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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룡포

last modified: 2015-03-25 16:30:40 by Contributors

袞龍袍
곤뇽


좌: 영조의 홍룡포/ 중:태조의 청룡포 / 우:고종의 황룡포


홍룡포를 입은 영친왕 초상

임금이 시무복으로 입던 옷. 한국사람들이 흔히 왕이 입는 옷 하면 떠올리는 옷이 이 옷이다.
신숙주의 트라우마

Contents

1. 개요
2. 종류
3. 관련 이야기
4. 기타

1. 개요

곤복, 또는 용포라고도 한다. 단령 형식으로 되어있는 웃옷이다. 은 동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매우 성스러운 동물인데, 은 하늘의 자식이기 때문에 용으로 비유를 하였다고 한다.[1] 노란색, 또는 붉은색 비단으로 지었고, 황색 단(緞)이나 사(紗)에 붉은색 안을 넣었으며, 가슴, 등, 양어깨에는 보(補)라고 하는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을 붙였다고 전한다.[2]

참고로 649년 신라 진덕여왕이 중국식 의관을 채택한 이후 신라~고려 시대 국왕들은 단령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2년(1450년) 윤1월 7일의 기록으로 보면, "홍무 2년에는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공민왕(恭愍王) 전(顓)에게 구장 면복(九章冕服)을 하사하셨고..."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1369년(공민왕 18년)부터는 고려 왕도 곤룡포를 입게 되었으며, 이것이 조선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선 초기인 태조 어진이 청색인 것으로 보면 그 전대인 고려도 청색 곤룡포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2. 종류

왕의 보는 오조룡(五爪龍), 왕세자의 보는 사조룡(四爪龍), 왕세손의 보는 삼조룡(三爪龍)으로 하였다. 곤룡포를 입을 때는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옥대(玉帶)를 매며, 목화(木靴)를 신었다. 여름에는 대홍사(大紅紗) 곤룡포를 주로 입었는데, 조선시대 왕의 곤룡포는 주로 빨간색이었다. 이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향이 큰데, 조선왕조실록 선조 27년(1594년) 12월 25일 기사를 보면 “《대명회전(大明會典)》에는, 황제·황태자와 친군황세자(親郡王世子)는 모두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는데 황제의 곤룡포는 황색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적색인 것으로 되어 있고....... 면복(冕服)은....위로부터 세자에 이르기까지 그 제도가 대개는 같고 단지 장수(章數)및 물색(物色)의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명나라에서 황제의 곤룡포는 세계의 중심 중의 중심이란 의미에서 황색이었고, 왕의 곤룡포는 붉은색이었다. 황색은 곧 황제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선의 왕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피하고, 명나라 친왕과 동격인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었다고 한다. 붉은색의 의미는 강력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양기의 충만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왕이 입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이 대목을 두고 "사대주의 쩌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조선 태조 이성계 어진을 보면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는데, 원래는 다른 왕들처럼 붉은색 곤룡포를 입은 초상화도 있었다고 한다.# 참조 사극 중에서는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가 처음에는 청색 곤룡포를 입다가 홍색으로 바꾸는 것으로 설정했고, 왕의 남자에서는 연산군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청색 곤룡포를 입는 것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명나라도 초기에 청룡포를 입었고, 고려 왕실(우왕 이후)도 청룡포를 입었으므로 이를 계승한 것이며, 태종 3년(혹은 1년)에 조선 옥새를 받았다. (그때 세자도 청룡포를 입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룡포를 입기 시작한 것은 세종대왕 26년(1444년) 부터다. 세종 26년 기사를 보면 구장복뿐만 아니라 일상으로 입는 옷(상복常服/일상으로 입는 곤룡포) 및 그에 갖추어야 할 모든 부속 장식품까지 일습을 내린다. 또한 세종 32년 기사를 보면 대홍직금곤룡암골타운포(紗大紅織金袞龍暗骨朶雲袍), 나대홍직금곤룡포(羅大紅織金袞龍袍)라는 이름이 나온다. 여기서 홍직紅織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즉 붉은 색으로 짰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붉은색 곤룡포를 입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로 왕세자의 용포는 때까지는 붉은색이었다가 광해군 때 검은색 또는 아청색[3]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세자의 옷색깔이 아청책으로 확실하게 변화된 것은 현종 즉위년 5월 9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사왕(嗣王)이 평천관(平天冠)을 쓰고 검정 곤룡포를 입고 규(圭)를 받들고 여차에서 나오자...."라고 되어 있다.

