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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진

last modified: 2015-04-15 19:40:43 by Contributors

인생은 롤러코스터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라.

kimgkjn.jpg
[JPG image (52.52 KB)]
이름 김국진(金國鎭)
출생 1965년 2월 6일, 강원도 인제군
신체 167cm, 60kg, A형
학력 경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가족 3남 중 셋째
데뷔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
종교 가톨릭
소속 라인엔터테인먼트
팬카페

MBC 코미디대상
이경규
(1995)
김국진
(1996)
이경규
(1997)
김국진
(1998)
서경석
(1999)

Contents

1. 개요
2. 감자골 사태
3. 전성기
4. 몰락
5. 재기
6. 이것저것


희극지왕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코미디언[1]
90년대 중후반 한국 연예계 최고 정점에 있었던 남자

1. 개요

대한민국코미디언. 강원도 인제군에서 출생했다. 데뷔는 1991년 KBS 공채 개그맨 7기.[2] 1990년대 중반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일명 '감자골 사태' 이후에는 제명당한 상태.

1990년대 중반~후반 그의 이름을 내건 빵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동기인 김용만과 콤비를 이루어 승승장구하다 사업 실패, 골프 프로테스트 탈락과 배우 이윤성과의 이혼 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2007년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후 슬럼프를 탈출했으며, 그 이후 남자의 자격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도 시작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나이는 1965년생인 김국진이 1972년생인 유재석보다 많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한 유재석과 동기다. 유재석은 당시 대학에 입학한 만 19세에 공채개그맨 시험에 합격해서, 최연소 공채 데뷔 기록에 올랐고,[3] 김국진은 군복무도 마치고 4년제 대학교까지 졸업한 상태에서 합격했기 때문에 나이차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2. 감자골 사태

김국진의 흥행과 몰락은 임팩트 때문인지 이 뒤의 일 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김국진의 전성기와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시기 데뷔한 KBS 개그콘테스트 시대 멤버들은, 잘 알고 있듯 SBS의 코미디언 빼내가기를 통해 빨리 기회를 잡았다. 초기에는 기존의 KBS식 콩트와 맞지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적을 통해 완전히 분위기를 일신한 KBS 희극인실에서 당시 '감자골'이라는 개그팀을 김용만, 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했는데 이것이 성공하면서 KBS의 모든 예능 프로에는 이들이 출연했을 정도로 히트도 쳤고 KBS도 팍팍 밀어줬다. 1992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신인상을 탄 것이 그 증거.

문제는 감자골의 인기로 인한 혹사로 인해 스케줄이 너무 빡셔서 조정을 요구했으나 KBS는 전속계약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김용만이 무리한 스케줄에 탈이 나서 드러눕고 만다. 열받은 김국진이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하고 박수홍이 동참, 나머지 둘도 결국 하차를 하게 된다.

평소 신인 주제에 벼락스타가 된 이들을 아니꼽게 보던 코미디언계 선배들은 스케줄 조정을 요구했지만 안 들어준 건 알 바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갑자기 그만 둔 것은 프로에게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며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 당시 이들을 옹호해 준 사람이 임하룡 한명 뿐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게다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였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미국행 전에 고별인사를 하기로 했는데, 잡았다 요놈 "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였다!" 라면서 방송 3사 코메디언들이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녹화장에 쳐들어와서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텝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이때 김국진을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라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이후에 자신들은 미국으로 갈 것이며 이적이 아니라 단순히 고별 방송일 뿐이다 니들 밥줄 끊을 염려 없으니 놔줘라 라고 설득해서 겨우 고별 방송을 했다.

그런데 미국행 직전에 박수홍은 입영 영장이 나왔고, 김수용은 미국비자가 나오질 않아서(…) 결국 감자골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김용만과 미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이것저것 한 모양. 이현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트 클럽까지 인수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규모는 아니고 쌀국수집 옆 지하의 작은 규모였다라고.

