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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

last modified: 2015-04-11 02:51:53 by Contributors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올스타 베스트10
선동열
(투수)
이만수
(포수)
장종훈
(1루수)
박정태
(2루수)
김재박
(유격수)
한대화
(3루수)
양준혁, 이순철, 장효조
(외야수)
김기태
(지명타자)

1982년 전설의 시대

LG 트윈스 감독 시절 위대한 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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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8.51 KB)]
DTD 이론을 정립한 위대한 물리학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론을 창시한 사람. DTD는 인생살이에도 매우 중요하다.

''' 연천 미라클 No.
김재박(金在博)
생년월일 1954년 5월 23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대구초-경북중[1]-대광고-영남대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2] 한국화장품 (1977~1981)
MBC 청룡-LG 트윈스 (1983~1991)
태평양 돌핀스 (1992)
지도자 태평양 돌핀스 수석코치 (1993~1995)
현대 유니콘스 감독 (1996~200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4, 200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6)
LG 트윈스 감독 (2006~2009)
연천 미라클 수석코치 (2015~)

1998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김응용(해태 타이거즈) 김재박(현대 유니콘스) 이희수(한화 이글스)
2000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이희수(한화 이글스) 김재박(현대 유니콘스) 김인식(두산 베어스)
2003년, 2004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김응용(삼성 라이온즈) 김재박(현대 유니콘스)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1983 ~ 1986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오대석(삼성 라이온즈) 김재박(MBC 청룡)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1989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김재박(MBC 청룡)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MBC 청룡 & LG 트윈스 등번호 7번(1983~1991)
결번 김재박(1983~1991) 김재현(1994~2004)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7번(1992)
송재박(1991) 김재박(1992) 유영환(1993~1995)

현대 유니콘스[3] 역대 감독
정동진 (1992~1995) 김재박(1996~2006) 김시진 (2007)
LG 트윈스 역대 감독
이순철[4] (2004~2006) 김재박(2007~2009) 박종훈 (2010~2011)

역대 감독 전적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1996 현대 유니콘스 126 67 54 5 4위 준우승[5]
1997 126 51 71 4 6위 -
1998 126 81 45 0 1위 우승
1999 132 68 59 5 3위[6] -
2000 133 91 40 2 1위[7] 우승
2001 133 72 57 4 2위 3위[8]
2002 133 70 58 5 3위 4위[9]
2003 133 80 51 2 1위 우승
2004 133 75 53 5 1위 우승
2005 126 53 70 3 7위 -
2006 126 70 55 1 2위 3위[10]
통산 1427 778 613 36 ­
연도 소속팀 경기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2007 LG 트윈스 126 58 62 6 5위 -
2008 126 46 80 0 8위 -
2009 133 54 75 4 7위 -
통산 385 158 217 10 ­
총계 1812 936 830 46 ­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2.1. 연도별 주요 성적
3. 지도자 생활
3.1.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4. 대표팀과의 악연
5. 이야깃거리
6. 만능 스포츠맨
7. 위대한 김재박 감독님의 화려한 업적들

1. 개요

대한민국물리학자야구선수, 감독, 2015년 현재는 새로운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의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

선동열의 원조형태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 [11]

2. 선수 시절

그야말로 아름다운 시절

선수 시절엔 역대 최고의 유격수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공격, 수비, 주루 삼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모든 포지션에서 뛴 적이 있으며, 고교 때엔 투수로도 활약하였다[12]. 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 대회에서의 활약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프로야구팀에서도 영입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 특히 82년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 일본전 8회말에 시전한 번트로 홈런을 날리는 무시무시한 파워 무슨 마구마구 번트홈런도 아니고[13] 일명 개구리 번트는 야구인들이라면 누구나 봤을 명장면으로 김재박의 야구센스를 보여주는 장면. 1분 40초부터 보자. [14]

흔히들 말하는 김재박 - 이종범 - 박진만 - 강정호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격수 계보의 첫 번째 선수. 야구 오래 보신 어르신들은 김재박 이후로 그만한 유격수는 없다며 계보 같은 거 인정 안 하시는 분들도 많다. 2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그만큼이나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대체로 이 시기 김재박에 대한 회고는 아예 수준이 다른 유격수. "다른 선수들이 고교야구 수준의 수비를 하고 있을 때 혼자 프로야구 유격수처럼 플레이했다"는 기록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비 하나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했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나 한국실업야구 특성상 시즌이 끝난후엔 국화장품 선전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으로써도 활동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대단한 것들이다.


한국실업야구한국화장품 야구단 소속[15]이던 1977년에는 7관왕[16][17]에 등극하며 실업야구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해 보였다.

