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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Contents

1. 國史 - 한 나라의 역사
1.1.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1.1.1. 국정 교과서의 구성
1.1.2. 크고 아름다운 분량과 이로 인한 애환
1.1.3. 과목의 특성
1.1.4. 난이도와 등급
1.1.5. 기출과 공략법
1.1.6. 국사는 진짜로 부담스러운 과목인가?
1.1.6.1. 6차 교육과정
1.1.6.2. 7차 교육과정
1.1.7. 등급컷의 변천역사
1.1.8. 유명한 인터넷 강의 강사들
1.2. 신라의 역사책
2. 國師
3. 國事

1. 國史 - 한 나라의 역사


1.1.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과목 일람 (~2013학년도)
윤리국사한국지리세계지리
경제지리한국근현대사세계사법과사회
정치경제사회문화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과목 일람 (2014학년도~)
윤리와사상생활과윤리한국지리세계지리
동아시아사한국사세계사법과정치
경제사회문화


11과목 중 일원이자 국민공통기본교과의 하나.


그 이름대로 한국의 역사를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 총 망라하는 장대한 과목이다. 사회탐구 과목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과목이며 때문에 이런저런 험한 꼴 많이 당한 과목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이 개편됨에 따라 한국근현대사 위주의 한국사 과목이 신설됨으로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1.1. 국정 교과서의 구성

국수주의적 요소가 대단히 많이 들어가[1] 문제점인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간도와 백제의 대륙진출설. 전반적으로 극도로 우호적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심지어 고대사 쪽에서는 실제 사실과 다른 부분도 존재하기까지 한다[2]. 또한 교과서를 계속 읽다보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문화는 독자성을 엿볼 수 있다고 꾸준히 써놓고 있고 일본과의 문화교류 부문에서는 일본이 한 수 배웠다는 식으로만 쓰여져 있어 이중 잣대가 눈에 띄기도 한다. 또한 문화사 부문에서는 굳이 미화할 필요가 없는 문화재까지 좋게 서술하려고 애써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관촉사 미륵석불이나 분청사기에 대한 서술은 언어 예술급이다. 6차 개정 교과서의 경우 고구려를 대제국이라고 써놓은 문장도 있다.(50-51쪽)

시대 구분으로는 선사시대(구석기~철기 초기)+고조선, 초기 국가/고대(고구려, 백제, 신라)/중세(고려)/근세(조선)/근대 태동기(조선 후기)/근·현대로 나뉘어지며 첫단원에 "한국사의 바른 이해" 라는 내용이 나온 후 두번째 단원에서 선사시대와 초기국가가 나오며 다음 단원부터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각 시대에서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로 세분화되어 다루어진다. 조선 후기를 근대 태동기로 따로 분류해놓은 것은 식민사관의 극복을 위해 자본주의 맹아론을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대단원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시대순이 아닌 역사 철학/선사시대~초기국가/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 식의 분류사로 나뉘어져 있어서 일부 학생들은 이에 애를 먹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강사들은 아예 시대별로 나누어 가르치기도 한다. 어차피 이 과목을 전부 다 공부하여야 하는 수능 국사 선택자들이야 어떻게든지 공부하면 되는 일이고 정치사에서 모든 시대를 한 번 훑은 다음에 잊을 만하면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를 차례대로 보면서 겹치는 내용도 있고 자연스럽게 앞의 내용을 복습할 수 있게 되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신으로만 국사를 공부하며 단기기억으로 내신 시험을 치르는 이과 지망생이나 국사를 선택하지 않을 문과 지망생들에게는 1학기 중간고사부터 2학기 기말고사까지 자연스럽게 정치사,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가 각각 시험범위로 잘리면서 비슷한 듯 하면서 다르고 겹치는 듯하면서도 안 겹치는 내용들을 매 시험 기간마다 처음부터 공부해야 하는 흠좀무한 괴악스러움으로 애를 먹였다.

