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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부성

last modified: 2015-04-14 18:04:2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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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부성(郭富城, Aaron Kwok Fusi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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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사진으로 갑자기 유명해졌다.몸좋네, 한국나이 51의 위엄!


Contents

1. 개요
2. 음반
3. 근황

1. 개요

홍콩출신의 가수 겸 배우. 1965년 10월 26일 생.

1984년 홍콩의 TVB 무용단 전속댄서로 연예계 입문. 당시 유명 가수들의 백댄서로 방송에 출연하는 등 TVB 무용반에서 확실한 댄서로 자리를 굳히게 되나 댄서로써의 미래는 그닥 밝지 않았기에 1987년 TVB 연기반에서 연기 수업을 쌓게 되고 다수의 TVB 드라마와 영화에 단역 혹은 조연급으로 간간히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잘난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2]

아무튼 길고 긴(?) 무명시절을 거쳐서 1990년 4월. 대만의 광양 오토바이 CF에서 스타덤에 올라(인생 한방이다!) 1990년 9월 니애불완 앨범으로 댄스가수로 정식 데뷔, 첫 앨범이 30만장이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하며 대만에서 그해 최고의 신인으로 입지를 굳힌 후 1991년 "아시불시안정적주개", "도저유수능구고소하"[3]의 앨범을 연속 히트 시키며 대만에서는 탄탄한 인기를 구축하게 되며 1992년 초 3개 앨범의 정선집(베스트)이 발매되기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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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리즈 시절. 2집 앨범 자켓. 당시 3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그후 다시 홍콩으로 인기를 몰아오면서 가수, 배우, 모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일명 유덕화, 여명, 장학우와 함께 홍콩 4대천왕중 한 명으로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중이다.

한국에서는 영화배우로 더 알려져 있지만, 사실 중화권에서는 가수로써 더욱 입지가 탄탄한 편이다.

대만에서 3개의 앨범(국어)을 동시에 히트시킨 후, 홍콩으로 돌아와 발표한 "도불완 애불완 창불완"[4]이 메가히트를 기록하면서 그 해(1992) 미스홍콩 대회의 네명의 게스트 중 한명으로 초청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함께 출연한 유덕화, 장학우, 여명과 함께 멋진 공연을 펼쳤고 이를 계기로 80년대 알란 탐(담영린), 매염방, 장국영의 트로이카 체제 이후[5] 새로운 패러다임을 갈망하던 홍콩 미디어에 의해 4대천왕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고 아직도 이들은 이 카테고리로 회자된다.

당시 곽부성은 다른 천황들에 비해 경력이나 인기, 모든면에서 과연 '천왕'의 자질에 부합한가를 놓고 말이 상당히 많았으며 그냥 '어쩌다 방송 한번 잘타서 거물급들과 하나로 묶인 행운아', '춤이나 외모 빼면 볼게 없는 천왕'이라는 조소를 항상 달고 살았으며[6] 이는 그가 "애적호환"으로 1997년 TVB 경가금곡 최고 남자가수상을 받음으로써 이 모든 비판을 일축시키기 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하나의 '장벽'이었다.[7]

1993년. TVB 전속계약 만료[8]에 즈음하여 여러 음반사들의 러브콜이 쇄도했지만 결국 그는 TVB 프로듀서 출신인 기획자 "소미"와 손을 잡고, 당시 유덕화 등이 소속된 "홍콩 워너(Warner)뮤직"으로 소속사 이적을 하게 된다. 곽부성의 연예계 생활은 바로 "소미"를 만나면서 바뀌게 되는데[9] 당시 대만에서 데뷔하여 홍콩에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한 임지령[10]에게 밀리는 분위기였는데 소미를 만나자마자 나온 노래가 곽부성 일생의 노래인 "광야지성". 앨범은 94년 1월에 발매되지만 곡 자체는 93년 10월부터 이미 전파를 탔고 노래가 말도 안되게 히트해 버려서 그 해 연말 시상식에선 없던 상까지 만들어서 그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긴다.[11]
한 마디로 소미 아니었음 천왕에서 하차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저 그런 연예인임지령한테도 밀리는에 그쳤을듯.


