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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last modified: 2015-04-15 07:05:47 by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만화가
1.1. 생애
1.1.1. 만화가가 되기 까지
1.1.2. 데뷔
1.1.3. 둘리의 아버지가 되다.
1.1.4. 그후
1.2. 이모저모
1.3. YWCA와의 악연(?)
1.4. 주요 작품들
1.5. 기타 활동
2. 대한민국의 아역 탤런트, 모델
3. 미스코리아
3.1. 1988년
3.2. 1989년
3.3. 2005년
3.4. 2007
3.5. 2011년

1. 대한민국의 만화가


1950년 7월 31일 경상남도 진주시 출생. 일명 둘리아빠. 엄마 아니었어? 한국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 대표작으로는 아기공룡 둘리, 일곱 개의 숟가락 등이 있다. 이 이름으로 남자다. 물론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처음 들어본 사람(특히 어린이)이라면 나름대로 충격받을 수도 있을 내용. (참고 :이진주(만화가))

어린이 만화의 선두주자로 현재 둘리나라의 대표... 어린이 명랑 만화가로 주로 알려졌지만 서민들의 모습과 전쟁의 아픔, 사회적 이슈등을 특유의 서글서글한 그림체로 꼬집어내는 작가로 아기공룡 둘리 연재 당시 일어난 걸프전에 대한 에피소드는 슬프기까지 하다.[1] 이외에도 현실비판적이거나 시궁창스러운 슬픈 이야기 등을 작품에 종종 집어넣는 스타일의 작가였다. 날자 고도리나 다른 작품을 봐도 그저 웃으며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둘리 자체도 겉은 명랑만화지만 머리 굵어지고 다시 보면… 그리고 자투리반의 덧니들은 30여년전에 츤데레 및 여러 오덕적인 재미를 넣은 작품!

1.1. 생애

1.1.1. 만화가가 되기 까지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사고로 다치시고[2] 날품팔이를 하던 시절을 겪고,그 시절 만화가를 한다고 했다가 큰 형에게 죽어라 얻어맞았던[3] 적도 있다. 경상대학교 축산학과를 다니다 입대한 뒤 제대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서울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

1b.jpg
[JPG image (12.45 KB)]

60년 초반에 나온 동물야구왕이란 만화책에 나온 독자 코너에 어렸을 적 김수정이 보낸 그림.(출처는 2012년 6월 8일자 VJ특공대에 나온 고전 희귀만화를 3천권이상 소장한 수집가 오경수가 모은 책)

여러 고생 끝에 74년 만화가로 데뷔했으나 도무지 벌어먹을 길이 없었다.당시만 해도 신촌 대통령이라는 악명으로 유명하던 이영래가 만화가들을 대충 부려먹으면서 공장만화 체제를 갖추며 합동출판사라는 이름으로 만화계를 독점하던 시기였는데,김수정도 여기로 갔으나 무시당하더니만 고향이 같은 강철수를 그나마 편집장이 소개해줘서 문하생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해줬다.

할 수 없이 문하생이라도 하려고 강철수를 찾아갔지만 강철수는 김수정 그림을 보곤 그림은 40점,글은 60점이라며 나가서 농사나 지으라는 모욕으로 거부했고 김수정도 격분하여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고 지금도 강철수와는 그다지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합동출판사를 통하여 만화를 그리게 되지만 이 합동출판사는 일본만화를 억지로 베껴 그리라는 명령을 내려 일본만화를 내던지며 따라 그려야 했다. 이 시절, 이렇게 잊고 싶은 표절작을 그려야 했는데, 덕분에 이 시절 김수정이란 이름으로 나온 만화를 보면 그림체가 지금과 전혀 다른 그림체로 그렸는데 죄다 표절작이니 당연했다.

