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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last modified: 2015-04-08 04:28:42 by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여자배구 선수
1.1. 선수생활
1.1.1. 흥국생명 시절
1.1.2. 일본 JT 마블러스 시절
1.1.3. 터키 페네르바흐체 시절
1.1.4. 2012년~2013년 이적 파동
1.1.4.1. 사건의 발단 : '김연경룰'의 적용 여부?
1.1.4.2. 전개
1.1.4.3. 2013년의 경과 : 진전 없이 제자리 상태
1.1.4.4. 결과
1.2. 국가대표 No.1 에이스
1.3. 플레이 스타일
1.4. 이모저모
2. KBS 사극 서울 1945의 등장인물


1. 대한민국의 여자배구 선수





페네르바흐체 SK No.10
김연경(金軟景)
생년월일 1988년 2월 26일
출신학교 수원전산여자고등학교[1]
포지션 레프트윙
신체사이즈 신장 192cm, 체중 71kg
점프 높이 스파이크 높이 317cm
블로킹 높이 299cm
소속팀 천안/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05~2009)
JT 마블러스 (일본) (2009~2011)
페네르바흐체 SK (터키) (2011~)[2]

2005-06 KOVO V-리그 여자부 신인상
황연주
(천안 흥국생명)
김연경
(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한수지
(인천 GS칼텍스)

2005-06, 2006-07, 2007-08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MVP
정대영
(마산 현대건설 그린폭스)
김연경
(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베따니아 데 라 크루즈 데 빼나
(인천 GS칼텍스 KIXX)

2010 KOVO컵 프로배구 MVP
Wang Li
(톈진 브리지스톤)
김연경
(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김선영
(성남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제니스)

V-리그 10주년 올스타
세터 센터 센터 라이트 수비형 레프트 공격형 레프트 리베로
남자부 최태웅 이선규 신영석 김세진 신진식 문성민 여오현
여자부 김사니 정대영 양효진 황연주 최광희 김연경 김해란


김연경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 세르비아 배구대표팀 감독 조란 베르치치

"당신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두 번째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 런던 올림픽 배구 조별예선 경기가 끝난 이후 외신기자의 질문

태국의 세터 사라 톰콤와 더불어 가장 유명하고 실력좋은 동양 선수

대한민국 여자배구계 사상 최고의 거포이자 캐사기 유닛. 아시안 가모바[3]. 현재 세계 여자 배구계의 메시[4]

1.1. 선수생활

1.1.1. 흥국생명 시절


수원한일전산여고를 나와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5](현대건설), 동기 김수지(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GS칼텍스)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흥국생명과 GS칼텍스가 꼴찌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6]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에게 지면서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바로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2005-06시즌 신인왕 수상. 그것도 모자라 정규 리그 MVP,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모두 싹쓸이하는 괴력을 보였다.[7] 덤으로 서브상, 득점상, 공격상, 보너스로 트리플 크라운 1회 달성하였다! 이런 사례는 지금까지 배구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사상 최초이자 유일하다.

흥국생명[8]에서 뛸 때는 공격순위를 거의 혼자 정복하면서 리그를 평정, 2005-06, 2006-07, 2008-09시즌 V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한편 2014년 현재 시점으로 외국으로 진출한지 꽤 됐지만 현재도 김연경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국내 선수든 외국 선수든 통틀어 거의 없는 상황. 그래서 2013-14 시즌 올스타전을 앞두고 열린 V-리그 출범 10주년 기념 역대 베스트 7의 공격형 레프트 부문에 뽑혔다. 그것도 여자부 전체 1위로 말이다.[9]

1.1.2. 일본 JT 마블러스 시절


JT 마블러스 시절 연경 히메 시절

이후 2009-10시즌에 일본 JT 마블러스로 임대 이적[10], 일본 여자배구계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연경이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2009-10시즌 10연패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사실은 2008-09 시즌에도 흥국생명은 정규 시즌을 겨우 3위를 해 플레이오프부터 봄배구를 시작했지만 김연경과 카리나 오카시오의 크레이지 모드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 어쨌든 흥국생명의 리즈시절을 이끌고,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캐사기 유닛 소리를 듣게되자 '국내 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 라는 여론과 김연경 본인의 외국리그 진출 의지가 합쳐져 결국 2009 오프시즌에 외국리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사실 김연경은 완전이적을 바랐겠지만, 흥국생명이 선수임대 방식을 이용, 당시 V-리그 선수 이동 규정에 없던 방식으로 제대로 신분 정리도 안 한 채 이적을 진행했고, 이것이 3년 후에 이적 파동의 도화선이 된다.

