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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last modified: 2015-04-14 10:15:17 by Contributors

롯데 감독으로 재직하던 2013년 4월 2일 대 다이노스 전에서.

이름 김시진(金始眞)
생년월일 1958년 3월 2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포항시
학력 중앙초-포항중-대구상고-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3년 드래프트 1순위 (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3~1988)
롯데 자이언츠 (1989~1992)
지도자 태평양 돌핀스 투수코치 (1993~1995)
현대 피닉스 코치 (1996~1997)
현대 유니콘스 투수코치 (1998~2006)
현대 유니콘스 감독 (2007)
넥센 히어로즈 감독 (2009~2012)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3~2014)

1985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최동원(롯데 자이언츠) 김시진(삼성 라이온즈)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1987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김시진(삼성 라이온즈)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1985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김용희(롯데 자이언츠) 김시진(삼성 라이온즈) 김무종(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9번
김한근 김시진(1983~1988) 홍성연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8번
김시진(1989~1992) 주형광(1994~2006)

현대 유니콘스 역대 감독
김재박 (1996-2006) 김시진(2007) 팀 해체
넥센 히어로즈 역대 감독
이광환 (2008) 김시진(2009~2012.09.17)[1] 김성갑(감독대행)
염경엽 (2013~)
롯데 자이언츠 역대 감독
양 뇌물(2011-2012) 김시진(2013~2014) 이종운(2015~)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2.1. 연도별 성적
3. 투수 코치 시절
4. 감독 시절
4.1. 현대 유니콘스 시절
4.2. 넥센 히어로즈 시절
4.3. 롯데 자이언츠 시절
4.3.1. 2013 시즌
4.3.2. 2014 시즌
5. 비판
5.1. 미숙한 경기운영
6. 감독 사퇴 이후
7. 별명
8. 기타


1. 개요

롯데 자이언츠, 히어로즈, 현대 유니콘스 감독.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의 대투수였으나 선동열, 최동원의 명성에 가려진 비운의 인물. 그리고 무능함과 투수혹사도 선동열에 비하면 약하다.

은퇴 후엔 태평양 돌핀스에서 1993년에 코치직을 시작하였으며, 태평양이 현대 유니콘스가 되면서 2006년 시즌까지 현대의 투수 코치직을 역임하였고 2006년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로 이적한 김재박 감독의 뒤를 이어 현대의 2대 감독이 되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이후 히어로즈 구단이 창단하면서 감독에서 해임되었고, 2008년 시즌에는 KBO 경기 감독관으로 재직하였다. 2009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재직하다가 2012년 후반기에 중도해임당하였다. 이후 바로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맡아 20년 만에 부산으로 귀환했다.

넥센 팬들에게는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사람만 좋은 무능력자, 롯데 팬들에게는 8888577이후 다시 비밀번호를 만들어버린 역적, 삼성 팬들에게는 승리의 마스코트로 기억되는 남자[2]. 무능함이 항상 로 묻혀버리는 럭키가이
전 소속팀 넥센은 김시진을 해고한 다음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고 2014년에는 코시진출에 성공하였으나, 우승을 위해 김시진을 모셔왔다는 롯데는 부임 첫해부터 5년간 이어온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깨버렸다. 본격 디버프맨

2. 선수 시절


선동열 + 최동원 = 김시진멍게+참치=꼴뚜기???[3]


1983년 삼성 라이온즈 투수로 프로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입단 첫 해에 17승을 올린 이후 5년만에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올렸다. 1985년 25승 5패 10세이브 201탈삼진으로 소속팀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끄는 등 삼성에서만 111승을 올렸다. 그렇게 정규리그 통산 124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했지만, 한국시리즈를 포함 포스트시즌에서는 0승 9패, 한국시리즈에서는 0승 7패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이처럼 큰 경기에서 약하다는 이유로 새가슴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지만, 이를 데뷔 후 5년간 무려 1104이닝이나 투구한 심한 혹사의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큰 경기에서의 전적이 비참한 까닭에 선동열이나 최동원에 비해 다소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는 비운의 투수였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재일교포 김일융과 짝을 이뤄 원투펀치로 활약했으며 특히, 1985년에는 둘이서만 각각 25승씩, 총 50승을 거두는 괴력을 보였다. [4]

