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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last modified: 2015-08-22 02:03:09 by Contributors

KBO 리그 현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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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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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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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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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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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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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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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운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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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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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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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kt 위즈)


OB 베어스 선수시절.


NC 다이노스 No.74
김경문(金卿文)
생년월일 1958년 11월 1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대구옥산초-부산동성중-공주고-고려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OB 베어스 창단 멤버
소속팀 OB 베어스 (1982~1989)
태평양 돌핀스 (1990)
OB 베어스 (1991)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코치 (1994~1996)
두산 베어스 배터리코치 (1998~2003)
두산 베어스 감독 (2004~2011)
NC 다이노스 감독 (2012~)

두산 베어스 역대 감독
김인식 (1995~2003) 김경문(2004~2011.6.13) 김진욱 (2012~2013)
NC 다이노스 역대 감독
팀 창단 김경문(2012~) 현역

역대 감독 전적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4 두산 베어스 133 70 62 1 3위 3위
2005 126 72 51 3 2위 준우승
2006 126 64 60 3 5위
2007 126 70 54 2 2위 준우승
2008 126 70 56 0 2위 준우승
2009 133 71 60 2 3위 3위
2010 133 69 61 3 3위 3위
2011 57 23 32 2 5위
통산 960 512 432 16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3 NC 다이노스 128 52 72 4 7위
2014 128 70 57 1 3위 3위
2015
통산 256 122 129 5
총계 1216 634 561 21

Contents

1. 개요
2. 별명
3. 선수 및 코치 생활
4. 감독 생활
4.1. 두산 베어스 시절
4.2. 2011년 두산 베어스 감독 사퇴와 NC 다이노스 감독 선임
4.3. NC 다이노스 시절
4.3.1. 2013 시즌
4.3.2. 2014 시즌
4.3.3. 2015 시즌
5. 스타일
5.1. 야수를 잘 만들어내는 화수분야구
5.2. 투수 육성 및 기용에 대한 비판
5.3. 감의 야구, 작두야구
5.4. 강공 위주의 선이 굵은 야구
6. 기타
6.1. 제2의 국민감독 후보
6.2. 호구 오능가?
6.3.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

1. 개요

도망가지 말고 극복해야 한다. 포기하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ㅡ 김경문의 좌우명.출처

한국프로야구의 야구인. NC 다이노스 초대 감독.

다소 평범한 현역 시절과 무난한 코치 시절을 보냈지만, 2004년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취임한 후, 마지막 해인 2011년을 제외하고 내내 5할 승률을 유지하면서 팀을 3번 한국 시리즈에 올려놓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감독.

두산 팬들에게는 이탈했지만, 키워내서 중위권 이상 만든 괜찮은 감독[1]
NC 팬들에겐 그냥 신생구단이던 NC 다이노스를 1년만에 지금의 NC로 만든 리빌딩 전문가.

2. 별명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은 김경문의 '문'(moon)자를 딴 감독. 또한 좋은 페넌트레이스 성적을 내면서도 우승은 하지 못해서 경문이라고도 불리며, 삽질을 할 때는 돌경문 소리도 나온다. 2011년 시즌 중도에 사퇴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NC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두산 팬들에게는 통갱문(통수 + 김경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호구라는 별명도 있는데, 이는 김성근에게 2007,2008년 우승을 2년연속으로 조공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간통님이라는 감동님의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위에서 말한 돌경문이나 호구 등이 더 쓰인다.

과거 선수시절 당시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씨와 닮아서 별명이 람보였다.

3. 선수 및 코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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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손창민씨께서 영화 찍으셨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기분탓이다.[2]

인천 출신으로 학창 시절 대구, 부산 등으로 이사를 자주 다니며 떠돌다 공주고등학교-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수이며, 전 KIA 타이거즈의 감독이자 현 kt 위즈의 감독인 조범현과 같은 OB 원년 멤버 출신.

현역 시절 타격은 좋게 말하면 그저 그랬다. 사실 말이 좋아 그저 그랬다는 거지, 프로 10년간 통산 타격성적이 타율 0.220, 6홈런(...), 126타점에 불과하니 타격 실력은 떨어졌다고 할 수 밖에 없다.[3] 당시 조범현과 주전경쟁을 하며 상대적으로는 타격이 좋았다고 평가된다. 그래도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멤버로서 활약하면서 공을 받았던 선수다. 또 1988년 장호연의 공을 받으며 개막전 노히트노런을 겪어보기도 했다. 조범현과의 치열한 주전 경쟁은 김경문은 근소한 판정승으로 끝나는데, 이는 출장 경기수에서 조범현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4]

OB에서 평범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1990년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었지만 1년만에 다시 OB로 복귀하여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1992년 미국 애틀랜타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를 지냈으며 1998년부터 두산 베어스에서 배터리 코치를 맡았다.