사족으로 국사와 한국근현대사가 분리된 7차교육과정 첫 수능인 2005년 수능부터 근현대사 파트가 빠져나가며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국사와 달리 한국근현대사는 문과든 이과든 학교나 개인의 선택[3]에 따라서 전혀 배우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도 있는 데다가 배우더라도 문이과 구분 없이 전체 내용이 수능에 출제되던 6차교육과정까지의 시기와 달리 역사 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결국 교과서 개정을 통해 2009년 수능 즈음부터는 다시 한국근현대사파트도 맛보기로 배우게 되고 수능에도 일부 출제되게 되었다. 우리 역사를 잘 알게 돼요. 야! 신난다~

하지만 초기 교과서에도 근현대사 내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지금처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사 각 단원에 소단원으로 근현대사가 박혀있어서 하나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문화사 단원이 끝난 이후 부록처럼 근현대사 단원이 뭉쳐있어서 교과서의 분량은 똑같았다. 다만 수능 출제 범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량이 워낙 많아 진도 나가기에도 바쁜 근대사 이전 내용 진도 나가느라 굳이 근현대사 내용을 다를 여유가 없어서 무시했을 뿐이지... 결국 근현대사 파트는 쪼개돼서 각 분류사 파트에 적절히 함유되어서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한국사 교과서가 나올 때까지 국사교과서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1.1.2. 크고 아름다운 분량과 이로 인한 애환

이 과목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분량이 킹왕짱[4]이다. 다른 사회탐구 과목의 3배 정도인 교과서 자체의 엽기적인 두께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필수 과정이기 때문에 국사를 안 고를 학생들이 그 분량에 압도되는 고로 고 1 시험기간에는 곳곳에서 국사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대부분 내신 과정에선 1년 동안 정치사 한 번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능 때 시험 볼 사람들은 3학년때 다시 배운다.

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된 2011학년도 이전 7차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면 받는 교과서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교과서가 국사 교과서인데 당시 교육과정 기준 1학기 2시간, 2학기 2시간 이렇게 4단위를 배정해놓았다. 사회과의 나머지 교과서들은 검정교과서인지라 출판사에 따라서 규모가 조금씩 다르지만 국사와 비슷하거나 조금 얇은 정도 규모의 교과서를 가진 한국근현대사에 기본 8단위 배정하게 되어있고, 보통 국사보다 훨씬 얇게 나온 데다가 딱히 내용이 없어서 개잡학으로 불리던 경제지리에 6단위를 배정하게 되어 있는 것에 비해 훨씬 분량이 많은 국사의 단위수 배정은 상당히 인색한 배정인 데다가[5] 학교의 사정이나 각 학교의 교육과정 특성상 2단위 범위에서 증감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지만[6] 어차피 국사 시간이 배정된 고등학교 1학년은 국민공통교육과정으로 다른 과목들이 전부다 빡빡하게 짜여있기 때문에 다른 시간을 융퉁해오기도 쉽지 않아서 매주 2시간 안에 그 두꺼운 분량의 진도를 모두 나가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데 수능에도 나오지 않던 뒷단원(근현대사 파트)을 가르칠 시간이 있겠나

또 이렇게 빡빡한 일정으로 전 내용을 다 배우고 학년을 올라가면 또 문제인 것이 수능에서 국사를 선택하든 안하든 전 고등학생이 국사를 배우도록 하고 필수과목인지라 국민공통교육과정인 1학년에 배정을 해놓다보니 정작 수능으로 국사를 볼 학생들은 2년 전에 배운 내용을 가지고 수능을 봐야 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각 학교에서도 이러한 실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1학년 때 정규 국사 수업시간 이외에 재량활동 시간 등을 활용하여 국사를 더 가르치거나, 보충수업 등을 활용한다거나, 2~3학년 때 배정되는 한국근현대사 수업시간[7] 일부를 쪼개거나 보충수업시간을 이용해 국사 선택자들을 따로 복습시켜준다거나, 1학년 때 전체 내용의 진도를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2, 3학년 때 위에서 서술한 방법대로 나머지 파트의 진도를 나간다거나 하는 식의 편법 운영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때마침 우등생들의 영원한 로망인 모 국립대에서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며 우등생들이 몰려들자 안 그래도 크고 아름다운 분량에 정나미가 떨어진 등급 하락을 우려한 보통의 수험생들이 선택을 기피하면서 교육과정 파행운영과 선택 기피가 만나 국사 비선택자들 및 이과 수험생들의 역사인식 수준은 나락으로 떨어져갔다. 거기에다가 2006년 입학생부터 배운 교과서에는 마지막 단원으로 맛보기 정도로나 인식되었던 근현대사 파트도 단원 사이사이로 녹아들어가더니 이 학생들이 본 2009년 수능부터는 실제 출제되기까지 하였으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서 2007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국사와 한국근현대사 내용을 합쳐 한국사로 개편하고 내용이 많은 편에 속하던 문화사를 따로 빼 한국문화사로 분리하고 한국사 수업시간을 6단위(3시간씩 2학기)로 늘려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된 교육과정이 되도록 하였고 2011학년도 입학생부터 적용하려고 하였으나 그 사이 출범된 2009 개정 교육과정이 2011년학년도부터 바로 적용되자 신설될 예정이던 한국문화사는 빛도 못 본 채 사라지고 새로 구성된 한국사 교과서는 국사와 근현대사 내용이 합쳐진 대신에 학습 부담을 줄여 학습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근현대 이전 분량이 상당히 얇아졌고 수업시간도 기본 5단위에 4단위 범위에서 증감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함께 시행된 집중이수제 덕분에 이 엄청난 분량을 일주일에 대여섯시간씩 한 학기 내에 진도를 나가야 하는 미친 듯한 스케쥴에 대부분 학교에서 한 학기 내에 교과과정을 해치워버리는 데다가 대체로 1학년 내내 이수하던 기존과는 달리 고등학교 3년 중 어느 때든지 학교의 사정에 따라 이수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전학, 휴학 등의 사정으로 제때 수업을 듣지 못하면 국사를 못 듣고 졸업할 수도 있는 등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교육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집중이수제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1.3. 과목의 특성

