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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천대

last modified: 2015-03-29 01:28:41 by Contributors

國府遷臺, 國府遷台[1]

중화민국이 '대만' 혹은 '타이완'으로 불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

Contents

1. 개요
2. 선택
3. 결과

1. 개요

(ɔ) Ericmetro from


이 지도에서 조금 연한 색은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 영토는 아닌 곳이다.

직역하면 민당 정만으로 튀었도하다라는 뜻으로, 1949년 12월 7일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국공내전에 패배하여, 중화민국의 사실상 수도를 중국대륙의 난징(南京)에서 대만 섬타이베이(臺北)로 옮긴 사건을 말한다[2]. 사실 난징 함락은 4월 23일이었고, 그 후 국민정부는 타이베이에 정착하기까지 8개월간 광저우(廣州), 충칭(重慶), 청두(成都) 등을 전전했다. 난징 함락 후 국민정부는 일단 광저우로 퇴각했으나, 중공군이 화남 지방을 석권하면서 광저우가 위태로워지자, 10월 13일 광저우를 버리고 중일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충칭으로 이동한다. 그러다가 11월 30일 충칭마저 공산당 수중에 떨어지자, 국민정부는 재차 청두로 퇴각하였고, 12월 7일 쓰창(西昌)에 대본영을 남겨두고 타이베이로 철수하게 된다. 12월 27일 청두는 함락되었고, 쓰창에 잔류한 국부군은 이듬해 4월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이 때 장제스(蔣介石)는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군의 하위층은 버려놓고[3] 중국 국민당의 고위층을 데려오는데, 미국의 수송선을 빌려서는 자금성에 있었던 중국 유물들을 싸그리 털어서 대만 섬으로 가져왔다. 당시 미국이 매우 빡쳤다 국부천대를 할 때 털어온 중국 유물들은 국립고궁박물원에 전시하여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는데 실컷 잘 써먹고 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 2013년 11월 3일 방송분에서 소개되었다.

2. 선택

원래 장개석이나 국민당의 높으신 분들은 중일전쟁시 정부를 이전한 적이 있던 쓰촨성등의 중국 서남부로 천도할 생각이었는데 20세기 촉한?[4] 타이베이 천도를 건의한 것은 지리학자 장치쥔(張其均)이었다. 일본이 남기고 간 산업자원, 공산당 세력이 미약한 점, 그리고 섬의 전략적 가치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서 대만은 일본이 장기간 점령한 상태라서 독자적인 군벌세력이 없다는 점도 장개석의 흥미를 끌었다.

만약에 이 사람 말을 듣지 않고 그냥 대륙 한구석으로 천도했다면 지금과 같이 (사람에 따라 '중국인'과 구분되기도 하는) '대만인'이라는 정체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섬 지역의 특성상 내륙인들과는 좀 다른 지역색이 강했을 테지만 적어도 '나는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오'이러는 사람이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국민당군의 주력이 중국 서남부에 몰려버리므로 섬을 지킬 병력이 매우 부족해서 생각보다 일찍 중공군에게 접수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만 독립파들은 국민당 정권이 옮겨오지 않았다면 인민해방군은 대만을 자국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티베트 등을 생각한다면 인민해방군이 대만에 안 들어올 리가 없었을 거다. 그러니 지금 중화민국이 21세기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당시 인민해방군이 들어온 게 아니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만이 아닌 진먼마쭈도 중화민국의 통치를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 실제로 하이난 섬의 경우 타이완 섬에 필적하는 크기를 가지고 수십킬로미터의 해협으로 중국본토와 분리된 상태였으며, 이미 본토를 거의 상실한 중화민국군이 상당수 주둔한 지역이었지만 1950년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함락된 전례가 있다.

또한, 국부천대를 감행하지 않았으면 중화민국의 수명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해외 화교들이 남베트남 망명 정부처럼 중화민국 망명정부나 만들었겠지... 중공군이 티베트까지 완전 점령한 것이 1952년이고, 윈난성과 쓰촨성에 국민당군이 상당수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로 밀린 끝에 미얀마타이 국경선을 넘어서 피난가게 되므로 이들 지역으로 수도를 옮겼다면 피난 과정에서 와해되거나 지배영토가 하나도 없는 망명정부 수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내륙 깊숙이 있어서 유사시 미국이 항공모함등으로 도와주러 오기 매우 어려운 지역이다.

