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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 군항 공습

last modified: 2015-08-24 15:54:00 by Contributors


칸무스들 장례식
예?

  • 영어: Bombing of Kure
  • 일본어: 呉軍港空襲(くれぐんこうくうしゅう)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공습
3.1. 7월 24일
3.2. 7월 28일
4. 결과
4.1. 피해를 입은 군함
4.1.1. 전함 및 항공모함
4.1.2. 순양함
4.2. 생존함
5. 일본우익들의 정신승리
6. 대중문화에서의 구레 공습


1. 개요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7월 24일~28일간 구레 항에 남아있던 일본군 해군 연합함대 잔존전력을 말살하기 위한 미-영 연합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대규모 공습. 이 공습으로 한때 세계 제 3위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일본 해군은 그나마의 전력조차 박살나고 말 그대로 빈털털이가 되어 약소국 해군도 상대 못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2. 배경

1945년 7월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해군중장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이었다. 오자와 제독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전력을 보존하여 패전 후를 대비하려고 했고, 항전파들은 남은 수상함을 모조리 해안요새로 활용하여 본토 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양측은 목적은 다르지만 어쨌든 함대의 출항을 막는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보급 및 수송 목적으로 움직이는 소형함들을 제외하면 일본의 모든 대형함들은 항구에 숨어 있었다. 게다가 움직이고 싶어도 커티스 르메이가 툴툴거리며 깔아놓은 기뢰밭을 돌파해야 했다. 아니 그 전에 당장 대형함들 움직일 연료도 바닥나 있었으니….

연합함대 최후의 전력이 그렇게 안전한 구레항에서 숨어 있는걸 본 미 육해군 수뇌부는 골치아파하면서도 후일 있을 일본 본토 상륙전에서 일본 해군이 방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사전에 미리 연합함대의 전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홋카이도까지 폭격했음에도 더 이상 때릴 표적이 안보이기도 했다.

이미 구레는 3월 19일에 대규모 공습을 받은 바 있었는데, 이때는 일본군이 마지막까지 남은 전력을 다한 결사적 저항을 했다. 실제로 1945년 3월 19일 제1차 구레 공습 당시 일본은 대규모 카미카제는 물론 N1K-J 시덴으로 구성된 정예 요격기 부대까지 출동시켜 결사적으로 구레항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미군도 항공모함 함재기 부대가 큰 피해를 입는 등 손실이 많았으며, 항구 폭격 자체는 실행되었지만 생각만큼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1945년 7월의 시점에서는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극심한 소모로 더 이상 띄울래야 띄울 전투기도 없었고(…) 그나마 남은 잔존기체들은 본토결전을 대비하여 출격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반면 미군의 전력은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화되고 있었다.

미 해군 제3함대 사령관 해군대장 윌리엄 홀시 제독은 휘하의 항공모함 기동부대와, 영국 해군 태평양 함대를 동원하여 구레를 공격하기로 했다. 미 해군은 존 S. 매케인 시니어[1]가 지휘하는 TF38을 동원했고, 영국은 3함대에 편입된 TF57에 속한 항공모함 3척(포미더블, 인디패티거블, 빅토리우스)을 동원했다. 이 공격은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일본 본토 공격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3. 공습

3.1. 7월 24일

1945년 7월 24일, 날이 밝는 것과 동시에 말 그대로 하늘을 까맣게 메운 미 해군 함재기들이 구레항으로 몰려들었다. 이 날, 미 항공모함 부대가 띄운 소티는 무려 1,747소티로 그야말로 가공할 물량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대규모 항공모함 항공대 공습은 전례가 없었다.

이에 대응하는 일본 해군의 전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항공전력은 미약한데다가 출격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었고, 대공포도 태부족인데다가 레이더도 당시 일본군의 기술력 덕분에 능력이 바닥을 달리던 상태였다. 이에 더해서 선박 수리시설과 도크등 항구 자체를 대공 방어할 필요성 때문에 대다수의 함정에 설치된 대공포까지 대부분 철거해서 육상진지로 이동한 상태였으므로 이번 폭격의 주요 목표인 대형함은 중순양함 아오바를 빼면 말 그대로 대공능력이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이세처럼 주포 고각을 최대로 올린 후 3식 통상탄을 마구잡이로 발사하는 것이 대공사격의 전부인 경우도 많았다.