그러다 1988년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이 포함된 충격적인 4:3 트레이드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 이후 4년간 13승 24패를 추가하는 데 그치며 현역에서 은퇴하였다.[5]
특히 1991년에는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는 강병철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출장 기회가 줄어들어 1992년에는 고작 4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한 경기 최다 사사구 기록(12개, BB-11, HBP-1, 14이닝, 89.4.14, 사직, vs OB)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국시리즈 투수 관련 흑역사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통산 최다패전(7패)과 시리즈 최다패전(3패)뿐만 아니라 통산 최다피홈런(6개), 통산 최다실점(26개), 시리즈 최다실점(12점) 등등...# 페넌트레이스의 에이스 모드와 한국시리즈의 삽질, 지도자 시절의 안습함 덕분에 삼성 팬들에게는 애증의 상징. 요걸로 코치 당시 정민태 선수가 신나게 놀렸다고 한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3 삼성 라이온즈 37 229⅓
(3위)
17
(3위)
12 1 - 0.586
(4위)
2.55 189 8 109 154
(3위)
78 65 1.238
1984 39 215
(5위)
19
(2위)
11 2 - 0.633 3.18 178 14 125 154
(3위)
94 76 1.349
1985 47
(2위)
269⅔
(1위)
25
(1위)
5 10
(2위)
- 0.833
(1위)
2.00
(3위)
172 8 136 201
(1위)
63 60 1.087
1986 30 196⅔ 16
(5위)
6 3 - 0.727 2.47 161 6 116 87 68 54 1.378
1987 33
(4위)
193⅓ 23
(1위)
6 0 - 0.793
(2위)
3.12 166 9 103 113
(4위)
73 67 1.355
1988 25 144⅓ 11 9 0 - 0.550 3.49 107 10 77 67 62 56 1.22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9 롯데 자이언츠 19 111⅓ 4 9 0 - 0.308 3.87 106 8 68 55 53 48 1.487
1990 26 151⅓ 7 10 0 - 0.412 4.04 136 9 69 67 75 68 1.275
1991 13 55⅓ 2 4 0 - 0.333 6.18 70 5 27 31 39 38 1.735
1992 4 10⅓ 0 1 0 - 0.000 13.06 17 5 8 2 15 15 2.419
KBO 통산(10시즌) 273 1577 124 73 16 - 0.629 3.12 1302 82 838 931 620 547 1.304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3 17완투
(2위)
5완봉
(1위)
1984 11완투
(5위)
2완봉
(3위)
1985 10완투
(4위)
2완봉
(4위)
1986 11완투
(6위)
1완봉
1987 7완투 3완봉
(3위)
1988 5완투 1완봉
1989 1완투 0완봉
1990 4완투 2완봉
(5위)
1991 1완투 0완봉
1992 0완투 0완봉
통산 67완투 16완봉

3. 투수 코치 시절

현역에서 은퇴한 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했고,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코치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과거의 명성답게 투수 육성에 강점을 보이면서 현대 유니콘스를 투수왕국이자 강팀으로 이끄는데 일조했고, 투수 전문가로써 명성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조련을 겪은 투수들은 한동안 좋은 스탯을 보여주다가도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부진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김수경, 조용준, 오재영, 신철인, 황두성 등 많은 투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했다.[6]
무엇보다 가장 문제인건 엄청난 연투를 시키면서도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등 현대 야구와는 맞지 않는 투수관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연투를 시키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등 오직 감으로만 투수교체를 한다. 코치 시절부터 연투와는 상관없이 그저 지나 이기나 무조건 기용하는 선수만 기용하고 병적인 좌우놀이 성향을 보였다. 신철인의 6연투 기사는 김시진의 투수관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 혹사로 나만 선수생활 조질 수는 없지6연투를 시켰다는 기사

또 다른 문제점은 좌완 투수의 폼을 잡아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완 투수들과는 달리 그가 키워낸 좌완들의 경우, 투수 개개인의 체질과 스타일은 무시한 채 똑같은 투구폼을 일률적으로 적용시켰다. 대표적으로 구 유니콘스&현 히어로즈의 소속이었던 이상열, 오재영, 장원삼 등은 투구폼이 모두 비슷하다.[7]

김시진 본인과 정민태 코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파 투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떠난 이후로도 히어로즈의 투수들은 상당수가 140km의 볼과 그것을 뒷받침 할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고 있는데 제구 불안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걸 떠날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해서 투수를 키워내기는 커녕 있는 투수마저 다 망가뜨리는 모습에 역시나 투수 조련가는 거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도 나오던 평이었는데 당시 현대는 아마 시절부터 최고로 꼽혔던 선수들을 비싼 계약금을 주고 싹쓸이했었다. 즉, 야구는 기본적인 자질이 굉장히 중요하기 마련이므로 김시진이 투수들을 다 키웠다는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이 항목에 꽤나 부정적으로 서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코치 김시진으로써 평은 이미 높을만큼 높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야구가 그렇듯이 선수들의 부상이나 부진은 대부분 혹사 탓이 크다. 지금에서야 투수코치 권한이 조금 늘어났지만 지금도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감독이 투수운용의 전권을 휘두르며 불펜투수를 노예질하기 마련이다.
또 롯데 자이언츠에 있는 2군 투수들이 왜 크지 못했는지 생각해보면, 황폐화된 2군 코치진을 첫번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코치진의 실적부터 의문스럽고, 코치 숫자는 항상 부족하다. 또한 현장의 평이나 아마추어 시절 평가를 종합해 보면 롯데는 절대 자질이 좋지 않은 선수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4. 감독 시절

