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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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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의 유니폼을 입은 김병현


KIA 타이거즈 No.45
김병현 (金炳賢)
생년월일 1979년 1월 19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출신 학교 수창초-무등중-광주일고-성균관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년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 (현대 유니콘스)[1]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2003)
보스턴 레드삭스 (2003~2004)
콜로라도 로키스 (2005~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 (2011)
넥센 히어로즈 (2012~2014.4.9)
KIA 타이거즈 (2014.4.10~)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9번(2012~2014)
조평호(2011) 김병현(2012~2014) 김영광(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45번(2014~)
김영광(2014) 김병현(2014~) 현역


Contents

1. 소개
2. 메이저리그 시절
2.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2. 저니맨 생활
2.2.1. 2009 시즌
2.2.2. 2010 시즌
3. 일본프로야구 시절
4. 한국프로야구 시절
4.1. 2012 시즌
4.2. 2013 시즌
4.3. 2014 시즌
4.4. 2015 시즌
5. 기타
5.1. 피칭 스타일
5.1.1. 김병현의 보직
5.2. 성격 및 일화
6.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광주일고김병현

한국 야구 사상 역대 최강의 언더핸드 투수
그러나 부상때문에 그 기량을 전부 잃은 비운의 투수

대한민국 광주 출생. 광주일고[2]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로 진학.. 당시까지만 해도 체육특기생은 학적 만큼은 원하는 학과로 넣어주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법학과는 관련 없지만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법학과 나오신 법규형님으로 불린다(...). 98 방콕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해 금메달과 더불어 병역 혜택을 받았다. 또한 이 때 중국과의 4강전에서 중간 계투로 나와 6이닝 동안 18타자를 상대해 12삼진을 잡아내는 괴력을 보였다. 그리고 이 중 8타자 연속 삼진이 있다. 아마추어 시절 한미 대학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6⅔이닝동안 15K를 기록하는 대호투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D-Backs)의 러브콜을 받아 미국으로 향한다. 이 때 받은 계약금이 225만달러로 거의 최고급 계약금으로 입단했다.

인터넷 상에서 가장 유명한 별명은 바로 김좆키. 자세한 건 김좆키 항목을 참조하자. 또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쎄우는 욕의 단어를 순화시켜(?) 표현한 김중지 혹은 김법규 등이 있다. 김좆키보다는 덜하지만 간혹 쓰이는 표현. 2000년대 말까지는 좆키 합성짤과 함께 김좆키로 불렸지만 2010년대 이후 한국 복귀후부터는 법규, 법규형님, 법규성님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원래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부정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사실상 애칭으로 고정되었다는 면에서는 라뱅의 이병규, 빵형/빵회장의 박재홍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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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법규 시전

멘탈왕 김병현에 대한 메이저리거들의 증언 링크

2.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년 사기급의 구위를 보여주면서 마이너리그를 석달만에 개발살내고 메이저리그로 바로 콜업된다. 마이너리그에서 배운건 딱 하나, 포수 사인읽는 법이라고 한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폭풍간지포스를 보여준다. 애리조나에서 처음에는 팀의 마무리를 맡아 2001 월드 시리즈 우승에 공헌한다. 사실 김병현 본인이 밝힌 바로는, 데뷔전 당시 주변의 반응은 마무리로써 폭발적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이때 임팩트가 너무 커서 계속 불펜으로 돌게된 것이 아닐까 하며 살짝 아쉽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본인이 처음부터 선호했던 보직은 선발이었고 마이너에서도 선발로 씹어먹었기 때문에...

2001년 NLDS와 NLCS에서는 4경기 6⅓이닝을 던지며 3세이브 무실점 피칭으로 완벽하게 막아냈다. 애틀란타와의 NLCS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모습 그리고 운명의 월드시리즈. 1, 2차전은 1/2 선발이었던 랜디 존슨커트 실링이 무난하게 이겨주면서 등판하지 않았다. 게임스코어 2:1로 앞서고 있던 4차전. 김병현은 커트 쉴링의 뒤를 이어 8회에 마운드에 올랐고 (이 때 김병현은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등판한다.) 셰인 스펜서, 스캇 브로셔스, 알폰소 소리아노를 삼진으로 모두 돌려세우면서 무난히 세이브를 챙기는 듯 보였다.

