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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last modified: 2015-03-20 18:04:24 by Contributors

이름 김미화(金美花)
출생 1964년 9월 22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갈동
신체 154cm, 42kg, A형
학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과정)
데뷔 1983년 KBS 개그콘테스트
가족 배우자 윤승호, 딸 윤유림
취미 등산, 노래부르기
특기 모창, 말 빨리하기
별명 순악질여사
포인트 큰 입
종교 천주교(세례명 : 로사)

KBS 코미디대상 대상
임하룡
(1989)
김미화
(1990)
임하룡
(1991)

Contents

1. 개요
1.1. 1기 : 데뷔에서 쓰리랑 부부까지
1.2. 2기 : 90년대 코미디의 전환기
1.3. 3기 : 소셜테이너
2. 논란
2.1. 논문 표절 논란
2.2. KBS 출연금지 및 정치참여 논란

1. 개요

쓰리랑 부부, 개그 콘서트의 창업 공신 이 두가지로 대표되는, 80~90년대 한국 개그계에 큰 획을 그었던 개그계의 작은 거성.

1.1. 1기 : 데뷔에서 쓰리랑 부부까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 겸 방송인그리고 샤이니 종현의 숨겨진 엄마이다.

서울특별시의 수유리 빈민촌 출신으로, 기존에는 서울특별시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신갈에서 태어난 뒤 다음해에 서울 수유리로 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김미화씨가 자신이 수유리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과거에 몇번 이야기했기 때문에 거기서 태어나기도 한 걸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출생지는 아버지의 고향인 신갈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 출산을 앞두고 아버지의 본가로 가서 출산하기로 부모님들이 결정하여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년기 내내 수유리와 미아리 지역에 있는 하천 다리 근처에 당시 빈민들이 거주하던 무허가촌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상의 고향을 따지자면 출생과 별개로 어린 시절을 다 보낸 서울로 보는게 맞긴 하다. 천지천이 자신이 어릴 때 주로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사람들을 웃기는데 재능을 보이며 주변 동네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던 귀여운 소녀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부친은 첫째딸인 그녀가 어릴적부터 심한 폐질환을 앓다가 일찍 사망하였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한다.

청소년기가 되어 상업고등학교까지 입학하며 졸업 후의 가족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던 시기여서 학교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도 있었으나, 개그맨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지인을 통해 방송국 보조출연(엑스트라) 아르바이트도 하였다고 한다. 코미디에 대한 꿈을 결코 버릴 수 없었던 그녀는 상고 졸업을 앞둔 1983년 제2회 KBS 개그콘테스트에서 이정문[1]과 함께 '사부와 석순이'라는 개그로 은상을 수상하면서 공채 2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당시 그녀가 졸업 후 바로 취업하기를 원하시던 어머니는 저녁식사 중에 KBS '생방송 오늘'에서 그녀가 개그콘테스트 수상자로 나온 걸 보고 매우 놀랐고, 돌아온 그녀를 때리고 화를 내며 말렸다고[2] 한다. 그녀는 6개월 안에 개그우먼으로써 확실한 위치에 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 그만두겠다고 약속하겠으니 그동안만 지켜봐달라고 하여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데뷔한 뒤 생각외로 빠른 시일내에 큰 인기를 얻고, 수입도 커지게 되자 어머니는 오히려 응원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한다.

데뷔 직후 KBS '젊음의 행진'에서 활약하면서 '유머 일번지'까지 진출하며 점점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인기가 더 올라가자 다른 여러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된다. 본인 스스로 당시를 회고하면서 '나는 당시 신인 중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신인이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어마어마한 연습을 하며 철저하게 노력했다고 한다. 이 욕심이라는 것은,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개그계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여성 코미디언들은 프로그램에서 주도하는 역할은 별로 하지 못하고 주로 받쳐주는 역할이었고, 그에 대한 불만이 있던 그녀가 그런 관습을 극복하여 '여성이 주도하는 코미디 연기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그 결실이 바로 쓰리랑 부부다. 쓰리랑 부부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90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KBS 코미디 대상을 수상하였다.