4. 감독 생활

4.1. 두산 베어스 시절

2003년 시즌 종료 후, 선동열 감독의 영입을 둘러싼 두산과 LG의 경쟁 속에서 두산을 9년간 이끈 김인식 감독이 사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선동열은 삼성의 수석코치로 이동했고, 공석이 된 감독 자리를 두고 고심하던 두산 수뇌부는 당시 무명에 가깝던 배터리코치 김경문의 감독 승격을 발표했다.[5]

부임 당시 2002년과 2003년 연속 PO 진출에 특히 2003년은 롯데 자이언츠가 아니었으면 꼴찌를 기록해도 할 말 없는 성적이었기 때문에 장수할 것인지 의문스러웠지만, 2004년 부임 첫 해부터 팀을 3위에 올리며 PO에 진출시키면서 일약 젊은 명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부 선수들이 병역비리로 빠졌음에도 2004년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005년에는 시즌 마지막 날 SK 와이번스를 제치고 정규시즌 2위에 올라 PO에서 한화 이글스를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삼성 라이온즈에게 0:4 스윕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6년에는 주포인 김동주의 부상 속에 5할 승률을 넘기면서 선전했지만, 결국 PO 진출은 간발의 차로 실패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발굴한 이종욱고영민 같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중용하면서 팀 타선의 체질을 개선하더니 2007년과 2008년에는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그러나 아래 설명한대로 김성근 감독의 SK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2년 연속 분패. 대신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야구가 강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하지만 두산에서는 외국인 선수 지원도 약간 아쉬웠고, 아래 서술하는대로 투수 운용이 야수 운영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서 한 끗 부족한 운영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하여 준PO에서 롯데를 격파하고 PO에 진출, 두 번의 PO에서 모두 5차전까지 가는 처절한 접전 끝에 각각 SK와 삼성에게 PO에서 패퇴하면서 두산에서 우승의 꿈을 이루는데는 실패했다.

번트를 거의 대지 않는 강공 위주의 공격을 주로 펼쳤고, 김인식 시절의 뻥야구 대신 투수진과 탄탄한 수비, 발을 이용한 주루플레이를 중점에 두는 스타일로 팀을 변화시켰는데 이는 기록에서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다(팀홈런, 득점, 실점, 방어율 하락, 도루 증가). 공격력이 전체적으로 하락한 이유는 팀의 전성기를 이끌던 한국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클린업 우동수트리오와 테이블 세터진이 김동주를 제외하고 타팀으로 모두 이적해버리는 바람에 줄어든 공격력 때문. 이를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고, 도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극복했다.

분명 타선의 체질 개선과 발야구 정립에는 큰 공이 있었던 반면에 쓸 만한 투수는 전부 불펜에 때려박아 감독으로 있는 동안 쓸만한 선발 투수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고, 믿는 투수만 주구장창 굴려기용하여 승리하는 방식으로 까였고, 이런 운영이 누적이 되면서 두산의 투수력은 김경문 체제 후반기로 갈수록 약화되었다. 애초에 몇놈 말고는 믿지를 못하는 듯. 이 덕분에 매번 우승을 노리며 무리한 게 몇 년째였고, 결국 그 후유증이 2011년에 폭발했다.

4.2. 2011년 두산 베어스 감독 사퇴와 NC 다이노스 감독 선임

우승을 향해 야심차게 시작한 2011 시즌. 4월 3일 개막전에서 김현수김동주의 솔로포를 앞세운 승리로 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4월 한달 동안 2~3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하는 듯 했으나, 5월 들어 그의 선수관리에 치명타를 입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하지만 5월의 마지막과 6월의 시작이었던 SK와의 3연전에서는 스윕할 뻔 했으나 2승 1패로 위닝시리즈를 가져가게 되면서 기세를 살리는 듯 했으나 연이은 삼성과의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내준 것을 시작으로 다시 연패를 기록하며 참담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결국 두산이 7위까지 내려간 상황에 결국 2011년 6월 13일 두산 베어스의 공식사이트에 사퇴에 관한 변을 올리면서 자진 사퇴하였다. 이 사퇴 소식에 어디의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두산 팬들은 단체로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앞에서 미처 서술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김경문에게는 선수 관리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김인식 시절까지만 해도 사고를 쳤던 선수들이 이종민 정도에 불과했지만 "선수의 사생활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 온 반면, 그가 두산 감독을 맡던 시절에는 병역비리 사태에서 피를 맛본 것을 교훈으로 선수관리 면에서 근본부터 다시 손을 봤지만 의도만 좋았지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결국 결정적인 한 방을 맞으면서 뻗어 버렸다.

"7년 동안 고생해 준 선수들이 부상이다. 감독인 내가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서 더는 냉혹하게 분발을 촉구하지 못하겠다. 정말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해 행복했다."
라는 대놓고 사퇴를 암시하는 말을 남겼다. 사실 사퇴 의사는 5월부터 밝혀 왔다고 한다. 어린이날 더비인 5월 5일 LG전의 처참한 패배 이후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구단에서 말렸고, 재차 사퇴의사를 강하게 밝힌 것이 결국 받아들여진 것.

