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공산당

last modified: 2015-10-14 05:28:09 by Contributors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당에 대립하는 특수한 당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실천적으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당의 가장 단호하고 언제나 추동적인 일부이다. 그들은 이론적으로 다른 노동자대중에 앞서 노동자운동의 조건, 경과, 일반적 결과에 대한 인식을 갖는다.
- 마르크스, 엥겔스(Marx, Angels) 『공산주의자 선언』


共産黨
Communist Party
러시아어: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 Партия

Contents

1. 공산당? 사회당? 공산주의? 사회주의?
2. 공산당(공산주의)의 역사
2.1. 러시아 혁명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2.2. 2차 세계대전 직후
2.3. 68혁명 이후 현재까지
3. 한국의 공산당
3.1. 일제강점기 활동
3.2. 해방 후
3.3. 한반도의 공산당 역사
4. 국가별 공산당
4.1. 오늘날의 공산당
4.2. 금지된 나라 및 금지였던 국가
4.3. 옛날의 공산당
5. 관련항목


1. 공산당? 사회당?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전적인 정의로는 공산주의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을 일컫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사회주의 정당 가운데 소련의 공식적인 승인을 얻어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공산주의 체계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정당만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즉, 소련이 망한 오늘날에는 공산당 역시 기반을 상실한 상태이고, 실제로 많은 공산당이 해체하거나 당명과 강령을 개정하여 전혀 다른 성격의 정당으로 변신하였다.

원시적인 형태의 공산주의 정당은 프랑스 혁명 시기의 르쿠스 바뵈프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실제로 공산당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러시아 혁명에 이르러서이다. 공산주의나 공산당이라는 이름 자체가, 200여년에 이르는 근대 사회주의의 계보 가운데에서 우리는 너님들같은 찌질한 보통 사회주의자하고 다른 우월한 인간임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스스로의 과학성을 자랑할 때도 그랬고,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면서 말뿐인 서유럽 사회주의자들을 비웃을 때도 그랬다.

따라서 어떤 집단이나 정당의 이데올로기가 (조직명/당명과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공산주의/공산당이라고 통용되는 성격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려면,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사상 가운데에서도 레닌이 주창한 소위 마르크스 - 레닌주의(ML)를 추종하면서, 조직적으로는 마찬가지로 레닌이 고안한 민주집중제적 혁명 전위 정당의 구조를 가진 정치조직을 부를 때만 써야 한다. 계급 독재나 폭력/평화 혁명론을 포기한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즉 영국 노동당이나,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등의 다른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은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국가/민족/성별보다 '계급'을 중시하며, 자본주의와 산업 혁명의 발달로 부르주아에게 집중된 생산수단을 박탈하여 공공화한 뒤 노동자가 필요한 몫을 받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실현되기만 하면 이른바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대다수의 민중에게는 전쟁도 없고, 종교도 필요없고, 모두가 형제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겠지만, 부르주아나 지주 같은 티부르주아들은 피 한 방울까지 착취한 다음에 모든 재산을 빼앗고 수용소에 처넣거나 집단농장으로 귀속시켜 반혁명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래야 다른 프티부르주아들도 노동자 계급에게 고분고분해진다고.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전세계...라기보다 유럽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2인터내셔널이라는 하나의 회의체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볼 때, 공산당과 르크스-레닌 주의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분열이 좌파의 일상이긴 했지만...

참고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공산당이라는 말 자체가 높은 확률로 윗쪽놈들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하나의 중국과 비슷한 '하나의 한국'이란 개념이 있어서 '북한'이란 말은 금기시 되어있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북한을 북한이라 하지않고 공산당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웃긴건 정작 윗쪽에는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없다는 것.[2]