세계사는 크게크게 물어보는 편이지만 국사는 이에 비해 조금 더 세밀하다. 대충 설렁설렁 공부해놨다가는 출제자가 작정하고 낸 소위 지엽적인 문제에 허를 찔린다. 짧게 말해 언수외와 동급 분량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이 과목이 얼마나 괴악스럽냐 하면

교과서는 국정교과서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교과서를 전국 공통으로 사용한다. 국사 과목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적어도 이 교과서를 각주나 심화학습 자료를 중심으로 읽어보는 게 좋다.

국사 선택자들은 문화사 부분을 제일 어려워하는데 이는 대부분 학교에서 정치사~사회사까지만 나가면 대충 1년이 끝나기 때문에 진도를 못 나가기 때문이다. 정작 문화사를 공부해보면 시험에 나오는 유물이나 사상이 계속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동안 묻지 않던 서예사, 음악사까지 출제해 수험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국사 공부는 암기, 역사적 감각이 병행되어 근성을 발휘해야 한다. 인터넷 강의의 유명한 모 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에 대한 애정' 이 중요하다. 특히 문화사는 뒷부분인 데다 암기가 필수적인 부분이라 요주의.

국사는 수능 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데 중요한 것은 이미 다 물어봤던지라 이제는 그냥 점수만을 위한 시험으로 구성되면서 점점 이미지와 난이도가 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 이수제를 시행하는 학교의 경우 2년 동안 배우는 분량[8]을 주당 6시간 수업으로 한 학기만에 끝내야 한다.[9]

1.1.4. 난이도와 등급

04수능까지는 일반사회, 한국지리와 함께 사탐 필수과목으로서 문과 이과 예체능에 상관없이 모든 수험생들의 두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주범. 특히 한국지리와 연동되어 지도 하나 던져주고 콕 찍어 "여기 특산물이랑 지형, 중요 역사적 사건 맞춰봐라" 는 식의 퓨전 문제가 많이 나왔다. 05년 수능부터는 선택과목 중 하나로 밀려났긴 했지만 그래도 자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다루는 의미 있는 평가이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중위권 이하의 학생이라면 꼭 해라 두 번 해라.

...는 훼이크고 문제 난이도에 비해서 1등급 컷은 상당히 높다. 이게 다 서울대학교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를 지원하려는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국사를 사탐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해놓았기 때문에 서울대를 꿈꾸는 학생들이 선택을 하다보니 역덕후+서울대 지원 인재 크리로 등급컷은 높아지기만 하고 만점을 받아도 다른 과목보다 표준점수가 낮다. 덕분에 문과 고등학생들에게는 고위층의 사치 취급을 받으며 2학년 중반까지만 해도 선택률이 괜찮은 편이나 시간이 지나며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점수는 조금씩 오르는데 석차는 떨어지는 괴현상 때문에 선택률은 갈수록 점점 감소한다. 게다가 고등학교 3학년때 그나마 국사를 선택했던 사람들도 모의고사 문제 등을 풀면서(특히 악명 높은 ebs 시리즈) 기존 학교 시험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난이도에 피를 토하며 결국 중간에 때려치게 되고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유물들이 다떨어져 나가면서 예비서울대생과 삼사(세계사, 근현대사, 국사)를 선택한 역덕후들과의 치열한 혈투가 전개되는데... 즉, 진짜 액기스들만 남아서 스타워즈,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펼쳐진다[10]. 국사 좀 할 줄 안다고 깔짝대면 그저 양민학살 당할 뿐...