곽부성의 94년 광동어 앨범 광야지성 표지


곽부성과 임지령. 93년으로 추정됨. 곽부성이 1965년생. 임지령이 1974년 생

94년 워너 이적 후 지나치게 다작하던 영화를 줄이고 가수로써 보다 매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다른 스타 연예인들처럼 광동어-국어 앨범을 동시에 내기 시작했고 이후부터 숨가쁜 "커리어 쌓기"가 시작된다.

2. 음반


ERA시절

1990년
  • 9월 對你愛不完_대니애불완(국어)
1991년
  • 4월 我是不是該安靜的走開_아시불시해안정적주개(국어)
  • 10월 到底有誰能夠告訴我_도저유수능구고소아(국어)
1992년
  • 7월 跳不完。愛不完。唱不完_도불완 애불완 창불완(광동어)
  • 8월 愛你_애니(국어)
1993년
  • 1월 把所有的愛都留給你_파소유적애도유급니(국어)
  • 5월 沒有你的愛_몰유니적애(광동어)
  • 10월 夢難留_몽난류(국어)
  • 12월 Merry x'mas(광동어)


1994년 워너 이적 후 앨범

1994년
  • 1월 狂野之城_광야지성(광동어)
  • 2월 夢的盡頭 就是天涯_몽적진두 취시천애(국어)
  • 5월 天若有情II天涯凝望_천장지구 2 OST
  • 6월 渴望_갈망(국어)
  • 9월 鐵幕誘惑_철막유혹(광동어)
1995년
  • 1월 我的開始在這裏_아적개시재저리[12](국어)
  • 6월 純真傳說_순진전설(광동어)
  • 9월 風不息_풍불식(국어)
  • 12월 備忘錄_비망록(광동어)
1996년
  • 6월 信鴿_신합(국어)
  • 8월 聽風的歌_최격제국 EP(광동어)
  • 10월 聽風的歌_청풍적가(광동어)
1997년
  • 4월 誰會記得我_수회기득아(국어)
  • 7월 愛的呼喚_애적호환(광동어)
  • 10월 愛定你_애정니(국어)
1998년
  • 1월 唱這歌_창저가(광동어)
  • 6월 風裡密碼_풍리밀마(광동어)
  • 10월 一變傾城_일변경성(광동어)[13]
1999년
  • 5월 渴望無限Ask For More EP_갈망무한(국어, 광동어)
  • 8월 遊園驚夢_유원경몽(광동어)
  • 10월 真的怕了_진적파료(국어)
2000년
  • 4월 旅途、愉快_여도,유쾌(국어)
  • 9월 著迷_저미(광동어)
2001년
  • 1월 無忌vs未來_무기 대 미래(국어, 광동어)[14]
  • 7월 新天地_신천지(광동어)
  • 12월 Absolute 絕對_절대(광동어)[15].
2002년
  • 6월 爆裂旋風EP_폭열선풍(광동어)
  • 8월 愛.情大舞台_애정태무대(국어, 광동어)
  • 12월 空手道_공수도흑역사(광동어)
2003년
  • 8월 In the still of The Night(광동어)
2005년
  • The Matics(국어, 광동어)
2006년
  • My Nation(국어)[16]

이 와중에 94년 "광야유혹 연창회(16회)", 96년 "최격 연창회(20회)"를 성공리에 개최하고 해당 년도에는 한국에 내한하기도 했다.[17]

3. 근황


그렇지만 21세기 들어서 '4대천왕'도 추억 속의 카테고리가 되어버렸고 지금은 각자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들을 벌이고 있는 거물급 연예인들이 바로 '4대천왕'들의 현주소이다.[18]

일단 홍콩의 인기 가수라면 당연히 치뤄야 하는 '연창회'[19]가 가장 볼만한 가수로 평가된다. 사실상 유일무이한 솔로 댄스가수이며 기본적으로 볼거리들이 공연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최고의 쇼로 화자된다.[20] 5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2008년 무림정전 연창회 포스터

<흑도영웅>, <신조협려>, <천약유정2>,[21] <호문야연>, <천면은호>, <초류향>, <적각소자>,[22] <낭만풍폭>등의 액션물에서 우수에 젖은 큰 눈동자의 강인한 청년 이미지 역할을 하였으며 1998년 작품 <풍운>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신조협려, 천약유정2, 적각소자, 낭만풍폭, 풍운 정도.