어쨌든 이런 사정을 접어두고라도, 김연경은 일본 프리미어리그에서까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으니 일본리그의 감독들까지 일본에서조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 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들었다. 일본 여자 배구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좋은 케이스. 2009-10 시즌 초에 신종 독감으로 고생하더니 2010-11 시즌 초에 역시 독감으로 몇 경기 결장한 바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결국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JT 마블러스의 시즌 우승을 또 한 번 이끌어 냈다.[11]

임대이적이라는 신분 때문에 2009-10시즌 종료 후 비시즌인 9월 KOVO컵 때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기도 했고 2010-11 일본 V리그 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 시즌이 조기종료되어 한국으로 일찍 귀국했다. 마침 그 시기가 국내 V-리그 포스트시즌과 맞물리는 바람에 흥국생명으로서는 김연경 룰[12]을 적용해 김연경을 포스트 시즌에 빤짝 출장시키고 싶었으나 여론의 뭇매로 김연경은 한 달여 간의 휴식을 취하고 컵대회인 흑취기에 참가하기 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1.1.3. 터키 페네르바흐체 시절

JT 마블러스의 흑취기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운 뒤 JT 마블러스와의 임대계약이 종료된 결국 2011년 5월 터키 명문 페네르바흐체에 입단하게 된다. 역시 JT 때와 같은 임대계약. 여자배구에 있어서 터키 아로마 리그는 유럽 최대의 빅리그 중 하나인지라 얼마나 적응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였던지라 페네르바흐체와도 1+1 계약을 맺었다. 그래도 일본에서도 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거포 라고 칭송했으니.

그런데...


페네르바흐체에서의 첫 시즌인 2011-12시즌의 활약은 아래와 같이 요약 가능. #

터키 아로마리그에서 시즌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ㅎㄷㄷ. 거기에 CEV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했다! MVP와 득점왕을 수상했다. 공격, 서브 분야도 1위이다.[13] 팀은 22연승. 뭔가 일본에서 본 것 같은 기사가 다시 보인다. 그냥 기분 탓으로 하자

2012-13 시즌에는 김연경 본인이 이적 파동 때문에 힘든 시즌을 보내기도 했고, 소속팀 페네르바흐체 역시 주전 세터였던 나즈 아이데미르가 페네르바흐체의 라이벌 팀인 바키프방크로 이적하면서 팀은 2011-12 시즌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쉽게도 페네르바흐체는 시즌 3위에 CEV 컵[14]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사기캐 팀이 이 정도 성적을 거둔거라면(...)

2013-14 시즌에 김연경은 소속팀 페네르바흐체의 CEV 컵 우승의 선봉장으로 서며 또다시 MVP가 되는 위엄을 보여줬다. 오오. 갓연경. 게다가 엠스플에서 김연경 출전 경기를 중계해 줄 정도로 김연경의 위상을 다시 한번 올려주는 시즌이 되었다. 그런데 아로마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페네르바흐체는 바키프방크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경은 득점 1위, 공격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역시 갓연경. 한편, 챔피언 결정전 1차전 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김연경은 실종자·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태극기 문양을 넣은 검은색 팔꿈치 보호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고, 팀 동료들도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같이 달고 뛰었다. 김연경의 본가가 안산에 있고, 또한 초·중학교를 안산에서 나온 만큼 귀국 후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할 일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종료 후 아제르바이잔 리그, 중국 리그 등 타국 리그의 팀에서 연 20억을(!)[15]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 속에서도 거취 문제 당시 도와줬던 것을 잊지 않고 페네르바흐체와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관련 기사 1관련 기사 2

1.1.4. 2012년~2013년 이적 파동

한때 리그베다 위키 김연경 항목에 논란 틀이 달려 있었을 정도로 문제가 됐던 사건. 선수의 직업의 자유와 구단의 선수 운영의 권리가 대립되어 2년이 넘게 벌어졌다. 사건 당사자간 원만하게 해결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사건이었다.

1.1.4.1. 사건의 발단 : '김연경룰'의 적용 여부?
2012년 들어 유럽 금융위기로 유럽 배구계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주전급 선수들이 러시아 리그나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옮겨가는 가운데 김연경 역시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다. 일단 2012 FIVB 월드 그랑프리 전까지는 거취를 결정짓겠다고 밝혔고, 결국 여러 이적설 끝에 페네르바흐체와 2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2012-13 시즌에 페네르바흐체가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한다 아쉬움은 있지만, 김연경은 구단에서 팀내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잔류 결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에이전트를 둘러싼 흥국생명과의 마찰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2012-13 시즌을 앞두고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에 난항을 겪었다. 이후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두 측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 흥국생명
    '아직 김연경이 김연경 룰에 의해 국내 V리그에서 FA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원소속구단' 임을 주장하였다.[16]
  • 김연경 측
    흥국생명에서 4년을 뛴 뒤 해외로 3년간 임대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임대된 기간도 흥국생명에 몸담고 있는 기간으로 치는 논지를 폈다.