Xuanzong_of_Ming-horz.jpg
[JPG image (305.2 KB)]

좌측은 명나라 선덕제, 우측은 그의 아들인 정통제의 어진으로, 원래 명나라의 황룡포도 조선의 홍룡포처럼 몸 앞뒤와 양 어깨에 용보를 붙이는 정도였지만, 정통제토목보의 변으로 폐위되었다가 천순제로 복위하면서 황제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용보의 갯수도 늘이고 원래 곤복에만 붙이던 12가지 문양[4]을 곤룡포에도 붙이도록 했다. 그래서 천순제 이후 명나라 황제들의 어진을 보면 곤룡포가 화려하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제국 체제에 맞추어 홍룡포는 황태자의 용포가 되었고, 황제는 황룡포를 착용했다.[5] 참고로 영친왕이방자 여사와 결혼한 후 귀국해 순종황제 부부를 배알할 때 입었던 것이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곤룡포 실물이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 관련 이야기

세종대왕 시절, 신숙주는 이 곤룡포를 이불로 사용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세종이 갸륵히 여겨 덮어준 것이긴 하지만, 신숙주에겐 왕보다 먼저 피곤해서 잤다는 정신적 벌칙(…) 본격 커맨드마패 능욕 겉옷을 덮고있는데 왜 이렇게 춥죠

시절,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치다가 피로와 추위에 쓰러졌다. 하필이면 수행원들도 얼마 안 되었고, 그들도 추위 때문에 왕을 모시고 떠나기 힘들었다.
그 순간, 근처 민가에 살았던 서흔남이 그를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가 임금을 업고 자기 집으로 모셨다. 따뜻한 곳에서 몸을 덥히니 임금은 정신을 차렸고, 그 서민을 치하하면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라."라고 하였다.
하지만 서민으로서는 일자무식인지라 뭐라 소원을 제대로 빌 수도 없었는데, 높으신 분의 옷이니 좋겠거니 생각하여 "전하께서 입고 계신 곤룡포를 주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인조는 그 자리에서 흔쾌히 곤룡포를 벗어서 주었다.
덕분에 그 서흔남은 곤룡포를 가보처럼 여겼고, 서흔남이 죽을 때 곤룡포도 같이 묻었다고 한다....잠깐 가보라며????가보처럼 여겼다고 했지 가보라고 한적은 없잖아 그리고 궁중의 의상 제작자들은 또 노가다를 해야 했다

포청천 시리즈 가운데 '이묘환태자'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송인종은 자신이 생모를 돌보지 못한 불효를 저질렀으니 그 죄를 어떻게 벌줘야 하는지 묻고 공손선생이 이에 곤장 수십대에 해당한다고 대답한다. 이에 황제가 스스로 곤장을 맞으려 하자, 공손성생은 곧바로 '황상의 곤용포는 곧 황상의 옥체와 같으시니 용포의 장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라는 굉장한 꼼수(...)를 말하고 송인종 대신 송인종의 용포가 곤장을 맞게 된다. 이묘환태자는 이 때문에 '타용포'라는 제목을 가지기도 한다.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곤룡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 나오기도 했다. 이 옷은 곤룡포를 현대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유럽문명권에서 예로부터 왕족, 군인 등이 입던 옷의 한 형태로서 지금도 유럽의 왕실에서 사용된다. 또한 미해병대의 정복도 이러한 형태다. 일본이 유럽식의 복장을 채용하면서 천황도 입었고, 우리나라의 고종황제도 곤룡포와는 벌개의 서구식의 황제복을 따로 두었다. 케이트 미들턴이 결혼할 때 윌리엄왕자가 입었던 옷도 이러한 형태다. 어깨에는 일반적으로 계급장이, 가슴부분엔 훈장이, 팔에도 계급장이 붙으며 전체적인 틀은 모든 나라가 거의 똑같다. 물론 색깔이나 들어간 무늬들은 나라마다 다르다.

4. 기타

여담으로, 원래 곤룡포는 한 번 입으면 태워버리는 일회용(…)이었다.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정조가 태우지 말고 그냥 빨아서 다시 입겠다고 한 기록이 있다. 저거 금실 수 놓으려면 개노가다일텐데. 역시 정조

어떤 만화의 어떤 직장에선 사장이 바뀐 후 직원들 제복으로 새로 디자인되어 쓰이고 있다.곤룡포의 굴욕 참고로 작가와 정식 계약되어 실제로 판매중(한때 자수 버전이 판매됐었으나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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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서인지 왕과 관련된 말을 보면 용과 관련된게 많다.(용안-얼굴, 용덕-덕성, 용포-옷, 용위-위엄 등)
  • [2] 보의 크기는 시대마다 다른데, 태조영조 등의 어진에 그려진 보는 매우 커서 가슴과 복부를 거의 다 덮을 정도이지만, 고종의 사진이나 영친왕의 실물 곤룡포 등 조선 말기의 보는 크기가 줄어들어 있다. 흥선대원군의 예복 간소화 정책의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 [3] 국내 사극에서는 완전 검은색보다는 어두운 자주색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 [4] 일(日), 월(月), 성신(星晨, 별자리), 용(龍), 산(山),화(火).화충(華蟲, 꿩).종이(宗彛, 동물이 그려진 옛 술잔), 조(藻, 해초).분미(粉米, 쌀알).보(黼, 왕권을 상징하는 도끼).불(黻, '己'자 두 개를 서로 반대로 하여 왕권을 상징하는 문양)
  • [5] 명나라 후기처럼 12가지 문양을 넣지는 않고, 명나라 초기처럼 심플한 황룡포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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