그렇지만 사실 국사는 다른 과목에 비해 표준점수도 잘 안 나오기 때문에 꼭 1등급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3~4등급 맞고도 서울대 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론 언수외를 잘 봐야겠지만. 즉, 서울대 갈 사람들은 어차피 다 같이 국사 선택자기 때문에 큰 불이익이 없고 연고대 이하는 사탐을 3과목만 반영하기 때문에 국사 빼고 다른 3과목 잘 보면 돼서 이것 때문에 피해보는 일은 드물다.

최근에는 국사 기피 현상을 감안해서인지 매년 교과서를 개정할 때마다 조금씩 내용을 빼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려 말 최고 권력기관인 평의사사가 교과서에서 빠졌다.

이 과목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인증시험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을 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고(한국근현대사를 병행했다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없이 3급 정도까진 무난하다. 2008년 문제 기준으로는 2급 정도까지 가능[11]했으나 2009년 2급 시험의 난이도가 대폭 상승했다. 이게 다 국가고시를 개별적인 국가공인시험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나중에 공무원 시험 등에서 출제되는 한국사 시험을 공부할 때 맨땅에 헤딩할 필요는 없게 된다.

그래도 역사과목이라는 특성상 한 번 제대로 공부해두면 정작 수능날 배신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는다. 일반사회 과목과는 대조적이다.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과목들에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져 중학교의 경우 국사 과목은 해체되고 세계사 내용들이 더해져 역사로 과목명이 바뀌었다. 중학교 때 전근대사를 배우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근현대사 위주로 통합된 역사 교육을 받으며 인문계 학생일 경우 2, 3학년 때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중 1개를 선택해 배운다.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한국근현대사 과목과 통합되어 한국사로 과목명이 변경되었다. 사실 국사란 명칭 자체가 국가주의적 관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지라... 중학교 역사 과목 중 한국사 파트는 전근대의 한국사 내용을 다루는 데 비해[12]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은 내용의 2/3가 근현대사이며 세계사와 연관하여 다루고 전근대사부분은 대략적으로만 서술한다.

한때 국사-한국사가 필수과목에서 해제되는 것을 놓고 큰 논란이 있었으나 여론에 힘입어 2012년도부터 다시 필수과목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이는 교육과정 체제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7차 교육과정과 7차 교육과정을 개정한 2007 개정 교육과정[13]까지는 고1까지를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기간으로 설정하고 국사를 고1때 배우도록 편제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당선 직후부터 추진된 2009 개정 교육과정[14]부터는 이 공통기간을 중3까지의 9년으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이전 국사 과목의 계승자인 한국사 역시 당연히 필수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는 고교 1~3학년의 전 기간을 수요자 중심(학생)의 선택 체제를 지향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특성상 당연한 측면이 있었다. 물론 한국사는 1년만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유일하게 고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단일 과목이다.

1.1.5. 기출과 공략법

교과서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외우고 시작해야 한다. 교과서에 없거나 인지 못할 정도로 담겨있는 개념이 생각 외로 자주 나온다. 중요 개념을 학습한 다음 모의고사나 여러 시험을 통해 짜잘한 개념 익히기에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나선정벌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없긴 없는데 중학교 교과서에는 있다. 즉 나온다. 감은사지 3층 석탑이나 안동 이천동 석불 등은 교과서에는 없지만 출제될 만한(그리고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출제된 적도 있는) 사료이니 확인해볼 것. 아니 애초에 교과서에는 각종 관직들이 하는 일이 거의 서술되어있지 않다. 예를 들어 2008학년도 수능 11번에 출제된 '고려의 법 제정 기관(각주에 정답)[15]' 은 교과서에 전혀 설명이 없다.

2010년 3학년 3월 모의고사에서는 종묘 사진이 출제되었는데... 교과서에 없는 사진 같지만 있는 사진이다. 어디 있는지 찾아보면 웃음만 나올 것이다.[16]

연계로 인해 학생들이 많이 애용(?)하는 ebs교재 중 국사 시리즈(수능특강, 파이널 모의고사 등등))에도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과 자료들이 상당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기본 개념을 요약해놓은 쪽의 옆에 달린 주나 연습문제들에 주로 출현한다. 공부할 거 늘었다. 안 그래도 많은데...