1977년 실업야구 통합 성적
타이틀 이름 소속팀 성적
타격 김재박 한국화장품 .439[18]
홈런 김재박 한국화장품 13개
유승안 한일은행
타점 김재박 한국화장품 37타점
도루 24개
출루율 추가바람
방어율우수투수 이선희 육군 1.91[19]
승률우수투수 추가바람
최다승리상 유남호 롯데 13승 4패

최우수선수상 김재박 한국화장품
타격삼관왕상 김재박 한국화장품
신인왕 김재박 한국화장품
황기선 상업은행

김재박은 그만큼 실업야구 시절 이선희, 최동원 등과 함께 강한 임팩트를 남겼던 선수였다. 이 때문에 1982년 MBC 청룡OB 베어스박철순을 넘기면서까지 그를 1차 지명했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 1차 지명은 원칙적으로 구단의 해당 연고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모든 선수를 지명할 수 있었다. 다만 서울 지역은 연고팀이 MBC였지만 OB 역시 5년 후 서울로 연고를 이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MBC와 OB가 3:1 비율로 서울권 선수를 지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박철순은 이 해 OB 베어스의 지명으로 프로무대에 데뷔했고, MBC 청룡은 박철순을 포기한 대가로 김재박과 함께 이해창을 얻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김재박은 고등학교만 제외하고 초등학교[20], 중학교[21], 대학교를 모두 대구·경북지역에서 다닌 대구토박이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만 서울에서 다녔던 것은 당시 영남야구의 자원이 하도 좋아서 자신이 도저히 그 안에서 경쟁할 수 없었던 까닭이라고 한다(…)[22]. 실제로 이 시대 경북고와 대구상고의 황금세대는 삼성 라이온즈 출범 멤버로 흡수되어 강력한 선수진을 구성하게 된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김재박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막전을 뛸 수는 없었다. 하지만 1982년 시즌을 아주 못 뛴 건 아니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끝나고 나서 바로 청룡에 입단하였고 잔여경기 3경기에 출전하여 13타수 무안타의 성적을 남겼다. 그래서 다른 국가대표 멤버들과는 달리 김재박은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3년 정식으로 프로무대에 등장한 김재박은 실업야구 시절에 비해 노쇠한 상태였다. 실업야구 시절이 그의 전성기였고 김재박의 프로야구 통산 성적은 생각만큼 그리 대단하진 않다. 김재박이 프로에 데뷔했을 때 만 28세였다. 고졸선수면 10년 경력이 쌓였을 나이다. 그래도 그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보고 있으면 전율이 흐르는 플레이로 유격수의 중요성을 대한민국 야구팬들의 뇌리에 깊이 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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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480.52 KB)]

오오오

화려한 명성에 걸맞게 자존심도 셌기 때문에 당시 MBC 청룡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고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감독이었던 김동엽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MBC가 LG로 바뀔 때까지도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기량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기용과 연봉문제에서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LG는 부득불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그를 태평양 돌핀스트레이드하였다. 김재박도 약 100개 정도 남은 프로에서의 개인 통산 1000안타 달성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23] 이 때 입단동기이자 팀의 또 다른 리더였던 이광은은 순순히 유니폼을 벗는다. 당시 LG그룹의 최고위층에서 "대스타인 김재박을 돈 받고 파는 것은 LG라는 팀에 어울리지 않고 김재박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돈을 받지 말고 그냥 풀어주라"라고 지시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15년 후 한 야구 전문기자는 이 트레이드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선수 김재박은 별 볼일 없는 노장이었다. 그러나 감독 김재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김재박이 LG에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보기 직전이라 이런 말이 나오긴 했지만.

LG 트윈스 선수시절 세제 광고에도 나오기도 했다... 광고에 나온 성우가 사오정 성우이다.

여담으로 그의 등번호였던 7번은 그의 선수 시절의 영향으로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유격수라면 누구나 달고 싶어하는 번호가 되었다. 이종범, 박진만, 김상수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아 등번호를 7번으로 달았다.

2.1. 연도별 주요 성적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성적.

  • 타자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1982 MBC 청룡 3 13 .000 0 0 0 0 0 0 0 0 .000 .000
1983 97 373 .290 108
(6위)
22
(2위)
2 5 46 53
(4위)
34
(2위)
42
(4위)
.376 .399
1984 91 343 .300
(8위)
103
(4위)
11 5
(5위)
7 37 53
(6위)
26
(4위)
36 .375 .423
1985 100 377 .313
(6위)
118
(4위)
15 3 3 36 54 50
(1위)
39 .385 .393
1986 102 386 .264 102 18
(10위)
4
(7위)
4 43 67
(1위)
38
(3위)
36 .336 .363
1987 101 399 .283 113
(6위)
23
(2위)
5
(7위)
1 24 53
(10위)
33
(2위)
39 .354 .373
1988 99 409 .267 109
(9위)
18
(8위)
1 2 26 49 25
(3위)
28 .313 .330
1989 101 357 .286 102 8 2 3 27 64
(3위)
39
(2위)
53 .380 .34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1990 LG 트윈스 109 381 .239 91 9 2 2 45 49 14 36 .306 .289
1991 82 247 .263 65 13 2 0 18 34 15 28 .343 .33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1992 태평양 돌핀스 82 276 .221 61 11 0 1 19 36 10 27 .299 .272
통산 11시즌 966 3561 .273 972 148 26 28 321 512 284 364 .346 .353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1985 MBC 청룡 1 0.00 1 0 0 0 0 0 0 0
통산 1시즌 1 0.00 1 0 0 0 0 0 0 0