그나마 아오바는 대공화기를 증설하고 군항의 얕은 곳에 정박해서 대공포 진지로서 나름대로 준비되었지만, 이건 배의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본 해군이 해상 대공포 진지로 활용한 경우였다. 구레 군항에는 그 외에도 전손 판정을 받아 대공포대로 개조된 경항모 류호가이텐 모함 키타카미가 있었지만, 아무리 대공화기를 충실히 갖추었다고 해도 너무나 열세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식으로는 공습에 저항할 수 없다. 그래서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큰 목표였던 항공모함 아마기가 집중적으로 폭격을 얻어맞고 대파당했다. 뒤이어 항공순양함 오요도도 폭격당했다. 사실상 기함 역할을 한 두 함선이 얻어맞는 동안, 구레 항의 나머지 대형함들도 신나게 폭탄세례를 받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대형함들은 제대로 된 대응은 커녕 외해로 도망치는 시도조차 내지 못하고 항구 내에 앉아서 얻어터지는 신세였다. 어째서 도망치지 못했는지는 위에 쓴 내용을 다시 읽도록 하자.

운류급 항공모함 2번함 아마기와 3번함 카츠라기, 이세급 항공전함 이세와 휴가, 공고급 순양전함 3번함 하루나, 아오바급 중순양함 1번함 아오바, 생존 구축함들, 그리고 러일전쟁때 쓰다 예비역으로 짱박혀 있던 걸 급하게 꺼내온 구식 장갑순양함 이와테와 이즈모까지 모조리 다 공격당했다. 그나마 수심이 얕아서 완전한 침몰은 면했지만 대부분은 착저상태로 상부구조물만 을씨년스럽게 수면 위에 내놓은 상태였고 일부는 아예 전복된 상황이었다. 휴가는 살아남았지만 27일에 좌초함으로서 함생을 끝냈다.

같은 시각, 영국 해군은 오사카 항을 공격, 호위항공모함 카이요와 700톤급 호위함 2척을 격침시키고 단 4기의 항공기 손실만을 입었다.

3.2. 7월 28일

24일의 대공습 이후 잠시 쿨타임 휴식을 취한 미 해군은, 항공정찰 결과 의외로 다수의 대형함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추가공습을 준비했다. 사실 24일의 공습으로도 대형함들은 대부분 중파 내지 대파되고 구획 일부가 침수된 상태였지만 미 해군은 진주만 공습때 격침당한 전함들을 대부분 되살린 자신들처럼, 일본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일본을 너무 과대평가했다.[2]

28일의 공습은 그나마의 중요 전력이던 이세, 하루나, 아오바에 집중되었다. 이세는 16발, 하루나는 8발의 폭탄을 맞고 완벽하게 격침됐으며 아오바도 4발의 폭탄을 맞았다. 뒤이어 24일에 화를 면한 항공모함 카츠라기도 2000파운드 폭탄을 맞고 중파당했고, 이미 대파된 아마기도 확인사살로 폭탄을 맞았으며, 오요도도 폭탄 4발을 더 맞고 전복되어 격침되었다. 그러나 아오바가 아직 안 죽었다고 판단한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날아온 육군 항공대B-24 폭격기 79대를 추가로 투입했고, 이들은 아오바에게 4발의 폭탄을 더 먹여서 숨통을 끊어 놓았다.

4. 결과

일본 해군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았던 이 공습의 결과…….

4.1. 피해를 입은 군함

이 대공습으로 항공모함 1척, 전함항공전함 3척,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1척, 장갑순양함 2척, 보조함 2척을 상실하고 306기의 항공기 손실과 392기의 항공기 손상을 입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더 이상 남은게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살아남은 군함들도 손상을 입어서 출격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마지막 남은 대형함은 대파당한 채 요코스카에서 정박중이던 전함 나가토와, 철저하게 은닉된 항공모함 준요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본토상륙에 맞설 해상세력은 완전히 소멸하여, 고정포대 역할이라도 할만한 배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8월의 폭풍 작전함경북도 청진등에 소련 해군이 몇 척 안되는 함선으로 상륙작전을 펼칠 때 이에 대응할 군함이 없었다.