요즘에는 유물, 사상 자체보단 유물 사진이나 관련 사료를 제시하고 당시 시대상(정치, 경제, 사회)을 묻는 유형이 유행한다. 가령 무신정권기와 상감청자의 연관이나 유명한 인물들(정약용, 퇴계 이황, 송시열 등)이 쓴 책의 문구를 하나 던져주고 알맞은 시대 상황 찾아내기 정도는 되어야 국사에서 어느 정도의 점수는 보장할 수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교과서에 나온 개념을 물어보기보다 평소에는 중요하게 봐두지 않은 지엽적인 부분이나 교과서에 없는 응용 사료나 지도 등을 내서 교과서 개념을 토대로 해석하게 하는 문제가 조금씩 나온다. 그러니까 교과서 통째로 외우시라!

다만 말장난으로 학생을 넘기려는 문제 같다면 조금 단순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충주 항목에 수록된 국사 문제, 2009년 9월 모의고사 고려 청자 문제 보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꾸준한 학생 괴롭히기 노력 덕에 모의평가나 수능에서 정답률이 50%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문제들이 조금씩 나온다. 게다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이 등장한 후 왠지 문제들이 검정시험형식화 되어가는 것 같다.

결국 근현대사 내용이 별도 단원에서 각 단원 내부로 스며든 교과서를 공부한 학생들이 응시한 2009년 수능부터는 그동안 출제되지 않던 한국근현대사 부분에서도 1~2문제가 출제되어 출제분량을 더욱 증가시켰다. 이 부분을 그냥 공부하느니 한국근현대사를 선택하여 같이 병행하는 게 훨씬 낫다. 근현대사 문제를 낼 거면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존재하는 의의에 대해 몇 번이고 따지고 싶지만 솔직히 한국근현대사가 존재하기에 국사, 세계사, 한국근현대사의 삼각진법을 구사할 수 있고 역사 잘하는 사람들에겐 신이 내린 패널티나 마찬가지니 양심과 이익의 갈림길에 놓인 문제라서 따지기도 애매하다. 솔직히 근현대사 공부했다면 난이도는 국사 치고 쉬운 편에 들어간다.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지는 정치사는 변별력을 맞추기 위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시대나 주제로 내는 문제 대신 정치 상황 등을 주고 그 당시 사회, 경제, 문화계의 동향을 물어보는 것 같은 단원 통합형의 문제가 서서히 늘고 있다.

평가원에서 내는 문제는 수능과 달리 1~2문제 정도 좀 지엽적으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90% 이상이지만 체감 난이도가 최상이 되는 문제가 간간히 출제된다. 1줄이나 1단어씩 나와있는 걸 시험마다 출제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 학생들은 '이런 것까지 물어보면 다음엔 뭘 물어보려고' 라며 치를 떨지만 다음에도 당연히 출제위원께서는 뽑아내신다. 물론 이래저래 읽다보면 답을 생각보다는 쉽게 추려낼 수 있긴 하지만 단어 하나 잡아내서 답을 찾아내는 식의 문제가 계속 나오는 건 확실히 다른 과목과 비교해서 비정상적인 현상이 맞다.

1.1.6. 국사는 진짜로 부담스러운 과목인가?

1.1.6.1. 6차 교육과정

국사 과목이 진짜로 부담스러운 과목이라는 말이 많지만 한때 문과에서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권하는 과목이었던 적도 있었다! 또한 이과 및 예체능 계열 학생들에게도 공통사회 중 가장 친숙한 과목이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차 교육과정의 수능 체제를 알아야 하는데, 당시 수능에서는 원서접수 시 인문계/자연계/예체능 중 한 계열을 선택해서 접수를 했다. 모든 과목은 계열별로 채점을 해서 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를 매겼다. 국어와 영어, 제2외국어[17]는 채점만 계열별로 할 뿐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보았고(현재와 같은 선택형이 아니었다는 것), 수학과 탐구는 문과/이과/예체능별로 각각 다른 시험지를 풀었다.

그런데 당시 탐구영역은 사과탐이 통합되어 있어서[18], 계열예 관계 없이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은 전원 필수였다. 예체능은 이 공통범위만 시험을 보고, 문과는 공통사과탐에 사탐 심화과목[19]을 1개 선택하고, 이과는 공통사과탐에 과탐 심화과목[20]을 1개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 중 공통사회는[21] 윤리, 한국사, 한국지리, 일반사회(정치, 경제, 사회문화 과목의 기본적인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국사 과목은 비록 분량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 내용을 초등학교때부터 계속 배워온 내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생각만큼 분량이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국사 파트에서 만점 및 최상위권 득점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공부를 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을 위주로 시험에 나왔던 데다가[22], 지금과는 달리 외우는 걸 잘 못 했더라도 주어진 자료에서 힌트를 찾아 추론만 해도 대충 찍어서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가 되었기 때문에 부담을 크게 가질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 때는 공부를 포기하다시피한 문과 하위권뿐만 아니라, 사탐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힘든 이과와 예체능 학생들에게도 국사는 상당히 선호도가 높았었다.


