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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last modified: 2015-03-31 22:32:39 by Contributors

Contents

1. 지리학자 김정호
1.1. 간단한 인물정보
1.2. 대동여지도
1.3. 논란
2. 성우 김정호
3. 강사 김정호
3.1. 소개
3.2. 강의 스타일
3.3. 논란
3.3.1. 영문법에 대한 지나친 공식화
3.3.2. 답변
3.4. 독설
3.5. 가치관
3.6. 추가보어 논쟁
4. 가수 김정호
5. 군인 김정호

1. 지리학자 김정호

金正浩 (1804 ~ 1864)


1.1. 간단한 인물정보

조선 말기의 지도 제작자이자 지리학자. 자는 백원伯源, 호는 고산자古山子.

그에 대한 기록이 부실해서 오늘 날 남아 있는 것은 많지가 않으나, 이나 중인출신으로 추정되며, 태생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추사 김정희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미루어보아 실학을 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한기와도 교류가 있어서 김정호는 최한기가 편찬한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를 목판에 새기는 작업을 맡았고, 최한기는 김정호가 편찬한 청구도의 서문을 써주었다. 그외에 김정호를 후원한 인물로는 김정호도 참여한 여도비지를 편찬한 최성환, 대동여방도 서문을 썼으며 김정호에게 지도제작을 의뢰한 신헌[1] 등이 있었다.

위에 서술한 이유로 유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서울 종로 쪽에 살았던 듯하다. 종로학원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무언가 세워져 있는 것이 있는데, 읽어보면 김정호가 이쯤 살았던 것 같다는 늬앙스의 말이 적혀있다.

1.2. 대동여지도

Foot_Draws_Ki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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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그렸다는게 그 로 그렸다는게 아니다

자신이 이전에 편찬한 지도, 청구도와 동여도 그리고 이전의 각종 지도와 지리지를 참고해서 근대 이전에 제작된 지도 중 가장 정확한 지도, '대동여지도'를 편찬했다. 보통 인식으로는 김정호 자신이 전 국토를 유람하며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짜로 그랬는지 알 수는 없다. 조선 전체를 3바퀴 돌고 백두산을 8번이나 오르며 운운하는 것은 대동여지도가 흥선대원군의 손에 없어졌다고 당당히 사기를 친 최남선의 글에 처음 등장[2]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형편이 그리 좋지도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건 여건상 어려웠을 듯하고 필요한 지역만 답사했을 가능성은 있다[3].[4]

사실 그 안에 있는 정보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직접 그 정보를 모아서 만들 수는 없다. 대동여지도 실물은 높이 7미터에 가로 3미터 반...(!) 이걸 통째로 전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는 축약본만 보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지리 정보가 들어있는지를 모른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는 10리마다 표식을 두어서 실용적인 목적을 꾀하고, 풍부한 정보를 삽입하는 등,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조선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훌륭한 정보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10리는 직선거리 10리가 아니라 실제 거리 10리. 북쪽이나 산이 험할수록 촘촘하게 찍혀있다. 또한 김정호는 "대동지지"라는 지리지도 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지지와 지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녀석이다. 지도가 어느 정도 발전되면 모든 곳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그릴 수 없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수집된 정보들을 가지고 기도를 그리게 되는데 이 수집된 지도를 편찬하는 것이 지지이기 때문. 따라서 지도를 냈다면 지지는 당연히 내게 된다.

대동여지도만이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지도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지도덕후.

1.3. 논란

흔히 어린이 위인전 같은 데는 정확한 지도를 제작해 이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흥선 대원군이 잡아 가둬서 옥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이는 일제 당시 식민사학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다.[5][6] 이 이야기의 근원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어 독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7], 김정호가 지도 제작과 지리학에 재능이 많았으나 국가는 지도 제작에 전혀 뜻이 없어 김정호 자신이 직접 전 국토를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지만, 쇄국정책을 취하던 대원군이 이에 분노하여 대동여지도를 불태우고 목판을 없앴다는 줄거리인데[8] 철저하게 구라다.[9] 일단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이 만든 것도 아니라 관인으로써 만든 것이기도 하고, 대원군이 제작자를 잡아죽일 정도로 화가 났다면 이미 대동여지도는 불태워 없어졌을 것이다. 또한, 대원군 자체가 군사력을 중시여기고 있었는데 정확한 지도야말로 근대 군사학에서 꼭 필요했을터. 절대로 태웠을 리가 없다. 관련 내용을 잘 정리한 역사만화. 보면 좋다. 그리고 고문당해 죽었다면 '물고'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기록은 모두 그냥 죽었다고만 나온다.