칸코레 서비스 종료[3]

4.1.1. 전함 및 항공모함

출처 http://www.ibiblio.org/hyperwar/OnlineLibrary/photos/sh-fornv/japan/japsh-h/haruna.htm , US National Archives
일본 전함 중에서는 최고의 수훈함인 공고급 순양전함 최후의 생존자.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 6월 22일에 직격탄 1발[4],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을 맞았으나 피해는 적었다. 그러나 7월 28일에는 8발의 폭탄을 맞고 확실하게 격침. 일본에서는 24일과 28일의 명중탄이 20발이라 했지만 미국과 명중탄과 지근탄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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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와 함께 세계에서도 유이한 항공전함.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2발을 맞았고, 7월 24일의 공습에서는 폭탄 4발을 맞아 함장을 포함한 50명이 전사했으며, 28일의 공습에서는 16발의 폭탄을 맞고 격침당했다. 2번 포탑에 3식탄이 장전된 채로 격침되었기에 포탄 제거를 위해 허공에 발포한 것이 최후의 포격이었다.

80-G-490239, US National Archive, http://ww2db.com/image.php?image_id=19441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10발을 맞아 함장을 포함한 204명의 전사자를 냈고, 27일에 좌초되면서 격침.

  • 운류급 항공모함 아마기(天城) 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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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94.67 KB)]
출처 : http://ww2db.com/image.php?image_id=5049
[5]
7월 24일의 공습으로 500파운드 폭탄과 2000파운드 폭탄에 맞아 대파되었고, 28일의 공습에서 폭탄 여러 발을 추가로 맞은 후 29일 오전 10시에 옆으로 쓰러지며 격침.

  • 항공모함 류호(龍鳳) 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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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3월 19일의 1차 구레 군항 공습에서 폭탄 3발과 로켓탄 2발을 먹고 Total loss(전손. 全損) 판정을 받았다. 넌 이미 죽어있다 이로 인해 항공갑판과 엘리베이터, 보일러가 파손되어서 작전용으로는 완전히 사용 불능이 되었다. 그러나 4월 1일 도크에서 침수로 들어온 물을 빼냈고 다시 띄우긴 했으나 수리할 가치가 없다고 판정되었다. 이후 해상 방공 포대로 이용되다가 2차 구레 군항 공습에서는 이미 무력화된 상태라서 거의 공격받지 않아서 살았으며새옹지마?, 결과적으로는 살아남은 셈이 되어서 위의 사진과 같이 남아 종전 후 스크랩. 덕분에 전후 생존함이라 보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전의 공습에서 진작에 항공모함의 기능은 상실되어서 별 쓸모는 없었다.

  • 운류급 항공모함 카츠라기(葛城) 중파, 비행갑판 파괴로 작전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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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에 500파운드 폭탄 1발, 28일에 2000파운드 1발을 먹고 13명의 전사자와 12명의 부상자 발생.

  • 항공모함 호쇼 1발 피격.
구레 군항에 한정하여 전함 및 항공모함급만 이 정도다. 항공모함 호쇼처럼 피해가 작은 경우를 제외하면 중파 이상의 함정들은 아예 수리도 불가능했으니 사실상 격침이었다.

4.1.2. 순양함

  •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青葉) 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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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3번이나 살아 돌아와 마지막까지 구레를 수호하던 일본 본토 최후의 중순양함. 일본에 귀환한 중순양함은 아오바와 토네 2척이지만 토네는 구레에서 도망간데다 일본군 공식기록에 경순양함으로 기재되어 있으니 논외이다. 생존한 중순양함이라면 타카오와 묘코가 있지만 이들은 싱가포르에서 대공포대가 된 후 영원히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므로, 아오바는 정말로 일본 본토 최후의 중순양함이었다.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을 먹고 착저. 7월 28일의 공습에서는 함재기로부터 폭탄 4발, B-24 폭격기 편대로부터 폭탄 4발을 더 먹고 후미 부근이 절단되며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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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바와 더불어 살아서 돌아온 유이한 중순양함이지만, 일본군은 끝까지 경순양함으로 분류했다. 3월 19일의 공습 이후 히로시마 에타지마 시의 섬으로 이동했으므로 구레 군항에 정박한 군함은 아니다.

