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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last modified: 2015-05-30 12:12:41 by Contributors

宮女

Contents

1. 개요
2. 중국의 궁녀
2.1. 주례의 궁녀 조직
2.1.1. 여어(女御)
2.1.2. 여축(女祝)
2.1.3. 여사(女史)
2.1.4. 해(奚)
2.1.5. 여궁(女宮)
2.1.6. 궐 내의 각 부서
3. 우리나라의 궁녀
3.1. 신라의 궁녀 조직
3.2. 조선의 궁녀 조직
3.3. 궁녀의 수
3.4. 기타
4. 일본의 궁녀

1. 개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동양의 궁정에서 일하는 여성. 서양으로 치면 시녀...라기에는 시녀 항목 참조.

왕의 여자 예비군(...) 정도로 여겨져서 정조를 지켜야 했다. 물론 왕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궁녀를 모두 검열삭제할 수는 없었고 대부분은 숫처녀로 죽었다. 그리고 사극 같은 매체에서 한번 궁에 들어가면 평생 궁궐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령이 되면 은퇴해서 궐 밖으로 나가 살 수 있었다. 노후를 돌봐줄 가족이 있으면 귀가해서 살 수 있었고 여의치 않으면 양로원 같은 성격의 은퇴한 궁녀들만 모여 사는 숙소에서 말년을 보낼 수도 있었다.

2. 중국의 궁녀

에는 하나라이 3만의 여악(女樂)을 거느렸다는 기록이 있다. 여악이란 여자 악사와 배우, 무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례에는 천관총재 편에 궁녀들의 상세한 조직도가 언급되며, 이후로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나라 때에 호칭이 바뀌어서 소의(昭儀), 미인(美人), 양인(良人), 팔자(八子), 칠자(七子), 장사(長使), 소사(小使) 등의 호칭이 생겨나고, 황후로부터 내명부 최하위까지 14등급으로 구분된다. 수나라 때는 상서(尙書), 상의(尙儀), 상식(尙食), 상침(尙寢)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2.1. 주례의 궁녀 조직

의 천관총재 편에는 궁녀들로 구성된 조직이 언급된다.

2.1.1. 여어(女御)

후궁들을 모시는 일을 담당하는 궁녀.
왕후(王后)에게는 81명의 여어가 배치된다.
부인(婦人:왕후 아래의 2번째 서열에 해당하는 후궁)에게도 81명의 여어가 배치된다.
구빈(九嬪:왕후, 부인에 이어 3번째 서열에 해당하는 후궁)에게는 빈 1인당 9명의 여어가 배치된다. 구빈이라는 명칭답게 빈은 9명이므로, 구빈 모두에게 배치되는 여어의 숫자는 9*9=81명이다.

세부(世婦:왕후 아래로 4번째 서열에 해당하는 후궁)에게는 1인당 3명씩 배정되었다. 세부의 숫자는 법적으로는 27명이며, 따라서 세부에 배치되는 여어의 숫자는 총 81명. 이렇게 해서 기본적으로 324명이 배치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빈은 10명 이상씩, 부인은 3명 이상씩 둘 수 있고, 세부만 수백명에 달하기도 하니 여어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났다. 게다가 태후, 왕태후, 태자비 등에게도 많은 여어들이 배치되고, 궁궐의 각 기관에도 배치되었으니 그만큼 늘어났다.

여어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자기가 모시는 주인이 언제 왕을 모실 것인지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2.1.2. 여축(女祝)

궁궐 안에 머무는 무당이다. 왕후의 내제사(內祭祀:궁궐안의 부엌, 문, 창 등에 지내는 제사)와 내도사(內禱詞:기원이나 축원하는 일)를 담당했으며 그 수는 4명이다. 여축 아래에는 그들을 시중드는 해(奚)가 2명씩 있다.

2.1.3. 여사(女史)

왕후의 지시를 받아 육궁의 내정을 다스리며 부관 역할을 한다. 육궁이란 왕후와 후궁들이 거처하는 궁궐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침 하나 연침 다섯으로 이뤄져 있어 이를 합쳐 육궁이라 한다. 여사는 육궁의 지출결산서를 살펴보고 왕후의 명령을 기록했다. 여사는 총 8인, 그들의 시녀인 해(奚)는 16인이다.

2.1.4. 해(奚)

여축, 여사를 보좌하는 시녀. 여축, 여사, 여어에게 각 2명씩 배치되었다.

