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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

last modified: 2015-04-07 12:39:38 by Contributors


국가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 1337

충성 · 명예 · 정의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악마의 붉은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통일전선 앞장을 서리
굴복을 모르는 화랑의 후예
국민의 힘이 되는 기무부대
미덥다 든든하다 정의의 후예
살아있는 성벽이다 기무부대
 
-기무부대가

기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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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軍機務司令部
Defense Security Command (DSC)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흑역사
4. 기무부대
5. 지원 및 선발
6. 출신인물


1. 개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로 사령관은 중장이다. 홈페이지
미국 제24군단의 정보기관 CIC와 인연이 깊다. 김창룡이 역대 기무사령관에 들어가있다(당시 이름은 특무대). 겉모습만 보면 미국 군사정보국(DIA)과 비슷하다. 하지만 정작 DIA의 직접적 모델은 국군정보사령부. 현 명칭은 91년 바뀐 것. 전혀 관련이 없지만 그전에 국방부에는 제3국과 제4국이라는 수사기관이 있었으나 훗날 해체된다. 북한에는 우리의 기무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인 보위사령부가 있다.

2. 역사

국군기무사령부 변천사
1940년 ~ 1950년 1950년 ~ 1960년 1960년 ~ 1968년
조선 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1948년 5월)
→특별조사대(1948년 11월)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1949년 10월)
육군 특무부대(1950년 10월)
Counter-Intelligence Corp
육군 방첩부대(1960년 7월)
Special Investigation Service
해군 방첩대 (1953년)
National Security Unit
공군 특별수사대 (1954년)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1968년 ~ 1977년 1977년 ~ 1991년 1991년 ~ 현재
육군 보안사령부(1968년 9월)
Security Command
국군 보안사령부(1977년 9월)
(해군 방첩대, 공군 특별수사대 통합)
Security Command
국군 기무사령부(1991년 1월)
Defense Security Command
해군 방첩대
National Security Unit
공군 특별수사대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자유대한민국 수호 및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 지원

군사보안지원, 군 방첩, 군관련 첩보 수집 및 처리, 특정범죄 수사 등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 내부 범죄에 대해 크든 작든 수사권이 있는 조직은 헌병, 기무, 법무 세 곳이다. 민간으로 치면 헌병은 경찰, 기무는 국정원, 법무는 검찰이다. 이 세 곳은 서로 '不可近 不可遠'의 관계에 있다. 기무사는 한국전쟁 당시 특무부대란 명칭으로 창설되어 이후 여러 방첩대와 합쳐 육군방첩부대 → 육군보안사령부 → 국군보안사령부 순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창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군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1960년대~80년대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기에는 군 외부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했다. 이는 본래 군 내부 및 군 관련 사항에 엄격히 제한되어야 할 수사권을 포괄적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군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독대 직접 보고를 하였다. 국방부 직할부대임에도 국방장관도 못 건드리는 위치였다. 중앙정보부만이 보안사를 견제하였다.

그러나, 10.26 사건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국내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게 된다.[1] 당연히 이후에 전두환과 하나회를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영향력을 활용하여 권력을 탈취한 것이 바로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세력. 당시 보안사령부의 정보력과 수사, 연행권이 박정희 사망이후 이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언론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K-공작계획), 야당인사 정치활동규제, 민정당 창당 심지어 국회의원선거 공천까지 보안사에서 주도했다. 1980년대 이후에도 야당 정치인사, 재야인사,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민간인 사찰을 계속해 왔다. 유명한 녹화사업 역시 보안사의 작품.

그러다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언론에 폭로되는데 이것이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다. 당시 폭로된 명단이 무려 1300여명. 심지어 당시 집권당 대표였던 김영삼도 있었다.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바꾼 것도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사실 '기무(機務)'라는 명칭이 기존 이름인 '보안(保安)'보다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라 모르는 사람들은 이곳이 당최 무슨 부대인지 알 수가 없다. 사전적으로 '기무(機務)'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와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기무사령부의 '기무'는 후자의 의미로 보인다. 즉 '기밀 임무'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2]

현재는 군 외부에 대한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말이다.이쪽 일이 원체 비밀이 많다 보니… 그렇지만 군 내부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 기무사 소속 장교·부사관은 해당 계급이 낮더라도 절대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거나. 군 내부를 대상으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수집/활용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보안사항. 상사대대장도 함부로 말을 못한다. 상사의 경우 대령까지 독자적으로 조사할 수 있기 때문. 만약 기무사령부 상사에게 밉보였다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없다고 마음먹고 조사하면 꼬투리 잡혀서 불이익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 애초에 계급이 높더라도 기무사 소속 군인들은 웬만해선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하지만 어느정도 인맥이 있다면 동기의 전화번호를 물어볼때… 부탁하기도 한다.