9회말에도 등판한 김병현은 섹느님데릭 지터를 땅볼 아웃처리한 뒤 폴 오닐에게 안타를 맞았다. 버니 윌리엄스를 삼진 아웃으로 처리하면서 다 끝났나 싶었는데…티노 마르티네스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면서 블론세이브를 거두고 말았다. 어찌어찌 이닝을 마무리하고 연장전에 돌입했지만 양키스에는 마리아노 리베라가 디백스의 타선을 꽁꽁 묶어 둔 상황. 캇 브로셔스알폰소 소리아노를 다시 뜬공 처리로 잡으면서 다음 이닝으로 넘어가나 싶었는데….데릭 지터에게 10구째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결국 패전투수가 되었다.

바로 다음날 5차전에서도 김병현은 올라왔다. 2:0로 앞서고 있던 9회말에 등판하였다. 첫 타자였던 호르헤 포사다에게 좌측 2루타를 맞으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셰인 스펜서와 척 노블락을 잡아내며 이번에는 세이브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스캇 브로셔스에게 투런 허용. 또 다시 무너져버렸다. 결국 연장 접전 끝에 애리조나는 양키스에게 무너졌으며, 게임 스코어도 2:3으로 밀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기 직후 김병현은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대로 무너지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을 자아냈다. 참고로 7차전에서 커트 쉴링이 강판당한 뒤 올라온 구원투수는 김병현이 아닌 랜디 존슨이었다. 밥 브렌리 감독도 더 이상의 등판이 무리하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참고로 포스트시즌에서 피칭에 대해 변명을 해보자면, 김병현은 당시에 만 22세였다. 첫 월드시리즈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지 않았을까. 게다가 밥 브렌리 감독은 김병현을 1이닝 클로져가 아닌 2이닝 클로져로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발언을 했는데, 전날 2⅔이닝을 던진 투수를 다음날에도 바로 올린 것은 무리였다. 거기다가 불펜의 특성상 공을 던지지 않더라도 위기 시 몸 푼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리가 가는데다, 김병현은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흡사 임창용마냥 심심하면 툭 튀어나와 틀어막고 내려가는 마당쇠로 기용된 상태였다. 이미 무리가 쌓인 상태에서 월드시리즈에서까지 그런 무리한 기용을 하는 것은 감독의 용병술에 문제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 7차전을 홈 구장인 뱅크 원 볼파크에서 치룬 애리조나는 6차전에서 랜디 존슨의 호투를 앞세워 양키스를 대파하고, 7차전에서는 1:2로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올라온 빅유닛의 역투, 그리고 마리아노 리베라를 9회말에 침몰시키면서 2:3 대역전승을 일구어 냈다. 참고로 이 당시 리베라가 무너졌던 패턴은 안타-야수선택에서 투수 실책으로 올 세잎-번트 댔으나 3루 송구 아웃-적시타-데드볼-적시타. 리베라가 결정적인 순간에서 포스트시즌에서 무너졌던 적이 2010년까지 생각해볼 때 딱 세번 있었는데 그 중 한번이 이 때였다. 나머지 두번은 2004 ALCS 보스턴전 4, 5경기.

김병현은 우승 직후 우승 못했으면 은퇴할 생각도 했었다고.(…) 설마 그랬겠냐마는, 만약 우승을 못했으면 자신의 피칭으로 인해 우승을 못했을 것이라는 자책감에 빠져 더 좋은 성적을 못 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우승 직후 커트 쉴링은 김병현에게 "앞으로 애리조나를 책임질 젊은 투수가 될 것이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확실한지는 모르겠으나 실링이 인터뷰에서 "우리는 BK가 아니었으면 월드시리즈 진출도 못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MBC ESPN에서 방송한 애리조나의 기적 참조.

사실 냉정히 말해 2001 WS는 디백스의 압승으로 끝날 경기였다. 그러나 김병현이 2번이나 불을 지르면서 경기가 혼전 양상을 띠게 되었고, 결국 2000년대 최고의 WS로 남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발생했다.

2001년 월드시리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인 2002년에는 풀타임 마무리로 뛰면서 2.04의 방어율과 36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고 올스타 게임에도 선정되었다.2002년 김병현의 위엄. 그러나 2001년 월드시리즈 이후 본인이 마무리 보직을 싫어한 탓에 2003년 선발투수로 전업. 역시 괜찮은 성적을 내었으나 부러진 방망이를 맞은 부상 후 하락세. 결국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된다.


2.2. 저니맨 생활

보스턴 레드삭스로 가서도 선발과 불펜을 왔다 갔다 하며 숨은 활약을 펼쳤지만, 2003년 디비전시리즈에서 펜웨이 파크의 홈 팬들에게 법규를 날리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사건 때문에 그래디 리틀 감독은 김병현을 엔트리에서 제외했고 그해 리그 챔피언십에서 뉴욕 양키스에게 패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래도 2004년 우승 반지 하나를 더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사실 우승 반지는 본인의 활약과는 거리가 멀었고, 실제로 우승배당금도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동양인 최초의 양대리그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그후 콜로라도 로키스로 갔고, 콜로라도에서도 선발과 불펜을 오갔으나 부상과 그 이후의 무리한 투구 때문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와중에 2006년 배리 본즈에게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는 통산 715호 홈런을 헌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는 승리투수가 되었다. 어째 팩사장도 그렇고 약즈 기록수립 허용투수는 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다?