조선은 지도 제작에 국가적인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중앙집권의 강화와 북방개척 등의 정치, 군사적 목적에서였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과 국학자들을 통해서 경제적, 실용적 관심에서의 지도제작도 이뤄졌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이런 실학자들의 실용적 관심에서의 지도제작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대동여지도보다 더 자세한 지도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다. 다만 '전도'가 대동여지도 하나일뿐. 사실 대동여지도의 크기를 생각하면 더 자세한 전도는 필요가 없다.

<조선어 독본>의 폐해로 인해 예전에는 지도를 불태워 없애고 목판을 도끼로 부쉈다고 써놓은 위인전까지 있었다. "그럼 지금 남아있는 대동여지도는 뭐냐?" 라고 궁금증을 느낄 사람이 많을텐데, 왠지 저런 속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게다가 김정호 목판 원본 발견 전까지 김정호의 목판은 복원된 복제품이라고 둘러댄 바 있었다. 일본 위키백과에까지 당당히 등재되어 있었으며, 영어 위키백과에도 이 구라가 적혀 있었다. 현재는 둘 다 제대로 수정된 상태.

숭실대학교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대동여지도의 목판 일부가 버젓이 남아있는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대동여지도 목판 11매가 보관 전시되어 있다.[10] 원래는 더 많이 있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로 인해 <조선어 독본>의 김정호 이야기가 생구라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최근에는 대동여지도가 직접 발로 다니면서 그린 게 아니라는 연구 논문도 발표되는 한편, 2009년 한국 사학계에서 18세기 동양의 지도제작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3년에 '한국인의 재발견 - 고산자 김정호'라는 관변드라마를 MBC에서 방영할때 다산 정약용편과 함께 방영된바 있다.물론 결말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사망크리... 이대근이 김정호 역을 했고 백두산을 일곱번 오르내리는 부분은 대한민국의 분단상황으로 인해[11] 백록담에서 촬영했다.

1995년에 3.1절 특집으로 KBS1에서 방영했던 <땅울림>에서는 김정호 역을 김영철이 맡아 열연한 바 있다.


2. 성우 김정호

3.1. 소개

주동후치타 [12]

인터넷 강의 대학수학능력시험/외국어 영역 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후 삼성물산에 1년간 다니다가 퇴직 후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 1992년도부터 영어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삼수생 출신이다. 얼굴하고 목소리하고 잘 매치가 안된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마쳤고, 1988 서울 올림픽 때 동시통역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문법을 중시하는 강사치고 발음이 좋다.

현재 수능 영어는 이투스에서, 성인 영어(TOEIC,고급 문법)는 본인이 운영하는 www.properenglish.co.kr에서, 공무원 영어는 아모르이그잼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수험생 사이에는 타미 라고 불리며 명성이 높다. 과거 비타에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비타에듀에서 출발해서 비타에듀의 1타 강사가 된 후 이투스에서도 동시에 강의를 하다가 이투스로 완전 이적하였다. 그리고 이투스에서도 한동안 1타였으나, 타 강사들에게 밀려 지금은 4타가 되었다(...) 여담으로 지옥 같이 많은 강의수로 유명하다. OT에서 120강이 목표라고.(...) 공무원 영문법 전용으로 '문법의 신'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책을 시중출간하기도 했다.[13] 아주 친절하진 않지만 독학도 가능할 법한 문법 기본서이다.

3.2. 강의 스타일

강의 중 세계사와 한국지리, 세계지리 그리고 지구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특징. 강사 본인도 아는지 이름이 같은 1번 항목과 자신을 엮기도 강의 내용으로는 문장 성분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설명하며, 문장의 구조적인 면을 많이 강조한다. 그야말로 문법덕후. 그래서 강의시간이 길고, 커리큘럼도 장난이 아니게 길다. 일부에서는 커리큘럼을 끝까지 다 따라가기보다는 중간에서 끊는 것이 낫다고도 하는 듯. 언외탐강건마 영문법의 대동여지도를 그려주지!!!

