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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법

last modified: 2015-11-05 15:17:3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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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금주법이 실행되던 때에 술을 버리는 장면.
왼쪽에서 세번째 안경쓰신 잉금님

Contents

1. 정의
2. 한국과 아시아권의 금주법들
3. 기독교의 금주법 그런거 없다
4. 이슬람교의 금주법
5. 캐나다의 금주법
6. 미국의 금주법
6.1. 입법과정
6.1.1. 진짜 이유
6.2. 시행 결과
6.3.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
6.3.1. 수요 측면
6.3.2. 공급 측면
6.3.3. 관리 측면
6.4. 금주법 폐지 여론
6.5. 여담
6.6. 관련 항목
7. 소련의 금주법


1. 정의

법제화된 금주령. 말 그대로 을 제조/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1920~30년대의 금주법이 있다. 참고로 이거 시행해서 문제가 생긴 사례는 많지만 제대로 굴러간 사례는 거의 없다. 이 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면 인간이 왜 그것을 기필코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법. 더 정확히 말하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한다'라기보다는, , 담배, 마약 등의 중독성 기호식품/약물이나 도박, 성매매 등의 쾌락적 행위나 문화는 그를 향유하는 개인이 직접 소비를 줄이는 선택을 할 수는 있어도 외부적 정책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을 '나쁘니 무조건 금지해야 해'라는 식의 단순한 도덕적 접근이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보면, 국가의 금지령이 틈새시장과 시장의 가격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2. 한국과 아시아권의 금주법들

아시아권의 경우 금주법은 대개 식량 보존, 절약 등의 이유로 시행되었다. 아시아권 국가들의 전통주는 포도주 같은 과실주가 없고 거의 전부가 쌀이나 밀같은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이기 때문에 술 빚는 만큼 밥 지을 곡물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소주처럼 증류 과정이 들어가면 곡물이 훨씬 더 소모되기 마련이라 주로 기근이 들면 금주령을 시행했다.

조선시대도 위와 같은 이유로 기근이 들었을 때 식량 절약 차원에서 종종 금주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후술할 미국의 경우처럼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쌀 꽤나 있다는 양반가에서는 몰래 소주를 만들어먹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러다 포도청 강제정모를 하였다는 기록도 종종 나온다. 그러나 술은 유교 제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음식이라 술을 죄악시하거나 오랫동안 금주령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영조 통치시기인데, 영조는 즉위와 동시에 술을 절대 금지시켰다. 처음에는 새 정권 퍼포먼스(…)라고 생각한 신하들도 영조가 아예 조선팔도에서 술 자체를 영원히 없애버리겠다고 나오자 항의를 좀 했다고 한다. 거기에 술먹다가 걸리면 닥치고 사형이였다. 나중에는 관직박탈이나 귀양으로 처벌이 약화되었지만 그 나중이 거의 40년인지라(...) 40년 동안은 진짜 목숨걸고 술을 마셔야 했다. 실제 병마절도사 윤구연이 술을 마신다는 제보가 접수되자 2주일 만에 남대문에서 참수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이때 영조가 직접 숭례문까지 나아가 참관했다고. 그리고 반대하는 재상급 대신들도 모두 파직해버렸다.(영조 38년 9월 17일)[1]게다가 영조는 조선에서 가장 오래 즉위(53년)한 왕이었다(…). 망했어요 하지만 위의 미국의 사례에서도 그렇듯 이래도 만들어 먹을 사람은 결국은 또 만들어 먹었고 능력 되는 사람은 사와서 먹었다. 사실상 영조 본인 빼고 다들 불만으로 가득했던 것... 결국은 바로 다음대 국왕인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시원하게 금주령을 바로 풀었는데, 정조가 술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아싸! 비슷하게 영조가 애소설을 좋아했는데 정조가 즉위한 뒤에는 서고의 소설을 다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다. 소설대신 술담배를 근데 순조는 또 혐연자라……

  • 이 일을 두고 영조가 직접 참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문은 '上御崇禮門, 斬南兵使尹九淵'으로 '영조가 직접 참하다'로는 국역할 수 없다. 더구나 바로 몇 줄 밑에 親御南門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은 '남문에 친히 남셨다'는 뜻이며, 윤구연을 '직접' 베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특히 斬의 의미는 단순히 '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수형을 집행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영조가 직접 베었다면 斬앞에 '親'자가 붙었을 것이다.

  • 그래도 영조가 항상 가혹하기만 했던 건 아니라서, 윤구연을 참하기 몇년 전에는 유세교라는 백성이 술을 판 혐의로 잡혔는데, 유세교는 자신이 판 것이 초(醋)라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영조는 이것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시켰고, 좌의정 김상로가 “처음 보기에는 술과 같았으나 종이에 적시어 냄새를 맡아 보니, 역시 초 같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영조 역시 "사람의 목숨이 지중(至重)한 까닭에 내가 친히 그것을 맛보았더니, 과연 초였다. 유세교는 특별히 석방하고 형관 중에 술이라고 말한 자는 파직시키도록 하라.”라 하여 유세교는 석방된다. 이 일화는 실제로는 초가 아니라 술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평민인 유세교가 생계를 위해 술을 팔았기에 일부러 속은 척 하고 살려주었으리라 추측되고 있다. 군단장급은 참수하고 서민을 석방하는 영조의 위엄 시키는대로 단속했다가 파직된 형관은 무슨 죄야?

