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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last modified: 2015-02-13 09:52:16 by Contributors

Green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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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전투 종족?
4. 국가vs단체 에서 개인vs단체로

1. 개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보호단체로, 전세계적인 환경파괴의 경각심을 알리고 환경보호를 위해서 활동하여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글로벌 환경단체로써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전세계에 걸쳐서 환경을 보호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본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고 유럽·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에 걸친 40개국에 지역사무소가 있다. 중국에 2005년에 지역 사무소를 연 반면에 2011년에 서울 사무소를 열었다.

세계적인 조직이라는 것 때문인지 암스테르담의 본부에는 전세계의 지역 사무소의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들이 즐비하고 이것으로 그린피스는 전세계의 시간을 맞추고 활동하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2. 역사

최초의 활동은 1972년 몇몇 활동가들이 미국알래스카 서부의 화산섬인 암치트카(Amchitka)에서 지하 핵실험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캐나다 밴쿠버를 떠난 이들은 암치트카에 도달하기 전에 해군이 막아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지만, 이런 것 덕분에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여 미국은 핵실험을 중단하고 해당 지역을 조류 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 근처 섬에 살던 원주민들은 이들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의형제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이후로 여기서 효과를 본 이들은 그린피스를 본격적으로 창립하고 세계적으로 환경보호 활동에 나선다. 1979년에 국제 그린피스가 조직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두었다. 여러 환경문제를 다루지만 특히 초창기에는 반핵운동과 멸종위협을 받던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포경 및 해양 시추 산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선다.

그린피스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1985년 7월에 일어난 레인보우 워리어 호(Rainbow Warrior) 폭파 사건이었다.

그린피스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40주년인 8월 6일을 기하여 프랑스의 핵실험 기지인 폴리네시아의 모루로아환초 일대를 시위 항해할 예정이었고, 당연히 이는 프랑스에게 눈엣가시였다.

7월 10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항에 정박 중이던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밤 11시 45분에 갑자기 폭파·침몰되었다. 이 사건으로 배에 타고 있던 포르투갈 사진가 F.페레라가 희생되었고, 다른 11명의 승무원은 긴급히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당연히 발칵 뒤집혔는데 멀쩡한 배가 터진 것도 모자라서 사람까지 죽었으니 당장에 이게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프랑스를 주목한다. 자국 영역에서 국제 환경단체가 테러를 당한 뉴질랜드도 분노했고 조사결과 이 사건이 프랑스 정보기관(DGSE)의 공작으로 이뤄진 것이 밝혀져, 결국 C.에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이 사임하고 프랑스는 뉴질랜드에 배상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물론 그린피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배 2척을 보내서 항의 시위를 그대로 진행한다.

이렇게 국가 권력에 굴하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이들로 그린피스는 전세계적으로 각인되었다.

3. 전투 종족?

2000년 이후로는 거의 소리도 안 내고 조용해져서 씨 셰퍼드 같은 조직이 더 유명하지만, 90년대까지는 전투 종족으로 이름을 날렸다. 씨 셰퍼드는 상대해도 포경선 정도지만 그린피스는 미국이나 소련 같은 국가 권력과 정면으로 싸웠다.[1] 나치 이후로 미국과 소련을 동시에 상대한 유일한 조직이며, 일개 환경단체를 상대하려고 해군에 특수부대까지 동원하게 하는 수준이다.

핵무기 실험장에 조각배 하나 타고 들어가는 건 기본국가권력 쯤은 무시하고, 소련 포경선을 보자 고무보트를 타고 포경선과 고래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기동해서 고래잡이를 방해하고, 석유시추 탐사선의 탐사장비를 끊어버리는 등등등 이들의 적극성은 대단했다. 미국·소련·프랑스 같은 강대국에 굴하지도 않고 프랑스가 레인보우 워리어 호를 폭파한 뒤로는 오히려 주목을 받아서 언터처블 수준이었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특히 포경선과 해양 시추선은 그린피스의 등장에 전전긍긍했지만 미국과 소련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포경은 그린피스의 활동 덕분에 잔악성이 알려지면서 아예 금지된다.

한국에 알려진 계기도 이 전투력 덕분인데, 1993년에 소련 해체의 여파로 돈이 궁한 러시아방사능 폐기물동해에 버렸다. 당연히 한국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는데, 그린피스는 그걸 귀신같이 알고는 나타나서 방해했다. 고무보트로 화물선에 딱 붙어서 떨어지는 폐기물 통을 몸으로 막으려는 모습은 당연히 한국에 좋은 인상을 남겼고, 이듬해에 그린피스 환경조사팀이 한국의 자연보호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에 그린피스호를 보내서 입국했을 때 그들에게 화환을 걸어주며 환영하였다.

하지만 환경운동이 다변화되고 기업이나 국가도 과거와 달리 환경보호에 크게 눈뜨게 되고, 기업들도 윤리 경영과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 환경을 중시하는 경영에 나서는 등 과거보다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단순하게 관심을 부르고 해결법이 부족한 과격한 환경운동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활동가 위주의 환경운동보다는 여러 주제를 선정해서 대중에 알리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환경보호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4. 국가vs단체 에서 개인vs단체로

패트릭 무어 박사는 공공보건 분야에서 염소(chlorine) 사용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탈퇴했다. 하지만 그후 원자력 분야에서도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린피스는 원자력 에너지에 반대하는데, 이는 무기로서 원자력과 원자력 에너지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원자력 에너지가 악한 것은 아니다. 의료ㆍ치료용으로 이용하거나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다. 불은 도시를 다 태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음식을 데우고 난방하는 데 불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비록 일본과 구 소련의 발전소 인재를 겪었으나 발전이나 의료업계에서 원자력을 대체할 만한 자원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힘들다고 보면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그린피스를 공동 창설한 패드릭 무어의 그린피스 탈퇴를 다룬다.

그린피스가 언제부터인가 고래 포경반대에만 사용하던 전력을 원자력 등 환경투쟁 범위를 확장한 것을 기점으로 많은 환경과학자를 적으로 만들고, 이상주의적 행패와 적법한 원양어선(참치) 어업방해 등 극단적인 행보로 이어지며 이해관계에 얽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합법적인 어업권리까지 집단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막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극단적인 행보를 이으며 이미지 관리와 자신들의 행동의 명분을 이용하여 불법행위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정당화하는 등 그에 대한 반발이 너무나도 크고, 계속 세력을 키우는 만큼 정치적인 적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는 적들도 등장하는만큼 그들의 행위가 원하지 않게 왜곡당하고 폄하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린피스의 활동방향에 대해 의구심이 들만한 병크오브병크가 터지고 마는데... 무려 나스카 유적에 이런 정신나간짓을 자랑스럽게 떠벌린것.
해명이랍시고 하는말은 유적을 훼손하지 않았다고는 하는데.. 더 큰 문제는 훼손방지용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하는 나스카 유적에 그딴거없이 마구잡이로 들어가서 이딴 짓거리를 한 것. 자칭 환경을 사랑한다고 하시는 그린피스님께서 당당히 문화유산을 즈려밟고 하신 트롤링에 전세계적으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바, 위의 글처럼 가뜩이나 의심받고 있는 행적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일일 수도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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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극성맞은 환경운동가의 이미지나 활동은 그린피스에서 나온 것이다. 피켓팅 같은 온건한 방식을 넘어서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서는 그린피스의 모습은 이제 막 태동하던 환경운동에 큰 영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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