3. 전성기


미국에서 1년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4]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전성기에는 테마게임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주로 출연하며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5], 코미디, MC, CF, 연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 전지현, 송혜교 등 지금 잘 나가는 스타들도 당시엔 김국진의 CF에 덤으로 나올 정도였다. 이때 당시의 인기는 단연 원탑이여서 이병헌H.O.T. 를 기다리게 할 정도였고, 단독 주연의 주말 드라마를 찍을 정도였다.



심지어 국찌니빵이라는 본인의 이름과 본인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넣은 빵이 대 히트를 기록해서 도산위기였던 기업을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허니버터칩도 3개월만에야 매출 50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초대박이 났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6]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상품이 최초로 나온 사례이자 스타 마케팅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사례로 마케팅 전공수업시간에도 언급될 정도라고 한다.[7] 당시 국찐이 빵을 먹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스티커는 국찐이의 세계여행 등 몇가지 테마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빵 종류는 여러가지였는데 가격은 500원으로 동일했고 은근히 양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창렬의 반대사례 핑클빵도 국찌니빵 같은 히트사례가 없었다면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다. 단기적인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전성기가 현재진행중인 대신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그야말로 폭발적,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8] 게다가 코메디 30년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참고로 2위가 조용필.

최전성기 때는 대한민국 방송계, 영화계 통틀어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였고,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 즉 그 당시에는 먼치킨급이였다.[9]여기서 이경규는???


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트렌디 드라마로 흥한 김희선조차 김국진의 인기를 넘지는 못했다. 게임잡지 V챔프에서는 '김국진이 돈 벌려고 마음 제대로 먹고 뛰었다면 지금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대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명랑 히어로에서도 마음만 먹었으면 한 달에 수억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1위 영상)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개그감각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평가 받지만, 도시 서민적인 외모와 왜소한 체격, 약간 어눌하면서도 친근한 말투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 히트의 비결로 추측된다.

연기자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테마게임에서 당시 출연하던 개그맨 중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줬고, 김국진의 꽁트 다수는 상당히 극적이다. 정극과 개그의 경계에 있는 사람. MBC의 주말연속극 "반달곰 내 사랑"에서 주인공인 체육교사 역을 맡았다[* 당시 전성기였던 송윤아가 상대역이자 여주인공인 한정은 역을 맡았다.

성우로도 활약을 잠깐 했는데 쫄망. 바로 에디 머피 주연 영화 닥터 두리틀 개봉당시, 극장판에서 에디 머피를 연기했다. 이 버젼은 비디오판으로도 나왔는데 평이 극악. 미국에서 제법 대박이던 거랑 달리 한국에서 쫄망했고 나중에 MBC에서 더빙 방영할때 에디 머피 전문 성우인 이인성이 열연한 게 더 평이 좋았다...

2000년 MBC 시트콤 <연인들>[10]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이윤성과 결혼했다.

4. 몰락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러 이혼하면서 막대한 위자료를 지불하게 되고 충격을 먹었는지 방송 활동을 그만두게 된다. 그 이후 골프에 빠져 프로골퍼에 도전했지만 프로 등단 시험마다 탈락하면서 역시 막대한 돈을 잃었다.[11]

거기다 사업에도 실패했다고 한다. 주식투자도 했는데 전부 폭락했다고 한다. 방송으로 복귀한 뒤에는 이것을 개그요소로 승화시켰다(…). 특히 2010년 추석특집 개그콘서트에서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패러디한 코너에서 안영미 역을 맡을 때 제대로 써먹었다. 이윤석이 골프를 친다니까…. 분장은 골룸 분장.

또한 워낙에 사람이 좋아서 후배든 친구든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겐 무안할 정도로 퍼다주다가[12]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에게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 김국진에게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거기다 절친했던 인물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김국진은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대인기피증이 와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피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는 은둔생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쯤되면 자살을 안 한 것이 용할 정도. 본인은 이 경험에 대해 "난 빵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유행어가 될 조짐이 있었으나 너무 처절해서 개그로 인식되지 않은 탓인지 금방 잊혀졌다.