역대수상
연도 수상내용
1983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1984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1985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1986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1989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각종 기록들
1996,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2006년 포스트시즌 진출(총8회)
1998, 2000, 2003, 2004년 한국시리즈 우승(총4회), 96년 준우승 1회
11시즌(1982년~1992년) 966경기 972안타 28홈런 321타점 512득점
284도루 타율 0.273 득점 1위(1986년), 도루 1위(1985년)

1977년 실업야구 7관왕
1985년 프로야구 도루왕
1983~1986, 1989년 골든글러브(유격수, 5회)
1998, 2000년 최우수 감독상

3. 지도자 생활

현대 시절엔 최종보스, 그 이후엔 암흑군주 시대.


태평양 돌핀스로 건너가 1년을 더 뛰고 김재박은 자신의 기량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시인, 선수생활을 끝내고 코치수업[24]을 받는다. 이후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되면서 새 구단에 어울리는 젊고 영리한 감독의 상에 부합한다는 현대그룹 고위층[25]의 판단에 따라 감독으로 취임한 후, 11시즌 동안 4회 우승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역대 감독 최단기간 승수 기록을 차례차례 경신하며 한국 최고의 감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페넌트레이스 전체 승률 6할이 넘어간 시즌이 총 3번(98년, 2000년, 2003년)이다.[26]

현대 유니콘스 No.70
김재박(金在博)

LG 트윈스 No.70
김재박(金在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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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81.7 KB)]

그리고 기울어져가는 현대와의 계약이 끝난 뒤 계약기간 3년, 계약금 5억에 연봉 3억 5천이라는 당시 역대 최고대우를 받으며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순철 전 감독이 부임하던 기간 동안 온갖 악재에 시달려온 LG팬들은 환호하며 LG의 부흥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첫 해인 2007년에는 막장전력에도 불구하고 아깝게 5위에 그치며 팬들에게 희망을 주는가 하더니 2008, 2009년 최악의 추락을 보이며 감독으로서의 역량마저 비판받는 처지에 올랐다.

그러나 LG시절 팀 성적 추락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부임 첫 해였던 2007년, 전임 이순철 감독이 역대 최악 수준으로 말아먹은 팀에서 우규민이대형최동수를 발굴하여 중용하고, 척박한 불펜진 속에서 김민기마당쇠노릇 시키며 팀을 시즌 막판까지 아슬아슬하게 4강싸움시킨 부분은 분명 김재박의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후임인 박종훈감독이 1998년 이래 역대 최강전력을 구축한 2011년에 4강과 한참 동떨어진 성적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김재박이 감독으로 무능했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감독 여하 현장 스태프들이 허약한 전력을 잘 활용하여 선전했음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전력보강에 임했어야 하는 구단은 2008년 단 1명의 FA도 잡아주지 않았고[27] 박명환의 부상과 2007년의 주역이었던 우규민, 이대형, 최동수, 김민기, 조인성이 모두 전년도만 못한 성적을 냄에 따라 봉중근, 옥스프링의 대활약이 더해졌음에도 팀 전체 전력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결과를 낳았고 8 원투펀치를 제외하면 총체적으로 무너진 마운드는, 결국 2009년에 두 명의 야수를 FA로 보강하면서 타선을 정상화시켰음에도 이번에는 옥스프링의 부상으로 인한 전력이탈을 버티지 못하면서[28]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7

그런 와중에서도 트레이드를 통해 잉여자원을 정리해서 손인호대타요원으로 활용하고 조인성과는 현격한 기량차를 보였던 최승환을 트레이드해서 데려온 이재영을 2008년에 중간계투로 요긴하게 활용했다.[29] 무엇보다 최승환 트레이드로 생긴 백업포수 공백을 은퇴한 김정민을 컴백시켜서 오히려 조인성의 주전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활용한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다.[30] 현대시절에도 이명수김동수 등 타팀에서 전성기가 지났다고 판단하고 버린 노장을 데려와 요긴하게 활용했던 전례도 있기에 김재박은 분명 베테랑의 유효한 활용이라는 좋은 감독의 요건을 지녔다. 그러나 어쨌든 감독직이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면 김재박도 팀 성적에 대한 비판에서 피해갈 수 없는 건 사실이다.