2. 공산당(공산주의)의 역사

2.1. 러시아 혁명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서유럽사회주의 정당들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선거를 통한 집권에 근접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사회민주당(SPD)은 오랜 역사에다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정통성, 수많은 당원과 전국에 걸친 튼튼한 당 조직, 카우츠키, 른슈타인, 룩셈부르크, 리프크네히트 등 지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도자들을 갖춘, 그야말로 당대 서유럽 최강의 정당이었다. 이들이 모여서 열나게 치고박고 싸운 제2인터내셔널은 사회주의를 넘어 당대의 사상적 흐름을 주도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회주의자들은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자는 기존의 합의도 산산조각내버린 채, 서로 상대편 국가의 전제적 통치를 비난하며 애국자로 돌변했다. 당연하지만 전 국가가 전쟁을 향해 달려가는 총력전 시기에 반전 운동은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게 될 테니까. 이렇게 사회주의도 결국 근대 국가 체제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좋은 사례를 남기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 사회민주당은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남과 함께 일단 집권에 성공했다. 한편, 전쟁 말기에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독일 군부의 의도로 레닌이 러시아로 귀국하여 혁명을 주도하였고, 전쟁 대신 혁명을 선택한 소비에트 러시아와 레닌이 독일 사민당 정부보다 조금 일찍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 사민당 정권은 독일 패전의 멍에 때문에 빛이 바랬고, 민주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단독 집권이 아니었으므로 마르크스 주의에서 바라는 혁명과는 거리가 있었다. 반면 러시아는 완전히 공산당 당독재 정권이 성립되었다.

러시아에서 그때까지 이론적으로만 존재했던 사회주의 공산국가가 탄생하자, 기존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과는 다른 충격을 받은 많은 지식인과 노동자들은 러시아 공산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이에 독일을 필두로 서유럽, 중유럽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국가에서 공산당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전후의 우울한 사회상에다 기존 사회주의 정당들이 움츠러든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들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에 공산주의 정당들만 급격히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만. 또한 이 시기, 사회주의 이념이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로 널리 전파되면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물론 당시 일제 치하조선에도 공산당이 설립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시기 공산당 최대의 위험 요소는 다름아닌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집단지도체제에서 정권을 잡을 때 트로츠키, 하린, 노비에프 등 적어도 스탈린 자신보다는 훨씬 똑똑하고 활동력 넘치는 동지이자 경쟁자들을 그 특유의 음험한 책략으로 모두 제거하고서야 레닌의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뒤가 구린 스탈린은, 특히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이 컸던 트로츠키의 지지세력을 말살시키기로 마음먹고, "한 국가에 존재할 수 있는 혁명 전위 정당은 오직 단 한개의 공산당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 여러 정당 가운데 어느 정당을 공식적인 공산당으로 인정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라는 이뭐병스러운 지침을 내리게 되었다. 이 지침 탓에 각국의 공산주의 세력은 자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게 된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든 스탈린의 간택을 받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떠는 딸랑이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

어쨋거나 다른 사민주의 정당과 타협하지 말라고 했다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자기 말을 우걱우걱 쳐묵고 사민주의는 고사하고 중도 자유주의 세력까지 끌어모아 민전선을 결성하라고 하질 않나, 그렇게 인민전선으로 집권하자마자 보수파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난 스페인(스페인 내전)은 나치 독일 눈치 보느라 찔끔찔끔 도와주는 척만 하질 않나,[3] 그러다가 좀 도와주나 보다 싶더니 갑자기 총구를 돌려 인민전선 내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공격하는 팀킬을 지시하질 않나,[4] 스탈린이 1930년대에 저지른 병크는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5]

뭐 이런 갖은 병크 끝에 결국은 독일한테 수도 모스크바 코 앞까지 털리는 개망신을 당했으니 자업자득이랄까.. 여러모로 불쌍한 것은 소련 인민들 뿐이다.

2.2. 2차 세계대전 직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공산당이 이러한 1930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덕택이었다. 독일이 북으로는 노르웨이서부터 서로는 프랑스, 동으로는 폴란드, 남으로는 그리스까지 전 유럽을 제패했을 때, 독일 세력하에 놓이게 된 타국인들은 저항은 하고 싶은데 마땅히 참여할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고, 이 때 가장 먼저 반독 저항운동에 앞장 선 것이 각국의 공산당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던 당시 독일 점령지의 공산당 조직들은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고 나치의 점령 통치에 대한 침묵 내지는 암묵적인 협조로 일관한 까닭에 독일군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 장기간 세력을 보존하며 미래에 대비할 수 있었다.