2007 시즌에 플로리다 말린스로 가 그토록 원하던 선발 자리를 꿰찼으나 다시 친정팀인 디백스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몇경기 나오지 못하고 다시 말린스로 이적하였다. 이러한 불안한 행보 속에 10승을 하긴 했어도 그의 성적은 자연 나쁠 수밖에 없었다.

2008 시즌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시작했으나, 방출당했다. 언더스로 투수가 선발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는 속설을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2.2.1. 2009 시즌

2회 WBC를 앞두고 대표선발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였고, 선발된 이후에 1년간의 휴식을 뚫고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하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의 훈련 모습이나 뿌리는 공의 상태를 대표팀 관계자 누구도 보지 못하였기에 상당한 물음표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대표팀이 소집되는 날,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불참하였고 이에 대해 아직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난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자연적으로 엔트리에서 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바로 이런 뉴스가 나온 오후에 그는 인터뷰를 자청하면서, 여권을 다시 찾았음을 밝히면서 합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저 기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WBC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13명의 투수 엔트리는 어제 확정되었다.'는 말로 김병현을 엔트리에서 완전 제외하였다.

이 상황은 2010 시즌을 앞두고 민훈기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정말 사실로 밝혀졌다. 밥먹는 식당에 가방을 놓고 왔는데, 공항에서 지인을 통해 퀵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퀵은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탈 수 없었고, 하필 밸런타이데이라서 차도 역시 지나치게 막혔다. 08년의 방출도 몸상태와 지인의 사망등으로 꼬여서 일어났으며, 에이전트가 타구단을 알아보겠다고 했으나 자기가 그냥 쉬겠다고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2009년은 WBC를 시작으로 의욕적으로 덤볐지만, 일이 잔뜩 꼬여서 그냥 쉬게된 셈이 됐다. 2010 시즌에 복귀를 하게 된건, 야구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을만한 일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듯. 인터뷰를 보면 좋은 인연이 생긴게 가장 큰 이유같지만 이후 인터뷰에서 재차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여 2010년 스프링캠프에 도전을 준비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한인 사회인야구에 종종 출몰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개업한 초밥집 '우미스시'가 성황이라 먹고 살 걱정은 없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여동생 소유의 가게로 명의사용만 하게 해 준 거라고. 2013년에도 성황리에 영업중. 보통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여동생분이 "오빠를 대신해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자기는 아르바이트다"라고 한 걸 보니 진짜 BK스시가 맞는 듯 하다. 물론 그 동안 받은 연봉만으로도 생활 자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 메이저리거 중에 5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은 것은 저 당시까지만 해도 김병현과 박찬호 외에는 없었다. 한국인 메이저 리거 전체를 통틀어도 기껏해야 추신수와 류현진이 더해질 뿐이며, 그나마 다년계약인 류현진은 2016년까지는 만져보지 못하는 돈이다.

2.2.2. 2010 시즌

2010년 2월 2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인터뷰에서 마이너에는 그저 운동하러 왔을뿐이며, '여기 애들은 야구 잘 못해요'라는 말을 남겼다…. BK는 여전하다. 뭐 인터뷰 장소도….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인터뷰에 따르면 훈련 스케쥴을 제대로 따라갈수 없어서 그냥 나간거라고 한다. 더욱이 몸도 제대로 안 만들었는데 등판을 하라는 등 구단 측의 무리한 요구가 많았던 탓도 있다. 애당초 김병현 성격에 그걸 순순히 따를 리도 없고 말이다.

이후 국내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가 김병현의 영입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카더라로 밝혀졌고, 결국 미국 독립리그에 속한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점차 구위가 올라오고 제구력도 좋아지는 중이라고 하였다. 7월까지 성적은 3승 1패 평균자책점 2.56.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무척 좋은 결과를 거뒀다.