설령 이 모든 것을 버티고 살아남더라도 쓰촨성이나 윈난성은 군벌의 세력이 강한 곳이라 기존의 방식인 중앙정부 따로, 군벌 지배지역 따로의 현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렇게 되면 지금의 대만처럼 버티기는 커녕 내부 분열로 인해 자멸할 가능성이 높다. 레알 촉나라[5] 그렇게 되면 중화인민공화국은 별다른 피해도 입지 않고 아주 손쉽게 하나의 중국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국민당의 대만 천도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3. 결과

우선 당연하게도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륙을 석권했다. 단 실제 건국은 국부천대 이전인 1949년 10월 1일에. 난징 함락인 4월부터 10월까지는 과도기로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의 탈바꿈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었다.[6][7] 그리고 신생 독립국 중화인민공화국과 그 모국 중화민국과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중화민국의 실질적 영토가 현재와 같이 확정된 것은 1950년대 중반이다. 이 전쟁은 1970년대 말에 '사실상' 끝났다. 사실상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양안이 휴전이나 정전 협정을 특별히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 다만 덩샤오핑은 대만에 대해 (현 체제를 유지하는 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적은 있다.


결과적으로 대만으로 천도함으로서 중국 국민당의 생존은 보장되었다. 대만 침공을 준비하던 중공군(인민해방군)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투입되느라,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내부 문제와 경제난 때문에 사실상 상륙작전을 포기했고[8], 덤으로 미군의 주요 기지인 오키나와와 가까우므로 양자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했으니 이 시점에서 사실상 안전이 장기간 보장된 셈이었다.

이 때 중국 국민당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 대만 섬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외성인이라 부르며, 타이베이, 신베이(新北), 지룽(基隆), 타오위안(桃園) 등 대만 북부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 아무튼 국공내전 패배 덕에 타이베이는 중화민국의 '변방의 고만고만한 도시 중 조금 크기가 있는 도시'에서 '중심 도시'로 변해버렸다. 1661년에 세워진 타이완 정씨왕국의 수도가 자리잡았던 타이완 섬 남부에 있는 타이난(臺南) 이래로 중국 역사에서 수도를 섬에 둔 첫 사례 것.설마 그 뒤도? 정극상