그런데 김연경의 임대계약이 체결된 시점에서 KOVO 규정상 국외의 구단에 임대 계약시 선수 신분에 대한 조항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양측 모두 할 말이 있다.[17]

1.1.4.2. 전개
게다가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JT마블러스와 페네르바체에 임대했을 당시 기부금 명목으로 매년 선수 연봉 중 6천만 원을 갈취했다는 의혹이 있다.[18] 아제르바이잔의 배구팀인 '라비타 바쿠' 에 김연경을 임대하면서 김연경이 받아야 할 연봉인 100만 유로 중 20만 유로를 흥국생명이 착복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선수의 신분을 두고 대립했던 문제가 구단의 금액 착복 문제까지 겹치자 결국 이 사건은 시궁창 싸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남은 것은 흥국생명이 표면상 '대승적인 차원' 에서 배려해주는 것 뿐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인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전에 결정짓겠다던 이적 문제가 올림픽을 지나 9월 초가 되도록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김연경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대한배구협회높으신 분의 말씀 한마디이면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사실 진짜 일해야 할 곳은 계약기간과 신분부터 확실히 해줘야 할 한국배구연맹(KOVO)고 대한배구협회는 이적동의서 쓰는 것이 할 일. 따라서 이 일이 대한배구협회로 가는 것부터가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그 높으신 분은 김연경 이적 파동 발생 때 대통령 해보고 싶으시다고 나대셔서...[19]

2012년 9월 7일 14시에 김연경의 이적 문제에 관련한 기자회견을 연다고 대한배구협회가 밝혔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김연경 선수를 위한 결론이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대한배구협회에서는 선수와 구단, 리그 어느 한쪽의 의견을 편향되게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제배구연맹(FIVB)의 유권해석으로 넘기게 됐는데 FIVB에서는 당사자인 김연경과 흥국생명과의 재협상을 명령했다. 이는 계약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된 선수도 소속팀이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단년계약으로 갱신하려는 행태와 함께 FA 신청 연한이 지났음에도 임대라는 이름으로 선수등록 권리를 가지려 하는 한국 배구계의 선수계약 방식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염두해둔 FIVB의 의중이었다. 다만 FIVB에서는 로컬 룰 존중이 우선이고 당사자 간의 숙고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우선적으로 제시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FIVB가 흥국생명의 편을 들어주고 말았다. 흥국생명-김연경 간의 합의서를 뒤늦게 알고 흥국생명의 손을 들어줬다는데 문제는 그 합의서는 FIVB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문서이다.[20] 이를 안 김연경 측은 선수 은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농담이 아니라 제대로 선수 생활하려면 이젠 해외로 귀화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21] 현재 네티즌 여론도 귀화를 바랐다. 그러나 김연경 자신은 귀화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이렇게 되자 김연경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가운데 2012년 국정감사 때 '김연경 사태' 가 이슈로 떠오르며[22] 정치권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19일 김연경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줄 것을 호소했으며(기사 1, 기사 2) 이 날 국회 문방위원회가 주재한 국정감사 정책질의에서 민주당 최재천 의원 등이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에게[23] 국제이적동의서 발급 및 FA 규정 개정을 촉구하였다. # 사태가 커지자 결국 2012년 10월 22일 대한배구협회는 김연경에게 1년 기한의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초 논란의 핵심이었던 FA 규정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연경 사태' 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으나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 사이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했다.

1.1.4.3. 2013년의 경과 : 진전 없이 제자리 상태
선수 신분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김연경은 일단 대한배구협회에서 임시로 이적동의서를 발급고 2012-13 시즌에도 페네르바흐체에서 뛰었다. 아주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가 정리가 되지 않아서 어려운 시즌이 될거라 우려도 많았지만, 김연경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팀의 에이스로서 제몫을 다했다. 그러나 여전히 매듭짓지 않은 문제는 2013년 오프시즌에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다.

2013년 7월 1일, 흥국생명은 결국 김연경 선수를 임의탈퇴 처리했고 한국배구연맹(KOVO)는 이를 승인했다. 흥국생명 입장으로는 김연경 선수가 해외 진출하는데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지원 뭐? 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결정을 무시했다며 뭐?? 임의탈퇴 처리를 했다고. 다만 김연경 선수가 규정을 준수하고 성의 있는 사과를 한다면 선수계약이 아닌 노예계약 임의탈퇴를 해제하겠다고. 지금 이 상황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마침 흥국생명이 임의탈퇴 공시를 한 즈음,팀 내부의 고민이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류현진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허락해준 한화 이글스와 비교되어 더욱 까였다. 흥국생명의 행보야말로 전형적인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못 가지게 하겠다 혹은 망가뜨려버리겠다' 라는 전근대적인 쓰레기 마인드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류현진 포스팅의 경우는 류현진의 소속팀이었던 한화 이글스도 상당한 포스팅비를 챙길 수 있다는 점이 있었던 데 반해, 흥국생명의 입장에서는 김연경이라는 선수를 거의 뺏길 판이었다. 김연경이 엄연히 흥국생명 소속 선수인 건 맞고 페네르바체에 임대를 간 것이었기 때문에 흥국생명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이고 KOVO와 FIVB은 그 점을 중히 여긴 건지 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제는 그 때문에 세계급 에이스가 국내에 발목 잡히고 만 것. 이에 팬들은 이런 흥국생명의 입장을 알려주면 알바 취급하면서 흥국생명 깠다. 하지만 애초에 규정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구단이 리그 의사와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해 계약을 했고 리그가 이를 방치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KOVO의 주체 중 하나가 바로 흥국생명임을 고려하면...

