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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last modified: 2015-03-21 00:58:35 by Contributors

高宗

이 묘호를 받은 왕들은 대부분 오래 살거나 재위 기간이 길었으나 재위 기간 내내 고난에 시달려 눈물없인 볼수없는 왕이다. 그러나 청의 건륭제는 예외.

Contents

1. 고려 고종 왕철
1.1. 소개
1.2. 재위기간"만" 길었던 왕
1.3. 여몽전쟁
1.4. 사망
1.5. 기타
1.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2. 조선 고종 이형
3. 전한 고종 유석
4. 전량 고종 장조
5. 서연 고종 모용충
6. 남제 고종 소란
7. 소량 고종 소강
8. 소량 고종 소통
9. 남진 고종 진욱
10. 북위 문성제 탁발준
11. 당 고종 이치
12. 남송 고종 조구
13. 청 건륭제 아이신기오로 훙리
14. 베트남 이조 리롱칸

1. 고려 고종 왕철

고려의 역대 국왕
22대 강종 왕오 23대 고종(충헌왕) 왕철 24대 원종(충경왕) 왕정

묘호 고종(高宗)
시호 고종충헌안효대왕
(高宗忠憲安孝大王)
왕(王)
[1] → 질(晊) → 철(㬚)
대화(大華)/법주(法柱)
배우자 안혜왕후(安惠王后)
아버지 왕오(王祦)
어머니 원덕왕후(元德王后)
생몰년도 음력 1192년 1월 18일 ~ 1259년 6월 30일
양력 1192년 2월 3일 ~ 1259년 7월 21일(67세 185일)
재위기간 음력 1213년 8월 무인일 ~ 1259년 6월 30일
양력 1213년 8월 27일 ~ 1259년 7월 21일(45년 339일)

1.1. 소개

고려의 23대 왕. 정식 명칭은 고종충헌안효대왕(高宗忠憲安孝大王)으로 의 칭호는 충헌왕이다. (뒤의 원종은 충경忠敬왕.) 강종의 아들. 최충헌의 적(嫡)매형이자 사돈 간이기도 하다. 최충헌은 부왕 강종의 서녀와 재혼하였는데, 아들 원종의 장인 김약선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사위였다.

1.2. 재위기간"만" 길었던 왕

고려 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길었다.[2] 하지만 그 기간 내내 권력을 최충헌을 비롯한 최씨 정권에게 빼앗기고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강도)로 옮기며 7번에 벌어진 몽골 침략에 시달리는 등 안습 크리를 자랑했던 왕.[3] 그래도 최충헌 집권 때 5살로, 최씨 정권의 흥망(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4대)을 모두 지켜본, 풍운(?)의 왕. 강화도에 들어와서 나오지 못한 채로 죽었다. 재위 기간 후반부 대부분을 몽골과의 전쟁으로 보낸 인물. 최씨 정권이 망하자 심한 낭비로 관리들의 상소가 좀 있었다고 한다.[4]

1.3. 여몽전쟁

고종 4년인 1216년부터 몽골의 고려 침입이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여몽전쟁 항목 참조.

유일한 업적이 있다면, 이 시기에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조판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비용은 최우가 댔다(...) 사실 뭘 하려고 했어도 최씨 정권이 정권을 잡고 있어서 할 수 있는게 없긴 했다. 막판의 낭비도 얼마 누리지도 못하고 갔고(...)

1.4. 사망

1.5. 기타

베트남 리왕조의 마지막 후예 중 하나인 이용상 왕자를 받아줘서 잘 대우한 군주이기도 하다.동병상련

1.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코에이징기스칸 시리즈에서 고려 군주로 자주 등장한다. 능력치는 안습. 특히, 원조비사 정발판에서 플레이 가능 군주로 선택이 되는데. 고증에서 오류를 겪고 있다. ##

2. 조선 고종 이형

고종(조선) 문서 참고.

3. 전한 고종 유석

전한의 11대 황제. 원제 참고.

4. 전량 고종 장조

威王 張祚, ? ~ 355년
전량의 7대 황제. 위왕의 묘호.

5. 서연 고종 모용충

威帝 慕容沖, 359년 ~ 386년.
서연의 2대 황제. 위제의 묘호.

6. 남제 고종 소란

明帝 蕭鸞, 452년 ~ 498년.
남제의 5대 황제. 소란 참고.

7. 소량 고종 소강

簡文帝 蕭綱, 503년 ~ 551년.
의 2대 황제. 소강 참고.

8. 소량 고종 소통

昭明太子 蕭統, 501년 ~ 531년.
양무제의 황태자의 묘호. 소찰이 추존

9. 남진 고종 진욱

남진의 4대 황제. 진욱 참고.

