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김복동

last modified: 2015-02-16 04:03:19 by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
1.1. 출생
1.2. 군인 시절과 하나회
1.3. 예편 이후 정치인 시절
1.4. 미디어에서
2.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가

1.1. 출생

1933년 3월 5일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태어났다. 영부인 김옥숙의 친오빠로 노태우가 그의 친구이자 매제(妹弟)이다.

1.2. 군인 시절과 하나회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정호용 등과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하였다. 그들과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며 육사 재학 시 성적도 가장 앞서면서 11기의 선두주자로 등극한다.

1963년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정호용 등과 하나회라는 군부 내의 사조직을 결성하였으나 육사 시절부터 위관 때까지만 해도 하나회의 같은 리더그룹이던 전두환과 중령 이상이 되면서 점차 선두를 다투는 경쟁관계에 들어갔다.[1] 이 때문에 김복동은 전두환과 멀어졌으며 또 기질적으로 달라 하나회 핵심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어 이후 "비하나회" 인사로 여겨진다.

이로부터 비롯된 전두환의 견제는 1972년 말 준장 진급심사 대상에서 동기인 전두환과 손영길이 올라가는데 자신이 누락된 것에서 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김복동은 당시 친분이 두터웠던 강창성 육군보안사령관에게 부당함을 호소하였고, 강창성 사령관이 이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여 결국 전두환과 함께 준장에 진급한다.[2]

1979년 전두환, 노태우 등의 하나회황영시, 유학성 등을 포함한 군부에서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김복동은 12.12 쿠데타에는 반대하였다.이로써 까임방지권 획득 이 때 김복동은 전두환의 눈 밖에 나서 예편당할 뻔하였으나 노태우의 도움으로 12.12 쿠데타 직후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전보되었다. 1980년 7월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고 1982년 1월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3. 예편 이후 정치인 시절

그러다가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고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이 구속되자 대타로 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1988년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노태우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견제를 받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反) 김영삼 진영에 섰으며, 결국 실패하자 그 해 가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정주영통일국민당에 입당하여 정주영 후보를 지원하였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이 당선되고 나서는 통일국민당에 이어 신민당[3],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정치를 하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대구광역시 동구갑 지역구에서 재선하였다.

2000년 4월 19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1.4. 미디어에서

SBS에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한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에서 배우 임현식이 김복동을 연기하였다. 제4공화국(드라마)에서는 추가바람.

2.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가

20131014164209.jpg
[JPG image (34.02 KB)]

2013년 국회 진술 모습. 당시 한국 나이로 여든여덟.

1926년 5월 1일 경남 양산시 출생.

양산 통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세월이 하 수상해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보냈다. 그의 언니들은 먼저 시집을 갔다. 1941년, 열여섯이 되는 해에 동네 구장과 반장, 일본인에게 속아 징용으로 알고 정신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대만, 광동성을 거쳐 홍콩, 싱가포르, 수마트라, 인도네시아 자바, 말레이시아, 방콕 등으로 이동하며 성적으로 노예적인 만행을 당하셨다. 일제 패망 후 5년만에 귀국했다. 결혼 했으나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재결합 후에 얼마 못가 남편과 어머니를 떠나보내 홀로 살았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다가 아파트를 보상으로 얻게 되고 이후로는 채소밭 일을 하며 살아오셨다. # 2013년 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세계 여러 곳을 돌며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활동하였다. 1992년 피해자임을 밝히고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나비기금'을 발족시켰다.
----
  • [1] 하나회에서 노태우, 정호용만 해도 이미 소령 진급 때 선두그룹보다 1년이 늦었다.
  • [2]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윤필용 사건이 발생하여 이런 하나회의 인사권 횡포는 전두환의 보안사령관 임명때 까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 [3] 1994년 박찬종신정치개혁당과 김동길의 통일국민당이 합당하여 만든 정당이다. 1995년 자유민주연합에 통합되어 소멸되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2-16 04:03:19
Processing time 0.1334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