다만, 이후 김병현의 성적이 다시 떨어지고 나타지지 않자 결국 야구를 그만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은 비자 문제로 인해 한국에 잠시 귀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 즈음에서 이미 결혼을 했으며, 딸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3. 일본프로야구 시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1년 계약을 했다. 배번은 99번. 신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마무리로 내세운다는 방침이었다. 김병현 본인은 일단 '제가 감독이면 절 안쓴다나자신이 만족하는 공을 던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팬들은 센트럴리그(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소속리그)의 임창용과 퍼시픽리그(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소속리그)의 김병현의 잠수함 매치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교류전이 끝나도록 1군에 콜업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라쿠텐의 마무리 투수인 이언 스파이어가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그에 비해 김병현은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지 못했던 것. 결국 일본에서 특별한 출전기회를 얻지 못한 채 2군 생활만 하다가 귀국, 결국 11월 16일 라쿠텐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방출 통보를 받았다.

한편 전 지바 롯데 마린스 감독이자 보스턴의 신임 감독인 바비 발렌타인이 김병현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는 기사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4.1. 2012 시즌

감독님, 저 메이저리거예요 바야흐로 김대우와 김병현, 쌍좆키 시대가 열렸다!

2012년 1월 18일 김병현이 넥센과 1년 16억(계약금 10억 연봉 5억 옵션 1억)에 계약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일전에 국내에서 뛴다면 꼭 해태에서 뛰고 싶다는 립서비스성 인터뷰를 했던 터라 국내에서 뛴다면 기아에서 뛰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이후 인터뷰 내용을 보면 본인은 해태와 기아를 아예 다른 팀으로 보는 모양이다. 더욱이 이장석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병현은 트레이드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이대로 넥센에서 뛰다 은퇴할 생각이 큰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2년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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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인터뷰에서(...) 크라스가 느껴진다.

그리고 3월 29일 한국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에서 첫 등판, 1⅔이닝 1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무실점, 최대 직구 구속 145Km/h으로 성공적인 한국 무대 데뷔했다. 또한, 4월 4일 LG트윈스와의 2군 연습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4이닝 5탈삼진 1볼넷 무실점하였다. 구리 챔피언스파크 양민학살

5월 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1군 첫등판. 이대형에게 첫 안타를 내준뒤 양영동한테 안타를 맞으며 야갤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그 뒤 이진영에게 또 안타를 맞으며 1실점. 그 뒤로 3명은 범타 처리했으나 아쉬운 경기를 보여주었다.

5월 1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장했다. 4회까지 2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사전에 김시진 감독과 서로 약속했던 투구수인 95구를 초과해서 승리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딱 96구째에 적시타를 맞아주는 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준수한 경기 내용이었으나 이날 삼성이 좌타자에 약한 김병현을 공략하기 위해 1~5번 타자를 모조리 좌타로 채우는 작전을 펼쳐서 여기에 조금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 술 더 떠서 삼성 타자들이 작심하고 커트를 난무하는 바람에 이닝을 적게 먹기도 했다. 최종 결과는 4와 2/3이닝동안 6피안타 2볼넷 6탈삼진 3실점. 기대를 모았던 이승엽과의 첫 맞대결에서는 3타수 동안 각각 3루타, 몸에 맞는 공, 삼진으로 무승부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

그 뒤로 몇 차례 등판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6월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95투구수 4피안타 3볼넷 2탈삼진 1실점 무자책으로 두산 타선을 잘 막고, 팀이 3:2 승리를 따냄에 따라 마침내 시즌 첫 승이자 한국에서의 첫 승을 따냈다.

6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 등판, 6이닝 3실점(3자책)의 준수한 피칭으로 2승을 따냈다. 두산의 선발 땀승회가 초반부터 2.1이닝 6실점으로 탈탈 털리는 바람에, 김병현은 이날 야수진의 대량 득점을 등에 업고 6이닝 동안 70개의 투구수만 기록하였다.

7월 5일 목동야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의 선발투수 박찬호와 선발전이 예고되었지만 비가 와서 무산. 두 선수가 맞붙는 장면을 고대했던 팬들이 많았던 만큼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다음날 선발 예고되었으나 다시 우천 순연되어서 로케이션을 걸렀다.

7월 12일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5이닝 4피안타 5실점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고, 7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1과 1/3이닝 동안 무려 6피안타 5실점하면서 조기 강판되었다. 7월 31일 현재 평균자책점도 아니고 WHIP 1.66을 기록중. 심수창보다 나을게 없다...강진갔다와라

결국 2군에 내려갔다가 10일 후 1군 콜업, 그리고 8월 22일 두산전에서 첫 홀드를 따냈다.

김시진감독 경질 이후 김성갑감독대행 체제로 이루어지는 남은 경기, 김성갑 감독대행은 김병현을 다시 선발로 보직을 변경하겠다고 예고하고,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투수로 등판시켰다. 이전의 선발로서 좋지 못한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로서는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6이닝 1실점 5삼진 무사사구라는 훌륭한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타선도 거기에 응하여 장기영의 8호 홈런을 포함해 3:1로 갈 길 바쁜 롯데를 꺾고 팀은 5위로 올라섬과 동시에 자신도 시즌 3승을 달성하였다.