7년 간 감독 자리에 있으면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이다. 환경이 좋지 못했던 사실만 부각되었을 뿐 감독으로써 딱히 보여준 것도 없는 인물. 그럼에도 삼성 팬들의 쉴드덕에 여러 커뮤니티에선 유능한 감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작 자기팀에 데려가라고 하면 절대적으로 반대하면서 즉, 이만수처럼 과거의 레전드이기 때문에, 그리고 선수 시절이나 감독 시절이나 포스트시즌을 제외하고 삼성 승리의 보증수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삼성이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넥센 히어로즈 시절 김시진이 삼성전 2할대 승률을 기록하면서 엄청난 일조를 했으며,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 후에도 별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김시진의 감독 시절 통산 삼성 라이온즈전 승률이 무려 2할 8푼대인데 10번 만나면 2~3번 이기고 7~8판을 져주니 좋아할 수 밖에.

다만 그 동안 김시진이 감독으로 몸담았던 팀들이 전부 모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해체 직전의 팀이거나, 스폰서가 없어서 트레이드로 운영하는 팀이거나, 선수단을 CCTV로 감시하고 프런트가 감독 작전권까지 간섭하는 희대의 개막장 팀 등 감독 혼자 뭔가 손써보기에는 난이도가 몹시 높은 꽤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은 참작되어야 한다.

2013 시즌 롯데에서의 실패는 분명 감독 본인 잘못이지만 2014 시즌에는 시즌전 이미 권영호 수석코치부터 별 이유없이 잘린 것을 시작해서 권두조 코치의 낙하산 수석코치 임명, 더불어 프런트의 선수를 향한 폭언과 훈련 스케줄에 대한 간섭, 또한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대표이사가 4월부터 번트 대지 말라, 최준석, 장성우를 2군에 내려라, 박종윤을 쓰지 말고 최준석히메네스를 쓰라, 기타 타순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등(이때 이미 사퇴의사를 한번 밝혔다.) 이미 2014년의 롯데 성적의 향방은 시즌 전부터 이미 그의 손에서 서서히 떠났다고 봐야 한다. 특히 팀이 잘 나갈 때 내려가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히메네스, 유먼 교체를 요청했지만 프런트에서는 스카우트만 파견한 후 유야무야했고, 시즌 중반에 DTD할때 공필성 코치가 투수조 이간질(투수운용 간섭)하여 정민태 코치와 싸우고, 프런트 고위관계자는 감독 욕을 프린트해서 코치들 앞에 던지고, 이후 단장이 감독 불러서 그나마 남아있는 사단 포함 4명을 2군으로 내린다고 협박하며 사퇴를 종용할 때 두번째로 사퇴한다고 하는 등 2014시즌은 정상 참작할 부분이 많다.
사실 2013 시즌 실패만 해도 깔게 넘쳐나서 굳이 2014 시즌 실적으로 깔 필요가 없다. (..)

4.1. 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7년 LG 트윈스로 이적한 김재박 감독의 후임으로 투수코치에서 감독에 선임되었다. 당시 현대 타선은 강타자들이 즐비한 좋은 타선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초반부터 광적으로 번트 지시를 하였다.
[8] 투수관리 미흡과 몇몇 투수들만 자주 기용하는 투수운용, 지나친 좌우놀이등으로 답답한 경기 운영능력을 보여주었다. 타선에서는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많음에도 2군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 결국 현대는 중위권과 하위권을 오락가락 하다가 최종 순위를 6위로 마치게 되었다. 감독으로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끝나고 현대가 해체하게 되면서 현대의 마지막 감독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팬들의 동정을 사게 되었으며 일명 뚝리타라고 불리는 광적 팬들이 생기게 되었다.

4.2. 넥센 히어로즈 시절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후 감독 자리에서 해임되었고, 2008년 KBO 기록관으로 근무하다 2009년 히어로즈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용병을 모두 타자로 가져가면서 덕 클락, 황재균, 이택근, 클리프 브룸바, 강정호, 송지만 등이 이끄는 강력한 타선을 내세워 한때 4강 싸움까지 노려봤으나 에이스 이현승을 4일 로테로 굴리는 등 투수들을 땡겨쓰거나 혹사로 투수진이 흔들리면서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가장 문제점은 감독이 되자마자 어려운 팀 상황에서 팀 투수진을 이끌고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했던 정명원 코치를 대뜸 2군에 보내고 코치로서 1년은 커녕 단 1주일조차도 경험이 없는 생초짜 정민태를 1군 투수 코치에 기용하면서 넥센 투수들을 망가뜨렸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의 영웅방에서는 투수들이 단체로 부진하자 연일 김시진과 정민태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으나 시즌 후 역대급의 현금 트레이드가 터지면서 선발투수 세 명과 중견수를 모두 잃는 바람에 이때부터 김시진 감독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초대권까지 뿌리며 팬들이 만들어준 전준호의 은퇴식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섭섭해한 팬들이 많았다.