결국 7월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7월 25일까지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국가대표팀 은퇴도 불사하겠다 는 초강수 배수진을 쳤다. # 사실상 선수로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셈이라 팬들은 말 그대로 복창이 뒤집어질 지경. 그리고 흥국생명은 가루가 나노분자로 분해되도록 까였다. 그런데 기레기들은 오히려 노골적으로 김연경 선수를 깠다. 그것도 모자라서 김연경 선수보고 귀화하라고 하는 팬들을 싸그리 디스하며 하등 쓸모없는 애국심만 들먹였다. 이런 와중에도 흥국생명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언플이나 하면서 자신들의 멘탈이 쓰레기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쯤 되면 정말로 답이 없다.

다만 누구는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신성한 국가대표 자리를 담보로 흥정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김연경을 비판하는 입장도 좀 있는 편. 그런데 사실 국가대표 은퇴란 카드를 꺼내들 필요도 없었다. 임의탈퇴 조항은 V-리그에서만 적용될 뿐이고 협회가 이적동의서만 써주면 어디서든 뛸 수 있다. 국가대표 은퇴란 카드는 지나치게 극단적이었다는 입장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후 긴급 기자회견이 기자회견이 아닌 김연경 측의 일방적인 발표였고 에이전트가 기자들의 질문을 전면 차단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김연경은 7월 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입장을 자세히 밝혔다. ### 한편, 협회와의 대화를 하러 변호사와 에이전트와 대동했으나, 협회에서는 이 조력자 둘을 빼고 김연경과 직접 대화를 했으며, 협회 관계자가 김연경에게 폭언을 했다는 후문을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남기기도 했다.

1.1.4.4. 결과
2013년 9월10일 FIVB에서 사실상 김연경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렸다. 2013-2014 시즌까지는 흥국생명 소속이고, 페네르바흐체에선 상한선 22만 8750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해야 하며, 흥국생명은 그 이후 김연경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고 결정지었다. 또한 김연경이 2013~2014시즌 이후 흥국생명과 계약을 맺지 않을 경우 다음 시즌은 원 소속 구단이 없어진다고 판정했다. 참조.

이번 최종 결정에는 터키 구단인 페네르바흐체가 끝날 것 같지 않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단을 꾸리므로써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은 스포츠 국제룰을 근거로 들면서 FIVB에 흥국생명과 김연경 간의 계약서가 없음을 어필했고 보통 판결을 뒤집지 않는 선례에도 불구하고 FIVB는 판결을 바꾸었다. 하지만 김연경의 소유권을 계속 주장하고 싶은 흥국생명은 FIVB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재심을 요청했고 페네르바체 역시 김연경의 계약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싶어 재심을 받아드렸다.


이번 일로 인해 대한민국의 배구계는 망신을 당했으며 후진적인 룰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나 우물 안 개구리의 그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선수 대 구단의 분쟁이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겠지만, 흥국생명으로서는 선수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혹은 흥국생명-김연경-페네르바흐체 3자간 이적협상을 진행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흥국생명 측의 생각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더군다나 김연경의 원 소속구단이 되고 싶었던 흥국생명의 글자를 FIVB가 지워줌으로써 김연경은 후에 이적시 발생할 이적료는 고스란히 대한배구협회가 챙기게 된다. 김연경의 해외 이적을 계속적으로 방해하는데 한몫했던 배구협회는 생각지도 못한 콩고물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돈은 배구회관 관련 대출 상환으로 꼴아박고(...)

추가적으로 김연경 이적 파동과 직접 당사자였던 흥국생명 구단,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의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얽히고설켜 삽질을 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박상설 KOVO 前 사무총장이 기금전용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대한배구협회 임태희 회장은 김연경 이적 파동이 생길려고 하던 시점에 공석이었던 KOVO 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며 물밑 작업을 시도했었다. 여기에 흥국생명이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주최인 대한배구협회에 떡밥을 던졌고, 흥국생명 권광영 단장은 당시 KOVO 총재 추대위원회에 속해있어 KOVO 총재에 눈독을 들이던 임태희 회장의 대한배구협회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또한 흥국생명은 온갖 비리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박상설 총장에게도 추파를 던져 박 총장에 대한 연임 지지를 약속하며 김연경의 해외진출건을 KOVO 이사회 차원에서 막아달라는 ‘딜’을 성사시켰다. 이후에 임태희 회장이 새누리당 18대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하고,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의 ITC 발급 불가에 대해 SNS 구명활동에 응하는 엉뚱한 짓으로 우왕좌왕하며 망신을 자초했다. 해당기사

결국 김연경은 이적 파동을 통해서 해외 이적시 완벽한 FA가 되었으며 김연경은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준 페네르바흐체와의 계약을 연장함으로써 '의리'를 지켰다.

