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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도

last modified: 2015-11-12 12:55:23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원리
3. 역사
3.1. 브레튼우즈 체제
3.2. 붕괴 이후

1. 개요

서로 다른 화폐를 쓰는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채택하는 환율제도의 하나. 화폐의 가치를 (金)과 직접 연동시키는 것이다.

2. 원리

금을 직접적으로 화폐로 이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또한 안정적이고 가치가 높은 금화의 유통은 국가의 경제를 떠받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솔리두스 금화, 베네치아카토피렌체오리노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도시의 금화, 이슬람권의 디나르 금화, 근세 영국의 소버린 금화 등이 이런 역할을 했다.

근대에는 정치와 경제를 리드하는 패권국가(미국이나 영국과 같은)의 화폐를 일정량의 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교환비율을 정하고,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화폐를 그 강대국의 화폐와 연동하는 식으로 펼쳐졌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통화량과 같은 금을 보유하고 있고, 지폐를 가져오면 일정 비율을 금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1년까지 유지되었던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경우, 35 미국 달러를 중앙은행에 주면 금 1온스를 얻는다. 물론 일반인이 금을 가져간다고 해서 받아 주는 것은 아니다.

금이 귀금속의 일종으로서 공급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그렇다고 다이아몬드처럼 지극히 제한되어 있지도 않다), 패권국가가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개방경제체제 하에서 금본위제는 매우 강력히 세계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된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영국 중심의 고전적 금본위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었던 미국 중심의 고정환율제(브레튼우즈 체제)가 그 좋은 예이다.

3. 역사

역사적으로 19세기에 이르르면 주요 열강들은 자국 통화에 대한 금본위제를 도입하였다. 조선 또한 오전 논쟁 당시 김옥균이 금본위제 도입으로 통화체제를 개혁할 것을 주장한 바 있었다. 문제는 1883년 당시는 일본조차 금본위제를 시행하지 못하는 등 현실성이 없었다는 점이다.금이 있어야 하지일본의 경우, 청일전쟁과 삼국 간섭의 결과 획득한 막대한 보상금을 기조로 1897년 금본위제를 실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통화량이 필요해지자 각국은 금태환을 일시 정지하고 통화증발에 나섰다. 이는 실물과 통화량을 연동시키던 금본위제에 대한 상당한 타격이었다. 게다가 1920년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금본위제로 복귀하던 와중 대공황 발발로 구 파운드 중심의 금본위제는 결정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영국은 1925년 금본위제로 복귀했다가,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였다.

일본은 타국보다 늦은 1930년 금본위제에 복귀하였으나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기에 당연히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였다. 결국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엔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가 조선에서의 금광 붐이었다.

대공황 당시의 상황은 영국의 패권 소멸로 인한 무능력, 그리고 미국의 의지 부족으로 인한 부작위로 정리될 수 있다. 새로이 패권국으로써 리더쉽을 발휘했어야 할 미국이 방관하면서 2차대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3.1. 브레튼우즈 체제

2차 대전 후 신 통화제도에 대한 논쟁에서 케인즈는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국제 통화인 코르(Bankor)를 도입할 것을 지지하였으나,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패권국이 된 미국의 달러화를 통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미국의 입장이 받아들여져 달러화를 기축으로 한 금본위제인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가 성립되었다.

고전적 금본위제와 브레튼우즈 체제의 결정적인 차이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태환을 독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태환을 실시하는 것으로써, 타국 통화는 모두 달러와의 환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되게 되었다.

이 시스템은 세계각국의 화폐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고정환율로 달러와 고정되고, 달러는 35달러당 1온스로 교환할 수 있게 고정한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2차대전동안 유럽의 각국이 미국의 물자를 금으로 구입하고 패전국들이 전쟁배상금을 금으로 지불하면서, 종전 당시 미국이 전세계 금의 무려 7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크

전후 서유럽 국가들은 재건을 위해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 유통시켜야 했는데, 자체적으로 금본위나 은본위를 실행할 만큼의 금은이 국고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신용화폐'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므로, 전시도 아닌 평상시에 금이나 은으로 태환이 안되는 화폐가 신용을 얻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전쟁 직후 이들이 발행한 지폐는 사실상 미국이 대리로 보증을 서준 셈. 미국은 미국 나름대로 서유럽의 동맹국들을 전쟁으로 전 국도가 쑥대밭이 된 상태로 내버려두면 당시 떠오르는 강자였던 소련에 의해 전 유럽이 공산권화 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방코르는 위험했고, 그래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밀은 것이다.[1]
그러나 금본위제도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금본위제 하의 주요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충격에 따라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 사람들의 기대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된다.


(2) 세계경제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가 "우리는 수출만 하고 수입은 안 함 ㅇㅇ"과 같은 정책을 견지하거나 자기 세력권 내에서 블록을 형성하여 자기네끼리만 무역을 할 경우, 협력시스템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여러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제살깎아먹기 폐쇄경제 시스템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대공황 시기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삽질이 대표적이었다.


