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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last modified: 2015-03-11 15:26:4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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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때 미남소리 들었을 것 같다. 자신을 소개할 때 키크고 피부도 흰..이라는 구절도 있고 배구선수였다는 이력도 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전문 선수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운동을 잘했다고. 이래저래 한국 문학계의 먼치킨

김승옥! 순천고 9회 김승옥! 아따~ 무진기행 김승옥.
- 해태, 응답하라 1994에서 여수 아줌마와 서로 고향 자랑으로 싸우며

Contents

1. 개요
2. 소설
3. 영화

1. 개요

소설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니혼대 법학부를 졸업한 도쿄 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오사카에 이민 와 있던 한의사의 딸이었다. 태평양 전쟁을 피해서 1945년 쯤에 두 사람은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주했고, 종전 이래로 거기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1948년 여순 반란사건의 와중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고 한다. 1952년에 월간 <소년세계>에 동시를 투고하여 게재되어 될성 부른 떡잎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달궁으로 유명한 정인과 더불어 순천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하나.

학창 시절엔 소설에 광적으로 빠져 있었던 모범생으로, 순천고 전교회장을 맡은 적도 있다고 한다.[1] 원래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으며 문학은 취미로만 즐기려고 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만난 소설가 지망생들 중에서 자신만큼 소설을 많이 읽은 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잠시 나아져서 김승옥은 동네 책방을 순회하며 원없이 소설을 읽어댔고, 어머니가 월말마다 책값을 정산해줬다고 한다.

1960년 서울대학교 불문과에 입학하자마자 4.19를 겪게 된다. [2] 알베르 카뮈이너 마리아 릴케의 에세이를 통해서 "문학의 심상치 않음"[3]을 알게 된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서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 겸, 군대 가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글을 쓸 수 있는지 시험도 해 볼 겸 해서 같은 처지였던 이청준을 꼬드겨 함께 신춘문예에 투고한다. 그 결과 김승옥의 명연습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었고, 이청준은 혼자 쓸쓸히 군대를 갔다고 한다. (...) [4] 대학 재학 중 한국경제신문에 <파고다 영감>이라는 4컷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김승옥은 김현, 김치수, 최하림, 염무웅, 서정인 같은 동료 문인들과 함께 "문시대"라는 동인을 만들기도 하였다. "건","무진기행", "차나 한 잔", "역사" "울, 1964년 겨울" 같은 걸작들이 이 동인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중에서 무진기행은 김승옥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 받지만 김승옥 자신이 생각하기엔 진부한 구성의 작품이고, "산문시대"의 동료들도 이게 무슨 소설이냐, 차라리 찢어버리라고 면박을 줬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와바탸 야스나리설국과 비교 되기도 하는데, 김승옥은 어떤 프랑스 사람이 두 작품을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설국을 읽지 않았었다고 말한다. 무진기행은 지금도 습작을 하는 지망생들이 한번쯤은 필사해보는 소설 중 하나다. 문장력 하나는 요 근래까지도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설국과 굳이 비교해보자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너무 느리고 작중 내내 감상에 젖어있는 반면 무진기행은 전체적으로 속도가 빠르다.

대학교 졸업반 시절 작성했던 울, 1964년 겨울로 사상계에서 주최하는 당대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제 10회 동인문학상을 최연소 (만 24세)로 수상하며 문학계의 기린아로 떠올랐으며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유명세를 탄다. [5] 해방 이후에 한글로 정규 교육과정을 시작하여 이전 세대 작가들과 차별화된 한글 문장력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김승옥, 이청준, 최인훈 등의 문인들을 흔히 4.19 세대라고 부르는데, 이들 중 '감수성의 혁명'[6] 이라는 평을 들으며 가장 먼저 문단에 충격파를 던진 사람이 김승옥이었다.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불미스러운 일[7] 때문에 출판사에 인세를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약서를 젊은 나이에 썼었고, 그 때문에 소설로는 더 이상 생계를 유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로 발길을 돌린다.[8] 자신의 작품 무진기행을 영화 시나리오[9]로 각색하기도 했고, 김동인감자을 영화화 하기도 했다. 재능은 어디 가질 않는지 당시 대종상 각본상까지 받았을 정도.