2010 시즌에는 금민철고원준이라는 새로운 투수를 발굴해내는 등 분전했으나 순위는 작년보다 떨어진 7위로 마감했다. 2011 시즌은 넥센을 완전히 무기력한 팀으로 만들면서 창단 첫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트레이드된 4번타자 박병호의 가능성, 이택근의 친정 복귀 등 팀의 플러스 요소들이 많이 보이면서 다음 시즌에 기대를 갖게 했고 본인 역시 구단으로부터 재계약을 받으면서 한층 더 안정된 상황.
그렇게 시작된 2012 시즌, 새로운 거포 박병호와 3년만에 20홈런으로 복귀한 강정호, 27승을 합작한 외국인 선발 듀오, 신인왕 서건창 등 출중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에 힘입어 팀도 승승장구하며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반기 이후 점점 불안한 기미를 보이더니 결국 귀신같은 DTD를 선보이게 되었다. 이에 빡친 넥센 팬들이 넥센 히어로즈 공홈 게시판에서 김시진과 정민태를 퇴출하자는 릴레이를 펼쳐기도 했다. 그동안 나름 점잖은(?) 편이었던 넥센 팬들[9]이 김시진을 자르라고 구단에 전화를 하기도 했으며 팬 커뮤니티에서도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결국 참다 못한 구단 측에서 경질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도 특기인 동정론을 사는 언플이 잔뜩 나왔고, 당연히 대부분의 타팀팬인 야구팬들은 이장석을 비롯한 넥센 수뇌부를 비난했다. 심지어 앞으로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2년 연속 PS 진출과 리그 최고 지뢰타선

참고로 넥센 시절 그의 최대 업적이라면, 정치설로 인해 LG 트윈스에서 반 강제적으로 나왔던 염경엽(전 현대 유니콘스 수비코치)을 다시 넥센 히어로즈로 데려오고 이장석을 설득해 그에게 주루/작전코치직을 맡긴 것이다. 어쩌면 후임자를 자기 스스로 데려온 셈. 그리고 자신의 실패담은 후임자의 경험치가 되었다. 지금이야 순망치한의 관계이지만, 예전 염경엽과 이장석은 서로 불편한 사이였다. 재창단 후 이장석의 행보에 불만을 가졌던 염경엽은 15년 넘게 있어 온 직장을 박차고 나갔고, 이장석 역시 자기 싫어서 한 번 나간 적이 있는 사람을 곱게 볼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LG에서 흘러나오는 염경엽과 관련된 흉흉한 소문들은, 이장석의 그러한 편견을 더욱 부채질했을 터... 그런 이장석을 설득시켜서 염경엽을 기어코 넥센으로 복귀(?)시킨 김시진의 행보는, 오늘날 넥센의 성적을 봤을 때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염경엽 항목 및 본 글의 아래 각주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당시 두산 베어스가 그를 데려오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했는데, 만에 하나 염경엽이 넥센이 아닌 두산으로 갔다면 지금의 넥센은 과연... 뭐긴 뭐야?? 망하는 거지.

4.3. 롯데 자이언츠 시절

그러던 2012년 11월 5일, 갑자기 롯데와 3년 감독 계약을 체결하였다. 더불어 정민태 코치도 세트로 딸려갔다. 그리고 문성현은 쇠고기를 먹고 싶어했다 # 레알 뚜기! 재균아, 원준아 나도 팔려왔다[10]

롯데 입성이 확정된 후 롯데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뜨뜻미지근하다. 일단 2012 시즌의 변변찮은 경기운영 모습에 평가가 많이 떨어진 상태인 것도 있고, 무엇보다 팀 스타일을 1년만에 바꿔 우승한다는 건 무리라는 평이 많았기 때문. 그러나 롯데가 퇴보하고 있다면 모를까 매시즌 눈에 띄게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스터 체제에서는 멘탈을 가다듬었고, 양승호 체제에선 세밀한 플레이를 많이 향상시킨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밀번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건 멘탈면에서나 기량면에서나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단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다만 한 수 아래라 평가받던 넥센이 김시진을 경질한 이유는 '우승하기 위해서'인데 롯데는 그런 감독을 역시 '우승하기 위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으니 자존심도 좀 상할 일이다. 무엇보다 김시진이 마음에 안든다기 보단 같이 데리고 왔던 오른팔 정민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크다. 정민태 때문에 썩 괜찮게 투수진을 이끌었던 주형광이 2군 투코로 밀려나면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차라리 정민태를 안 데려왔으면 환영했을거란 의견도 많다.