물론, 독소전쟁이 터지자 독일 점령지 내의 공산당 조직들은 곧장 지하로 들어가 처절한 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국내에서 레지스탕스를 앞장서서 주도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세력이 바로 프랑스 공산당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한 이후 이탈리아 공산당이 주도하여 반독 무장 항쟁을 벌였으며,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로 격렬한 무장 저항운동을 벌였다. 오히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 유럽에서는 공산당의 세력이 미미했지만, 이 지역은 소련에 가깝다는 점 때문에 소련의 후원을 업은 공산주의 조직들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는 국공합작, 국공내전, 중일전쟁대장정 항목 참조.

이러고 보니 1945년이 되자,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붉은 깃발이 휘날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자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이 하는 짓거리는 비슷해서, 미국과 영국은 스탈린에게 핵무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빅딜을 제시했다.[6]

  • 일본은 우리꺼.
  • 독일은 우리끼리 나눠먹음(동독/서독).
  • 유럽에서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동쪽은 전부 스탈린 너네꺼. 나머진 우리꺼.
  • 유고슬라비아는 일단 냅두기로 함.
  • 대신 그리스랑 터키는 우리꺼임.
  • 한반도38선 그어 나눠먹음.

한마디로 세계지도를 놓고 땅따먹기를 한 건데, 스탈린이 오케이 싸인을 날리자 실제로 세계가 저렇게 분할되었다는 것이 좀 무섭다. 어쨋거나 저 약속은 잘도 지켜져서, 스탈린은 그리스 공산당이 영국의 후원을 업은 그리스 임시정부에게 떡실신 당하는 꼴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고, 윈스턴 처칠도 전쟁 내내 영국을 지지한데다 상당한 규모로 대독전쟁에 참전하기까지 한 폴란드 망명정부를 나몰라라 배신했다. 이건 뭐...

여하튼 이 결정을 바탕으로,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동유럽 각국에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단숨에 공산주의를 채택한 국가 수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로서 소련도 히키코모리 신세 탈출! 또한 연합국의 세력하에 포함된 서유럽 각국에서도 공산당의 위신이 크게 신장되었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과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전후 선거를 통해 순식간에 제1야당 규모로 성장하였다. 실로 인류가 가장 사회주의에 근접했던 순간.

그러나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시작되는 순간, 공산주의는 그 전성기를 다했다. 실제로 경제력에 있어서 소련은 한 순간도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가장 근본적인 경제력 차원에서 후달리다보니 경제력 차이를 메우기 위해 동맹국 쥐어짜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각지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운동을 원조할 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적 딜레마에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국익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로만 듣고 꿈에서만 보던 소말리아, 모잠비크, 앙골라 같은 아프리카의 수많은 듣도 보도 못한 민족과 나라들의 공산주의 혁명 운동을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일일이 규합해주고 지도해가며 지원까지 해줘야 했다. 또한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나 위성국가 굴려먹는데는 이골이 난 서유럽 열강들과 달리, 내부 식민지인 시베리아 말고는 해외 진출 경험도, 국제적인 리더 경험도 없는 소련의 무식한 동유럽 정책은 동유럽 국가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반발을 무력을 내세워 진압하면서(1956년 헝가리 진압,프라하의 봄) 국방비 지출이 늘고 소련의 위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2.3. 68혁명 이후 현재까지

또한 서유럽에서도, 거대 정당으로 성장한 서유럽 공산당이, 실상 규모가 커진 만큼 체제 내에서의 안락한 위치에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68운동으로 불리우는, 기존 체제에 대한 전후세대의 격렬한 저항 앞에서 공산당은 오히려 기존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총대를 맨 것. 공공시설을 점거한 학생들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신공격한다든지, 공산당 주제에 노조에게 파업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이게 공산당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정도.나의 공산당은 이렇지 않아!

