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구인회

last modified: 2015-03-15 13:51:49 by Contributors

Contents

1.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1.1. 개요
1.2. 가계도
2. 일제강점기 순수문학 단체
3. 천국복음전도회 교주 구인회

1.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구인회
具仁會

1.1. 개요

구인회가 전하는 희망의 메세지

1907년 8월 27일 - 1969년 12월 31일

LG그룹의 창업주로 대한민국 전자, 화학산업의 선구자로 불린다.

본관은 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아명은 정득(丁得), 호는 연암(蓮庵)[1]으로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이다. 아버지 구재서(具再書)와 어머니 진양하씨(晉陽河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구인회의 할아버지 구연호는 대과에 급제한 홍문관 시독관이었다. 구인회가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구연호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LG 구씨 가문은 유교적 가풍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GS 허씨 가문도 LG처럼 유교적 기풍이 대단하여 단적으로 삼성, 현대, 롯데같은 경우는 딸들이 경영일선에 나서서 진두지휘하지만 LG나 GS의 딸들은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학생신분이거나 재벌가로 출가해서 전업주부인 경우밖에 없다.

1920년 같은 마을 허만식의 딸 허을수[2]와 결혼해 6남 4녀를 슬하에 두었다. 이후에 구인회회장이 사업을 시작할 때 허만식 일가가 동업하는 형식으로 LG의 창업 및 경영에 참여했고 이후 LG의 허만식 일가의 지분을 떼어내어 GS그룹으로 분가하였다.

1926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2년 수료하고 귀향해 지수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하였는데 이것이 사업가로서의 첫 출발이었다.

1931년 진주에서 동생 구철회와 함께 구인회상점이라는 포목상을 했다. 1941년에는 구인상회로 이름을 변경.

1944년 트럭30대로 운수업을 시작.

1945년 부산에서 조선흥업사를 설립했다. 이는 당시 미군정청에서 허가받은 무역업 1호업체이다. 구인회가 부산에서 사업활동을 하고 있을 때 장인 허만식의 친척 허만정이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허준구를 대동하고 구인회를 찾아왔다. 허만정은 구인회에게 "사돈의 역량을 익히 알고 찾아온 것이니 내 아들 준구를 밑에 두고 사람을 만들어 주소. 나도 사돈 사업에 출자 좀 할 생각이오."라고 부탁했다.

때마침 동생 구정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화장품 판매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판매대리만 하던 조선흥업사는 화장품 생산에 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생산을 시작하게 되면서 당시 부산 서대신동의 구인회회장의 자택은 생산공장으로 바뀌었다. 첫 제품은 럭키크림이었다.

화장품을 만들던 구인회는 플라스틱에 대한 이해만 높이면 칫솔, 빗등의 일상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닫고 좀 더 본격적인 제조업으로의 진출을 위해 1947년 1월 5일자로 락희화학공업사(현재의 LG화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1952년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빗과 비누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빗만 쓰던 사람들은 합성수지 빗에 열광했다. 이승만대통령도 합성수지 빗을 보고 한국에서 이런 제품이 나온 것에 감격했다고 한다.

1955년 럭키치약을 출시했다. 1956년에 창경원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장에서 럭키치약을 10만개 무료증정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결국 출시 3년만에 당시 시장을 석권한 미국제 게이트 치약을 물리치고 국내시장을 석권했다.

해외원조에 의한 전후복구사업에 의해 50년대 후반에는 전기통신이 대부분 복구되었다. 이 시기에 구인회는 민간방송의 출현과 라디오에 관심을 두었다. 라디오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전부 외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59년 한국최초의 전자공업회사인 금성사가 설립되었다. 그 해 11월 국산 라디오 1호 A-501[3]을 출시했다.

군사정부 출범 이후 군부는 기존 대기업들에게 비료, 정유, 제철, 화섬, 시멘트등의 기간산업에 진출할 것을 명했다. 이에 구인회는 화섬공장을 짓겠다고 신청했다. 하지만 군부는 LG에게 전선공장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 이를 놓고 재계에서는 기업의 로비라는 억측이 무성했다.