이후 감독은 김광수 수석코치가 대행하게 된다.

당분간 미국으로 건너가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 쉬진 않을것이라고 밝힌 만큼 2011 시즌이 끝나고 어느 팀의 감독을 맞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자리가 대단히 위태로운 모 팀의 어떤 石이란 별명이 붙은 감독이 있는데...

그런데 당초 2011년 연말쯤에 돌아올것으로 알려진 김경문 감독이 8월 말에 갑자기 귀국했다. 물론 겉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송파구 방이동 한성백제박물관 건너편의 "문 카페"의 개업 때문에 귀국했다지만 NC 다이노스2012년 드래프트가 열리는 2011년 8월 25일 이후에 창단 감독을 선임할 것이라고 밝혀서 NC소프트의 초대 감독으로 낙점된 게 아니냐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게다가 김경문 감독의 오른팔로 잘 알려져 있었던 보현 두산 베어스 1군 매니저가 그 무렵 두산 구단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더욱 더 가속화되었다.[6] 그리고 8월 31일 NC 다이노스의 창단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환영하는 팬들도 있지만 뒤통수를 쳤다며 까는 팬들도 있는 듯. 시즌 끝나고 선언하면 될 것을 굳이 시즌 중에 했다고 돡갤러들은 분노했다.

4.3. NC 다이노스 시절

4.3.1. 2013 시즌[7]

2012 시즌 퓨처스 리그를 정복하고, 외국인 3인방과 특별지명 8인, 이호준이현곤의 FA영입으로 무시못할 전력을 만들었고, 시범경기때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개막하자 7연패에 빠지며 신생팀의 한계를 드러낸 것인가 하고 걱정했지만...

4월 11일 LG를 상대로 이재학이 첫 승을 따내며 분위기가 반전, 이후 SK를 상대로 2승 1패를 거두어 창단 첫 위닝시리즈를 만들었다. 특히 SK 와이번스를 상대로는 2013년에 우세였다. 같은 해 13연패를 찍으며 9호선을 개통한 한화 이글스보다 경기력이 낫다는 평.

5월 이후부터는 4월의 극심한 부진에서 벗어나 28경기 15승 12패 1무 (13.06.08 기준)의 성적으로 5할이상의 승률을 보이면서 기존 구단들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매우 인상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5월 이후 호성적에는 팀 QS 1위를 달리는 선발진들의 힘이 크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7회 이후 불펜진의 방화로 실점하는 경우가 많아서 적은 점수차 리드를 하고 있을때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후반기에는 투수진이 안정된 반면 타선이 생각보다 잘 터지지 않을 때가 많아 걱정을 자아냈다. 하지만 선수층이 안정되며 야금야금 승수를 쌓아올리기 시작. 시즌 초에 연패를 너무 당해서 하위권에 머물렀을 뿐 팀의 경기력은 중상위권까지 올라왔다. 그 덕에 KIA 타이거즈를 제치고 시즌 최종 7위를 하였다.

4.3.2. 2014 시즌

1월 22일 계약기간 3년간 계약금 5억원, 연봉 4억원에 계약을 마쳤다. 즉, 연장 계약이다.

정규 시즌 시작부터 투타 모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면서 팀이 단독 1위까지 올라왔다. 시즌 초부터 다크호스라는 평가는 많이 받았지만, 그야말로 괄목상대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할 시기인 여름 고비만 잘 넘긴다면, 4강권은 물론 우승에도 도전해볼 만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엔레발 자제요 그런데 가을야구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6월 1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역대 8번째로 프로야구 감독통산 600승 고지에 밟았다. 인터뷰

다만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까지 팀이 부진에 빠지는 과정에서 김종호를 양아들이라고 기용한다고 NC 다이노스 갤러리 등에서 까였다.

거기에 7월 1일에 콜업한 조평호를 단 두 타석 쓰고 10일에 말소한 점도 비판받았다.

8월 3일 SK전에서 찰리의 욕설 퇴장 이후 14분간 시간을 끌어 비매너 이야기가 나왔다. 심지어 불펜에는 아무도 몸을 풀고 있지 않았다.
KBO로부터 엄중경고를 받았지만 솜방망이도 아닌 헛스윙 처벌이라는 평이 대다수.

이래저래 탈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10월 3일, 창단 3년, 1군 진입 2년만에 을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4.3.3. 2015 시즌


5. 스타일

5.1. 야수를 잘 만들어내는 화수분야구

투수는 아니고, 야수만 그렇다.

