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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last modified: 2015-03-03 19:58:31 by Contributors


Contents

1. 약력
2. 소개
3. 기형도 게이
3.1. 게이설의 근거
3.2. 반박


1. 약력

1960.3.13~1989.3.7
대한민국시인. 1960년 경기도 옹진군(現 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 출생.[1][2] 2010년포격 사태가 있었던 연평도 할 때 연평 맞다. 1965년에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지금의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하였다. 특히 시 <안개>는 소하동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한다. 출신지는 지금은 인천으로 편입된 연평도이지만 기형도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지자체는 그의 성장지이자 사망 당시까지의 거주지였던 광명시이며[3] 정작 그의 1차 고향옹진군은 기형도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서울시흥초등학교, 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거쳐[4]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경기도 안양시의 모 부대에서 방위병으로 군 복무 이후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생전에 발간된 시집은 없으며, 유고작 <입 속의 검은 잎> (1989), <기형도 전집> (1999)이 있다.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후 문학 동아리인 연세문학회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활동했을 적에 있었던 회원 중 한 명이 법학과 출신 소설가 석제이다.

2. 소개

그는 독특한 색채의 시를 많이 썼는데,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시가 주를 이룬다. 당시의 정치적 색채가 짙은 민중시, 노동시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덕분이었다. 기형도 전집에서는 "기형도의 언어들은 유예된 죽음의 언어들이다"라고 평가한다.

1989년 3월 7일 새벽, 그는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한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5]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당시 만 29세로,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 그 해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시집이었다. 1999년 기형도 전집이 발간되었으며, 20주기 문집으로 <정거장에서의 충고>가 발간되었다.

고등학생들에게는 무분별한 산업화에 따른 환경파괴와 인간성의 상실을 주제로 한 시 <안개> 정도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센티멘탈하고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겼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시는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라는 마지막 구절로 유명한 <빈 집>이며, 이외에 1980년대 대학가의 정치적 격동 속 외로움과 상실감을 노래한 <대학 시절> 등이 유명하며, 조하문이 열무삼십단이란 제목으로 <엄마 걱정>이란 시에 곡을 붙여 발표한 적도 있고, <질투는 나의 힘>은 동명의 영화제목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3. 기형도 게이

인터넷도 PC통신도 없던 1980~1990년대, 동성애자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공간이 바로 종로 등지의 심야극장이었다. 그가 숨진 파고다 극장 역시 대표적인 '게이 크루징(cruising)' 극장 중 하나.[6] 이에 따라 1) 기형도는 게이었으며, 2) 그의 사인(死因)은 복상사였다, 는 주장이 있다. [7]

복상사 얘기야 웃고 넘어간다 쳐도, 1)번 '기형도 게이설'은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실제로는 쉬쉬하는'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가십 중 하나다. 물론 그가 생전에 커밍아웃한 적이 없으니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기형도 게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의 시(詩) 중에 소수자로서의 소외감, 더 나아가서 직접적으로 동성애자로서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아래에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시를 소개한다.

3.1. 게이설의 근거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어떤 그림자는 캄캄한 벽에 붙어 있었다.
눈치 챈 차량들이 서둘러 불을 껐다.
건물들마다 순식간에 문이 잠겼다.
멈칫했다, 석유 냄새가 터졌다.
가늘고 길쭉한 금속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잎들이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손과 발이 빠르게 이동했다.
담뱃불이 반짝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던 행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나쁘게 말하다)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임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새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늙은 사람)

끝으로, 짧은 대구 여행기인 '장정일 소년' 에서는(시인 겸 소설가 장정일 맞다.) 커밍아웃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실은 고인만 안다.

나는 그에게 내 고통의 윤곽을 조금 말해 주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만 마시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3.2. 반박

시인 겸 평론가 김갑수는 <입 속의 작은 잎> 의 서평에서,

죽음의 장소 때문에 기형도가 게이였다느니 무슨 불치병이 있었다느니, 혹은 자살한 것이라느니 하는 억측이 사정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떠돌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와 붙어 지내던 친구들이 다 생존해 있는 판인데 황당하고 기가 막힐 일이다. 특히 가족들이 많이 상처받았다. 시의 각광도 죽음의 센세이셔널리즘 때문이라는 말도 많았다. 독자의 환상도 존중받아야겠지만 없는 사실의 창작은 좀 곤란한 일이다.

'기형도 전집' 中
안내양은 날 사랑하는 걸까? 얼굴만 좀 예쁘면 연애걸 수도 있겠는데.(p.316~317)

00과 만나 잠시 이별의 암시를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가 대했던 많은 대화들에 대하여 그녀의 슬픔이라는 몇 줄의 눈물로 보상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오, 또 이렇게 되었다. 언제나 나는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것인가. 통나무집에서 그녀가 키스를 요구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중략) 지난 81년 겨울 '하얀 집'(라면집)의 김00씨가 생각났다. 나에게 파카를 벗어준 머리가 길고 담배를 즐겨 피우던 키 큰 여자.(중략)그 여자, 내가 지금 추억만으로써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잇는 상현달 같은 여자.(p.327)

그 외 기형도의 연애사에 대해서는 기형도 시인 20주기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에도 몇 줄 나오는 바 있다. 원래 시인의 성격이 자신의 연애사를 친구들에게 말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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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95년 행정구역상 옹진군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행정상으로는 인천 출신이다.
  • [2]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일대에서 오래 거주했다보니 일부 자료에서는 경기도 시흥 출생이라고 잘못 나오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광명시의 옛 지명은 경기도 시흥군 서면. 아무튼 유년시절부터 광명시 일대에서 거주하였으니 사실상 광명시 출신이라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 [3] 2004년에 광명동에 광명시립중앙도서관을 개관하면서부터 3층 인문사회자료실 한쪽 구석에 기형도의 코너를 마련했을 정도였다.
  • [4] 지금이야 서울특별시광명시의 학군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지만 시 승격 이전의 철산동 일부, 하안동, 소하동 일대에 거주하는 취학연령자들이 서울 소재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 [5] 그 때 상영하고 있던 영화는 뽕2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에로 영화처럼 알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에로티시즘이 들어있을 뿐 내용은 의외로 괜찮은 한국영화다.
  • [6] 파고다 극장은 탑골공원 바로 옆에 존재하던 극장으로, 당시 동시상영관이자 여러가지 문화공연을 자주 개최하던 2류 극장으로 유명했다. 도심 중심가에 위치한, 대관료가 싼 극장으로 80년대에는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태동하던 헤비메탈 공연이 자주 열리곤 했다. 소위 말하는 "쌍팔년도 메탈"하던 분들 중에 "내가 소싯적에 파고다 극장에서 공연 했는데~"라고 이야기 하는 분들이 꽤 계시다
  • [7] 복상사는 병증이 아니라 '숨진 상황' 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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