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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정

last modified: 2015-04-08 10:28:20 by Contributors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북한의 군인. 흔히 무정이라고 불린다. 김일성의 라이벌 중 하나이며, 북한 초기의 권력파벌인 안파의 리더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23년 18세의 나이에 중국으로 망명해 보정군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5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 1934년의 대장정에도 참여했다. 대장정 참전 조선인중 유일한 생존자. 이후 로군의 핵심 간부로서 맹활약했으며, 만주지역의 항일운동에도 개입했다. 8로군 포병사령관[1] 맡았으며, 달리는 차를 조준기 없는 박격포로 맞출 정도로 박격포의 귀신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8로군에서 포를 쏠 수 있는 것은 모택동과 김무정 뿐이다."라고 했을 정도. 후에 북한군의 군사고문으로 온 소련군 포병장교들이 "포술에 필요한 고등수학도 모르면서 어떻게 포병을 한담?"이라고 무시하다가, 이런 묘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후일 한국전 때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와 절친한 관계이며, 현재에도 중국에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중국공산당 쪽의 활동뿐만 아니라 조선 독립운동에도 간여하였다. 1941년 김두봉과 함께 조선 독립동맹을 만들고 8로군내의 조선인 부대인 "조선의용군"의 사령관이 된다. 조선의용군은 항일전쟁에 적극적으로 중국공산당 팔로군과 합작해 여러차례 일본군과 여러차례 교전했었는데, 대표적으로 활약했던 전투는 이항산 전투가 있다.(이 전투에서 일본군 지휘관은 한국인 출신 홍사익이었고, 조선의용군에는 김무정이 지휘했다. 이 전투에서 독립운동가 윤세주가 전사했다.) 1944년 일제말기에는 식민지 조선 국내에 있던 비밀결사 단체 조선건국동맹과 연락을 맺었다.

조선 의용군은 후에 국공내전에도 참여하였고,인민해방군 내에서도 정예부대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국공내전이 끝난후 북한군에 합류하여, 한국전쟁 초반의 주력이 되었다.[2]

독립 후에는 조선으로 귀국, 중국공산당과 협력한 조선인들로 구성된 안파의 리더로서 활동했다. 북한 정부수립 초기에는 중국 공산당과의 긴밀한 관계와 독보적인 전투경험으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김일성조차 무정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심지어 김일성 이전에도 "장군" 칭호를 달고 다녔다. 때문에 김일성은 무정을 크게 견제했고, 그 결과 한국전쟁 때까지 무정이 맡은 직책들은 포병사령관, 2군단장, 민족보위성 부상 등 명성에 비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황의 악화와 함께 무정 역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권력약화를 우려한 김일성은 정치적 라이벌들에게 패배의 책임을 덮어씌워 위기에서 탈출하려 했다. 결국 무정은 동강 방어선 공략실패, 평양 상실의 책임을 한꺼번에 뒤집어쓰고 숙청되고 만다. 이 당시 무정과 가까웠던 중국공산당군 출신 장교들 역시 무더기로 축출된다. 김일성 휘하의 만주빨치산 출신 장교들이 이들을 대체하게 되는데, 이것은 조선인민군 장교들의 심각한 수준 저하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대숙청으로 독소전쟁 초기에 고전한 것과 같은 원리라고나 할까….

남한 관변자료에는 총살설, 지하 노예설(…), 암살설, 병사설 등이 돌았으나 숙청후 지하 노역장 관리로 잠시 있다가 중국측의 요청으로 송환, 중국에서 병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일성은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김무정을 상당히 좋게 평가했고, 김무정은 사망 후 평양으로 유해가 송환되어 애국열사릉에 묻혀있다고 한다.

무정의 숙청은 곧 북한 권력의 한 축이었던 연안파의 몰락을 의미했다. 무정은 1952년에 병사했고, 그가 이끌던 연안파는 1956년의 8월 종파사건과 1958년의 최창익 숙청으로 궤멸되었다. 이후 김일성의 1인 독재체제가 확립되었다.[3]

8회 조기종영에 빛나는 KBS 대하사극 "여명의 그날"에서는 주현씨가 무정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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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8로군의 포병이라야 기껏해야 박격포 정도를 장비한 수준이었다.
  • [2]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의 실패를 이들이 뒤집어 쓰고 후의 연안파 축출때 대부분 숙청되었다.
  • [3] 1948년 소련의 후원아래 출범한 조선공산당과 북한 정권은 김일성의 만주빨치산계, 박헌영의 남로당계,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등 여러 좌익분파들이 결합한 일종의 연립정권이었다. 한국전 이후 8월 종파사건 등 여러차례의 숙청으로 1950년대 말 만주빨치산계 단독정권이 된다. 지금처럼 김일성이 신으로 추앙받는 김씨왕조체제는 주체사상이 정립되고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는 1970년대 중반에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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