10. 북위 문성제 탁발준

북위의 역대 황제
4대 남안은왕 탁발여 5대 고종 문성황제 탁발준 6대 현조 헌문황제 탁발홍

묘호 고종(高宗)
시호 문성황제(文成皇帝)
연호 흥안(興安, 452년 10월 ~ 454년 7월)
흥광(興光, 454년 7월~ 455년 6월)
태안(太安, 455년 6월 ~ 459년)
화평(和平, 460년 ~ 465년)
탁발(拓跋)
준(浚)
생몰기간 440년 ~ 456년 6월 20일
재위기간 452년 10월 31일 ~ 465년 6월 20일

文成帝 拓跋濬, 440년 ~ 465년.

북위의 제4대 황제 문성제의 묘호.

남북조시대 북위의 황제이다. 재위 452~466(혹은 465). 위의 고종들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인물. 황제였던 조부 태무제환관에게 살해되면서 제위에 올랐다. 나름 명군인 태무제 정책을 이어받아, 선정을 떨쳐 북위 융성의 기초를 닦았다. 승려들을 떼로 생매장해 갱살(묻어 죽이다.)해버린 할아버님과 달리 불교를 부흥시켰으며, 윈강석굴을 건설했다.

윈강석굴 모습

여긴 아예 20대 요절이다..

11. 당 고종 이치

의 제3대 황제. 당고종 참고. 실권이 없던 것도 아니고 정치도 그럭저럭 잘했지만 아내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 치세가 조용히 파묻힌데다 훗날 그 아내가 나라를 잠시 빼앗기에 이미지가 안습.

12. 남송 고종 조구

남송의 초대 황제로 자세한 것은 송고종 참고.

금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아버지와 어머니[5] , 그 외 황족들을 잡아가고 영토는 반으로 쪼그라들었으니 역시 안습이다.

13. 청 건륭제 아이신기오로 훙리

의 제6대 황제 건륭제의 묘호. 고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군주들 중 가장 잘 나간 황제이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되면서 청의 몰락의 시대를 연 황제로 평가받고 있다.

14. 베트남 이조 리롱칸

1173년 ~ 1210년, 재위:1175년 ~ 1210년

이용한, Lý Long Cán, 李龍翰

이조(李朝, 리왕조 - 1009년 ~ 1225년)의 일곱번째 왕 혹은 황제. (베트남도 외왕내제 국가였다.)

보통 이고종(李高宗)이라고 한다. 이영종의 여섯째 아들. 이 사람도 막장이다.

증세와 부역을 강요하여 원성이 높았고, 1209년에는 내란으로 잠시 수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아들 혜종도 막장이라 진수도에게 폐위된 후 자진을 강요받고, 손녀 소황제와 진수도의 조카를 결혼시켜, 그 조카인 진경(쩐까인,陳煚)이 진태종이 되면서 월남의 진조(陳朝, 쩐왕조 - 1225년 ~ 1400년)가 세워진다. 여기도 30대 막장 사망..

쩐왕조가 세워지면서 이조의 후손들을 몰살시켰으나 용케도 살아남은 6대황제 영종의 아들 중 하나인 이용상 왕자가 무사히 고려로 달아나 화산 이씨 시조가 된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용상 왕자를 받아줘서 잘대우하던 고려 왕이 위에 나온 고려 고종.

이조고종.png
[PNG image (12.43 KB)]
징기스칸 4 일러스트

징기스칸 4에서는 시나리오 1의 이조 군주로 등장. 전용 얼굴까지 있는 등 나름 우대는 받은 듯하나 능력치는 그저 그렇다. 정치 51, 전투 48, 지모 55. 고려 명종보다는 높은 수준. 그런데 아들 혜종은 그야말로 능력치 시망. 후계자로는 아들 로또를 기대하거나 진수도를 사위로 삼아 후계자로 삼도록 하자. 어쩐 일인지 왕비가 소성공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 소성공주가 다름아닌 위에 언급된 '소황제'. 게임에서는 손녀와 부부로 설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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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瞋에서 눈목변 대신 날일변
  • [2] 46년, 2위는 37년의 문종, 3위는 33년 혹은 34년의 충렬왕.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8번째로 오래 재위했다.
  • [3] 최항 집권기에는 말 그대로 개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강화도로 도망갔던 최항은 미친듯이 술잔치를 열어제꼇는데 정작 고종 본인은 왕실 재산이 바닥나는 바람에 점심식사를 줄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일을 지시하기 위해 좌창별감 윤평(말 그대로 창고지기...)을 불렀는데 윤평은 두세번이나 쌩까고 오지 않았다. 그래도 왕이라고 고종은 분노하여 윤평을 파직시키려 했으나 '오늘 내쫒아도 내일이면 다시 복귀할테니 이게 뭔 징계냐'라는 말과 함께 그만두었다. 이쯤되면 진짜 허수아비보다도 못한 신세다
  • [4] 대궐을 나와 신하들 집에 머물면서 문을 걸어잠그고 미친듯이 바둑과 술잔치에만 빠져들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기준에서도 욕을 많이 먹었지만 특이하게도 고려사의 사관은 '최씨정권 밑에서 고생하다가 이제 살만해지니까 늙어 노망든거니 적당히 까여야 된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 [5] 현인황후 위씨. 이름은 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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