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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last modified: 2015-04-15 14:19:49 by Contributors


김광현식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SK 와이번스 No.29
김광현(金廣鉉)
생년월일 1988년 7월 22일
체격 188cm, 88kg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학력 안산덕성초-안산중앙중-안산공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7년 1차 지명
소속팀 SK 와이번스(2007~ )

2008년 한국프로야구 MVP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 김광현(SK 와이번스) 김상현(KIA 타이거즈)

2008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 김광현(SK 와이번스) 아킬리노 로페즈(KIA 타이거즈)

2014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상
조성환(롯데 자이언츠) 김광현(SK 와이번스) 2015년 수상자



2000년대 후반 SK 왕조의 탄생을 상징하는 좌완 에이스
류현진과 쌍벽을 이루는 대한민국 야구의 좌완 트로이카

목차

1. 소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3. 프로 선수 시절
3.1. 2007 시즌
3.2. 2008 시즌
3.3. 2008 베이징 올림픽
3.4. 2009 WBC
3.5. 2009 시즌
3.6. 2010 시즌, 커리어하이
3.7. 2011 시즌
3.8. 2012 시즌
3.9. 2013 시즌
3.10. 2014 시즌
3.10.1. 메이저리그 포스팅
3.11. 2015 시즌
4. 플레이 스타일
4.1. 투구 스타일
4.2. 강력한 투 피치
4.3. 위기관리능력
4.4. 내구성
4.5. 떨어지는 안정감
5. 라이벌들?
6. 기타
7.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SK 와이번스 소속의 야구선수. SK 팬들의 조건 없는 열렬한 사랑을 받는 선수.[1]

어렸을 때는 LG 트윈스의 팬으로서 이상훈을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로 꼽았다고 한다. 인터뷰 중 LG 트윈스를 친정팀이라고 하거나 응원가를 따라부는 것 등으로 SK 팬들에게 욕 좀 먹었다. 그 때문인지 극도의 부진에 빠진 2011년 이후로도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김광현의 영입을 바라는 팬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2] 다만 김광현이 등번호 47번을 달라고 하면 줘야하냐 말아야하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3]

한국축구의 영건이자 SNS로 이미지를 말아먹은 기성용과 닮은 꼴로 유명하다. 기성용의 빠른 생일로 보면 동갑 취급해도 될 정도, 서로가 닮은 꼴임을 잘 알며 의식하는 듯하다. 상대 종목이 인기를 끌때 팬들에게 오해 받는 일도 빈번하다고, 닮은 꼴에 대한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각 종목을 대표하는 영건임에도 만나본 적은 없는 모양. [4]

여담으로 애프터 스쿨유이와의 소개팅을 차버렸다는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유이가 애프터 스쿨 멤버가 되기 전의 일이긴 한데….

그런데 김광현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는것이 당시 김광현에게는 이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지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즉,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소개팅을 신청한 것 부터가 미스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야구인임을 생각해볼 때 유이의 언행은 상당히 의외다. 현역선수와 루머에 엮이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는 없을텐데….[5]

인기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 윤시윤과 닮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기사로 떴다. 이미 김광현의 여자친구도 인정했으며 SK 선수들도 "탁구야" 하고 부르기도 하며, 이에 한술 더떠 김광현은 "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라운드에서 식빵을 굽는 제빵왕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럼 지붕뚫고 하이킥 할 때였다면 준혁학생대신 광현학생으로 불릴지도…. 김광현은 어느 인터뷰에서 여자친구가 유인나를 닮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지붕뚫고 하이킥 본격 시즌 2?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중앙중학교 시절 숙소생활을 했는데, 숙소생활이 싫어서 다른 명문고에서 입학제의를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안산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서태웅? 그런데 거기서도 숙소생활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왜갔니

안산공업고등학교 김광현의 모습 이 영상은 2006년 4월 21일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경동고를 상대로 탈삼진 19개를 잡는 장면이다. 참고로 동영상의 커브처럼 보이는 구종은 사실 슬라이더라고...하지만 9회까지 득점지원을 1점도 못받는...

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팀의 에이스이자 기둥이었다. 당시 고교야구 팬들은 김광현의 무지막지한 활약으로 안산공고를 광현공고라고 칭했을 정도였다. 사실 안산공업고등학교는 프로선수를 김광현 포함 5명밖에 배출하지 못한 학교이다. 그나마도 김광현 다음의 성적을 올린 선수가 한화 투수 정재원과 삼성에서 나름 괜찮은 활약을 하고 있는 출신 이우선. 의외로 삼성에 안산공고 출신 선수가 많다. 2012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박찬도도 안산공고 출신. [6] 김광현이 졸업하자마자 안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망했다. 예선에서 중위권을 차지하면 엄청나게 잘한거다. 맨날 지는 안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이 경기할 때 가서 경기를 봐야지만 점수를 주는 희한한 체육 수행평가 때문에 호감도가 날이 갈수록 하락중. 지못미.

2005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 큰 호투를 펼쳤으며, 2006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 4승을 거두면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고 MVP로 선정되었다.