대체로 이름없는 선수 몇 명을 엄청나게 밀어주는 경향이 있으며, 그 선수가 삽질을 하면 달의 남자라 불리며 김경문 감독과 함께 까인다.[8] 그러나 달의 남자들이 포텐셜 폭발로 스타플레이어가 되면 이 칭호는 사라지고 이때까지 까던 팬들이 '이 선수는 될 줄 알았다' 면서 애널서킹을 해댄다. 이렇게 갑툭튀하는 선수들이 김경문 하에서는 굉장히 많이 나온다. 두산에서 그렇게 키워낸 선수가 신고선수로 들어온 손시헌김현수였고, 상무에서 제대하자마자 현대 유니콘스서 방출당한 후 손시헌의 추천으로 입단한 선린상고 동기 이종욱, 고영민, 이성열, 양의지 등이다. 물론 유재웅처럼 끝까지 터지지 않고 떠난 선수들도 많다.

팀 내 파워 게임과 세력 조율에도 매우 뛰어나서 나이가 든 선수들의 경우,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내보일 수 있도록 상당기간 기회를 부여한 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냉정하게 정리한다. 이 경우 떨어진 성적이 확실한 근거가 되므로 팬들도 지지를 보낸다. 대표적인 예가 안경현. 그리하여 서른 전후의 선수들에게는 문차일드에 속하는 것이 굉장한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성공해서 자리잡은 예는 임재철. 실패한 예는 희성, 이승준, 정원석, 유재웅 등 이다.

간단히 말해서, 강병철 감독과 그의 숱한 강병철의 양아들들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기대주 타자들을 잘 발굴해 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개 다음 감독 좋은 일만 해주는 강병철 감독과는 달리 팀 내에서의 그의 자리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NC 시절에도 이 장점은 그대로 적용되어 삼성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던 김종호를 도루왕이 유력한 수준급 리드오프로 만들었고, 투수로서 생명이 끝난 나성범을 중심 타자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신생 팀이다 보니 경험이나 수비력, 두께에선 아쉬움이 많은 NC 야수진이지만 베테랑 이호준의 뒷받침과 나성범모창민, 권희동 등으로 이뤄진 젊은 중심 타선의 화력은 수준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5.2. 투수 육성 및 기용에 대한 비판

치열한 경쟁에 의한 타자 육성에 비해 선발 투수 육성 능력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편이다. 덕분에 200이닝 이팅이 가능했던 약쟁이다니엘 리오스가 떠나자마자 불펜야구로 전환되었고 2011년 두산을 떠나기 전까지 두산에서 제대로 된 선발 투수를 단 한 명도 키워내지 못했다.[9]

후덕한(?) 이미지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스승인 김인식 감독과 마찬가지로 투수혹사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선동열과 함께 선발 자원도 거진 불펜에 때려박는 걸로 악명이 높았으며, 선발을 못 믿고 일찌감치 핵심불펜 투수를 투입하다보니 투수진이 일찍 소모되고, 그 틈을 메우려다 보니 선발수업을 받아야 할 유망주들을 계속 불펜에 제물처럼 투입하여 소모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이유로 까였다.[10]

2010 시즌 목표가 우승이라며 초반 1위를 노리려다, 임태훈, 이재우, 고창성, 홍상삼 등 핵심 투수들이 연달아 무너지며 자멸한 것은 김경문식 불펜야구의 절정이라 부를 만하다. 김경문 감독의 입장에서는 김선우/켈빈 히메네스/이현승의 이닝 이터 트리오, 그리고 하위선발에 레스 왈론드를 배치, 5선발 자리에서 경쟁을 시켜 보면서 튀어나오는 선수에게 꾸준한 기회를 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2011년 선발을 강화한다고 하며 이용찬을 선발로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4월 내내 1위를 목표로 중간계투를 빡세게 돌리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결국 임태훈은 5년째의 혹사로 허리가 나가 과연 이유가 그것뿐일까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고창성도 3년여의 혹사로 맛이 갔으며, 이미 혹사로 건초염을 앓고서 한참 쉬다 돌아온 정재훈마저 순식간에 맛이 가기 직전까지 몰렸다. 이에 대해 실드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근거로는, 2군에서 유망주를 키워야 할 투수코치들이 역할을 못해주었다고 지적한다. 김경문 감독은 어디까지나 팀의 종합적인 관리를 추구하는 입장이어야 하고, 1차적으로 투수 육성에 있어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투수코치 아니냐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은, 기존의 이재우, 김선우, 김상현, 이혜천, 김명제, 승학, 정재훈에다 2007년 이후 2군에서 콜업된 수준급 투수만 해도 임태훈, 고창성, 홍상삼, 이용찬, 노경은, 금민철이며, 거기에다 히어로즈에서 트레이드해 온 이현승까지 친다면, 투수가 없다느니 코치가 잘못이니 하는 타령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저 많은 투수들을 계투로 때려박은 것이 감독이다. 그리고 이 중 노경은이용찬은 김진욱 감독에 의해 선발진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차라리 용병탓을 하면 이해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약물 의혹의 리오스만 해도 2007년 혹사의 수준을 넘어 엄청난 등판을 했던 걸 생각하면 투수기용에 관한 한 달감독은 까여도 할 말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는 속타는 일이다. 믿고 데려온 선발감들이 한결같이 3이닝만 넘어가면 비실거리니 계투로 돌릴 수 밖에. 오죽하면 선발이 5이닝만 넘기면 퀄리티 스타트에 비유하여 돡리티 스타트라고 팬들이 환호하기도 했었다.[11]