그것도 권당 2만 5천원을 줬는데 거기에 온갖 세금을 빼내갔다고 한다. 그 돈으로 셋방살이를 홀로 사는 것도 생활비가 부족해 라면이나 끓여먹어야 했고 더불어 이딴 걸 그리고자 만화가를 꿈꾸던 게 아니라서 고민 끝에 아예 만화가를 집어치고 전기인두를 파는 세일즈맨으로 일하게 되었다.그나마 기본급으로 월 10만원을 받았으니 표절 공장 만화가 때보단 훨씬 생활이 나아졌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길,세일즈맨으로서 재능은 최악이었단다(…)게다가 세일즈맨 일보단 시간이 나면 공책으로 그림을 그리며 연습했었는데, 친하게 지내서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던 후배 세일즈맨이 이걸 보고 그림이 아깝다면서 형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몇번이나 말해서(회사 술자리와 개인적으로 김수정에게 찾아와 한잔할때도 간곡하게 권유했다고 한다.) 결국 3달만에 세일즈맨을 때려치고 만화가로 돌아왔는데 지금도 그 후배와 종종 만난다고 한다.[4]

그러나 여전히 만화가는 그릴 곳이 없었다. 다시 표절만화가가 되느니 그림을 그리자하여 애니메이션 하청일을 하게 되었으나 한달도 못돼 때려친다. 역시 창작없이 그리라는 걸 계속 그리자는 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그래도 훗날 둘리 애니메이션 제작을 총지휘할 수 있게 된 건 이 경험도 한 몫을 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생활 속에 당연히 가난은 늘 붙어있었다. 이러다 보니, 당시 가난 속에 결혼을 약속했던 동거녀(전 아내)가 처가인 부산으로 돌아갔고 겨우 차비를 빌려서 아내의 친정집으로 가자, 아내의 오빠되는 이가 나와서 "돈도 못 버는 만화가 때려치지 않으면 내 동생 못 데려간다!"일갈했다고 한다. 이에 김수정의 대답은 확고했다. "당신 동생은 포기해도 만화는 포기못해!" 이 말하고 그냥 나와버렸고 집으로 올 차비도 없어서 노숙을 해버렸다고 한다... 어쩌면 이 때의 갈등이 나중에 이혼 및 여러가지 가정적 일을 예고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 1000원으로 서울까지 돌아올 차비 700원을 쓰고 300원으로 라면사서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이런 생활고 속에서 틈틈히 만화를 어찌 그리지만 겨우 연재를 해도 돈도 못 받기 일쑤라서 돈이 없으니 당시 쌍문동 공동묘지 앞에 자리잡은 달동네같은 곳에서 살아야 했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만화가 동료인 김동화(본명:김종철)를 1976년에 어찌 같이 연재하면서 서로 만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둘 다 턱없이 가난하던 시절이라 한잔 할 돈도,커피 한잔 살 돈도 없어서 어찌 시간이 나면 찾아온 김동화와 같이 공동묘지 근처 풀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만화와 여러 이야기를 했다고 회고했다.김수정이 반대로 김동화가 살던 곳으로 찾아갈때도 마찬가지라서 마포의 한 쪽방을 빌려 겨우 살아가던 김동화도 맞이할 곳이 없으면 근처 아파트 단지 풀위에 누워서 서로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지도 몰랐다고…

김동화가 회고하길, "당시 수정이에게 하늘 바라보면서 배고프고 돈 없을 땐 만화가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 란 말을 하자. 수정이는 피식 웃으면서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하더라. 야, 돈을 보면 돈밖에 안 보이지만 작품을 보면 계속해서 기억되기 마련이야. 지금 생각하니 그놈 참 명언 잘 남긴거다."

1.1.2. 데뷔

결국 어찌어찌하여 79년에서야 비로소 결혼을 치뤘고, 비로소 자신의 첫 작품[5] 이라고 할 1남 4녀 막순이를 연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만활 연재할 당시, 대선배인 만화가인 故 길창덕 화백이 만화가들 모임에서 그를 보더니 차갑게 한 마디 하는 거 아닌가? "자네, 일본 만화 어느 걸 베꼈지?" 이 말에 김수정은 역시 확고하게 대답했다. "선생님, 내가 베꼈더라면 당장 만화가를 때려쳤습니다." 이 대답에 길창덕 화백은 웃으면서 "그래,역시 그렇지.자네의 독창적 그림체였지? 미안하네. 한번 확인해보고자 일부러 차갑게 말해보았네." 그를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길창덕 화백의 인정이나 꾸준히 작품을 그리긴 해도 그다지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덤으로 대머리 캐릭터를 그렸다가 80년 초반, 전두환을 연상케한다는 죄목으로 작품도 강제 종료되는 일까지 겪게 된다.[6] 그나마 O달자의 봄으로 그럭저럭 인기를 모으며 영화화도 되었기에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때,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모처럼 외식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3년 아기공룡 둘리를 보물섬에 연재하게 된다.[7]

1.1.3. 둘리의 아버지가 되다.