이런 김광현에 대한 기대로 SK는 05년 지명에서 야탑고 윤석민을 패스하고 유신고 최정을 지명, 06년 지명에서 동산고 류현진를 패스하고 포수 이재원을 지명하기도 했다류거이. 물론 SK가 1차지명 할 당시야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었으니까 박경완의 은퇴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포수가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결정이었다.[7] 국대급 에이스 3명을 굴릴 기회를 놓쳤으니(...). 하지만 어쨌건 김광현이 있었기에 SK는 맘 편히(?) 이들 에이스를 포기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대 속에서 김광현은 07년 지명에서 계약금 5억원에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게되었다.

3. 프로 선수 시절

3.1. 2007 시즌

07시즌 시작 직전의 미디어데이에서 그 전해 괴물의 성적을 보여준 류현진에 대해서 "스프링 캠프때 열심히 했으니 이길수 있다. 현진이 형은 제가 알기론 단순해서 타자들이 조금만 생각을 가지고 치면 충분히 공략 할수 있다고 본다."라는 발언을 하여서 입광현, 오랄광현등의 별명을 얻었다. 이때 좀 웃기게 하라는 구단의 부탁을 들어서 별 생각 없이 했다고 한다.

07시즌 문학구장 개막전에서 첫투구를 하였으나, 내용은 평범하였다. 이윽고 시즌 중반에 2군에 내려가는 등 기대치에 전혀 못미치는 페이스를 보여주었기에 입광현, 오랄광현이라는 별명은 더욱더 확산되었다.[8]

최종적인 07년 정규시즌 성적은 3승 7패 3.62.

하지만 시즌 최종반에 드라마틱한 반전을 보여주게 된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⅔이닝을 무안타로 막은것을 발판으로 시리즈가 1승 2패로 기울어있던 4차전에 김성근 감독에 의해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되었다. 당시 상대투수는 MVP이자 22승투수인 리오스로, 야구사이트들의 의견은 '사석'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경기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김광현의 공에 두산 타자들이 맥없이 삼진을 당했다. 거기다가 두산 타자들의 배트가 김광현의 공에 계속 부서지기까지 했다. 이낼 해설을 한 이용철 해설위원은 삼진을 잡는 것 보다 배트를 부러트리는게 투수에게 더 기분이 좋을 것이라며 칭찬일색인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삼진을 잡거나 이닝을 마무리하면 활짝 웃는 모습이 두산 팬에게는 얄미움을, SK팬에게는 즐거움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4차전에서 7⅓이닝 9k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막아내어 SK가 한국시리즈 첫우승을 차지하는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스포츠 전문 주간지인 스포츠 2.0에서는 한국시리즈 MVP를 김광현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9]

이런 투구는 코나미컵에서도 이어져서 한국 프로팀이 일본 프로팀을 처음으로 꺾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3.2. 2008 시즌


SK 왕조의 에이스가 되다.

시즌 초반 투구폼 노출로 약간 불안했지만 추후 투구폼 수정으로 2007년 가을의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는 투수 주요 3부분 (평균자책점 - 다승 - 탈삼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노렸으나 평균자책점만 윤석민에게 내준채로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SK의 파이어볼러 좌완 에이스로 떠올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 두번 나가 호투하였다. 구대성의 뒤를 이은 차세대 일본 킬러로 떠올랐다. 거기다 CF도 찍는 등 일반 대중의 인지도도 상당히 높다. 일본전 이후에 이승엽 다음으로 검색어 순위가 높게 나왔다.

당시 일본 분석팀이 김광현의 '쿠세(투수버릇)'을 찾지 못하였다고 했을 정도로, 한국야구계에서 쿠세 찾기의 일인자로 소문난 김성근 감독의 조련을 제대로 받았다. 아마추어 시절의 위력적인 12시에서 6시로 떨어지는 커브는 아직 쿠세가 남아있다는 이유로 봉인시켜놓고 쓰지 않고 있었다.

결국 08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여기서 왼손투수가 받으면 글러브가 왼손잡이로 나올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여서 아쉽다면 내년에는 꼭 왼손잡이용 트로피를 받겠다고 해서 또 다시 오랄광현 소리가 나왔다. 다만 이 경우는 김광현 본인의 쇼맨쉽과 08시즌의 훌륭한 성적이 합쳐져 애칭에 가깝게 오랄신, 오랄갓 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역시 프로선수는 성적으로 말하는가….

3.3. 2008 베이징 올림픽


New 일본 킬러
이런 시즌 최종반의 일련의 활약이 겹쳐져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세계예선에 선발되어 멕시코와 대만을 상대로 선발로 나와 2승을 거두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서 일본 분석가들이 김광현의 쿠세(투수버릇)를 잔뜩 연구했었으나 결국 버릇을 알고 있다고 해서 김광현의 공을 칠수 있는 건 아니였다.