1.1.6.2. 7차 교육과정

전국의 학생들이 공통과목에 한해서는 다같이 시험을 봐야만 했던 6차와는 달리, 7차에 들어오면서 탐구영역 제도에 많은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변경된 제도는 2005 수능부터 적용되었다. 첫째, 사탐과 과탐이 분리되어 이제부터 문과는 사탐만을, 이과는 과탐만을 치게 되었다. 둘째, 더 이상 평가원 측에서 강제로 필수 지정하는 과목은 없어지고, 탐구영역 과목 선택은 오로지 학생의 자유에 맡겨지게 되었다. 이는 곧 국사 과목에 과거로부터 존재해왔던 수능포기자들과, 사탐에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쓸 수 없는 이과생 및 예체능계 학생들이 증발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대가 국사를 선택과목에 넣어야만 원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게 되었는데 다른 대학들 중에는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는 서울대를 지망하는 상위권 학생들이 필연적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평가원은 이러한 입시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채, 2005 수능 국사를 과거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이던 시절과 같이 쉬운 난이도로 내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이 때문에 국사는 1컷이 50점 만점이 되어 버리고, 2컷이 48이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23]. 결국 평가원 측은 그 이후로 국사 과목의 난이도를 점점 올리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생각없이 무조건 외우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과목이기는 하다. 이해력과 독해력, 분석력이 낮은 하위권 문과 학생들에게는 그나마 일정 점수까지는 노력과 근성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 두꺼운 이유는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내용부터 고등학교에서 새로 배우는 내용까지 모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생각없이 외워야 하는' 범위가 매우 넓고 깊으니까 문제. 그리고 그것들을 일일이 외운다고 해서 시험에 나올 거란 보장도 없다(..). 그렇게 자세히 파고들어갈만한 파트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교과서 자체도 위에서 언급된 대로 마개조당했기 때문에 심지어는 중학교에서까지 부담스럽고 어려운 과목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집중이수제가 시행되었던 세대들의 경우, 집중이수제로 인해 크고 아름다운 책을 한 학기에 다 떼어야하는 참사를 겪느라 국사를 기피하게 된 측면도 있다. 문제는 한 학기에 국사를 집중이수제로 끝낼 경우, 특히 1학기에 걸리면 최악의 참사는 이미 예정된 현실이었다는 것.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3월과 온갖 잡다한 행사가 다 들어 있는 5월을 날리고 나머지 기간 중에 크고 아름다운 책을 다 떼어야 하니 정상적인 수업이 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서울대학교에서는 2004년 이래로 국사를 필수 선택과목으로 계속 지정해버리는 바람에 수능 선택과목 국사 선택자는 나날이 줄어들고, 문제는 나날이 쪼잔해지고 산으로 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1.1.7. 등급컷의 변천역사

2009학년도 대수능 9월 모의평가에서 1등급 예상 컷이 42점까지 내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교과서 외의 사료들을 극악처럼 꼬고 기원전 4000년경만 주고 신석기 시대를 추론하여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까지 요구하는 문제를 까지 요구해서 많은 학생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러나 본수능은 1등급 컷 47점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출제되었다.

이어 2010학년도 대수능 9월 모의평가에서 1등급 예상 컷이 45까지 내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발했다. 원인은 18번으로 교과서에 4줄 나와있는 불교 신앙을 맞추지 못한 수많은 학생들이 쓸려갔다. 그나마 1줄 나와있는 신앙의 성격을 안 외웠으면 못 푸는 문제(정답률 13%). 인터넷 강의에서 이름을 날리던 모 강사가 이전부터 오답으로만 나온다고 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지만 수능에서 나온다고 해도 오답으로만 나올 것이라고 여전히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나오지 않았다. 수능보다는 지엽적인 걸 물어보는 평가원 모의수능 특성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였다.