다행히 인터뷰를 예쁘게 해[11] 팬들 사이에서 나름 평가가 좋아졌다. 그러던 중 넥센 히어로즈가 마무리 훈련을 한창 하고 있던 도중에 박흥식 타격코치를 전화 한 통으로 롯데로 꼬셔왔다. 과거 김시진 감독 역시 김재박 감독의 코치 빼가기에 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행한 것. 이로 인해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지지도가 많이 올라갔으나 그나마 남아있던 우호적인 넥센팬들은 대부분 김시진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급작스러운 감독 교체로 사기가 떨어진 롯데 자이언츠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기자들한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취임전이므로 이에 대한 말은 아끼고 있지만 조정훈을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4.3.1. 2013 시즌

해당 항목으로.

4.3.2.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5. 비판

6678657.jpg
[JPG image (78.49 KB)]

무능 그 자체.

2014 시즌 롯데가 4강 진출에 실패한 후, 7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김시진의 성적이 팀 사정 탓만 하기에는 넥센 시절에도 지나치게 무능력하지 않았냐는 평가가 줄을 이었지만 2014 스토브리그 중 한국시리즈를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할 정도로 시끄러운 내부 사정롯데시네마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다시 김시진 동정론이 떠오르고 있다.[12] 종합하자면 그가 맡아왔던 팀들은 해체 직전의 기업 지원 없는 팀. 스폰서가 없어 선수 트레이드로 구단을 운영할 수 밖에 없는 팀, 선수진과 프런트 간의 뿌리깊은 내부분열이 일어난 팀감독 혼자의 힘으로 팀을 돌려놓기에는 지나치게 막장인 팀들 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아직까지 7년이나 감독을 맡고도 한번 도 포스트시즌을 밟아보지 못한 감독은 없으며, 2012년 넥센의 전력은 충분히 4강권을 노려볼 만한 전력이었기 때문에 팀 탓만으로 그의 무능함을 전부 옹호할 수 없다. 한국시리즈에서 7번이나 패하고도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넥센에서는 후임자인 염경엽 감독과, 롯데에서는 전임자 양승호 감옥니뮤감독과 비교당하며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넥센에서는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리빌딩에 성공했다는 옹호론이라도 있었으나, 투수진을 태워먹은 롯데에서는 그런 거 없다(...) 특히 아무리 프런트 문제와 2군 인프라가 중요하다지만 투수조련사로서의 명성과 다르게 그가 감독을 맡은 이 타신투병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평가가 박해지는 중이다. 결국 그가 그나마 넥센에서 중간이나 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염경엽, 박흥식 등 우수한 코치의 덕을 많이 봤을 뿐, 본인하는 것이 없으면 오히려 다행인 수준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롯데 최하진 사장의 카톡분이 공개되면서 무조건 극딜하기도 참 뭐해졌다. 감독으로서 권한은 전부 빼앗긴 상태였던지라...똑같이 투수를 혹사한다면 성적을 내주는 감옥님이 상위호환이다. 전과만 빼고(...)

5.1. 미숙한 경기운영

2007, 2009년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 2010, 2011년도에는 팀 사정상 동정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2012년 시즌 히어로즈 창단 이후 최고의 전력을 만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거품이 많이 벗겨졌다.

2010년도부터 말도 안되는 번트야구를 구사하는 중인데,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번트도 못대는 바람에 팬들의 목을 붙잡는 경향이 심해진다. 이 증세는 2011년도에 더욱 악화, 무사 2루라고? -> 번트라는 희한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경기를 치르고 있다. 김재박은 번트를 잘 훈련시키기라도 했고, 하다못해 양승호는 적재적소에 작전을 구사하지만, 김시진은 그런것도 없다. 물론 타선이 워낙 제때 터져주지 못해서 이런 극한 스몰볼을 구사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 스몰볼이 작전 능력도 없고, 투수 능력도 없는 팀에 적용될 수 있을까? 마치 2010 시즌에 한대화가 직면했던 문제와 비슷했다.

계투진 운용에서는 불펜혹사의 역대급 감독이다. 과거 이보근, 조용훈, 위재영, 신철인, 조용준, 황두성, 송신영, 오재영, 박준수, 노환수, 이상열, 권준헌, 마일영, 이현승, 박장희 등 수많은 선수들이 희생당했으며 이보근은 3년 연속 8~90이닝을 소화하며 150이 넘던 직구가 이젠 140도 겨우 나오는 등 어깨부상과 더불어 구위저하가 일어났다. 그나마 송신영은 고무팔로 오래 살아남았지만 조용준, 신철인, 박준수, 노환수, 황두성, 조용훈등은 재기도 못하고 결국 망가져버렸고[13] 쓸쓸하게 은퇴하거나 방출되었다. 롯데로 이적한 후에는 이명우, 강영식, 김성배, 정대현의 노예질이 돋보이고 있다.