여담으로 영조는 자기가 금주령을 내려놨음에도 술을 계속 마신다는 소문이 있어 신하들이 영조에게 묻자 영조는 '난 다만 오미자차를 마실 뿐인데 그게 소주로 의심받는다' 라고 답하기도 했다.(영조 12년 4월 24일) 실제로 영조는 중종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조 최고의 근검절약형 군주.[2][3]하여간 당시 금주령이 매우 철저히, 그리고 장기간 이어졌기 때문에 이 당시 몰래 술 먹다 걸리는 류의 야사도 많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세수확보를 위해서 정식 양조장(술도가)이 아닌 일반 민가에서 술을 빚는 것을 '밀주'라고 하여 금지시켰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도 이를 답습했다. 덕분에 지방마다 가문마다 있던 전통주는 대부분 대가 끊기게 된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1961년 주세법이 개정되어 쌀로 술을 빚는 금지되었으며, 1965년부터 모든 알곡으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는 막걸리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래도 술을 빚던 집은 몰래 만들어서라도 빚었다. 당시의 TV영상을 보면, 개밥을 먹이는 것과 술을 집에서 빚는 것을 사치로 여기는 장면이 있다. 물론 이 경우는 모든 술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엔 국민들이 지금처럼 와인이나 맥주 같은 '서양주'를 즐기던 시대가 아니였으니 막걸리 금지 조치만해도 제법 센 조치긴 했다. 이로 인해 증류식 소주는 사라지고 희석식 소주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만약 미국과 같은 금주법이 이라면 환장하는 한국에서 시행된다면 미국을 능가하는 헬게이트 오픈이 가능하다. 사실 주요 주류인 소주만 금지시켜도 엄청난 파장이 터질 가능성이 99%이다. 약국의 소독용 알코올이 초 매진사례 물론 이제는 시대가 달라서 자유무역 때문에 술을 금지시켰다간 수입제 술이 문제가 될텐데 수입제 술도 금지시켰다간 국제통상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고 (사실 자유무역의 핵심 이념은 내국민대우(NT)와 최혜국대우(MFN), 즉 수입품과 수입품 간, 수입품과 국내품 간에 부과되는 세금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에 '나도 술 안 만들고 너네 술도 수입 안 하겠다'는 정책이 자유무역의 본질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다만 개별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내용에 따라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수입제 술만 허용했다간 대량의 외화 유출 가능성이 100%이니 그러진 못하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에 술을 밀수출과 유통을 두고 러시아 마피아,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와 토종 조폭 간의 대립으로 이들이 주로 드나드는 인천과 부산에는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4대 중독법의 발안으로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대한민국 판 금주법이 실현될 전망이다. 본격 대 금주법시대 개막! 이게 역사상 금주법이랑은 차원이 다른게 술 뿐만 아니라 술의 원료까지 규제한다. 상식적이겠지만, 술의 원료는 곡식이나 과일, 젖 등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되어있는 것들인데, 극단적으로 보면 이것들까지 모조리 규제당한다 그 소리다. 소일렌트 그린이라도 만들 생각인건가

중국의 삼국시대 유비가 금주령을 내린적이 있었는데 간옹의 음담패설로 금주령을 폐지한 사례가 있다. 자제한것은 간옹항목 참조.

3. 기독교의 금주법 그런거 없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1고린도 11:23-25, 공동번역성서 -

예수께서는 "너희도 이렇게 알아듣지를 못하느냐?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모두 뱃속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뒤로 나가버리지 않느냐? 그것들은 마음속으로 파고들지는 못한다." 하시며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하셨다.
- 마르코 1:18~19, 공동번역성서 -


기독교권 특히 가톨릭의 경우 동아시아와 달리 거의 실행된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유는 우선 양 지역의 술의 원자재의 차이 때문인데, 서양의 경우 술은 거의가 과실주, 즉 주식으로 쓰지 않는 포도나 사과 등으로 담그는 술이었기 때문에 술을 암만 많이 담가도 주식에 미치는 영향이 일절 없으니 담그는 게 문제되지 않았고, 게다가 과일을 장기 보존할 방법이 없었던 고대엔 술을 담그는 것만이 그나마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더불어 그나마 주식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즉 곡물로 만든 술인 맥주 같은 케이스도 애초에 맥주가 서양권에서 소모되는 술의 비중을 그렇게 많이 잡아먹는 술도 아닐 뿐더러, 사용 곡물도 서양인의 주식인 감자나 밀이 아닌 보리라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서양 문명에 있어서 술은 단순한 즐길거리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품이였다.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아 마시기 어려운 물이였으며 따라서 술을 담가 마시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물을 깨끗하게 먹는 방법이였기에 어린아이도 술을 먹는 것이 일상적이였다(그거 아니면 마실 물이 없으니까). 더불어 수도원에서도 종종 금식기도를 할 땐 물 말고 아무것도 먹어선 안되었는데 상술했듯 유럽에서 마실 물이라곤 술 밖에 없으니 그걸 금지하면 말 그대로 큰일이 나므로 더더욱 금지시킬 수 없었다.

게다가 나중가면 다른 이유도 추가되는데, 중세 유럽은 성직자의 권한이 막강하여 국왕은 물론 심지어 황제조차 우습게 알 정도였는데 이 성직자들이 주로 한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술을 담그는 일이였다. 이유는 상술한대로 마실 물이 필요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특히 포도주는 신약성서의 맹물을 포도주로 바꾼 가나의 혼인잔치같은 기적이나,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말하며 제자들에게 먹인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냥 먹고 뿅 가는 음료가 아니라 종교적으로 의미가 깊은 아주 음료였기 때문이다.[4] 즉 가톨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포도주를 마셔야만 했고 그런 성직자들에게 술을 못 만들게 요구하면 생존권 위협 + 이단으로 간주당해 요구한 당사자가 데꿀멍하게 된다.[5]

따라서 유럽에서 술을 금지하려 했다간 말 그대로 아래로는 백성들은 '우린 그냥 다 갈증으로 죽으라는거냐!'며 들고 일어나고, 위로는 성직자와 교황이 '지금 감히 너님의 창조주인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거임?너 이단'이라며 성을 낼 게 뻔한데다가, 애초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왕이나 영주도 마실 물이 술 밖에 없는데다가 기독교 신자라서(...) 술을 금지하는건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자살행위와 다를바가 없었다.