1.2. 국가대표 No.1 에이스


2012 런던 올림픽 인터뷰 당시 사진.

2014년 현재 국가대표 부동의 에이스이자 절대 빠져선 안 되는 선수. 빠지는 그날 한국 여자배구의 헬게이트가 열린다 한국 여자배구 거포의 계보를 잇는 선수이자 한국 여자배구 역사상 본격적으로 장신의 피지컬을 갖춘 최고의 거포로 평가된다. 이제는 선배들을 뛰어넘어 한국 여자배구 역사 이래 가져보지 못했던 입지전적인 월드 스타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사실상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김연경 혼자 풀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국제전을 보면 한 경기에 평균 20~30점을 책임지고 늘 공격부문 Top 5에 오른다(…). 물론 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김희진 등 여자대표팀 주 공격원이 평균 10점 이상, 크레이지 모드 때 10점대 후반 가까이 찍어주기는 하나 김연경은 팀 득점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베로보다 잘하는 서브리시브이기도 해서 김연경이 잠깐이라도 쉬러 벤치에 들어가면... 더 이상 할 말이 必要韓紙?! 그야말로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헬게이트를 걱정해야 한다.

특별히 부상이 없는 한 향후 10년은 여자배구계를 이끌 대형 선수이나 프로 입문 이후 무릎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황현주 감독이 막 굴려먹은 게 문제인 듯 고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나 정규시즌 전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김연경의 컨디션이 어떠냐에 따라 국제전의 성패가 달려있기도 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수상, 선수 생활 최초로 메달을 획득했다.

2011 월드그랑프리 조별예선에서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가모바를 가볍게 뛰어넘고 득점부문 1위를 기록했다. 특히 8월 19일 대 러시아 전에서 거둔 31득점은 김연경이 월드 클래스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러나 경기당 평균 22.5점을 올리는 걸 보면 다른 선수들의 분발이 필요했다. 결국 대표팀은 최종 8강 라운드에는 오르지 못하면서 김연경의 기록은 소멸되고 말았다. 지못미.

2012년 올림픽 최종 예선대회에서 김연경은 대표팀을 8년만에 2012 런던 올림픽으로 영도했다. 특히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 한일전에서 22연패라는 수모를 끊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시 맹활약했다. 조별리그-8강전 6경기 동안 평균 27.5점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보였다. 게다가 김연경이 막힐 때마다 한송이, 김희진, 양효진 등이 10점 중후반 대의 점수를 올려주면서 김연경과 아이들 이나 다름없는 여자배구 국대팀을 밸런스를 갖춘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갔다. 결국 2012년 8월 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전에서 3-1로 이기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여자배구 국대팀을 4강에 입갤시켰다. 하지만 4강전에서 미국에게 지고 3, 4위전에서 과거 '김연경과 아이들' 시절의 경기력으로 회귀해버리는 바람에[24] 올림픽 4위로 마감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2위와 40점차득점 1위.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중에 유일하게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선수이기도 하다. 양효진이나 이숙자, 김사니, 한송이, 한유미 등도 간간히 교체되고 황연주는 김희진의 원포인트 서버로 전락했으며 김희진은 당시 신인이었던지라 황연주와 번갈아 투입되었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김연경 선수 개인으로서는 국제배구연맹에서 선정한 런던 올림픽 MVP로 뽑히는 영광을 받았다. # 우승은 커녕 메달 획득도 실패한 국가에서 대회 MVP로 선정되는 것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사상 두 번째라고 한다. 또한 대회 총 득점 207점으로 종전 올림픽 기록이었던 예카테리나 가모바의 204점을 능가했으며 당연히 득점왕에 선정되었다. 이젠 배구게의 펠레 소리가 나올 판

후에 올림픽 조별리그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의 반월성 연골판이 파열되었지만 본인의 수술 때문에 국대가 올림픽 광탈하는 게 싫어 고통을 참고 계속 경기를 치뤘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25] 오오 대인배...