신조협려. 외눈박이 살수 "은호"역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작은 드라마 <지도 - 무림계시록(風之刀 武林啓示錄)>. 국내 발매사는 90년대 홍콩 드라마 발매의 전설을 쓴 그 곳.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며 국제적인 카레이싱 대회에 선수자격으로 참가할 정도의 스피드광이며 수준급의 스키 실력 등을 과시한다. 심지어 그의 최전성기인 1998년 연창회가 끝나자마자 짧은 휴가를 얻자마자 달려간 곳은 카레이서 라이센스를 딸 수 있는 서킷이 있는 말레이시아.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 가서 경비행기를 꼭 몰겠다고 하여 매니저인 소미를 멘붕에 이르게 하였다. 이쯤되면 병이다.


자타공인 레이싱 빠 곽부성. 류시퍼와 한 컷

2000년대 이후 영화에서의 모습은 과거의 강인한 청년 이미지에서 제법 벗어난 느낌. 여전히 강인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보니...엽기 살인마같은 역도 맡으며 연기 폭을 넓히려 하고 있다. 2005년 "삼차구", 2006년 "아버지와 아들"로, 대만 금마장(한국의 대종상 같은)에서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안 늙는다...

최근 6년 동안 사귄 웅대림과 결별하였는데 이유는 그녀가 신인시절 찍은 포르노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내린 결단이겠지만, 한 때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를 공개적으로 비난까지 한 것은 글쎄...

참고로 국내 순정만화가 은혜의 작품 <BLUE>에 나오는 인물 '승표'는 곽부성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천장지구 2편에 나오던 곽부성의 비쥬얼이나 분위기와 아주 흡사하다.

한국에선 홍콩 영화가 인기 끌던 시절의 끝물에 가까스로 떠오른 연예인이라 일반적으로는 "나이는 많지만 잘 생긴 영화배우" 정도의 인지도지만 홍콩에서는 "전설적인 댄스 가수"이며 중화권을 통틀어 꽤나 유력한 영화인의 한사람이다. 단지 그가 음반 쪽 전성기를 구가할 1997-1999년에는 사실상 홍콩 음반이 한국에 거의 발매되지 않았으며 영화쪽 전성기인 2005-2006년에는 홍콩 영화 자체가 한국에 수입되질 않았다. 한국의 곽부성 팬들에겐 꽤나 안습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여러모로 한국과는 아쉬운 연예인.[23]

2013년 11월 22일에 방송된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출연하였다.