강의 특징은 '듣는 사람이 최대한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무시하는 논조도 있으나 기초상식, 생활교양, 인격성숙 등을 포괄하는 말을 자주하는 것이 특징. 물론 가끔가다 개그도 치고 나름 재미도 추구하지만 어느샌가 다시 인격수양 얘기로 돌아간다

그의 특징은 'No pain No gain' 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1. 강좌 수가 적다면 그만큼 얻어갈 수 있는 것도 적다.
2.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
3. No pain No gain 법칙을 무시하고 gain만 추구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영어의 정도 ,독해혁명 ,최우선영어단어'가 사실상 대표 수강목록이자 대부분이며 문법 독해 단어 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참고로 저거 다합치면 66강+30강 +38강.... 보통 강의시간 60분이니....열공!! 완강 후 다음날이 수능이라는 설도

3.3. 논란

3.3.1. 영문법에 대한 지나친 공식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강사 본인은 비판에 대해 통밥만 좋아하는 애들이 영어에 영자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하지만, 그 때문에 강의가 지나치게 영문법에 치중하게 되어 수능 같은 합리적인 시험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강좌 수가 많으면 얻는 것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문젠 강좌가 길어지는 이유 대부분이 쉬운 부분을 쓸데없이 어렵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어의 정도 강의에서 부사절 파트를 시중 유명한 여러 문법서 같은 경우 부사절 부분에서 부사절 접속사 혹은 숙어표현을 직역 할 경우 한국인 입장에서 대단히 난해하기에 접속사나 숙어표현을 의역한 후 쓰임새에 대한 예문을 보여주고 어떻게 적용되어 있는지 제시하는 식으로 설명되어있는데 반해 김정호는 대체로 직역표현이 어떻게해서 이렇게 의역한 뜻이 되었는지 상당부분 시간을 할애해서 꼼꼼하게 강의한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시간 싸움을 해야 하는 수험생 입장에선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실제 시간을 분배하지 않고 한 과목만 무작정 파고들다 피보는게 장수생들의 주요 스타일 중 하나다.

다만, 위의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는 한국어적으로 직역이 안되는 구문이 어떻게 그러한 뜻으로 의역되는 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반대로 단순 암기가 아닌 구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기억에 오래 남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외국어 학습의 본질은 암기인 것이 맞다. 하지만 강사가 그 구문의 생성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학습자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암기와 학습 효율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냥 암기하겠다면 강의를 활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 영문법 책이나 사서 혼자 암기하면 그만.

물론 강의스타일이 이렇게 부정적인 면만 있는것은 아니다. 그의 대표강의 중 하나인 수능시작반AB(현재 강의명은 "영어의 정도")를 듣지않으면 타미를 논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 문법서이지만 문법을 잡음으로써 독해의 기반이 되고, 수능에 나오는 어법문제를 쉽게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쌩 기초의 문법은 아니며 기초를 위한 강좌는 BTB(Back to the Basic)이라는 강좌이다. 어떤 강의든 복습은 중요하지만, 김정호의 강의는 정말로 복습이 생명이다. 결론적으론 정말 독하게 할 마음이 아닌 이상은 국영수사/과를 전부 해야 하는 고3에겐 시간적으로 좀 버거운 강사가 될 수도 있다.(물론 풀커리를 탄다는 가정하에)

여튼 다시 비판으로 돌아와서, 대표적으로 김정호와 같은 실력파 강사중 한 명인 김찬휘가 김정호와는 반대의 스타일인데 그는 현대 영문법을 강조하며 구식 문법+성문 종합영어 용어(간단한 예시로 무인칭독립분사구문)+문장의 형식론을 대차게 까는 강사이다. "이거 몇 형식? 하면 죽인다~?" 할 정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타미와 사이가 좋지 않다. 추가보어 사건도 있고 강의 스타일도 있고 사실 문법이 영어공부에 효율적이냐아니냐의 논쟁은 수능 뿐만 아니라 성인영어로 와서도 마찬가지라 강사 스타일에 따라서 문법은 반드시 필요하다vs최소한의 문법만 알면 된다vs문법 없어도 된다vs문법을 배우는 것이 오히려 영어습득에 독이다 등 정말 주장이 천차만별이다. 결국 학생이 강의 스타일과 시간, 비용 등 감안해서 자기한테 최대한 맞는 강사를 찾는 수밖에.