그러나 제아무리 강철 체력에 승부욕 강하고 멘탈 강한 김연경이라 할지라도 2012~13년 두 해에 걸친 이적 사태와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가 겹쳐 앞서 농담처럼 얘기한 그 헬게이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3년 9월 아시아선수권대회 3~4위 한중전에서 오른쪽 어깨 탈골 부상을 입은 채로 끝까지 경기를 뛰어 대표팀을 3위에 올려놓고 FIVB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열흘이 지나고 벌어진 2014 세계선수권대회 대륙별 예선 초반 김연경의 결장과 대표팀의 카자흐스탄전 패배로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진출에 실패했다.[26]

2014 FIVB 월드그랑프리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뽑혔다. 물론 김연경보다 나이가 더 있는 언니들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중고참의 위치라는 점과 김연경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박지성이 주장이 된 것과 같은 비슷한 맥락. 그만큼 김연경은 국가대표팀의 무게감있는 에이스다.


2014 FIVB 월드 그랑프리에서도 역시 그룹1 득점부문 1위를 달렸다(조별예선 종료 기준 242점-평균 26.89점). 2위와는 무려 60점 가까이 차이났다. 공격 1위, 서브 1위를 기록했다. 블로킹을 빼더라도 공격만큼은 김연경이 쌈싸먹고도 남았다. 뭔가 데자뷰같아 보이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어! 대표팀의 확실한 제2 옵션인 김희진과 충격적인 성인대표팀 데뷔를 한 신성 이재영, 국가대표팀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박정아 등도 도움을 줬지만, 역시 어려운 볼이나 결정적인 상황은 김연경이 주로 처리하였다. 이 때문에 블록 높이가 좋은 팀들에게 집중 마크가 되었다. 한편, 8월 10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러시아 전에서 무려 42점을 올리는 맹활약으로 종전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후 AVC컵-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팀 리더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며 결국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본인 최초의 금메달 획득.

1.3. 플레이 스타일

국내 여자배구 선수 중에서 아주 큰 편인 192cm의 키[27]초대형 공격수이며 여자 신현철이다.

고교 입학 시절엔 키가 작아서라고 해도 고 1때 170cm였다. 위너 리베로와 세터를 맡기도 하였으나 키가 급격히 컸음에도 월등한 운동 능력과 리시브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사기캐릭터로 진화했다. 고득점을 올리는 주포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 능력 또한 출중한 그야말로 완전체이다.

190cm의 장신이지만 단신 공격수들의 주공격 방법인 왼쪽 측면 C속공과 중앙 시간차 공격 등 스피드 배구가 가능하다. 물론 압도적인 신장과 스파이크 높이가 있어 상대편 전위의 블로커가 투 블록 내지는 쓰리 블록을 떠도 상대 블로킹 위를 넘어 코트 먼쪽의 대각으로 넣는 공격도 가능하다. 백어택 능력 또한 뛰어난데, 국가대표팀에서 정대영이 A퀵을, 김희진이 이동B퀵을 뛰는 척 상대편을 속이면 김연경이 백어택을 해 주는, 남자부 경기에서나 볼 듯한 파이프(PIPE) 공격과 같은 고난도 플레이도 가능하다.

한편 이런 캐사기적인 플레이도 가능하다. 장면은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 정대영이 2단으로 연결하는 상황에서 미처 도움닫기 준비를 못한 김연경이 제자리뛰기로 백어택을 성공시켰다. 오오.

수비 면에서도 최고의 선수. 앞서 언급했듯, 한일전산 신입 시절에 리베로를 본 적이 있어 상대 서브 캐치를 잘 해낸다. 김연경이 만능플레이어인 이유. 그런데 이런 능력 때문에 김연경의 대각에 서는 윙리시버들은 종종 김연경과 비교를 많이 당한다. 이를테면 한송이라든가... 그리고 전위에 있을 때 양효진이나 김희진과 함께 같이 투 블럭을 이뤄 '통곡의 벽'을 만들기도 한다. 다만, 김연경이 날개공격수를 전담해서이기도 하고, 흥국생명에서 뛰던 시절보다 수직점프 부분은 살짝 낮아졌기 때문에 블로킹을 전담하는 센터에 비해서는 블로킹 부분이 조금 약해지긴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신장이 비슷하거나 작은 나라를 상대로 해서는 김연경 자체의 키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1.4. 이모저모

데뷔 당시에는 짧은 머리에 모델 겸 연기자 정수도플갱어로 통했지만 머리도 기르고 잘 꾸미고 다녀 점차 여성스러워졌다. 제 남자친구는 180cm 이상이었으면 좋겠어요. 낚을 때 쓰기 좋은 기사 제목 중 하나다. 사실 자신의 키에서 -12cm까지 커버할 수 있다는 김연경 선수가 대인배 이상형은 조인성이라는데 그 조인성조차 6cm나 작다! 2012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GQ에서 화보 촬영을 했는데, 웬만한 미소년 뺨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 GQ 화보 및 인터뷰

데뷔 초기에는 제빵의 명장 한유미와 더불어 식빵찰지게 구웠다. 한유미나 김연경이나 괄괄한 여장부 스타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다만 일본 진출 이후 머리가 길어지고 여성적인 성격이 되면서 이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가끔은 와일드했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보고 싶다 그러나 트위터에 들어가면 터키어로 쓰여진 욕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김연경은 3녀 중 막내로 원래는 큰언니가 배구 선수였다. 그런데 큰언니와 친분이 깊은 김연경은 큰언니가 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다가 결국 배구를 시작했다. 황당한 것은 정작 큰언니는 중간에 배구를 그만두고 현재 학원강사가 된 반면 언니 따라 배구를 배운 막내 김연경은 세계적인 여자 배구 선수가 되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김연경은 평소에도 고등학교 선배인 한유미-한송이 자매를 무척 부러워한다.

