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곽태휘

last modified: 2015-03-17 18:22:01 by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커리어
3. 국가대표
4. 플레이 성향
5. 기타

장애를 극복한 한국의 골 넣는 수비수


울산 현대시절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는 곽태휘


알 힐랄 FC No.23
곽태휘 (郭泰輝 / Kwak Tae-hwi)
생년월일 1981년 7월 8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187cm / 85kg
등번호 국가대표 - 5번
알 힐랄 - 23번
프로입단 2005년 FC 서울
소속팀 FC 서울 (2005~2007)
전남 드래곤즈 (2007~2009)
교토 퍼플 상가 (2010)
울산 현대 축구단 (2011~2012)
알 샤바브 FC (2013)
알 힐랄 (2013~)
국가대표 2008~ , 40경기 5골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윤빛가람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박원재
DF
곽태휘
DF
조성환
DF
최철순
GK
김영광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5년 아시안컵 베스트 일레븐
FW
알리 맙쿠트
FW
팀 케이힐
FW
손흥민
MF
마시모 루옹고
MF
오마르 압둘라흐만
MF
기성용
DF
드루강 이스마일
DF
곽태휘
DF
트래니 샌즈버리
DF
차두리
GK
맷 라이언

대한민국축구선수. 현재 알 힐랄 소속.

1. 소개

곽태휘는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에 당한 큰 부상으로 왼쪽 눈의 시력은 사물의 형체만 간신히 분간할 수 있는 정도라 사실상의 실명 상태이다. 장애를 딛고 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데뷔를 했으나 잦은 부상 탓에 축구를 포기하려고 한 것만 해도 여러 차례였다. 그러나 부인의 끊임 없는 보살핌과 본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고 핵심으로 활약했다.

2. 커리어

순심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대구공업고등학교로 전학하여 축구를 했던 곽태휘는 중앙대학교를 거쳐 2005년 FC 서울에 입단했으나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는데 늘 부상이 문제였다. 그러다 2007시즌 중반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체제에서 중용받던 김진규와 트레이드되어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한다. 당시 전남 감독이었던 허카우터의 조련 하에 몸을 완벽히 만들고, 전남에서 대활약하며 전남의 2007년 FA컵 우승의 주역이 된다.

전남 감독을 지내며 그를 눈여겨본 허정무 감독의 부름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기 시작해 조광래 체제를 거쳐 최강희 체제까지 꾸준히 부름을 받았다. 다만 유리몸이 항상 문제였는데 2008년 한해에만 2번 수술대에 오르는 등 전남에서는 2시즌 반을 뛰는 동안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른 적이 없었다.


2010년에는 일본 J리그교토 상가 FC로 이적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부상으로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었다.

때문에 울산 이적 이전까지 K리그에서의 족적은 그다지 크지 않다. 서울에서는 유망주 수준이었고 전남에서도 2007년 FA컵 결승에서 골을 기록해 우승에 기여한것이 다였다. 전남이 하위권을 탈피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2009년에는 한 시즌내내 전열에서 이탈해 있었다.

2011년에는 울산 현대로 이적한 후 김호곤 감독의 베스트 일레븐만 주구장창 돌리는 전술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부상 없이 한시즌을 소화하면서 리그컵 우승과 K리그 정규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AFC 챔피언스 리그/2012년에서 맹활약하며 결승전 골을 기록하며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2013년 1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으로 1년 6개월간 이적이 확정되었다. 이적료는 약 21억 원.

2013년 12월 27일 알 힐랄로 이적하였다.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로 곽태휘는 오는 2015년 6월까지 알 힐랄 소속으로 뛰게 된다.