10월 2일 2012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윤석민에게 홈런을 맞는 등 3이닝 3실점을 하고 조기강판되었다. 하지만 실책 때문에 조기강판된 것은 아니고, 3루 수비 커버를 하러 달려들다 두산 베어스의 주루코치인 김민호와 충돌하여 선수보호 차원에서 조기강판 시킨 것. 이날 경기는 3:1로 패배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2012년 최종 성적은 3승 8패. 신인 한현희와 승수가 같고, 이닝수, 비율스탯 모두 밀린다. 1승에 1억6천6백만원 최악의 가성비

2012년의 넥센 DTD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팬들도 있지만, 몇 년 동안 운동을 아예 접고 스시나 말 있던 30대 아저씨가 갑자기 공 던지는데 선발승 팡팡 찍으면 약물을 의심해야 한다고(...) 올해는 KBO 연착륙으로 보고 2013 시즌을 기대하자는 팬들도 있었다.

2012년 내내 제구가 잡히지 않아 고생을 했고, 후반기에 잠시 셋업으로 나왔을 때는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를 말 그대로 지리게(!) 잡는 위엄을 보여주었지만 변화구의 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탓에 좌타자만 만나면 쥐약이었다. 본격 연봉 5억짜리 우타 원포인트 투수 좌타 상대용 결정구와 제구를 잡는게 숙제로 꼽혔다.

2013년 연봉은 1억 인상된 6억 원으로 결정되었다. 실망스러운 2012년 성적에 비추어 볼 때 의외의 일인데[3], 입단 당시 다년 이면계약이 있었던 것으로 확실시된다. 아아니 이장석은 뭘 보고 다년계약을 해준거야 사실 이름값을 보고 계약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김병현 영입후 넥센은 장사꾼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났고 호갱님들의 기념품 구입도 꽤 늘어났다고 한다. 김병현 보러 야구장 온다는 팬들도 있고.

4.2. 2013 시즌

2012 시즌에 이어 올해도 제대로 폭망. 이강철도 그를 살리진 못했다. 시즌 초반엔 갑자기 각성하여 이닝을 잘 소화해줬지만 6월 11일 사직 롯데전에서 퇴장당한 날을 기점으로 급격히 무너졌다. 그에 대한 히어로즈 팬덤의 여론도 더욱 악화되었다. 이장석 커리어의 최대 오점 BK 영입 사실 영입한 것 자체는 마케팅이나 홍보 측면에선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쓸데없이 비싼 계약금이 문제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돈을 퍼주었다. 물론 호갱들이 유니폼 많이 사줄 테니. 근데 올해 하는 거 보면 김병현 유니폼 이제 안 살듯.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

2014년 연봉은 4억 삭감된 2억 원으로 결정되었다. 삭감 금액이 4억 원인데, 이는 박명환의 4억 5천만 원에 이은 2위 기록.


4.3. 2014 시즌

7월 기준 광주 일고 트리오 中 유일한 생존자.


4.4. 2015 시즌

시즌 시작 전 김진우가 번호를 49번에서 94번으로 변경하면서, 김병현 본인에게 상징과 같은 49번을 2015 시즌에는 달 것으로 기대했으나, 뜬금없이 박성호가 49번을 차지했다. 49번에 대한 관심이 없는듯.[4]그런데 괌 재활조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2월 5일 현지에서 복통을 일으켜 병원을 찾은 결과 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고 한다. 휴식 이후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하니 최소 3~4주는 걸릴 것으로 보고있다. 팬들은 시즌 시작도 안했는데 이러냐며 절망하고 있다(...)

5. 기타

5.1. 피칭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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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데드볼 삼진 음마 아프것는거;;;

전성기 시절엔 언더스로면서도 평균 140km 중반, 최고 150km/h를 넘기는 엄청난 강속구를 자랑했으며,[5][6] 뱀처럼 휘어지는 백도어성 프리즈비 슬라이더와 업슛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거기다 업슛, 싱커, 프리즈비 슬라이더, 백도어 슬라이더가 홈플레이트에서 각각 상하좌우로 휘어지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