7월 24일에 9대의 함재기의 공격으로 폭탄 3발을 맞고 착저하고, 28일에 본격적인 공습을 당해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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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함대 최후의 기함.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3발,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4발을 먹었고 28일에 폭탄 4발을 더 먹은 후 12시에 완전히 전복되어 침몰.

  • 장갑순양함 이즈모(出雲)
이즈모

  • 장갑순양함 이와테(磐手) 격침
이와테

여기에 순양함 4척과 구축함 3척이 추가로 격침되었다. 추가로 구레항에서 건조중이던 항공모함 아소도 폭격으로 화재가 나서 추가공정이 불가능해졌고, 역시 건조중이던 센토쿠급 잠수항모 4번함 I-404는 화재가 너무 커서 끝내 침몰했다.

4.2. 생존함

구레에 있던 대형함들은 모조리 개발살났지만, 경항모 호쇼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외에도 가이텐 모함 키타카미, 오래 전에 군함으로서의 수명이 끝난 류호, 중파된 항공모함 카츠라기 정도가 생존했지만 이들 모두 군함으로는 쓸모가 없었다. 네 놈들은 죽일 가치도 없다

구축함 중에는 전투가 가능한 생존함이 몇 척 있다. 후부키급 구축함 히비키와 일본군 최고의 사신 강운으로 유명한 구축함 유키카제가 그들이다. 이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 승전국에 배상함으로 념겨지게 된다. 독한 것들

5. 일본우익들의 정신승리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2차를 별개항목으로 만들면 자기들이 털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니까 방어전으로 어느정도 전과가 있는 3월 19일의 제1차 구레 공습까지 묶어서 항목으로 만들었다. 링크 그래서 손해비교표가 영어 위키백과와 다르다.링크

특히 일본어 위키백과의 항목 내용은 정신승리가 많이 들어있는데, 일단 일본 군함의 경우에는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경우가 아니면 격침이 아니라고 하고 명백히 대파된 배를 소파라고 우기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 전함 하루나(榛名) - 대파착저(大破着底)
    '착저했으니 더이상 가라앉지 않아' 라는 승무원의 자위형 대사를 마치 아직 우리는 더 싸울 수 있다는 투지의 대사인양 미화하고 있다. 일본 쪽에서는 미 육군항공대의 B-24와 싸워서 대공사격으로 2대를 격추하고 8대에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하지만, 영문 위키 하루나에는 그런 거 없고 38기동부대의 함재기들에게 폭탄을 먹고 오후 4시 15분에 격침되었다는 정도만 나오며, B-24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다. 구레 군항 공습을 다룬 영문 위키에서도 B-24의 폭격을 맞는 배로 언급된 건 (대공포 진지로 쓰이던) 아오바밖에 없다.
    combinedfleet의 haruna 항목에서는 하루나가 12시 48분에 B-24의 공습을 당했고 이때 B-24 2대를 격추시켰다고 하나, 하루나의 대공포가 대부분 철거되어 육상요새로 옮겨졌다는 게 문제다. 주포로 3식 통상탄을 발사할 수는 있지만, 3식탄의 대공성능이 형편없다는 건 미군 조종사들도 잘 아는 사실이다.
    어쨌든 일본 쪽의 주장이 맞다고 해도 그게 과연 하루나의 단독전과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으며 생포된 미국 승무원이 히로시마로 이동해서 피폭되었다는 언급까지 위키피디아의 하루나 항목에 남겨놓았다. 미국이 쏜 핵으로 미국인이 피폭! 핵쏜 나쁜 미국인들 아웃

  • 항공전함 이세(伊勢) - 대파착저(大破着底).(中甲板以下浸水. 중갑판 아래는 침수)
    배가 박살나고 해저에 내려앉고 침수까지 되었지만 침몰은 아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공습 이후 2번 포탑의 3식탄을 제거하기 위해 주포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주포를 발사할 수 있으니 격침된 건 아니라는 논리. 그 뒤에는 아무 것도 못했잖아

  • 항공전함 휴가(日向) - 대파착저(大破着底),(下甲板以下浸水. 하갑판 아래는 침수)
    배가 박살나고 해저에 내려앉고 침수까지 되었지만 침몰은 아니다 (2). 그렇게 따지면 애리조나도 침몰한게 아니다

  • 항공모함 아마기(天城) - 전복(転覆)
    배가 옆으로 쓰러졌는데 침몰은 아니다.