2014년 10월 1일 AFC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알 힐랄이 알 아인을 상대로 1승 1패 골 합계 4:2를 기록하면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1990년대만 해도 아시아의 깡패로 군림하던 알 힐랄이었으나, AFC 챔피언스 리그 체제로 개편한 이후로는 처음 결승이었고, 곽태휘 개인으로선 2012년 울산 이후 2년만에 다시 한번 결승 무대를 밟게 되었다. 다만 팀은 결승에서 서울을 꺾고 올라온 웨스턴 시드니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3. 국가대표


소속 팀 감독인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그간의 활약을 인정받아 27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국가대표에 데뷔했다. 반면 서울로 간 김진규는 대표팀 감독이 허정무 감독으로 바뀐 이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2012년 8월에서야 최강희 감독에 의해 5년만에 대표팀에 선발되었다.[1] 국가대표팀에서는 특유의 득점 본능을 살려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으나, 자책골을 비교적 자주 기록하는 바람에 반대 의미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도 했다.[2](...)

그러나 잦은 부상탓에 국제대회 경력은 불운했다. 허정무 감독의 신임아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본선 직전 열린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부상당해 출전이 불발되었고[3] 2014년 브라질 월드컵때는 대표로 선발은 되었으나 홍명보 감독의 취임 이후 적극 중용되던 홍정호-김영권 라인에 밀려[4] 단 1경기도 뛰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결국 월드컵은 1분도 못 뛰고 선수 생활을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국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쪽도 정말 월드컵 운이 없었던 선수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인터뷰를 가졌으며, 당시 선수들에게 부족한 건 리더쉽이 아니라, 투혼이라고 밝혔다. 또한 홍명보의 아이들 설에 대해 홍명보의 아이들이 아닌 선수들이 대표팀의 분위기에 섞이기 어려웠을 거라고 소신있게 의견을 밝혔다.

슈틸리케호 체제에서도 여전히 뽑히고 있으며, 아시안 컵 명단에도 들어갔다. 당초에는 김주영, 김영권, 장현수에 밀려 백업 수비수로 있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김주영이 부상당하고, 장현수가 카드 트러블 관리를 해야해서 조 1위를 경쟁해야 하는 호주와의 경기에 출장이 불가능하자 김영권과 함께 선발로 출전했다.

그리고 풍부한 경험으로 김영권을 커맨드하며[5]을 보여주며 무실점에 크게 관여했다. 이 경기에서도 김영권이 실수가 아예 안 나온 것은 아니나 김영권보다 경험이 많은 곽태휘가 옆에서 수비라인을 지휘하고, 제공권과 대인 마크까지 담당하면서 기어코 무실점을 만들어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 4강 이라크전에서도 수비진을 이끌며 무실점 승리에 일조했다.

그리고 결승전 0:1로 뒤진 상황에서 교체 가능한 공격수 자원조차 없는[6]상황이 닥치자 최전방 공격수를 자청했고, 슈틸리케 감독은 도박수를 던진다. 그리고 호주의 장신 수비진과 경합을 벌이다가 마침내 손흥민의 동점 골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안컵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며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국가대표 경력에 영광스러운 이력을 한줄 추가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성향

피지컬이 막강하다.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드록바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정대세도 한국 팀의 인상 깊은 선수로 190 장신에 힘 좋은 수비수를 언급했을 정도이다. 여기다 점프력도 엄청나다.[7]

이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대인마크와 고공장악에 강점을 보이는 파이터형 수비수. 울산 철퇴 축구의 한 축으로 세트피스 가담시 무서운 존재감을 발휘하며, 3선에서 느닷없이 달려와서 내리 꽂는 헤딩슛이 일품. 2011년 울산에서는 9골을 기록해 같은 팀의 공격수인 김신욱보다도 많은 골을 넣어 팀내 최다득점자였을 정도.[8] 킥력도 나쁘진 않아서 중거리 슛이나 프리킥도 제법 많이 차는 편이다. 롱패스를 이용한 빌드업도 본디 커맨더형 수비수가 아니라는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팬들은 곽테리 또는 곽테라치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스피드가 느린 탓에[9] 공격수와의 1:1 상황이나 스피드 경합 상황이 오면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인다. 넘어지고, 손으로 잡아채다 경고나 프리킥 pk 헌납 등. 아시아 레벨에서 울산처럼 철퇴를 휘두르며 웅크리고 있는 팀에선 괜찮지만 국가대표에선 아무래도 어려운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수비진을 내리고 버티는 전술이 아니라면 발이 빠른 파트너를 붙여주어 상호보완 하는게 좋다. 빌드업 능력도 의심받지만, 킥이나 패스하는 능력 자체보다는 유럽 선수의 맹렬한 전방압박에 탈압박이 안 되는게 크고 전방에 김신욱이나 박주영이 없을 경우 롱킥을 헤딩으로 따줄 선수가 없는 이유도 작용했다.