특히 그 중에서도 프리즈비 슬라이더의 엄청난 각도로 날카롭게 휘어졌던 터라 위의 이미지처럼 몸에 맞는 공임에도 타자는 그것이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인 줄 착각하여 휘두르는 일이 있었을 정도다. 여기에 특유의 구위와 메이저리그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언더핸드 투수라는 유니크함이 더해지면서 김병현은 전성기 시절 동안 말 그대로 리그를 완전히 씹어 먹었다. 이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탈삼진율까지 기록하며 Born to K, 일명 BK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이닝 9구 3삼진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약 40여명의 투수 밖에 이루지 못한 일대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당시 랜디 존슨과 그의 등번호의 합이 정확히 100(51+49)이었던 까닭에 둘이 이어서 던지면 완벽하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장신(長身)인 랜디 존슨이 던진 직후 김병현이 나와 언더핸드로 스로로 던질 경우 이전까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 타자들은 공이 갑자기 지하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 덕분에 랜디존슨의 별명인 '빅 유닛'에 빗대어 김병현에게 '리틀 유닛'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정작 김병현 본인은 이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랜디 존슨은 "삼진을 잡는 능력만은 나보다도 뛰어나다."란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며, 블라디미르 게레로로부터 "저런 지저분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MLB에서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는 립서비스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

자신의 구질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지 적극적인 승부를 즐긴다. 일본의 대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김병현을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7] 보통 투수들은 자신의 정교한 컨택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김병현은 그 구위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떠나 지금 타석에 서 있는 타자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 없는 듯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

5.1.1. 김병현의 보직

김병현이 선발 욕심을 부린 탓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며, 그가 그대로 마무리를 했었더라면 마리아노 리베라, 트레버 호프만에 버금가는 투수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팬들도 무척 많다. 하지만 사실 김병현은 부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선발로 출전하여 매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커리어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부상으로 인해 본래 구위를 잃은 뒤의 일이다. 요컨대 부상이 문제가 된 것이지, 보직과는 별다른 관계 없었다는 이야기.

다만, 기존부터 언더핸드는 선발로 성공할 수 없다는 속설이 있었고, 선발 시절에 비해 마무리 시절 활약이 지나치게 인상적이었던데다 선발로 전환하지 얼마 안 되어서 큰 부상의 당하고 구위를 잃은 탓에 선발로의 전환이 커리어를 망친 원인이 됐다는 오해를 부르게 된 것이다.

더불어 인터뷰에 따르면 몸이 잘 안 풀리는 체질이라 마무리로 나오기 전엔 불펜에서 항상 50~6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고 하니, 다르빗슈 유류현진처럼 선발로 나와 공을 경기 중반 정도까진 던져야 페이스가 슬슬 올라오는 타입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는 타고난 체질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설명처럼 마이너리그를 건너뛰고 거의 바로 메이저리그로 올라간 탓에 몸을 관리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였을 가능성도 높다.

5.2. 성격 및 일화



성격 자체는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그다지 대외적이지 못한 탓에 언론 매체들과 이런저런 트러블이 많았다. 데뷔 초기에 첫 세이브 후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일 한국신문에 이거 대문짝만하게 나오나요?' 발언 등으로 PC통신 유저들 사이에서는 끼 많고 재미있는 청년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고, 언론도 그에대해 공격성 기사를 쓰는 일은 없었다. 막상 시즌이 끝난 뒤 내한 후에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그때 부터 언론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당시 PC통신에 김병현의 후배 고등학생의 글에 따르면 김병현이 내한 후에 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아서 고등학교에 기자들이 미리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기자들 사이에서 김병현에 대한 쌍욕이 난무 했었다고한다. 테드 윌리엄스와도 비슷한 케이스.[8] 또한 김병현 특유의 직설화법도 언론이나 일부 팬과의 관계에 안좋은 영향을 끼쳤다. 보통 사회 생활을 하게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생각을 감추고 둘러서 표현하거나 좋게 포장해주거나 하는식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병현은 그런거 없다. 다만 김병현도 나이가 들면서 예전과 달리 어느정도는 둥글둥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진 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김병현 폭행 논란이라 불리는 굿데이란 스포츠 신문과의 트러블은 매우 유명하다.

김병현은 기존부터 휴식 기간에는 조용히 지인들과 시간 보내길 즐겼던 스타일로 당시에도 김병현은 조용히 국내로 돌아와 지인들을 만나고, 헬스클럽에서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헌데, 그런 김병현이 모 헬스클럽을 자주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스포츠 신문, 굿데이의 한 기자는 해당 헬스클럽에 계속 잠복해 있다가 김병현을 나타나자마자 허가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며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인터뷰를 강제로 진행하려고 했다. 이에 김병현은 촬영과 인터뷰를 거부했고, 결국 인터뷰를 강행하려는 기자와 이를 거부하려는 김병현 사이에 실랑이를 벌어져 기자의 카메라가 손상되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일에 앙심을 품은 해당 기자가 다른 스포츠 신문사 기자들과 결탁하여 이 기회에 이전부터 취재에 매우 비협조적이었던 김병현을 모함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헬스클럽에서 만난 김병현에게 정중히 취재를 요청했으나, 김병현은 이를 무시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거만하게 굴더니 급기야 기자에 폭행까지 가해 카메라를 부수고, 해당 기자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특종을 내보냈다. 또한, 이후 결탁한 다른 스포츠 신문들사 기자들 역시 해당 특종이 터지기가 무섭게 앞다투어 이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폭행 사건을 대서특필, 김병현을 천하의 개쌍놈으로 몰아붙였다.