그리고 정교회는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햑한다 참고로 러시아가 지리적, 문화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 대신 기독교를 택한 이유가 바로 술 때문이었다는 농담이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아무리 부탁해도 음주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같은 서구권이라도 북유럽이나 영국은 사정이 달랐다.

  • 술을 담글만한 과일이 자라지 못해 동양권 못지 않게 밀, 호밀 등 곡류로 담그는 독한 증류주(대표적으로 위스키)가 대부분이였고[6] 교회나 성당에 쓸 포도주는 100% 수입에 의존했으므로 남유럽에 비해 금주법이 정착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 스칸디나비아는 토질도 서유럽, 남유럽과 달리 한반도처럼 화강암 위주의 지질구조였기 때문에 물을 그냥 마셔도 별 탈 없는 동네였었다.

  •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특유의 청교도적인 문화는 북유럽/북미권 금주문화의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일단 가톨릭과 달리 '성변화'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지 않았으며[7] 따라서 성만찬은 성경에 근거한 최소한의 선만 지키면 뭘로 해도 장땡이었다.

이렇게 남유럽과 전혀 다른 곡물주 문화+이에 대한 개신교적 반감이 겹쳐져서 나온게 바로 후술할 금주 및 절주/주류판매 통제 정책들이다.

실제로 북유럽이나 캐나다 일부 지방의 경우 술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국가나 주정부에서 술 판매를 통제하는 편이 많다. 스웨덴의 시스템볼라겟이나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LCBO등이 대표적이다.

4. 이슬람교의 금주법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교 성립 이전부터 물이 부족해서[8] 이미 자발적으로 술을 금기시 하던 부족들의 전통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무함마드의 명령 이후 교리상 술을 엄금하고 있지만 뒷구멍으로 마실 사람은 다 마시는 듯하다. 바레인처럼 이슬람권이면서 관광, 무역 등이 주 산업이다 보니 술을 허락하는 나라도 있는데, 금지된 나라의 부자들이 술 마시고 싶으면 이곳에 와서 놀고 갔다. 바레인이 술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관광 산업에 타격을 입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사실 이슬람권이라도 나라마다 규제가 다르다. 이집트시리아처럼 세속화된 나라에서는 비교적 편하게 술을 살 수 있다. 이란은 술 마시면 징역을 살아야하는 나라이지만, 대신 술 배달 사업이 성업 중이다. 배달만 하는거지, 안마시면 되잖아? 그리고 카자흐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1인당 술 소비량이 아시아 상위권(...)에 속할 정도. 80년대에 사우디로 일하러 간 한국인 노동자들도 숙소의 발전실이나 기계실에 몰래 증류기를 만들어 소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오오 한국인의 기상 당시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비교적 관대하여 숙소나 현장구역에서 술 마시는 것은 어느정도 눈 감아 주었으나, 그 외의 다른 구역에서 적발되면 강제추방 시키기도 하였다.

물론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곳도 없잖아 있었다. 이란 같은 경우에는 이슬람 역사보다도 훨씬 오래된 페르시아 전통 포도주인 쉬라즈 지역의 특산물 쉬라즈 포도주가 있는데, 그것도 다 없어졌다[9].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몇천년동안 포도주와 맥주를 마셔왔는데 종교 때문에 천년이 넘은 음식 문화가 사라졌다.

여하튼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공적으로는' 금지이다. 한국으로 유학온 중동쪽 친구들에게 한번 술 권해보자. 안 마실것이다. 참고로 그쪽은 역시 교리 문제로 돼지고기도 안 먹는다. 덕분에 돼지고기가 주류인 학교식당에서 먹을게 없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물론 찾아보면 분명한 중동계임에도 술 마시고 돼지고기 구워먹고 할 거 다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이 경우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중동계는 맞지만 미국 등 제 3의 국가에서 나고자란 이민가정 2세대 이상 출신이라 무슬림이 아니거나, 아니면 어차피 빡빡하게 구는 사람이 없는 외국이니까 그냥 기분 내키는대로 대놓고 씹고 다니는 케이스(...). 전자라면 몰라도 후자라면 너 그러면 안되지 않냐고 하면 "여긴 외국이잖은가 친구."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저는 무슬림이긴 한데 나쁜 무슬림이라 괜찮아요."가 있다(...). 다만 이래보여도 공개적으로 이러한 '금기'들을 즐기는 모습을 남기진 않는다. 혹여나 나중에 걸릴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터키 출신 사진작가인 '아리프 아쉬츠'는 전세계를 떠돌며 사진촬영을 하다가 한국에 왔을때 술과 돼지고기를 대놓고 실컷 즐겼고(...) 나중에 자신의 사진집에서 한국에서 술과 돼지고기를 입에 댔다는 점을 언급하며 "알라께 용서를 구하겠지만 그래도 삼겹살에 복분자 맛은 죽여줬다"고 써놓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이슬람교에서 술을 금하고 새로운 기호식품으로 나온 것이 커피이다. 커피의 어원이 아랍어로 와인을 뜻하는 카화(qahwa)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또한 새로운 기호식품으로 물담배가 있는데, 일반 담배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독하며, 중동 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역시 금주법으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기호에 대한 욕구가 표출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어느 문화권이든 인간은 반드시 쾌락을 추구하며 그 쾌락을 얻을 요소를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강제로 막으려 들면 다른 방향으로 쾌락을 추구하려 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케이스.