문학 평론가 어령은 김승옥이 돈 때문에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 해서 고급 호텔의 방을 빌려서 김승옥에게 내주고,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소설 한 편을 완성해달라고 하였다. 김승옥은 비싼 호텔 값과 밥 값을 이어령에게 청구시키는 게 미안하여, 부담감 때문에 제대로 소설을 쓰지도 못하고, 결국 호텔에서 달아나 버렸었다. 이어령은 달아난 김승옥을 다시 한 번 통조림(항목 2)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다른 호텔의 방을 두 개 빌려놓고, 한 방에는 김승옥이 들어가서 소설을 쓰게 하고, 다른 방에선 이어령 자신이 사실상 발행인으로 있던 학사상의 편집부장과 편집 기자를 김승옥의 원고를 정리해준다는 명분으로 들어가 있게 해서 김승옥이 달아나지 못하게 감시했다고 한다(...).

김승옥은 이 때 '서울의 달빛'이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을 구상하고, 프롤로그 격으로 짧은 분량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이어령은 김승옥이 서울의 달빛의 '0장'에 해당된다고 하며 보내온 원고를 "김승옥이한테서 다음 제1장의 원고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은 것이다. 이 0장 만으로도 단편 소설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으니……" 그러고는 본문 맨 처음에 나와야 할 0장이라는 낱말을 제목에 붙여서 단편 소설로 발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단편 소설이 된 "서울의 달빛 0장"은 초대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의 영예를 김승옥에게 가져다주었다. 김승옥은 훗날 "이선생의 예언대로 나는 그 다음 제1장을 오늘 날까지 아직 못 써내고 있다."라고 하며 당시를 추억한다. [10]

"서울의 달빛 0장" 이후로 한참 동안 소설을 쓰지 않다가 "먼지의 방"을 동아일보에서 연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주류언론의 작태에 염증을 느끼고 연재를 중단한다. 이 작품은 김승옥이 최근에 다시 쓰고 있다고 한다. 2010년에 출간될 계획이라고 한다. 허나 작가 본인의 건강 문제로 아직까지도 신작은 없다(...).

1981년에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나서 기독교, 정확히는 개신교로 개종한다. 일설에 의하면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가격하고 나서(...) 눈앞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을 만나고나서부터는 더 이상 소설 쓰기를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만약에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얼마 안 가서 소설 쓰기를 재개했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아내의 수기를 보면 김승옥도 나름 잘 나가는 동안 장난아니게 방탕한 생활을 했다(...). 본래 술을 굉장히 즐기는 주당이었지만 개신교도의 길을 걷게 되고 또 2003년 부터 뇌졸중으로 인한 투병 생활을 해서 이후엔 거의 술을 끊었다고 한다.

뇌졸중으로 투병하다 병마를 이겨내고 복귀해 '서울, 1964년 겨울'의 연극 극본화에 참여했다고 한다. 워낙에 신출귀몰한(...) 사람이니 혹 팬이라면 다음 작품을 빌어 보자. 안타깝게도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를 겪고 있다고.

김승옥의 등장이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김훈의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70년대 기라성 같은 청년작가 김승옥이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발표했을 때, 아버지는 문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 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모두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다.
"너 김승옥이라고 아니?"
"몰라, 본 적이 없어. 글만 읽었지."
그들은 "김승옥이라는 녀석"의 놀라움을 밤새 이야기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새벽에 아버지는 "이제 우리들 시대는 이미 갔다"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식은 안주를 연탄아궁이에 데워서 가져다 드렸다. 아침에 아버지의 친구들은 나에게 용돈을 몇 푼씩 주고 돌아갔다.

여담으로 40여년 전에 단편소설에서 귀요미라는 단어를 처음(?) 썼다. 귀요미 항목 참조.