물론 프랑스 공산당이야 이런저런 병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도덕성의 우위-결정적으로 나치에게 대항했던 공적-가 있어서 아직 세력 기반이야 든든했지만, 이런 사건들이 동유럽에서 소련이 무력으로 시민들의 요구를 짓밟은 사건들과, 중국 문화대혁명의 병크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공산당과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 베트남쿠바에서 사회주의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것이 미국에게 실점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소련에게 득점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약체화된 서구 각국의 공산당은 1970년대 경기침체를 겪으며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역습에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백기를 들었고[7], 동유럽 공산국가도 1989년 도미노처럼 붕괴하고, 소련마저 1991년 홀라당 망하면서 공산당의 수명도 다하게 되었다. 서유럽 최대의 공산당이던 이탈리아 공산당(PCI)이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좌익민주당으로 재창당을 선언한 것이 하이라이트.[8][9]

물론 현재까지도 각국에 공산당은 잔존하고 있으며, 공산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가 급격히 도입되면서 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유럽에서는, 공산당이 다시 세력을 키우거나 당명을 바꿔서 다시 집권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사상적 지향 자체가 소멸한 지금, 남아있는 공산당이 과거의 공산당과 같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서유럽에 남아있는 공산당의 경우를 보면, 기존에 주장하던 공산주의는 망했는데 생태주의나 (성 소수자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페미니즘과 같은 새로운 좌파적 가치를 지향하자니 다른 좌파 그룹들에 비해 너무 구닥다리인데다 과거의 실패가 있어서 사람들이 안 쳐다보는 곤란한 상황이고, 동유럽의 공산당은 특정한 사상적 지향이 있다기보다는 공산주의 시절을 '좋았던 옛날'로 추억하는 이들의 표를 노리는 보수파 정당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상황은 영 좋지 않은 편. 독일의 좌파당이 구 동독의 공산주의 세력을 후신으로 성공한 케이스에 속하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에서만 지지가 높은 편. 수도권 정당 그 이외에도 몰도바와 키포르스에서도 공산당이 집권한 예가 있다.

이 와중에 현재의 중국 공산당과 같은 미묘한 변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단 현재까지는 소수의 집단지도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개발독재... 정도로 평가해 볼 수 있겠지만 역시 앞으로의 역사가 이들의 성격을 말해줄 듯 하다. 역시 여러모로 흥미로운 대륙.

일본 공산당은, 과거에는 진짜 공산당이었던 시절이 있지만 현대에 들어서 온건한 사민주의 좌파 정당이 되었다.[10]

미국의 공산당은 사회당(1972년 해체)과 달리 아직도 존재하는 정당이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쇠퇴한데다, 현재 하원 한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약소정당 중 하나다. 선거제도가 개편된다면 모를까, 양당체제가 확실히 잡혀 있는 현재 미국 정치계에서 이들의 입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3. 한국의 공산당

3.1. 일제강점기 활동

한국 공산당의 역사는 고려공산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년에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창범의 주도하에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소련)이 설립되었고, 192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내 좌파와 이동휘의 주도로 상해파 고려공산당(중국)이 설립되었다. 이르쿠츠크파가 볼셰비키 속성이 강했다면, 상해파는 중국공산당처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단체 성향이 강했다. 그리고 레닌한테 200만루블 타내기 한편 조선에서는 박헌영 주도로 조선공산당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스탈린의 지침에 더해 충분한 토론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관계로 공산당 내 파벌다툼이 장난아니게 이루어졌고, 조선 내부 공산당이 이러한 경향이 특히 심했다. [11] 화요파, 엠엘파, 서상파 등등 여러 파벌들이 난립하여 다퉜는데 이런 다툼은 조선 내 민족운동가들에게 "공산당은 분열을 일삼는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에 한몫했고, 이는 해방후 명망가들이나 직접 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했던 준연 (ML파)나 장덕수 (상해파) 등의 반공 정서 형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12] 한편 이러한 공산당의 과거는 북한에게 "종파주의를 없애기 위한 1인 영도자 체제 구축"의 빌미를 마련해주었고, 김일성은 종파숙청 명분을 내세워 김일성주의 아래 사이좋게 연안파, 남로당파, 갑산파 등을 숙청하였다.