물론 김병현 측도 이에 대한 해명을 나서긴 했으나, 기존부터 언론을 통해 줄곧 안 좋은 모습 묘사됐던 김병현이었던 터라 이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김병현은 휴식 기간 동안 내내 언론의 괴롭힘을 당해야 했으며,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컨디션까지 엉망이 되어 시즌 자체를 전부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해당 기자가 "그 XX, 거들먹거리긴."이라고 말한 동영상이 퍼지고, 당시 사건의 정확한 내막과 전후 사정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반대로 무고한 김병현을 음해한 기자들 쪽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와중에 김병현을 옹호하던 차두리싸이월드에 욕설이 섞인 악플을 단 이가 있었는데, 이 IP를 추적한 결과, 악플을 단 게 다름 아닌 굿데이 측이었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자들을 향한 비난 수위는 더욱더 높아졌다. 사실 이러한 기사가 데스크에서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굿데이 측의 계속된 경영부진이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역풍을 맞으면서 판매 부수가 급감하고, 광고까지 상당수 떨어져 나갔고, 결국 굿데이는 6개월 뒤 폐간되고 말았다.

위에서 설명했던 굿데이 기자와의 논란 때문인지, 디씨에 김병현기자폭행논란 갤러리가 개설되기도 했다. 정작 김병현 갤러리는 없다 거의 10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다가, 몇몇 유저들에 의해 발굴된 이후로는 어째 혀갤 멀티(...)가 된 느낌이다.

야구 관련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월드시리즈 중의 두 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 이 홈런으로 인해 김병현의 소속팀 애리조나는 쉽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리즈는 일대 혼전에 빠졌다. 더욱이 당시 김병현이 시즌 중 언터쳐블이라 할 만한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터라 이 일은 더욱 드라마틱 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이 장면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대 명장면 중 하나로 꼽혀, 전미에 수도 없이 방송됐다. 아무래도 본인으로서는 조금 민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또한 콜로라도 시절 선발승을 따내고 Xports와 화상 인터뷰하던 중 이미 인터뷰가 끝난 걸로 착각하고 해드셋을 벗더니 그대로 사라진 일도 꽤 유명하다. 당황하는 중계진과 카메라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쓸쓸히 찍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미묘한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1회 WBC 당시에는 경기전 영상을 찍고있던 허구연과 한광섭 뒤에서 '카메라에 나오고 싶어하는 초딩' 같은 모습을 연출하여 인터넷 상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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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를 위해 훈련하던 중에는 자택에서 훈련장까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한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특별할 건 없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자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훈련장은 저 멀리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 있었다는 게 문제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도중에 주차장에서 3시간 잔 게 전부인데도 자그만치 60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이후엔 훈련을 시작한지 3일만에 부상 징후가 나타나서 결국 자동차 두고 곧장 비행기로 귀가해야 했다.