2005년 EBS 문화사 드라마 <지금 마로니에는>에서 김승옥과 당시 시대상을 다뤘다.

2014년 10월, 다른 문학 원로인 이호철 작가, 평론가 전규태 전 교수랑 같이 힘을 합쳐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냈다.

2. 소설

연도제목소설연재비고
1962생명연습단편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1962단편산문시대
1962환상수첩중편산문시대
1963역사단편문학춘추
1963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단편산문시대
1963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단편산문시대
1964무진기행단편사상계
1964차나 한잔단편세대
1964싸게 사들이기단편문학춘추
1965서울 1964년 겨울단편사상계제 10회 동인문학상 수상
1965들놀이단편청맥
1966다산성중편창작과 비평
1966염소는 힘이 세다단편자유공론
1966빛의 무덤 속장편문학연재중단
1967내가 훔친 여름중편중앙일보
196860년대식중편선데이서울
1968동두천장편신동아연재중단
1969야행단편월간중앙
1969보통여자장편주간여성
197050년 후 Dπ9(디파이나인) 기자의 어느날상편하편단편동아일보
1972그와 나단편지식산업사콩트집 위험한 얼굴 수록
1977서울의 달빛 0장단편문학사상제 1회 이상문학상 수상
1977강변부인장편일요신문
1979우리들의 낮은 울타리단편문예중앙
1980먼지의 방장편동아일보연재중단

3. 영화

연도제목분야비고
1967안개각본무진기행 각색
1968여(女)각본
1968감자연출김동인의 감자 각색
1968장군의 수염각본이어령의 장군의 수염 각색
1974어제 내린 비각본
1974황홀각본무진기행 각색
1975내일은 진실각본
1975영자의 전성시대각본
1976여자들만 사는 거리각본
1977겨울여자각본
1979태양을 훔친 여자각본
1979갑자기 불꽃러럼각본
1980강변부인각본강변부인 각색
1981도시로 간 처녀각본
1986무진 흐린 뒤 안개각본무진기행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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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삼형제가 모두 순천고와 서울대학교 코스를 밟은 엘리트 집안이다.
  • [2] 서울대 60학번은 한국 문학에 한획을 그은 학번인데, 김승옥과 문시대 동인들 외에도 독문과의 이청준, 미학과의 김지하등이 포함되어 있다.
  • [3] 김승옥이 인터뷰에서 쓴 표현
  • [4] 이 둘의 인연은 이후에도 이어지는데, 군대를 제대한 이청준이 1965년 사상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자 김승옥은 그해 사상계가 주최하던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친구를 좌절시켰다. (...) 하지만 등단 후 부지런히 작품을 발표한 이청준은 2년 후 1967년 동인문학상을 받아 친구를 따라 잡았고, 10년 가까이 문학을 멀리하던 김승옥이 1977년 제 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자 다음해 제 2회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승옥이 타고난 천재라면 이청준은 꾸준한 장인이라 할 수 있다.
  • [5] 당시 받은 상금으로 막내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었다고 한다.
  • [6] 문학 평론가 종호의 표현.
  • [7] 본인 및 출판사 역시 노코멘트이므로 정말 아무도 모른다(...).
  • [8] 다른 절필 이유로는 친한 친구인 김지하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는데 편하게 글이나 쓰고 앉아있을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문인들을 이끌고 김지하 구명운동을 벌인다.
  • [9] 1967년 작품인 '안개'라는 영화다.
  • [10] 상금과 관련된 그의 기구한 일화는 여기서도 계속되는데, 당시 김승옥은 '초우'의 감독이었던 영화감독 정진우에게 시나리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선금을 받은 상태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며 원고를 넘기지 못한 상태였고, 열받은 정진우는 이상문학상 상금에 대해 가압류를 걸었다. 김승옥을 아끼던 이어령은 정진우를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김승옥은 시상대에서 돈이 들어있지 않은 빈 봉투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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