5. 캐나다의 금주법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쪽이 미국보다 먼저 금주법을 실시했던 나라이다. 다만 전국적으로 일제히 실시된 건 아니었고 지방마다 실시년도와 폐지년도가 다르다. 그래서 미국에서 금주법이 통과되자 캐나다 지역의 술 산업이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것(...). 가장 금주법이 늦게 폐지된 주는 빨간머리 앤으로 유명한 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1901년 금주법이 제정된 이후 반세기가 약간 지난 1948년에야 금주법이 폐지되고 술이 허용되었다(...).

자세한 것은 이 위키피디아 문서를 볼 것. 상술한 리쿼스토어도 사실 금주법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6. 미국의 금주법

After one year from the ratification of this article the manufacture, sale, or transportation of intoxicating liquors within, the importation thereof into, or the exportation thereof from the United States and all the territory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for beverage purposes is hereby prohibited.

이 조항이 비준된 지 1년 후, 주류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 수입, 수출은 미국과 모든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에서 음료용 주료는 금지된다.

-미국 수정헌법 18조 1항
술을 금지하던 수정헌법 18조를 일컫는 말로 줄여서 Prohibition라 부른다. 이 수정헌법이 적용되던 1920~1933년을 Prohibition Era라 칭한다.

6.1. 입법과정

미국에서 술로 인한 폐해를 막고자 하는 금주운동은 19세기부터 여성 운동가를 중심으로 발생하여, 1893년에 금주동맹이 결성되면서 본격화되었다. 대표적인 금주동맹의 일원인 캐리네이션은 자신을 예수의 불독으로 자칭하며 술집을 폐쇄시키기 위해 직접 도끼질을 벌이다가 30번이나 체포되기도 했으며 시대를 앞서간 여가부, 이런 활동은 여성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때마침 여성의 참정권이 확립되면서 여성의 표를 얻기 위해 금주령에 대한 입법이 주장되었다.

1917년에는 이미 미국의 모든 주 중 2/3가 금주법을 시행하고 있었고. 이것을 연방헌법에 금주법을 넣는 Volstead Act 법률안이 1917년 8월 1일에 제출되었고 1919년에 상원을 통과했다, 이에 윌슨 대통령은 그는 금주법을 규정한 Volstead Act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당시 의회는 여소야대 상황이라 재상정을 거쳐 그대로 통과시킨 후 1920년부터 여성의 참정권 부여와 함께 전국에 걸친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여담으로 케리 네이션은 스스로를 '예수의 불독'이라 자칭하고 자신의 행동을 기독교적인 정화활동으로 미화했는데. 그럼 물을 술로 만드는 기적을 행한 예수는 악마의 사도?? 사실 성경을 보면 술에 대한 금지규정은 없다. 술로 인해 정신이 풀어져버리는 정도만 비난하지 위에서 언급한대로 포도주는 예수의 피와 관련된 상당히 중요한한 것이다. 오히려 입에 들어가는 음식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더 큰 악으로 보고 있다. 금주를 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지 이것을 신의 뜻으로 몰아서 억압하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더 나쁜행위이다.100년 전에 태어났으면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을 듯

  • 대표적인 사례로 베드로에 관련된 일화로도 나오는데, 시장한 베드로를 위해 하늘에서 온갖 동물들이 담긴 보따리를 내려줬고, 그걸 잡아먹으라는 신의 목소리에 베드로가 '전 지금껏 부정한 것을 입에 댄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이 '내가 창조한 것을 부정하다 말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그 보따리를 하늘로 다시 올려보냈다는 일화가 있다.[10] 다만 이 일화는 단순히 음식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방인 선교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초기 기독교의 유대인 기독교 신자들은 할례받지 않은 자들, 즉 이방인들과 교류하는 것을 꺼렸는데, 신이 나타나서 '이방인들도 내가 창조한 사람들인데 왜 그러냐'라고 한 것. 이후 기독교는 유대교의 할례를 폐지했고, 이는 기독교의 전파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의 포도주도 문제가 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가톨릭의 미사에는 포도주가 필수였고, 구약성경에서도 포도주에 대한 기록들이 많고, 신약성경은 예수의 기적과 최후의 만찬의 대상인지라 기독교에서 포도주를 안마시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 금주법 기간 동안 미국 내에서 제작된 성경에서는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성배에 포도주를 따라 '이것은 나의 피'라고 한 부분이 전부 포도주가 아닌 건포도로 바뀌어 있다.차다리 포도주스로 바꾸지[11] 이유는 예수님이 술과 같은 사악한 것을 자신의 피라고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금주위원회 위원 로이 헤인스가 성경을 고쳐 쓰도록 강제한 것. 하지만 이유가 뭐든 신성한 말씀이 담긴 존재인 성경에 대놓고 명명백백히 적힌걸 이래라저래라 하는걸 종교단체가 좋아할리 없기 때문에 이 행위에 대해 가톨릭 교단이 어떤 대응을 취했는지는 기록이 없지만, 아마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 상기한대로 종교적 용도와 의료적 용도의 포도주는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기 때문에 가톨릭에서의 성체성사는 유지될 수 있었다. 문제는 개신교 교회들도 성만찬를 빙자해서 실컷 포도주를 마셔댔다는 것(...). 참고로 개신교의 성만찬은 가톨릭의 성체성사와는 달리 포도주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이는 두 교단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인데, 가톨릭에선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와 성혈이 100% 거짓 없는 예수의 몸과 피라고 믿는 반면, 개신교에선 성만찬에서 빵과 술은 그저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배 도중에 성만찬을 하지 않거나, 포도주를 포도쥬스로 대신하거나, 빵을 떡으로 대체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12] 즉 개신교는 성만찬에서 굳이 포도주를 마실 필요가 전혀 없으나, 이 때 만큼은 굳이 포도주를 성만찬에 포함시켜 마셨다(...). 역시 인간은 기회주의자들이다