하지만 둘리는 연재 초기에는 그렇게 인기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1983년 8월 24일 오후 2시쯤, 무더운 여름에 아기공룡 둘리 6화를 아르바이트하는 문하생들[8]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원고를 다 끝낼 무렵에 수고했다면서 문하생에게 시원한 콜라라도 사오라고 심부름을 했는데 이 친구가 그만 뭔 심보인지 콜라를 엄청 흔들면서 가져왔던 것…당연히 콜라를 따려니까 콜라가 솟구치면서 원고까지 흠씬 젖었고 김수정과 다른 문하생들은 충격과 공포에 비명을 질러버렸단다(…) 그 문하생은 그 날부터 아예 종적을 감추었는데 이 에피소드는 바로 둘리에서도 쓰이게 된다.(고길동이 콜라 사오라고 심부름하자 둘리가 콜라를 마구 흔들며 가져와 당연히 솟구친 콜라에 고길동이 흠뻑 젖는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다시 원고를 그려야 했는데 이 때부터 이상하게도 인기가 있으면서 보물섬 표지를 장식했고 인기 투표라든지 여러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인기를 끌게된다. 그리고 둘리를 절대로 대본소 업체에 팔지 않고 당시에는 거의 유일한 연재만화 판매 업체인 요요 코믹스로 단행본을 냈는데 요요 코믹스 측이 가장 많이 팔린다면서 꽤나 두둑한 판매 수익비를 줬을 때 태어나서 만화가로서 이렇게 돈 많이 벌었구나 비로소 느낌이왔다고 회고했다.

아기공룡 둘리가 과거 TV애니메이션으로 나왔을 때, 자신의 작품 성향을 찾아보기 힘든 아동용 애니로 탈바꿈 된 걸 보고 "이런 건 둘리가 아니야."라며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에 대한 반발인지 베이비 사우르스 돌리에서 더 시궁창스러운 이야기와 성적인 코드 등을 도입했다가 제대로 흑역사 취급을 받게 된다.

아시아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이혼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따른 스트레스도 엄청났으므로 그런 어두운 상황이 만화에 투영된 것이라고 한다. #

얼음별 대모험을 만들 때 즈음 "둘리는 어디서 살아요?" 라는 어떤 아이의 편지를 받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고. [9]

아기공룡 둘리는 그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 준 최고의 히트작이지만, 아기공룡 둘리의 인기 때문에 아리아리 동동,그렁! 쩔그렁! 요요[10],라 볼라 같이 둘리와 같은 시기에 연재하던 다른 작품이 묻혀버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본인도 그 점에 대해서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고.[11]

대표작들 중 일곱 개의 숟가락은 드라마화, 쳐X는 개그프로의 꽁트화가 되어서 인기를 끌었다. 09년 새로이 제작되는 아기공룡 둘리 TV 애니메이션은 아동에게 충실한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라고 언론에서 밝혔는데 거짓말이었다. 과거 김수정 스타일대로 제작되어서 어른도 즐길 수 있는 내용이다.

특유의 긴 파마머리로 유명하며 작중 가난한 만화가 김파마 로 자신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 파마 머리의 유래는 80년대 장발 단속 당시에 시도한 자신 나름의 저항이었다고 한다. 실제 머리는 긴데 파마 때문에 짧게 보여서 장발 단속을 피할 수 있어서라고 하는데, 다른 인터뷰에선 장발로 머리를 쥐파먹듯이 잘린 적도 겪었다고 했다.[12] 현재는 이 머리를 포기했다.

