씨는 남편이 죽은 후 570년 사망할 때까지 비구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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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8년부터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나, 2013년 현재 단국대학교 홈페이지 교수목록에 그가 없는 것으로 보아 퇴직한것으로 보인다. 퇴직한 시기가 언제인지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 [2] 자서전을 보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무성영화의 변사(당시의 성우 및 나레이터)를 하려고 했으나 처음 상영회에서 너무 떨어서 잘렸고, 그 후 인맥을 통해 중학 교사를 잠시 하다가 독경 소리에 나름의 깨달음을 알게 되어 입산했다고 한다.
  • [3] 신년목표를 하루에 소주 100잔 마시기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성공해서(...) 하루에 200잔을 목표로 잡았다는 일화도 있다.
  • [4] 일단 이문열 작가는 특정인물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부인했고 논란이 커지자 출간 단편집에서 제외했다.
  • [5] 다른 노벨상 분야와 달리 문학상은 남미 등 비유럽권에도 잘 분배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 [6] 이름은 이조아
  • [7] 이름은 이난승(李難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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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0 01: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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