인생 망가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옛날에도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는 바람에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5. 재기

이렇게 우울하게 살고있던 김국진이 안쓰러웠던 친구들(특히 김용만)이 다시 방송 복귀를 권유해서 현재는 대인기피증을 극복해 다시 방송에 복귀했고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다. 문제는 고생한 경험을 개그소재로 써먹는데, 이게 너무 처절한지라 현재 그가 하는 개그는 마치 자학하는 듯 한지라, 울어야 하는 건지 웃어야 하는 건지 애매하다. 그래도 익숙해지면 또 블랙개그로서 즐길 만하다. 모 신문기자는 "김국진은 '왕년에' 드립을 거의 써먹지 않는게 재기의 요인 중에 하나" 라고 한 바 있으나, 과거를 떠올리면 좋은 기억만큼이나 슬픈 기억이 많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무릎팍 도사에 강호동과 상담(?)을 마친후에 바로 라디오 스타로 첫 복귀를 할 예정인데, 자기가 들어가야 하는데, 도저히 참다참다 못해서, 본인을 스스로 문을 열더니, 커피 40잔 먹으면서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어쨌든 방송 트렌드를 못 따라오면서 라디오 스타 등에서 라스의 팬들의 맹비난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그 캐릭터를 잡아갔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이제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자의 자격으로 부활에 조짐을 보였고, 종편에서 MC 도 하는 등에 제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한 바람에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남자의 자격, 위기탈출 넘버원[13] 등에도 출연했다.

또한 명랑히어로 비장의 카드로서 등장해서 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요즘은 뭐든지 다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듯. 일종의 보살이 된 듯하다. 이래서 맨날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재혼할 생각이 없는 건지도??

2008 MBC 연예대상에서 김용만과 같이 시상을 하러 나와서 아직 둘의 콤비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가 2008년 중반기 쯔음에 가지고 나온 나이를 잊은 골반춤(일명 '예~' 춤)에 큰 스퍼트를 받았으며 모두들 그를 보면서 귀엽다는 평가를 했다. 이후에도 가끔씩 선보이면 좋은 반응을 얻는다. 여자 게스트들이 특히 다른 쪽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카라의 2집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Pretty Girl의 안무를 보면 예~ 춤을 응용한 비슷한 동작이 있다.

공동 MC들이 재혼 드립을 치면 얼굴이 빨개지면서(화면에 보인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고 앙탈을 부리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다. 김구라는 김국진을 이혼의 아이콘이라 부르며 놀린다. 저 양반 참 좋은 사람인데요...

2014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뮤직토크쇼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 MBC에서는 1998년 대상 수상 이후 16년만에 받는 상이라 더욱 의미 깊은 상이 아닐 수 없다.

6. 이것저것

경기대학교 출신인데, 김국진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던 전성기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김국진의 출신교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김국진이 '경~대요.'라고 일부러 발음을 얼버무려 사회자가 '아 경희대요?'라고 묻자 긍정해버려 경기대 학생들에게 크게 외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유부단함의 결과지만 김국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에피소드. 그래도 입학식이나 축제의 MC로 왕고모님박슬기와 함께 종종 얼굴을 비추신다.

영문과 출신인데 영어에 능통하지는 않다.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절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 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 을 겪었을 뿐. 그리고 여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와중에 배가 고프다면서 집에 들어가 밥과 고추장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에 배신을 당하고 살아왔으면서도 장애인과 저소득층 가정에게 의류 2억2천만 원 어치를 기부했으며, 2007년에는 서울대 병원에 1억3천만 원 상당의 의류를 기부하는 등 상당한 대인배라 할 수 있다.