1963년 구인회는 사돈 이병철[4]으로부터 방송사업참여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구인회는 방송사업에 참여하면 자사의 TV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동양방송을 운영하던중 경영에 대한 삼성과 LG간의 의견대립이 있어서 이병철과의 토론 끝에 구인회는 방송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되었다.

1964년 국내최초의 합성세제인 하이타이를 출시했다. 이는 세탁기의 보급과 함께 우리 의생활에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는 계기를 불렀다.

1965년 구인회는 정부에 정유사업으로 진출하고 싶다고 사업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66년 정부가 제2정유공장 사업희망자를 모집함에 따라 재계에는 이를 두고 경쟁이 일어났다. LG, 롯데, 한화등 6개기업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결국 기술력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LG가 낙점되었다.

1967년 주방용 액체세제와 두발용 샴푸를 출시했다.

1968년 회갑기념으로 연암문화재단을 세웠으나 뇌종양으로 타계했다.

구인회(지수초1회졸)가 수학한 지수초등학교는 이병철(삼성, 지수초1회졸, 기록상으로 구인회와 한 교실에서 같이 수학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허정구(GS, 지수초4회졸), 조홍제(효성, 지수초1회졸)가 다녔던 학교이다. 대기업 창립자가 무려 4명이나...ㅎㄷㄷ. 현재는 학생이 없어서 폐교상태이지만 폐교되기전에는 LG에서 금전적으로 지원을 했다고 한다.[5]

LG연혁
----
  • [1] '연암공업대학', '천안연암대학' 의 연암도 이 연암이다. 그리고 진주 연암도서관도 구인회 회장이 지어서 기증한 것인데, 지금의 연암도서관은 다시 지은 것
  • [2] 구인회보다 2살 연상. 구인회는 결혼한 후에 아명을 버리고 구인회라는 이름을 썼다.
  • [3] 부품 국산화율 60%
  • [4] 구인회의 3남이 이병철의 2녀와 결혼
  • [5] 정확히는 2009년에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와 통폐합해서 위치를 이전했다.