  • 항공모함 카츠라기(葛城) - 상갑판 이상 소파(上甲板以上小破),(飛行甲板大破孔. 비행갑판에 큰 구멍)
    카츠라기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4일에 500파운드 폭탄 1발, 28일에 2000파운드 폭탄 1발을 맞았다. 2000파운드 폭탄이 비행갑판을 뚫고 들어와서 항모 안에서 폭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0파운드 폭탄 맞고 비행갑판이 박살났는데 그게 소파?(…) 게다가 표현만 보자면 비행갑판에 대파공(大破孔)이란 말을 써서 마치 비행갑판에 큼직한 구멍 1개 정도 뚫린 사소한 손상으로 보이게끔 유도한다.

  • 항공모함 호쇼(鳳翔) - 손상(損傷)
    일부러 애매한 표현인 손상을 사용했다. 그래서 해당 함선이 소파인지 중파인지 대파인지 구분못하게 했다. 또한 손상이라는 표현은 보통 사소한 손상같이 소파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약한 파손을 지칭하는 말이라서 여기에 쓰기에는 무리가 많다. 즉 살짝 긁힌 상처 정도로 치부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호쇼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일단 폭탄이나 로켓탄 한 발을 맞았고, 15일만에 수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호쇼의 항모로서의 가치는 없다(...)

  • 항공모함 류호(龍鳳) - 3월 공습에서 소파(小破), 7월 공습에서 손상(損傷)
    류호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3발과 로켓탄 2발을 맞았고, 1번 보일러에 구멍이 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4월 1일에 구레로 돌아왔지만 Total loss(전손. 全損)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이 배는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소파(小破)라고 했다(...) 이후 일본군은 류호를 대공포대로 개조해서 운영했지만,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류호가 7월 24일과 28일에 공습을 받았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어도 피해는 기록도 안 되었다. 그냥 시체니까 그럴 만도 하다. 어쨌든 일본 위키백과는 당당하게 '손상'이라고 기록했다.

  • 순양함 이와테(磐手) - 7월 24일 대파(大破)、7월 28일 침수각좌(浸水擱座)
    이와테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당연히 공습으로 침몰했다고 기록했다.

  • 순양함 이즈모(出雲) - 침수각좌(浸水擱座)
    이즈모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당연히 7월 24일에 공습으로 침몰했다고 표기했다.

  • 순양함 아오바(青葉) - 대파착저(大破着底), 함체절단(船体切断)
    7월 24일에 착저하고도 모자라서 38기동부대의 함재기로부터 폭탄 4발, 미 육군항공대의 B-24로부터 폭탄을 4발이나 더 맞고 함체가 절단되었다. 배가 쪼개졌는데도 침몰이 아니란다.

  • 순양함 토네(利根) - 대파착저(大破着底),(船体満水. 선체만수)
    배가 박살나고 물이 가득찼는데 침몰은 아니다.

  • 순양함 키타카미(北上) - 7월 24일 대파(大破)
    아오바와 마찬가지로 대공포대 노릇을 하고 있었으며, 키타카미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32명이 전사하고 손해를 입었다는 정도만 나왔다. 네놈은 죽일 가치도 없다[6]

  • 순양함 오요도(大淀) - 전복(転覆)
    배가 뒤집혔는데 침몰은 아니다 (2).

  • 구축함 요이즈키(宵月) - 7월 24일 손상(損傷)
    일부러 애매한 표현인 손상을 사용했다 (2).

  • 구축함 나시(梨) - 7월 28일 침몰(沈没)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일본 군함중 침몰로 인정한 함선은 구축함인 나시 (梨(なし)) 단 1척 뿐이다. 게다가 해당 구축함은 침몰한 상태에서 패전을 맞이한 후, 한동안 방치되다가 다시 인양해서 물 위로 끌어올린 후에 개조작업을 시행하여 전후인 1958년 3월 26일 해상자위대 호위함 와카바 (わかば)로 재취역했다. 결과적으로 공습에서 함선 손해는 단 1척도 없었다는 무언의 외침![7]

  • 구축함 카바(樺) - 7월 24일 손상(損傷)
    일부러 애매한 표현인 손상을 사용했다 (3).