계투진 운용에서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시도 때도 없는 좌우놀이이다. 이것 때문에 2010년~2011년 LG 트윈스 감독이었던 박종훈 前 감독이 많은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김시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다만 김시진 재임기간 동안 넥센이 비인기 구단이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 뿐.. 2012 시즌 시작하자마자 터진 408 대첩의 씨앗도 김시진 감독의 좌우놀이로부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팬들은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14] 2012시즌 이후 투수 좌우놀이는 적어진 편이나 타자를 좌우놀이 형식으로 배치하는 것은 여전하다.

거기다, 그놈의 원 포인트 릴리프. 잘 던지던 김상수를 내리고 오재영을 올려서 볼넷주고 다시 또 한현희로 바꾼 적도 있었다. 거기다 위기상황에 신인이라니 2011년 임찬규가 그렇게 위기상황에서 굴려지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려되는 부분이었는데, 결국 한현희는 부진 끝에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12 시즌 후반기의 부진 때문에 팬들에게 비판받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투수교체 타이밍에는 제대로 된 원칙도 없다고 비판받는다. 꼴리는 대로 물론 정명원 코치가 떠난 이후[15]로 2012년도 넥센의 불펜이 2010, 2011년도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김시진 감독의 어이없는 투수교체 타이밍으로 피를 본 건 한두 번이 아니다. 누가 봐도 내려야 될 때는 그대로 가고 그냥 가만히 냅둬도 될 때는 바꾸다가 말아먹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매 시즌이 끝나면 김시진은 잘한것도 없으면서 언론에 감정팔이로 넘어가곤 했는데, 한동안은 소속팀의 외적인 문제와 주전 선수들의 수준 등으로 쉴드가 가능했지만 그덕에 성적에 상관없이 거액의 연봉만 받아 철밥통 감독을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무엇보다 팀의 장악력이 전혀 없었으며 언론에 한 말과는 달리 정작 시즌에 가서는 다르게 운영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작전을 보이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별다른 업적이나 성적을 내지도 못하고 무려 7년 넘게 감독하면서 매년 거액의 연봉을 챙기고 있으니 이쯤되면 이 시대 최고의 땡직업 김시진 감독이라 불러도 될듯.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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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과 2014년 한정으로 화요일 징크스가 있었다. 2010년 넥센의 화요일 성적은 2승 1무 18패로 역대 최저였는데, 4년만에 롯데에서 1승 1무 18패를 찍으면서 본인의 기록을 직접 갱신했다. 김시진 :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선수단 장악력이 부족함을 볼 수 있는 부분. 스포츠 선수 혹은 감독이라면 징크스를 피해가기 위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 화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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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에 선수들을 쥐어짜서 성적을 올려놓은 뒤 후반기에 DTD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쓸 놈만 계속 쓰는 야구를 반복하다보니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가 안 되는데 그걸 개선하지 못한 채 해마다 반복 중.

6. 감독 사퇴 이후

태평양-현대-넥센 시절 그와 한솥밥을 먹었던 염경엽 감독이 김시진 본인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미국과 일본을 돌면서 야구공부를 한다고 한다. 기사

그리고 2015년 4월 13일에 이문한 전 롯데운영부장의 인터뷰에서 롯데 프런트에서의 막장 운영의 진실이 밝혀졌다.기사1기사2
그냥 꼴런트에서 다 해먹었다. 대신 욕은 빙동님이 먹었다.

7. 별명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 꼴뚜기는 친구 별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가 야구를 그만두면서 얼떨결에 꼴뚜기란 별명이 김시진에게 넘어온 것. 본인은 wkik:"류중일" 야통이나 야왕같은 별명을 부러워하는 것 같지만 현실은 꼴뚜기…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레알 뚜기가 되었다. 여담으로 2014년 7월 1일 목동야구장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브론즈 스폰서 (주)오뚜기 데이(!!!)로 열린 롯데와 넥센의 현직 감독더비에서, 정말 오뚜기(5뚜기)가 되었다 카더라.

2011 시즌 시범경기 중계에서 이순철 위원과 한명재 캐스터을 통해 선수시절 투쓰리로 불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명재 캐스터 말로는 신중한 승부를 즐겨했다고…(저 아름다운 사사구 기록을 보자) 그러나 볼넷이 많아 볼넷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2012 시즌 들어서 넥센팬들에게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으며 돌시진으로 불리고 있다.

2013년에도 새 별명이 생겼는데 바로 2013년 중국의 지도자 이름을 따서 언어유희로 만들어낸 시진. 팀의 지도자라는 감독의 직책과 맞물려서 어울리는 별명으로 한 때 쓰였다. 결국 성적이 내려가자 시진으로 바뀌었다. 중국이 쿠바처럼 야구가 인기있었다면 중국인들이 우리 국가원수를 모독한다고 열받았을 듯

2014년에는 닥치고 좌우놀이와 병맛의 투수교체를 보여주며 좌우성애자, 뚜발놈, 빙시진, 시진빙이란 별명들이 쓰인다. 롯갤에선 아예 빙시진이라고 부르고만 있다. 여기에 갓동님과 합쳐서 빙동님이라는 별명까지 탄생한 것은 덤.