1.1.4. 그후

하지만 90년대에는 만화가 활동을 멈추고 둘리나라 회사 대표로서 회사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사실 90년대 중후반에 새 만화 연재도 기획했지만, 출판사들이 베이비사우루스 돌리의 실패 때문인지 둘리는 한물갔다면서 연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여 아쉬움을 나타낸 적도 있다. 1999년에 스포츠서울에서 아리아리동동의 리메이크판을 잠깐 연재한적이 있긴 한데, 김수정 골수팬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퀄리티로 별 주목도 못받고 한달도 채안돼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베이비사우루스 돌리보다도 더한 진 흑역사... (돌리는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도 은근 많지, 아리아리동동 리메이크판은 정말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뒤로는 만화 연재는 완전히 포기하신듯 하다.

그렇긴 해도 둘리나라 운영하면서 기업인으로 더 확실히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한다.[13]

1.2. 이모저모

  • 선릉역 주변에서 자주 보인다고 한다.

  • 독실한 불교도인듯 하다. 덕분에 아기공룡 둘리 만화책 작중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윤회'가 언급되면서 고길동의 전생(?)을 표현한듯한 동물화된듯한 고길동 머리를 한 동물들이 보여지는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였다. 90년대 아기공룡 둘리 극장판에서도 고길동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읊는 장면이 있던걸 보면 이 영향일듯. 그래서 "그는 언젠가 자신이 겪은 아픔과 경험, 여기에 먼저 살았던 선인의 지혜를 불교적인 색채로 결합시킨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이라는 인터뷰]를 한적도 있다.

  • 그리고 동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950년생으로 2015년 현재 66세! 그러나 세월을 역시 이길 수 없는지 머리칼도 많이 빠져서 그 특유 상징이던 파머 머리가 아니다.

  • 84년작인 자투리반의 덧니들은 요즘 보면 아주 모에 및 츤데레라고 해야할 정도로 오덕들이 좋아할 소재이다. 여주인공 양을채는 토라도라의 여주인공 아이사카 타이가처럼 츤데레에 작은 키에 빈유(...) 놀랍게도 30여년전 만화임에도 작다고 한마디해준 남주인공 석태에게 분노의 공격을 가하고 석태가 부랴부랴 "정말이야 작다는 건 바스트가 작다는 것도, 히프가 작다는 것도 아니야! 믿어줘!"라는 대사를 하며 변명하려 든다! 극중 어린 외모에 작은 키에 컴플렉스를 가져 방에 홀로 들어가 여자수영복 입고 괴로워한다든지 여러 장면은 요즘 봐도 어색한 게 없을 정도!

  • 1990년에 첫부인과 이혼한후 1996년에 현재의 부인을 만나 재혼했다. 나이 차이가 무려 20살(...)이나 난다고.

  • 2015년 4월 15일부터 레진코믹스에서 김수정의 옛 만화 일부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자! 고도리, O달자의 봄, 인부부, 일곱 개의 숟가락 등 4편.

1.3. YWCA와의 악연(?)

이 분도 YWCA에게 무진장 괴롭힘 당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꽤 맞는 말이다. 얼음별 대모험이 개봉할 당시 인터뷰하던 씨네21같은 잡지에서도 그냥 YWCA 이름으로 통일해 보도했다. 그 정확한 이름은 YWCA 서울모니터회 대중문화 감시반라고 하지만 일단 정확한 증거는 없는 상태. 일단 해당 단체 소속인 부분은 맞는 모양이지만...

확실히 이 단체에게 엄청 시달림을 받았었다. 둘리가 저질 불량만화로 매도당하면서 1985년에는 여기서 소환하여 "이렇게 그리지 말라고~" 하자 열 받은 나머지 나중에는 "이렇게 그리면 어쩔 거냐? 날 처벌할 거냐!" 이런 마음으로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내용도 넣었다고 하신다.[14]

이를테면, 희동이 꼬추를 때린다든지 하는 장면이 들어갔는데, 검열이니 뭐니 이들 잔소리를 피하고자 환경오염 때문에 돌연변이 무가 살아 움직이는 꿈의 세계에서 희동이 바지를 벗겨 꼬추를 때리면서 자연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시도를 했다. 그야말로 교훈적인 내용을 추가하는 고단수 명안(…)을 내놓아서 이 단체들이 별다른 말도 못했단다. 존나좋군?