그래서 이런 학생들의 반응 때문인지 강의 수를 매년 점차 줄이는 식으로 대처하기도 했지만, 김정호 강사 왈은 학생들이 되려 긴 버전이 낫다는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2014학년도 수능 영어 해설강의 중 소비자들이 깊이 있는 생각 없이 상품 개선 요구를 하는 바람에 개선 후 소비자 만족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요지의 지문을 보고 자신의 AB 강좌에 빗대어 설명했다. AB에서만 들을 수 있던 설명을 듣기 위해 강의를 신청하는 건데 강의 수를 점점 줄이는 바람에 설명이 부실해졌다는 이유로 비판 받았다고. 근데 강의수가 많은 건 잡담이 많아서였던 것 같은데... 강의수를 줄일 때 잡담을 안 줄이고 설명을 줄여서 문제 잡담도 없앴는데 강의가 무미건조해졌다는 비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다만 수능 수험생의 경우 강의가 많아도 어느 정도 영어에 기초에 있는 경우에는 평생 공부할 영어 기초를 확실히 다질 수 있다는 것이 정설. 그러기에 다른 과목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한 학생은 강의 선택을 재고하는 것이 낫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강의 방식상 수능보다는 공무원 시험에 더 적합할 수 있다.

3.3.2. 답변

답변해주는 조교들의 자세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질문 올렸더니 제대로 수정해달라고 성질을 내지 않나, 그래서 기껏해서 질문 제대로 올렸더니 답변 보류(...) 뿐만 아니라 강의 답변 속도가 매우 느리다. 보통 4~5일은 기다려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인지 강의 내에서 언급하기로는 최대한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을 권하고 만약 방법이 없을 경우 마지막에 질문을 남기라고 한적이 있다. 그리고 한달을 기다리라고도 언급. 답변에관한 항의가 빗발치자 수업도중에 이것에관한 발언을했는데 사람의 심리란게 급하지않는데도 불구하고 답변을 빨리받고 싶어하고 닥달하는 것이 사람심리라며 수강생들을 한순간에 싸가지없는 x으로 만들어 수강생들은 어이상실.... 이후 조교의 답변이 불친절한 문제는 14년 9월에 올린 조교의 사과문 공지를 보아 개선이 된 듯 하다.

3.4. 독설

대표적인 김기훈까로 유명하다. 심지어 EBSi에서 강의할때도 OT에서 리딩스킬을 깠다(…). 실용적인 영어를 강조하는 김기훈에 비해, 언어 습득 환경상 영어는 문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수험생이 판단해야 할 몫. 이른바 정도를 강조하기 때문에 수능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더라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14]

한편 김기훈은 사교육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김정호의 비난에 대해 '문장을 조각조각내는 사람'이라며 "자기가 무슨 요리사인줄 아나 봅니다. 조각조각내게"라고 맞받아쳤다.[15]

2010년 9월 모의평가의 해설강의에서는 외국어영역 역사상 최악의 오답률을 기록한 빈칸 2문제를 Trash라고 하면서 출제진들을 대차게 깠다.

3.5. 가치관

상당히 애국심이 강한 편인데 아버지가 6.25 전쟁 참전 용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는 걸 괜한 국고 낭비로 생각해 자녀교육 다 시키고 나서야 나중에 국립 묘지에 가기 위해 국가유공자 등록했다고 한다. 천안함 사태가 일어났을 때 굉장히 분노한 영상이 있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강의에서 과거 정권을 비롯해서 소위 '좌파'들을 열라게 까대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한때는 수갤에서 정치 과목 어떤 강사가 좋냐는 질문이 올라오면 타미(...), 택시기사(...) 등의 낚시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반기문을 친노인사라고 보고 까면서 그의 영어실력에 태클을 건 적도 있다.(...)흠좀무[16]

한때 돌던 인강강사 최악모음이라는 짤방에서 김정호의 사진 밑에는 '타미의 정치성향'이라는 항목이 달려있었다.(...) 덕분에 특정사이트에선 실력과 이념 양쪽에서 선호받는다.

사기꾼을 매우 싫어한다. 이유는 인간간의 신뢰관계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부숴버리기 때문이라고.

또한 동물보호나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강의 중에 동물보호나 환경에 대한 지문이 나오거나 하면 수강생들에게 꼭 환경에 대해서 주의를 준다. 문젠 거기서 더나아가 극단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없어지는게 지구 생태계에 긍정적이라는 소리를 할 때마다 수강생들 등골이 오싹해진다고.삭제삭제삭제

3.6. 추가보어 논쟁

2005년(2006학년도) 9월 평가원모의고사 해설로 김기훈 등과 '추가 보어 사건'으로 분쟁을 겪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추가 보어 논란이 생긴 문장은 다음과 같다.

Such penalties result in a player being sent to an isolated area called the penalty box, after which the offender's team must be operate a player (short/shortly).