애리조나에서 데뷔했고 성적도 애리조나 시절이 가장 좋았지만, 애리조나를 떠나는 과정이 썩 매끄럽지 못했던 탓에 애리조나 팬들은 그를 무척 싫어한다. 덕분에 플로리다에서 뛰다가 잠시 애리조나로 트레이드 돼서 첫 등판을 했을 당시에는 홈 관중들에게 야유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것 외에도 독특한 일화가 무척 많은데 마무리 시절엔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커룸에 누워 낮잠을 자질 않나, 구단에서 준 집을 개조해서 원룸으로 개조하는가 하면, 선발 전환 이후에는 출전 당일에도 컨디션 조절을하긴 커녕 비디오게임기로 야구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차에 네비게이션이 달려 있는데도 그게 뭔지 몰라서 한 번도 사용을 안 하질 않나, 갑자기 관중에게 중지를 세우거나 스즈키 이치로가 1회 WBC에서 언급한 30년 발언을 듣고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 아닌가…."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왠지 마지막은 말 잘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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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의 AWD 세단인 플라잉 스퍼의 오너이기도 한데, 2007년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클린트 허들 당시 콜로라도 감독과 투수코치와의 불화로 인해 "화가 난 김에 나도 이런 차를 타고 다닌다고 과시하려고 해서 플라잉 스퍼를 구입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차는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후 대한민국으로 갖고 왔는데, 문제는 플라잉 스퍼의 앞 범퍼에 번호판이 없었다는 것....[9]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이런 면모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대한민국에 복귀하고 얼마 후, KBO 측에선 메이저리그 우승 반지를 KBO 박물관에 기증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김병현 역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김병현이 정작 이 우승 반지를 어디에 쳐박아 뒀는지 몰라서 기증을 못 했다는 것이다. 김병현 특유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상술한 사건들이 있는 터라 마냥 좋은 추억만 담긴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 그 반지 하나 얻어 보고자 온갖 비난과 푸대접을 감수하고 팀을 옮기는 선수도 굉장히 많다. 당장 찬호 형만 봐도 그거하나 얻으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던가. 이러니 여권을 두고 다니지.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M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1999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5 1 2 1 0 4.61 20 22 31 27.1
2000 61 6 6 14 0 4.46 52 51 111 70.2
2001 78 5 6 19 0 2.94 58 47 113 98.0
2002 72 8 3 36 0 2.04 64 28 92 84.0
2003 7 1 5 0 0 3.56 34 15 33 43.0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3보스턴 레드삭스 49 8 5 0 0 3.18 70 21 69 79.1
2004 7 2 1 0 0 6.23 17 8 6 17.1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5콜로라도 로키스 40 5 12 0 0 4.86 156 79 115 148.0
2006 27 8 12 0 0 5.57 179 69 129 155.0
2007 3 3 1 0 0 10.50 6 4 2 6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7 플로리다 말린스 14 5 3 0 0 4.16 65 56 68 75.2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 0 1 0 0 23.63 2 2 3 2.2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7 플로리다 말린스 9 4 2 0 0 8.21 49 9 34 34.0

역대기록(Mi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1999 AZL 다이아몬드백스(루키리그) 1 0 0 0 0 0.00 1 1 2 2.0
1999 엘 파소(더블 A) 10 2 0 0 0 2.11 6 5 32 21.1
1999 투산(트리플 A) 11 4 0 0 0 2.40 21 16 40 30.0
2000 투산(트리플 A) 2 0 0 0 0 0.00 1 4 13 8.1
2003 투산(트리플 A) 3 1 1 0 0 2.55 17 3 8 17.2
2004 사라소타 (싱글 A) 1 0 0 0 0 0.00 0 0 2 2.0
2004 포터킷 (트리플 A) 22 2 6 0 0 5.34 71 18 39 60.2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트리플 A) 3 0 1 0 0 6.23 18 4 11 13.0
2007 콜로라도 스프링스 (트리플 A) 5 1 1 0 0 5.34 21 11 31 24.1

역대기록(미국 독립리그)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10 오랜지 카운티 10 3 1 0 0 2.56 39 24 48 45.2

역대기록(NPB 2군)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11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 18 0 0 0 0 2.66 19 7 18 20.1

역대기록(KBO)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12 넥센 히어로즈 19 3 8 0 3 5.66 65 34 43 62
2013 15 5 4 0 0 5.26 71 36 43 75.1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14 KIA 타이거즈 21 3 6 0 0 7.10 88 40 66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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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대 해체 후 선수단과 프런트를 기반으로 재창단한 히어로즈로 지명권이 인계되었고, 한국 복귀 후 계약은 2012년에 이루어졌다.
  • [2] 참고로 당시에 최희섭, 김병현, 서재응이라는 메이저리거 출신 세 명이 동문이었다.(최희섭 1학년, 김병현 2학년, 서재응 3학년) 지금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나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 [3] 두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넥센의 다른 1군 투수들에게 책정된 2013년 연봉을 다 합쳐도 6억이 안된다.
  • [4] 보스턴시절엔 45번을 달고 우승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 [5] 언더스로는 투구폼의 특성상 구속이 느릴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정대현의 구속은 130km/h 초중반 정도이다.
  • [6] 정통 언더파라기보다는 구속을 높일경우 거의 사이드암 각도까지 올라오는 사이드암 형태의 언더핸더이다. 임창용보다 조금 더 낮은 포인트에서 공을 던진다.
  • [7] 김병현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 [8] 홈런을 친 뒤 모자를 벗어 답례를 하자 기자들이 이를 곡해하여 거만하게 굴었다는 식으로 기사를 실었다. 이후 테드 윌리엄스는 현역 시절 동안 결코 답례로 모자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 [9] 미국의 일부 주에선 앞면에 번호판을 안 달아도 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무조건 달아야 한다. 안그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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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9 08: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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