2008년 시즌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는 김연경을 비롯하여 황연주, 주예나 등 굉장한 미모를 가진 선수들이 많아 이 팀이 세간에는 미녀 군단 으로 통했다.[28] 그러나 현재는 황연주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로 이적하고 말았으니... 글구 요새는 미녀군단보다는 막장구단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미녀군단의 명성은 성적은 시궁창인데 얼짱이 많은 성남으로 이사갔다.

2010년대에 들어서 그녀의 재래 소리를 듣는 신인이 폭풍 같이 성장했다. 결국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김연경은 자신의 재래 소리를 듣는 대후배와 호흡을 맞춰서 디펜딩 챔피언인 브라질을 완파하는 등 좋은 성적으로 4위에 입갤했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팬이라고 한다. # 사실 흥국생명의 왕언니 세터 이영주의 남편이 두산 베어스의 투수 이재우다. 이영주의 은퇴 전에 쉬는 기간에 후배들을 데리고 두산 경기 단체관람을 가는 등 얼마 전까지 교류가 꽤 있었다.


유니폼을 보니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리고 모 구단은 엄청 찔리겠지

그런데 왜 2012년 8월 19일 한화 이글스LG 트윈스와의 대전 경기에 시구자로 나온 거냐고? 다름아닌 박찬호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고. 2011년에 박찬호오릭스 버팔로즈 소속으로, 김연경은 JT 마블러스 소속으로 활약했다. 두 팀 연고지가 모두 오사카여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은 이날 한화 유니폼에 61번을 달고 시구를 했다. 원래 김연경은 소속팀, 대표팀에서 모두 10번을 다는데 말이다.[29] 190cm가 넘는 김연경이 마운드에 서자 키가 185cm인 박찬호가 작아보였다고. 박찬호 지못미 시구 역시 큰 키에서 내려 꽂는 시구를 했다.

2012년 9월 11일 SBS 강심장에 출연해 직접 스파이크 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사실상 동갑내기인 한승연 옆에 섰다. 자신의 기량이 해외에서는 유명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많이 아쉽다고 전했다.


인천에 중국집을 개업했다고 하더라. 중국집 사장님(...)
2014 국가대표팀과 함께 찍은 사진. 처음으로 주장을 맡은 2014 대표팀에서 최고참과 어린 선수들의 중간에서 잘 연결하며 항상 대표팀의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2014년 여름에 한창 벌어졌던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선수들에게 잔혹하게(...) 얼음물을 끼얹으며 재미있게 팀 단합을 이끄는데 솔선수범했다.