성교육 만화인 여운 쪼꼬미 까지도 저질불량만화로 매도당했다.[15] 더 골때린 건 7년 뒤에는 이 만화를 추천만화로 선정하는 통에 아주 열터져 씩씩거리셨단다. 진정한 이뭐병. 1997년 7월 27일 딱 1회하고 사라진 애니엑스포 행사[16]에 나와 귀여운 쪼꼬미 홍보 부스에서 사인회도 하셨는데,당시 사인을 받은 어느 이가 "그 단체에게 시달림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대체 어느 정도였나요?" 라고 질문하자, 방금 전까지 미소지으면서 답변하던 얼굴이 확 달라지면서 "거기 이야기도 하지마세요~"라며 고개를 돌렸기에 입을 다물었던 적도 있었다. 얼마나 사람 속을 긁어놓았으면….

사실 그 시절은 '심의'가 아니라 '검열'이었고 성적인 내용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내용도 당연히 포함됐다.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검열하면서 작가들은 만화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 그린 게 아니라 검열 때문에 못 그렸다... 둘리 애장판 작가 인터뷰를 봐도 굉장히 당시 검열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걸 알 수 있다.

1.4. 주요 작품들

데뷔 : 1975년 소년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 당선(폭우)

1.5. 기타 활동

  • 1995년 : (주)둘리나라 설립, 우리나라 최초 만화우표(둘리우표) 발행
  • 1996년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제작
    좋은 만화영화상 대상수상 - 문체부 주관
    한국영상대상 애니메이션상 수상 - 일간스포츠 주관
    영화평론가상 수상 - 한국 영화평론가 협회 주관
  • 2000년 : (사)한국만화가협회 회장
  • 2008년 : NEW 아기공룡 둘리 총 감독

2. 대한민국의 아역 탤런트, 모델



지금까지 각종 CF와 모델 활동 경력이 있으며, 최근에는 드라마까지 출연하였다. 대표적인 경력으로는 키즈 패션잡지 아망의 모델, 베스트 베이미 잡지 모델, 마크 제이콥스 패션쇼 모델이 있으며, 유명 CF로는 온수기, 두부, 인터넷 쇼핑몰이 있다. 드라마로는 2008년 내사랑 금지옥엽과 2009년 두 아내가 있다. 예능 분야에서는 KBS 스타골든벨에서 일명 정답소녀로 큰 활약을 하였다.

2009년 SBS 연기대상 여자 아역상을 수상하였다.

장래희망은 가수라고 하며, 최근 MBC 아름다운 콘서트에서 가수 학기와 함께 CF 삽입곡 '비타민'을 부르며 노래 실력을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3.1. 1988년