2014년, 그는 나지상(罗志祥) 채의림(蔡依林) 오막수(吴莫愁) 등 젋은 세 사람과 함께 펩시 광고용 뮤직비디오인 <Shake Your Body>를 찍었다. 79년생과 80년생인 나지상과 채의림을 제외하고도 오막수는 90후 대표 연예인이다. 65년생이라는 만만치 않은 나이에도 엄청난 열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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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외래어 표기법으로 따지면 보통화 발음으로 궈푸청이지만, 홍콩계 인사이므로 꿕뿌쎙이라 해야 하는게 맞다.
  • [2] 굳이 흠을 잡자면 잘생긴 얼굴에 비해, 키가 매우 작아-실제로는 167~8cm 정도에 불과- 여러배우들과 동시에 화면을 잡았을때,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었으며, 목소리가 하이톤에 그닥 매력적인 보이스는 아니었다. 초창기 국어 2집까지는 완전 미성 스타일로 노래를 불렀으니 말 다했다!
  • [3] 사실 이 노래는 오자키 유타카의 "I Love You"의 번안곡이다. 하지만 앨범에는 당시 곽부성의 국어 앨범을 총 지휘하던 진수남의 곡으로 실려있다.이유는 불명. 저작권료 굳었다!
  • [4] 광동어 1집이다.
  • [5] 80년대 3인방이라 불린다.
  • [6] 사실 유덕화와 장학우는 이미 80년대에 데뷔하여 위에 언급한 3인방 바로 밑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여명은 90년 "상봉재우중" 앨범 발매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92년 이전까지 곽부성은 그저 그의 국어 히트곡 "대니애불완" 정도만 히트한 상태라서 이들과는 애초에 이 달랐다.
  • [7] 다른 세 천왕의 팬들로써는 억울할 수 밖에. 물론 92년 홍콩으로 돌아온 뒤 폭발적으로 인기가 상승한 곽부성이라도 유덕화-장학우는 커녕, 여명과도 동급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마치 펠레, 마라도나, 메시에 뜬금없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넣는 격(92년 당시로선). 물론 1997-1999년까지 초 전성기를 맞으면서 곽부성도 제대로 된 천왕의 위치에 오른다. 하지만 이미 유덕화와 장학우는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는게 함정
  • [8] 이 당시만 해도 방송국 소속 가수. 당시 소속사는 '화성(ERA)'.
  • [9] 물론 그의 골수팬들은 여전히 소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소미는 "돈 밝히는 마귀할멈" 정도.
  • [10] 대만 출신의 남성 배우이자 가수. 국내에는 동갑내기인 '여성' 임지령이 더 유명하지만 92년 18세때 대만에서 데뷔하고 93년 홀로 중화권의 '슈퍼아이돌'로 우뚝 선 인물이다. 홍콩 연예계의 최대 떡밥 중 하나인 "제 5대 천왕(정이건 등)"의 시초가 될 정도로 메가톤 급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 [11] 홍콩의 라디오 방송국인 RHTK의 '질타유행악단방'에서 애초에 수상 목록엔 곽부성이 없었지만 광야지성이 말도 안되는 히트를 해버리는 바람에 "지존무대금곡("올해의 댄스곡" 정도의 의미)"이라는 있지도 않은 상을 만들어 수상시킬 정도였음.
  • [12] X-Japan 시키의 연주곡인 今を 抱きしめて에 가사를 붙인 노래. 의외로 소미는 요시키와 친분이 있었다.
  • [13] 국어앨범이 나오지 않은 해. 이 당시 음반쪽은 최전성기임에도 국어 앨범이 나오질 않았는데 홍콩쪽에서의 활동이 너무 바빴기 때문.
  • [14] 최창민의 '그녀의 뒤엔 내가 있었다' 번안곡.
  • [15] 왁스의 '오빠' 번안곡. 사실 왁스의 '오빠' 역시 신디 로퍼의 She bop의 번안곡이다.
  • [16] 워너 이적후 2001년까지는 가수로써 최전성기. 2002년 공수도 앨범으로 완전히 쪽박찬 후, 정규앨범은 2006년 My Nation 이후 없음. 사실상 2005년 이후로는 음악쪽으로는 연창회를 비롯한 공연에 치중하고 있고, 현재로썬 거의 영화에 매진하고 있음.
  • [17] 94년부터 98년 영화 "풍운"의 홍보를 위해 방한할 때까지 2년에 한 번씩은 무조건 방한하였다. 그의 국제 팬클럽인 '가미회'중에 '한국가미회'가 있다. 곽부성의 말에 의하면, "한국가미회" 때문에 한국 온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시전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랬던 사람이 98년 이후 공식적으로 8년만에 방문한 2006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 '단물 다 빠진' 모습으로 등장하여 충공깽.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061018203409375
  • [18] 유덕화의 경우, 중화권에서 '지존'급의 연예인이며 장학우는 한국으로 치면 '조용필'급의 위치에 여명은 사업에 바쁘다. 간간히 팬들이 잊을만하면 나타나 주시는 정도. 곽부성만이 나이값(?) 못하고 현역 활동 중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그를 뛰어넘는 중화권 '댄스가수'가 아직도 없다는게 함정.
  • [19] 라이브 콘서트를 길게는 한달 가까이 홍콩의 홍캄체육관에서 벌이는 것.
  • [20] 애초에 춤꾼으로 시작했으며, 중화권에선 곽부성을 빼놓고 댄스를 논할수 없다. 대체적으로 중화권의 히트곡들이 발라드가 많은데 기본 두시간 이상인 콘서트에서 주구장창 발라드만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홍콩 가수들이 비교적 뮤지컬에 가까운 쇼로 무대를 구성하는 반면 곽부성은 그가 존경하는 '마이클 잭슨'류의 무대를 최초로 시도한 홍콩 가수다.
  • [21] 한국 개봉명 천장지구2
  • [22] 한국 개봉명 적각비협
  • [23] 심지어 98년에 발매된 '풍리밀마' 한국판 앨범에는 그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애적호환"을 놀랍게도 그가 "한국어"로 번안해 부른 "운명"을 보너스 트랙으로 실어서 팬들에겐 감동을 선사하였다. 물론 발음은 안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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