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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last modified: 2014-02-15 15:55:4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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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時習,1435 ~ 1493

Contents

1. 일생
2. 전설
3. 관련 항목


1. 일생

조선 전기 세종-세조 치하의 문인,학자.
본관은 강릉, 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어릴적부터 매우 총명하여 만 세살때 시를 지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가 다섯살 때에는 세종대왕이 그를 친히 불러 시를 짓게하여 감탄했다.당시 세종은 비단 50필을 상으로 주었는데 단,이 비단을 모두 홀로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과연 이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가 궁금했던 모양인데 별거아닌라는 투로 즉석으로 비단을 서로 묶어서 엄청 길게하곤 그냥 그것을 질질 끌면서 가버렸다나...비단이 망가질텐데[1]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계유정난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고 한다. 방랑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그는 벼슬길에 뜻이 없었는지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다른 기록에선 17살에 과거에 응시했다가 불합격되는 통에 너무 오만했구나...뉘우쳐 절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던 도중에 찬탈 소식에 울분을 토하며 머리를 밀고 승려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456년 성삼문이 극형에 처해졌을 때 한밤중에 시체를 수습해 몰래 아차고개 남쪽에 묻고 장사지냈다고 한다.

양녕대군이 세종 시절, 수재라고 하여 세조에게 그를 천거했으나 떠도는 승려로 살아가면서 벼슬자리를 모두 거부했다고도 한다. 하루는 억지라도 끌고간다는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달아나더니만 주변에 있던 논밭 거름을 주기위해 만든 똥통에 스스로 빠져서 "자아..이런데도 날 주상에게 데려갈테냐? 가봐야 네놈들 목만 날아갈텐데?" 라며 비웃었고 포졸들은 미쳤다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신숙주가 마침 가마에 타서 길을 가고 있기에 "이놈! 선왕의 신신당부를 어긴 이 못난 놈!"이라고 호통을 치자 신숙주는 아무 말없이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그 밖에도 거정과도 우연히 만났는데 신숙주와 달리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수양대군을 모시던 사람인지라 김시습도 이 사람은 호통치지 않고 정답게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 말투는 서로를 은근히 비꼬는 비수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서거정은 그를 천거하고자 세조에게 건의했으나 결국 그도 포기했다고 한다. 그나마 세조가 죽고나서야 벼슬을 지내기도 했으나 워낙에 떠돌아다닌 게 오래되어서 잘 맞지도 않았다.게다가 현실과 이론의 차이 및 온갖 부조리에 치를 떨며 오래가지않아 때려치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와 지냈다고 한다.

많은 저술을 하기도 했는데, 조선 최초의 한문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금오신화의 저자이기도 하다.

생존 당시에는 야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시기는 김시습이 죽은 뒤 한참 뒤인 중종 시기였다. 그래서 김시습의 일화는 정사보다는 주로 야사가 출처이다.

정조대에 남효온과 함께 이조판서로 추증되는데 당시에 이미 자손이 끊겼다는 언급이 조선왕조 실록에 있다.[2]

2013년 2월에는 김시습이 그린 자화상을 송시열의 제자 김수증이 모사한 중모본이 TV쇼 진품명품에 나와 감정가 3억원을 기록했다. #

2. 전설

한국의 도맥 일파에서는 김시습은 중요한 인물로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시습은 중국의 검선 여동빈천둔검법을 체득하여 후세에 전했다는 일화가 전해져내려오고 있다. 이는 전설이지만, 그의 저술 중에 내단학 이론을 정리한 게 몇 있는 것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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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연히 그냥 전설일 뿐이다. 50필이면 적어도 폭은 약 1미터에 길이는 500m(...)정도 되는데 어린아이는 물론 성인도 끌고 가기 힘든 길이이다. 호기심 천국에서 이걸 직접 실험해봤다. 폭은 둘째치고 그렇게 묶어봤자 아이가 다 끌고 가기 너무 힘들어서 가면서 멈춰서 끌고 다시 가길 반복했다. 성공은 했지만 아이가 너무 지쳤다. 그나마 실험에선 옆에서 어른들이 따라다녔으니 망정이지 실제로 이걸 혼자 했으면 아동학대 수준이었다.
  • [2] 정조 13권 6년 4월 19일 (을유) 3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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