3.4. 2009 WBC

제2회 WBC를 목전에 두고, 쿠세가 남아 있어 봉인했던 12 to 6 커브를 해제함과 동시에 스플리터를 장착했다고 설레발을 떨었지만, 정작 일본전에서 2회에 스리런 홈런과 밀어내기 포볼 포함 8점을 얻어맞고 강판당했다.그리고 한국 대표팀은 일본에 콜드패하게 되고 야갤은 대폭발(…), 김광현은 우는 듯한 짤방과 함께 김콜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패인으로는 한국 프로야구 개막 시즌에 맞추어 페이스를 올리다보니 WBC까진 맞추지 못했다고 그로 인해 슬라이더의 각이 많이 무뎌졌고 일본은 이것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정상 컨디션의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베이징 때와 같이 뻔히 알고도 못친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 실제로 프로야구 개막 후로 후반기 김현수의 타구에 시즌아웃이 되기 전까지 김광현을 위협 할 만한 적수는 없었고 김광현을 폄하하는 것은 곧 한국야구 수준을 폄하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일본과의 2차전에서 봉중근을 시작으로 임창용으로 이어진 투수진이 1점도 안내주고 1:0으로 한국이 영봉승하자 더더욱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이후 2R 멕시코 전과 일본 전에서 중간계투조로 투입, 나름대로의 재미를 봤다. 선수 보호라는 측면에선 바람직한 일이긴 한데…. 이번 WBC 2회대회가 워낙 허를 찔리는 일이 많은 듯 하다.

조의 1, 2위를 정하기 위한 한일전에서 구원투수로 나와 또 한번 대량실점을 해버려서 일본 킬러에서 일본 힐러로 변신했다.

3.5. 2009 시즌


각성한 김광현, 그러나 불의의 부상

2009 시즌 WBC의 후유증으로 한화와의 개막시리즈에서는 선발로도 나서지 못했지만 다음 기아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선발 출장하여 7이닝 3실점 2자책으로 QS를 기록하는데 이후 09시즌 내내 이닝이터의 면모를 과시한다. 경기가 계속되면서 슬슬 예전의 기량을 다시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더욱 성장한 아니 전반기를 지배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득점지원을 받지못해 QS를 만들고도 승리를 따지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6월 25일, 7번타자 정대현을 대신해 대타 김광현이 출전하였다(그리고 덤으로 투수 최정). 그 결과는 12회초 2사 상황에서 나와서 풀카운트 접전 끝에 멋지게(?) 삼진아웃 당해주셨다. 이 때문에 수많은 팀들의 빠(특히 한화)들은 '우리팀 타자는 SK 투수보다 선구안이 구리단 말인가'라며 좌절. 게다가 최정이 폭투 끝에 패전투수... 625 대첩성립.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타석이 첫 타석이 아니었다. 사실 2007년에도 대타로 나와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낸 적이 있었다. 이 자료를 보면 그의 타격실력을 알 수 있다.김광현이 사순이를 보내버린 사건

투표수 50만 6213표로 올스타전 투수로 뽑혔다. 구단 창단 이래로 첫번재 투수 올스타(이전 올스타는 2006년 이진영김재현)로 2007년 김성근감독이 부임한 이후로 최초이다. 전국 야구팬들에게 에이스로 인정받은 것일 수도 있으나, 동부리그의 후보들이 좀 빈약했다. 동부리그 후보로는 김선우, 조정훈, 오승환등인데, 이에 비해 서부리그의 후보들은 봉중근, 윤석민, 류현진, 이현승 등으로 쟁쟁한 투수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결국은 윤석민이 뽑힘으로써 올스타전 선발로 윤석민과 맞대결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전체 1위의 올스타 투수는 김광현이었던 것이 그는 동서부리그를 모두 합한 결과에서도 윤석민보다 높은 득표로 투수후보 총 8명중 1위였다. 올스타전에서 패전투수가 됐지만 정작 상금은 승리투수인 윤석민보다 많이 받았다.

그리고 8월 2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3회말에 김현수의 직선타에 맞아서 시즌 아웃되었다. 두산과 SK의 악연이 또 생긴 셈.. 또 이 경기에서 해설을 하던 허구연위원은 공에 맞아서 실려 나가던 김광현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올해는 국제대회가 없어서 괜찮다는 둥 김현수의 정신적 충격이 걱정된다는 등의 미친 개소리말을 해서 질타를 받았다. 게다가 당시 제일 먼저 12승을 찍었던 김광현의 페이스였으면 2008 시즌 아쉽게 놓쳤던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노려볼 수 있었고 2년 연속 투수 골든글러브, MVP 수상도 유력했으나 모두 부상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공동 다승왕들의 승수가 14승으로 아웃됐을 때 12승이었던 김광현이 풀타임 소화만 가능했더라면 겨우 2~3승 추가쯤이야. 게다가 2009년의 김광현은 정말 대단했기에 더욱 아쉽다. 2009년은 극심한 타고투저였던 해로 류현진, 윤석민을 비롯한 많은 정상급 투수들도 조기강판 당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투수들의 수난시대였지만, 김광현은 김성근 감독의 착각으로 인한 조기강판[10],8월 2일의 부상으로 인한 조기강판외에는 5이닝이전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 두 번 외에 가장 적게소화했던 이닝은 5이닝 1실점. 또한 방어율 역시 많은 투수들이 3,4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해에 독보적으로 2.57의 방어율을 찍으며 1위를 달리고 있었다.[11]