2.1.5. 여궁(女宮)

궁궐 안의 잡일을 담당하는 노비. 가장 신분이 낮으며 아무튼 매우 많다.

2.1.6. 궐 내의 각 부서

약 100명에 달하는 궁녀가 배치된다.

내사복(內司服) : 왕후의 의복을 만들고 관장한다. 여어 2명이 배치.
봉인(縫人) : 왕궁의 재봉 일을 맡는다. 여어 8인, 여공 80인, 해 30인이 배치.
염인(鹽人) : 왕궁의 소금을 맡는다. 여염 20인, 해 40인.
멱인(冪人) : 물건 덮는 덮개를 만든다. 여멱 10인, 해 20인.
혜인(醯人) : 채소 요리를 담당. 여혜 20인, 해 40인.
해인(諧人) : 젓갈이나 조림을 담당. 여해 20인, 해 40인.
변인(邊人) : 대추, 밤 복숭아 등 과일을 담당. 여변 10인, 해 20인.
장인(奬人) : 왕이 마시는 음료수를 담당. 여장 15인, 해 150인.
주인(酒人) : 왕이 마시는 술을 담당. 여주 20인, 해 300인.

3. 우리나라의 궁녀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궁녀 조직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는 건국 초기에는 궁녀 조직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던 듯 하며, 후궁에 대해서는 ~원(院), ~궁(宮), ~부인(夫人) 등의 칭호가 있었지만 일반 궁녀에게는 딱히 칭호가 없었으며, 품계나 직책에 따른 명칭도 없다.

제8대 현종 대에 상궁(尙宮), 상침(尙寢), 상식(尙食), 상침(尙針) 등의 직책이 생겼고, 후궁에 대해서도 귀비(貴妃), 숙비(淑妃) 등이 칭호가 생겼다. 제10대 정종 대에는 후궁들에 대해 원비(院妃), 원주(院主), 궁주(宮主) 등의 칭호가 생겨났다. 제11대 문종은 귀비, 숙비, 덕비, 현비를 정 1품으로 정하고, 공주와 대장공주 등도 정1품으로 정했다. 하지만 그 외의 궁녀들에 대해서는 품계를 작성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태종, 세종을 거치면서 내명부의 작호와 품계가 만들어졌고, 조금씩 바뀌다가 국대전에서 완전히 정립되어 조선 말기까지 바뀌는 것이 없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생존한 궁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성옥염 상궁이 2001년 5월 4일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1. 신라의 궁녀 조직

모(母)와 여자(女子)로 구분된다.

조하방(朝霞房)에 모 23인, 침방(針房)에 여자 16인, 소방전(蘇芳典)에는 모 6인, 표전(漂典)에는 모 10인, 기전(綺典)에는 모 8인, 염궁(染宮)에는 모 11인, 홍전(紅典)에는 모 6인, 찬염전(儹染典)에는 모 6인, 소전(蔬典)에는 모 6인이 배치되었다. 그 외에도 금전(錦典)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왕을 모시는 임무를 맡은 여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여자 관리였는지는 알 수 없다.

3.2. 조선의 궁녀 조직

내명부를 참조.
의녀에 대해서는 의녀를 참조.

3.3. 궁녀의 수

고려시대의 궁녀 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 연산군 시대에는 궁녀가 1,000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고, 영조 대에 쓰인 이익호사설에 의하면 ‘지금 환관이 335명이고 궁녀가 684명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종 말기에는 왕실 사정이 좋지 않아 200명 정도밖에 없었다. 대체로 조선의 궁녀는 600~7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3.4. 기타

4. 일본의 궁녀

일본의 경우는 궁녀와 내시를 통합해서 여관(女官)이라는 직위를 갖고 일하는 여성이 있었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내시가 없었다.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궁녀는 궁을 나오면 혼인할 수 있었다. 혼인하기 전 궁에 들어가 일하거나[1] 아예 궁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 연애 끝에 혼인하고 출궁하기도 했으며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후 궁녀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궁녀로 들어가는 경우도 비교적 지체 높은 귀족 출신의 여자가 많았고, 여러 왕비들 가운데 누구를 모시느냐에 따라서 서로 간에 경쟁과 기세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궁중 여관은 중국이나 한국의 궁녀 보다는 서양의 시녀와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에도 시대의 오오쿠는 엄격히 말하면 쇼군은 왕이 아니기 때문에 궁녀 제도와는 차이가 있지만 쇼군이 사실상 왕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궁녀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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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궁녀 출신 여성은 좀 노는 여자 같아 꺼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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