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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last modified: 2015-04-05 09:39:38 by Contributors

Contents

1. 한국의 전 정치인
1.1. 출생 ~ 기자 시절
1.2. 정치인 시절
1.3. 기타
2. 전직 저그 프로게이머
3. 전직 테란 프로게이머
4. 스페셜 포스 프로게이머

2번과 3번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4번은 스페셜 포스 프로게이머.
  • 동명이인 '김윤환' 이라는 이름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셋이나 있다. 이 중 두 명은 전직 프로게이머.

1. 한국의 전 정치인

1.1. 출생 ~ 기자 시절

경상북도 구미시(당시에는 선산군) 장천면 출생. 호는 허주(虛舟). (1932년 6월 7일 ~ 2003년 12월 16일)

경북고등학교 -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이후 영남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거친다. 이 시절 오랫동안 주일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의 금권 정치, 계파-계보 정치, 막후 정치를 보고 배운다.(중도에 국회의원 출마도 하는 등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전한다.) 1978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1.2. 정치인 시절

고등학교 동창인 보통 사람의 권유로[1] 민주정의당 창당 멤버로 들어가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아래 청와대와 집권당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을 주무르는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한다.

1979년 정계에 입문한 뒤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느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감청되어 국가안전기획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2]. 1986년 8월 개각 때 허문도의 뒤를 이어 대통령비서실 정무제1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1987년 7월 김정렬 내각이 출범하자 박영수의 뒤를 이어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전두환 밑에선 친구인 노태우를 후계자를 옹립해서 대선에서 승리했고, 노태우 밑에선 김영삼을 후계자로 지원해서 역시 대선에서 승리한다. 이런 활약으로 "킹 메이커"(King Maker)라는 별명으로로 불리었다. 이후 김영삼 밑에선 회창을 후계자로 밀었으나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특히 3당 합당 이후 김영삼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던 구 민주정의당(군사독재 정권) 출신 인사들을 설득해서 강력한 김영삼의 지지세력, 일명 신민주계를 규합했다. 당시 김윤환은 민정계 인물들에게 '국민들이 군부 출신 민정당 인물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일단 김영삼을 세워서 정권을 이어가고, 그 다음에 우리(TK+민정계)가 주도하는 보수정권을 창출하면 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2000년 자신이 밀었던 회창으로부터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당해 국회의원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후 조순, 이수성, 박찬종, 기택 등 3김 정치 + 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당시의 양당 구도에 밀려 한승수 전 국무총리(춘천시)만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이른바 삼당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2년 초 연정이 붕괴되자 한승수도 탈당해 버리고 입각해버린다. 이 시기 "호남이 밀어 주는 영남 대통령 론"으로 회창을 패망시킬 걸 구상했으나.. 민주당의 분위기도 여의치 않았고 대선 직후 병도 찾아왔다. #

이후 신장암 판정을 받아 립암센터에 입원했지만, 결국 2003년 12월 16일에 타계했다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3]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에서는 정치공학적 능력은 대단했던 사람이다.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회창이 용서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는 없이 세상을 떴다.

1.3. 기타

2003년 그가 죽자 그의 호인 허주(虛舟), 즉 빈 배처럼 갔다고 해서 권력은 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의 친동생 김태환은 17대, 18대, 19대(한나라당 -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구미시 을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의 오상중고교 뒷편에 안장됬다. 오상중고교는 김윤환의 아버지인 김동석 전 국회의원이 세운 학교다.[4]

시인으로도 활동했는데, 경북대학교 정문과 복지관 사이로 새롭게 단장한 KNU 센트럴 파크에 그의 시비가 있다.[5]

2. 전직 저그 프로게이머

김윤환(1989) 항목으로.

3. 전직 테란 프로게이머

김윤환(1988) 항목으로.

4. 스페셜 포스 프로게이머


MBC게임 히어로+ 팀의 1990년생 프로게이머. 근데 1990년생으로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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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석에선 전두환, 노태우와 서로 반말하면서 술 마시는 사이라고 한다.
  • [2] 고문운 당하지 않았다.
  • [3] 개혁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이 여론조사에서 불과 2~3프로 나올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 [4] 칠곡3번 경운대학교행이 장천시외버스터미널에 정차하기 전에 오상중고교를 지나지만 무정차 통과한다.(상장1리에는 정차한다.) 칠곡3번을 탔다면 장천터미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 [5] 경북대학교에서 잠깐 교수로 재직한 적이 있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 작품인 "꽃"도 KNU 센트럴 파크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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