여담으로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을 선언하자 중화민국의 승인을 전격 취소해버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NTR했다. 그 뒤를 사회주의 및 제3세계 국가들이 따랐는데 영국, 노르웨이 등의 서방 일각도 뒤따랐다![9] 다만 영국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게, 홍콩이 중국 공산정권 코앞에 있었기 때문. 노르웨이는 몰라도 영국만큼은 미국과 매우 밀접했기 때문에 홍콩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중국 공산정권을 승인할 일이 없었을 거라는게 중론이다. 그러나 정작 중공은 단절된 서방과의 교류를 위해 홍콩과 마카오를 사실상 일부러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영국의 판단은 좀 성급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최종적으로 국제사회에 뛰어드는 데에 성공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선견지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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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칙적으로는 國府遷臺로 써야 하지만 전통적으로 한자 문화권에서 臺를 빨리 쓸 때 발음이 같은(한국어에서는 완전히 같진 않고 비슷한) 台로 쓰는 경우가 많아 관습적으로 國府遷台도 통용된다(참고로 중국 대륙의 간화자나 일본의 신자체는 아예 공식적으로 臺를 폐지하고 台에 병합해 버렸다). 國府遷臺, 國府遷台 모두 한국 한자음으로 읽을 때는 '국부천대'로 읽어야 한다. 台의 원래 한국 한자음은 '태'(별 이름에 사용)와 '이'('기쁘다'라는 뜻. 이때는 怡와 동자)만 있지만 臺를 대신하는 글자로 썼을 때는 당연히 臺의 음을 따라 '대'라고 읽어야 한다.
  • [2] 사실 중화민국은 오랫동안 명목상 수도난징이라고 했다. 하지만 천수이볜 정권을 거치면서 이게 애매해졌다. 마잉주 집권기를 전후해선 아예 "대만의 수도는 타이베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행정원이 발행하는 연감에선 아예 대륙지구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 [3] 일부는 공산당에 의해 숙청되거나 2중대중국 국민당 2번항목에 참여하게 된다.
  • [4] 실제로 중화민국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촉나라에 비유하여 제갈량후출사표에 나오는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 한나라(촉한)와 도적떼()는 양립할 수 없다)이라는 표현을 써오기도 했다. 물론 중화민국이 말하는 한적불양립의 '한'은 당연히 대만으로 옮겨간 중화민국 스스로를 가리키고, '적'은 중화인민공화국(당시 중화민국의 표현으로는 중공)을 가리킨다.
  • [5] 사실 촉나라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촉나라는 적어도 제갈량이 있는 동안 현재의 쓰촨성 지역뿐만 아니라 윈난성까지 정벌해서 어쨌든 지배 체제는 충분히 다져놨다.
  • [6]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은 지금 없어졌고 자신이 중화민국의 국제법상 후계국가라고 주장한다. 즉 합법적 권리를 승계받았다는 것. 정작 중화민국은 대만에 살아있다. 흠좀무 초창기에는 물론 씹혔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저 주장을 인정한다. 아직까지 중화민국이 대만에 시퍼렇게 살아있으므로 사실 논란이 좀 많은 편인데,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력이 워낙 넘사벽이라 커버가 되는 편. 다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의 국제법상 후계국가라는 점은 1971년 유엔에서 공인된 사항이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이 넘사벽이라 억지스러운 주장을 커버하고 있다는 관점은 대만 국민당측 입장에 치우친 면이 있다. 근데 유엔에서 공인될 수 있었던 것도 넘사벽 국력으로 이뤄진 거 아닌가? 자세한 내용은 양안관계 문서를 참고하자.
  • [7] 다만, 중화민국이 대만에 살아있고 유엔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화민국의 후계국가로 공인한 것이 넘사벽 국력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 자체가 중화민국측 입장에 치우쳐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측은 자신들이 정통 중국이 맞고, 대만의 중화민국은 정권을 잃은 국민당 잔당세력이 중국 영토의 일부인 대만(과 진먼, 마쭈)을 무단점거해서 세운 것이라는 입장이며 이 역시 중국 공산당이 외부의 침략자가 아닌 엄연한 중국 내부의 정치세력이었음을 생각하면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의 정권교체(와 그에 뒤따른 국체 전환)으로 보아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물론 중화민국과 국민당측은 '반란 세력인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불법적으로 탈취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꼭 중화민국의 입장을 지지할 이유는 없다. 예컨데, 일제의 '강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불법 강점이지만,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를 두고 정통성이 왕씨왕조에게 있으니 이씨왕조는 반란으로 왕위를 찬탈한 참왕세력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거야 받아들이는 사람이 판단할 문제지, 덮어놓고 이씨왕조의 세력이 넘사벽으로 세서 정통성 없는 주장을 커버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부분은 양안관계 문서나 국공내전문서등을 보고, 가능하면 다른 자료들도 찾아본 뒤 직접 판단하자. 어찌됐든 누가 정통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중국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게 불만이면 '대륙반공'이든지 '대만해방'이든지 이룩하면 중국이 하나라는 것에 누가 시비할 사람 없다.
  • [8] 게다가 대만은 하이난섬과는 달리 대륙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상륙 자체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중국 국민당도 꽤나 고생한 피난길이 되었었다.
  • [9] 심지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논하는 자리에 최대 피해자인 조선을 불러와야 하는데, 남북 어느쪽을 부르느냐를 놓고 미국과 소련이 논쟁할 때 영국은 은근히 소련 편을 들었다. 한국전쟁 때는 대한민국 편에서 싸워줬잖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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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9 01: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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