6.1.1. 진짜 이유

명분상으로는 그랬으나, 실제로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닫은 미국과 독일 양국간의 외교감정으로 말미암아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1919년 1월에 수정헌법 18조를 제정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독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당시 손쉽게 뛰어들 수 있었던 양조업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 목표. 훗날 만들어지는 WONPR 같은 경우를 보면, 초기에는 이 법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어? 이게 아닌데??"하고 깨달아 대대적으로 발족된 단체이다. 지지자들이였던 자들도 정작 완성된걸 보고나니 이건 아니다 할 만큼 법이 엉터리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에 만들어진 수정헌법 18조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에 따르면 알콜농도가 0.5% 이상이면 불법으로 규정지었는데 당시 시판 중이었던 맥주의 알콜농도가 2.5% 내지는 3% 미만이었다. 즉, 맥주뿐만 아니고 모든 술이 다 걸릴 수 밖에 없는 기준이다. 결국은 헌법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빼도 박도 못하게 위법으로 만들어 버린 셈. 이는 1920년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었다.

6.2. 시행 결과


당장 금주법 직후 미국정부는 100억달러 이상의 술세금을 포기해야 했다. 더불어 농부들 입장에선 금주법 때문에 아주 쌍욕이 나왔다. 술의 원료는 보리, 옥수수, 포도 같은 농산물이라 술도가들은 농부들에게는 큰 고객들이었다. 그런데 그 고객들이 하루 아침에 문 닫으니 당연히 농부들 입장에서는 돈도 못 벌고 잉여 농산물은 쌓여만 가는데 이게 그렇다고 하룻밤 사이 다른 루트로 판매량이 확 늘어날리도 없고, 그렇다고 꿍쳐두고 있자니 관리비가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 소량 생산만 하자니 노동 대비 효율이 개판이니 이건 뭐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말 그대로 애먼 농부들만 잡는 꼴이 되었기 때문.

그래도 공화당과 금주법 지지자들은 이런 희생을 감수하고 금주법을 통해서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와 달리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고 역으로 사회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상술했듯 이슬람권에서야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아서 커피만으로도 버틸 수 있겠지만, 술을 대대로 먹어왔다가 하루아침에 먹지 말라 하니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그나마 합법적인 루트라고 할 수 있는 종교용 포도주의 수요 및 의료용 브랜디의 소비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했으며, 미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공해에서 술 잔치를 벌이는 유람선이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생각과는 반대로 알콜중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술 사는게 불법[13]이라 알콜중독자들이 제대로 치료도 못받아서 알콜중독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밀주산업도 기승이였는데, 인접국에서 술 밀수가 급증했고, 미국내에서도 밀주가 엄청나게 생산되었다. 이런 불법주류산업에는 당연히 조폭이 꼬였고, 때마침 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자들 사이에는 시칠리아에서 경찰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한 마피아들이 같이 이민와서 동네 불량배로 있었는데, 마피아가 본격적으로 술밀수 사업에 뛰어들면서 엄청나게 성장해서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폭이 되었다, 당연히 밀주산업을 둘러싼 조폭들의 강력범죄와, 집단패싸움은 수시로 벌어졌고. 조폭의 규모가 커지면서 싸움의 규모와 강도는 더욱 커졌다. 그 결과 조폭들은 시도때도 없이 시카고 타자기를 두들겨 댔으며 일반시민들도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 술좀 마시는게 범죄행위가 되자 자연스럽게 더 큰 범죄에 손을 데게 되고 거기에 대공황까지 겹치면서 범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거기에 조폭들은 정부에 지속적으로 뇌물을 바쳤고 그결과 시카고 같은 곳은 시장부터 말단 경찰까지 알 카포네의 뇌물을 안받는 공무원이 거의 없었고, 결국 엘리엇 네스도 밀주산업으로 기소하지 못하고 탈세혐의로 겨우 기소할 수 있었다

그나마 밀주도 멀쩡히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불법산업이라서 품질관리가 개판이였다. 썩은 양조주를 팔아서 식중독으로 앓는 경우는 약과고, 증류주는 진짜 독극물을 섞어서 파는 경우도 종종있었다. 술을 증류할 때는 마실 수 있는 에탄올만 나오는것이 아니라, 진짜 독극물인 메탄올도 같이 나와서 이를 세심하게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14] 그런 기술이 부족하거나 혹은 그냥 생산비 줄이려고 메탄올이 섞인 술을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후술할 뻥튀기술은 공업용 에탄올로 알콜 도수를 맞추었지만, 일부 밀주업자들은 생산비 줄이려고 에탄올이 아니라 싼 메탄올을 써서 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대로 미국정부는 공업용 에탄올에 메탄올을 섞어서 뻥튀기 술을 막으려고 했지만, 밀주업자을 만든 이가 자기가 만든 술을 그대로 마시리란 보장은 없었고, 뻥튀기술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버렸다. 그나마 여러 법의학자들이 밀주는 목숨에 위험하다고 꾸준히 잔소리 해주지 않았다면 사망자는 더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술이 불법이 되니 자연스럽게 술의 기준을 감독할 장치도 없어지므로 중구난방으로 기준도 없이 만들어지다 보니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15]을 먹고 취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기도 했다. 참고로 이 술은 살인용으로도 썼다

6.3.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

6.3.1. 수요 측면

익히 알려져 있다 싶이 미국 국민의 절대 다수는 유럽 출신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으로 이뤄진 나라였다. 유럽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술이 기호품이 아니라 생활 필수품이였던 곳으로 그러다 아예 음주가 기본 문화로 자리잡은 지역인데, 바로 그런 곳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미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20세기 초에는 그런 유럽계 중에서도 아예 술을 단어 그대로 물 처럼 마시는 이탈리아계와, 술 없는 천국에 갈 바에야 술 있는 지옥을 선택할지도 모를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상황이였다.