8. 기타

현역 시절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야구 최초 100승을 세우기도 했으나 삼성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다. 그야 롯데의 심장과 삼성의 두뇌를 바꾸었다는 말을 들었던 충격적인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로 좋지 못한 말년을 보낸 김시진이 삼성에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게 이상할 터. 현역 시절에 배터리를 이뤘던 이만수도 비슷한 상황이나, 이만수는 삼성에서 감독직을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김시진은 감독 시절 때 삼성만 만나면 호구 잡혀서 소속팀 팬들에게 피는 못속인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팀 승리 후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 매 대답의 시작이 대부분 "글쎄요"다(…).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는 주로 "꼴뚜기 ㄱㅆㅇ" 등의 글로 자축포를 날렸다.

'MBC 히스토리 후'에서 장효조 선수 특집을 했을 때, "형,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갔어?"라는 멘트로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은근히 많이 우는 편. 정이 많은 성격임을 알 수 있다. 현대 없어질 때도 울고, 절친이었던 최동원 사후의 모 다큐에서도 울고, 넥센에서 짤렸을 때도 울고.

한겨레에서 개고기를 주제로 '오피니언 리더' 몇 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프로 스포츠인의 대표 격으로 선정되어 인터뷰를 했었다. 여기 이 기사를 통해 그가 푸들을 키우는 애견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안타깝게도 그 푸들은 2012년 8월 말에 김시진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한때 야구 기자들 사이에서는 경질 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이 곁을 떠난 푸들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참고기사 절친이었던 최동원이 개고기를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맥략?

프로야구매니저가 원년부터 1987년도 시즌까지의 선수카드 업데이트가 되었는데, 김시진의 커리어 하이 시즌인 1985년도 시즌은 당연히 EX카드이며 엄청난 능력치와 구질을 자랑한다. 덕분에 게임 내의 삼성팬들은 환호했으며, 타 팀팬들은 운영진 전체가 사실은 삼빠가 아니냐는 원성을 듣게 만들었다.

이만수 감독과 특별한 사이이다. 대구상고 동문, 한양대 동문, 삼성 라이온즈 동문이자 고교 배터리, 대학 배터리, 프로팀 배터리의 관계이다. 이따금씩 방송에서 김시진이 이만수에 대한 일화를 말하는데 이게 꽤 웃기다. 선생님 빠따 사건이라던지[16], 손바닥 성냥사건이라던지, 1980년 일본에서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김시진이 차출됬다가 어깨부상으로 출국 전날 엔트리에서 빼고 이만수가 대타로 갔다가 군면제를 받았고 김시진은 그 해 현역으로 입대했다는 에피소드 등이 많다.[17] 그런데 이 배터리는 2014 시즌이 끝나자 무능한 삼성 출신 감독들로 남고 말았다. 안습.

한대화와 무척 친하다. 학교라던지 프로팀이라던지 선수 생활과 코치 시절 같은 팀을 한 적이 없음에도 서로 사이가 좋다. 한대화가 한화 이글스 감독 재직 시 넥센전에는 꼭 넥센 덕아웃에 찾아와 '꼴뚜기 형'을 찾곤 했다. 서로 아이스크림도 떠먹여주거나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프로야구판이 학연 등으로 많이 연관 되어있는 것에 비추어보면 독특한 관계이다.아마도 동병상련의 연민을 느꼈을 듯 둘다 성적 못내는건 똑같다.

염경엽 감독에게는 은인일 수 있는 인물. 파벌설 때문에 LG 트윈스를 나와야 했던 그를 불러준 인물이고[18], 그가 감독이 될 때 격려까지 해줬다.[19] 어쩌면 이게 그가 제일 잘 한 것 중 하나일지도?

지도자가 된 이후 삼성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적이 있다. 선동열 감독의 임기완료까지 2군 감독으로 있다가 1군 감독으로 승격되는 조건이었고 계약조건도 좋았지만, 자신이 삼성으로 갈 경우 김시진사단으로 불리는 코치들의 일자리가 보장되지않기에 거절했다고 한다. [20]

