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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last modified: 2015-03-06 02:30:05 by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2. 대한민국의 E-Sports 인물
3.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1.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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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39.81 KB)]

리즈시절, 뒤에 서 있는 중앙대학교 선수는 임재현인듯.




서울 삼성 썬더스 No.9
김동우
생년월일 1980년 2월 3일
국적 한국
출신학교 명지고 - 연세대학교
포지션 포워드
신체 사이즈 196Cm, 94Kg
프로입단 2003년 드래프트 1번(울산 모비스 피버스)
소속팀 울산 모비스 피버스(2003~2012)
서울 SK 나이츠(2012~2014)
서울 삼성 썬더스(2014~)

2002-03 농구대잔치 MVP
현주엽(상 무) 김동우(연세대학교) 방성윤(연세대학교)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이자 前 울산 모비스 피버스, 서울 SK 나이츠소속의 농구 선수.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맹활약하면서 팀의 기둥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곱상한 외모에 돌파력을 보여주며 연세대의 서태웅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그래서 당시 별명은 어린 왕자였다. 4번과 3번 자리를 오가면서 플레이를 펼치며, 그 해 최대어로 주목받아 200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모비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포지션이 4번으로 쓰기에는 힘이 부족하고, 3번으로 쓰기에는 야투가 정확하지 않았다. 장거리 3점슛은 인상적이었지만, 아마 시절 괜찮았던 돌파력은 프로에서는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4번 자리에서는 수비력이나 힘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앞에서 언급한 이런 문제는 프로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포지션을 정하면 해결되는 문제기도 하다. 실제로 결국 경험이 붙고, 포지션이 정착되면서 자리잡은 선수가 많다. 하지만, 김동우의 진짜 문제는 바로 부상. 신인 시절 다친 발목이 하필이면, 발바닥 내측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이라서 재활로 고생해야 했다. 더 문제는 이게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2년이나 인대가 끊어진 채로 뛰었다는 것. 일본에서도 수술을 포기해서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았지만, 다행히 독일로 건너가서 세 번의 수술을 받은 끝에 겨우겨우 회복되었다. 그런데 발이 회복이 되니, 이제는 허벅지나 무릎이 계속 아프면서 출장 경험을 통해 기량을 늘릴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워낙 부상이 잦아서 군대도 공익근무요원으로 갔고, 이에 대해서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프로 선수 생활동안 받은 수술만 4번.

다행히 2011-12 시즌을 앞두고는 드디어 아프지 않으면서 프로 데뷔 7년만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했다. 주전은 아니지만, 식스맨으로 활약하면서 모비스에 힘을 보태는 선수. 특히 선수단의 연령이 낮은 모비스에서 데뷔부터 쭉 모비스에서만 뛴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2012-13 시즌을 앞두고 혼혈 드래프트에서 모비스가 문태영을 영입하자 샐러리 감축 및 김동우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인지 무상으로 SK로 트레이드시키면서 2012-13 시즌부터는 서울 SK 나이츠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2014년 1월 15일, 서울 삼성 썬더스의 우승연과 1:1 트레이드 되어 삼성에서 뛰게 되었다. 서로 의중이 맞는 트레이드라고 한다. 이후 무존재감을 드러내다 차재영의 부상등으로 포워드진의 부재속에서 출장해, 16득점을 올리며 깜짝 활약을 했다. 다만 팀은 아쉽게 83:84로 졌고, 이날 억울한 판정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항의를 하는 바람에 김동우럭, 활어라는 별명을 얻고 말았다.


2014-15 시즌 현재 백업 멤버로 경기당 평균 10분 정도의 출장시간을 갖는 중이다.
2014년 11월 28일, 고양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9연패를 달리던 삼성의 연패를 끊는, 기적같은 버저비터 역전 삼점슛을 성공시켰다.#


2. 대한민국의 E-Sports 인물



대한민국 前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이자 前 CJ 엔투스의 감독.

2001년 프로슈머(現CJ 엔투스)에 입단하여 활동하다가 다음 해에 은퇴, 군을 현역으로 마친 뒤 슈마 GO(現CJ 엔투스)의 수습코치를 맡았다.

2010년 8월까지 수석코치로 활동하던 도중 조규남의 은퇴로 감독대행을 맡다가 현재는 감독이 되었다.