LG시절의 성적으로 인해 현대시절 업적에 대해서도 논란이 생겼는데, 그 업적이 실은 현대 유니콘스가 화려했던 모기업의 지원, 프런트의 뛰어난 역량[31]에서 비롯된 것이지 김재박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LG 트윈스 성적, 그리고 국대성적을 놓고 보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건 유니콘스 말기 성적이다. 00년대 이후로 현대는 부자팀이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지원이 확 줄어버렸고, 이 것을 프런트의 능력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프런트의 능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돈이 없는 팀이 프런트의 능력으로 예산부족을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FA등으로 선수들을 하나둘씩 뺏기며 선수층은 매우 얇아져있었다. 이런 2006년에 현대가 정규시즌 2등을 했던 것만으로도 팬들은 이것을 아직도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분명히 김재박 감독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현대 초기, 태평양의 약체 타선을 물려받고도 이명수를 중용해 내야와 타선을 강화한 점, 전성기가 지난 최창호를 팔아 당시 저평가돼있던 박종호를 데려와 최고의 2루수로 키워낸 점[32], 신인시절 물방망이질을 자랑했던 박진만을 한국을 대표하는 명 유격수로 성장시킨 점, 박경완을 내준 이후 김동수를 과감히 중용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하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점 등은 분명히 명감독의 소양이 있어야 가능한 부분들이다. 결국 현대시절의 성적은 프런트와 감독의 시너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데 이제 와서 김재박의 현대시절 업적을 일방적으로 평가절하하기는 힘들다.

현대시절부터 번트작전을 하도 시켜 김번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덕분에 야구판이 재미없어졌다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팬들은 김재박의 경기운영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았고 우호적인 반응이 많았다. 다만 현대팬의 수가 적었다보니[33] 실드가 안 쳐진게 김재박의 불운이라면 불운.

2009년 5월 9일. LG 감독으로서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최연소 통산 900승을 달성하였다. 1000승은 언제 할라나

참고로 본인이 프로시절에는 홈런을 잘치는 타자는 아니었는데 감독이 되고 홈런을 너무 좋아해서 인천구장 펜스 높이를 낮추고 수원의 잠실만한 넓은 펜스도 이중펜스를 쳐서 95-120-95로 만드는가 하면 LG감독 시절에는 전설의 X존을 만들어 잠실 홈런난무에 일조하기도 했다.

3.1.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현대 감독 시절인 2005년, 시즌 초반에 잘 나가던 롯데 자이언츠를 두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고 일러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만들어낸 장본인. 그리고 착실하게(?) 그 명언을 2009 시즌의 그 팀을 통해 재현해냈다. 원래는 현대가 하위권을 달릴 무렵의 인터뷰에서 '내려갈 팀이 생기면 그 때 치고 올라갈 것'이란 말이었는데 와전되어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라고 한다.

4. 대표팀과의 악연

두 번에 걸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03년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표팀 감독.
2006년 제15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감독.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에 이어 중화민국에게도 패함으로써 '삿포로 참사'를 겪었고[34], 06년에도 대만에 이어서 주로 사회인리그 출신[35]으로 구성된 일본팀에게도 패함으로서 '도하 참사'이란 말을 들었다.

앞으로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는 건 힘들 것으로 보인다.

5. 이야깃거리

LG감독 첫 해인 2007년 4월 22일 삼성전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에서 이대형의 2루땅볼이 1루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을 받자 엄청나게 분노해서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내내 그 상황을 가지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심지어는 "설사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때로는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냐" 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참고로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무조건 아웃이다.) LG가 이기고 있고 삼성이 오심으로 져도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양반아. 심판 판정은 모든 팀에게 공정해야 적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심도 불사하라는, 야구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

삼성이 한창 FA영입에 열을 올리던 시절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사실 이 발언은 선동열을 겨냥한것에 가깝다.2013년에 와선 재평가받고 있는 김재박의 드립이다.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인 말대로 검증된 선수들을 뽑아 치른 아시안게임은 대만전 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전까지 패배를 당하며 도하 참사를 야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박도 존재한다. 김인식감독도 “기술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하며 대표팀 발탁에 반대한 만큼 추신수의 대표팀 탈락은 김재박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으며, 당시 대표팀에 최종선발된 외야수는 이병규, 이용규, 이진영, 이택근, 박재홍 총 5명으로 김인식감독의 말대로 모두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외야수들로서, 추신수 대신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된것이 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것이다. [36]

또한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기록 브레이커? 과거 현대시절부터 시작된 행태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남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영덕을 들었을 정도.

2009년 잠실 야구장 펜스거리 단축을 제안하고 구단 프런트가 이 요청을 들어주어 LG가 홈경기를 할 시에는 구장의 크기를 줄이는 X존이 만들어졌다. 팬들 사이에서의 이름은 재박존 혹은 재박산성... 재빡존이라고도 언급한다. 근데 줄여도 웬만한 구장 사이즈 이상일 정도로 잠실이 넓긴 하다.