3. 흑역사

1993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를 없애고 정상적으로 국방장관의 통제를 받게 하였다. 사령관 직급도 소장으로 한 계급 내렸으나 1년만에 다시 중장으로 환원되었다. 기무사령관은 중장 보직이며 기무사 부사령관과 참모장이 소장, 그 아래 수뇌부로 준장 7명이 편제되어 있다. # 기무사령관은 군 의전 서열에 있어 3성 장군내에서는 2번째 서열의 보직이며 따라서 현역 군인 중 10위[3]다. 국방일보 기사

그러다 2008년 기무사령관의 정기적인 대통령 독대가 부활하였고, 2009년 여름 기무사 수사관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었다. 사찰내용이 기록된 캠코더와 수첩 등 증거자료까지 나왔는데도 어물쩡 넘어갈려다가 소송걸렸다. 결국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결과 2011년 1월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도록 법원판결이 나왔다. 법원, ‘기무사 민간인 사찰’ 국가 책임 인정 거기다 이미 발각되고 나서인 2011년 10월에 와서도 조선대학교 교수의 이메일을 해킹하다 걸렸고, 이 때문에 기무사의 불법행각이 문제가 되고 있다.

기무사의 고유 임무는 군내 방첩업무 및 군인과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이며, "치명적인 군사 보안 범죄나 군사기밀 유출 범죄, 군내 간첩활동에 연루되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의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민간인은 원래 사찰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특히 문제가 된 그 사건에서는 모 기업 파업 사건과 같이 군사 보안과 상관없는 일에 대해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것은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기무사 내부에서 수많은 비리와 불륜으로 기무사 자체가 심각할정도로 썩어있다. 특히 불륜사건의 경우 중령급에서 개입하여 덮으려했다가 더 크게 터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2013년도 말에 상당 수의 중~대령이 제대날짜보다 앞서서 제대해버린 것을 보면 이를 무마하기위한 더 윗선의 지시였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2015년 에도 각종 비리와 불륜은 여전하다고.


4. 기무부대

예하부대로 사단급 이상 제대에 기무부대가 배치되어 있다. 보통 해당 제대 사령부 영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사령부는 불편한 동거를 하는 셈. 강력한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큰소리를 칠 수 있고 사령부도 어찌할 수 없어 병폐가 일어나기도 한다. (흔히들 기무대라 부르나 엄밀히 말하자면 해당 사단 소속이 아닌 기무사령부에서 파견한 부대이므로, 기무부대가 정식명칭이다.)

일단 해당 부대 소속이 아닌 기무부대 소속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도 없거니와 기무부대도 해당 부대에 소속감이 없기 때문에 부대 막사를 제외한 시설관리가 소홀하다. 그러면서도 큰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사령부 시설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물론 행사가 끝나고 뒷처리는 사령부에서 한다. 이런 면들 때문에 기무부대 장병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정보/보안계열 처부의 경우 기무부대와 가깝고도 먼 관계가 된다. 신원조회, 대간첩업무, 보안감사 등 적지 않은 업무에서 기무부대와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처부에서도 기무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묘한 거리감이 자리잡기도 한다. 엮이자니 좋은 일은 없고, 멀리하자니 그렇고... 그래서 기무부와 친한 곳은 간부식당뿐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 관련 간부들은 기무부대를 두고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씹는 경우가 많다. 업무관련 접촉 이외에 간부들이 기무부대를 가장 많이 찾을 때는 '장성급 진급 및 인사' 때. 장성급 장교의 경우 진급과 인사가 대외비로 되어 있고 이쪽이 가장 소식이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행정병 보직을, 그것도 정보분야 보직을 받았을 경우 피곤하게 되는 존재다. 보통 하루이틀전에 통보를 하고 오지만 만약 당일 아침에 통보해서 10시쯤 온다면, 결과가 좋든 나쁘든 피보는건 정보병이다. 실제로 08:30에 통보를 받고 한 시간 동안 50여 대의 PC를 싸그리 점검하는 경우도 있는 듯.

5. 지원 및 선발

장 교
육 군 해 군 / 해 병 공 군
 임관 후 4~6년차 장기복무자 
전투병과장교(항공포함)
 임관 후 4~5년차 장기복무자   임관 후 4~5년차 장기복무자 
교육성적 및 근무평정 우수자
 - 임관 또는 고군반 30% 이내자
부사관
 임관 후 2~5년차 하사 또는 중사로서 장기복무자 또는 장기복무 희망자
 양성 또는 초급과정 교육성적 상위 30% 이내자
 인성 및 근무경력 우수자

  구 분   행정병 특기병
선발대상  육군교육사 육군훈련소 입영자
 해군교육사 1군사교육단 입영자
 해병대교육단 입영자
 공군교육사 기본군사훈련단 입영자
 육군교육사 육군훈련소 입영자
  - 병과학교 교육생
 해군교육사 1군사교육단 입영자
  - 후반기 교육생
 해병대교육단 입영자
  - 후반기 교육생
 공군교육사 기본군사훈련단 입영자
  - 후반기 교육생
 