여담으로 다른 국가대표 센터백 중 이정수와의 호흡이 최악인 것으로 유명하다. 최강희호 시절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전반전 내내 단 2번 패스하는 최악의 호흡알력, 싸움, 다툼, 주도권 경쟁을 선보이며 팀의 완패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 경기 참패 이후 최강희 감독은 이정수를 배제하고 곽태휘 중심으로 수비진용을 꾸렸다.

5. 기타

안정환을 잇는 간만의 꽃미남 축구 스타지만, 이미 2006년 11월에 결혼한 품절남인데다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 인터뷰를 들으면 상당히 깬다. 결혼도 구미시에서 했다.

우수한 피지컬, 괜찮은 킥, 웬만한 공격수를 능가하는 결정력 덕분에 공격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인터뷰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에 축구를 시작했던 탓에 공격수고 수비수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본인도 다시 태어나서 축구를 하게 된다면 공격수를 하고 싶다고.

info.jpg
[JPG image (31.74 KB)]

상당한 팔불출로 알려져 있다. 경기장에 5살 먹은 아들을 데려와 안고서 팬들에게 싸인을 해 줄 정도로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듯.

의외로 야구선수 이호준과 친하다고 한다. 독일에서 재활할 때 만나서 쭉 친해졌다고 한다.

왜인지 상당수의 축구팬들은 이름을 곽태희로 잘못 알고 있다. 심지어 언론에서도 종종 이런 오기가 등장한다.
----
  • [1] 하지만 리그에서는 곽태휘가 부상으로 신음하는 동안 김진규는 서울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이끌었으니 서울 입장에서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손해 본 트레이드는 아니다. 아챔 우승을 차지한 2012년 이전까지 곽태휘의 커리어는 이름값에 비해 크게 돋보이는 편은 아니었다.
  • [2] 사실 자책골 관련 문제는 시력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 [3] 강민수가 대신 들어갔다.
  • [4] 다만 곽태휘도 월드컵 바로 직전의 가나전에서 가나 공격수들에게 안드로메다 관광을 떠나 대패에 일조했기 때문에 할말은 없다.
  • [5] 곽태휘가 본래 커맨더형 수비수는 아니지만 그간 쌓인 짬밥이나 가진 역량이 얼마인데 수비진 리딩도 못하겠는가. 피지컬을 앞세워 거친 수비를 하는 선수들도 경험치 축적을 통해 수비진을 지휘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 [6] 유일한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은 완전히 방전되어 뛸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나갔고, 조영철은 중앙 공격수로 쓰기엔 함량 미달임이 드러났다.
  • [7] 축구시작 전에 높이뛰기선수였다고 한다. 다만 얼굴이 꽃미남 스타일이라서 겉보기에는 다소 약해 보인다.
  • [8] 세트피스 시 키커한테 사람을 보지 말고 공간을 보고 차라고 하고 공이 오는 것에 집중한다고 하는데 강력한 피지컬 덕택에 공이 본인 쪽으로 오면 그 공을 제압하는 경우가 많았다. 헤딩이 정말 날카롭기도 하고.
  • [9] 100m는 그렇게 느리지 않은 편이다. 손흥민도 2013년 이제까지 붙어본 선수 중 누가 가장 어려웠냐는 인터뷰에서 유럽에서는 FC 바르셀로나의 아드리아누고, 곽태휘는 수비, 헤딩, 빠르기를 겸비한 아시아 최고의 중앙 수비수라고 언급했다. 다만 순간 속력이 느리다. 곽태휘를 칭찬했던 손흥민의 경우는 넓은 공간에서 달리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17 18:22:01
Processing time 0.1705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