또한 QS도 리그에서 가장 많이 찍었고 이닝소화율도 당시 거의 4일 로테이션을 돌았음에도 뛰어나 전반기에만 규정이닝을 넘는 1위였다. 특히 타이틀이 걸려있는 다승,승률,평균자책점 모두 1위였고, 그해는 SK 팬들이라면 절대 잊지못할 KS를 치룬 해였다. 이런 상황에서 풀 시즌만 소화해줬다면 커리어 하이로 평가되는 2010 시즌을 능가하는 기록도 기대해 볼 수 있었던데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시리즈 향방을 가를 수도 있었기에 아직까지 많은 SK팬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시즌이다. 김현수... 부들부들

정규시즌이 끝난 후 KIA 선수들은 아마 잘 모를거에요. 1위하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1위로 한국시리즈 가면 더 부담스러워요라는 발언으로 과연 오랄광현이라는 반응을 들었다. 젊은 선수다운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지만 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 멤버들과 팬들에게는 썩 기분 좋은 발언은 아닌 듯… 싶었으나 나중에 전체 동영상에서는 KIA의 젊은 선수들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의 낚시질로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김광현의 오랄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KIA가 김광현한테 패전을 안긴 적은 이때까지도 없었지 아마

또한 재활 도중 팔꿈치에 무리가 가서 2010시즌 초반출장 역시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3.6. 2010 시즌, 커리어하이

김광현/2010년 항목으로.

평균자책점 2.37과 17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최대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으나 같은 시즌 한화의 어느 1점대 선발투수때문에 다승왕을 수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3.7. 2011 시즌

김광현/2011년 항목으로.


3.8. 2012 시즌

김광현/2012년 항목으로.


3.9. 2013 시즌

김광현/2013년 항목으로.


3.10. 2014 시즌

김광현/2014년 항목으로.

이번 시즌 내내 SK의 거의 유일한 에이스로 활약하며 준수한 시즌을 보냈다. 13승을 거두며 2010년 이후 개인 최다승을 거두었고 방어율은 토종투수들 중에서 1위, 전체 투수들 중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올 시즌 김광현이 소화해낸 173.2이닝은 데뷔 이후 두 번째로 많이 소화해낸 이닝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포스팅 조건을 충족하였다.

3.10.1. 메이저리그 포스팅

11월 1일 SK가 포스팅을 신청했으며, 12일에 발표된 바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200만달러(당시 22억)으로 응찰했다고 한다.

기대한 것보다 많이 낮은 금액이었지만 김광현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SK가 이를 수용했고, 에이전트를 통해 한 달간 협상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결국 계약에 실패하면서 메이저리그 행이 좌절되었다. 존 헤이먼의 트윗에 따르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제시한 조건은 2년 200만 달러 + 팀옵션 2년이라고 한다. 2년도 2+1도 아니고 2+2는 헐값에 4년을 확보하겠다는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라서 여기에 응했으면 호구라는 것이 야구팬들의 중평. 구단옵션 +2년이면 SD 측에서 애초에 계약의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에도 계약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댓글 참조
이로써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기자회견은 SK 입장에서나 김광현 입장에서나 희대의 흑역사가 되어 버렸다.


3.11. 2015 시즌

김광현/2015년 항목으로


4. 플레이 스타일


4.1. 투구 스타일

극단적인 오버핸드 폼을 가진 좌완투수. 장신(188cm)에서 내리꽂는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를 주로 사용하며, 그 외에 체인지업 투심 패스트볼, 스플리터 등의 구종이 있지만 잘 쓰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MVP를 차지한 2008년을 비롯해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는 투 피치 투수이지만 2014년 들어서 커브의 비중이 다소 증가했다. 포심 패스트볼은 최고 구속 150km/h 이상, 평균 구속 140km/h 초 중반대로 형성되며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120km/h 중반 ~ 140km/h 초반에서 형성된다. 12-to-6 커브도 상당히 위력적이지만 쿠세가 보인다는 이유로 봉인했다고 하는데 본인 말론 살살 던지면 커브처럼 각이 커지고 강하게 던지면 슬라이더가 되는 즉 커브 = 슬라이더랜다.(슬라이더와 커브의 그립이 같아 커브구사도가 높아지면 슬라이더의 위력이 떨어질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체인지업은 투구폼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집중 연마중이다. 또한 김상진 투수 코치,외국인 팀 동료이자 포크볼 전문가인 카도쿠라 켄에게 포크볼을 추천받아 배우기도 했지만 실전에 사용할 위력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한때 비견되던 류현진에 비하면 구종이 단순한 편.

4.2. 강력한 투 피치

본인 특유의 극단적인 오버핸드 폼과, 188cm의 장신에서 내리꽂는 최고 150km/h 초반의 패스트볼은 매우 강력하다. 사실 신인 때와 비교하면 릴리스 포인트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팔동작만 보고 릴리스포인트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생각보다 공을 낮은 위치에서 뿌린다. 사실 SK에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시기까지는 릴리스 포인트가 높긴 했다. 허나 이후에 투구폼 교정을 받으면서 릴리스 포인트가 낮아진 것. 또한 그의 주력 변화구인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역시 매우 강력한데, 높은 타점에서 내려찍는 투구폼과 시너지를 이루어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해낸다. 투구를 보다보면 바닥에 박힐 정도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타자들이 포크볼마냥 헛스윙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떨공삼
이러한 타자를 압도하는 위력적인 구위가 장점으로 몸쪽-바깥쪽을 나누는 제구력보다는 압도적인 공의 위력과 존의 높낮이를 이용해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를 한다.