1.2. 가계도

  • 1남 구인회
    • 1녀 구양세, 夫 박진동
    • 1남 구자경[6], 妻 하정임
      • 1남 구본무 LG그룹 회장, 妻 김영식
        • 1남 구원모[7]
        • 2남 구광모 LG전자 차장[8], 妻 정효정
        • 1녀 구연경, 夫 윤관
        • 2녀 구연수[9]
      • 1녀 구훤미, 夫 김화중
        • 1녀 김선혜, 夫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
        • 1남 김주영
      • 2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妻 강영혜[10], 妻 차경숙[11]
        • 1녀 구연서
      • 3남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妻 김은미
        • 1남 구형모
        • 1녀 구연제
      • 2녀 구미정, 夫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
      • 4남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妻 조경아
        • 1녀 구연승
        • 2녀 구연진
        • 1남 구웅모
    • 2남 구자승, 妻 홍승해
      • 1남 구본걸 LF(구 LG패션)회장
    •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 妻 이숙희 이병철의 딸
      • 1남 구본성, 妻 심윤보
      • 1녀 구미현, 夫 이영렬
      • 2녀 구명진, 夫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한진家)
      • 3녀 구지은 아워홈 전무, 夫 이영렬 한양대의대 교수
    • 4남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妻 이의숙
      • 1남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대표, 妻 이성은 이명박대통령의 형 이상득의 딸
      • 2남 구본완 LB휴넷 대표
      • 1녀 구혜란, 夫 심현주
      • 2녀 구혜선, 妻 장원우
    • 5남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 妻 김청자
      • 1남 구본길 일양화학 감사
      • 1녀 구은미
    • 2녀 구자혜, 夫 이재연
    • 3녀 구자영, 夫 이재원
    • 4녀 구순자, 夫 류지민
    • 6남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 妻 조아란
      • 1남 구본현 엑사이엔씨 대표이사
  • 2남 구철회 LIG그룹 전 회장, 妻 안남이
    • 1녀 구위숙, 夫 허준구
      • 1남 허창수 GS회장, FC서울구단주, 現 전경련 회장, 妻 이주영 前 상공부차관 이철승의 딸
        • 1녀 허윤영, 夫 김현주 김앤장 김영무대표의 아들[12]
        • 1남 허윤홍 GS건설 상무보
      • 2남 허정수 GS네오텍 회장, 妻 한영숙
        • 1남 허철홍 GS 과장
        • 2남 허두홍
      • 3남 허진수 GS칼텍스 사장, 妻 이영아
        • 1남 허치홍 GS글로벌 사원
        • 2남 허진홍
      • 4남 허명수 GS건설 사장, 妻 노경선 前 국방장관 노재현의 딸
        • 1남 허주홍
        • 2남 허태홍
      • 5남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妻 이지원 前 국무총리 이한동의 딸
        • 1녀 허정현
    • 2녀 구영희, 夫 이호덕
    • 1남 구자원 LIG넥스원 회장, 妻 유영희
      • 1녀 구지연
      • 2녀 구지정
      • 1남 구본상
      • 2남 구본엽
    • 3녀 구자애, 夫 정승화
    • 2남 구자성 LG건설(현 GS건설)전 사장[13], 妻 이갑희
    • 4녀 구선희, 夫 박용훈 두산家
    • 3남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 妻 임방인
      • 1녀 구현정, 夫 Eric Hoffman
      • 2녀 구윤정, 夫 Harold Kim
      • 3녀 구문정, 夫 박재영 금호아시아나家
    • 4남 구자준 LIG손해보험 고문, 한국배구연맹 총재, 妻 이영희
      • 1남 구동범 LIG에이디피 부사장
      • 2남 구동진 LIG손해보험 미국법인장(이사)
  • 3남 구정회, 妻 김증문
    • 1남 구자윤, 妻 정정자
    • 2남 구형우, 妻 이화숙
    • 1녀 구숙희, 夫 이규영
    • 3남 구자헌[14] 前 범한물류 회장, 妻 조원희[15] 前 범한판토스[16] 상근고문
      • 1남 구본호
    • 4남 구자섭, 妻 심영숙
    • 5남 구자민, 妻 박정화
    • 2녀 구명희, 夫 하영준
  • 4남 구태회[17] LS전선 명예회장, 妻 최무
    • 1녀 구근희, 夫 이준범
    • 1남 구자홍 LS 미래원 회장, 妻 지순혜
      • 2남 구본웅
    • 2녀 구혜정, 夫 이인정
    • 2남 구자엽 LS산전 회장, 妻 김태향
      • 1녀 구은희, 夫 정일선 BNG스틸 대표이사(현대家)
      • 1남 구본규
    • 3남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妻 조미연 경희대이사장 딸
      • 1남 구본혁
      • 1녀 구윤희, 夫 정대현 삼표그룹회장의 아들
    • 4남 구자철 예스코 회장, 妻 홍정원
      • 1녀 구원희[18], 前夫 박서원 두산 박용만부회장의 1남
      • 1남 구본권
  • 5남 구평회 E1 명예회장, 妻 문남
    • 1남 구자열 LS전선 회장, 妻 이현주
      • 1녀 구은아
      • 1남 구동휘
      • 2녀 구은성
    • 2남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 妻 이현주
      • 1녀 구희나
      • 2녀 구희연
    • 3남 구자균 LS산전 부회장, 妻 독고진
      • 1녀 구소연
      • 2녀 구소희[19]
    • 1녀 구혜원 푸른그룹 회장, 夫 주진규
  • 6남 구두회 YESCO 명예회장, 妻 유한선
    • 1녀 구은정 태은물류 대표, 夫 김중민 스탭뱅크 회장
      • 1남 김태익
      • 1녀 김지선
      • 2녀 김국선
    • 2녀 구지희
    • 1남 구자은 LS전선 상무, 妻 장은영
      • 1녀 구원경
    • 3녀 구재희, 夫 김동범

