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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last modified: 2015-03-20 09:05:16 by Contributors


창원 LG 세이커스 No.5
김시래
생년월일 1989년 3월 22일
국적 한국
출신학교 명지고-명지대학교
포지션 가드
신체 사이즈 178Cm, 70Kg
프로입단 2012년 겨울 드래프트 1번(울산 모비스 피버스)
소속팀 울산 모비스 피버스(2012~2013)
창원 LG 세이커스(2013~ )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2.2. 울산 모비스 시절
2.3. 창원 LG 시절
3. 기타


1. 개요

한국의 농구 선수.농구대잔치에서 시래대잔치 라는 말을 들으며 명지대학교의 돌풍을 이끌었던 포인트가드로 모비스에 입단한 후, 2013년부터 창원 LG 소속으로 뛰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포인트가드로 등장한 선수.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명지고 시절부터 촉망받는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알렸지만 작은 키 때문에 한계도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로 중학교 때는 작은 키 때문에 농구를 그만둘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명지대에 진학한 후, 뛰어난 패스 실력과 경기 조율을 인정 받아 일찍부터 대학무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알렸다. 2010년 한국대학농구리그 단국대와의 경기에서 10득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며 대학농구리그 첫 트리플 더블러가 되었다.

김시래가 자신의 존재감을 급격하게 드러낸 것은 2011년 농구대잔치에서였다. 명지대는 김시래의 손 끝에서 파생되는 공격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고, 급기야 돌풍이 태풍이 되면서 기존 강호 대학팀을 모두 누르고 결승에 오르는 대형 사고를 쳤다. 비록 결승에서는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상무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명지대 농구부 창단 이래 최고의 성과를 냈고, 그 해 농구대잔치의 별명을 시래대잔치로 만들 정도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MVP는 우승팀인 상무의 함지훈에게 돌아갔지만 김시래는 득점 어시스트 수비부분에서 수상을하며 농구대잔치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드래프트 직전 대회에서 미친 활약을 보이면서 김시래는 자연히 유력한 로터리 픽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명문대를 나오신 김일두에게 디스당했다.

2.2. 울산 모비스 시절

드래프트를 앞두고 최대어로 꼽히는 선수는 건국대학교최부경명지대학교의 김시래 두 명이었다. 아무래도 김시래가 키가 작기 때문에 대학 4년간 인사이드에서 맹활약한 최부경이 더 유력해 보였지만, 1순위가 모비스로 낙점이 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함지훈을 가진 모비스는 굳이 최부경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고, 그보다는 양동근의 후계자가 더 급했다.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모비스의 선택은 김시래였고, 그렇게 김시래는 모비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모비스에서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2012-13 시즌 정규 시즌에서는 썩 인상적인 활약은 선보이지 못했다. 시즌 초반에는 주전으로도 나갔지만, 피지컬에서 한계도 보였고, 대학 시절의 센스있는 패스도 나오지 못했다. 이 때 붙여진 별명이 시래기,김시래기로 팬들에게 이전에 모비스에 상위지명되었으나 별 활약없이 SK로 트레이드당한 김학섭[1]의 전철을 밟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이후 점차 적응을 하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정규시즌에서는 모습은 주전보다는 식스맨에 더 가까운 정도. 다행히 모비스의 전력이 강해서 김시래의 약점이 잘 드러나지 않기는 했지만, 결국 신인상은 최부경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런데 PO 들어서 김시래는 상당히 기량이 는 모습을 보였다.시래파커! 양동근의 뒤를 받치는 가드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 것. 특히 챔피언 결정전에서 4경기 모두 나와 30분 넘게 뛰면서 평균 10득점 5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신인답지 않은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우승에 한 몫 거들었다. 그러면서 유망주로서의 위상도 다시 회복했고, 이대로면 모비스에서 양동근의 후계자로 육성되겠구나 싶었지만...[2]

우승 다음 날 트레이드가 발표되었다.

2.3. 창원 LG 시절

2012-13 시즌 모비스는 선수층, 특히 골밑을 보완하기 위해 KBL에서 완벽하게 검증된 골밑 자원인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을 창원 LG로부터 트레이드 영입했다. 이 때 모비스가 추후에 무언가를 내주기로 한 것은 발표가 되었는데, 애당초 알려진 것은 향후 세 시즌동안의 1순위 지명권이었다. 그런데 이 때 실제로 합의된 것은 세 시즌동안의 1순위 지명권 또는 김시래였고, 챔프전에서 김시래의 활약이 예상 밖으로 좋은데다가 모비스의 전력 구성상 세 시즌 내에 로터리픽이 걸릴 확률이 적다고 판단한 LG는 김시래의 이적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렇게 김시래는 LG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반대로 모비스는 우승을 위해 1순위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셈이 되었다.

2012-13 시즌 챔프전에서 보여준 재능이 과연 이어질지가 관심사였는데, 일단 2013-14 시즌 초반 김시래는 상당한 역량을 보여줬다. 두 자리 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LG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완전히 정착한 모양새. 오히려 모비스 시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약간 틀에 박힌 유재학식 농구보다는 자유롭게 풀어줘서 활약하는 김승현. 전태풍 스타일인듯 하다.

3. 기타


디씨 농갤 한정 별명은 앞에 언급된 바와 같이 시래기(...) 정줄놓은 플레이를 할 때마다 가차없이 불려지며,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다. 2013-14 시즌에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경기에서 가비지 타임에 공을 소유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버저비터 3점을 작렬시켜서(...)[3] 갤러리 지분을 독차지하며 까이기도 했다.

모비스 시절인 프로 1년차때, 올스타전에서 여장을 했던 슬픈 과거 [4] 가 있다. 게다가 오렌지 캬라멜의 '립스틱'에 맞춰 춤까지 췄다!
이름하여, '오렌지 시래멜'. 김시래 여장이라고 연관 자동검색어로 뜨는 바람에 모를래도 모를 수가 없다.


영원히 고통받는 김시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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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후 이적후에도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젊은 나이인 30세에 은퇴, 2012년부터 모교인 전주 남중학교의 코치를 맡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 [2] 챔피언 결정전 MVP는 비록 4차전에서 맹폭을 퍼부은 양동근이 가져갔지만, 그 때 양동근의 활약만 아니였으면 김시래가 MVP를 받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 [3] 전자랜드 선수들은 수비를 포기한 채 경기를 끝내려던 상태였다.
  • [4] 당연히 본인은 흑역사로 생각. 인생의 오점이라며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라디오에서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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