말이 많긴 했지만 홈런도 그럭저럭 나오고 일부 팬들은 만족한 모양이긴 한데, 여튼 2009년 시즌 결과를 놓고 보자면 재박산성이 설치된 경기에서의 LG 트윈스의 각종 공격 수치가 2배 가량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상대팀들의 공격력은 3배 정도 상승했다는 게 문제... 원정팀에 유리한 홈 어드밴티지였다는 비참한 결과를 낳은 희대의 쓰레기 전략으로 남고 말았다. 뭐, 거기엔 상대적으로 빈약한 LG투수진이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자신이 공들여 키운 박진만FA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그때부터 삼성을 대놓고 싫어했다. LG에 와서도 '라이벌은 삼성'이라고 말을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2008년 시즌 종료후 LG구단 자체 행사로 펼쳐진 역대 올스타 경기에서 현역 선수가 무색해질 만큼의 유격수 수비와 송구를 보여주어, 차기 시즌 LG 주전 유격수는 김재박이라는 LG팬들의 자조섞인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역대 LG 트윈스의 감독 중에서도 매우 나쁜 성적587을 거뒀지만 나름대로 프랜차이즈 스타라서 그런지 경질론과 재계약론이 비등비등했던 뭔가 희한한 감독이다. 사실 재임 기간 동안 승률은 이순철보다 낮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이순철이 말아먹어서 그렇다고 이유를 대면 된다. 지금까지도.

결국 2009년 9월 26일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되어 감독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엘지 팬...아니, 대한민국 야구 팬들한테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이고 계신다.

그 내용이 걸작인데, 정리하자면 난 잘했는데 프런트가 못했고, 선수들이 잘 안따라줬고, 구단이 안밀어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런 인터뷰... LG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순철 이래 LG 트윈스흑역사 감독 확정. 팬들은 김재박이 앞으로 프로구단 감독을 맡기는 힘들다고 단언할 정도로 치를 떨었다. 이 와중에 묻힌 사실 중 하나는 이광은 전 감독 때부터 이어지던 LG 감독 임기 중 하차를 끝낸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후임 박종훈 감독 역시 빵빵한 지원을 받고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는데 실패하고, 선수들의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다는 것을 말하는 기사가 늘어나면서 과연 LG가 부진한 것이 감독의 문제인가에 대해서 재고의 목소리가 늘고는 있다. 하지만 이순철에 비해 김재박은 그런 재평가의 목소리가 작고, 워낙에 진상짓을 많이 해놔서 재고한다 하더라도 과연 평가가 좋아질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LG가 잘 나가려면 프런트를 갈아 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자기가 내려갈 팀이라고 말했던 팀의 감독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시상자인 여배우 이보희가 유격수 수상자인 김재박의 이름을 김재이리고 부른 해프닝이 있다.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이 사건 이후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이던 이보희는 무식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한자는 잘못 읽을 수도 있다. 문제는 김재박 선수가 너무나, 너무나 유명한 선수였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관심이 적은 스포츠 분야라고 하나, 시사 상식에 어두운 것, 게다가 자기가 나가는 행사에서 수상자 이름까지 몰랐다는 건 욕 먹을 만한 일이다. 나중에 선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바뀐 뒤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넓을 전할
두 글자를 확대해서 봐도 많이 비슷해 보인다. 여담으로, 하카타역의 한자도 博을 쓰는데, 가끔 가다 傳多역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보일 지경.

불암콩콩코믹스의 숨겨진 주연(?). DTD드립 때문인듯. 심지어 '시범만화' 에피소드에서는 저사람 이만화 제일 많이 나와!!라는 핀잔도 들었다.

2011년에는 뜬금없이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라는 저축은행의 대부 광고 CF를 찍었다. 이게 또 주로 야구 중계방송 때 나왔다.(...) 먹고사시기 힘드신가 봐요 나름대로 훌륭한 예능감을 뽐내고 있다. 이 기묘한 광고 캐스팅은 현대그룹과 전혀 무관한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 자신들이 현대그룹 계열사인 것처럼 보이려는 꼼수를 부리려고, 현대 유니콘스의 전감독인 김재박을 데려다 찍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필이면 광고 카피도 8888 잠깐 이러다가 현스 망하면 어떡하지 파산할 은행은 파산한다

2012년 한화 이글스넥센 히어로즈가 감독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현장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러 언론들의 보도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전구장과 한화 2군경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목격되면서 사실상 김재박으로 결정된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김응룡을, 넥센 히어로즈염경엽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지었다.

2013년 KT 위즈 창설로 또다시 감독 후보로 올랐으나, 이번에도 패하여 조범현이 그 자리를 가져갔다. 이후 사상 최악의 추락을 경험한 기아의 선동열, SK의 이만수 감독이 흔들리면서 기회를 찾는 듯 했지만 두 팀 모두 일단 감독의 임기를 지켜주기로 결정. 당분간 야인으로 남게 되었다. 다만, 2014 시즌이 끝난 후에는 감독 임기가 만료되는 팀이 3팀에다 도중하차 가능성이 있는 팀도 2팀이나 있어서 다시 얘기가 나오는 중. 그러나 기아는 김기태. SK는 김용희. 한화는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하여 야인 생활은 연장될 전망이다.