결국 모르몬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술을 안 마시던 문화를 지닌 경우였다면 몰라도[16] 그동안 조상 대대로 술을 물 마시듯 하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술을 못 마시게 된 이상,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술을 구하기 위해 힘을 쏟았고, 마침내 캐나다나 영국에서 3달러 정도에 마실 수 있는 술을 10달러가 넘는 가격에라도 마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더군다나 원래 술에 별 관심도 없던 사람들조차 술이 돈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서 술의 수요와 가격이 급상승하여 술밀수가 위험을 감수할 만큼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 되자 너도나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6.3.2. 공급 측면

개인이 구하기 힘든 원료가 잔뜩 필요하고, 제조에 필요한 고급 기술이 요구되는 마약과는 다르게 술은 곡식이나 과일에 물과 곰팡이를 넣고 소독된 통에 넣고 기다리면 끝이다. 예를 들면 한국 전통주는 쌀, 누룩(곰팡이), 물만 있으면 만들수 있고 와인은 적당한 포도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에 증류기만 갖추면 고농도의 알콜로 증류주도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만들 재료가 사방에 깔렸고, 만드는 방법도 상품의 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할 수 만들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금주법 시행 이후 주류단속원에게 적발된 사람 중 전문적으로 대량생산을 하던 술도가 말고도, 자기 집 욕조 안에 보리와 맥아, 물을 섞어 넣고 술이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잡힌 사람도 상당수 있었고 가끔 유아가 자기 집 술독 욕조에 빠져 죽는 사고도 간간히 있었다. 사람 수가 적어 드문드문 살다보니 감시가 힘든 미국 남부 등 시골에서는 문샤인 같은 밀주를 만들어 먹거나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로우리스(Lawless, 국내 개봉명은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가 이렇게 금주법 시기에 문샤인 밀조업을 했던 3형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실화 기반의 소설이 원작).

그리고 미국 북쪽과 남쪽에는 금주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캐나다멕시코라는 완벽한 주류 공급처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두 국가가 술 산업 규모가 작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캐나다산 주류는 미국 사이에는 오대호라는 완벽한 밀수무역로[17]디트로이트, 시카고, 뉴욕이라는 최적의 소비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캐나다산 주류는 엄청나게 밀수입되고 이 과정에서 마피아가 당연히 연계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가장 유명한 마피아인 카포네도 캐나다산 위스키 중계업이 주요 자금원 중 하나였다. 그가 벌인 성 발렌타인 데이 대학살도 캐나다 위스키 사업 문제와 어느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

여기에 마피아들은 이렇게 수입한 술을 이용하여 술을 뻥튀기[18] 할 수 있는 불법 양조장을 건설, 관리하였고 이렇게 뻥튀기 된 술을 통해 얻은 이익이 마피아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이것이 천조국의 연금술 오오 이 뻥튀기 술을 막고자 미국정부는 공업용 알코올의 메탄올 비중을 높혔다. 뻥튀기 술은 공업용 에탄올로 알콜도수를 맞추는데 이렇게 하면 밀주업자들이 위험하니깐 공업용 알코올로 술을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 조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뻥튀기 술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미국판 시아 룰렛

이렇게 제조, 밀수, 연성 된 술들은, 최종적으로 과거 술을 팔던 주점이나 음식점들이 술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납품받아서 팔았고, 사람들은 이런 불법 주점을 "Speakeasy" 라고 불렀다[19] (당시 이러한 주류점 중 하나로 시작되었던 뉴욕의 "21 Club" 은 지금까지도 레스토랑으로 업종을 바꿔서 남아 있다) 이런곳에서 서민은 밀조주나 뻥튀기 술을, 상류층들은 밀수입한 외국산 술을 소비했고, 이 돈들은 고스란히 마피아의 자금원이 되었다.

6.3.3. 관리 측면

금주 단속에 나설 공무원의 숫자는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고[20], 마침내는 연방정부의 단속능력도 점차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다.[21] 애초에 완벽한 단속을 하기는 불가능하다는게 명확해지고 술의 밀수나 밀주 제조가 갈수록 짭짤한 돈벌이가 되자 결국은 이 시절을 다룬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에 나오는 것 마냥 주류단속원의 절반 가까이가 뇌물을 받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일선의 말단 공무원도 부패했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도 심각해서 시카고의 경우 말단부터 시장까지 (금주법을 역이용해 돈 꽤나 만진) 알 카포네의 뇌물을 받아 쳐먹어서 나중에 어쩌다 알 카포네를 어떻게 해볼려고 하면 알 카포네가 '니들 내 돈(&술) 받아먹었잖아' 한마디로 데꿀멍 시킬 수 있었다.