NC에서는 신생팀 메리트로 용병을 한 명 더 기용할 수 있었고, 이 중 찰리에릭이 이닝 이팅을 확실하게 해줬으며 국내파 중에서는 이재학이 호투하면서 선발진은 괜찮아졌지만 지속적인 불펜 불안이[12] 심해지면서 한동안 이재학을 마무리로 돌리기도 했다. 그나마 곧 다시 선발로 복귀시키고 나이든 손민한을 마당쇠로 기용하며 두산 시절보다는 선발에 무게를 두고 있다. 2014년이 지나면 용병+1 메리트가 없어질 것이고 불펜에서 마당쇠 역할을 해주는 손민한의 선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사이 팀을 얼마나 정비해서 NC의 투수진을 꾸려나가냐에 따라 향후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결정될 듯 하다. 일단 5월 초를 기준으로 보면 원종현홍성용이 불펜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달감독에 대한 비판 중 제일 이해할 수 없는것이 투수육성에 대한 비난이다. 투수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고 키워내는 것도 감독 능력이라면 달감독은 투수육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다. 선수를 키우면서 성적을 내야했던 두산 사정때문에 좋은 투수들을 불펜에 때려박아 운용했던것은 비난만 받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즉, 욕먹어야 할 건 두산시절 말년에 조급증이 극에 달한 투수운용과 혹사이지 투수육성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 투수운용도 과거 한국시리즈때 김성근이나 선동열에게 밀렸다뿐이지 실제로는 준수한 편이며 혹사문제는 김성근이나 선동열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13] 혹사문제가 대두되는 임태훈, 이재우, 고창성등은 재활해서 다시 선수생활 이어가기라도 하지만 실제 전병두, 권오준은 보이지도 않는다. 야수진 운용이나 육성은 당대최고라고 봐도 무방... 두산의 화수분야구(투수포함)는 말 그대로 김경문으로 시작해서 김경문으로 끝난다. 이제 그 화수분야구는 엔씨로 옮겨갔고 두산은 달감독의 유산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 재정비시점이 다가왔다. 질투심인지 그냥 찌질함인지는 몰라도 달감독을 통경문이라고 비난하는 일부 두산팬들의 유언비어 터뜨리기는 달감독이후 두산의 불안한 행보에 거울과 같은 단면인듯하다.

그러나 위 반론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임태훈은 데뷔년도인 2007년에 무려 100이닝 가량을 던졌고 2008, 2009년에도 90이닝 가량 등판을 했다. 선발자원이라면 모르겠지만 문제는 임태훈이 계투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09년도 말에 허리통증때문에 퍼지기 시작했고, 2010도 초에 결국 탈이 나 부랴부랴 선발로 전환했다가 그 해 홈런공장장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이야 선수 본인에게 탓을 돌릴 순 있어도, 선수의 컨디션 변화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김경문의 실책이다. 게다가 이재우는 08, 09년 불펜활약 이후에 선발로 전환했다가 시즌 초에 인대가 끊어져 결국 재수술까지 가는 끝에 13년도나 되어서야 롱릴리프 정도로 뛸 수 있었다. 고창성은 아마시절의 혹사때문에 1년을 쉬고 왔음에도 2년을 내리 신나게 굴리다가[14] 아시안게임조차 퍼진 상태로 나가고 결국 현재까지도 비실비실한 상황이다. 이용찬은 몸에 맞지 않는[15] 마무리를 맡겼다가 제대로 된 변화구 하나 없이 작대기 직구에만 의존하는 양아세이브 컬렉터로 만들고 말았다. 11년도에 선발전환을 통해서 12년도 성공의 초석을 닦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변화구 하나 장착 못시켜서 그 부족했던 선발자원을 고작 불안한 마무리로 써왔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10억과 금민철을 내놓고 데려온 이현승은 선발인지 계투인지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안되는 상태로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상무로 가버렸고, 노경은은 온갖 트러블 끝에 김경문 이후에서나 만개한다. 당시에는 김경문의 한계라기 보다는 두산 자원의 한계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했는데,[16] 김진욱 체제에서 선발진이 매우 크게 안정되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김경문이 안좋은 쪽으로 재평가가 일어난 것이다.[17] [18] 김경문의 투수육성과 운영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틀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는게 맞다. 단순히 두산을 나가버린것 때문에 미워하는 감정에서 이 항목이 작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이며 편파적인 생각일 뿐이다. 위에서 서술했듯 NC에서 신생팀 외인선수 혜택이 사라진 이후에도 NC가 좋은 투수진을 갖춘다면 이 항목은 '두산시절에는 한계였으나 NC에서 충분히 극복하면서 감독으로서 발전하였다'라고 충분히 반박될 수 있을 것이다.