풋케위키라는 축구전문 위키 사이트에 등재된 유일한 야구인이다. 또 홍진호가 등록되어 있다.[37] 풋케위키 - 김재박역시 만능 스포츠맨 재박량

허영만 화백이 그린 김재박 단편만화도 존재했었다. 소년중앙 별책부록으로 끼워준 단편만화책으로 그야말로 김재박이 그 당시 국딩들한테 어떤 위상이었는지 말해주는 증거 중 하나. 그런데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2014년 김시진 감독이 사퇴하자 박정태와 함께 롯데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중이다. 다만, 일각에선 현대와 LG 시절부터 '초기 투자'를 많이 요구하던 김재박의 스타일을 들어 박정태 단독후보로 내세우면 욕먹을까봐 낸 구색맞추기 용 후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단은 이종운이 감독으로 선임되어 1년을 더 기다리게 됐다. 그래도 양상문 역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를 이끌었고, 김재박이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프런트가 시의 적절한 지원을 하는 구단의 감독이 될 경우 호성적을 기록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2012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박재홍은 김재박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고[38], 2013 시즌후 은퇴한 박경완도 김재박과 함께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의외로 김재박 감독을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다.[39]

6. 만능 스포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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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야구계 인물치고는 특이하게 축빠라 카더라.... 어??[40]

7. 위대한 김재박 감독님의 화려한 업적들

  • 99년 이승엽이 56홈런째에 도전하고 있을 당시 현대가 삼성에 9대 0으로 이기고 있음에도 이승엽 타석에서 고의사구 지시.
    당시 수많은 삼성 관중들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승엽의 홈런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거른다... 경기장으로 빈병 날아들고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해설자마저 "저건 아니죠...저 많은 관중들이 왜 큰 점수차로 지고 있어도 계속 경기를 지켜보는지를 생각해야죠"라고 비난. 고의사구 던진 투수 안병원은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그런데 김재박은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동안 고의사구를 한 번도 내주지 않은 기록을 가진 유일한 감독이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씩이나(2004, 2006). 그리고 2005 시즌의 2고의볼넷은 그 다음 최저 기록. 이로 보아 후배가 대기록 세우는 모습을 절대 보고싶지 않았던 게 확실한 것 같다.

  •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하고 있을 때 4번타자 김경기에게 번트 지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기록지에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것으로 나오고[41], 야구의 추억이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은식은 이대진을 주제로 한 칼럼에 번트를 댔다는 내용을 썼지만 후에 이대진과의 인터뷰에서 "갖다맞추려는 스윙을 했지 번트는 아니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영상의 부재와 김재박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사건.

  • 2000년 5월 19일,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조웅천의 증언에 의하면 빈볼 우려가 있어서 교체했다고 한다.

  • 박종호가 홈런, 3루타, 2루타를 기록해 사이클링 히트를 눈 앞에 뒀는데, 4번째 타석에서 번트 지시, 유격수 땅볼로 물러남. 결국 대기록 달성 실패. 딴 거 다 쳤는데 왜 1루타를 못치니

  • 2000년 시즌 말미, 같은 팀의 박종호와 타격왕 경쟁을 하고 있던 SK 와이번스틸슨 브리또에게 고의적인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시킴. 열받은 브리또는 시즌이 안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출국해버린다.

  • 장종훈 선수생활 마지막 올스타전에서 계속 기용 안 하다가 9회 마지막 투아웃 이후에, 그것도 원스트라이크 이후에 선수들과 팬들이 웅성거리니까 그제서야 마지못해 내보냄. 이 부분은 명백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2005년 올스타전은 장종훈 은퇴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장종훈이 대타로 나간 타석은 본래 조인성의 타석이었다.[42] 당시 중계화면을 보면 김재박 감독도 옆에서 말하기 전까지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머쓱 웃으며 출장을 지시하는데, 그 표정이나 상황이 아무리 봐도 '마지못해서'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경기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BO 역사의 한편을 장식한 거포를, 은퇴식임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고'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마지못해' 내보낸 것 이상으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런데 당시 기사에는 조금 다르게 적혀 있다. 원문은 여기

    극적으로 기회가 온 한화 장종훈(37)의 마지막 타석이었다. 올스타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장종훈은 16일 올스타전 6회부터 계속 헬멧을 쓴 채 덕아웃에 앉아있었다. 서군 김재박 감독으로부터 6회에 “9회에 나갈 준비를 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최근 몇년동안 언제 나갈지 모르는 대타 습관 때문에 헬멧을 벗지 않았다. 그러나 9회 투아웃까지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서군이 6-5로 뒤진 9회 2사 1·2루에서 조인성이 그대로 출장했다. 조인성이 아웃이 되면 장종훈에게는 더이상 기회가 없는 상황. 그런데 그 순간 덕아웃에서 의사결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또 다른 서군 포수 한화 신경현은 이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하고 조인성이 1회부터 8회까지 포수 마스크를 썼다. 조인성 타석에서 대타를 내면 동점이 됐을 경우 9회말에 뛸 포수가 없다는 것과 경기가 여기서 끝나면 장종훈에게 타석이 돌아오지 않는 것 사이에 고심하던 김 감독은 신경현에게 “뛸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신경현이 'OK'를 하자 볼카운트 1-0에서 재빨리 대타 장종훈을 외쳤다.(후략)

    이 기사에 나온 내용이라면 원래 김재박은 9회에 장종훈을 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1사 1·2루였던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면 그냥 경기가 끝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은 사실.