자격조건   대학 재학 이상 학력 소지자  
 신체 3급 이상
 고졸 이상 학력 및 기술특기 소지자 
 신체 3급 이상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신병훈련 중 면담/신원조회를 거쳐 선발한다. 육군(특기번호 154 101)의 경우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만 선발이 이루어진다. 선발된 인원은 국군기무학교에서 2주간 교육을 받은 뒤 전국의 기무부대로 배치된다. 해군 같은 경우는 병과에 따라 1명 내지 2명이 걸려서 간다고 하며 보통 후보는 5배수. 후반기 교육 최종 평가 당시 시험 본 후 배치 판정 받을 때 걸린다.

배치 부대, 업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타 공인 환상의 보직. 하지만 파견 없는 부대에 배치되면 내부에서 불쌍하다고 위로받기도 한다. 따로 유격이나 혹한기 훈련같은건 안받지만 그만큼 매월 15일 민방위 훈련은 칼같이 받기도 한다. 간혹 해병대 장병들은 훈련이 없다는 것에 실망해서 강도높은 유격훈련을 받고 싶다는 소원수리를 제출하기도 하지만 가볍게 무시당한다. 하지만 최근 해병사단을 지원하는 예하기무부대(물론 간부와 병사가 해병)에서는 부대장의 배려로 부대 병사들이 사단 병사들과 함께 각각 1주와 3주간의 유격훈련과 기습특공 훈련을 받고 수료하였다. 11년도 부터는 국방부 지침이 내려오면서 2박3일 유격이 실시되었다. 해공군 지못미 ㅜㅜ 그외에는 전방 예하부대에서 가끔식 2박3일 gop체험도 한다고 한다.

사령부 본부에서 근무하게 되면 간부 대비 병의 비율이 안습 수준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타 부대보다 편할지 모르나, 오히려 예하대만 못한 경우가 많으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원형탈모증에 걸린 병들을 보기가 매우 쉬우며, 전역하는 날 아침에 전역 신고하고 저녁이 될 때까지 일하다가 나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간혹가다 아직도 기무부대 병이 사복입고 핸드폰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연히 기본적인 근무는 근무복 혹은 전투복이고 사복은 휴가나갈 때만 입었으며, 그것도 09년 2월 공문이 내려와 폐지되어 휴가때도 전투복이나 근무복, 정복을 입고 나간다.[4] 업무 특성상 사복을 입는 병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당연히 업무 때문에 허가되는 것으로 그 일 끝나면 도로 군복을 입어야 한다. 핸드폰의 경우 당연히 일반병은 가지고 다닐 수가 없고 간부를 모시고 다니는 운전병에 한해서 지급된다. 운전병 소환기

일부의 경우 기무사 나오면 나중에 취직 안된다면서 일부러 1차과정에 선발되도 생까는 경우도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 다만 육체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려 자원한 해병대에서 기무사에 차출될 경우 슬퍼한다는 이야기는 있다. 대신 간부의 경우 기무사 소속이었다가 출신 군의 일반 부대로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몇년 동안 감시를 당한다고 한다.


6. 출신인물

 성 명  비 고
윤석양  1990년 10월 4일 육군 이등병 신분으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때 불법 사찰 내용을 양심 선언하여 
 그 해 가을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 인물이며, 부대 이름도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 
허삼수  육사 17기. 하나회 회원으로 12.12 군사반란때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의 인사처장이었다.
 반란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후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로 들어가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허화평  육사 17기. 하나회 회원으로 12.12 군사반란때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의 비서실장이었다.
 반란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후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로 들어가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 보좌관과 정무1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이서진  연예인 이서진이 맞다. 해당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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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암살한 초유의 사태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 당연히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다른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임명할 수는 없었지만(김재규의 끄나풀이 중앙정보부 내부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을 지 모르므로) 그렇다고 해서 정보기관간 견제와 균형을 무시하고 다른 정보기관의 장에게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맞긴 것은 분명 당시 한국 정부의 실책이었다. 하여튼 이 사건 때문에 중앙정보부는 안기부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보안사의 하위기관처럼 전락해 버리고 만다.
  • [2] 1894년 1차 갑오개혁 당시 설치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따왔다는 견해도 있는데, 여기서의 '기무'는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실제 군국기무처는 폐정 개혁을 위한 초정부적 기구로서, 정보 통제나 감시와는 무관한 '입법 기관'이었다.
  • [3] 대장 8명+해병대사령관(중장 1위)에 이어서.
  • [4] 다른 국직부대처럼 부대 마크 대신 철제(정복, 근무복) 혹은 포제(전투복) 국방부 휘장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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