이하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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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옛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2013년에 개명했다.
  • [2] 2007년 이후 스폰서명을 팀명으로 붙인다. (아즈바뎀 보건 그룹(2007년~2011년)-유니버셜(2011년)-그룬디히(2014년~2015년))
  • [3] 해외 팬들이 지은 별명. 러시아의 배구 여제 200cm의 거한 예카테리나 가모바를 빗댔다.
  • [4] 메시처럼 세계여자배구의 원탑이며 전성기 역시 지나지 않았기에 축구에서 일인자로 비견되는 메시와 어울려 붙이는 김연경의 별명이기도하다. 포지션 및 역할에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수비력 역시 좋기 때문에 독일국가대표 감독이자 터키 유수의 클럽인 바크프방크의 감독인 지오반니 기데티 감독에게 메시보다 더 훌륭한 선수라고 칭찬 받기도 했다.
  • [5]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 [6]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에 대상 선수.
  • [7]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신인왕-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은 김연경 포함, KBL 2001-02 시즌의 김승현과 프로야구 2006 시즌의 류현진이 있다. 그런데 둘 다 KBL 파이널/한국시리즈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김승현은 2001-02 시즌 파이널에서 맹활약했긴 했지만 MVP는 마르커스 힉스가 탔다.
  • [8] 현 연고지는 인천광역시이지만 김연경이 뛰던 당시에는 현대캐피탈과 더불어 천안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했었다.
  • [9] 참고로 나머지 베스트 7은 다음과 같다. : 수비형 레프트 - 최광희(전 KT&G), 라이트 - 황연주(현대건설), 센터 - 양효진(현대건설), 정대영(GS칼텍스), 세터 - 김사니(아제르바이잔 로코모티브 바쿠), 리베로 - 김해란(도로공사).
  • [10] 첫 해에 좋은 성적을 거두면 옵션으로 그 다음 해에도 뛸 수 있는 1+1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2010년 9월 국내 컵대회에 출전했다. 일본 리그가 오프 시즌인 저때 국내 컵대회 출전이 가능했다.
  • [11] 2011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 V리그는 잔여경기에 상관없이 시즌을 강제 종료했다. 이로인해 정규 리그 최종 성적이 시즌 통합 성적으로 인정되어 정규 시즌 1위였던 JT 마블러스와 사카이 블레이저스가 2010-11 시즌 우승팀이 됐다.
  • [12] 김연경이 JT 마블러스로 (임대)이적할 때 생긴 규정. 시즌 전(全) 경기의 25%를 뛰면 한 시즌 뛴 것으로 간주.
  • [13] 한 선수가 죄다 독식하면 안 된다고 해서 2관왕 먹었지만 사실은 4관왕인 셈이라고.
  • [14] 유럽 배구판 UEFA 유로파 리그 급 대회.
  • [15] 세계배구계에서는 사실상 최고 연봉 금액이다. 야구, 축구, 농구 등 리그 풀이 큰 리그의 고액연봉자에 비해서는 분명 많은 편은 아니지만. 참고로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로베르틀란디 시몬의 연봉이 이 정도다.
  • [16] 만약 김연경이 국내 V리그에서 계속 뛰었다면 2010~11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을 텐데 흥국생명은 일본-터키의 3년 임대 기간을 흥국생명 소속 선수로서의 기간으로 치지 않았다.
  • [17] 한국배구연맹 선수등록 규정집에 따르면 '해외임대 선수의 국내 리그 복귀는 시한의 제한 없이 국내 원 소속 구단으로만 복귀가 가능하며 복귀 시점부터 소속팀의 당해 시즌 예상 잔여경기(정규 리그 및 포스트 시즌 진출시 해당 경기 포함)의 25% 이상에 참여할 경우 FA 선수 자격 취득 연수(年數)에 산입한다' 라고 나와있는데 이 조항은 2010년 8월 28일 개정되었으며 김연경은 소급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 3항 위의 1, 2항에 해외임대선수가 선수 정원과 샐러리캡에 명시되어있는 이상 이 조항으로 해외 임대 선수의 국내 FA 선수 자격 취득 연수 여부를 가리는 데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 [18] 원래는 1억이었는데 선수가 항의를 하니 무려 6천만원으로 깎아줬다! 대인배 코스프레
  • [19]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MB 정권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으로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후보로 나선 바 있다.
  • [20] 합의서 내용은 김연경에게 불리한 조항 투성이. 단, 마지막에 양 측은 FIVB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었다. 김연경측은 그걸 노린 듯.
  • [21] 소속 팀의 문제라 귀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 [22] 국정감사가 있기 전부터 김연경의 팬들이 중심이 되어 SNS를 통해 정치권에 구명 활동을 벌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화답을 하면서 불씨를 지폈다.
  • [23] 이 날 감사는 대한체육회를 포함한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대통령 하고 싶다고 나대신 대한배구협회장 임태희는 출석하지 않았다.
  • [24] 양효진과 한송이는 체력이 떨어져서, 김희진은 경험이 부족해서 고전을 했다.
  • [25] 올림픽 후에도 수술을 받지 않고 2013년 3월 현재까지도 계속 터키 리그에서 무릎이 나간 채로 뛰고 있다.
  • [26] 2014년 배구 국제대회 일정 중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의 일정이 겹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대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놓치고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은 확보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대한배구협회가 2014년 일정에 맞춰 여자대표팀을 A·B팀으로 나누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의 금메달에 집중하겠다는 뉘앙스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 [27] 사실 김연경이 키가 크긴 해도 V리그 데뷔 초기 프로필에는 187cm였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키가 자라고 있었는데, 최종 임계신장이 195cm로 추측했을 정도. 참고로 2014년 현재 V-리그에서 190cm가 넘어가는 국내 여자배구 현역 선수는 양효진김세영(이상 현대건설), 문명화(인삼공사)가 있다. 그리고 포지션은 모두 센터.
  • [28] 배구가 프로화되면서 구단에서 민 기믹이었다. 프로화 초창기의 주전인 구기란, 진혜지, 이영주, 윤수현, 전민정, 황연주, 김연경 이렇게 모아 '7공주' 로 부르기도 했다.
  • [29] 그런데 사실 배구 선수는 평생 61번을 다는 일이 없다. 배구 선수는 규정상 1~18번까지만 달 수 있다. 또한 랠리 때마다 매 선수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의 유니폼 번호를 심판과 기록석에서 끊임없이 챙겨야 하는 배구의 특성상 이러한 번호 규정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즉 배구 선수에겐 영구결번 따위는 없다. 따지고 보면 평생 못 달 번호를 야구장에서라도 한 번 달아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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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8 04: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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