  • 그 외 박재홍 사건, 김동수 사건 등 사인 훔치기 논란에는 항상 김재박 감독이 있었음.

  • 2004 아테네 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전 - 삿포로 참사

  • 2005년, 모 팀을 겨냥하여 '5월이 되면 내려가는 팀이 나온다'는 명언을 시전.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데, 김재박의 명언은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가 아니고 "5월이 되면 내려가는 팀이 나온다"이다. 기사 하여간 당시 2위던 모 팀은 추락5(...) 최근 나온 증언에 따르면 이 말은 그 모 팀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라, 현 시점에서 소속팀 현대가 최하위에 쳐져 있긴 하지만 일정 간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어떤 팀이 미끄러지는 순간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의 발언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재평가를 하기엔 김재박 감독 본인의 인증이 너무나도 커서...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 도하 참사

  • 2008년 5월 29일, 이재우맹증 때문에 항상 쓰고 나오는 고글을 지적하였다.[43] 이 일로 흔들렸는지 그 해 방어율 1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필승계투 이재우는 안타를 맞고 강판되었고, LG는 이와 같은 "감독님의 활약" 덕에 잠실 라이벌인 두산전 5연패를 그날 끊었다.(...)

  • 2009년 박용택 타격왕 시켜주려고 출전 안 시키고 타격왕 경쟁상대인 홍성흔4볼넷으로 보내버리는 진상짓을 벌이고 말았다. 김영덕이냐? 1984년 당시 타격왕이었던 삼성 이만수의 타율을 지키기 위한 홍문종고의사구 사건이 25년만에 다시 벌어진 셈. 지상파 스포츠 프로그램들은 이를 두고 졸렬한 플레이라고 하나같이 비난했으며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졸렬쥐' '졸렬택'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졸렬택 플레이어 만든 사람이 꼴데팬이라는 사실은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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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 경운중
  • [2] 실업야구 시절 포함.
  • [3] 전신격인 삼미, 청보, 태평양 포함.
  • [4] 2006 시즌 도중 중도 사임
  • [5] 3위 한화, 2위 쌍방울을 꺽고 코시진출.
  • [6] 드림리그
  • [7] 드림리그
  • [8] 페넌트레이스 3위였던 두산에게 패배
  • [9] 페넌트레이스 4위였던 lg에게 패배
  • [10] 페넌트레이스 3위였던 한화에 패배
  • [11] 다만 선동열과의 비교는 김재박에게 실례일 수 있는 것이. 김재박이 오로지 현대의 돈빨과 선수빨로 우승한 거품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모기업의 지원이 끊기고 신인 1차지명도 못하던 2002년 이후에도 2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2번의 페넌트레이스 우승, 1번의 정규리그 2위를 거두는 등의 점을 보면 능력은 있는 감독이다. 애초에 조범현이 3년간 맡은 기아 타이거즈를 데리고 588 찍는 것과 이순철이 3년간 맡아서 팀 캐미스트리를 거의 붕괴시킨 LG 트윈스를 데리고 587을 찍는 것을 동급이라 취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 물론 김재박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만큼 선동열이 무능했다는 이야기.
  • [12] 프로에서는 딱 한 경기에 구원투수로 나왔다. 이 경기의 승리투수(결승타점 역시 타자로 나온 본인이 기록). 그래서 프로 통산 투수기록은 1승 무패 방어율 0.
  • [13] 해당 자료화면은 김재박의 번트와 한대화의 결승 3점홈런 장면을 합성한 것일 뿐이다. 믿으면 심히 골룸
  • [14] 불암콩콩코믹스 한대화 편에 따르면 투수에게 곰방와 니뽄진 다이스끼 케로로 아이러빗 하면서 일본투수를 안심시켜놓고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 뽀로로 만세! 를 외치면서 투수를 낚는 번트를 댔다고 한다(...). 물론 뻥이다
  • [15] 1977년 데뷔 시즌부터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었다. 실업야구 전기리그 통합 결승전에서 환상의 플레이를 보이며 우승을 이끌기도. 당시 결승전에 대한 내용은 이곳 항목을 참조.그때 인터뷰
  • [16] 타율, 홈런, 타점, 도루라는 일반성적에 MVP, 신인왕, 3관왕상이 더해져서 완성된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관 수로 치지 않는 상들이 들어가 있지만 저 상들을 수상했다면 예상할 수 있는 출루율, 장타율, 최다안타 등의 수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분야도 단지 수상을 안 했을 뿐 실제로는 1위였을 개연성은 존재한다. 여하튼 현재 기준으로 최대 몇 관왕인지는 의문. 일단은 4개다.
  • [17] 확인결과 출루율 1위도 하였다. 따라서 8관왕이며 당시 기사를 보면 현재 7관왕이라 부르는것과 달리 8관왕이라고 부르는것을 확인할수있다.당시 기사
  • [18] 148타수 65안타.
  • [19] 2위인 한일은행 투수 김윤규의 방어율이 3.21이었다.
  • [20] 대구초등학교, 1974년을 끝으로 야구부가 해체되었다
  • [21] 당시 경북중학교, 1970년 경운중학교로 교명 변경