1.2. 2기 : 90년대 코미디의 전환기

SBS 개국과 함께 SBS에서도 활동하다가 KBS에서 프로그램 제안을 받고 1995년말부터 코미디 세상만사에 출연하게 되었다. 거기서도 코미디 방송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밤 10시에 '시작하는'[3] 심야 코미디의 영역에서 그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개척한다. 지금보다 수위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성인 대상 코미디'의 지상파 진입 역시 이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김미화는 이 방송에서 '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코너를 통해 일반 유명 남자 연예인과 부부 설정으로 상황극을 하면서도 간간히 그 연예인의 실제 생활에 대한 토크를 섞어 새로운 형식을 추구해서 인기를 얻었다. 이재룡, 설운도, 현철 등 코미디 방송에서 잘 나오지 않던 연예인들이 그녀의 남편 역할로 매주 출연해서 재미를 주었고 그녀에 대한 평가와 인기 역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또한 코미디 세상만사를 통해 그녀가 새롭게 발굴한 연예인은 코미디언이 아닌 배우 전원주이다. 당시 그냥 연기경력 30년의 평범한 아줌마 역할용 배우로만 알려져 있던 전원주였으나, 그녀의 서민적이면서 친근한 속성이 코미디에 활용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김미화가 피디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사미인곡'이라는 코너에 출연하게 된다. 이 코너는 사미인곡이라는 유명한 고전 가사 문학작품 이름을 패러디하지만 실제로는 4명의 미인들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목욕탕 사우나에서 4명의 유부녀 아줌마들이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는 꽁트이다.

기본 멤버는 서세원어?[4], 김미화[5], 전원주[6], 선희[7]였다. 전원주가 4명의 아줌마 중 한 명으로 추천되어 출연하게 되면서 그 코너가 인기코너가 되고, 여러 유행어도 남기게 되었다. 특히 전원주의 푼수끼 섞인 '어! 호호호호허허하하'하는 웃음소리가 독특하다는 부분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우리 시대 어머니 이미지가 천천히 시작되기 시작한 것도 이 코너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8] 당시 전원주의 유행어는 '나 갈게. 다음에 또 여기(목욕탕) 모이게 되면 떼레뽕 때려줘.'로 전화해란 말을 일부러 코믹하게 한 것이 전원주의 새로운 유머 이미지 발굴'에 도움이 되었다.[9]

90년대 후반 기존의 꽁트 코미디가 완전히 사장되는 위기에 직면하자 백재현, 전유성과 함께 초대 개그콘서트의 시작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1.3. 3기 : 소셜테이너

90년대 후반 김미화는 개그콘서트의 시작을 주도하면서 현장에서의 역할에서 물러났고,[10] 늦깎이로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해 대학생활을 했다. 이때부터 점점 개그계 바깥의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03년 MBC의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개그맨의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시사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하다보니 자신도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시사문제 공부를 시작하면서 김미화는 본격적으로 소셜 엔터테이너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로 인해 김미화는 과거의 코미디 현장이 아닌 시사문제가 궁금한 평범한 아줌마인 MC,DJ라는 캐릭터가 확립되어 라디오 DJ및 MC로 활약했다. CBS에서 김미화의 여러분을 진행하기도 하고, 딴지일보 팟캐스트에서 나는 꼽사리다를 진행하는 등 시사 전문 MC로 활동하면서 아래 언급할 KBS 블랙리스트 파문등을 겪기도 한다.