6.4. 금주법 폐지 여론

금주법으로 엄청난 범죄가 발생하자 금주법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AAPA(Association against the Prohibition Amendmen)가 있었고 GE, 듀폰같은 1차대전으로 성장한 거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듀퐁사 설 피에르 듀퐁은 댈러웨이 주 지역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상임위원회를 압박할 정도였다. 이들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술을 금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극렬히 침탈하는 행위이며 이는 수정헌법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해 금주법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이라 주장했다

AAPA는 금주법의 악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꾸준히 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 이 때 나온 보고서에서는 1920년과 1921년 사이에 총 범죄 증가율이 24%에 이른다고 보고했을 정도였고 술이 금지되어 약물에 중독되어 보고된 사례만 40%가 넘었다고 미 정부에 경고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보고가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컸는데 이는 마피아에 의한 '암시장의 폭력'을 암시하고 있었으므로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여기에 여성정치인 폴린 세이빈은 금주법 초기에는 "내 아들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술 없는 세상은 매우 좋을 것"이라며 금주법 초기에 금주법을 열열히 찬성했지만, 금주법의 악영향을 체험하면서 1926년에는 "법으로 술을 막으면 만사 OK일 줄 알았는데 막으니까 오히려 건전한 시민들이 술을 입에 대고 타락해가고 있으며 이는 여성과 청소년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쳐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어 버렸다."라면서 비판했고, 결국 1929년에는 WONPR(Women's Oganization for National Prohibition Reform)이라는 AAPA와 유사한 단체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때문에 그래도 여성들은 금주법을 찬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완전히 박살나 버렸고 금주법은 당시 유행어 대로 public enemy(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1922년에 Literary Digest에서 미국인 7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60%가 금주법에 회의적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았으며 결국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주법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28년에 콜럼비아 대학의 니콜라스 버틀러 총장은 뉴욕 타임즈에 사설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에 철저히 반하는, 미국의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법"이라며 나노단위로 까댔다. 이후 1932년에는 연설을 통해 아예 쿼크단위로 까댔다.

그러다가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맥주를 포함시키면 괜찮지 않을까?"하는 주장이 의회에서 있었지만. AAPA는 맥주 하나 허용한다고 해서 금주법이 유지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완전한 금주법의 퇴출을 미 행정부에 강력히 압박을 넣었다.

1929년 결국 금주법으로 인한 위법행위들을 줄이기 위해서 '법의 준수와 집행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Law Observance and Enforcement)'혹은 '위커샴 위원회'가 만들어져서 1929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놈의 위원회가 하라는 금주법 이후의 역학관계 조사는 안 하고 메탄올 들어간 밀주라도 마셨는지자기 위원회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홍보나 하고 있었고, 덤으로 위원회 내에서 하버드 학장 프라우드와 같은 하버드 교수 프랭크 퍼터간의 파벌싸움까지 벌어져서 국민의 분노를 사서 해산되었다.[22]

1929년 10월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은 금주법을 해제하는 데 커다란 단초를 마련하였다. 일단 대공황 때문에 소비 심리가위축되어 세금이 안거둬지다보니 정부가 돈이 없고, 이를 어떻게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세수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무턱대고 세금을 높이면 반발이 불 보듯 뻔하므로 가장 쉽고 안전하고 빠른 방법으로 술을 통해 세금을 거두는게 효과적이였기 때문. 그리고 음지로 빠져든 양조업계를 다시 양지로 끌어올려 고용을 확충시키면 이 역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정계, 재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주법은 수정헌법 18조로 규정된 엄연히 명문화된 헌법 조항이었고,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은 자기들이 자신만만하게 만든 법인지라 이를 함부로 손 댈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마침 민주당프랭클린 루즈벨트나를 밀어주면 금주법은 폐지시키겠다면서 금주법 폐지를 제1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때문에 AAPA에서도 이 공약에 넘어가 "솔직히 우리 단체의 정치적 성향이랑 루즈벨트 당신은 별로 맞지 않는데[23] 제1공약만 들어준다면 공화당 버리고 당신에게 붙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금주법의 폐지는 뉴욕타임즈 1932년 8월 10일자 사설에서 언급되었듯이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이슈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약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렸다. 앞서 기술한 대로 AAPA의 주요 지도층은 GE와 듀퐁을 위시한 공룡기업들이 주축이었다. 즉 반목해야 정상인 두 세력이 겨우 술 허용하는 문제 하나 때문에 술심으로 대동단결을 하게 만든 셈(...). 위 아 더 월드

결국 1932년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되고, 제1공약을 수행하기 위해서 같은해 2월 수정헌법 21조가 의회의 동의를 받아 수정헌법 17조는 폐지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전 미주(美州)가 이를 동의함에 따라 13년만에 금주법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법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진 다음이었다. 헌법을 안이한 주먹구구식 생각으로 그것도 단순히 수정이 아니라 커다란 조항을 넣었다가 사회를 개판으로 만든 후에야 폐지시켰으니 법의 권위가 안 떨어지는게 이상하다.

거기에 마피아는 미국 깊숙히 자리잡아 전국적인 범죄조직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고작 술이 아니라 헤로인을 밀수하기 시작했고 단순한 범죄조직을 넘어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도시를 세우고 쿠바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거대세력으로 성장해서 미국에서 엄청난 해악으로 자리잡았고, 1960년대 FBI가 공공의 적으로 본격적으로 개입해 때려잡기 시작할 때까지 근 수십년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다.

6.5. 여담

  • 당시 한번은 술 관련 문제로 벌어진 재판에서 피고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물로 원고가 제시한 술을 어느 배심원이 '술이 맞는지 확인해보겠다'는 핑계로 마셔버리고는 증거 불충분(그야 방금 증거인 술을 마셔서 없애버렸으니...)으로 피고를 무죄로 풀어주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무슨 마약... 아니 술을 드셨기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 술 밀수로 떼돈을 번 알 카포네의 형은 금주법 단속반 소속이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의 극치.

  • 금주법을 만든 공화당[24], 워런 하딩 대통령은 취미가 백악관에서 술쳐먹고 포커질 하는거였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파티때 영부인이 폭탄주를 말아주셨다고

  • 금주법과 마피아 덕분에 재즈, 그 중에서도 특히 빅밴드 편성의 스윙 재즈가 유행했다고 한다. 비밀 술집이 성황을 이루면서 더 많은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 볼 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해야 했던 것. '비밀' 술집이라는데 이렇게 대놓고 홍보를 했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그 원인은 그런 술집들은 대게 높으신 분들이 단골이였기 때문에...