5.3. 감의 야구, 작두야구

작전자체에는 소극적인데 걸면 이상한 작전을 걸 때가 많다.거나, 일부 믿는 놈은 못해도 끝까지 밀어주는데 왜 다른 선수는 그렇게도 못 믿는거냐?거나..

대체로 번트보다 강공을 선호하는 감독인데, 기묘한 타이밍에 갑자기 기습 세이프티 번트를 시도한다거나(대체로 실패한다;) 좌타자 상대로 갑자기 옆구리 투수를 기용하는 등 뜬금없는 작전이나 투수교체를 하곤 한다. 베이징 올림픽 때 좌투수인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좌타자인 김현수를 기용하는 장면[19]에서 성공하는 등 등 의외의 기용으로 재미를 보고, 작두타셨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성공했을 경우에는 확실히 신의 한수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패배를 남기는 편. 게다가 큰 승부에서 유난히 믿는 놈만 믿다가(이성열, 고영민 등) 자멸해 버리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팬들은 대체로 이해해주는 편이었으나 2011년 감독의 감의 야구가 거의 매 경기 발동하고 대체로 실패하는 상황이 되자 똘끼로 야구한다며 '똘경문'이란 별명이 떠오르고 있다.

마이크 소시아하고 닮은 점 중에 가장 부각되는 점이 이거다.

5.4. 강공 위주의 선이 굵은 야구

김성근 감독의 스몰볼 야구와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김성근의 스몰볼 야구는 한점 한점 점수를 내고 철벽 마운드로 그 점수를 지키는, 치밀하게 이기는 야구라면 김경문 감독의 야구는 그와는 정 반대로 한방 한방 크게 점수를 내는 야구이다. 중장거리 타자(팀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한 김현수, 최준석, 이성열, 고영민이나 열심히 키우려 한 양의지, 김재환 등은 모두 중장거리 타자들이다)를 다수 보유한 것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득점권에서 번트를 적극적으로 대는 것 보다는 강공 위주로 점수를 내는 것을 선호한다. 선수들의 타격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구사할 수 없는 공격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그날 그날 타자들의 타격감에 따라 그 경기의 득점이 좌우되곤 한다. 이는 김경문 감독이 돌경문이라고 까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믿고 내보낸 선수가 득점권 기회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

6. 기타

6.1. 제2의 국민감독 후보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예선 7전 전승 포함 도합 9전 전승으로 팀을 금메달로 이끌었으며, 예선 및 준결승에서 대타 성공률이 50%를 기록하면서 작두 탄 김경문(기사보기)이 되었다. 이 때부터는 김인식 감독에 이은 국민 감독의 재목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일단 한국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경력이 없는 것이 아쉽다.

6.2. 호구 오능가?

콩경문, 돌경문이라 불리는 이유는 좋은 페넌트레이스 성적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에서 2006년 이래 계속 물을 먹은 것을 빗대어 부르는 것이다. (콩라인참조) 2007년부터 3년여간 포스트 시즌에서 만난 SK팬들+대부분의 야갤러에게는 우리편이라는 의미로 솩경문이라고도 불린다.애향심이 지극하다 오죽하면 SK에는 레전드가 없다고 까대는 야갤러들 마저도, 김경문이 SK 유니폼을 입은 합성사진을 올리면 모두 얄짤없이 솩전드라고 인정할 정도... 2010년 포스트시즌에는 파생별명으로 호구로 불린다. 두산이 포스트시즌에서 이길 때마다 두산을 기다리는(?) SK 김성근 감독의 입장에서 호구 오능가?라는 유행어가 야갤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을 오가는 혈전끝에 결국 호구는 오지 못했다... 그리고 야갤러들의 걱정대로 2010년 한국시리즈망했다. 아아 호구 왜 가능가...

2004년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 2005, 2007년, 2008년 3년간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탈락(2005년 4연패, 2007년 2승 후 4연패, 2008년 1승 후 4연패). 이후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2승 후 3연패하여 탈락. 스윕 아니면 리버스 스윕로 탈락하는 엄청난 징크스가 있다(...).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팬들의 지적도 있으나, 워낙 지지층이 두터워서 게시판 등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 대체로 실드치는 글들이 따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10년에는 스윕 징크스는 깼다.