자세한 내용은 아래 자료들을 참조.

pyeonggawon_argument.JPG
[JPG image (81.93 KB)]


4. 가수 김정호

5. 군인 김정호


1931년 11월 21일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51년 현재의 해군학사장교에 해당하는 해병학교 1기로 해병대에 입대했다. 병과는 포병이었다. 11연대장, 2여단장 등을 거쳤으며 1979년에 태석 사령관에 이어 13대 사령관에 올랐다. 1981년에 전역했다. 후임자는 해군사관학교 6기 출신의 기덕 사령관.

2013년 7월 15일에 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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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병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는 조선대표로 참석했다. 김정호가 규장각에 소장된 자료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신헌의 도움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 [2] "팔역의 산천을 샅사이 답사함을 사양치 아니하였으며... 백두산만을 닐곱 번 올나갓으며 이를 위하여 수십 년 과객질을 하얏다" -고산자를 회함-, "그동안, 팔도를 돌아다닌 것이 세 번, 백두산에 오른 것이 여덟 차례라 한다." -조선어독본-
  • [3] 다만 객관적으로 김정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들은 모두 김정호가 실측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3가지인데, 청구도에 대한 서문인 최한기의 '청구도 제'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 열람 하였다", 신헌의 '대동방여도 서'에는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를 등을 참고"하였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는 "깊이 고찰하고 널리 수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기록은 없다.
  • [4] 전국을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마도 일본의 이노 타다타카를 모델로 쓴 듯한 느낌이 든다. 에도 근방의 상인출신이었던 이노 타다타카는 수차례 실측여행을 떠났고, 남쪽의 큐슈부터 북쪽의 홋카이도에 이르는 지역을 직접 측량하여 일본 최초의 실측지도인 <대일본연해여지도>를 편찬하였다고.
  • [5] 만약 이게 역사적으로 사실이라면 지도 제작 자체가 이적행위라는 모순된 결론을 낳게 된다. 그럼 지도나 지리지는 왜 만드는데? 물론 자세한 지도가 적에게 들어가면 이적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지도는 유출에 대한 우려를 하지만, 지도 만드는 것과는 별개의 얘기다.
  • [6] 한술 더 떠서, 계몽사 어린이 그림위인전기 김정호 편에서는 포도청에서 김정호의 옥사를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거짓으로 밝혔다는 대목이 나온다.
  • [7] 사실 최초는 지도에 관심이 많았던 최남선의 '고산자를 회함'인데... 그 최남선이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독본에 참여했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다.
  • [8] 조선어 독본에서는 후일담도 있다. 그런데 일부의 지도가 남아 있었고 러일전쟁때 일본인에게 입수돼서 구로키 장군이 압록강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칠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즉 조선인들이 버린 김정호의 가치를 일본인이 발견했다는 이야기, 당연히 우리나라 위인전에서는 이 부분은 빠진다
  • [9]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날조된 이야기에 대해서 처음로 체계적인 비판을 가한 사람은 이병도라는 점. 환빠들에게 신나게 까이는 그 사람 맞다.
  • [1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판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보관소에 버젓히 남아 있었음에도 박물관 사람들조차 그게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5년 12월에 박물관 이전 작업 중에 유물 정리하다 보니 그제서야 그게 있다는 걸 발견한 것.
  • [11] 한중수교는 1992년에 이루어졌고 북한이야 뭐...
  • [12] 이투스에서 김정호 강사를 위시하는 타이틀. 주동후치타란 영어문장을 볼 때 어를 찾고 사를 찾고 후치수식이 있으면 괄호로 묶은 다음 동사일 경우 목적어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모든 영문장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게 김정호 강사의 지론이다.
  • [13] 공무원 교재는 보통 시중출간한다.
  • [14] 항상 수능 2주전 기술적 문제풀이 강좌판매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투스에서 EB~ 대비강좌도 찍기 시작하면서 정도에서 점점 멀어진 느낌은 어느정도 든다.
  • [15] 2011년 Finishing Touch 마지막 강의에서
  • [16] 허나 아이러니하게 반기문 총장은 외국영어강사들에게 영어실력을 극찬받은 적이 있다. 반기문 항목 참조. 우스갯소리로 반기문 총장 덕분에 한국식 영어발음이 유엔공용발음이 되었다고 말하는 강사도 있다. 물론 진지하게 들으면 골룸하다.
  • [17] 김기훈 또한 이 동영상을 보고 기분이 불쾌했던지(...) 2012 수능대박송 뮤직비디오에서 은근하게 디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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