  • [22] 그 당시 대구 출신 야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대구·경북의 야구 명문인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했으나, 당시 경북고등학교 감독이었던 서영무 감독이 테스트해보고는 몸도 작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때마침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이사간 곳 근처에 대광고등학교 야구부가 신설되면서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런데 야구 때문에 대구에서 서울로 전학 간 그가 대학교는 다시 대구에 있는 영남대학교로 오게 된 것도 이유는 비슷한데, 대광고를 졸업한 김재박은 한양대학교를 가고 싶어했으나 그 당시 한양대 감독이 경북고에서 그를 받아주지 않았던 서영무 감독이었고(...) 같은 이유로 한양대에서 퇴짜를 맞은 그는 당시 야구부가 창설된 영남대학교로 진학하면서 다시 대구로 내려오게 된다 #. 대구경북지역의 아저씨 팬들은 그때 경북고에서 김재박을 받아줬거나 영남고나 대건고라도 갔다면 삼성이 훨씬 일찍 더 많이 우승했을 거라고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 [23] 하지만 김재박은 결국 통산 1000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은퇴한다.
  • [24] 사실 이미 LG트윈스 말년부터 플레잉코치로 뛰었다.
  • [25] 정확히는 초대 단장이었던 김용휘의 판단이었다. 원래 구단에선 김용휘의 고교 선배인 백골프백인천의 영입을 검토했었다고.
  • [26] 김재박의 공도 컸지만 김용휘의 공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용휘 항목 참조.
  • [27] 당시 김재박 감독은 차마 비싼 선수 질러달라는 말은 못하고 하다못해 자신이 현대시절 가장 요긴하게 써먹었던 불펜요원인 조웅천이라도 잡아주길 구단에 요청했었다. LG의 불펜 사정은 그만큼 심각했었다. 물론 조웅천은 안 잡았다.
  • [28] 그리고 프런트에선 늘 그렇듯 대체용병으로 최악의 선택을 했다 - 존슨우어
  • [29] 덕분에 LG의 포스트 조인성감이 사라졌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최승환은 조인성과 3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1978년생. 빠른 생일이어서 학번으로는 고작 두 학번 차이.) 기량차는 현격하다. 그렇게까지 아쉬운 선수였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2011 시즌 0.234의 맹타를 친 김태군도 있는데...
  • [30] 이듬해 김정민이 부상당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반쪽짜리 성공이 되어버렸지만...
  • [31] 여기서 말하는 역량이란, 선수단의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내어 감독이 말하기 전에 알아서 지원해주는 능력을 말한다. 실제로 당시 현대 유니콘스 스태프들은 야구계에서 이구동성으로 으뜸이라 불리는 조직이었다. 비록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김재박은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성장하고 길들었기에 정작 그 시스템을 벗어났을 때 성적이 말이 아니었다는 것도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다.
  • [32] 당연 LG팬 입장에서 생각하면 통탄할만한 트레이드다
  • [33] 이는 원래 연고지인 인천을 버리고 서울로 튀려고 한 현대 유니콘스의 뻘짓이 결정타였다.
  • [34] 덕분에 아테네올림픽은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듬해에 야구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 터졌다.
  • [35] ...이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반 프로 선수들인
  • [36] 메이저리그 주전 외야수 추신수가 아닌 유망주시절의 추신수라는 것을 생각하자.
  • [37] 풋케위키에 검색하면 심판 홍진호가 먼저 나오지만 동명이인에 들어가면 나온다. 참고로 심판 홍진호가 나중에 등록된 것이며,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1년 먼저 등록되어 있었다. 등록날짜가 2012220일이다! http://footballk.net/mediawiki/홍진호_(프로게이머) - 풋케위키 홍진호 링크
  • [38] 이는 그럴만한게 박재홍이 신인 시절부터 김재박 감독이 엄청나게 힘을 실어주며 주전 1번타자로 키웠기 때문이다.
  • [39] 물론 박경완의 경우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조범현을 호명했다.박재홍의 경우는 김재박을 제일 처음 호명.
  • [40] 사실 김재박은 2005년 상암 야구장 개조 드립 때문에 다른 축빠들에게 평판이 안좋다.
  • [41] 번트였다면 유격수 땅볼아웃이 될 리가 없다.
  • [42] 조인성이 빠지면 감독추천이었던 신경현이 포수 마스크를 썼어야 했는데, 당시 신경현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다.
  • [43] 고글 착용은 규정상으로 위반이나, 어쩔 수 없거나 별 이상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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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1 02: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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