2010년에는 페넌트레이스 초반에는 1위를 노리며 오버페이스했으나 몇년간 굴리던 불펜의 노예들이 대부분 뻗어버리면서 좌절... 그래도 일찌감치 3위를 확보하는데는 성공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무관의 한은 풀었지만,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1사 만루 역전패 위기에 처했을때는 난 영원히 우승은 못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라고 하니 뭐라 위로해야할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한국프로야구 원년 OB의 우승시 주전포수였다. 그리고 사실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해서 그렇지 절대 콩라인은 아니다;

1982년 원년 OB베어스 우승 당시 주전 포수 - 선수시절 우승
2001년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당시 코치 - 코치시절 우승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감독으로 금메달! - 감독으로 국제대회 우승

한국시리즈만 우승하면 오히려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이다.(농구로 보면 유도훈같은 감독이다.. 선수 코치시절에는 우승했으나 감독으로 우승은 한번도 없는게..) 근데 그게 엄청 힘들어

2011 시즌 중 두 감독이 모두 소속팀을 떠나면서 이런 관계가 끝나는가 했으나 김경문 감독이 NC 다이노스 감독으로, 김성근 감독이 고양 원더스 감독으로 가게 되면서 또 다시 2군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정확히는 NC 다이노스는 2군 남부리그 소속이며 고양 원더스는 독립구단이기에 소속 리그가 다르지만 고양 원더스에 대한 지원책으로 2군 팀들과 번외 경기가 편성된다.

그래도 2군에서는 전반적으로 선수층이 NC쪽이 그나마 낫기에 호구라는 호칭을 벗을지도 모른다. 물론, 2군에서 마저 밀리면 그때는 정말 호구 인증일듯.호구 2군 왔능가 NC에서 뽑은 선수들은 그래도 프로에 지명 받거나 타 구단에서 1군에서 조금이라도 뛰었던 선수들이고 원더스 소속 선수들은 대체로 미지명 혹은 방출 선수라는걸 고려하면 아무래도 전력 자체는 NC쪽이 더 높은 편.
2012년 6월 15일~17일동안 NC 다이노스와 고양 원더스의 3연전을 했다. 경기 결과는 2승 1패로 다행히 김경문 감독은 호구 인증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전력자체가 NC가 높으니 이런 결과가 나와야 정상

하지만 2014년 준플레이오프로 인해 그 이미지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삽질하던 박민우아가리박, 이종욱의 기용, 1차전 이재학 선발카드, 4차전 잘치던 권희동 대신 박민우 대타카드, 7회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잡고 쳐맞고 있는 원종현, 이민호를 내리지 않는 점 등 이해가 안가는 기용과 함께 경험 부족으로 1승 3패로 패퇴하면서 가을야구 호구설?이 다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는 상대가 산전수전 다 겪은 김성근감독이었지만, 이번 상대였던 양상문 감독의 경우는 감독 커리어 첫 포스트 시즌이었다(...). 그나마도 각축 끝에 진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털리고 탈락한 것이어서 타팀팬들은 물론이고 NC팬들 사이에서도 이쯤되면 진짜 문제있는 거 아니냐는 불만도 나올 정도였다.

6.3.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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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SK와 두산의 라이벌 구도 속에 두 감독간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 OB 시절 조범현과 주전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이 충암고등학교 시절 사제관계였던 조범현을 중용하느라 출장기회가 적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여러가지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계형철 등은 조범현을 선호하고, 박철순은 김경문을 선호했다고. 어쨌든 두 포수는 번갈아 기용되었고, 김경문이 더 많이 출장했다.

  • 2007년 이대수-나주환 트레이드 당시 김성근이 이대수의 상대카드를 여러번 바꾸는 과정에서 김경문이 언론에 직접적으로 이를 비판했다.

  • 2007년 김성근이 리오스의 투구폼이 보크라며 "심판을 속이고 있다. 악질적이다."고 지적하는 등 문제삼자 김경문이 언론에 직접적으로 "한국 프로야구를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 "저렇게까지 해서 우승하고 싶나"등으로 반박. 그러나, 2008년 리오스는 일본프로야구에 가자마자 4월에 보크판정을 무더기로 받았으며 심지어 약물복용으로 제명되기까지 했다. 오오 야신의 눈썰미

  • 2007년 한화와 2위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SK가 만만한 한화를 밀어줄 수 있다"고 언론에 발언. 이에 대해 김성근감독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당시 한화의 김인식감독이 "젊은 감독이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며 크게 발끈하기도.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위한 선수 차출 후 김성근 감독이 "선수관리를 엉망으로 했다. 애들 몸상태가 안좋다."는 코멘트를 남기자 김경문 감독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올림픽 본선에서 SK선수는 안뽑겠다."고 응수하기도.

  •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하여 SK에게 패하고,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SK와 다시 붙었으나 또 졌다. 김성근 감독과 감독 대결로 3연패. 2009 플레이오프 후 5차전에서 일찌감치 크게 지자 두산 투수들이 SK선수들에게 수차례 빈볼을 던지는 일이 있었는데, 경기가 끝난 후 SK덕아웃으로 직접 찾아가 김성근 감독의 품에 썩소를 지으며 안기기도. 김경문 감독은 이 날 인터뷰에서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놨으니 찾아가서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는 묘한 인터뷰를 남겼다.관련 기사

  • 2000년대 후반부터 김성근 감독과의 라이벌 관계가 이어지고, 위에서 나왔듯이, 서로를 디스하는 일이 여러번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 2010년 김동재 KIA 수비코치를 돕기 위한 일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과의 자선시합에서 김성근 감독과 배터리를 이뤄 공을 받아줄 정도였으니... 인터뷰 등에서도 서로 좋은 말을 해주는 편.