이어진 2010학년도 수능 1등급 컷은 44이다. 조선 관직 관련 문제인 6번의 경우 주석 중 1줄에서 정답이 출제되었다. 실제로 교과서 날개 주석부분(교과서 97페이지 오른쪽)에 들어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뭇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모 사이트의 통계에 따르면 반 이상이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뛰는 출제위원 위에 나는 역덕후들 또한 18번 문제는 명종 재위기간에 일어난 일을 고르는 문제로 정답이 교과서 160페이지 맨 마지막 줄에 있었다는 것을 과연 누가 알았을지 의문이 들 정도. 그렇지만 이것마저 정답률이 높다. 역시 서울대와 역덕후의 위엄은 장난이 아닌 것이다.

2011학년도 수능 등급컷은 45. 그럭저럭 평범하게 서술되어있는 곳에서 출제되었지만 정답률 20%[24]의 귀향형 문제가 출제되어 다시 한 번 국사 과목의 위엄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3학년도 대수능 6월 모의평가에서 사상 최악의 불쇼가 펼쳐지는데... 드디어 국사 1등급 컷이 37점, 만점자가 15명이라는 희대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9번 문제는 지도를 직접 그릴 수 있는 정도까지 외우지 않으면 짤없이 틀릴 수준의, 차라리 학력고사에 가까운 문제였다. 10%대의 정답률을 자랑했던 16번 문제도 교과서 날개에 있는 글에서 살짝 나오는 인명까지 숙지해두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앞서 국사 선택자들이 얼마나 국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는지 서술한 바 있기에 이런 국사 선택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헬게이트를 시전할 정도로 문제를 만들 수가 있냐는 반응이 대다수이다. 애초에 국사 선택자들은 진정한 역덕후를 제외하면 서울대학교를 지망하거나 지망했던(즉, 지망했었으나 포기해버렸는데 사탐 바꾸기는 그래서 그냥 국사시험을 보는 이른바 '국포자') 사람들이기에 이들을 상대로 1컷 37점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다른 과목이 이 난이도였으면 충분히 30점대 초반, 심지어는 20점대 후반까지도 만들어버렸을 정도라고 해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국사 덕분에 2013학년도 대수능 6월 모의평가는 문과에서 언수외탐 2과목 만점자까지는 좀 있으나 언수외탐 3과목 만점자가 없다. 그야말로 난이도 조절 대 실패. 평가원 욕 좀 먹겠군 어느 때는 안 먹었냐마는 그 덕분에 이후 치러진 9월 모의고사에서는 1등급 48점으로 다소 평이한(혹은 쉬운) 난이도로 출제되었다.

1.1.8. 유명한 인터넷 강의 강사들

자세한 설명은 각 링크 참고 바람.

1.2. 신라의 역사책

진흥왕이 545년 칠부 등에게 명하여 펼쳐낸 역사책. 삼국유사에 《국사(國史)》 고려본기(高麗本紀)에서 인용한 글들로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역사를 기록한 내용인듯 보인다.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2. 國師

도선국사, 대각국사 등 역사적으로 이름 높은 고승에게 왕이 부여한 호칭 중 하나. 문자 그대로 '나라의 스승' 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특히 고려시대 인물 중 이 칭호를 받은 승려가 많다. 王師와 구분된다. 왕사는 왕의 스승이란 뜻인데 국사보다는 격이 낮다. 하지만 국사든 왕사든 명예호칭일 뿐인 경우도 많아서 왕에게 호칭을 부여받자마자 다시 원래 있던 절에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무학대사를 왕사로 삼았다. 밑의 신하들 때문에 국사로는 결코 삼을 수 없었고 왕사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왕사든 국사든 호칭을 부여받지 못했다.