해외의 한인 공산당도 정통성 문제를 두고 파벌대립을 하였는데, 제1차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임시정부와 항일무장투쟁 단체에서 용공-반공을 둘러싸고 대립이 일어났다. 우선 임시정부의 경우 김구, 완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보수층은 혁신세력 및 소장파들이 공산당을 받아들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러한 갈등은 제 2차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에서 증폭되었다. 결국 고려공산당을 만든 이동휘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쫓겨났고 심복 김립은 상해 한복판에서 김구가 보낸 청년들에게 암살당했고, 고려공산당 회원 여운형은 동남아로 떠나버렸다.

한편 무장투쟁 쪽에서도 용공-반공의 대립이 있었다. 반공성향이 강하여 중국 국민당군과 협력하려했던 이범석, 지청천의 한국독립군, 중국 공산당군과 협력하려했던 김두봉의 조선의용군 세력은 용공-반공 문제를 두고 합작을 꺼렸고, 김원봉은 사상보다 항일투쟁과 민족해방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여 국공합작 시기에 양쪽의 군사협력을 추진하였다.

3.2. 해방 후

해방 후 한반도가 38도선으로 갈리고 남한과 북한의 공산당은 갈림길을 걷게 되었다. 남한의 경우 박헌영이 공산당 활동을 주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운형과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심하게 다투었다. 여운형은 통일임시정부 수립부터 하고 난 뒤에 사회 체제는 인민들에게 물어도 된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박헌영의 경우 마르크스-레닌 주의에 기반한 폭력적인 공산주의 혁명이 우선이었기 때문.

특히 좌파정당 3개를 합당하여 남로당으로 개편했을 때 박헌영이 공산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지도부를 편성을 하여 남로당은 비공산적 요소가 거의 없게 되었다. 결국 여운형은 박헌영과 싸우다가[13] 좌우합작운동을 원활히 하고 미소공위를 성사시키기 위해 남로당을 탈퇴해 근로인민당을 창당했으나 2달만에 암살당했다. 중도파 여운형마저 없어지면서 남로당은 더욱 좌성향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군정 체제에서 공산당 활동이 용이할 수가 없었고, 남로당의 활동은 큰 제약을 받았다. 박헌영은 결국 월북해버렸고, 남한에 남아있던 남로당원들이 폭력투쟁으로 저항하였으나 ...(대구 10.1사건 참조) 반공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정부 요직에 있는 상황에서 무자비한 색출이 진행되어 남로당에 호응했던 사람들 혹은 남로당에 몸을 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까지 학살당하거나 (여순사건, 4.3 사건, 보도연맹 사건 참조) 월북하거나[14] 지하로 숨어버리면서 남로당은 제1공화국 때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거치게 되자, 수십년간 국시는 반공이 되었다.

북한의 경우, 앞서 중국과 소련 등지에서 활동하였고 용공의 입장에 있었던 빨치산 부대들이 해방 후에 들어왔고, 소군정은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웠다. 북한 또한 공산당이 그렇듯이 무수히 많은 파벌이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김일성은 종파주의 숙청 명분을 내세워 김일성주의 아래 빨치산파(라고 쓰고 김일성파로 읽는)를 제외한 모든 파벌들을 숙청하여 사실상 김일성-김정일을 위시한 조선노동당 유일 체계를 확립했다. 거기에 더해 주체사상, 부자세습...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3.3. 한반도의 공산당 역사

4. 국가별 공산당

4.2. 금지된 나라 및 금지였던 국가

  • 대한민국 - 윗동네 때문에 그 작자들과 관련없는 멀쩡한 공산당도 만들 수 없다. 국가보안법에는 공산당 자체를 금지한다는 조항은 없어 합법적으로 공산당을 만들 수는 있지만, 국민들에게는 이미 "공산당 = 나쁜놈"이라는 인식이 뿌리박아서 사실상 활동이 불가능하다. 하여간 윗동네 하나때문에 참 시끄럽단말야... 사실 북한이 김씨 일가의 왕조국가라 멀쩡한 공산당을 만드는 것 자체부터가 윗동네 작자들을 극도로 혐오한다던가 하는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 태국 - 1952년 쁠랙 피분송크람의 군사쿠테타로 인해 반공법이 제정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쑤가 쿠테타의 나라

  • 중화민국대만 1949년 국공내전에 패배한 중국국민당이 타이완에 정부를 세우고 정통성 확립을 위해 반공법이 제정되었으나, 1987년 민주화 이후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공산당 자체는 합법이지만 중국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을 만들 수는 없다.