텍사스 진

3.2. 1989년

전북 선

3.3. 2005년

하와이 진, 혼혈

3.4. 2007

시카고 진

3.5. 2011년

1993년 10월 10일 출생. 2011 미스 LA 진에 입상하여 본선에 출전, 미에 입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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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연재 만화의 특성을 살려(?) 에피소드 소재 자체를 당대의 핫이슈와 곧잘 엮어내기도 했다. 위 이라크 에피소드나, KAL기 에피소드 등등… 시사 만화가로서의 센스도 지니고 계신 듯.
  • [2] 이전 글에는 사고로 잃었다고 나오는데 잘못된 정보이고 김수정이 만화가로 성공할 때까지 살아있었다고 나왔는데 이것도 잘못된 정보. 김수정이 어린 시절에 사고로 다쳐 집에서 지내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만 아버지는 유일하게 집안에서 만화가가 되겠다는 자신을 믿어주고 꿈을 잃지말라며 격려해주고 만화가가 되겠다는 아들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돌아가신 지금은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고 한다.(둘리 애장판 1권 작가 인터뷰 및 월간 보물섬 1989년 12월호 참고)
  • [3] 5~60년대에 '만화'라는 것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는지 기억해보자. 그나마 형을 말리던 게 아버지였다. 어머니나 형들은 거지 꼴로 사는 것과 같다고 화냈지만 아버지만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며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던 그를 막지 않았기에 자신이 만화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 [4] <한국의 만화가 18인> 참고.
  • [5] 1990년 보물섬에 회고하길,이전에 그리던 만화들은 자신의 작품이 아닌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리던 작품이라고 했다.작가에게 거론도 하기 싫은 흑역사였던 셈
  • [6] 그 시절에 무척 흔하던 일이다. 시사만화가 김성환 화백 작품 고바우 영감은 1950년대부터 대머리 캐릭터였음에도 이 당시 새해 인사한다고 큰절하며 돋보이는 대머리가 전빠박을 비하한다고 신문에 연재못했으며 연기자인 故 박용식이 전두환 닮았다고 방송활동 금지먹은 것은 전설이 된 실화이다.
  • [7] 연재 전에 둘리를 친구인 만화가 김동화에게 보여줬더니만… 반응은 "뭐야? 이 악어 새끼는?"… "야! 공룡이다. 이게 어디가 악어로 보이냐?" 김동화는 "이런 거 인기 못 끌 거 같다. 우리 내기하자." 말했고 몇 해 뒤에 그 내기로 술 한판 얻어먹었단다.
  • [8] 그런데 한국의 만화가 18인같은 책자에선 문하생이라고 나오는데 둘리 애장판에서 작가 인터뷰로 난 문하생을 쓴 적이 없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문하생을 고용한 게 아니라 정확히는 후배 만화가들이나 출판사 사람이 톤을 붙이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하지만 김수정이 여러 곳에서 이 콜라 이야기와 문하생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이것은 확실한 사실인 듯
  • [9] 기억에 의존한 내용이므로, 관련 인터뷰 등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정요망
  • [10] 이건 지금 보면 일본만화 닥터 슬럼프를 참고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여자아이 로봇을 두고 벌어지는 소동은 꽤 많으며 요요는 표절작이라고 하기에는 아리송할 정도로 되려 노골적인 트레이싱과 표절까지 벌인 경우가 있었다. 소년중앙에 연재된 유세종의 말괄량이 초인소녀 삐삐같은 경우, 자세한 건 닥터 슬럼프 항목 참고.
  • [11] 아리아리 동동의 연재가 중단된 이유는 당시 편집장의 "둘리보다 재미 없어." 라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 [12] DC인터뷰에선 단속을 피했다고 하는데 한국의 만화가 18인에선 김수정이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당시 경찰에게 머리를 억지로 잘리던 걸 회고했다…
  • [13] 1998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둘리나라로 벌어들인 수익은 200억이 넘었다고 한다. 여담인데 극장판 얼음별 대모험은 그다지 수익을 얻지 못했는데 항목을 참고할 것.
  • [14] YWCA 국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도 있다. TV 인터뷰에서도 당시 80년대 수준으로 둘리 일당의 악동 행위는 충분히 불량아, 문제아의 영역이었다고. 당장 현실에서 저런 자식 키우라면 충분히 문제아이긴 하지만... 기저귀만 입고 있는 희동이가 외설적이라는 딴지는 충공깽이다. 1985년 당시 김수정 화백은 이런 지적에 너무나도 열뻗쳐서 "당신들은 아기 기저귀 갈아입힐 때도 외설적이라 생각하시나요?" 라는 말로 반격했더니만 한다는 소리가 일상과 만화는 다르다는 말같지도 않은 이유를 들먹였다고 한다.
  • [15] 쪼꼬미 자체가 당시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성교육 만화이기도 했지만(...)
  • [16]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 및 미국 애니메이션을 원어로 유료 상영까지 했다. 건담 F-91이나 지온의 잔광, 메모리즈같은 애니가 상영했는데 마크로스 플러스는 상영 예정을 잡았다가 뮨을 범하려는 장면이 심의에 걸려서 상영취소되었다.그것도 상영예정 날에. 덕분에 많은 항의에 환불까지 있었다. 지온의 잔광 상영 때도 자막이 안 나오고 끝부분이 먼저 나오고 처음 부분이 뒤에 나오는 상영 사고가 벌어져 환불이 벌어졌었다.
  • [17] 작중 등장하는 김파마의 작품. 애니화에 성공했는데 TV를 켠 순간 전봇대 변압기가 나가서 둘리는 방송을 못 봄.
  • [18] 성교육 만화. 비록 김수정 화백의 둘리식(?) 그림체지만 성교육 만화란 특성상 아동들의 성기 노출 등이 자주 나왔다. 요즘이면 아청법 크리. 참고로 애니화되어 MBC에서 방영 되었지만 시청률이 그리 나오지는 않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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