----
  • [6] 사업에 참여하라는 아버지 구인회의 부름이 있기 전까지 구자경은 진주사범졸업후 국민학교에서 5년간 교사생활을 하였다.
  • [7] 고등학생때 급사
  • [8] LG그룹 후계자, 구본무는 딸만 둘이기에 장자승계를 위해 동생 구본능의 아들 구광모를 자신의 아들로 입적시킴.
  • [9] LG가의 유교적 가풍이 너무 강해서 첫째아들의 죽음이후에 다시 아들을 얻으려고 구본무회장이 51세때 늦둥이를 낳았는데 딸...
  • [10] 1996년 교통사고로 사망. 이에 대한 스트레스로 구광모가 그해 수능을 망침. 다음해에 한양대에 붙었지만 다니진않고 미국유학을 떠남.
  • [11] 1998년 혼인. 66년생인 차씨는 구광모와 불과 12살차이...
  • [12] 11년말에 이혼
  • [13] 1995년 심장마비로 사망
  • [14] 1999년 사망
  • [15] 2012년 조금숙에서 개명
  • [16] 범한물류와 같은 회사다.
  • [17]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 [18] 2011년 박서원과 이혼
  • [19] 배용준의 여자친구였지만 결별했다고 한다.


2. 일제강점기 순수문학 단체

구인회는 1933년 8월, 당시 문단의 중견작가라 할 수 있는 사람 아홉명이 모여서 만들어진 문학 친목단체였다. 이름만 보면 10cm마냥 그냥 막 지은 것 같다.
창립멤버로는 기림·이효석·종명·김유영·치진·용만·이태준·정지용·무영이 있었으며 이후 이종명·김유영·이효석이 탈퇴하고 대신 박태원·이상·팔양이 새로 들어왔으며, 그뒤 유치진·조용만 대신에 김유정·환태로 바뀌었으나 회원수는 항상 9명이었다. 일제시대의 소녀시대

사실 구인회는 문학 친목단체를 내세우면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1930년대 초반, 경향문학(카프)에 대한 일제의 탄압[20]을 목도하고 민족주의 문학의 퇴조를 지켜보던 과정에서 문학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요구하던 것이 구인회 전체의 목적이 된 듯하다. 구인회의 멤버들은 그 방향성을 모더니즘에서 찾은 듯하며 이는 당시 시대의 흐름상 근대 문명의 유입을 직접 목도하고 이를 영위할 수 있었던 때문이라 하겠다.

당시 구인회 멤버들의 활동 결과를 지켜보자면 예술의 독자성을 옹호하며 기법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고, 실용성을 중심에 놓는 중산층의 물신숭배적 가치척도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보편적 측면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화의 결과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당대 사회의 해체현상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서구의 모더니즘과는 달리 문명화 - 물질화에 대한 지향, 예술적 세련됨을 부린 문학을 통하여 근대성을 추구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는 서양의 그것과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모더니즘 문학 활동은 위에서 상기한 것처럼 당시 서양의 모더니즘의 흐름과는 차이가 났으며 서양의 모더니즘과 유사한 활동이 일어난 것은 후기 모더니즘, 즉 1950년대 후반이었다.

...라고 어렵게 써놨는데 1920년대 서양이 모더니즘 운동은 근대적 감수성을 추구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다면 1930년대의 식민지 조선의 모더니즘 운동은 근대화에 대한 환상, 지향이 주로 드러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21] 3~4년만의 활동을 보여주었기에 안타깝다고 말할만하나, 1937년부터 무슨 일이 생겼고, 이로 인해 촉발된 일들을 생각해보면 더 활동하려 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천국복음전도회 교주 구인회

자세한 사항은 천국복음전도회 참고.
----
  • [20] 1931년 공산단 재건 운동과 관련하여 카프 맹원들에 대한 검거 사건이 있었으며 이때를 기점으로 박영희, 김기진 등이 세력을 잃고 임화등의 강성들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주게 된다.
  • [21] 저 인물들 중에서 요절한 사람만 최소 두 명은 넘어간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15 13:51:49
Processing time 0.2052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