4.3. 위기관리능력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멘탈이 불안정해 위기관리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그렇지 않다. 당장 이번 2014 시즌만 하더라도 만루 위기에서 본인 스스로 해쳐나온 경기가 많다. 특히 넥센 클린업을 상대로 박병호, 강정호를 삼진으로 잡는 등 무사 만루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보면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부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사실 김광현의 이닝당 출루 허용율(WHIP)는 그렇게 특출나게 좋지는 않다. 이유는 후술할 고질적인 제구 불안이 가장 큰데, 그 탓에 주자를 자주 내보낸다. 그럼에도 김광현의 ERA가 낮은 이유는 뛰어난 위기관리에서 비롯된 높은 잔루율 때문이다. 그가 가장 큰 활약을 했던 2008년~2010년 역시 류현진 등의 타 에이스에 비해 출루 빈도가 조금 높았는데, 80%에 달하는 압도적인 잔루율로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당시 SK 왕조의 수비력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 본격적인 부활 시즌인 2014년 역시 그의 잔루율은 75% 정도로 매우 높다. 2014년 SK 와이번스1경기 최다 실책 기록을 갈아치운 내야 수비진의 불안 속에서 나온 성적이란 것을 감안하면 더욱 더 의미가 있다. 또한 그의 득점권 OPS 기록을 보면 기존 성적보다 더 좋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지표들을 보았을 때, 좋을 때의 김광현의 위기관리는 아주 좋다.



4.4. 내구성


데뷔 후 8시즌동안 풀타임 선발로 버틴 게 단 4시즌 뿐이다. 불의의 부상으로 이탈한 2009년을 감안한다 해도 데뷔햇수 차이가 고작 1년에 불과한 류현진과 비교했을 때 2012년 기준 통산성적에서 500이닝 이상 격차가 난다. 경기당 평균 이닝 역시 류현진에 비하면 대략 1이닝 정도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애초에 류현진이 괴물인거다 또한 2011년부터 2013년 까지 3년을 어깨 부상에 시달렸다. 이런 사실은 김광현의 내구성을 낮게 평가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시절 SK는 선발보다 불펜진의 활약이 돋보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까지 생각해야하는 팀이었다[12]. 따라서 김광현은 순위 싸움을 위해 나올때마다 '필승'을 '반드시' 해야 했으므로, 한 번에 8~9이닝을 던지고 5~6일 로테이션을 도는 것보다는 6~7이닝을 던지고 철벽 불펜에게 넘긴후 4~5일 로테이션을 지키며 보다 많은 승리를 팀에게 안겨줘야 했다. 이로인해 이닝 수와 경기당 평균 이닝이 적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2009시즌의 경우 부상당하기 전까지 거의 4일 로테이션를 돌면서도 많은 이닝[13]을 소화해 무려 전반기에만 정규이닝을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다 어깨부상이 없는 2010년 이전과 2014년을 보면 조기강판 횟수도 적다. 특히 2009년에는 김성근 감독의 실수로 비롯된 조기강판[14]과 시즌아웃을 당한 손등 부상을 제외하면 부진해서 조기강판된 적도 없다. 본격 부활 시즌이였던, 2014년에는 4월 23일 NC전 4이닝 4실점(2자책) 단 1회 뿐이다.

2010 시즌 역시 카도쿠라 켄과 함께 단 둘 뿐인 믿을 만한 선발투수로 그해 거의 모든 경기를 4일 로테이션으로 치뤄냄으로써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출장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10시즌 최다이닝 투수가 되었다. 아무리 리그가 다르다곤 하지만 류현진이 메이저에서 4일 로테이션으로 고생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또한 류현진 역시 한국에서는 대부분 5,6일 휴식을 보장받았다[15]. 200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2년간 4일 로테이션을 꾸준히 소화하면서 이만한 성적을 내려면 상당한 내구성이 있지 않고는 힘들다. 그 후유증으로 2011시즌부터 부상으로 여러차례 2군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따라서 몸이 건강하다면 내구성부분도 문제없다고 보며, 2014년 이상 없이 완벽히 부활함으로써 다시금 내구성을 회복하였다.


4.5. 떨어지는 안정감

단점이라면 피칭의 안정감이 에이스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떨어진다는 것. 지금은 SK뿐만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이지만 의외로 마운드에서는 주변 환경이나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특히 그 때 그 때의 감정이 얼굴에 곧바로 드러나는 스타일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시 얼굴만 보고서도 심리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커맨드가 영 좋지 않아서 볼넷이 확실히 많은 편이다. 2012년 6월 10일까지 통산 655⅓이닝 294볼넷. 류현진의 통산 1161⅓이닝 357볼넷이야 저쪽이 괴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비슷한 파워피쳐인 배영수의 경우에도 1450⅓이닝 531볼넷으로 부진했던 09시즌의 성적을 감안하더라도 김광현보다는 볼넷이 더 적다. 향후 김광현의 성장 및 해외 진출에 있어서 영점조절은 그의 가장 큰 숙제다. 특히 이로 인해서 FIP가 영 좋지가 않다. 실제로 김광현의 본격적인 리그 폭격시즌이던 08~10시즌은 김성근의 지옥훈련으로 SK 야수진의 수비력이 정점을 찍던 시절이기도 하다.