2. 논란

2.1. 논문 표절 논란

최근 일부 언론매체에서는 김미화가 2011년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받은 석사학위 논문 '연예인 평판이 방송 연출자의 진행자 선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 부분 표절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김미화는 2013년 3월 24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저는 3월 25일 자로 시사프로그램 진행에서 내려오겠습니다"며 표절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자진 하차하였다.
2013년 10월 성균관대 측에서 논문 표절로 보기어렵다는 판정결과를 통보받았다.#

2.2. KBS 출연금지 및 정치참여 논란

2010년 7월 6일 트위터를 통해 KBS 내부에 출연금지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출연이 안 된다며 소위 'KBS 블랙리스트'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에 대해 KBS는 김미화의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3개월간 공방을 벌인 양측은 그해 11월 KBS가 김미화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면서 일단락됐다. 2013년 3월 27일 KBS 창사 40주년 특집 ‘개그콘서트’ 녹화에 참여해 1980년대 히트작 ‘쓰리랑 부부’를 재연하면서 KBS와의 악화되었던 관계는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코메디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도 말하기도 했다. #

2012년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 사찰 논란때 김제동과 함께 국정원으로부터 사찰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변모논객을 고소했다.
법원은 변모논객에게 김미화에게 1천 300만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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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잠시 개그맨 활동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만화가 이정문과는 다른 사람으로 동명이인이다.
  • [2] 말린 이유에 경제적인 부분도 컸지만, 그녀의 모친이 사실 가장 중요하게 걱정한 것은 '연예계 성상납'이었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성이던 딸이 그런 것에 휘말릴까봐 용납할 수 없었다고.
  • [3] 당시에 지상파 코미디 방송은 대부분 7시에 시작해서 8시에 끝나는 게 정석이었고, 늦게 하더라도 10시 이후에 끝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다.
  • [4] 서세원도 아줌마 역할로 나온다. 아줌마면서도 MC 느낌의 역할. 지금이야 여러 문제로 방송에 안 나오지만 당시에는 꽤 인기도 많았고, 이 코너에서도 아줌마 연기와 웃음 유발 두가지를 모두 잘 소화했다. 종종 남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개그포인트이긴 했다. 김미화와 함께 전원주를 다그치면서도 전원주의 개그포인트를 살리는 역할.
  • [5] 개그를 하면서도 프로그램 특성상 특별출연 손님도 나오기 때문에 서세원과 함께 진행을 하는 역할
  • [6] 복부인 느낌의 돈 많은데 아는 거 많은 척하고 싶은 푼수느낌 있는 맏언니 역할
  • [7] 외국에서 살다 온 새댁 역할
  • [8] 그전까지는 TV드라마에서 파출부나 가난한 집 주부 같은 역할을 많이 했고, 어쩌다가 주인공 어머니 역할을 할 때도 주인공이 가난하다는 설정이 많아서 어머니 이미지의 대표 위치는 아니었다.
  • [9] 본인도 코미디프로에 나온 것이 어색해서 실수도 하고 했는데, 그때마다 웃는 웃음소리가 새로운 재미포인트실수의 미학이 되었고, 이때부터 '전원주가 부잣집 어머니 역할을 해도, 약간 푼수끼 있게 한다면 괜찮고 재미있겠구나'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 [10] 이 부분은 약간 논란거리가 되는데 타의로 인해 밀려난 부분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녀는 대학원 진학 후에도 개그콘서트에 참여했으나 새로온 연출자가 김미화가 미리 피디와 개그콘서트팀 허락을 다 받고 갖다 온 대학원 수업 이후 몇분이라도 그녀가 늦게 온 날마다 다 기록을 해 둔 뒤에 어느 날 "선배님 어느어느날 몇분몇분씩 지각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나와주셔야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개그콘서트에서 하차를 종용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순간 그 피디가 자신을 애초부터 하차시킬 목적을 가지고 상황을 계획했다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그 전에 어느 상황에서 그 피디와 갈등이 있었거나 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한다.그냥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 수도) 처음에는 따지고도 해봤지만 일단 약점이 잡힌 이상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녀는 꽤 충격을 받고 개그콘서트를 떠나 방송활동은 거의 하지 않으며 쉬다가 소셜테이너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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