안티 김성근 감독들 중 하나이다. 이쪽은 특이한게 선수 시절에는 김성근과 연이 없었는데, 굉장히 싫어한다. 김성근에게 주먹감자를 날린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의 라디오볼에서 사람 좋기로 소문난 한 감독이 김성근을 강하게 비판해서 놀랐다는 언급이 나온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감독이 류중일 아니면 김시진일 거라고 추측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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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9월 17일 중도경질되었다.
  • [2] 선수시절은 에이스투수로 승리를 안겨줬고, 감독시절은 말그대로 친정팀에 승리를 조공했다.
  • [3] 18번(선동열의 등번호) + 11(최동원의 등번호) = 29(김시진의 등번호). 1980년대 3대 투수.
  • [4] 그런데 구단에서 김일융을 데려오며 그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자 대신 원래 에이스였던 김시진은 상대적으로 홀대받는다는 생각에 심기가 틀어졌으며, 또한 김일융이 한국무대 첫 등판에서 김시진의 승을 날렸던 일 때문에 당시의 둘은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5년 25승씩 거둔 것도 미묘한 둘의 신경전을 알고 있었던 코칭스태프가 승수를 조절한 결과.
  • [5] 구단과의 마찰로 인해 탈퇴한 것이라 이때 그대로 야구 인생이 끝장날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김시진을 데려가 코치직을 시켜준 것이 고교시절 은사인 정동진 감독. 본인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한다.
  • [6] 김수경은 2007년까지 10승을 올리더니, 우리 히어로즈로 바뀌자마자 추락했다. 조용준은 2005 시즌 이후부터 기약없는 재활에 들어갔고, 신철인은 2006 시즌 이후로 1군에서 사라졌다. 황두성 역시 2009 시즌 이후로 공기화됬고, 2011년에 은퇴했다.
  • [7] 스트라이드되는 오른발의 내딛는 위치를 조정해 축이 되는 왼발과 스트라이드되어 뻗는 오른발의 위치를 좁게 해서 상체의 반발력과 회전반경을 크게 해서 공의 구력을 높이고 적절하게 릴리스 포인트를 조절한다.
  • [8] '김시진의 현대'도 번트가 많은 이유는?
  • [9] 이 무렵 LG팬들은 감독과 주장을 데려다놓고 청문회를 시켰고, SK팬들은 감독이 경질되자 구장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 [10] 이 때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이장석이 이젠 감독하고 코치도 롯데한테 팔아먹냐는 개드립이 흥했다. 근데 돈 줘야 될 거 안 주게 됐으니 이득은 맞다. 이젠 실체가 드러나자 이장석이 보낸 첩자라고 한다
  • [11] '대충 지금 팀을 봤을때 어떤 면이 부족해 보이나'란 상투적인 질문에 '글쎄요... 오자마자 그런 말을 하기엔 팀을 이끌었던 前감독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고 노 코멘트했다. 이 인터뷰 하나로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정말 마인드는 성인급이다. 오자마자 前前감독 디스했던 前감독은 반성하라... 물론 감옥에서
  • [12] 프런트가 선수 선발, 선수단 운영, 타순, 번트 지시 등 그냥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자세한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항목 참조.
  • [13] 노환수와 조용훈은 여전히 임탈로 묶여서 재활중이다. 현재 넥센의 불펜이 참담한 원인중 하나인셈.
  • [14] 윗부분에서 언급한 대로 타자 운용시 좌우놀이는 더욱 심각한 맹신급이다. 계투진 운용에서의 좌우놀이는 많이 줄어든 편이지만 선발 타자 라인업이나 대타를 내는 경향을 살펴보면 좀 심할 정도로 플래툰을 신봉하는 듯 하다.
  • [15] 거기다 정명원 코치가 떠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은 김시진 감독의 정민태 편애였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했다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누구 탓 할 것도 없다.
  • [16] 대구상고 시절 대구상고 선수들이 정동진 감독 취임날에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놀러다녔고, 이 소식을 들은 정동진 감독이 내 불찰이니 나를 때려라 라고 했다. 그래서 김시진이라던가 여러 사람이 대부분 말렸는데, 뜬금없이 이만수가 감독이 자신을 때리라고 하니까 진짜로 감독을 배트로 때리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뭐.. 다들 울먹이면서 잘못했다고 감독에게 사과하는 훈훈한 일로 끝났지만, 하필 이 소식이 쫙 퍼지는 바람에 정 감독이라던가 여러 사람이 일을 수습하느라 애먹었다고 한다.
  • [17] 여기에 더해서 김시진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육군 경리단 신분으로 참가하고 대회 우승을 하나 군인 신분이기에 다른 멤버들과 달리 군면제를 받지 못한다.(…) 안습.
  • [18] LG에서는 절친인 김기태 감독이 수석코치로 불렀으나 파벌설 때문에 거절했고, 두산에서도 적극적으로 불렀으나 김시진이 부르자 은혜를 갚으려고 돌아갔다고 한다. 기사 참조.
  • [19] 스포츠투나잇의 염경엽 감독 인터뷰 참조.
  • [20] 결국 선동열 이후 실제 1군 감독 자리를 받은건 류중일 수비코치였다, 지금 삼팬들에게는 김시진 영입이 현실화되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보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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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1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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