건조중이던 함선의 피해는 아래와 같다고 적어놓았다.

  • 항공모함 아소(阿蘇) - 7월 28일 화재 발생(火災発生)

  • 잠수항모 I-404(伊404) - 대파(大破), 자침처분(機密保持のために自沈処分)

딱히 멀리 갈 것도 없이 세토 내해의 얕은 수심과 항구 및 항구 근처의 잘 정비된 항로에서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는 배가 몇 척이나 되겠는가?(…) 따라서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대파착저(大破着底), 침수각좌(浸水擱座)[8], 전복(転覆)같은 말은 다 침몰과 마찬가지의 단어다. 차마 박살났다는 말은 못 쓰겠지

그리고 착저의 경우는 손상이 심해 침몰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 밑바닥이 해저에 닿은 경우이므로 수심이 깊은 외양에서 동일한 사태를 당할 경우에는 그냥 침몰이므로 사실상 격침으로 산정하며, 미국같이 배를 인양해서 재취역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침몰로 산정하는데다가 배를 되살리더라도 침몰 숫자세기는 그대로 적용되는데 이것도 싹 무시하고 있다.

이래놓고서 정작 상단의 일본측 피해 요약 부분에선 항모 1척 침몰, 전함 3척 침몰, 순양함 6척 침몰, 구축함 4척 침몰이라고 잘만 적혀 있다. 그래 죽어도 본문에 침몰이란 단어는 못 집어넣겠다 이거지

참고로 저 서술방식은 같은 일본 위키백과 내의 진주만 공습 항목에 본문의 미국측 손실 부분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함마다 격침이라는 말을 꼬박꼬박 집어넣어놓고 있는 것과는 완벽히 대조된다(...). 이 역시 영어 위키백과 항목과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남이 당하면 격침 내가 당하면 손상(어라?)

재미있는 건 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진주만 공습을 평가하면 애리조나와 웨스트버지니아는 대파착저, 유타와 오클라호마는 전복, 캘리포니아는 침수좌초, 나머지는 대파 이하가 된다. 즉 격침된 미 함선은 1척도 없게 된다. 이쯤 되면 이중잣대 이전에 그냥 자폭 같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태클을 당한 덕인지, 2015년 3월의 일본 위키에는 정상적으로 침몰이라고 표기했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르지만

6. 대중문화에서의 구레 공습

  • 맨발의 겐 1권, 원폭을 맞기 전 히로시마는 무사한데 폭음이 들리는 것을 보고 나카오카 겐의 아버지인 나카오카 다이키치가 "구레가 폭격당하고 있군."이라고 무심하게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시기 상 구레 군항 공습을 두고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 남자들의 야마토(Yamato / 2005년)에서 3월 19일 실행된 1차 구레 군항 공습이 잠깐 등장한다. 군 병원에 입원해있는 부상병들이 목발을 들고 입총질로 미군기들을 격추하려하는 게 웃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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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8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할아버지다. 참고로 매케인 집안은 이때부터 시작해서 4대가 다 해군에 복무했다.
  • [2] 이 당시의 일본은 이미 대형 함선들을 건져서 수리할 자원도, 기술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선술했듯, 전쟁 기간 내내 3번이나 대파당하고도 살아온 '솔로몬의 늑대' 아오바도 수리를 못해서 기동 불능 상태의 해상 대공포 진지로 전용될 정도였다.
  • [3] 실제로 수틀리면 8월 15일에 맞춰 이런 식으로 쫑낼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 [4] 7발이라 기록된 곳도 있지만 지근탄 포함인듯.
  • [5] 참고로 세번째 사진은 공습 직후의 모습은 아니고, 종전 후인 1946년 아마기를 스크랩 처리할 당시의 모습이다. 다만 공습 이후 일본은 좌초된 함선들에 손도 대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던 상황이므로 사실상 공습 직후와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 [6] 키타카미 항목에도 나오지만, 키타카미는 전쟁 중에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군함으로 유명하다.
  • [7] 사실 이는 구축함이라 선체 높이가 그리 안높아서 수면 위로 나오질 않으니 우길래야 우길수가 없어서 침몰로 인정한듯하다.
  • [8] 각좌(擱座)는 좌초와 동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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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8-24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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