  • 독일 - 비스마르크 독일제국 당시 반공법이 존재하였으나,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 이후 폐지되었다가, 나치독일때 다시 반공법이 부활하였고, 패망이후 서독에서 공산당 활동은 불법이였으나, 통일 이후에는 동독의 공산당의 후신이 존재한다.

4.3. 옛날의 공산당

5. 관련항목

----
  • [1] Party가 흔히 생각하는 신나는 파티뿐만이 아니라, 정당이나 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는것을 이용한 개그.
  • [2] 사실 조선로동당의 전신 중에 조선공산당이 있었지만 그것도 북한이 세워지기 전이다.
  • [3] 그것도 독일 국내에서 나치의 탄압에 의해 독일 공산당이 사실상 와해된 와중에도 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 [4] 이것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 [5] 중국 공산당이 이런 스탈린의 병크를 극복하고 결국 내전에서 승리한 단 둘 뿐인(나머지 하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은 스탈린이 간섭하기엔 중국이 모스크바에서 너무나 먼 곳이었고 스탈린이 파견한 정통 모스크바 공산주의자들이 실제로는 무능의 극을 달려 실권하고 모택동과 같은 토종 공산주의자들이 중국내 혁명적 세력을 규합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유고슬라비아는 냉전기에도 독자행보를 취할 수 있었다. 한편 북한은 후에 주체사상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응?
  • [6] 물론 한방에 제시한 것은 아니고, 여러번 회담을 거듭하여 조정을 거쳤다.
  • [7] 그나마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과 손을 잡아 1981년에 드디어 1940년대 이후 오랜만에 집권하긴 했지만 연립대상인 사회당에 밀려 당세가 크게 쇠퇴하였다. 지금은 타 좌파세력과 손을 잡아도 하원에서 단 10석을 확보하는 정도. (참고로 프랑스 하원 총의석은 577석) 한때 100석 넘게 확보했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
  • [8] 이 때 해산을 결정한 마지막 전당대회가 볼로냐에서 열렸고, 그 때문에 아직도 유럽 각지에서 볼로냐 꺼져 등의 낙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9] 뭐, 그래도 몇년 뒤에 드디어 만년 야당신세에서 벗어나 집권하긴 했다. 상대당이 베를루스코니라는게 문제였지만...
  • [10] 일본의 좌익은 극성맞았던 전학공투회의가 대타격을 받은 이후로 잠잠해졌다. 뭐, 전공투와 공산당의 사이가 많이 안 좋긴했지만.
  • [11] 일제강점기 때 공산당 활동은 국가체제전복 혐의가 적용되는 중죄였으므로 걸리면 감옥행이었다. 이러니 편안히 토론할 수 있을리가 만무하였고, 국내 공산당원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지하에 숨어서 이론서나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니 박헌영 같은 이론가가 나오는 것이다.
  • [12] 임시정부 봉대를 내세운 한민당 인사들이 주로 이러한 입장을 견지했다.
  • [13] 박헌영은 이 때 공산당의 험한 꼴은 다 보여주었다. 건준에 ?프락치 를 넣는다거나, 조선인민당에 프락치를 넣는다거나, 사회노동당에 프락치를 넣는다거나, 나중에는 근로인민당에 프락치를 넣는다거나...
  • [14] 이들은 북한에서 남로당파를 형성하였다.
  • [15] 허정숙은 허헌의 딸로, 연안파였다가 김일성파로 건너가서 숙청되지 않았다.
  • [16] 다만, 세력이 작아서인지 정당이라기 보다는 시민단체에 가깝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10-14 05:28:09
Processing time 0.152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