3. 國事

나랏일을 뜻하는 한자어. 주로 조선왕조 때 왕이나 관료들에게 쓰였던 단어이며 현재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 일부에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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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웃긴 건 이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아름답지 않다고 환빠들에게 죽어라 까인다! 가장 큰 떡밥은 일제시대 조선사편수위에서 편찬한 조선사와 내용이 똑같다는 것. 물론 이들은 원문도 보지 않고 주장하는 것이다. 조선사는 단순히 사료만 배열해놓은 것 뿐인데 어떻게 교과서와 같단 말인가...
  • [2] 대표적인 예가 고조선 세력권=비파형 동검(최근 선비족 유물 중 유사한 형태의 것이 발견되어 논란 중). 그래봤자 웬만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오류지만... 역사 교과서는 모든 것이 정리된 다음에 마지막 바뀐다. 학설선에서 죽어라고 논쟁하고 그 다음으로 국편위의 한국사가 변경되고 그래도 논란이 없어야 교과서가 움직인다. 그래도 고대사는 그 논란을 다 수렴할 수 없기 때문에 '교과서가 맞다' 식으로 밀면 되는데 근대사 쪽으로 들어가면 역사적 논란이 있을 시 문제는 안 나온다. 예를 들어 독립협회와 관련해서 중추원이 설치된 적이 없다는 것을 맞는 지문이라고 내놓으면 독립협회 해산 과정에서 중추원의 투표가 큰 역할을 했다는 식의 반론이 바로 등장한다. 이건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에서 실려있는 내용인데 독립협회 띄워주는 차원에서 슬쩍 뺀 것이라서 바로 오답된다. 이런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한국사 문제가 지엽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자기 전공 아니면 겁나서 못 내는 것이다. 워낙 반론과 오류 가능성이 있어서.
  • [3] 물론 선택과목 개설에 귀차니즘을 갖거나 중소도시나 시골의 경우 학교의 규모가 작아 선택과목 분반 개설이 힘들어 개인의 선택과목 선택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 [4] 실제로 일부 인문계 학교에서는 1학년 때 첫 국사 수업에서 "여러분 내신 쉽게 낼 테니깐 국사 수능 칠 거 아니면 걍 공부 안해도 됩니다" 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국사 교육자로서 하기 쉬운 말은 절대로 아니다.
  • [5] 애초에 사회탐구영역의 다른 과목들은 1+1의 형태를 띈 윤리(윤리와 사상(4단위)+전통 윤리(4단위))를 제외하고는 4단위짜리 과목 자체가 없었다.
  • [6] 예를 들면 매주 2시간인 국사를 3시간으로 늘려서 2학기 동안 해서 6단위로 운영한다거나 1학기 4시간+2학기 2시간=6단위와 같은 방식으로... 아니면 그냥 확 줄여서 1, 2학기 도합 2단위로 축소한다거나.
  • [7] 기본이 8단위(1학기 4시간+2학기 4시간)로 나오고 필요에 따라 6~10단위로 증감 할 수 있었다.
  • [8] 교과서 처음부터 끝까지다.
  • [9]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범위가 약 200페이지씩이다(...)
  • [10] 간혹 역덕후이면서 예비서울대생인 수험생이 존재하여 양민 역덕후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역사랑 취향 안 맞는 예비서울대생이 들어온다면 고맙지만 그 정도 학생이면 우겨넣어서라도 공부하겠지...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어차피 표준점수를 언수외에서 따니 큰 상관은 없다.
  • [11] 케바케로 1급도 가능. 일례로 당시 전주시 완산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L모 학생은 그 해 국사능력시험 1급을 합격하는 충공그깽스러운 일을 터뜨렸다.
  • [12] 이전에는 중학교 국사에서 통시적 흐름을 정치사 위주로 배우고 고둥학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나눠 더 자세히 배우는 방식이었다.
  • [13] 2007년 발표된 4차 부분 개정 교육과정.
  • [14] 2009년 12월 총론 및 일부 교과의 각론이 발표되고 이어서 2011년 8월에 나머지 교과의 각론이 발표된 5차 및 6차 개정 고시된 것.
  • [15] 식목도감. 이전 교과서에는 법 제정 기구라는 설명이 있었으나 현행 교과서에는 '도병마사와 함께 재신과 추밀의 합의 기구' 라는 점 정도만 서술되어 있다.
  • [16] 문화 단원의 표지, 연표랑 같이 들어있는 부록에 나온다.
  • [17]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제2외국어를 반영하는 이과는 거의 없으므로, 이과생들은 보통 시험을 치지 않는다!
  • [18] 이름도 사회탐구·과학탐구영역이었다.
  • [19] 세계지리, 세계사, 정치(당시 이름은 그냥 '정치'였으나 실제로는 현행의 법과정치와 구성이 비슷함), 경제, 사회문화
  • [20] 물리II, 화학II, 생물II, 지구과학II
  • [21] 참고로 공통과학의 내용은 개정 전 7차의 물화생지I과 거의 똑같다.
  • [22] 한국사 응시인원이 대부분 상위권인 현재와는 달리, 전술한 바와 같이 전국 학생들이 누구나 시험을 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단순히 수로만 따지면 중하위권이 더 많으니까(..). 등급컷이 적절히 조정되므로 지금처럼 문제를 굳이 변태스럽게 꼴 필요가 없었다!
  • [23] 한편 6차 수능에서 전국 학생들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던 윤리와 한국지리에선 아예 2등급 블랭크가 발생했다.
  • [24] 5지선다의 출제형식을 감안할 때 맞춘 학생들도 찍어서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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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8 00: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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