전성기 때의 인기에 비해서 연예대상(당시 코미디대상) 수상은 2번밖에 없다. 김용만, 이경규, 김국진 이렇게 돌아가면서 받았다는 게 김국진의 기억이다. 대신 MBC 다큐멘터리 '21세기 대중문화 대장정'에 20세기를 빛낸 한국 코미디언 1위에도 올라 있을 정도로 영향력은 컸다.

과거에 김용만과 라디오를 진행 한 적이 있다. 아침 시간대였는데, 문제는 둘 다 아침잠이 많아서 툭하면 둘 중에 하나가 늦잠자서 지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는 지각해서 자기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하고 가고 있는데(…), 둘 다 안 와서 라디오를 PD가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이고 세례명가브리엘임이 전혀 상관 없는 라디오 스타에서 밝혀졌다.

가끔씩 라디오스타를 할 때마다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걸로 보인다. 예전에 f(x)가 라디오스타에 출연 당시 빅토리아에게 중국어로 인사를 하거나 간간히 중국어를 하는 걸 보면 기본이상은 하는 편인 듯. 효연이 라디오스타에 나와 중국어로 음식주문을 할 때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몸은 마른 편이지만 생각보다 힘이 좋은 편인 듯하다. 남격 절대권력편에서 윤형빈과 레슬링을 했는데, 윤형빈은 프로필 상 181cm 75kg, 김국진은 171cm 에 58kg으로 20kg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허리힘으로 윤형빈을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 김국진 > 윤형빈 > 타카야

과거 구준엽과 철봉 매달리기 대결에서 구준엽은 얼굴이 시뻘개져 떨어지고 난 후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철봉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괜히 바꿨어 특집'에 출연한 나나봉춤을 선보이자 직접 해 보기도 했다.살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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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에도 정상급 연예인이지만 90년대 중후반의 김국진의 인기, 영향력은 코미디계를 넘어서 연예인 통틀어 원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현재 최정상급 진행자인 유재석과 강호동, 신동엽 정도를 합쳐야 나올 수 있는 수준의 인기였다
  • [2] 물론 이쪽은 제명당하기는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동명이인 성우 김국진과 같은 기수다.
  • [3] 다만 유재석은 졸업을 하지 못했다.
  • [4] 귀국 후 처음에는 KBS에서 '오키도키쇼', '토요일 7시가 좋다' 등의 프로그램을 김용만과 진행하다가 1995년 중반 MBC의 '도전 추리특급'과 '테마게임'을 진행하면서 활동영역을 MBC로 옮기게 된다.
  • [5] 그 당시 김국진의 영향력은 숨 쉬는것도 김국진이 쉬면 유행어가 될 정도라고 회자될정도로 컸다.
  • [6] 다만 IMF 당시의 기업 형편이 어려워 많이는 못 드린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그냥 개런티 없이 캐릭터 사용을 허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상품은 대박났지만 김국진이 받은 돈은 거의 없다고 한다.
  • [7] 물론 배삼룡의 '삼룡사와'도 있긴 한데, 삼룡사와는 배삼룡 소유의 음료회사에서 출시한 제품이다보니 상황이 좀 다르다. 게다가 삼룡사와는 '파는 곳이 없어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쫄딱 망했다는 점에서, 본인 회사가 아니었으면 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증이 될 듯.
  • [8] 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9]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 [10] 여담으로 이 시트콤에 이선균이 이윤성의 동생으로 분했다.
  • [11] 그나마 입지가 안정된 후에는 한 집중력 향상 약 광고를 찍었는데, 약 먹기 전에 골프를 치는데 나무에 맞다가 얼굴에 맞는다. 그런데 그 약을 먹은 후 뭐 '집중 파워~!'라 그러면서 골프를 불처럼 강하게 친다.
  • [12] 무릎팍도사에서 김용만이 자기가 방송이 잘 안 풀려 그만두려 할 때 김국진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계약금 3천만 원을 건넸다고 한다.
  • [13]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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