(위 스샷은 2010시즌 중반에 나온 스샷이라, 09시즌 까지만 참고하는게 좋다)

심지어 본격적인 부활시즌으로 평가받는 2014년도 FIP는 영 좋지 못해서 4.3 부근을 달리고 있다. 반면에 ERA는 2점대를 기록중이다. 전 시즌과는 FIP가 거의 동일하나, ERA만을 낮게 유지중이다. 이로 인해 그의 부활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고, FIP로 보면 소위 전성기 시절이나 암흑기 때나 큰 격차가 없어서 안타깝게도 전성기 자체에 회의를 가진 시선도 존재한다. 물론 김광현이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중 한명인 것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동의하는 바이며, FIP로는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투수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FIP에 반대하는 입장의 목소리가 시대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 무턱대고 김광현을 통계적 예외선수로 취급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이런 성적이 해외 진출시 불이익이 될 가능성이 높음은 무시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참고로 거액의 포스팅비를 받았던 2012년의 류현진은 FIP이 압도적인 1위였다. 그러니까 볼질좀 하지말라고

또한 롤러코스터급은 아니더라도 한 경기 내에서 투구내용의 기복이 있다. [16] 이 부분이 류현진에 비해 낮게 평가받는 원인.

5. 라이벌들?

가장 먼저 라이벌로서 많이 언급되는 건 단연 류현진. 김광현이 첫 프로 데뷔 때 류현진에 대해 디스 아닌 디스 발언을 하면서 시작된 비교는 류현진의 데뷔 때 엄청난 포스와 달리 부진하여 2군에 가는 등 오랄 별명을 얻으며 굴욕을 당하다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약쟁이다니엘 리오스와의 선발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팬들이 원하는 영건 에이스로서 모습을 보여주고, 그 뒤 선발진의 중요한 축으로서 활약해주자 팬들이던 언론이던 둘을 라이벌 구도로 본격적으로 엮는다. 특히 둘 다 국내에서 가장 활약한 해라고 평가받는 2010년 시즌이 가장 절정에 달했던 상황.

하지만 2011년에는 류현진은 시즌 말미 부상 후유증에 광저우 아시안 게임 차출로 인한 후유증이 더해지고, 김광현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사실상 시즌아웃이 된 걸 무리하게 복귀시켰던 것이 악화되어 둘 다 2011년은 쉬어가는 시즌 소리를 들었고, 2012년 류현진은 불운한 승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값을 알리는 호투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었지만 김광현은 여전히 부진과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한국시리즈에서 간신히 예전의 모습을 보여줬다.

2013년에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2014년에도 순항을 하는 반면 김광현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제대로 된 재활집중도 하지 못하는 등 여전히 헤메다가 그럭저럭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인천팬들의 원수였던 덕분에 난데없이 불펜으로 전환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4년 시즌 전에도 강제 마무리 전환 이야기가 나오다가 선발로 계속 던지면서 완투도 하고 회복세를 보이기는 하나 2014년 현재로서 이 둘을 라이벌로 엮기는 민망한 상태.

윤석민과는 류현진과 함께 현 한국야구 젊은 에이스 3인방으로 묶일 때 아니고는 잘 엮이지 않는다. 특히 둘 다 커리어하이 시즌 다음 해를 기점으로 2013년까지 영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애초에 2008년을 제외하면 두 선수가 동시에 좋은 활약을 펼친 시즌이 없다. 커리어 하이도 김광현은 2010년, 윤석민은 2011년이다.

2014년에는 양현종을 김광현과 라이벌로 엮으면서 누가 우위다 논쟁이 양쪽 팬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오고갔지만 한때는 류현진과 어떻게든 라이벌 구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던 김광현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엮임이다. 양현종이 KIA 타이거즈 에이스 대우를 받고 있다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추켜세워줄만한 기량은 아니기 때문. 그만큼 김광현의 입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러다보니 류현진과 가장 라이벌 구도가 많았던 선수다. 지금은 둘 사이 간격이 매우 벌어지긴 했지만.

6. 기타

  • 9월 19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해서 은퇴식을 치르는 양준혁과 정면 승부를 했다. 양신의 은퇴식 전의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것이 대선배에 대한 예우라며 삼진 3개를 잡겠다고 했다. 그리고 올 시즌 최고의 투구와 함께 그 약속을 지켰다[17].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언행일치 이라며 찬양받는 중. 양신과의 대결에서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의 힘을 실어 던졌다. 그리고 해설위원으로 돌아온 양준혁은 김광현 선발 경기마다 이 일화를 꺼낸다 그리고 김광현이 데뷔전에서 첫 홈런을 맞은 상대가 양신이었다. 드라마틱한 일. 하지만 구설수를 조심하려는지 패기있을 젊은 나이임에도 인터뷰를 예전처럼 자신감 있는 오랄질발언 보다는 틀에 박힌 교과서적인 대답만 하게 되어서 아쉽다는 팬도 있다.