(3) 미국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의 원인: 이는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라고 하여 국제정치학 및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역사적 개념 중 하나이다. 미국의 35달러를 금 1온스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와 연동함으로써 형성된 환율제도 하에서 세계경제가 활발히 돌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달러를 세계시장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규모가 늘어날수록 국가간의 거래규모나 횟수는 커지고, 그에 필요한 화폐는 세계의 표준화폐인 달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물건 사고팔고 싶어서 죽겠는데 중앙은행이 돈을 안 찍는다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미국이 달러를 세계시장에 공급하면 할수록 1달러의 상대적인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물론 금을 그만큼 더 가지면 되겠지만, 금이란 건 땅 속의 광물이라서 항상 원하는 만큼 캐거나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이 보유한 금보다 달러발행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나라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야, 달러 다 미국에 갖다주고 금 내 놓으라고 해!"

가 된다. 이것이 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정책.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금 1온스 = 35달러의 원칙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되고... 이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즉, 통화가치와 통화량은 서로 상충관계에 있다. 다만, 이 트리핀의 딜레마가 딱히 이 달러화의 위상 추락에 주된 원인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화폐가 일정 가치를 보장받고 유통량도 일정 이상 되어야 하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달러화가 이 요건을 넘사벽으로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핀의 딜레마보다 더한 것은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라 할 수 있다.
미국은 40년대까지는 무역수지 흑자국이었으나, 50년대 들어 유럽, 일본 등의 추격으로 국제수지는 적자가 되었다. 그에 따라 외국의 달러 보유고는 늘어난 반면, 미국의 금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추락하게 되었다. 더욱이,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계획라는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쟁 전비로 미국내 정부지출은 급 팽창했고 이는 무역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


(4) 크루그먼의 삼각의 딜레마. 크루그먼 등에 따르면 '고정 환율', '자유로운 자본이동 보장', '자주적인 통화정책'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2] 기껏해야 두 개 정도만 충족할 수 있다. 금본위제는 고정환율제도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한 나라의 통화정책은 그 통화가치 유지에만 쓰이므로 자본이동을 제한하지 않고서는 자주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하기가 어렵다.[3]


(5) 가격-정화-유출입 메커니즘 -> 경제학이 사실상 제대로 나오기 이전에 흄 등이 제시한 개념이다. 가령 금이 많아지면 인플레가 생겨 자국 상품 가격이 상승하여 국제수지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처칠이 대장상을 맡았던 20~30년대 영국이 금본위제를 복귀시키려다가 덕분에 크게 피해를 본 바 있다. 그리고 무역흑자는 죄다 프랑스가 챙겨갔지.


(6) 국내에 금광이 많은 동네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금 보유 측면에서 유리하므로 국제적인 부의 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해당국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자원의 저주라는 현상 때문에 장담은 못한다. 특히 그 옛날 스파냐 제국이라던가.

1번과 2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대공황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고, 3번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는 원인이었다.

브레튼우즈를 유지하는 방식은 첫째로 미국의 공식적인 달러 화폐가치 절하였고, 미국은 각 선진국들과 합의하여 이를 어느 정도 실천하기는 했으나 그 정도는 너무 더뎠다. 둘째로 달러의 대대적인 긴축인데, 이는 가뜩이나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셋째는 미국 중앙은행이 자산 비중을 조정하건 기타 무슨 방식을 통해서건 금 보유를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자원이 많은 소련이 좋아했다. 결국 닉슨은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고 이후 세계 화폐시장은 기본적으로 변동환율제에 의해 굴러가게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의 GDP가 지구 전체의 금 추정매장량의 가치를 상회하고 산업 원자재로도 쓰이기 때문에[4] 금본위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

3.2. 붕괴 이후

그런데 그 때는 괜찮았는데, 1990년대 이후부터 이상한 조짐이 여기저기서(동아시아, 러시아)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한 번 휩쓴 이후로는 이 변동환율제의 근본적인 문제인 세계적 불균형(global imbalance)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으니...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완벽한 해답은 없다. 만일 완벽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해답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당장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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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좋은 의도(?)로 시작됐으나, 미국은 전후 역사상 드문 초호황기를 누리다가 결국 기축통화 발행국이라는 지위를 남용, 금 보유액의 7배에 달하는 달러를 찍어내고.. 재건을 마친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전횡에 분개하여 금태환을 감행하고, 닉슨이 금태환정지를 선포하면서 브레튼우즈 시스템은 그 짧은 역사를 마친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 [2] 그 근본이 되는 법칙이 n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n개의 수단을 써야 한다는 틴버겐의 법칙이다.
  • [3] 이 문제는 굳이 브레튼우즈 체제나 금본위제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최근의 유로존 위기에도 적용된다.
  • [4] 뛰어난 연성을 활용해서 전자회로의 내부 전선에 쓰인다. 2011년에 전 세계에서 2700톤의 금이 생산되었는데, 그 중 10% 이상이 전자회로 제작에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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