  • 심슨에서도 이 금주법을 깐 에피소드가 있다. 8시즌 18번째 에피소드로 이름은 "Homer vs. the Eighteenth Amendment"(호머 대 수정 헌법 18조(금주법을 규정한 헌법조항)). 밀주 제작, 마피아의 개입, 암암리에서 벌어지는 주류 유통 등 금주령이 내렸을때 생기는 일을 한 에피소드로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6.6. 관련 항목

7. 소련의 금주법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가 금주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고질적인 알콜 중독 문제를 해결하고, 을 만드는데 쓰는 곡물이 줄어들면 소련의 고질적인 식량 문제도 일정부분 해결한데다가 의료비용도 줄여 정부예산을 아낄수 있다는 뜻(일단 술을 만들 곡물을 사들기 위해서 미국이나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지로부터 식량을 수입해서 상당한 양의 외화가 낭비되는데가 거기에다가 소련은 무상의료제도를 시행했기에 알코울 중독증이나 성인병을 치료하는데에도 상당한 재정이 지출되었다.)에서 내린 것이었지만, 당연히 반발이 극심했다.러시아인에게서 보드카를 빼앗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런데 실제로 고르바초프의 금주령 기간 중 소련의 남성 자살률이 감소했고 남녀간 수명격차도 다소 줄어드는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고 한다. 그래봐야 90년대 이후엔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안습[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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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세종 같이 의정부서사제를 합리적으로 운영한 경우나, 왕권이 약했던 왕들을 제외하고 세조, 숙종, 영조 등의 강력한 왕권을 쥔 군주들은 꽤나 자주 관료들을 파직시켰다가 불쌍해서 봐준다, 언로(言路)를 막을 수는 없다며 복직시켜주는 나는 관대하다 식의 처사를 반복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 [2] 둘 다 자식 관리 제대로 못 한 것도 똑같다.
  • [3] 수랏상의 찬을 줄이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고 고기보다는 채소위주의 식단을 짜기도 했으며 부마 되는 이들이 문안을 드릴때 식사로 잡곡밥을 주며 일반백성들의 심정을 헤아리라는 말도 했다고. 시대를 500년 앞서나간 식단이다. 이러면서도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했는데 어느 정도 였느냐면 회의 중 신하들은 밥 안먹고 쫄쫄 굶는데(...) 본인은 식사때 되면 바로 밥먹으러 갔다고 한다. 밥도 안 주면서 일 시키는 전형적인 악덕상사의 위용.
  • [4] 다만 포도주 그 자체를 신성하다고 본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성혈로 성변화한 것만이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 [5]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에서 포도주는 술 중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취급을 받았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포도주가 그냥 술이라는 점은 옛날옛적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술은 안마셔도 포도주만은 예외로 두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 [6] 물론 콜럼버스 이후로는 주재료가 감자로 바뀌긴 했다.
  • [7] 칼뱅과 츠빙글리는 아예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루터는 그저 '임재'만 할뿐 그 자체가 피와 살이 되는건 아니라고 했다.
  • [8] 술 빚는데 물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알콜을 분해하는데 수분이 엄청나게 필요해서 증류주 같은 술은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진다.
  • [9] 오늘날 파는 쉬라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 쉬라즈는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시라포도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민간설화에 따르면 이란 쉬라즈 포도를 프랑스에서 재배한게 시라포도라는 이야기도 있다.
  • [10] 사도행전 11장 9절.
  • [11] 그러나 와인이나 포도즙이 섞은 술을 포도주스로 팔아먹는 사례가 제법 많아서 포도주스로 고치기는 곤란했을 것이다
  • [12] 실제로 한국 개신교의 성만찬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빵이 떡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많다. 다만 개신교는 신학적 스팩트럼이 종파마다 천차만별이라서 일원화하기는 어렵다.
  • [13] 술 마시는것은 불법이 아니었지만, 너 이거 어디서 사다 마셨냐고 물어보면 어차피 감옥 가는 건 마찬가지
  • [14] 끓는점이 다른점을 이용한 분별증류법으로 분리한다
  • [15] 심지어는 그냥 100% 알코올인 경우도 있었다고한다. 이게 무슨 술이야 알코올이지
  • [16] 당시 모르몬은 이단 판정으로 하도 두들겨 맞아 극소수만 존제했다. 지금도 메이저라 보긴 어렵겠지만.
  • [17] 내륙호수는 바람과 조류가 적어서 소형선박을 사용하기 쉽고 때문에 단속이 더 어렵다
  • [18]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말로는 5배 까지 뻥튀기 할 수 있다 카더라.
  • [19] 다른 은어로는 Blind Pig 혹은 Blind Tiger. 여기서 유래된 용어로 암거래 시세를 의미하는 "speak-easy prices" 가 있다.
  • [20] 수천명에 이르는 연방정부의 금주단속요원들이 있었지만 미국의 땅넓이와 국경의 길이, 해안의 면적을 감안하면 늘 태부족이었다.
  • [21] 각 주, 시, 카운티 정부도 연방정부를 금주법을 집행할 책임이 있었지만 늘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 [22] 이후 프라우드 학장은 위원회가 해산된 이후 하버드 내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 [23] 당시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을 앞세운 계획경제모델을 제시했었으므로 어찌보면 자본가들이 중심이었던 AAPA가 적대하면 적대했지 밀어줄 이유가 없었다.
  • [24] 위에서 언급했듯이 입법당시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금주법에 반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 [25] 다만 90년대에는 러시아인의 대다수가 빈민층으로 전락해서 밀주가 성행했는데 덕택에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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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1-05 15: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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