  • SK 와이번스의 왕조 시절에는 1위팀의 NO.1 에이스로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 듯. 1위팀의 선수이기에 득점지원 0을 9번을 자랑하는 타선과 든든한 불펜의 도움이 있지만 역시 1위팀이기에 역시 모든 경기를 이기려고 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1위팀의 에이스로 자신이 나가면 반드시 승리를 챙겨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 웹툰 만화가 이말년이 김광현의 팬이라고 한다. 이말년은 전북 전주 출신으로 본래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었으나 쌍방울이 해체된 뒤 옛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SK의 팬이 된 것. [18] 류현진에 비해서 김광현은 저평가 되어 있다면서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트위터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하지만 둘의 2011년 이후 행보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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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의 마스코트인 삼순이를 참수하였다. 그것도 그냥 칼이 아닌 음료수통(!)으로...소드 마스터!?#

  • 후로게이 와이번스의 팀칼라답게 또래의 팀 선수들과 훈훈한 장면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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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마성의 남자 김광현

셀셀 잘 웃는 모습 등등 뭔가 모자라 보인다고 해서 모지리라는 별명도 있다. 워낙에 오랄이 강렬한 별명이라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는 않지만.사실 또다른 SK와이번스의 팀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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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바보 문학빡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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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에서 X큰 야구선수로 검색하면 뜨는 선수가 바로 김광현(...)[19]

  • 김광현의 또 다른 별명으로는 베테랑 막내(...)라는 별명이 있다. 지금이야 89년생인 한동민이 나와준 덕분에 전체 막내에서는 탈출했지만 여전히 투수조에서는 막내다(....)[20] 데뷔 7년차인 김광현이 아직도 투수 막내라는 점에서 SK 마운드의 노인정스러움을 알 수 있다(...) 심지어 13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백인식조차 87년생으로 김광현보다 형이니... 이때문인지 대형 신인 투수가 SK에 지명되면 과연 김광현이 이번엔 막내를 탈출할 것인가가 관심사가 될 정도(...). 14시즌에는 투수조에 92년생 박민호, 91년생 김대유가 꾸준히 1군 엔트리에 올라와 투수 막내 역시 벗어났다. 타자 역시 박계현, 조성우 등이 1군 엔트리에 간간히 포함되었다.조성우는 아주 가끔 좌완 상대로 2군에서 올라오는 조커용이고 박계현은 최정의 부상으로 빈 3루를 채우기 위함이었지만...물론 둘 다 활약은 준수했다. 박민호, 김대유 역시 붙박이는 아니지만 꾸준히 1군에서 전천후 역할로 뛰고 있다.김대유 방어율이 10점대인건 비밀

  • 2013년 양준혁 재단이 주최한 자선경기에서 홈스틸에 1루 라인드라이브 수비(!)에 번트안타까지 만들어내면서 해설자들에게까지 극찬을 받았다. 야신이 김광현을 대타로 기용한 건 앞날을 내다본 신의 한수였다

  • NC 다이노스에게 유독 약하다. 등판하면 꼭 패전을 떠안고 내려갔다. 2013년에 선발 2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모두 패전을 떠안았고, 2014년에도 1경기 등판해 패전을 떠안았다.

  •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류현진과 같은 오른손잡이이지만 좌투수이다. 야구를 왼손으로 하는 데 천부적인 재질이 있어서 좌투수가 된 것이라고.

  • 이선희 구대성 등으로 이어져 온 좌완 일본 킬러의 대를 잇는 투수이기도 하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 일본한테 당하긴 했지만 이 것은 김광현의 못던졌다기 보다는 일본이 김광현한테 당하는 것이 두려워 분석을 철저히 한 결과라고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당시 일본 전력분석 자료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김광현의 공은 높게 보고 쳐야 한다. 높으면 직구 확률이 높다. 직구마저 낮게 제구되면... 칠 수 없다." 당시 김광현의 위력과 일본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볼 수 있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SK 와이번스 20 77 3 7 0 0 0.300 3.62 80 5 45 52 35 31 1.571
2008 27 162 16
(1위)
4 0 0 0.800
(2위)
2.39
(2위)
127 9 65 150
(1위)
50 43 1.173
2009 21 138⅓ 12 2 0 0 0.857
(1위)
2.80
(1위)
121 14 57 112 46 43 1.258
2010 31 193⅔
(1위)
17
(1위)
7 0 0 0.708
(5위)
2.37
(2위)
153 13 89 183
(2위)
56 51 1.224
2011 17 74⅓ 4 6 0 0 0.400 4.84 70 6 47 61 45 40 1.547
2012 16 81⅔ 8 5 0 0 0.615 4.30 85 9 38 65 44 39 1.482
2013 25 133 10 9 0 0 0.526 4.47 128 12 72 102 72 66 1.474
2014 28 173⅔ 13
(4위)
9 0 0 0.591 3.42
(2위)
178 10 85 145
(5위)
77 66 1.491
KBO 통산(8시즌) 185 1033⅔ 83 49 0 0 0.629 3.30 942 78 498 870 425 379 1.367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08년 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정규시즌 MVP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2007 0완투 0완봉
2008 1완투 1완봉
(2위)
2009 1완투 0완봉
2010 2완투
(3위)
1완봉
(3위)
2011 1완투 0완봉
2014 1완투 0완봉
통산 6완투 2완봉