  •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가 다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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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불펜혹사로 인해 마운드를 황폐화 시킨 큰 약점과 안경현, 홍성흔을 2008 시즌 끝나고 내친것 등으로 인해서 어느정도 반대의견도 있다.
  • [2] 과거 젊었던 선수시절에 영화배우 손창민씨의 청년시절의 외모를 보면 매우 비슷하게 닮았던터라, 예나 지금이나 손창민과 형동생처럼 지낼정도로 친분이 매우 깊다. 게다가 손창민씨도 달감독님 왕팬이시다. 지금쯤이면 두산에서 NC로 갈아타고도 남았다.
  • [3] 야구친구의 2014년 3월 6일자 상식과는 조금 다른 야구 이야기 코너에 의하면 김경문이 500경기 이상 출전했던 은퇴 선수들 중 타율이 가장 낮은 '역대 최악의 타자 10위'라고 한다.
  • [4] 참고로 역대 최악의 타자 2위가 바로 조범현(0.201), 1위는 지금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시즌 때마다 팬들이 건강을 걱정하는 그 분(0.195).
  • [5] 역시 이 경쟁 속에서 이광환 감독이 사퇴한 LG의 선택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6] 롯데 자이언츠 - 두산 베어스를 거친 투수 출신 프런트. 2000년 5월 김영수를 상대로 두산 베어스트레이드된 후에는 두산에서 2002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프런트로 몸담았으며, 현재는 NC 다이노스의 1군 매니저다. 두산에 사직서를 낸 이후에는 "문 카페"의 운영을 잠시 맡았다고 한다.
  • [7] 이 시즌에 다른 KBO 리그 감독과는 달리 연도별 개별 항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 [8] 요새는 이 표현은 화수분 야구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문차일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9] 그나마 홍상삼이 싹을 좀 틔울 듯 했지만 2010년에는 혹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다. 그리고 김진욱 감독 취임 후 불펜에서 포텐이 터지며 불펜 체질임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김진욱을 정말 스승처럼 따르고 있는 노경은만 보면 답이 나온다.
  • [10] 물론 투수혹사, 특히 불펜진의 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운 감독은 KBO에 거의 없다. 선수층, 특히 불펜 투수층이 얇은 대한민국 야구의 특성상 깨기 어려운 악순환 구도라고 할 수 있다.
  • [11] 정반대 용어(?)로, 선발 야구를 하던 조범현 감독 시절 KIA에서는 8이닝 이상(!) 2실점 이하(!!)를 기록하면 갸리티 스타트라고 칭하는 일이 있었다. 사실 굳이 선발이 강해서뿐 아니라, 득점력이 처참한 김기아 타선 때문에 퀄리티 스타트로는 승리를 못 따는 일이 많아서 붙은 이유도 있다
  • [12] 2013 시즌 6월 24일 기준 역전패만 19번으로 리그 최다.
  • [13] 김성근만 봐도 전병두, 윤길현등이 있고, 선동열은 권오준,권혁 등을 족치던걸로 악명높았다.
  • [14] 심지어 10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준플레이오프 5경기, 플레이오프 5경기 전경기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 [15] 본인은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 [16] 사실 뛰어난 야수 육성능력에 묻혔다고 보는게 맞다
  • [17] 물론 김진욱은 이후에 불펜 육성 실패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만, 이때는 김경문이 물려주고 간 투수자산이 대부분 박살난 상태였다
  • [18] 또 투수가 흔들릴 때, 그냥 가운데로 우겨넣으라는식의 코칭은 두산 투수들의 멘탈에 은연중 악영향을 끼쳤음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그것때문에 윤석환이 상당히 저평가 받았으며, 삼성시절 무능하다는 평을 받았던 조계현이 오히려 정 반대의 코칭을 하면서 이런현상을 막기도했다. 다만 3~5선발을 말아먹어서 이쪽은 이쪽대로 까였지만... 자세한건 조계현 항목 참조
  • [19] 그 시즌 김현수는 좌투수 상대타율이 우투수 상대타율보다 높았다. 그래서 좌투수를 상대로 대타로 낸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작전이었다. 높이 평가할 부분은 만약 그 기용이 실패했을 경우 좌투수 상대로 좌타자를 내는 바보같은 기용을 했다며 비난을 퍼부었을 참새들의 입방아를 겁내지 않은 용기. 그런데 김현수는 그 다음해부터 장거리 타자의 스윙으로 타격을 개조하면서 좌투수 상대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즉 장타를 치기 위해 히팅포인트를 앞에 두면서 좌투수의 바깥쪽 변화구에 약해지게 된 것이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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