별명은 오락감독(...). 모 스갤러이런 글꾸준글로 밀어서 만들어진 별명이다. 나중에는 고소미가 두려웠는지 모자이크 버전으로 바꿔 달리고 있다. 당시 CJ 엔투스 이재훈 코치 결혼식에 참석한 모습이 찍힌 사진인데 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는 추가바람. 진짜 비난글이 아니라 그냥 꾸준글일 뿐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스갤에서 크게 흥한 꾸준글이라 나름 흥미도가 높아지자 그 여세를 몰아(?) 다른 스갤러 한명이 페이스북으로 김동우 감독에게 직접 질문한 일까지 벌어졌다. 근데 본인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에 스갤러들은 한 술 더떠서 '본인의 행동이 창피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거다.' 라는 기믹을 추가해 즐기고 있다.

표정변화가 정말, 거의 없이 매의 눈과 진지한 모습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하며 포모스 '감독 코멘트' 기사를 보면 한 성격 하는 것이 느껴진다.[1]

취임 이후 하이트 스파키즈가 흡수합병됨에 따라 14연승과 더불어 우승자 신동원을 배출 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지만 신한은행 10-11시즌 위너스리그 4위, 최종성적 2위를 거두며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SKT T1KT 롤스터에 졌다.

10-11시즌 플레이오프때 팬들로 부터 발트리라고 많이 까였으나[2]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 들어 감독들 중 상성을 가장 많이 붙여 이 논란을 불식시켰다. # 이전까지는 존재감이 김은동보다 못하다고 할 정도였지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며 서서히 인지도를 굳혀갔다.

2012년 1월 31일에는 두터운 선수층을 갖고 있음에도 한두열, 조병세 등 B급 카드를 두 명이나 내고 져버리는 바람에 잘나가던 팀이 3연패를 당해버렸고 팬들은 이길 생각이 있냐며 엄청나게 강도 높은 비난을 했지만, '프로리그 말말말' 코너에서 스승의 철학을 이어받은듯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짠한 멘트를 남겨 스덕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차가운 도시 감독... 하지만 선수들에겐 따뜻하겠지

○.. CJ 김동우 감독, “선수들은 인생이 걸려 있는데요”
경기에서 패하고 난 뒤 표정이 좋지 않았던 김동우 감독. 감독 코멘트를 핑계로 대화를 나누던 중 최근 신인 기용이 잦은 이유를 묻자 “프로게이머들이 경기를 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선수 기용 문제는 산술적으로만 다가갈 수 없다”며 깊은 한숨.

CJ팬들은 이 맛에 CJ팬 하는 거 같다.

3월 17일에 열린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세트에 저그 김준호를 이영호에게 붙여 논개 역할을 시키고 KT저그에게 저그 카드로 맞대응 시키고 김대엽에게 상대전적이 앞서던 신상문을 붙이며 엔트리를 훌륭하게 냈으나[3] 선수들이 삽질을 하는 바람에 팀이 1:4로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김정우가 1~3차전 도합 3연패로 역적질을 하고 신동원이 1~3차전 도합 1승 2패로 우스운자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팀은 1승 2패로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프로리그 12-13 시즌 직후 재계약 협상에서 박시현 코치와 함께 재계약 포기를 결정했다. 앞으로의 거취는 불명이었으나, 2015년 1월 미국 LoL 프로게임단 Team Dragon Knight (약칭 TDK)의 거기에 감독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잘 되도록 많은 응원을 해 주도록 하자. 다만 소속선수들중에 탑라이너와 미드라이너의 멘탈이 썩 좋은편이 아니라 관리하는데 좀 힘 들듯

3.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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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겼을 때 코멘트와 졌을 때 코멘트가 확연히 다르다.
  • [2] KT 롤스터와의 경기에서 CJ토스 3대장을 전부 저그에게 붙였다. 진영화야 vs저그전 부동의 2인자니 상관은 없었는데... 어이없는 방심플레이로 김성대에게 역전승을 헌납하더니 고강민과의 경기에선 초반 저글링 침투를 자동문 수준으로 허용하는 바람에 또 승리를 헌납.
  • [3] 그러나 저저전 싸움은 불확실성이 크고, 에이스급인 CJ선수들이 지는 것은 치명타인 반면 KT저그는 논개의 개념이므로(...) 포스트시즌엔 사실 전혀 논개가 아니었다는 문제는 넘기고 손해보는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영호 논개 전략은 뛰어났지만 이 날의 전체 엔트리가 무조건 좋았는지는 의문. 물론 2, 3차전까지 다 보면 그냥 어떻게 붙여도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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