  • 타자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2007 SK 와이번스 1 0 .000 0 0 0 0 1 0 0 .000
2009 1 1 .000 0 0 0 0 0 0 0 .000
2010 1 1 .000 0 0 0 0 0 0 0 .000
통산 3 2 .000 0 0 0 0 1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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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0년경까지만 해도 국내 좌완 트로이카의 한 축을 맡았는데 그 이후 시즌부터는 좀 많이 부진해서... 그러나 08, 10년도의 구위를 다시 회복한다면 다시 한번 리그의 에이스가 될지도 모르는 일. 실제로 07, 11년도에 대차게 말아먹었다. 근데 07은 데뷔시즌이고 11은 그 전시즌 직후에 아팠던 것도 있었음을 감안하자. 실제로 데뷔 시즌 후반기에는 상당히 좋은 모습이었고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 [2] 현재 쥐갤에서 매의 눈 노리는 게 최정과 김광현이다. 그런데 김광현은 해외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터라(본인의 희망대로 될지는 나중 문제고) 유일하게 찔러 볼 구석이 최정인데 2014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지만 결국 SK에 잔류했다.
  • [3] 그야 47번은 LG의 야생마인 이상훈의 등번호이기에... 그래도 조윤준 같은 잉여가 다는거 보다는 나을 듯 하다.
  • [4] 이에 대해서는 기성용펄녀와 친해서 몇 번이고 만남이 주선됐었지만 당시 SK의 고참 김재현이호준이 선수단에 펄녀가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이 있다.
  • [5] SK 프런트 관계자가 처음에 주선을 하였는데, 유이의 의사를 일단 김성갑 감독에게 묻고, 이를 김성갑 감독이 딸 유이에게 물어본 것이라고 한다. 유이 본인은 아버지가 허락했다고 생각해서 소개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듯하다. 뭐 데뷔 전이기도 하고 나이도 어릴 때라서 깊이 생각안하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 [6]정재원 선수가 예시로 올라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우선 선수의 성적이 괜찮은 편이다(이우선 170⅔이닝 3승 3패 1세이브 4.43, 정재원 119⅓이닝 1승 7패 6홀드 8.60) 물론 고졸출신으로 치면 정재원의 성적이 김광현 다음인 것이 맞다.
  • [7] 단, 최정의 경우 엄청난 노력을 통해 현역 최고의 3루수라 인정받을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후회할 만한 결정은 절대 아니다. 물론 류거원은 후회막심 그런데 이재원도 류뚱이 미국으로 간 뒤 포텐이 터지고 있다!
  • [8] 근데 2군 내려가기전 광주 기아전에서 선발 김원형이 2이닝을 채 못채우고 강판당하고 김광현이 등판했는데 경기 끝날때까지 던졌다... 이때 경기도 이미 초반에 판가름 난지라 김성근 감독이 거의 김광현 테스트 해볼겸 올렸다고 추후에 밝혔다. 그리고 시즌 종료때까지 한번도 올라오지 않았다
  • [9] 이때 김광현이 밝히기로는 위에 각주에 서술한 기아전이 엄청 도움이 되었다고 이것저것 공을 던지다보니 공던지는 느낌이 오고 그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2군에서도 훈련에 매진했다고한다
  • [10] 한 회의 실수로 두번 마운드에 올라와서 강제로 강판
  • [11] 부상당할 당시 2위가 구톰슨 2.94 3위가 송은범 2.95.
  • [12] 사실 당시 SK의 확실한 선발은 김광현 뿐이었다.
  • [13] 부상 전 평균이닝이 거의 7이닝에 육박했다.
  • [14] 한 이닝에 두번 마운드에 올라오면 투수가 자동으로 강판된다.
  • [15] 물론 대신 평균 이닝이 넘사벽이었지만
  • [16] 대표적으로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 4회까지는 완봉은 물론이고 노히터를 노릴 수 있을정도로 아무도 못 건드릴 수준의 공을 뿌리다가 갑자기 5회에 3실점. 결국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갔다.
  • [17] 최고구속 152km에 양준혁을 상대로 진짜로 3연타석 삼진을 잡았다.참고로 양준혁의 이날 선수시절 마지막 타석은 송은범에게 2루수 앞 땅볼을 치고 1루까지 미친듯이 전력질주하는 눈물없이 볼수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 [18] 실제로 이말년은 마구마구에서도 쌍방울덱 사용중
  • [19] 비슷한 사례로 "대물 야구선수"로 검색하면 조정훈이 뜬다. 모 롯데 팬의 김광현 목격담에 따르면 가운뎃다리가 말의 그것이라고(...) 박희수도 장난이 아니라는 목격담이 있다. 오죽하면 하반신의 중심축이 잘 잡혀서 야구를 잘 하는구나 싶었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 목격담 역시 롯데 팬
  • [20] 여담이지만 한동민 등도 나오지 않았고 김광현이 부상과 재활로 엔트리에서 장기간 빠졌던 11,12 시즌에는 최정이 1군 전체 막내였다!!! 흠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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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14: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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